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4

황대권 대단한 광주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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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h 
대단한 광주사람들
“자 그럼 다음 수상자인 명창 정준찬 선생님을 모시겠습니다.”
명창이 무대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으면서 겸양의 한 마디를 던진다.
“뭐 한 것두 없는디.”
“한 게 없다구요? 그럼 여기서라도 함 해보씨오!”
“아 관둘라요, 그냥 상이나 주쇼.”
“그냥은 못 주지.”
사회자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이 산, 저 산~” 하면서 소리를 친다.
사람들은 박장대소하면서도 가락에 맞춰 추임새를 놓는다.
구성진 소리가 좌중을 압도하자 모두들 신명나게 함께 노닌다.
얼마나 열심히 부르고 화답하는지 그 자리가 수상식 자리인줄도 까먹을 정도.
소리가 끝나자 사회자가 명창더러 이제 내려가라고 한다.
아마도 수상 후 뒷풀이로 착각한 모양이다.
그러자 명창이 어이없는 듯 소리친다.
“그래도 상은 줘야할 것 아니여?”
오늘 광주에서 <역사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주최로 신년하례 겸 공로자 수상식이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몇 년 만에 여는 것이라 많은 회원들이 모였다.

첫 번째 수상자는 1973년 유럽거점간첩단 사건 용의자인 서울법대 최종길 교수가 수사도중 죽은 뒤, 30년 동안 귀국하지 못했던 김성수(88세) 독일문화원 원장.

두 번째 수상자는 얼마 전 윤석열 정부가 국민훈장 수여를 연기하여 화제가 된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95세). 그 뒤로 광주의 민중화가 이상호 화백과 주홍 화백에게도 상이 주어졌다. 양금덕 할머니는 95세의 나이에도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내 생애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상이란 걸 받기는 처음이라며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모두들 할머니 이름을 부르며 함께 기뻐해주었다. 일본의 눈치를 보느라 이미 예정된 서훈조차 외면해버린 강제징용 피해자 할머니의 서운함이 어느 정도 가시는 듯 했다.
이 수상식은 낮에 <광주 518기록관>에서 열린 김성수 박사의 저서 <서양철학의 역설> 출판기념회에 이은 뒷풀이 성격의 행사였다. 나는 비슷한 유학생간첩단 사건의 피해자로서 축하와 위로의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을 받아 왔다. 518기록관 강당에 들어서자 장내를 가득 메운 인파를 보고 깜짝 놀랐다. 50년만에 찾은 고향(김박사님은 전남 화순 출신)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환영해 준 것에 김박사님도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다. 멀리 이국땅에서 반세기 넘게 알아주지도 않는 통일운동을 묵묵히 해 오신 것에 대한 격한 환대의 자리였다. 광주가 아니고 대한민국 어느 도시에서 이런 환대의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정말 대단한 광주사람들이다.
놀랍게도 김박사님은 독일에서 ‘동학’을 주제로 철학박사를 취득하고 <동경대전>을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동경대전>의 최초의 외국어 번역이 아닌가 한다. 이번에 발간한 책도 그런 연구의 결실이다. 평생의 연구를 통해 서양철학으로는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는 나름의 결론을 가지고 강호제현의 평가를 기다린다고 당부하신다. 서구의 지배가 막판을 향해가는 이 시점에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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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문규
    대단한 광주 사람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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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의 역설 | 김성수 - 교보문고

서양철학의 역설 | 김성수 - 교보문고:


김성수 저자(글)
도서출판 바람꽃 · 2023년 01월 18일





책 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국내도서 > 인문 > 철학 > 서양철학일반 > 서양철학의이해

김성수 박사는 전남 광주고등학교(3회), 연세대학교 철학과 학사 및 철학 석사로 졸업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요한 볼프강 괴테)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문과 더불어 사회운동의 실천활동가인 김성수 박사의 『서양철학의 역설』을 『도서출판 바람꽃』에서 펴냈다.

