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광주사람들
“자 그럼 다음 수상자인 명창 정준찬 선생님을 모시겠습니다.”
명창이 무대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으면서 겸양의 한 마디를 던진다.
“뭐 한 것두 없는디.”
“한 게 없다구요? 그럼 여기서라도 함 해보씨오!”
“아 관둘라요, 그냥 상이나 주쇼.”
“그냥은 못 주지.”
사회자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이 산, 저 산~” 하면서 소리를 친다.
사람들은 박장대소하면서도 가락에 맞춰 추임새를 놓는다.
구성진 소리가 좌중을 압도하자 모두들 신명나게 함께 노닌다.
얼마나 열심히 부르고 화답하는지 그 자리가 수상식 자리인줄도 까먹을 정도.
소리가 끝나자 사회자가 명창더러 이제 내려가라고 한다.
아마도 수상 후 뒷풀이로 착각한 모양이다.
그러자 명창이 어이없는 듯 소리친다.
“그래도 상은 줘야할 것 아니여?”
오늘 광주에서 <역사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주최로 신년하례 겸 공로자 수상식이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몇 년 만에 여는 것이라 많은 회원들이 모였다.
첫 번째 수상자는 1973년 유럽거점간첩단 사건 용의자인 서울법대 최종길 교수가 수사도중 죽은 뒤, 30년 동안 귀국하지 못했던 김성수(88세) 독일문화원 원장.
두 번째 수상자는 얼마 전 윤석열 정부가 국민훈장 수여를 연기하여 화제가 된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95세). 그 뒤로 광주의 민중화가 이상호 화백과 주홍 화백에게도 상이 주어졌다. 양금덕 할머니는 95세의 나이에도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내 생애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상이란 걸 받기는 처음이라며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모두들 할머니 이름을 부르며 함께 기뻐해주었다. 일본의 눈치를 보느라 이미 예정된 서훈조차 외면해버린 강제징용 피해자 할머니의 서운함이 어느 정도 가시는 듯 했다.
이 수상식은 낮에 <광주 518기록관>에서 열린 김성수 박사의 저서 <서양철학의 역설> 출판기념회에 이은 뒷풀이 성격의 행사였다. 나는 비슷한 유학생간첩단 사건의 피해자로서 축하와 위로의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을 받아 왔다. 518기록관 강당에 들어서자 장내를 가득 메운 인파를 보고 깜짝 놀랐다. 50년만에 찾은 고향(김박사님은 전남 화순 출신)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환영해 준 것에 김박사님도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다. 멀리 이국땅에서 반세기 넘게 알아주지도 않는 통일운동을 묵묵히 해 오신 것에 대한 격한 환대의 자리였다. 광주가 아니고 대한민국 어느 도시에서 이런 환대의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정말 대단한 광주사람들이다.
놀랍게도 김박사님은 독일에서 ‘동학’을 주제로 철학박사를 취득하고 <동경대전>을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동경대전>의 최초의 외국어 번역이 아닌가 한다. 이번에 발간한 책도 그런 연구의 결실이다. 평생의 연구를 통해 서양철학으로는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는 나름의 결론을 가지고 강호제현의 평가를 기다린다고 당부하신다. 서구의 지배가 막판을 향해가는 이 시점에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