(2) Nobuya Fukuda - [ 謝罪について ]...
Nobuya Fukuda
11 hrs ·
[ 謝罪について ]
人は生きている間に何度か謝罪の言葉を口にする。人はこの世に生まれてから、あの世に旅立つ前に何回謝罪の言葉を口にするのだろう。社会性に乏しいからか、過ちから学習する力が乏しいせいか、僕の場合、数えきれないくらい、人に謝り続けてきた。子どもの頃から謝り続けてきたせいで、謝る事に対して、僕は抵抗を感じることがほとんどない。人を怒らせたり、築けたりしたら、まず謝る。これは僕が人生から学んだ、数少ない社会的な行動の一つだった。
「お前は口ではごめんなさいと言っているけど、心の中ではベロを出して笑ってるんじゃないのか」。沖縄に移住してきて間もない頃、移住者の先輩にそう言われたことがある。彼の言ったことは実は的を射ていて、正直ショックだった。
それから何年も経って、謝罪について考える機会が増えてきた。沖縄に住んでいると、「沖縄の米軍基地問題」が、日本が加害者で沖縄が被害者という図式で示される日本の問題であることから目おw背けることができなくなる。台湾や、韓国、そして中国に訪れて、現地の人との間に親しい関係が増えれば増えるほど、歴史問題が違ったように見えてくる。日本人の一人として従軍慰安婦と南京大虐殺に代表される歴史認識を巡る対立に向き合わざるを得なくなる。在日コリアンへのヘイトスピーチや、移民や難民の受け入れに消極的な日本の社会(つまり僕たちの心の狭さ)が日本人の一人として恥ずかしくなる。そういうことがあるから、謝罪について、あるいは責任の取り方について考える機会が増えている。//
こないだもチラリと投稿したように、8月に中国を始めて訪れた。向かった先は南京。滞在期間中、慰安婦博物館、抗日戦争博物館、南京大虐殺記念館( 侵華日軍南京大屠殺遭難同胞紀念館)を見学した。南京大虐殺記念館に行ったのは8月15日で、毎年恒例の追悼式典にも参列させてもらった。そして、式典の後、南京大虐殺を生き延びた人の話を聞いた。//
ちなみに今回の訪中は、韓国、中国、台湾、モンゴルそして日本を含めた東北アジアの各地域を結ぶネットワークNARPI主催のサマートレーニングに参加するためのものだった。この企画に始めて参加したのは2016年からで、その時から参加にあたって自分にあるルールを課した。それはアジアの「隣人」に出会ったら謝罪をすることだった。初参加の台湾では韓国や中国などどからの参加者にできる限り謝罪した。謝罪ができて、気持ちが少し晴れた。でも、滞在の終わりの日に言われたひと言が、謝罪について考えさせるきっかけになった。//
「あなたはいつも謝ってたけど、なぜですか?」//
あなたの謝罪は相手のためのものですか?自分のためのものではないですか?謝ることで歴史はなかったことにできると思いますか?そういう問いかけをもらったのだ。//
翌々年に参加した韓国の済州島でも謝罪がある友人との間でディスカッションのテーマになった。//
「私が出会う日本人はみんないつも謝ってばかり。最初は素直に謝罪の言葉を受け入れていたけど、ある時怒りを感じたのよ」//
ごめんなさいっていう代わりに何かやるべきことがあなた達にはあるんじゃないかという問いかけだった。それ以来、僕が自分に課した「謝罪」のルールは揺れ動き続けている。//
そのようにして、南京大虐殺記念館で家族を日本軍に殺されたおじいさんの話を聞いた。三つの博物館を訪ねた後だったので、受け取ったかつての日本人の悪い行動にかする情報量はすでに自分のキャパシティを超えていた。加害者の末裔としての自分に、向き合うのはもうたくさんだと、身体が悲鳴を上げていた。だから、生存者の話も、正直なところ上手に掴み取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話が終わって、質問の時間になっても、いつもと違って自分は手をあげられなかった。会が終了して、記念撮影や雑談が始まっても生存者の方へ近づくことができなかった。//
なぜなら、僕の祖父は南京攻略作戦に関わった歩兵十三連隊の下士官で、南京大虐殺にも加わって、罪のない市民や女性や子どもの殺害に関わっていないという保証はなかったからだ。/
ついに生存者が会場をでよとした時に、やっと、自分の足が動いた。生存者を追いかけた。同伴していた通訳の女性に頼んで、生存者に語りかけた。//
自分には南京作戦に参加した祖父がいること。彼が中国で何をしたのか、一度聞こうとしたけれど、ちゃんと聞くことができなかったこと。祖父は自分にとってはとっても優しいおじいちゃんであり続けたこと。祖父が何をしたかはわからないけれど、虐殺があった時南京にいたのの確実だから、中国の人に謝罪したいという気持ちは天国に行った今でも思っているはずだということ。だから、祖父の代わりに謝罪させてほしいということ。そういうことを話して「ごめんなさい」と謝罪をした。//
生存者は微笑んでくれた。そして僕の手を取って「嬉しい」と言ってくれた。その言葉はその時の僕を明らかに救ってくれた。謝罪してよかったと思った。//
でも、その後、やっぱり考えてしまう。「大丈夫だよ」という許しの言葉は何よりも僕を複雑な気持ちにさせる。そしてまた謝罪について考える。正直まだ整理がついていない。けれども一つ言えるのは、謝罪は始まりであって、終わりではないということだ。そして多くの場合、謝罪は、壊れてしましまった関係を修復するプロセスの初めの一歩だということだ。//
謝罪の気持ちを表明する。だから相手は受け入れてくれる。もう大丈夫だよと言ってくれる。でも、もし、謝罪の気持ちが伝わっていなければ、相手は違う言葉を発するはずだ。/
「ごめんなさい」という言葉に投げ返される「もういいよ」という言葉には、許しとは別の意味(ニーズ)も含まれている。そのことが、やっとわかりかけてきた。//
번역 보기