제1부에서는 서양철학의 기본성격을 3장으로 나눠 고찰했다.
1장에서는 이분법적 사유를 기반으로 하는 고대 그리스철학이 서양철학의 뼈대로 정착되었으며, 이러한 이분법적 성격의 철학이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군림하게 된 시대적, 종교적, 사회적 배경을 살펴봤다.
2장에서는 서양철학의 기본성격인 이분법성(Dichotomie)의 근원, 이와 연관된 이원론적 테마 설정, 이에 기반한 이론 전개 방식을 세 가지 파라디그마(Paradigma)로 정립했다.
3장에서는 서양철학의 이분법적 성격으로 역설은 불가피하다는 근거를 고찰했다. 이와 더불어 역설의 의미와 종류에 대한 새로운 정리를 시도했다.

제2부에서는 서양철학에서 나타난 역설의 양상을 표본적으로 찾아 정리했다. 서양철학은 전통적으로 1장 존재론, 2장 인식론, 그리고 윤리학의 3대 부분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3장 인간학에 윤리학을 포괄하면서 범위를 넓혔다.

제3부에서는 20세기에 유럽과 미국에서 전개된 중요한 철학 이론들을 고찰했다. 1장 사변론, 2장 학제 간 협동론, 3장 반이성주의로 구분했다.
새로운 이론들은 이전 이론들의 역설 현상을 극복해 보려는 내용으로 구성하였다. 이 이론들 스스로 역설에 봉착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이 고찰을 통해 서양철학은 전반적으로 자신이 직면한 역설의 한계 정도로 이해하고 있으며, 역설과 그 근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몰지각의 상태에 있다는 상황이 폭로될 것이다.

제4부에서는 18세기 철학적 역설 현상을 가장 활발하게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을 다루었다.
대표적인 문학작품은 한국에서도 많이 회자된 괴테의 『파우스트』,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또는 근대 프로메테우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이다.
이 문학 작품들은 감성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과의 이분법적 대립관계에서 스토리를 전개한다. 내용적으로는 가장 전형적인 역설적 상황을 실감 있게 형상한 것으로 해석할 때 그 문학적 사상도 돋보이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작품들의 전개도 역설의 근원이나 출로에 대해서는 서양철학의 한계와 별다르지 않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하나의 희망적인 길은 한반도의 전통적인 천지인(天地人) 사상과 불연기연(不然其然) 사상 등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제시한다.
『서양철학의 역설』은 이러한 관점에서 저술된 책이다.
“이성은 사유의 주체일 뿐 아니라 감정과 의지, 행동 등을 포괄하는 의식의 주체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이성이 언어를 수단으로 하지 않는 인지의 가능성을 찾을 때 독자들을 자주-주권-주체라는 인간 존엄의 최고봉으로 더욱 확고하게 인도하리라 생각한다.

작가정보

저자(글) 김성수
인물정보
철학자



Dr. Kim, Sung-Soo
1936년 전남 화순읍에서 태어나 전남 광주고등학교(3회), 연세대학교 철학과 학사 및 철학 석사로 졸업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요한 볼프강 괴테)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3년 서울법대 최종길 교수와 관련된 ‘유럽거점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1973년 10월부터 2003년 9월까지 30여 년간 고국 방문을 고국 방문을 할 수 없었다. 독일에서 50여 년간 민주화 통일운동과 문화운동에 주동적으로 참여했다.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초 기간에는 민주사회건설협의회, 코리아코미티, 해외기독자통일위원회의 창립회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까지 6·15공동선언실천 유럽위원회 자문위원이다. 현재 독한문화원(Deutsch-Koreanisches Kulturinstitut e.V.) 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동학 동경대전 독일어 번역과 해설』 (Das Goße Buch des Tonghak von Choe.Che-U, IKO-Verlag, Frankfurt am Main, 1997)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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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ㆍ 5

