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몸-마음, 젠더, 생태, 평화 Scapbook

Spirituality, Mind-Body, Gender, Ecology, Ageing, Peace, Scrapbook (in English and Korean)

2022/05/23

유달영 [새 역사를 위하여] 0.서문

새 역사를 위하여 (서문) - 유달영 저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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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1.덴마아크로의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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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망의 바닥에서

1)덴마아크의 국토와 자연

2)전락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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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흥의 거화(炬火)

1)갈구하는 광명

2)E.M 달가스

3)N.F.S 그루트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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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광야는 다시 옥야(沃野)로

1)구호에 맞추어서

2)자연의 분노

3)문이 열리다.

4)제2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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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히이드의 개척자들

1)극(劇)같은 조림사

2)신앙의 등화(燈火), 과학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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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협동사업의 번영

1)협동조합의 발전경로

2)각종의 협동조합

3)대표적 협동조합의 실황

A.협동낙농조합

B.달걀수출조합

4)덴마아크 협동조합의 특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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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현명한 농지정책

1)인도적인 각성

2)소농창설운동

3)찬탄할 성과

4)자신을 돌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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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건전한 사회생활

1)농촌은 즐거운 곳

2)오락의 삼각대

3)농촌의 파일로트(嚮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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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구국의 원동력인 교육

1)위대한 교육의 개혁자

2)새 교육의 선봉 크리스텐 콜

3)국민 고등학교의 발전

4)덴마아크의 교사

A.전통적인 교사형

B.엄격한 교사양성

C.유례없는 대우

5)덴마아크의 교육제도

6)국민고등학교의 운영

7)교장의 강연

8)기숙사 생활

9)단기강습,동창회,하이스쿨 홈

10)유명한 국민고등학교들

A.푸레데릭스 븕

B.아스코보 국민고등학교

C.빨킬테 국민고등학교

D.하슬렙 국민고등학교

11)농학교

(一)농업과학의 원천

(二)유명한 농학교들

A.링그비 농학교

B.다람농학교

C.켈하프 농학교

(三)농촌 가정학교

12)덴마아크의 교육을 살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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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덴마아크 교육의 빛은 다시 외국에서

1)스웨덴의 국민학교

2)노르웨이의 국민고등학교

3)핀란드의 국민 고등학교

4)영,미,독,일 그밖의 국민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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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조국의 구원을 교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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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조국을 바라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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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역사를 위하여 (서문) - 유달영 저

joseph

2019. 2. 5. 11:12



단기 4292년 4판발행 책 표지


새 역사를 위하여(서문) - 유달영 저



" 이글은 오래전에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상과 의식에 큰 영향을 끼쳤던 고 유달영 박사의 덴마크 기행문입니다. 이 글을 통하여 덴마크를 저주와 패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진 정신운동, 신앙운동을 소개하여 한국전란 후의 황폐한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길을 제시했다는데 이 책의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이책은 단순한 기행문이나 소개글이 아니고 당시 6-25 전쟁후 한국 사회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덴마아크의 국난극복의 모델을 소개하면서 보여주는 저자의,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는 우국충정의 사상과 철학이 함축되어 있는 것에 이책의 참다운 가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현재 한국사회는 그 당시와 비교해서 물질적으로 풍요한 사회가 되었지만 여전히 사상과 의식의 선진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기에 국가 사회 전분야에서 파행적인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는 오늘의 한국사회에 대하여 이책에서 보내는 멧세지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초판이 출간되지 수십년, 그 후에 재판이 여러번 되었지만 현재 이책은 시중에서는 구할 수가 없고 도서관에서만 볼수가 있습니다. 전부터 이글 중에서 중요한 것을 일부나마 소개하고 싶었으나 타자 치는 일이 숙련되지 못하여 미루고 있었습니다. 이제 스캔이나 다른 여러가지 방법을 통하여 중요한 부분을 올리고자 합니다.



저작권 문제도 있고 하여 일부분만 올리고자 합니다. 저작권 소유자가 저작권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면 이에 관련된 글들은 내리겠습니다. 저작권 문제로 문제 제기를 하실 분은 본 문 댓글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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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판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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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된지 벌써 열 네해 째 접어들었다. 하늘에는 인공위성들이 난무하고 세계는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기 위하여 무서운 진통을 계속하고 있다. 크고 작은 나라들이 각각 힘과 지혜와 정성을 다하여 전진하고 있다. 근래에 신문에 빈번히 보도되는 외국 기행문둘은 모두 예찬으로 가득하다.



패전국 독일도 나일 강가에 이십세기의 기적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패전국 일본의 약진상도 부정할 길이 없지 않은가, 대륙을 송두리채 잃어버린 자유중국도 대만에 있어서 눈부신 전진을 하고 잇음은 문필인의 감탄사로 충만한 보도문에 의하여 새로운 자극을 우리에게 주고 있지 않은가,



반면에 세계에서 진보가 가장 지지하고 외국 여행자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또한 부정할 도리가 없다. 쓰레기 통에 장미가 피기 어렵듯이 한국에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기는 어렵다는 둥, 또는 한국은 도둑놈의 소굴이라는 둥,그 밖에 우리의 가슴을 에이는 듯한 풍자와 욕설이 우리나라에 와서 피를 흘린 우방국들에 의하여 자기 나라 국민들에게 보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방 제국들에 보도되는 이 욕설들이 우리 듣기에 냉정하고 무자비함을 분개하기에 앞서서 우리 자신을 반성해 봄이 현명할 것이다.



국회의 혼란상을 보라, 이것이 과연 살길을 갈망하는 이 민중의 진정이 그대로 표현된 것인가 정치의 무능함에 변명할 길이 있는가, 군의 기강은 이것으로 만족한가, 사회의 부패상은 또한 어떠한가, 어느 날의 신문이라도 좋으니 펼쳐놓고 광고란 까지 살펴 보라. 스스로 자기를 변명하기에만 급급한 자가 있다면 세계적인 견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는 실로 무지 몽매한 자이다.



한 조각 민족적 양심이 있다면 우리의 현실의 각 방면의 부패상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 원인을 예리하게 검토하고 진지하게 전진할 길을 발견하여 실천에 옮기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만일 우리에게 부당한 욕설을 한 이가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그에 해당하는 심판을 받게될 것이다. 역사의 심판은 언제나 공평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우리의 참담한 꼴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해방후 우리 자신들이 뿌려 놓은 씨가 정직하게 무서운 세력으로 싹 터 자라나고 있는 것 뿐이오, 그 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학교 교육은 있는지 몰라도 국민교육은 없다. 협동 조합법은 있어도 참 협동 정신은 없다. 좋다는 학교들일 수록 소위 영수학관이오 또 간판의 발행소다. 협동조합도 정치 브로카의 이용물이 되어 신음하고 있음을 부정할 길이 없다.산업은 부진하고 마의 38선은 요지부동이며 통일의 앞길도 그대로 아득하다.



저자는 1956년 봄에 미국의 미네소다 대학에 교환 교수로 가 있다가 나를 아끼는 여러 동지들의 두터운 우정으로 유럽의 각국을 시찰하고 특히 독일, 네델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랜드, 스위스 등 약소국가들의 건전하게 발전하는 모습과 독일의 약진상을 목도하게 되었다. 이에 의하여 피난 중에 집필한 이 저서에 담긴 나의 이념에 더욱 굳은 신념을 갖게 되었다.우리의 새 역사를 위하여 우리가 나갈 길에 대한 소신에 과오가 없음을 스스로 자인하게 되었다.



우리가 강대국가에만 눈이 팔려 허둥대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인 것을 알았다. 타국에 대하여 자기 세력을 부식하고자하는 티끌만한 야심도 없는 약소국가들이야 말로 인류의 앞을 달리는 평화와 번영의 참피온들인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20 여개국을 거쳐오는 동안에 우리의 현실의 참담함을 더 분명히 발견하였고 우리의 살길이 확실히 있는 것도 믿게 된 것이다.



누구든지 노르웨이와 스웨덴과 또 핀랜드를 여행해보라. 이것들은 그대로 다 제 2의 덴마크들임을 발견 할 것이다.덴마크를 지옥의 황무지에서 낙원 꽃 동산으로 이룩한 역사의 원리는 어느 지역에서도 같은 같은 구실을 할 수있는 원리인 것이 분명하다.



나는 여러 곳의 독자들로 부터 신념과 정열에 넘치는 편지를 받고 있다. 지지하기는 하나 구국의 원리를 애국의 정열들이 전국 각지에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운명은 약한 자에게는 더욱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더욱 약하니라" 고 한 철인 세네카의 말은 천고의 금언이다. 우리가 사대사상과 노예 근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우리의 이상과 우리의 성실과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실천력을 강화할 때에만 우리를 압박하는 검은 운명은 비로서 약해질 것이다.

이제 더욱 평이한 글로 더욱 상세하고 간절한 뜻을 엮어 이 저서를 전면적으로 다시 쓰고자 했었으나 그 중심적인 이념에 조그만 변동도 없으며 또 지금 나의 집필 중인 스칸디나비아 기행이 이를 보충하는 구실을 할수 있을 것으로 믿고 나의 수집한 문헌에서, 내 스스로 촬영한 사진들 중에서 덴마크를 이해하는데 요긴하고 귀중한 사진들을 뽑아 엮어서 그대로 제 삼판을 보내게 되었다.



젊은 동지들아! 부디 "새 역사의 선구자"의 영광을 쟁취하라. 도깨비들의 광난(狂亂)은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밝은 아침 해가 동녘 하늘에 우리들에 의하여 맞이 될 때에 이런 것들은 봄 눈처럼 힘을 못쓰고 쓸어질 것이다. 어느 곳에 가 보아도 내 나라 하늘 같은 하늘은 없더라, 내 나라 국토 같은 산천은 없더라, 우리 사람들도 과이 남만 못지 않더라 여기서 우리가 잘 살지 못하고 보람있는 역사를 엮어내지 못하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젊은 동지들아! 우리들의 길이 험할 수록 용기를 내자,역사는 앞선 이의 역사이며 길이 험한 것은 우리가 더욱 앞선 증거이다.



앞만을 향해 나가자, 우리에게 부여된 시간은 길지 않다. 앞을 달리는 자가 뒤를 돌아봄은 어리석은 일이다. 예수도 쟁기를 쥔 자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말씀했다. 역사를 갈아나가는 쟁기를 쥔 용사들아, 오직 앞으로만 나아가지, 우리가 지성과 용기로 우리의 역사를 억척스러이 갈아 갈때에 이것은 또한 인류의 역사를 갈아나가는 결과가 될 것이다.



민족 구원의 뜻을 품은 젊은 생명들 위에 길이 영광 있으라고 빈다.



1958 년 1월

쓴 이





재판을 보내며



1.4 철수 때에 대구 피난 중에서 견딜수 없는 심정으로 탈고한 이 소저(所著)는, 처참한 탁류속에서 유동(流動)하는 겨레에게 우리의 지향할 길을 지시하자는 저자의 한 조각 미성(黴誠)의 표시였다. 내용의 체계를 생각할 여가도 없었고, 독자들의 찬사를 기대하는 마음의 여유는 더구나 잇을수 없었다. 오직 "여기에 살 길이 있지 않느냐" 라고 외치는 단순한 호소였다.



그런데 이 미비(未備)한 저서에 대하여 독자들로 부터의 반향(反響)이 짧은 기간에 이처럼 큼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아껴주는 선배와 친구들로 부터는 물론, 각처의 학생과 청년들과 농부와 교사, 목사들로 부터, 또는 군인, 의사, 기자, 상인, 회사원, 공무원, 경관들 또는 요양원에서 신음하는 환자들로 부터 격려와 감사의 편지를 받았다.

어느 농 촌에서는 이 소저(小著)가 집집에 윤독(輪讀)되고 있으며 어느 몇몇 학교에서는 과외 교재로 사용된다고 도 전해진다. 농촌 성인학교가 설립된 곳도 있고, 애향가의 노래 소리가 끊이지않는 마을도 있으며, 교육의 노래가 아침마다 들려오는 학교도 있다. 이런 것들은 신문이나 잡지에 보도되는 사실들이 아니지마는 봄철을 바라고 땅속에서 움직이는 이나라 새 역사의 튼튼한 뿌리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이다.



