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7

[식민지시대경험] 김철의 <식민지를 안고서> 읽기 - 토론하기 세미나 - 오늘 이네요....

 [식민지시대경험] 김철의 <식민지를 안고서> 읽기 - 토론하기 세미나 - 오늘 이네요....



[식민지시대경험] 김철의 <식민지를 안고서> 읽기 - 토론하기 세미나
- 오늘 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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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목차
1
'결여'로서의 국(문)학
갱생(更生)의 도(道) 혹은 미로(迷路)
두 개의 거울 : 민족 담론의 자화상 그리기

2
프롤레타리아 소설과 노스탤지어의 시공(時空)
우울한 형/ 명랑한 동생
동화(同化) 혹은 초극(超克)

3
그녀를 죽인 것은 나였을까?
저항과 절망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세계인의 초상
공자·아우얼바하·유종호
세계화·번역·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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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화해하기, [김철] <식민지를 안고서>

Essays & Critics/Books | 2015.07.13 19:06 | Posted by 西崙
http://clementsy.tistory.com/74
동지와 약속이 있어 나가던 중 우산 하나 날려먹었다. 저녁답에는 물러간다던 비바람이 어찌 이리 고약스러운지! 전화를 하여 약속을 미루고 들어와 책을 펴들었다. 오늘은 그냥 집에서 책 읽고 작업이나 해야겠다는 심산.
펴든 책은 지난 금요일에 김철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두 권중 하나, <식민지를 안고서>이다. 선생님의 논문과 에세이 모음집으로, 요거 몹시 재미있다. 논문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는 경험은 많지 않다. 단지 좋은 문장이나 풍부한 표현, 유려한 흐름의 문제가 아니다. 방대한 텍스트를 치밀하게 정독하며 연구와 사색으로 다져진 시간의 더께가 정교함 속에도 꾹꾹 눌러담긴 단단함. 다소 길지만 정리하면 이 정도의 느낌이다.
논문집이라서 아무데나 펼친 곳의 글을 읽어나가도 별 무리는 없다. 방금 펼쳐 읽던 부분은 최현배의 "조선 민족 갱생의 도"가 해방 이후 저항사 연구에서 전유된 방식, 그리고 그 안에서 은폐된 분열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논문이다. 김철 선생님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 학계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고 처음 들었을 땐, 내가 뵈었을 때 들었던 말씀과 받은 인상에 비추어 고개를 갸웃거릴 만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내릴 수밖에 없는 결론은 김철 선생님이 뉴라이트 계열이라는 비판의 부당함보다는 역사에서 주체성을 세우려는 한국사회의 많은 노력들은 실제로 자기배반을 통하지 않고서는 성립이 안 된다는 점, 자기부정을 바탕으로 자기동질성을 획득해갈 수밖에 없는 분열증적 증세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민족이나 국가의 주체성이라는 것을 사회 행간에 속속 채워 넣으려는 그간의 주된 노력의 기저에는 피지배, 피억압의 경험을 치욕으로 여기는 강자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의 기억이 치욕의 역사라는 인식 하에서 극복의 대상이 될 때 역설적으로 '치욕'을 가능케 하는 정서적 바탕 즉 지배와 피지배의 전투적 구도 속에 스스로를 옭아넣는 자기배반이 성립한다는 점은 교육되지 않고 있다. 다소 위험한 유비이겠으나, 사회를 하나의 인간으로 보았을 때 도정일 선생의 문장을 여기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마흔이 넘어 사람이 훨씬 중후해보이는 것은, 얻은 것보다는 자신이 잃어버린 시간과 화해하는 법을 터득하는 데 있다. (중략) 이것을 가리켜 성숙이라고도 하고...(후략).."
우리가 먼저 화해해야 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잃어버린 주체성이지 않을까? 이 책에도 인용된 윤동주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쉽게 쓰여진 시")'가 표상하는 것, 자기 자신을 보듬어주는 것, 자신의 무력함을 용서하고 자신을 귀애하며 달음질쳐 도망하고 싶은 기억을 품어안는 것, 사실은 이것이 주변의 타인들을 편안케 하는 첩경일 것이다.
.... 쓰다보니 길어지고야 말았다. 끄헝... 작업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