제1부 서양철학의 기본성격
1장 이분법적 철학의 일반화 ㆍ 22
1절 이분법적 철학의 정착 ㆍ 23
1. 이분법적 철학의 대두
2. 헬레니즘 이후의 신플라톤주의
3. 그리스철학의 재활
2절 이분법적 학문의 절대화 ㆍ 35
1. 로마제국과 기독교
2. 스콜라철학의 군림
3. 이분법적 학문의 제도화
3절 이분법적 철학의 세계화 ㆍ 46
1. 유럽 사회의 근대 산업화
2. 세계의 식민지화
3. 유럽 중심주의화
2장 이분법적 서양철학의 특징 ㆍ 56
1절 사유 성격 ㆍ 57
1. 재래 사유론의 오류
2. 사유 구성의 입체성
3. 사유 성격의 이분법성
2절 이원론적 테마 설정 ㆍ 87
1. 철학
2. 사회과학
3. 자연과학
3절 이원론적 이론 전개 파라디그마 ㆍ 94
1. 일자택일/Entweder oder
2. 양자배합/Sowohl als auch
3. 양자부정/Weder noch. 일자택일
3장 역설에 대하여 ㆍ 110
1절 역설의 의미와 종류 ㆍ 111
1. 역설의 의미
2. 역설의 종류
2절 역설의 발생 근원 ㆍ 119
1. 물질과 의식
2. 부분과 전체
3. 현상과 본질
3절 비이분법적 담론 ㆍ 131
1. 도형이론
2. 불가의 여여(如如)
3. 도가의 무위(無爲)

제2부 서양철학의 역설 양상
1장 존재론 ㆍ 148
1절 존재의 시원론 ㆍ 149
1. 유존재론
2. 무존재론
3. 양립론의 역설
2절 존재의 성격론 ㆍ 157
1. 물질적 성격
2. 관념적 성격
3. 상호전환의 역설
3절 존재의 양상론 ㆍ 165
1. 실재론
2. 유명론
3. 보편논쟁의 역설
2장 인식론 ㆍ 176
1절 인식의 주체론 ㆍ 177
1. 이성론
2. 감정론
3. 옥시모론 역설
2절 인식의 성립론 ㆍ 187
1. 경험론
2. 합리론
3. 뮌하우젠 역설
3절 인식의 방법론 ㆍ 199
1. 반영론
2. 구성론
3. 악마의 순환
3장 인간학 ㆍ 210
1절 윤리학 ㆍ 211
1. 윤리규범 성립론의 역설
2. 윤리규범 원천론의 역설
3. 윤리규범 실천론의 역설
2절 심리학 ㆍ 230
1. 심리학의 근원적 역설
2. 심리치료의 역설
3절 인간학적 사회론 ㆍ 241
1. 사회 형성론의 역설
2. 사회 유지론의 역설
3. 사회 발전론의 역설

제3부 역설의 극복 시도 이론들
1장 사변론 ㆍ 258
1절 초월주의 ㆍ 259
2절 에소테릭 ㆍ 266
3절 알레테이아 ㆍ 273
2장 학제 간 협동론 ㆍ 278
1절 합동론 ㆍ 279
2절 통합론 ㆍ 286
3절 삼분법론 ㆍ 291
3장 반이성주의 ㆍ 298
1절 반합리주의 ㆍ 299
2절 비판이론 ㆍ 306
3절 해체주의 ㆍ 313

제4부 문학에서의 역설 형상
1장 파우스트 ㆍ 322
1절 시대적 배경과 작품 성립 ㆍ 323
1. 시대적 배경
2. 파우스트 작품 완성 과정
3. 새로운 안목

2절 파우스트의 비극 ㆍ 326
1.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메피스토)
2. 메피스토의 간단한 소개
3절 신에게로 도피 ㆍ 332

2장 프랑켄슈타인 또는 근대 프로메테우스 ㆍ 336
1절 시대적 배경과 작품 성립 ㆍ 337
1. 시대적 배경
2. 작가 메리 셸리
2절 작품의 전개 ㆍ 342
1. 주인공 프랑켄슈타인의 내력
2. 괴인, 프랑켄슈타인의 모습
3. 프랑켄슈타인의 행적
3절 이성의 부메랑 ㆍ 348
1. 프랑켄슈타인과 프로메테우스