이로써 나는 내 신념과 호소가 헛되지 않음을 더욱 굳게 믿게 된 것이다. 태고연(太古然)한 덴마크의 히이드 황야처럼 느껴지는 우리의 농촌은 결코 맥박이 끊어진 시체가 아니다. 정상배(政商輩)등의 교활한 나팔로서는 농촌의 계몽이 불가능함이 물론이지마는 진심(眞心)한 개척자의 고귀한 봉사와 희생에 의하여서는 급속(急速)히 눈을 떠서 힘차게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의 문명은 몇개의 큰 도시만을 위하여 피어나는 요괴로운 꽃과 같다.도시의 불평만을 막을 수 있으면 위정자(爲政者)들은 우선 안도하는 듯 하다.수많은 신문들도 모두 도시 중심이다. 모든 신경은 도시에만 집중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것은 건전한 징상(徵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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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한국은 농민의 참 각성과 발전이 없이는 엄정(嚴正)한 의미에서 일보도 전진하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모든 농민들이 덴마크의 농민처럼 스스로 생을 구가(謳歌)하는 날이 곧 이 나라가 제 자격을 찾는 날이요 공산주의에 대하여 참 승리를 거두는 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저의 재판을 보냄에 있어서 나는 뜨거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새 역사(歷史)의 개척자(開拓者)" 로서의 광영(光榮)이 현명한 젊은 용사들 위에 있으라고 축원(祝願)하여 마지 않는다.



1955.3.1 저자







머리말



뚜렷한 이상, 확연한 이념이 없는 인생을 무엇에 비겨 말하랴. 가이 없는 사막에 방향이 없이 헤매는 나그네 같다고나 하랴. 우리가 이 같은 인생에서 보람있는 한 생(生)을 바랄수 가 없음은 물론이다.

역사적 사명감이 없는 국가나 민족 또한 그러하다. 분명한 자아의 의식과 스스로 걷는 역사에 올바른 의식을 파악하지 못하고서는 광휘(光輝)있는 앞날을 향하여 전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상없는 인생과 사명없는 국가 민족을 위하여서는 무의미한 축생적(畜生的) 고통과 비참한 패망의 종말이 예비되어 저들을 기대리고 있다.

진리의 범주(範疇)안에는 결코 우연과 요행이 없는 것이다.

이 겨레의 걸어온 고난의 역사에 어느 것 하나 우연이 있었고 요행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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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은 반드시 결과를 낳고 결과는 다시 새 원인이 되어 역사를 비져온 것이며 또 비져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 이 거대한 역사의 바퀴속에 또 이 겨레의 흥망의 날에 스스로 이념의 확립이 없이 자아를 상실하여 취인(醉人)과 같이 거닌다면 심판은 사정이 없이 가혹하여 우리는 역사의 지층 속에 비애의 화석(化石)으로 묻혀 영원의 조소(嘲笑)꺼리가 되고 말 것이다.



이 무서운 혼란속에 우리는 먼저 자아를 찾자, 그리고 살길의 방향을 정하자,이것은 번영의 문을 향하여 걷는 가까운 정로(正路)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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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山村)에서 씨 뿌리는 농부들이나, 저들의 소박(素朴) 무지(無知)의 두 어깨위에도 저들 스스로의 의식(意識)의 여부에 관계없이 역사의 짐은 크고도 무겁게 지워져 있는 것이다.



오늘 이 민족 흥망의 분수령(分水嶺)의 날임은 부정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성의 중추(中樞)라는 도시를 바라보라. 내용없는 부화(浮華)가 날로 현란하여만 간다. 가랑잎 만큼한 신문들은 술광고와 저속한 영화 연극의 광고로 거의 점령되고 있다. 가냘프고 가벼워 풍선같은 이 지성(知性)들은 우리의 험로를 타개(打開)하기에는 너무도 약하다마는 나무가지에 울긋불긋한 조화(造花)를 이모리 많이 달아매어 놓아도 여기에는 생동(生動)할수 없는 저속(低俗) 경박(輕薄) 공허뿐이오 열매는 얻지 못할 것이다.



민족이나 국가가 망할래야 망할수 없는 길, 흥하지 않을래야 흥하지 않을 수 없는 길을 우리는 찾아내야 한다. 급박한 이 현실에서 비록 눈에 보이는 것이 지지하며 또 요원(遼遠)히 느끼어 질지라도 우리가 수목(樹木)의 성장을 위하여서는 흙을 거루고 뿌리를 뻗게하는 것이 건실한 근본의 방책이 될 것이다.



약한 민족이 고난 속에서도 망하지 못하며 흥할 수 밖에 없는 길을 우리는 이상국가의 하나인 덴마아크의 역사에서 찾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전고(前古)에 드문 역경속에서 먼저 교육으로 건실한 국민을 만들고 약한 힘을 모아 협동함으로 반드시 목적한 바를 달성해낸 농민의 나라 덴마아크의 모습은 우리에게 살길을 지시하는 신(神)의 계시(啓示)처럼 느껴진다.



만일 세계의 큰 파동(波動)이 있어 오늘의 낙원 덴마아크가 일조(一朝)에 파멸되는 일이 있다 치드라도 덴마아크는 인류사에 영원히 살아 약소국가의 찬란한 등대가 될 곳이다.



나는 저들이 역경을 극복하고 농민의 낙원(樂園)을 건설한 과정에서 영원에 통하는 원동력(原動力)을 찾아내어 내 조국 새 역사의 초석(礎石)의 하나로 묻고자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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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 소저(小著)는 오늘의 덴마크의 현상을 사실(寫實)하는 사진 같은 저술이 아닌 것이다. 오늘의 덴마크의 현황을 밝힘은 그리 곤난한 일이 아니다.

나의 겨누는 목표는 덴마크의 부흥사(復興史)에서 보람있는 인생과 영원한 민족 번영의 원동력을 파내어 농민과 학생과 교사와 우국(憂國)의 젊은 이들에게 밝히고자 하는데 있다.



새 역사의 선구자적 광영(光榮)이 젊은 제군(諸君)들위에 있으라고 기원하면서 이 소저를 내 조국의 농촌과 학원과 도시의 젊은 친구들에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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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년 동안 내가 그리워하는 덴마아크이나 저서로 세상에 내놓기는 아직 이른 줄로 자인(自認)한다. 그러나 전전 유랑(轉轉流浪)하는 6.25 이후의 피난 생활중에 견딜수 없는 없는 나의 비분(悲憤)과 열정이 미비한 집필을 주저치 않게 하였던 것이다.



끝으로 덴마크 시찰에서 돌아오셔서 신선한 문헌(文獻)과 교시를 아끼지 않으신 조백현(趙伯顯) 학장에게 감사를 들이며, 이울러 이책의 초고가 대구 피난중에 탈고(脫稿) 되든 날이 내 딸 옥신(玉信)이 5세 세상을 떠난 1952년 3월 1일이었음으로 나는 여기에 저와 함께 전쟁으로 말미암아 무참히 세상을 떠난 무수한 가여운 천진(天眞)들의 명복(冥福)을 합장(合掌)하여 빌며 이에 서(序)로 대신하여 둔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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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역사를 위하여 - 12.조국(祖國)을 바라보고
2019. 2. 5.

새역사를 위하여 - 11.조국(祖國)의 구원(救援)을 교육(敎育)으로
2019. 2. 5.

새 역사를 위하여 - 10.덴마아크 교육의 빛은 다시 국외에서
2019. 2. 5.

새 역사를 위하여 - 9.구국의 원동력인 교육-2.
2019. 2. 5.

새 역사를 위하여 - 9.구국의 원동력인 교육
2019. 2. 5.





새역사를 위하여 - 6.협동사업의 번영-1
2019. 2. 5.

새역사를 위하여 - 5.히이드의 개척자들
2019. 2. 5.

새역사를 위하여 - 4.광야는 옥야(沃野)로
2019. 2. 5.





새 역사를 위하여 - 1.덴마아크로의 志向
2019. 2. 5.


새 역사를 위하여 (서문) - 유달영 저
2019.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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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구국(救國)의 원동력인 교육









1.위대(偉大)한 교육(敎育)의 개혁자(改革者) 그룬트비히









나는 위에서 덴마아크의 경이적 부흥의 업적을 말할 때마다 그 원동력과 그 근저(根低)가 교육과 종교임을 누누히 암시하여 왔다. 세기적 불행의 대표국이던 덴마아크가 오늘 인류 최고 농업 문화 건설에 성공하였고 20 세기 복지 국가의 대표가 되었는데 그 원동력인 교육을 우리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검토해 불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해방 후에 현명함이 있었던들 덴마아크의 교육을 연구함에 있에서 이처럼 등한히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까지 모든 정신을 큰 나라에만 빼앗기고 있었다.




"참 진리는 언제나 착은 것 가운데서 찾아낼 수가 있다." 라고 하였는례 그 말은 우리에게 성실한 반성올 촉구한다.




덴마아크의 교육의 생명은 국민 고등 학교이다. 이 국민고등 학교의 학제는 이 나라의 특유한 것으로서 덴마아크 농민의 용광로이며 국민 문화의 모태(母胎)인 것이다. 우리는 국민 고둥 학교를 떠나서 인류 최고 농업 문화국 덴마아크의 오늘을 생각할 수가 없고, 또 그 혁혁한 부흥의 참모습을 파악할 수도 없다. 황무지를 옥토화한 것도,전례가 없는 협동사업의 성공도,고도의 국민 교양도 모두다 이 교육의 뿌리에서 움터서 자라난 줄기와 꽃과 열매인 것이다.









그련데,이 위대한 교육의 횃불을 높이 든 이는 누구인가? 그는 이미 위에서 말한 바 캄캄한 밤에 덴마아크의 갈바롤 인도해 준 그룬트비히 그 사람이다. 덴마아크의 교육을 혁신하고 세계 교육사에 이채인 국민 고등 학교롤 창도한 선각자가 곧 이 사람이다.









이 위대한 인물의 생애를 교육과 종교의 혁신의 면에서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그룬트비히는 1783 년 10월 6 일에 슐란드섬에서 신교 루터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천성이 정직한 사람으로 심히 가난한 생활을 하였다. 어머니는 가다리네 방이라는 분으로 남편을 도와서 살림살이의 안팎을 잘 다스리고 심지어 밭일까지 모두 맡아서 혼자서 처리해 갔었다.









그룬트비히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깊은 신앙의 품 안에서 자랐고 그의 아름다운 심정은 어머니의 노래로 북돋아진 것이다. 덴마아크의 위대한 조상들의 위업을 진심으로 사모함과 신을 경외하는 신앙이 얼마나 인생으로서 값있는 것인가를 부모에게서 배웠다.









어머니는 늘 어린 그룬트비히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이 목적이 없이 우유부단한 일생을 보내려면 차라리 죽옴올 택할 것이다."









그가 아홉 살 때에 라틴어 학교의 입학 준비를 위하여 남부 유틀란드의 츄레고라는 곳에 펠드 목사의 집에 가셔 6년동안이나 있게 되었다. 이 고장은 황무지와 소택이 많은 을씨년스러운 지대였다. 그러므로 막내동이로 자란 어린 그룬트비히는 낯설은 고장에서 농촌이란 곳이 얼마나 재미없고 쓸쓸한 곳인가를 깊이 느끼 었다. 이 쓸쓸한 농촌율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겠다고 하는 생각이 싹튼 것은 이 시절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룬트벼히는 15세 해 목적한 아르후스의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학교에서 3년을 공부하는 동안에 그 당시의 일반 풍조인 펀협한 학자형의 교사들에게 큰 고통을 받았다. 기계적이며,형식적인 교육에 아무런 감동도 받지 뭇하였을 뿐만 아니라 융화하기 어려운 적으로 생각하기에까지 이르렀었다.