[사과에 대해]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몇 차례 사과의 말을 입.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에서 저 세상으로 떠나는 전에 여러 번 사과의 말을 입에 것이다. 사회성이 부족한 때문인지, 실수로부터 학습하는 능력이 부족한 탓인지, 내 경우 셀수 없을 정도 사람에게 사과왔다. 어릴 적부터 사과해온 탓에 사과 것에 대해 나는 저항을 느끼는 일이 거의 없다. 사람을 화나게하거나 쌓을거나하면 먼저 사과한다. 이것은 내가 인생에서 배운 소수의 사회적 행동의 하나였다. "너는 입으로는 미안 해요라고하고 있지만, 마음 속으로는 벨로을내어 웃고있는 게 아닌가." 오키나와에 이주한 지 얼마되지 않은 무렵, 이민자 선배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있다. 그가 말한 것은 사실 인을 사정하고, 솔직히 충격이었다. 세월이지나면서 사과를 생각할 기회가 많아졌다. 오키나와에 살고있는 '오키나와 미군 기지 문제 "가 일본이 가해자 오키나와가 피해자라는 도식으로 표시되는 일본의 문제이기 때문에 눈 소리 w 돌릴 수 없게된다. 대만과 한국, 그리고 중국에 방문하여 현지의 사람과의 사이에 친밀한 관계가 많을수록, 역사 문제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종군 위안부와 난징대 학살로 대표되는 역사 인식을 둘러싼 갈등에 마주 수밖에 없게된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증오 연설이나 이민 및 난민 수용에 소극적인 일본의 사회 (즉 우리들의 마음의 좁음)이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지된다.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사과에 대해서, 또는 책임의 취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늘어나고있다. //
지난번에도 살짝 게시 한 바와 같이, 8 월 중국을 시작 찾았다. 향한 곳은 난징. 체류 기간 동안 위안부 박물관, 항일 전쟁 박물관, 남경 대학살 기념관 (侵華 일 군 난징대 학살 조난 동포 기념관)을 견학했다. 난징대 학살 기념관에 간 것은 8 월 15 일에서 매년 추도식에 참석시켜달라고했다. 그리고 행사 후 남경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
참고로 이번 방중은 한국, 중국, 대만, 몽골 그리고 일본을 포함한 동북 아시아의 각 지역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NARPI 주최의 여름 훈련에 참가하기위한 것이었다. 이 기획에 시작 참가한 것은 2016 년부터로, 그 때부터 참여있어서 자신의 규칙을 부과했다. 그것은 아시아의 '이웃'을 만나면 사과를하는 것이었다. 처음 참가한 대만에서는 한국과 중국 등 등의 참가자들에게 가능한 한 사과했다. 사과 수, 기분이 조금 맑은. 하지만 체류 마지막 날에 말한 한마디가 사과를 생각한 계기가되었다. //
"당신은 항상 사과했지만, 왜?"//
당신의 사과는 상대를위한 것입니까? 자신을위한 것이 아닌가요? 사과의 역사는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질문을받은 것이다. //
다음 해에 참가한 한국의 제주도에서 사과가 친구 사이에 토론의 주제되었다. //
"내가 만나는 일본인은 모두 항상 사과뿐. 처음에는 솔직하게 사과의 말씀을 받아 있었지만 어떤 때는 분노를 느낀거야"//
미안 해요라고 대신 뭔가 할 일이 당신은 우리에 있는게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그 이후로 내가 자신에게 부과 한 "사과"의 규칙은 요동하고있다. //
그렇게하여 남경 대학살 기념관에서 가족을 일본군에 살해당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세 박물관을 찾은 후 였기 때문에받은 일단의 일본인의 나쁜 행동에을지 정보량은 이미 자신의 용량을 초과했다. 가해자의 후예로서 자신에 마주 것은 충분 해하면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래서 생존자의 이야기도 솔직히 잘 잡아 취할 수 없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질문 시간이 되어도 평소와 달리 자신은 손을 들어지지 않았다. 모임이 종료하고 기념 촬영이나 잡담이 시작 되어도 생존자쪽으로 접근 할 수 없었다. //
왜냐하면 나의 할아버지는 난징 공략 작전에 참여한 보병 열세 연대 상사에서 난징대 학살에 가담하여 무고한 시민이나 여성과 어린이 살해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몸. /
마침내 생존자가 회장을에서 것과했을 때에 겨우 자신의 다리가 움직였다. 생존자를 쫓아갔습니다. 동반하고 있었다 통역의 여성에게 부탁해 생존자에게 말을했다. //
자신 난징 작전에 참가한 할아버지가있는 것. 그가 중국에서 무엇을했는지 한번 들으려고했지만, 제대로들을 수 없었던 것. 할아버지는 자신에게는 매우 부드러운 할아버지로 계속했다. 할아버지가 무엇을했는지는 모르지만, 학살이있을 때 남경에 있던 확실한이기 때문에 중국 사람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은 천국에 간 지금도 생각하는 것이라는 것. 그래서 할아버지 대신 사과시켜 달라는 것. 그런 것을 말해 "미안해"라고 사과를했다. //
생존자는 미소 지으며 주었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기쁘다"고 말해 주었다. 그 말은 그 때의 나를 분명히 구해 주었다. 사과 좋았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그 역시 생각된다. 「괜찮아」라고 용서의 말은 무엇보다도 나를 복잡한 기분시킨다. 또한 사과에 대해 생각한다. 솔직히 아직 정리가 붙어 있지 않다. 그러나 하나 말할 수있는 것은 사과는 시작이지 끝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종 사과는 손상되었습니다 기다렸다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의 시작 단계라는 것이다. //