3장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ㆍ 352
1절 시대적 배경과 작품 성립 ㆍ 353
1. 빅토리아 시대
2. 작품의 전개
3. 스티븐슨의 좌절

맺음글 ㆍ 366
추천사 ㆍ 368
참고문헌 ㆍ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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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정대현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

나의 철학과는 다르지만 형님께서 일생 동안 추적해 오신 서양철학사에 대한 깊은 탐구가 지적 고통과 번민의 기록이 감동적이다. 모든 사람이 세계를 해석한다는 의미에서 말할 때 철학자라면 또한 모든 사람은 형님처럼 자신의 일생을 이처럼 내보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김상일 (클레어몬트대학교 코리아프로젝트 디렉터)

김성수 박사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와 역사 그리고 통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현장에서 투쟁해 왔다. 제1부에서 서양철학의 역설 해의법이 이분법과 이원론을 초래하였다고 서양 문명사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분단 역시 서양 이분법의 결과라는 것이기 때문에 통일 역시 이분법과 이원론 극복에 있다고 이 책의 제1부는 말하고 있다.
최재영 (NK VISION 2020대표,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장)

마치 그리스 신화의 시대가 끝나고 철학의 시대가 시작된 기원전 7~6세기처럼, 이제 이 책이 세상에 드러나는 2023년도는 바야흐로 서양철학 시대가 마무리되고 주체적 철학이 전 세계의 새로운 철학 사조로 자리매김하는 시발점이 되는데 김성수 박사님이 큰 역할을 해주시기를 고대한다.
이병창 (동아대학교 교수)

저자는 다양한 역설이 서양적 사유의 근본인 이원론적 사유에 뿌리를 둔 것이라 보면서 이원론적 사유의 극복을 위한 사유의 여정을 떠난다. 이것은 독일에서 오래 거주하면서 겪은 서양문화에 대한 저자의 체험이 바탕이 되었다고 보겠다. 이원론을 극복하려는 저자의 고투는 동학사상의 고투를 연상시킨다. 동학사상 역시 서학의 이원론적 사유를 불연기연(不然期然)이라는 개념을 통해 극복하려 한 바 있기 때문이다. 역설을 극복하기 위한 저자의 고투는 남북의 대결을 사상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고투이기도 할 것이다.
박준규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서양철학의 역설』은 서양철학의 근본적인 특징과 한계인 역설 문제를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경계선에서 서서 연구한 김성수 박사님의 결과물이다.
제2부에서 다루고 있는 서양철학의 3대 부분인 존재론, 인식론, 그리고 윤리학은 인류학의 존재론적 전회와 원주민적 비판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윤리학, 심리학, 사회적 인간학을 같이 다루고 있는 3장 인간학에서는 이분법적 사유에 기반한 유럽의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가지고 있는 필연적 역설 현상을 조목(條目)하고 있어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와 원주민 연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원주민적 비판에 대한 철학적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관심 있는 분들께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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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사람은 살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또한 사람은 가장 창조적인 존재이다. 그리고 많은 문제의 근원이 되기도 하는 이성과 언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숙명을 가졌다.
이러한 조건에서 새로운 철학은 어떻게 기능할 것인가?
이성은 사유의 주체일 뿐 아니라 감정과 의지, 행동 등을 포괄하는 의식의 주체가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성이 언어를 수단으로 하지 않는 인지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이성은 언어적 사유가 아닌 돈오, 통찰 등으로 창조 활동의 근거가 되는 황금의 단추, 맥, 중심고리, 도축 등을 찾아내는 것이다. 언어는 이렇게 찾아낸 것을 확정하고 전달하는 수단임에는 여전히 유효하다.

제1부에서는 서양철학의 역사를 2500년에서 3000년으로 산정하고, 이 역사 기간 관통하고 있는 근원적 특징이 무엇이며, 이 근원적 특징인 이분법성의 성격을 고찰했다. 그리고 이 근원적 특징에 기반한 철학 이론 전개는 필연적으로 역설에 빠지게 된다는 근거를 제시하고자 했다. 세계철학사의 효시라고 본다.