그는 덴마아크의 교육이 얼마나 무용 무익 (無用無益)한 것인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었다. 그는 늘 이 시절율 회상하고 빵대신 돌을 머이는 학교 생활이라고 술회하였다. 무미건조한 아르후스 시대를 거쳐서 1800 년에 고펜하겐 대학에 좋은 성적으로 입학하였다. 여기서 괴테, 피히데, 쉘링과 같은 세기적인 인물들의 새 사상에 접촉할 수 있었고, 또 그들과 친교가 두터운 스테펜스 교수를 만나게 되었다. 이것이 그의 일생을 통하여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회가 되었었다.









영감이 넘쳐 흐르는 스테펜스 교수의 강의를 듣고 고동치는 가슴에 넓은 새 천지가 전개되는 감명을 받았다. 그는 철학,문학,역사 등에서 새 사상올 도입하였고 사랑하는 조국을 새로운 각도에서 옹시하게 되었다. 스테펜스 교수는 순결하고 정열척인 청년 그룬트비히로 하여금 후일 덴마아크 국민의 사상과 생활을 혁신하여 조국을 멸망에서 구원하고 오늘에 지상 낙원을 건설하게 한 도화선을 그의 가슴 속에 만들어 준 것이다.









산 인격에서 솟아나오는 생명의 말씀이 그대로 사라지지 않는 역사적 실례를 우리가 그룬트비히의 일생에서 다시 찾아볼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마국의 시인 롱펠로우 읊은 「화살과 노래」라는 시는 그것이 진리임을 우리로 하여금 더욱 확신케 한다.









화살과 노래









내가 창궁(蒼穹)을 향하여 화살올 쏘았다




그 화살은 너무도 빨리 날라서




내 시력(視力)은 따라갈 수가 없었다.




정녕히 따위로 돌아왔으련만




화살의 간 곳을 알 길이 없었다




내가 창궁을 바라고 노래를 불렀다




저 빠르고 예민히 흘러가는 노래를




뉘라서 따라가 잡을 수 있으랴




그 노래도 정녕히 따위로 돌아왔으련만




노래의 간 곳을 알 길이 없었다.




오랜오랜 훗날의 일이다.




싱싱한 상수리나무 큰 줄기에서




아직도 꺾이지 않은 그 화살을




아,나는 찾아낸 것이다




오랜오랜 훗날의 일이다




나는 친구들의 가슴에서




내가부른 노래 그대로를




아,아는 다시 찾아낸 것이다.









〈홍펠로우 지옴〉









그훈트비히는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였다. 이 시절에 그는 영국의 넬슨이 거느린 대함대가 위세 당당히 쿄펜하겐에 쳐들어와서 덴마아크 해군과 격전하는 처절한 광경을 목도(目睹)하였다.그는 조국의 해군이 용감하게 싸우는 것을 보고 크게 감격하였다. 1803년에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 사정이 어려워 집에 돌아가 형의 교회를 도와 주고 있었다. 1805년에 해군 대위 레드씨의 초빙으로 그 집 가정 교사가 되어 란켈랜드에 가 있었다.









쾌활한 젊은 주인 레드 대위는 늘 분주하게 몰아다니는 성격으로 가정을 돌보지 않아서 그 부인 콘스탄스는 언제나 우울하고 쓸쓸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룬트비히는 마음 속 깊이 동정함을 마지 않았다. 큰 저택에서 쓸쓸한 두 사람만이 지내가는 중에 그룬트비히는 콘스단스 부인의 그 청초하고 가련하고 아름다움에 점차로 정신을 빼앗기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뜨거운 연모의 포로가 되어 버렸다. 이 불의의 첫사랑으로 그는 주야로 번뇌의 생활을 계속하였다.그는 결국 양심의 가책에 견디다 못하여 코펜하겐으로 떠났다.









그는 이 아픈 감정을 억제하기 위하여 괴테와 세익스피어를 연구하는 한편 그것을 번역하여 잡지에 싣기 시작하였다. 북유럽 신화(神話)의 대저가 간행되어 그의 이름이 온유럽에 덜치게 된 것도 이 해였다. 일부 인사들은 그를 덴마아크의 최대의 시인이라고까지 찬양하게 되었다.




그는 청년들이 벗어나기 매우 어려운 연정(戀情)의 불 속에서 용감히 탈출했을 뿐더러 그 실패를 보람있게 잘 살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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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 3월 그는 아버지로부터 얼마동안 고향에 돌아와 늙은 자기를 도와달라는 간절한 편지를 받았다.




이제 사회에 널려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또 지명의 학자들과도 사귀게 되었으므로 적막한 고향에 돌아가 지낼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부모를 생각하는 효심이 강한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곧 귀향의 준비를 하였다. 그는 원래 목사가 되지 않으려고 결심하였다. 당시 의식은 재같은 냉냉한 교회와 위선이 가득한 교직자들에게 실망하였던 까닭이다. 그러나,아버지의 소원에 따라서 목사시험에도 응하였다. 그 해의 시험관은 대학의 교관이었다.









그는 시험설교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은 교회 안에셔 절멸(絶滅)하다." 라는 제목으로 생명이 없는 차다찬 교회와 거짓이 가득한 교권자들을 통렬하게 공박한 것이다. 교관은 그 담대하고 열정적이고 진리을 사랑하는 신념과 생명이 창일한 탁견(卓見)에 대하여 크게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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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룬트비히는 그 설교문을 인쇄하여 배포하였는데 이것은 목사와 장로들의 큰 노여움을 사게 되어 목사 면허를 주지 말라는 맹렬한 여론이 일어났다. 그룬트비히는 그 고루한 비난에 대하여 더욱 불만을 품게 되었다. 그 당시에 덴마아크는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에 본의 아니게 가담하게 되었으므로 영국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1807년에 영국의 대함대는 쿄펜하겐을 포격하여 덴마아크는 완전히 패배를 당하였고 함대를 송두리째 몰수당하는 형편이었다. 한펀 덴마아크 남부 홀스타인에 주둔하고 있던 2만 3천의 불군(佛軍)의 주둔비롤 전부 덴마아크에 부담시켰다.제정의 궁핍과 해외 무역의 두절과 노르웨이의 분리 등으로 1811년에 국립 은행은 파산하게 되고 지폐의 남발로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어 올라서 마치 제 1차 대천 후의 독일의 마르크 폭락이냐 우리 나라의 6·25후의 인플레와 같이 되었다.









그러므로, 중류 계급의 봉급 생활자들은 실로 극도의 생활고에 빠지게 되었다. 실연으로 받은 정신적 상처와 조국의 비운 등으로 인해 인생과 조국에 대하여 심각한 번민을 하고 있었다. 그 대에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특히 십자군의 유래와 결과에 대하여 큰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기독교의 신앙이 국민의 생활 속에 아름답게 숨어 있는 많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 었다. 그는 또 스노레의 덴마아크사(史)에서 용감하고 고 아름다운 인생의 시와 조상들의 생활에 충만하였던 신앙의 빛을 발견하고 큰 용기롤 얻었다 그는 이 역사로부터 귀납하여 자기 자신의 건전한 신앙을 세우게 되었고 성서를 갈(渴)한자와 같이 읽었다고 술회하였다. 성서의 일언 일구는 모두 그의 신앙의 순수롤 위한 싸움의 무기가 되어 도전의 준비를 하였다. 그는 사색과 초려(焦慮)로 극도의 쇠약에 빠져 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당분간 휴양할 수밖에 없었다.









그푼트비히는 목사 시험에 합격한 다음 해에야 겨우 목사의 면허를 받게 되었다. 건강을 회복한 그는 향리의 교회에서 소박한 농민들과 친구가 되어서 그들의 신앙이 순수하고 바르게 자라도록 진력하였다.




1813년에 아벼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 그는 쿄펜하겐으로 다시 나가서 예언자적 경고를 거듭하여 신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멘마아크는 오래지 않아서 멸망할 것이라고 외쳤다. 이 강연은 젊은 청년들에게 많은 반향율 일으켰다. 그는 다시「조국의 위기」라는 글올 써서 널리 대중울 경고했다. 1816년으로부터 1819년에 걸쳐서 그는 「단네베야케(덴마아크의 보루(保壘) 라는 잡지를 발간하여 시와 평론과 역사로서 덴마아크 국민의 가슴 속에 잠든 정신을 깨우치고자 노력하였다.









덴마아크에서 수선(水山)은이른 봄 부활제 때에 피기 때문에 부활꽃이 라고 불리 운다. 그러 나 일반적으로는 「촌놈의 꽃」이라고 천시하였다. 그룬트비히는 수선화에 붙이어서 예언자적 시를 읊어 덴마아크의 장래를 상징하였다. 긴 겨울 동안 눈과 서리에 죽지 않고 견디었다가 이른 봄에 가장 일찍 피는 것처럼,천대받는 농민이야말로 덴마아크가 맞이할 봄날에 가장 먼저 필 부활 꽃이라고 비유로 노래 하였다









오, 그리워라 수선화




마율의 가난한 접 풀에




깨끗이 핀 수선화




천대받아온 수선화




장미 보다도 더 귀하여라




조상의 무덤가에 피어나는 부활꽃




온갖 꽃 모두 시들었는데




회망의 이른 봄을, 기쁨의 한 해를




알리는 사연 네 이름 부활초









그는 비참한 현실에서 북 유럽의 빛나는 장래롤 확신하였다. 그것을 우리는 다음 시에서도 엿볼 수가 있다.









사나운 눈보라와 폭풍우




대지를 온통 휩쓸어도




우뚝히 셔리라 큰 바위로




북유럽 황금 시대롤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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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북 유럽의 역사를 알려 주고자 노력하였다. 모든 학교들이 쓸데없이 정력을 라틴어와 그리이스어 등에 쏟아넣을 해에 그는 순수한 덴마아크어의 교수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고 이의 실천을 주장하였다. 그는 역사 연구의 공로로 국왕으로 부터 장학금을 받았으므로 그는 약흔한지 7년만인 35세가 되어서 비로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로 마루어 보아도 그의 생활이 얼마나 빈곤 속에 악전 고투하였는가를 우리는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1822 년에 그는 코펜하겐의 구주 교회(救主敎會)의 목사로 임명되었다. 그의 설교는 예언자처럼 높고 권위가 있었으며 사도와 같이 열렬하여서 점차로 사람들이 그의 설교롤 듣고자 모였다. 그는 교회를 널리 개방하여.누구나 자유로 설교를 듣게 하였다. 그 당시에는 목회도 일정한 구역이 정해져서 많은 구속을 받았다.









국민들도 자기 들의 소속된 교구이외의 목사의 설교는 들을 수 없었으며,더구나 자유 집회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룬트비히는 그 규정을 깨뜨리고 교회를 개방하여 설교와 집회의 자유를 주장하였다.




그는 한갓 관습척인 교회의 의식 편중과 부당한 교권자의 횡포와 신앙의 자유 속박을 배격하고 오직 성서의 진리의 말씀만이 인생의 생활에 빚과 힘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1825년 6월, 신학 교수안 크라우센이 「구교와 신교의 교회 정책 및 교지(敎冒)와 의례」라는 8백 면의 큰 저서를 출판하였다. 이 청년 교수는 상당한 인기롤 얻고 있는 중견이었므로 그의 그릇된 주장이 많은 후진들에게 적지 않게 미칠 것을 염려하여 그룬트비히는 이틀 동안에 반박 논문(反駁論文)을 탈고하여 「교회로부터의 답장」이라는 소책자률 출판하였다. 이것은 덴마아크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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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와 교직자들은 크라우센의 주장에 가담하였고 일반 대중들은 그푼트비히의 자유 사상에 찬성하였다. 크라우센은 성서의 합리적, 신학적 해석을 주장하였고, 그룬트비히는 자유로운 신앙적 해석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기회로 반항적이며,개혁적인 그룬트비히를 미워하던 무리들이 일어 나서 1827년에 그는 교회에서 추방당하였고,적지 않은 벌금을 물었으며,그의 저술은 일일이 치안국의 검열과 허가를 얻도록 하였다. 이것은 그룬트비히에 대하여 가장 가흑한 구속이요,형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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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시 서재에 틀어박혀 역사 연구와 사색에 몰두하게 되었다. 역경에 처할수록 그의 지조와 주장은 더욱 굳어지고 확실하게 되었다. 뎀마아크의 살아날 길이 분명하건만 교육자들은 이 주장에 냉담하였고,성서의 가르침이 분명하건만 석상(石像)같은 교직자들의 심금은 울리지 않았다. 명예와 권력과 지위에 판계없는 소박한 민중만이 그에게 공명하였나 그들은 너무도 무지하였고 또 투쟁에 무력하였다.