사과의 뜻을 표명한다. 그래서 상대는 받아 준다. 이제 괜찮아라고 말해 준다. 하지만 만약 사과의 마음이 전해지지 않으면, 상대는 다른 말을 발하는 것이다. /
"죄송합니다"라는 말에 던져 반환 "이제 됐어"라는 말은 용서와는 다른 의미 (요구)도 포함되어있다. 그 것이 やとわかり 걸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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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uya Fukuda 南京大虐殺記念館の微博公式アカウントに、セレモニーの様子が紹介され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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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roi Michiko 謝罪は終わりではない-時間をかけてじっくり考えなければと思いました。ノブヤさん有難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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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uya Fukuda ミチコさん、お久しぶりです。いろんな意味でほんとに楽しかったですね、南京。同じ過ちを繰り返す自分にとっては特にエンドレスなの謝罪です。身近な平和、小さな平和。僕にとってはそれが一番難しい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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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o Katano 修復的な質問を一つ。のぶやさんの謝罪は、誰の、どんなニーズを満足するものだと思いますか?
Nobuya Fukuda 南京大虐殺の生存者への謝罪は、何らかの「加害者」である祖父、生存者とその家族(犠牲者)、そして僕自身のニーズを満たしていると思います。けれでもそれは数あるニーズの中の一部分でしょう。祖父については贖罪したいという気持ちを、生存者とその家族については、加害者の気持ちを知りたいというニーズを満たしているはずです。僕については、何らかの責任を持つ戦前戦中を生きた日本人が表明すべき言葉を代弁したいというニーズです。僕のニーズを満たすことは、生存者にとっても、今を生きる加害国の市民が、あの事件をどう考えている…See more
Nobuya Fukuda その一方で現在進行中のヘイト問題や、沖縄への基地の押しつけている状況については、少し状況が異な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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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uya Fukuda ここまで書いて、しばらく時間が経って感じたのですが、「ニーズ」という言葉、「満たす」という言葉、何だか、学術的な匂いが強く、歴史問題についての個人のリアルな行為といささか距離を感じます。この手のやり取りはふさわしい場所でやるのが良いのか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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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o Katano RJの基本にそって質問したつもりですが、質問の仕方がよくなかったように思います。私ではない人がすべき質問だったかもしれませんね。ごめんな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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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uya Fukuda 南京大虐殺の生存者への謝罪は、何らかの「加害者」である祖父、生存者とその家族(犠牲者)、そして僕自身のニーズを満たしていると思います。けれでもそれは数あるニーズの中の一部分でしょう。祖父については贖罪したいという気持ちを、生存者とその家族については、加害者の気持ちを知りたいというニーズを満たしているはずです。僕については、何らかの責任を持つ戦前戦中を生きた日本人が表明すべき言葉を代弁したいというニーズです。僕のニーズを満たすことは、生存者にとっても、今を生きる加害国の市民が、あの事件をどう考えている…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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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uya Fukuda ここまで書いて、しばらく時間が経って感じたのですが、「ニーズ」という言葉、「満たす」という言葉、何だか、学術的な匂いが強く、歴史問題についての個人のリアルな行為といささか距離を感じます。この手のやり取りはふさわしい場所でやるのが良いのか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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