제2부에서는 20세기 이전 서양철학의 이론적 논의와 이론 전개에서 어떤 역설이 어떻게 발생하는가를 가장 중추적이며, 대표적인 이론 전개를 선택해서 정리했다. 이를 통해 유럽철학 이론 전개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지렛대를 제공했다.

제3부에서는 20세기에 재래철학의 오류, 한계 등을 극복하려는 새로운 이론들이 대두했으나, 서양철학의 근원적인 한계(필연적인 역설 발생)를 파악할 수 없는 입지조건에서는 스스로 역설에 봉착한다는 숙명성을 밝히려 했다. 이를 통해 거대한 체계 또는 난삽한 이론 전개의 서양철학에 대한 외경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제4부에서는 이성과 반이성의 갈등을 감동적으로 실감 있게 전개한 유럽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을 역설 양상이라는 지렛대로 고찰하게 되면 이 작품들의 진수를 이해할 것이다.

2022년 2월 24일에 시작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 유럽, 동아시아를 망라한 세계적 경제위기, 여기에 중국과 대만 간의 긴장과 한반도에서 남북 충돌의 고조까지 얽혀 지금 세계는 원자 대전을 예견하는 ‘아마겟돈 최후’를 회자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이분법적 서양철학, 이에 기반한 세계의 학문, 정치, 경제와 문화의 역설 현상과 무관하다 할 수 없다. 이제 이 역설의 근거를 밝힌 데 근거해서 그 해결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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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창작’ 번역, 제대로 된 사회적 평가는 언제쯤

[6411의 목소리] ‘제2의 창작’ 번역, 제대로 된 사회적 평가는 언제쯤

[6411의 목소리] ‘제2의 창작’ 번역, 제대로 된 사회적 평가는 언제쯤
입력2023.02.01. 

번역가의 오류는 눈에 도드라진다. 잘 안 읽히는 번역서를 만나 독서에 몰두할 수 없으면 번역가는 저절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런가 하면 번역가의 노고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 원작에 충실하면서 매끄럽게 읽히는 문장이 완성되면 번역자는 홀로 흡족해할 뿐, 그 문장이 잘 읽힐수록 독자는 후딱 읽고 지나갈 것이다. 독자가 독서에 몰입할수록 번역가는 잊힌다.


백선희 | 프랑스어 번역가

나는 번역가다. 헤아려보니 번역가로 살아온 세월이 25년쯤 된다. 책에 따라 다르지만 한해에 대여섯권쯤 계약한다. 이른 새벽부터 작업하는 편이고, 거의 온종일 일한다. 이따금 하루 몇시간씩 일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감이 임박하면 12시간 이상 일할 때도 있고, 네다섯시간 일할 때도 있어 평균내기가 어렵다. 그저 눈 떠서 잠들기 전까지 번역하는데, 밥 먹고 산책하고 사람 만나는 일이 사이에 끼어들 뿐이다.

번역가는 프리랜서로 저마다 출판사와 개별 계약을 체결하기에 번역가의 노동조건을 통틀어 말하긴 힘들지만, 어쨌든 온종일 강도 높게 일하지 않고 오롯이 번역가로 먹고살기 어렵다는 건 사실이다. 작업량 많은 번역가 몇이 만난 적이 있는데, 모두 거의 온종일 책상에 붙어 지낸다고 입 모아 말했다.

한권의 번역서가 출간되기까지 번역가는 같은 책을 최소한 세번은 읽는다. 때로는 네번, 다섯번까지 읽기도 한다. 그것도 해부하듯이 꼼꼼히 읽어야 한다. 텍스트를 이루는 낱말과 문장과 단락을 쪼개어도 읽고, 빈 행간도 읽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손에 메스나 현미경을 들고 작업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텍스트를 해체하듯 읽고 나면, 저자의 원래 작품에 최대한 가깝게 다른 언어로 써야 한다. 원작을 구성하는 문장 하나하나의 의미를 옮기는 건 물론이고, 작가 고유의 문체도 살려야 하고, 원작이 지닌 ‘자연스러움’까지 재현해내야 한다.