직업종교가들이 교리와 신학적 해석만을 고집하는 것은 국민의 실생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였고, 오히려 역경올 비관하는 심정만을 불붙일 뿐이었다.




그룬트비히가 제도와 의식에 포로가 되어 화석같이 된 그 때의 교회가 신앙의 중심에서 멀리 이탈하였옴을 경고하고,한갓 형체를 지키는 형식주의롤 반대하며 열렬히 성서 중심의 자유 신앙을 부르짖은 것은 얼마냐 자유스려운 주장이며 당연한 주장이었던가. 그는 1827년부터 7년 동안이나 설교를 금지당하였다. 그의 위대한 넋이 낡은 오랜 껍질올 깨뜨리고 하늘을 자유로이 날으는 까닭에 교직자들은 그를 정통이 아닌 이단(異端)으로 규정하고 이 당돌한 위험 분자를 봉쇄해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위대한 자유의 혼은 그렇게 쉽게 감금당하지는 않았다. 그는 거리낌없이 국민에게 또 다시 자유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다량의 시문을 발표하는 한편,교육의 개혁 운동,농민의 민권 확장 운동 기타 각 방면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정당한 구국 정열은 붓과 혀롤 통하여 요원의 불처럼 퍼져나가 날로 수많은 공명자를 얻게 되었다. 교권자들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농민,직공,노동자들의 자유 신앙 운동이 일어나서 곳곳에서 자유 집회가 빈번히 개최되었다. 자유 신앙의 운동은 평신도들이 탄압을 무릅쓰고 맹렬히 싸우는고로 이것을 막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푼트비히는 사람의 생활을 무시하는 종교와 교리를 반대하였다. 그는 사람이 내세를 중히 여기는 동시에 또한 현세를 소훌히 보지 않아서 현재와 내세를 모두 건실히 여길 것이며 사랍의 영 (靈)과 육(肉)이 잘 조화되는 생활만이 정상의 신앙생활이라고 주장하였다. 곧 교리 해석에만 열중하고 실생활을 참되고 올바르게 발전시키고자 하지 않는 점을 강력하게 배격한 것이었다.









1839년에 국왕의 특지로 그룬트비히는 왈도 병원 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여기는 정부의 관할 구역 이외였으므로 자유신앙단을 만들어서 자유 신앙의 부활과 덴마아크 정신 고취(鼓吹)에 힘쓸 수가 있었다. 왕비 가타린 아마린은 그루트비히를 몹시 존경하는 분으로 항상 이 교회에 참석하여 설교를 듣고 음으로 양으로글르 돕기에 노력하였다. 이 후로 부터 자유 신앙단은 농촌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진리는 페닉스(不死鳥)의 넋과 같아서 그의 주장은 점점 끌 수 없는 불이 되어 전 국민의 지지를 얻게까지 되었다. 그리하여,결국 신앙의 자유가 국가적으로 법에 의하여 보장되기에 이르렀다. 1921년의 통계를 보연 루우터파의 자유신교인의 수는 322만 이상으로 98% 의 다수에 달하였다. 이신교는 결국 덴마아크의 국교가 되었고 후일에 중국과 인도에도 선교사롤 파견하여 복옴을 전파하기까지에 이르렀었다.









그룬트비히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당시의 교육계의 상황이었다. 그의 현명한 눈에는 교육계의 전반이 생명을 잃어 버린 "산 송장"으로 보였다. 덴마아크롤 구원할 유일의 희망인 모든 학원 안에는 약동하는 생명과 불타는 정열이 없었다.그의 가슴에는 교육의 본격적 요소인 인격의 불이 꺼져 있었다. 교사들은 월급을 위하여,학생들은 간판올 위하여 학교에 드나드는 것이었다. 이 공전 절후(空前絡後)의 난국을 어떻게 이러한 생명들이 개척해 나갈 수가 있을 것인가. 생명의 묘판(苗床)인 학원과 교회가 이렇게 무기력하여 낡은 껍질 속에 갇히어 잠자고만 있다면 결코 이 혈로(血路)를 열어갈 수는 없다고 그룬트비히는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룬트비히는 주야로 쉬지 않고 막대한 양의 글을 써서 국민을 깨우치고 격려하였다. 그는 정력을 기울여서 덴마아크의 예로부터의 위대한 민족성과 찬연한 과거를 국민에게 알리어 온갖 고난을 돌파할 용기와 신념을 기르고자 노력한 것이다. 그는 실로 3만 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쓴 것이다. 그는 문학 자체롤 목적으로 하여 글을 쓰기보다는 문학으로서 국민의 심금을 울려 정신적 각성을 일으키고자 한 것이다. 시만도 l천 4백여 종이며,현재 덴마아크에서 부르는 찬송가도 백여펀에 달한다. 그러므로,오늘날에 있어서도 그의 시와 노래는 덴마아크 국민의 가슴에 감격을 일으켜 애국심을 북돋아주고 있다. 그러나, 그룬트비히는 아무리 훌륭한 저술이라도 그것은 결국 「산 말씀」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 었다.









그러므로, 문필만으로는 덴마아크 국민의 가슴 속에 뜨거운 애국 정신을 불붙여 자라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고펜하겐에 덴에마아크 협회롤 조직하여 때때로 모여 강연회롤 개최하고 또 노래를 지어 민중과 함께 불렀다."산 말씀"의 운동은 점점 퍼져서 농민 계몽에 큰 효과롤 내기 시작하였다. 1년 동안에 천여 곳에 강연회가 열려 역사,과학,정치,경제,종교,문학 등올 연제로 「산 말씀」의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수많은 연사들은 모두 그룬트벼히의 주의(主義)아래 교육 받은 사람들이다. 이 강연회의 반향은 심히 커서 전 국민들의 여론을 좌우하게까지 이르렀다.









그는 참된 교육만이 덴마아크의 살아 나갈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 덴마아크의 청년들이 복지 사회롤 바라보고 이상의 날개롤 퍼덕 일 수 있게, 그들의 가슴에 「산생명」의 말씀을 붙어 넣어서 직접 인격적 상응(相應)이 될 수 있는 정신 교육만이 정의와 사랑으로 민족과 국가를 건져낼 수 있는 길이라고 확신하였다. 교육이야말로 덴마아크의 전 국민을 힘 있게 결합시켜서 새로운 건설의 튼튼한 초석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이 굳을수록 당시의 썩은 교육계를 바라보고 건딜수가 없었다. 그는 교육의 근본적 혁신의 시급함을 통철히 느끼게 된 것이었다.









그룬트비히는 당시의 학교를 평하여 "죽은 학교" ,"암흑의 학교"라고 통렬히 공격하였다. 반가족적이며,반민족척인 당시의 유행하던 사조(思潮)는 북 유럽의 정신적 보옥(寶玉)을 파괴하고 있으며 학원도 또한 완전히 이 사조에 지배되고 있었던 까닭이다. 고상한 윤리(倫理)와 애국 애족의 정신은 모두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것으로 비웃는 풍조가 지배적이었다. 더구나 덴마아크의 그 찬란하던 역사는 여지없이 정복되고 짓밟히어 최후의 기름진 영토인 흘스타인과 슬레스버히를 상실한 비운의 날에 자포 자기의 국민은 고귀한 인생의 목표도 민족과 가정에 대한 진정한 사랑도 거의 잃어 버리고 있었다.









국민에게 생의 가치와 역사적인 자기를 각성시키는 것이 국가 부흥의 열쇠이며 그 밖의 모든 문제는 이 근본 문제의 확립이 된 후라야 바로소 풀리게 되는 것이라고 믿고 이 확고한 목적을 위하여 우선 종래의 교육을 근본저으로 혁신하고자 결심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혁신의 열쇠는 진리와 민족을 뜨겁게 사랑하는 교사의 양성과 그들의 헌신적인 활동에 있다고 확신하였다. 이는 참으로 그룬트비히의 탁월한 착안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지식있는 이기주의를 만드는 교육은 나라와 민족과 자신까지도 파멸의 심연(深淵으로 집어 넣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식있는 이기주의와 황금 만능주의롤 강하게 배격한다. 우리는 민족 자신 뿐만 아니라 실로 인류의 자유를 등에 지고 이 전대 미문(前代末聞)의 난국을 걸어가고 있는 현금에 처하여 우리의 교육계를 철저하게 검토하고 나아갈 진로롤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룬트비히는 부르짖었다.




"먼저 참된 덴마아크 사람이 되라. 그 다음에 크리스챤이 되라. 조국 덴마아크롤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한 인간에게는 신의 축복은 있올 수 없다 ."









그는 애국적인 청년 교육올 위하여 자유 학교를 설립하고자 분투하였다. 그룬트비히가 직접 국왕에게 상주(上奏)한 말을 보연 그 뜻이 얼마나 간절하였던가를 우리는 쉽사리 엿볼 수가 있을 것이다.




"폐하께서 국민을 위하여 자유 학교를 세우신다면 확실히 도탄에 빠진 백성을 널리 건져낼 수가 있옵니다. 국민을 구원하고자 하는 이 샘물이 청순하기만 하다면 민중은 팔방으로부터 모여 와서 이 샘물을 마시고자 할 것이며, 그 가치와 명성은 세기를 통하여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이 샘물을 마시면 소경들은 불 것이요, 귀머거리들은 들을 것이요, 앉은뱅이는 지팡이를 던져 버리고 숲속으로 뛰어다닐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룬트비히는 자기의 지향하는 바 자유 학교는 능히 덴마아크를 구원하여 빈곤, 공포,죄악에서 벗어나 참 자유와 행복을 얻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의 국왕인 크리스찬 8세와 왕후 아마련은 요두 진심으로 그의 선각적인 사상에 공명하여 목적하는 자유학교를 구체화시키고자 하였으나 완고한 정부 관리들과 편협한 일부 교육자들이 맹렬히 반대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그들은 그룬트비히를 비방하여 치자(癡者)의 꿈이 라고 욕하였다.









그룬트비히는 자유 학교 설립에 실패했으나 왕과 왕후의 호의에 감격하였다.그는 다시 왕에게,




"종래의 획일적 교육은 학생을 학문으로 중독시키고 용기와 정신을 위축시켜 활동을 상실하게 합니다. 자유 학교는 생명으로 청년과 접촉함으로써 흥미롭고, 유쾌하고,그리고 순직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농민으로서,또 국민으로서 조국에 대한 관념이 명확하고 환희와 감사로써 국민적 공동 생활을 영위할 것입니다. "




라고 아뢰어 감사를 표시하였다.









오늘에 이 자유 학교의 실패를 바라보면 오히려 "새옹의 마 (塞翁之馬)" 가 된 것 같다. 그룬트비히의 이상은 권력을 중심으로 시작되지 않았고 민중 운동으로서 국민 가운데서 움터 나와 어느 것이나 사립 국민 고등 학교로 발전하게 되었다. 오늘에 있어 멀리 그 시대를 바라보면 오히려 자유 학교의 실패가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던가를 알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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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룬트비히는 조국의 발전을 위하여 분기할 줄 모르는 무위 안일(無爲安逸)한 청년들에게 이렇게 노래를 읊어 각성하라고 격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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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는 숲 위에 떠올라서




만물은 황금의 지붕처럼 빛난다




닭들은 홰를 치며




아름다운 말을 고하지 않는가




깨어라 어서 깨어나라




덴마아크의 젊은 용사들아




쾌활하게 일어나 혁대롤 조여애라




역사는 찬연하게 고대시(古代詩)에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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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자유 민권 요구의 여론을 존중하여 국민의 참정권 실시롤 약속하었다. 그룬트비히는 몹시 감격하여 기뻐서 뛰기도 하였으나 농민들은 여전히 무지 몽매 하였고 교육도 여전히 생명 없는 죽은 교육이었다. 그는 농민 계몽과 교육 개혁을 더 한층 통감하게 되었다. 당시의 덴마아크의 교육은 청년들이 실생활에 있어서 아주 무능한 인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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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교육은 국민 전체를 위한 것이 못되었으며 농민의 대다수는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였다.