텍스트라는 구조물을 해체해 언어를 바꿔 원작과 가장 닮도록 재현하는 것, 이것이 번역가의 일이다. 그러자면 텍스트의 구조를 세세히 파악해 망가뜨리지 않고 잘 해체해야 하고, 잘 재현하려면 두 언어와 문화의 차이도 잘 알고 저자의 논리를 꼼꼼히 좇아야 한다.

그래서 번역가는 새 작품을 작업할 때마다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저자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려고 애쓴다. 저자와 잘 내통해야 좋은 번역본이 나온다. 번역해야 할 저자의 주장에 도무지 동의할 수 없을 때조차 번역자는 자아를 버리고 저자에 빙의해야 한다. 동의하지 않는 마음으로 번역하면 어휘 선택에서 미묘한 삐딱함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번역가의 오류는 눈에 도드라진다. 잘 안 읽히는 번역서를 만나 독서에 몰두할 수 없으면 번역가는 저절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런가 하면 번역가의 노고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저자가 수식어를 잔뜩 달아 길게 써놓은 한 문장을 번역할 때 번역자는 그 문장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매끈하게 재구성하기 위해 레고 조각 맞추듯이 말을 골라 이리저리 끼워 맞춰보고 다듬느라 오래도록 공을 들인다. 그러다가 원작에 충실하면서 매끄럽게 읽히는 문장이 완성되면 번역자는 홀로 흡족해할 뿐, 그 문장이 잘 읽힐수록 독자는 후딱 읽고 지나갈 것이다. 독자가 독서에 몰입할수록 번역가는 잊힌다.

번역가는 잊혀야 사는 존재다. 적어도 독서의 순간에는 그렇다. 독서가 끝난 뒤 간혹, 번역서인데 왜 이렇게 잘 읽혔을까, 하고 문득 번역가의 존재를 떠올리는 경우도 있긴 하다. 혹은 언어를 알지 못해서 읽지 못하던 책이 번역됐을 때 번역가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독자도 간혹 있다. 며칠 전 내게 낯선 독자가 메일을 한통 보내왔다. “<폴 발레리의 문장들>을 매우 기쁘게 읽었습니다. 번역 문장이 수려해서 놀랍고 또한 기뻤습니다.” 번역작업 덕에 책을 읽게 돼 기뻐하는 이런 독자들이 번역가를 나아가게 하는 가장 큰 힘이다.

그런데 번역가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의 평가는 여전히 야박하다. 몇해 전, 월세방을 구해야 할 처지에 놓인 어느 여성 시인이 홍보대사가 되겠다며 호텔 방을 1년간 쓰게 해달라고 요청한 일로 사회가 떠들썩했던 적이 있다. 그때 어느 평론가가 그 시인을 옹호하며 한 말이 기억난다.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할 훌륭한 시인에게 ‘출판사 번역일이나 시키고, 심지어 곰인형 눈알 붙이기 같은 수준의 막노동일 같은’ 걸 시켜서야 되겠느냐는 취지의 말이었다.

번역일에 붙은 조사 ‘이나’에는 번역을 아무나 할 수 있는 하찮은 노동쯤으로 치부하는 시각이 담겨 있다. 혹은 흔히들 번역가를 작가보다 못한 존재쯤으로도 생각해서, 거의 반평생을 번역가로 사는 내게 이따금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번역은 그만하고, 책을 쓰라”고. 이런 말에도 번역가를 용이 못 된 이무기쯤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실려 있다. 번역가는 무엇이 채 못된 존재도 아니고, 번역은 무엇이 되기 위한 수단도 아니다. 번역가는 번역가다

오강남 - 무아無我를 중심으로 > 월간고경

무아無我를 중심으로 > 월간고경 | 백련불교문화재단

[심층종교와 불교의 미래]

무아無我를 중심으로
 
오강남 / 2023 년 2 월 

지난 호에서 모든 종교에는 표층이 있고 심층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표층 종교와 심층 종교의 차이점 몇 가지를 예거했습니다. 차이점의 첫째는 표층 종교는 탐진치로 찌든 지금의 이기적인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종교인 반면 심층적 종교는 지금의 내가 본래적인 내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려는 종교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불교와의 관계에서 이 문제를 좀 자세하게 논의해 보고자 합니다.

무아사상의 보편성

지금의 이기적인 자기를 최고의 가치로 떠받들면 희망이 없다고 하는 가르침은 사실 거의 모든 종교의 심층에 깔려 있는 기본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비우는 것, 자기를 없애는 것, 자기에게서 해방되는 것, 자기를 잊는 것, 자기를 부정하는 것 등으로 표현되는 “자아로부터의 해방”이 종교적 삶의 기본 태도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의 경우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을 향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진다고 하는 것은 이기적인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뜻입니다. 중세의 많은 그리스도인 사상가들은 종교적 목표가 ‘신화(deification)’ 곧 ‘신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신이 된다고 해서 교만이나 신성 모독의 극치라고 여기기 쉬우나 여기서 신이 된다고 하는 것은 내가 없어진다는 것, 나의 모든 것은 모두 신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진 1. 노자老子.

도가道家의 노자老子도 『도덕경』 제7장에, “하늘과 땅은 영원한데 하늘과 땅이 영원한 까닭은 자기 스스로를 위해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인도 마찬가지. 자기를 앞세우지 않기에 앞서게 되고, 자기를 버리기에 자기를 보존합니다.”고 했습니다. 같은 도가 사상가 장자莊子도 ‘오상아吾喪我’라고 하여 ‘나를 여읨’ 곧 지금의 나와 사별하는 것을 수행의 이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유교의 경우에도 공자孔子님은 나이 70이 되었을 때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라고 하여 “마음이 가는 대로 해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나’라고 하는 것이 없어진 상태에서나 가능한 경지입니다.

신유학에서는 만유일체萬有一體, 혼연동체渾然同體를 주장하는데, 개체로서의 나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고 만물과 하나된 나를 상정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유교에서 전반적으로 말하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자세를 취하라고 하는 것도 결국 지금의 나에게서 해방되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진 2. 공자孔子.

그러나 지금의 ‘자기’란 정말로 실재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 꾸며놓은 허구요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가장 힘있게, 체계적으로 설파하는 종교는 불교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성불하시고 녹야원으로 가셔서 다섯 수도승에게 처음으로 가르치신 것이 사제四諦, 팔정도八正道와 무아無我의 가르침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無我(anātman)

그러면 부처님은 왜 처음의 가르침으로 이런 무아의 가르침을 가르친 것일까요? 부처님 당시 힌두교에서는 영원히 변치 않는 실체로서의 나我(atman)를 최고의 실재인 브라흐만(梵, Brahman)과 동일시하는 ‘범아일여梵我一如’를 가장 중요한 가르침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표층 종교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의 나, 이 썩어질 나, 현실적인 나, 이기적인 나(self, ego)를 가장 중시하고 이를 떠받드는 우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이와 같은 ‘나’, ‘아트만’을 불변의 영원한 실체로 여기는 오해로 인해 여러 가지 부정적인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보고, 이런 자아라는 망상을 타파하기 위해 ‘무아無我’, 내지 ‘비아非我’를 가르친 것입니다. 이런 무아의 가르침에는 두 가지 이론적 근거가 있습니다.


사진 3. 초전법륜상. 법륜에 손을 얹어 첫 설법을 하는 부처님(간다라, 2세기, 미국 트로박물관). 사진: 유근자.