학생들은 손에 괭이와 망치를 쥐고 실지로 일하기를 부끄러워했다. 결국 그 교육은 몇 사람의 학자와 관리를 양성하는데 지나지 뭇하였고 나머지 대부분은 가정에도,농촌에도,국가에도 쓸모없는 고등 유인(高等遊民)의 양성일 뿐이었다.




그들은 이 비현실적 교육으로 희생되는 사람들이었다. 국가가 막대한 재정을 들여 이러한 죽은 교육만을 하는 것을 생각하여 보연 한심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1830년에 정치 개혁이 얼어나 정치의 실권이 왕으로부터 국민의 손으로 들어와 의회 정치가 되면서부터 그룬트비히는 국민 고등 학교의 새 안(案)을구체적으로 선전하여 급속한 국민 교육의 필요성을 더욱 역설하였다. 민중이 우매(愚昧)하면 민주 정치는 오히려 일부 야심가들에게 이용되어 덴마아크는 더욱 도탄에 빠지기 쉬움을 경고했다.




그룬트비히는 노년에 이르러 자신이 스스로 학교롤 세우는 것을 단념하고 열심히 교육의 모순을 지적하고 새 교육의 이상을 널리 고취하여 많은 청년들의 공명 (共鳴)을 얻기에 힘썼다. 그는 교육은 인생에 대한 열과 흥미를 일으켜서 보람있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또 높은 교육과 문화의 향상을 목표로 하는 순수하고 분명한 것이라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인생의 공통된 갈망이어야 한다. 학원이 결코 자격증올 판매하는 곳이어서는 안된다. 간판을 얻기 위한 교육은 죽은 교육이다.




교육의 방법에 있어서도 교과서에 기계적으로 얽매어서 생명올 자유로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졸렬한 짓은 시급히 버려야 할 것이다. 교사들의 산 말씀이 교사 자신들의 높은 인격을 통하여 학생들의 인격을 소생시켜야 한다. 학생들로 하여금 인생의 고원한 목표를 갖게 하는 동시에 실생활에 유능한 인물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재의 내용과 전달의 방법도 오두 혁신하여야 한다.









서로 도와 뭉치는 협동의 정신과,인격 평등의 사상과,뜨거운 애향,애족,애국의 정신을 올바르게 북돋아 길려야 한다. 청년들의 마음에 마덕과 여유가 있는 건실한 애국심을 길러 주려면 교육을 필연적으로 「역사와 시의 기초」위에 수립하여야 한다. 그룬트비히는 당시의 교육에 대하여 이러한 구상을 하였었다.




그룬트비히의 이같은 교육 이념은 날이 갈수록 많은 공명자를얻게 되어 그가 바라던대로 젊은 교육자들의 활동으로 세계에 유례없는 성과롤 거두어 국가롤 위기에서 구해내고 오늘의 번영의 기초를 만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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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 년에 국왕은 보수당 내각을 총 사직시키고 재야(在野)의 정객들로 자유당 내각을 조직하게 하여 보통 선거를 단행케 하였다. 이것도 그룬트비히의 헌책(獻策)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65세 해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으로 피선되었다.




그는 선각자들의 상례와 같이 의회 안에서도 많은 정적(政敵)이 있어서 그의 정당한 주장이 여러번 부결되었으나,항상시간 문제이었을 뿐으로 조만간 그의 주장은 결국 실현을 보게 되었다. 그는 84세가 되는 1866 년까지 국회에서 활동하여 교육,종교,산업,토지 정잭의 개선에 진력하였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덴마아크의 소농법도 결국 그룬트비히의 이상의 일부롤 실현한 것이라 할 것이다. 그는 국회에서 토지 문제에 대하여,




"어떠한 사람을 물론하고 자기가 태어난 조국 안에서 토지를 소유하고 살 권리가 있는 것이다. 어떠한 법률이라도 이 권리를 빼앗거나 저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룬트비히는 언제나 l 인 l 당으로 자유,평등 사상에 배치하는 모든 악제도롤 분쇄하는 데 있어서 그 불굴의 의기는 이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그는 진리를 위할뿐 한몸의 영욕을 돌봄이 없었고 정부 부패의 권세와 싸워 사회 정의를 수호(守護)하기 위하여는 생명을 던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 나라의 국회 의원들은 이에 배울 바가 없을 것인가?




보신 (保身)과 차기 선거의 방편으로 잇 따른 무상한 변절(變節)은 어떻다 할 것인가? 현명하고 용기있는 국회 의원들이 있는 나라에 부패한 정부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룬트비히의 국회의원 생활에 있어서 우리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하는 이름다운 일화를 여기에 기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선거에 있어서 전국적인 투표를 한다면 그룬트비히가 압도적으로 많은 표를 얻을 것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러나,소선거구에 있어서는 언제나 평탄하게 당선될 수는 없었다. 그룬트비히가 66세 해에 코펜하겐 11구에서 첫번 출마를 하였을 때의 일이다. 연설과 수단이 능수능란한 세무 관리출신자와 대결하였는데 불과 56표의 차로 낙선되어 전국의 큰 화제가 되었다.









그 때에 2천여 명의 애국자들이 연서하여 그를 칙선의원(勅選議員)으로 임명하도록 국왕께 호소한 일도 있었다. 그런데 표레스죠 선거구에서 당선된 한센은 스스로 사퇴하고 그푼트비히를 보선(補選)시키기에 열성을 다하였다. 이것은 덴마아크 정치사에 영원히 빛나는 아름다운 유산이 될 것이다. 또 어느 선거구에서는 모든 경쟁자들이 스스로 사퇴하고 그룬트버히를 무투표로 당선시킨 일도 있었다.









1866년 개원식 해에 83세의 최고령자안 그룬트비히는 임시 의장으로 등단하여, 다음과 같은 개회사를 하였다.




"나는 우리 나라의 첫번 의회가 개회되었을 때에 연장자로 여러분께 인사롤 드린 이래 이미 18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그 동안에 국내의 모든 문제는 많이 개선되어 국민이 언론을 비롯한 모든 자유를향유하게 된데 대하여 감사하는 바이다. 오늘의 나의 인사는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오른다. 그러나,상하 양원의 의원 여러분과 함께 내가 진심으로 기뻐하고 크게 위로되는 바는 자유가 죽었던 덴마아크는 물러가고 산 자유의 새 덴마아크가 이렇게 건설된 것을 크게 기뻐하여 마지 않는다."









그룬트비히는 1872년 10월 3일 89 세로 코펜하겐에서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지 나갈수록 더 많은 덴마아크 사람들의 가슴 속에 그 위대한 애국의 지성이 살아 움직이어 정치도, 산업도,교육도 원활히 발전되어 그의 이상이 꽃피어 갔다.




고펜하겐 북쪽에 거대한 그룬트비히 기념 교회가 서 있다. 1921년에서부터 1940 년까지 20년의 장기에 걸쳐서 건축된 특유한 덴마아크식 건물이 다. 이 교회 에 사용된 벽돌은 전국에서 그룬트비히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한 장씩 모아다 지었다고 한다. 가정마다,학교마다,관청마다 이 위대한 구국 선각의 초상이 걸려 있음은 덴마아크 사람들이 얼마냐 그를 사모하고 기리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참으로 위대한 덴마아크의 애국자는 어찌 덴마아크만의 자랑이겠는가. 실로 인류의 자랑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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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역사를 위하여- 9.구국의 원동력인 교육-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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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새 교육(敎育)의 선봉(先鋒) 크리스텐 콜



우리가 덴마아크의 교육을 연구하자면 필연적으로 크리스덴 콜(Kristen Kold) 이란 인물을 알아야 한다. 그 까닭은 크리스텐 콜이 야말로 그룬트비히의 이상을 순수하게 받아들여서 비상한 열성과 탁월한 역량으로 전 생애를 바쳐서 국민고등학교의 교육을 실천에 옮겨 발전시킨 선구자이기 때문이다.



국민고둥학교를 스스로 설립하고 또, 이 사업을 위하여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 허다하건만 크리스덴 콜이 국민에게 특별한 존경과 찬사를 받으며 그 명망이 가장 높은 것은 그가 경영한 사업의 규모가 커서가 아니라 콜이 국민고등학교의 옳은 방향을 잡아 현명하게 실천한 까닭이다.



콜은 1816년에 유틀란드의 서부의 시골에서 구두장사(製靴商)의 아들로 태어 났다. 어려서부터 듵고 자란 교훈은「하찮은 물건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아껴서 써라.」「듣는 사람들 의 마음을 즐겁게 하도록 선의로 말하기에 힘써라.」하는 말씀이었다. 집이 가난하여 학교에도 별로 다니지 못하였고 고생스럽게 국민학교를 졸업한 다음 양친을 열심히 설복하여 스네트스테트에서 2년제의 초등 교원 양성소롤 겨우 수료하였을 뿐이다.



이 양성소를 수료한 다음에 그는 가정교사가 되기도 하고 보조교사 노릇도 해보았다. 그가 독일과 인접한 슬레스비히에서 농민의 자제를 가르치고 있을 때에 덴마아크의 민 족적 각성을 위하여 맹활동을 하였다. 독창적이고 열렬한 성격의 콜에게는 그 관료적이며 형식적인 죽은 교육이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이동안 그는 학교의 교수법이 몹시 혹독하고 너무 기계적으로 많은 폐해(弊害)가 있음을 느꼈다. 어느날 한 소녀가 교리(敎理)의 문답(門答)이 너무 어려워서 이해할 수도 없고 의울 수도 없다고 흐느껴 우는 것을 보았다.



[저렇게 무리하게 암송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신의 뜻이겠는가? ] 하는 의심을 품게 되었다. 콜은 학생들에게 교리의 내용읍 알기 쉽게 먼저 설명하여 이해시키고 그 다음에 그들과 문답을 시작하여 보니 그들은 묻는 까닭을 아는대로 틀림없이 대답을 쉽게하고 또 기억도 잘 하였다. 그 후부터 콜은 교과서를 집어 던지고 독창적인 교안을 만든 다음에 학과의 내용을 될수 있는대로 쉽고 흥미있게 문답식으로 유도해서 싫증이 없도록 하여 목적한 바를 깨달아 알수있게 가르쳤다. 콜은 재래의 전통을 파괴해 버린 것이다.



실력 없는 교사들이 자신을 은폐하는 연막으로 불필요한 어려운 용어와 의국어를 무수히 나열하여 목적하는 내용을 깨닫기 어렵게 하며, 한편 이런 것을 오히려 박학한 교사로 알고 있는 학생들이 있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진리를 평이한 표현으로 이해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경모(敬慕) 하는 유명 한 어느 학자는 자기 의 쓴 글을 반드시 국민 학교 상급반 학생인 자기 딸에게 읽혀서 그가 모른다면 다시 고쳐서 쓴다고 한다.



콜의 이 파격적인 교수법 에 대 하여 문교부의 관리와 교수들을 비롯하여 교회의 목사 감독들은 반감을 갖게 되었다.이 관료적인 행정 관리들과 직업적인 편협(偏狹)한 종교가들은 콜을 교육의 이단자로 몰아서 추방해 버렸다. 교육에 비상한 흥미와 열성을 가지고 큰 사명감을 느껴 침식을 잊고 활동하던 콜은 마침내 어느 학원에서도 교편을 잡을 수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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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은 이 수난시절에 인생의 자유에 대하여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정당한 자유가 억압받는 사회에는 아무리 큰 이익이 있다 할지라도 태양 없는 골짜기와 다를 것이 없다. 인생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보석은 자유이다.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찾아 헤메인 나그네의 역사이다, 인류는 자유를 찾기 위하여 무수한 생명을 대가로 지불하여 온 것이다.