첫째는 윤리적 근거입니다. 이런 피상적인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종교, 일상적인 나를 영구불변의 실재로 보고 떠받드는 종교는 집착, 욕심, 증오, 교만, 이기주의 등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 보았습니다. ‘나’라는 생각, 나를 떠받들려고 애쓰는 것이 결국 괴로움으로 이끄는 근본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일상의 사소한 분쟁에서부터 국가 간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작용은 바로 나에 대한 오해와 집착,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기주의적 사고라고 본 것입니다. 부처님은 다섯 수도승에게 “[지금의 나에 대해] 염증을 느껴야 거기서 물러설 수 있고, 물러서야 참으로 자유스러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무아의 가르침은 윤리적 ‘요청(postulate)’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논리적 근거입니다. 논리적 근거의 첫째는 오온五蘊입니다. 오온이란 ‘나’라고 하는 것은 영원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라는 다섯 가지 요인의 일시적인 가합假合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마치 마차가 실제로는 하나의 독립적 실체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결국 판자, 바퀴살, 심보, 밧줄 등으로 이루어진 결합체에 붙여진 하나의 이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아가 그 자체로 독립적 실체일 수 없다는 논리적 근거 둘째는 불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연기緣起’ 사상입니다. 연기란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다.”는 기본 원칙으로서, 세상의 모든 사물은 예외 없이 다른 무엇에 의해 생겨난다는 가르침입니다. 모두가 상호의존, 상호연관의 관계에서 생겨나고 존재할 뿐 독자적으로 일어나거나 존재하는 실체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독립적 실체로서의 ‘나’는 성립할 여지가 없어집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자아란 이처럼 실체가 없기에 거기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우리는 그만큼 자유스러워지고, 세상도 그만큼 더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연기 사상은 자아가 궁극적으로 허상이라는 것을 형이상학적 이론으로 뒷받침해준 셈입니다.

불교에서는 개인의 자아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물도 그 자체로는 독립적 실체가 아니라고 하는 것까지 이야기합니다. 무아를 영어로 ‘noꠓself(자아 없음)’이라고만 번역하지 않고 ‘no-substance(실체 없음)’이라고 번역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물이 그 자체로 궁극적 실체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하는데, 
  • 이것은 모든 것이 덧없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 모두가 괴로움이라는 일체개고一切皆苦와 함께 
  • 전통적으로 불교의 핵심 사상이라고 하는 삼특상三特相, 곧 모든 사물이 생래적으로 지니고 있는 ‘세 가지 공통적 모습’이라 봅니다.

무아사상의 난점

무아의 가르침을 논리적 귀결이라 볼 수 있지만, 엄격히 따져 보면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업(karma)’의 원리대로라면 내가 지금 한 행동에 대해서 나중 내가 책임을 진다는 이야기인데,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나’가 없다면 내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은 누구일까? 그뿐 아니라 ‘나’가 없다면 내가 행동한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누구일까? 하는 문제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문제는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나’를 상정해도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무아 같은 가르침이 이론적으로 일관성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화급한 문제가 아닙니다. 부처님이 했다는 독화살을 맞은 젊은이의 비유에서 이런 생각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어느 청년이 독화살을 맞았는데, 사람들이 달려와 독화살을 빼려고 하자, 그 청년은 독화살을 빼기 전에 독화살과 그것을 쏜 사람 등에 대한 정보를 먼저 알아야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아라는 허상에 사로잡혀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그런 허상을 깨는 것이 급선무이지, 그것이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는가 없는가 따져 묻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부처님은 사변이나 이론을 위한 이론을 경계했습니다. 어느 제자가 세상이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하는 등의 14가지 질문을 했을 때 침묵했습니다. 이른바 무기無記입니다.

나가면서

어찌 보면 이렇게 자기를 부정하는 것, 자기를 잊는 것, 자기와 사별하는 것이 ‘희생의 길’, ‘고난의 길’ 심지어 ‘바보의 길’이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의 길에서 이런 심층에 이른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묶고 있는 목줄에서 벗어나는 자유와 해방의 길이요 창조와 발견, 자각과 성장, 평화와 기쁨의 길, 더할 수 없이 아름답고 보람된 길이라 증언합니다. 이제 우리도 불교를 나의 이기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비는 수단으로만 여기는 대신, 이렇게 나를 비움으로 얻을 수 있는 청복을 약속하는 심층 종교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