​

[나에게 자유를 달라,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고 외친 패트릭 헨리의 부르짖음은 결코 헨리 한 사람의 부르짖음이 아니다. 인류 전체의 시대를 초월한 절규라 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유의 상실은 곧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콜은 자유를 사랑하는 청교도의 넋들이 죽음을 택하는 각오로 개척한 북미 신천지를 한없이 동경하여 마지 않았다. 그는 사람이 가진 바 천분을 자유로이 발휘할 수 있어야 함 은 얼마나 자연스럽고 정당한 권리인가를 생각한 것이다. 콜은 마침내 북미로 건너갈 결심을 하고 노력하였으나 또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는 거의 실망에 빠져 있을 때에 소아시아의 스머나로 떠나는 선교사를 만나게 되어 그 조수로 동행하게 되었다.터어키 사람들과 그리스 사람들이 섞여서 사는 이 지방에서 2년동안 노력해 보았으나 흥미를 얻지 못하였다. 다시 5년의 세월을 이역(異域)에서 무의미하게 보냈다. 이것은 혈기가 넘치는 젊은 콜에게 큰 정신적 시련기가 된 것이다.



때마침 덴마아크와 독일 사이에 풍운이 급하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애국심이 강한 콜은 의용병으로 곧 지원하였으나 귀국의 여비가 없어 배를 타지 못하였다.그는 초조해 견디다 못해서 작은 손수레 하나를구하여 약간의 짐을 싣고 2개월여에 걸쳐 도보로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 곤란한 여행 중에서 그는 인생에 대하여 많은 교훈을 얻었다. 이것이 그의 22세 때 일이었다.



1848년에 네덜란드와의 사이에 또다시 전쟁이 벌어져 콜은 사병으로 지원하여 출전하였다. 이 전쟁은 덴마아크의 승리로 끝났으므로 콜은 무한한 승리의 기쁨을 안고 돌아왔다. 그는 이 전쟁에서 국민들의 애국심이 자연스럽게 불붙음을 보았고,또 스스로 이것을 체험하였다. 콜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적 이해를 초월하여 국민으로서 의의 있는 생활을 영위하는 정신을 일으켜야 하겠다고 결심하였다.



콜이 명망이 높은 목사 월리 베르게달의 초빙 을 받아 그의 집의 가정 교사로 있을 때에 근처의 농민의 아들 네 명을 모아서 함께 가르쳐 보았다. 여기서 그는 자기의 생각하던 바가 확실히 좋은 교육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1849년에 덴마아크의 헌법은 정치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인정하였고, 따라서 교육에 있어서도 과거에 콜을 괴롭히던 모든 제약이 제거되었다.

콜은 마침내 학교 설립의 결심을 하고 오랫동안 저축한 전 재산을 던져서 학교 건축에 필요한 토지를 샀다. 그러나 콜이 가진 자금으로는 너무도 부족하였다. 그는 마침내 그룬트 비히를 방문하고 자기의 계획을 밝히고 지도를 받기로 하였 다. 그룬트비히는 즉석에서 그 훌륭한 특지(特志)를 칭찬하고 격려하였다, 그는 스스로 기부방명록(寄附芳名錄)을 만들어서 그 초두(初頭)에 자기의 이름을 기록하고 국민교육을 위한 새 학교의 창설을 바라는 친구들에게 콜을 소개하였다.



정성어린 찬조금이 상당히 모였으므로 콜은 1851년에 낡은 농가 한채를 사서 퓨넨주 리슬링계에 자유학교를 개교하였다. 콜이 처음으로 학교를 개교할 때에 있었던 이야기는 여원히 인류의 가슴에 큰 감명을 남길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콜이 천신만고하여 온갖 개교 준비를 마치고 나서 각지로 돌아다니면서 학생모집 광고를 붙여 놓고 초조하게 입학지원자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집이 학교이며 기숙사인데 최대한 20명을 수용할 수가 있어서 20명 정원의 학생모집 광고를 냈던 것이다.

그러나 날마다 기다려 보아도 지원자는 없었다. 개교 예정일 전날에야 겨우 한 명이 입학을 지원했던 것이다.



콜은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밖에 나가 밤을 새워 하나님께 호소하는 기도를 했다는 것이다.「하나님 제가 희망하는 학생모집 인원이 너무 많다면 세 사람만으로 만족하겠으니 두 사람만 더 보내 주십시오. 덴마아크의 이 고난의 역사를 타개하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여 가르쳐 보겠읍니다.」



그가 이렇게 호소를 하면서 밤을 새웠다. 개학날의 아침을 맞이했을 때에 뜻밖에도 열 다섯 명의 학생들이 마차에 짐을 심고 자기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것을 본 콜은 어린 아이처럼 뛰며 기뻐했다는 것이다. 콜의 국민고등학교의 개교날이야말로 덴마아크 역사에 새로운 기원을 긋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처럼 외형적으로 빈약한 콜의 교육사업이 오늘에 이렇게 이렇게 큰 역사적 의의를 가지게 될 것을 안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 16세 이 상 33세까지의 학생 15명을 모집하여 수업을 시작하였다. 가르쳐 가는 중에 그는 그룬트비히의 충고가 옳음을 발견하고 18세 미만의 학생을 제외하였다. 국민적 정신교육을 하기에는 청년기에 달한 사람이 아니면 효과가 적은 까닭이다.



당시에 치충(置重)한 학과는 국사, 북유럽사, 성경사(聖經史), 북구 신화(北歌神話) 등의 역사와 덴마아크어, 스칸디나비아 문학, 음악(특히 국민가와 영웅 찬미의 노래) 등이었다. 그는 그룬트비히의 이상에 전적으로 찬동하여서 그의 뜻을 받아 건전한 국민정신 배양과 인격교육에 힘쓰고 또 배운 바가 그대로 생활에 살아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또 교수법은 가장 평이(쭈易)한 방법 으로 학생들이 교육의 핵심을 놓치지 않게 하였다.



이 자유 학교는 후일에 덴마아크 갱생의 큰 원동력이 된 것은 물론이다. 자유 학교의 실적은 날로 뚜렷하여 마침내 퓨넨주의 여러 학교들이 교수법을 혁신하기에 이르게 끔 되었다. 그러나 평상시에 콜을 좋아하지 않는 무리들이 콜의 교육 방법을 음(陰)으로 양(陽)으로 비방하여 일시는 자유 학교를 존폐의 위기에까지 몰아넣었다. 오직 자유 학교의 학생들만이 모교의 은사 콜을 극진히 사랑하고 두둔하였다.



자유 학교는 결국 사회적으로 문제화 되어 문교부의 장학관이 직접 출장하여 신중히 학교의 내용과 운영을 조사하였다. 또 장학관은 학생들과 자리를 같이하여 문답을 시험해 보았다. 모든 학생들은 장학관이 놀랠만큼 우수하였다. 콜에 대한 중상과 혐의가 이것으로 일소(一掃)되 었을 뿐더러 자유 학교가 위대한 사업을 덴마아크에서 하고 있는 사실이 인정되었다. 이 장학관의 보고로 인하여 문교 위원회는 자유 학교에 국고금을 보조하도록 추천하기에 이르렀다.



리슬링게 시대의、콜의 생활은 극도의 빈곤(貧困)과 싸웠다. 부식물이 거의 없는 빵만으로 생활하였고 별로 차를 마셔보지도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교육 생활에서 그는 큰 만족을 느꼈고 더없이 즐거웠다.

콜의 자유 학교는 리슬링게에서 딸비로 이전되었고 여기서 9년만에 다시 다람으로 옮겨 갔다. 다람의 학교는 교사도 훌륭하고 또 상당한 면적의 농장이 부설(附設)되어 있었다. 다람 국민고등 학교는 참으로 공적이 혁혁 하고 또 많은 인물을 배양하였다. 1천 3백여 명의 학생들이 콜과 함께 생활하고 함께 공부하였던 것이다. 교문을 나가는 청년들은 모두 가슴에 포부를 가지고 보람 있게 살아 보려는 개조된 인물이다. 그들은 벌써 이기적 생활을 청산한 사람들이다. 으젓이 살아 개인보다 더 큰 것을 위하여 작은 나(小我)를 바친 애국 청년들이다.



콜의 교육 생활은 그대 로 발분망식(發憤忘食)의 지성스러운 생활이었다. 콜은 다람에서 8년 동안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학교를 경영하였다. 콜은 지식을 뇌신경에서 뇌신경으로 전달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생활과 인격을 통하여 영 (靈)에서 영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뜨거운 이상을 불붙여 주고 일깨워 주는 스승이었다.



흐르만씨는 콜에 대하여 이렇게 평하였다.

『콜은 위대한 그리이스의 대철인(大哲人),곧 세계 진리를 가져 오게 한 진리의 산파(産婆) 소크라테스의 교수법을 상기 하게 한다. 콜은 그 시절의 덴마아크의 소크라테스이었다. 그의 교수법도 생활도 다 소크라테스를 방불(彷佛) 하게 한다』



콜은 모든 학생들의 가슴 속에 숨어있는 고귀한 것을 깨워 일으키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순결하고 고상한 인생의 생활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학생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이 능력이야 말로 콜의 인격에서 솟아나오 는 힘이었다. 그는 교사임에 그치지 않고 실로 학생들의 다시없는 좋은 친구였다. 콜은 교육 생활의 대부분을 학생들과 한 식탁에서 먹고, 한 침실에서 자고, 함께 담화하고, 노래 부르고, 함께 일하고 살았다. 오늘의 국민고등학교가 특히 가정적인 특색을 띠우게 된 전통적 특색은 콜에게서 시작한 것이다. 여름에 젊은 여자들을 교육하게 된 것도 콜이 시작 한 것이다.



콜은 그룬트비히의 교육 이상을 그대로 실천한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는 한 권의 저서도 후세에 남기지 않았으나 그 교육의 성과는 시냇가에 자라는 무성한 나무처럼 자라나고 있다. 콜은 겨우 2년제의 초등 교원 양성소를 수료한 사람인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학벌을 코에 걸고 부당한 지위와 권세를 잡아서 일세 (一世)를 횡행해 보려는 무리들은 콜의 숭고한 인격 앞에 참괴(慙愧)함이 있어야 할것이다. 그들은 모두 세상을 독(毒)하고 자기를 해하여 마침내는 불 나비의 최후를 면치 못하게 된다. 우리가 세계사를 읽을 때에 실로 대다수의 위대한 인물들의 이력이 호화로운 학벌을 배경으로 함이 없음은 참으로 흥미있는 사실이라 할 것이다.



국민고등학교 중에는 콜에 비해서 심원(深遠)하고 진보 된 학문적 수양을 쌓은 인물들에 의해서 창설된 학교들이 많지마는 콜처럼 그렇게 큰 감화를 준이는 없었다. 콜은 1870년 다람에서 55세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콜이 남기고 간 말을 더듬어서 그의 위대한 교육의 근저를 살펴 볼 필요를 느낀다. 콜이 재학 시절에 인생 문제로 몹시 번민하고 있을 때,우연히 한 농부의 소박한 신앙의 체험담을 듣고 그는 비로소 기독교를 믿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 신앙이 그 전 생애를 한결같은 방향으로 이끌고 가서 그의 공적을 인류 교육사에 빛나게 한 것이다.

콜이 다람에서 교육 사업 에 열중하고 있을 때에 그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그의 교육 방침을 물어보면 그는 늘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

[나는 I8세 때에 신(神)과 이웃을 사랑하는 도리를 배워서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참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다른 사람에게도 나와 같은 마음의 행복감을 가질 수 있는 신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나는 나의 있는 힘과 시간을 바칠 결심을 하였다. 이 국민 고등 학교의 목적도 결국 신을 공경하고 나를 사랑하고 또 사람들을 형제처럼 사랑하는 길로 청년들을 인도할 따름이다]



콜의 이 말로 미루어 보면 청년 콜을 감격하게 한 예수의 정신이 그의 일생을 지배하였으며, 한결같이 교육 사업에 진력하게된 까닭도 알 수 있다. 경신 애린(敬神愛隣)의 정신이 없는 곳에 참 평화와 참 행복의 광명이 없음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우리는 어느 학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학대받는 사람들을 동정하기보다는 학대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분노가 강렬한 사람이 다, 그의 사회 학설은이 분노 위에 세워진 것이다. 또 격하기 쉬운 성격의 주인들이 그 밑에 모여든 것이다. 이 분노의 사상과 행동에 는 자연히 위협, 감시, 살륙(殺鐵), 밀정(密懷), 함정 등등 의 검은 그림자가 어디까지나 떨어지지 않고 따라 다닌다. 그리하여 이러한 것들로 쌓아올린 사회는 아무리 강한 힘을 자랑할 수 있더라도 또 공명 평등을 자랑할 수 있더라도 참평민적 평화와는 인연이 먼 것이다.]



참 평화는 전당같은 큰 집보다도 오히려 3간에 잘 깃드린다. 항상 분노로 가득찬 가슴 속에 따스한 태양이 비치는 평화의 동산이 있을리 없다.평화와 행복이 분노에서가 아니라, 자기를 희생하는 형제애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우리는 콜의 증언으로 더욱 확실히 깨달을 수가 있다.



콜이 자유학교의 교장으로 있었을 때에 그가 한 다음 말을 살펴보면 그 교육의 이념을 우리는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나의 자유 학교는 어느 학교보다도 가장 훌륭한 학교라고 나는 믿는다. 레딩에 세워진 학교는 독일에 대항하여 가장 강렬한 민족심을 기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 학교는 독일과의 마찰이 가장 신한 국경지대 쉴레스비히에 설립된 것으로 그룬트비히도 덴마아크의 정신의 보루(保壘)라고 가지 칭찬한 학교이다. 이 학교는 아스코브 국민고등학교의 전신이다.

그러나 이 목적을 달성한 날에는 그 학교으 사명은 다 한 것이다.힌흐름에 세워진 학교는 농민의 권리를 확장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 것도 그 목적을 이룬 날에는 벌써 그 학교의 존재의 필요는 없어지는 것이다.(이 학교는 후에 사실로 폐교되었다.)

그러나 나의 이 자유학교는 주검에 대한 생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다. 이 세계가 존속하는 날 까지는 이 학교도 필연적으로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

콜은 언제나 학생들에게 무엇이 보람 있는 인생인가에 대하여 가르쳤다. 어느날 한 학생이

[생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귀중한 말씀을 다 기억할 수가 없어서 큰 걱정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콜은 그 학생에게 곧 이렇게 대답하였다 『염려 말게,보통 지식이라면 모르거니와 내 말은 그것과는 다른 것일세. 땅속에 토관(土管)을 묻었다면 그위에 표지가 있어야 곧 찾아 낼 수 있겠지마는 씨를 심는 곳에는 표지가 없는 것일세. 씨를 심은 자리에서는 반드시 싹이 나오게 마련이니까, 깊이 느낀 것은 필요한 때에 틀림없이 다시 살아 나오는 것일세.]



얼마나 확고한 신념인가, 참으로 인생의 교사라고 할 것이다.

콜의 교육 방침은 결코 목전의 것을 위한 것이 아니며, 조국 번영의 영원한 동력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콜의 말 그 대로 국민 고등 학교의 생명은 역사와 함께 길 뿐만 아니라 오늘에는 국경을 넘어서 여러 나라로 퍼지고 있는 것이다. 콜의 견실한 신앙과 뛰어난 지능과 지성스러운 봉사의 협동 정신이 덴마아크의 교육사에는 물론 인류 문화사에 불멸의 공 적을 남겼다.



국민 고등 학교와 콜을 찬양한 어느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개인적인 자기를 뛰어 넘어서 더 큰 것에 몸과 마음을 바치는 진정한 애국심, 조국을 영원의 동력에 연결시키는 교육은 인류로서 참으로 자랑할 만한 것으로 덴마아크롤 부흥시키 공적의 반분(半分)은 콜에게 돌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지식의 소매상을 교육으로 오인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참으로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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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jin at May 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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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s: Grundtvig, 공 空, 그룬트비

유달영 [새 역사를 위하여] 1.덴마아크로의 志向

발해마을


[스크랩] 새 역사를 위하여 - 1.덴마아크로의 志向 | 기타
선의산 2019. 3. 1. 06:58
http://blog.daum.net/tsc9990/656

새 역사를 위하여

 

 

유달영

 

 

1.덴마아크로의 志向

 

오늘 우리의 조국 산천이 피로 물들지 않았던 곳은 없다. 물론 주택도 공장 지대도 재로 화하지 않은 곳은 없다.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은 더 한층 살벌하였다.
이 국토에 서서, 기아선상(飢餓線上)에방향 없이 헤매는 수백만 동포를 바라보며, 진정으로 민족과 나라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누가 능히 암담한 느낌올 금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우리가 이 참담(樓擔)한 현실 앞에 서서 그대로 낙망하고만 있다면 영원의 암혹이 우리를 둘러싸고 떠나지 않올 것이다.

 

우리는 있는 지성(至誠)과 지혜와 정열을 다하여, 참으로 꾸준하게 이 세기적인 큰 재화(災禍)를극복하고,폐허로 화한 이 국토 위에 새 역사롤 창조하고 새 낙원을 건설하겠다는 철썩같은 결심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전고(前古)에 없는 참혹한 환란의 날에,과연 우리는 희망을 어디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꺾이지 않는 용기를 어떻게 북돋울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이렇게 허덕이고 있을 때에 멀리 북 유럽 변두리에 유난히 반짝이는 덴마아크의 찬란한 역사는 우리의 앞을 밝혀 주는 유일한 등대가 될 것이다. 절망의 깊은 골짜기에서 기어이 희망을 찾아내어 일찌기 안류역사상에  유례가 없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서 농업 문화의 창초와 복지 국가 건설에 성공한 덴마아크의 부흥사(復興史)가 곧 등대라고 나는 확신한다.


덴마아크는 독일 북쪽에 붙어 있는 작은 반도와 수백의 섬으로 된 작은 나라이다. 이번 우리 나라에 6· 25사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우리와는 직접적으로 밀접한관계는 없었으나,유우엔군이 참전하게 되자 즉시 그 일원이 되어 의료와 식품과 병원선(病院船)을보내고 우리와 함께 인류의 자유를 위하여 잘 싸웠다.

 

오늘날 세계 사람들은 덴마아크롤 일컬어 「지상 낙원」이라고 말한다. 빈곤울 물리쳐 어느 나라 국민보다도 부유하고,체육올 진흥시커 어느 나라 국민보다도 건강하며 장수하고,국민의 교육 수준은 세계에서 최고이며 복지 사회의 건설은 빈틈이 없다.특히 일반 농민의 교육 정도(程度)는 비교할데가 없을 만큼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종교와 과학과 경제를 잘 조화시켜 건전하게 평화를 이룩하였고,국민들은 즐겁고 보람 있는 생을 누리고 있어 온 세계의 선망의 대상이 된 것이다.

 

우리 나라 평안도보다 조금 넓은 국토와 당시 3백만 미만의 국민으로서 최악의 모든 조건올 극복하고 오늘의 영광을 가져온 것은 그대로 역사상 하나의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세기적인 비참의 도가니가 된 이 한국에서 찬연히 빛나는 오늘의 덴마아크의 농업 문화를 바라보면,그들은 참으로 우리의 앞길을 비치는 아름다운 비젼 (vision) 이요,희망의 등대가 아닐 수 없다.

 

덴마아크는 교육으로 성공한 나라이다. 그들의 오늘은,그 독특한 국민 교육이 가져온 것이다. 교육 없는 문화를 우리는 상상할수가 없다. 넓은 의미에서 인류의 문화는 곧 교육의 피어난 꽃이요 열매인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곧 교육의 역사라 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30여년동안 일제의 우거운 사슬에 얽매여 신음하였을 때에 이 민족과 이 나라의 광복을 꾀하던 모든 지사들이 직접 간접으로 뜻을 한결같이 교육에 두고 분투 노력하지 않은 이가 없었던 것도 결국 이 때문인 것이다.

 

건전한 교육을 떠나서 누가 감히 나라의 재건과 민족의 번영과, 인류의 발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인가? 덴마아크는 비상한 정열과 노력으로 확실한 교육 목표와 특유한 교육 제도를 창안(創案)하여 전국민을 단시일에 교육하기에 성공하였다. 이 교육의 성공이 덴마아크의 오늘의 번영의 근저가 된 것이다.


산업의 방면에서 보면 우리 나라는 유사이래 농업 국가일 뿐 더러,국토는 농업의 천혜적(天惠的)조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농업은 우리 나라 산업의 흔들릴 수 없는 기본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인망이 높은 일본의 한 학자는 그의 「건국 이상원] 라는 논문에서 농(農)을 주로 하고 공(工)을 부로 하는 산업 국가만이 국민에게 참 행복을 줄 수 있는 이상국가라고 지적하였다. 그 학자는 농업만이 건전하고 순박한 국민성과 높은 국가 교양을 오래 유지할 수가 있어서 참 평화와 참 행복을 영구히 누리는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현명한 생각은 덴마아크의 역사가 확실하게 뒷받침하여 온 세계에 실증하여 준 것이다.

 

우리가 눈앞의 이 난국을 타개함에 있어서나,멀리 앞날의 번영을 건설해감에 있어서 나,교육과 농업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전진하는 데 서로 결(缺)할 수 없는 기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급하더라도 이상의 2가지 가본을 확립하지 않고서는 만사에 어느 하나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옛날에 없던 역경에 처하여서 본다면, 모든 조건이 좋아서 순풍에 돛을 펴고 기름 같은 바다 위를 달리듯이 발전한 나라들은 우리의 길잡이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역사에서 탐색하며 또 갈구(渴求)하는 바는 [어떤 국민이 어떻게 절망의 역경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서 가장 건실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빛나는 역사와 번영의 날을 자기의 것으로 가져왔나] 하는 역사적 원리와 사실인 것이다.
이모저모로 깊이 검토하여 볼수록 덴마크의 분투한 역사를 우리의 등대로 하고, 덴마크의 높은 이상을 우리의 비전으로 함이 무엇보다도 튼튼하고 가까운 길임을 확신케 한다.
 


2.절망의 바닥에서

 

1).덴마아크의 국토와 자연

농민의 낙원으로 불리워지는 덴마아크는 독일 북쪽 북해에 튀어나온 작은반도와 그 부근의 수다한 작은 섬들로 된, 4만 3천 평방킬로미터의 작은 왕국으로 우리나라의 평안도보다 약간 넓다. 인구는 제 1차 세계 대전후에 독일로 부터 슬레스비히의 일부를 회복하고서도 겨우 3백 6십만 가량이었으며 1968년의 통계로서는 4백 8십만 가량이다. 그러므로 이 나라는 일대 왕국이 아니라 일소왕국(一小王國)이다. 영토로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가 있으나 전자는 이미 독립하였고 후자는인구 2만가량의 물산(物産)이 희소한 쓸모 없는 섬이다.

 

국토의 주요부인 유틀란드 반도는 원래 빙하 시대에 이루어진 황무지로 땅이 메마르고 서북의 해안은 사구(沙丘)로 둘러져 있다. 북위 54도로부터 57도의 사이에 있어서 우리 나라보다 훨씬 북쪽이며 동양의 캄차카 반도의 위도에 해당한다. 해발 평균 30 미터에 이르지 못하며 2백 미터를 넘는  산이 없는 지대이다. 덴마아크의 최고봉은 유틀란드 동펀에 있는 에이르바브네회 (Ejr Bavnehoj)라는산으로 그 높이가 겨우 172 미터이다. 서울의 남산이 2백 6십미터의 높이이니 우리는 덴마아크의 지세를 이로써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로 산악의 나라 스위스와는 국토의 됨됨이가 여러 가지점으로 대조적이라 하겠다. 서북을 가로막는 산맥이 없으매 차고 습한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 1년의 대부분이 대부분이 음산하고도 을씨년스럽다. 1년의 강우량은 겨우 6백밀리에 지나지 않으나 평균 비오는 날이 158 일이오,눈내리는 날이 30 일이며,안개 깊은 날이 94 일 평균이다. 가장 기후가 좋다는 덴마아크의 수도 코펜하겐조차 태양을 바라불 수 있는 날이 겨우 50일에 지나지 않는다.

 

평균 기온은 섭씨 8도이므로 위도에 비해서는 따뜻한 편이다.늦 서리는 5월 10일까지 내리고,10월 5 일쯤에는 벌써 첫눈이 내린다. 땅이 메마르고 기후가 또한 이러하니 농작물은 그 재배에 있어서 자연히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어디서나 가꿀 수 있는 콩, 옥수수 따위도 일광 부족으로 결실을 못하게 되니 다른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가축도 1년 중에 9개월 동안은 축사 안에서만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약간의 토탄(土炭)이 유일한 자원으로 그밖에는 아무 것도 땅 속에서 찾아낼 수가 없다. 이처럼 매장된 자원이 전무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웃나라 스웨덴,노르웨이는 모두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력 전기의 나라들이다. 그런데 덴마아크에서는 수력 전기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이 조건이 나쁘다. 덴마아크야말로 창조의 신이 전혀 쓸모가 없어서 북해 기슭에 내버린 몇 조각 불모의 땅인양 싶다. 아무리 여러 모로 살펴보더라도 자연의 혜택이 너무도 빈약한 한심한 나라다.

 

이제 우리의 인구를 덴마아크에 비하면 막대하다 할 것이요,국토는 또한 광대하다 할 것이다. 물과 바다에서 나오는 백, 천 가지 풍성한 자연의 혜택은 거기에 견줄 바가 아니다. 맑은 하늘, 깨끗한 공기, 기름진 들, 아름다운 산, 수많은 강,복잡한 해안선, 풍요한 바다,다채로운 지하 자원, 무엇 하나 어디에 손색이 있으랴.

어느 것 하나 덴마아크 사람들의 부러움이 되지 않을 것이 없다.덴마아크 국민이 저 유틀란드의 참담한 황무지에서 농민의 낙원을 이루기에 성공한 것을 불 때에 우리가 무릉도원과 같은 이 한반도에서 살기 좋은 낙원을 이룩할 수 없다는 생각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설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2).전락(顚落)의  역사 

다음에 우리가 그들의 역사적 윤곽을 살펴보는 것은 무엇보다도 긴요한 일이다. 덴마아크는 원래 북 유럽에 활개를 치던 일대 왕국이었다. 11세기에는 영국을 억눌러 속지 (屬地)로 하고, 17세기 크리스찬 4세 때에는 제해권(制海構)을 잡은 눈부신 해운국이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의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대부분도 덴마아크의 영토이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서 유럽의 역사는 큰 변동을 가져왔다. 프랑스의 혁명을 거쳐 아침 햇살같이 뻗쳐 일어냐는 나폴레옹의 거대한 세력은 프러시아를 단번에 억누르고 다시북진하여 덴마아크와의 동맹을 강요하였다. 프랑스에 본의 아닌 가담을 하게 된 덴마아크는 영국,스웨덴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였다.

 

넬슨이 거느린 영국의 강력한 대 함대에게 덴마아크의 해군은 거의 전멸하였으며 이로 인해서 북해의 제해권(制海構)은 완전히 빼앗기게되었으므로 이 틈에 스웨덴,노르웨이도 모두 독립하였다. 덴마아크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파산의 곤경에 이르게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반목이 한창 심하던 때에 이 큰 두 세력 사이에서 영국에 의지하면 프랑스의 거센 육군의 말굽에 즉시로 유린당하게 되는 것이다.

 

중립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다하던 덴마아크의 수도 코펜하겐은 영국 함대의 포격을 받아 떨고 있었다.나폴레옹이 몰락한 뒤에도 다시 프러시아의 압박으로 수차의 충돌을 거듭하였고 1864년에는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연합군에게 무참하게 굴복하게 되어 남부의 유일한 기름진 국토 슬레스비히와  훌스타인의 이주마저 상실하게 되었다.

 

이 전쟁으로 입은 손실이야말로 치명적이어서 덴마아크의 경제의 파탄은 물론 인심도 극도로 침륜(沈倫)하여 실망의 갚은 구렁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스스로 자신을 저주하는 망국의 유령처럼 되었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국민들은 오직 암담할 뿐이었다. 그들이 물려받은 유산은 오직 손바닥만한 황무지 유틀란드 반도와, 몇 개의 섬들과,사구(沙丘)들과 북해 특유의 거센 바람과, 발틱해의 얼음과, 패잔에 피로한 노유와, 자포자기의 저주의 소리뿐이었다.

 

어디를 바라보아도 희망의 서광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소망을 가지고 걸어갈 모든 길은 완전히 막힌 것이었다. 덴마아크의 국민들은 이 황량한 북해 기슭에서 탄식과 불평을 안고 스스로를 저주하면서 그대로 시들어 벼리는 수밖에 헤어날 길이 없는 것 같았다. 비참한 극이었다. 아무도 그들의 자포자기를 탓할 수는 없었다. 국민들은 순간의 향락으로고통을 잊고자 환략가를 찾아 헤매었다.

정치의 이념이 서있지 못한데다가 수 많은,정당이 생겨서 당파의 싸움은 날로 심하여 갔다. 인심도, 국토도, 가속도로 황량의 길을 채찍질하여 전략해 갔다. 덴마아크의 소수의 지성인들도 자기들 앞에 닥쳐 올 종말의 날을 상상하고 공포에 떨고 있었다. 인생에서 희망의 태양을 상실한 것보다 더 큰 비참한 일은 없을 것이다.

"너의 일체의 희망을 버리라" 이것은 지옥문 앞에서 시인 단테가 발견한 지옥의 간판이다. 단테의 불후(不朽)의 명작 신곡(神曲)의 지옥편에 기록된 유명한 구절이다. 이 한 마디 짧은 구절이야말로 지금까지 인류가 표현한 문구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다. 지옥문 위에 붙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비참과 공포롤 가창 단적으로 표시한 구절인 것이다.

 

「일체의 희망을 포기하라」는 명령이다. 영원의 암흑, 영원한 고통인 것이다. 무한의 날에 무한한 고통을 뜻한 것으로 생명을 스스로 끊어 모든 것을 망각할 희망초차도 없는 것이다. 희망을 잃어버린 것은 비참 가운데서도 가장 큰 비참이다. 그런데 덴마아크 국민은 릐망을 잃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들은 절망의 바닥에서 자신올 저주하면서 헤매고 있었다. 이와 같은 막다름에 이르러서는 「멸망으로서의 전락이냐, 초인적 비약이냐」의 두 가지 길밖에 다른 길은 없었다. 그 당시의 덴마아크는 희망의 태양이 사라진 세상이었다. 그대로 지옥이었다.

 

 

3. 復興의 횃불

 

1).갈구하는 광명 

오늘 우리 겨례가 갈구하는 것은 평화와 행복의 태양이다. 우리 민족의 저 마다의 가슴속에는 초인간적인 위대한 힘과 능력의 출현을 바라고 있다. 마치 사막 한 가운데에서 고달픈 나그네가 오아시스(生命泉)를 안타깝게 찾듯이 갈구하고있다. 이 심정은 우리들이 스스로 의식하든지 못하든지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잠재하여 있는 것이다. 우려 자신들의 수난이 너무도 끔찍하고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우리는 덴마아크의 겪은 바 암담한 역사의 날을 남 다른 동정과 흥미로,아니 거의 내 것으로 느끼면서 더듬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한데 연결된 신경처럼 옛날 그들의 심경을 지금 우리의 심경으로 덴마아크의 캄캄한 역사 속을 응시하게 되는 것이다. 과연 그들은 그 어둠 속을 어떻게 걸었나 하고 뚫어지게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이나 국가가 민족이나 역경의 시련 속에서 단련되지 않고서 이루어진 위대한 것은 없다. 도가니 속에서 수천도의 열로 달구어지고 망치로 두들겨 맞아서 정련되지 않고서는 예리한 보검 (寶劍)이 만들어질 수는 없다. 그러므로,우리가 수난의 골짜기에서 발밑만 내려다 보고 허덕인다면 마지막 이르는 곳은 멸망의 함정일 뿐이다. 높은 곳을 바라보고 초인적인 힘으로 뛰쳐나와야 비로소 새로운 광명의 세계를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 비참할수록 가슴 속에 품은 이상은 높아야 한다.

 

인류의 역사를 읽을 때에 갈피마다 느끼는 진진한 홍미는 역사적 사명을 다한 민족과 국가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억척스리 극복하고 눈부신 발전을 이룬 대목에 집중된다.
덴마아크는 그 가흑한 시련올 가장 훌륭하게,의의있게 살린 나라의 본보기이다. 그들은 그 고난으로 하여 오늘의 특수한 문화를 이룩했다. 평화와,수(壽)와,부(富)와,지 (知)를 모두 가지게 되었다. 온 세계 사람들이 찬양하는 농민의 낙원올 성취했다. 만일 심각한 역사적 수난이 그들에게 없었던들 오늘의 덴마아크의 귀중한 문화는 인류의 문화사 위에 피어보지 못하였올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덴마아크가 그 수난을 가장 의의있게 살린 점에 크나 큰 매력을 느끼는 것이며, 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달 없는 칠암(漆暗)의 깊은 밤에 험한 골짜기를 벗어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앞을 보게 하는 등불과 걸어갈 방향올 분명하게 판단하는 현명한 인도자이다.

덴마아크의 온 국민이 어둠 속에서 비탄에 쌓여 있을 때에도 전혀 실망하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전쟁에는 패하였으되 정신은 패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야 말로 파멸 속에서 덴마아크를 구원해 낸 횃불(炬火)들인 것이다. 세월이 지나갈수록 더욱 찬란히 밝아지는 횃불들인 것이다.

 

2).E.M.달가스 

달가스(E.M. Dalgas) 는 36세의 공병장교였다. 무너진 전선에서 돌아온 그를 만나는 친구마다,

『오늘이야말로 우리 덴마아크의 가장 불행한 날이다.]
하고 부르짖었다.
"당신 말대로 우리는 불행하다"
그는 서슴치 않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달카스의 대답이 이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반드시 말끝을 이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나,우리에게는 다시 살아갈 희망의 길이 있다. 우리는 밖에서 잃어 버린 모든 손실을 안에서 회복해야 한다. 이 유틀란드의 황무한 들을 장미꽃의 향기가 풍기는 기름진 들(沃野)로바꿀 수가 있단 말이다."

 

달가스의 얼굴에는 굳은 신념이 엿보였다. 그러나,그의 말을 망상(妄想)으로 돌리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달가스의 가슴 속에는 총검(銃劍)으로 잃은 것을 괭이와 쟁기로 회복 할 결심이 되어 있었다. 그는 일선 포탄 밑에서 싸울 때에 벌써 패전한 조국 덴마아크를 구원할 계획올 세웠던 것이다. 달가스야말로 참담한 덴마아크 천지의 어둠을 비치는 한 개의 희망의 횃불이었다.

 

3).그룬트비히 

덴마아크의 어둠 속에 또 하나의 더 큰 횃불이 있었다. 그룬트비히 (N. F. S. Grundtvig) 가 곧 그 사람이다. 이 음울한 나라 안에 있어서도 그의 이상은 동쪽 하늘의 샛별처럼 찬란하였다. 그는 결코 그 환경에 지배되어 시들지 않았다. 시인이며, 종교인이며, 역사가이며, 철학자인 참 애국자 그룬트비히야 말로 덴마아크의 구국의 원동력이 된 선각자이었다.


그는 북 유럽 신화(神話)의 대저(大著)를세상에 내어 유명해진 사람으로 문예계에서는 「덴마아크의 카알라일」이라고 기림을 받던 사람이었다.

18세기에 온 유럽을 휩쓸던 이성주의(理性主義)를 배격하고 독일의 로맨티시즘(浪漫主義)에 경도(碩倒)하여 실러,피히테,셀링과 같은 정열척인 시인과 철학자들로부터 깊은 감화를 받아 대성한 사람이다. 그룬트비히는 또한 수많은 애국시(愛國詩)를지었는례 그를 덴마아크 최대의 시인이라고까지 평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미국이 독립 천쟁에서 승리를 얻어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1783년 질란트에서 출생하였다. 다감한 23세때에는 조국의 전통을 자랑하는 덴마아크 합대가 영국의 넬슨에게 격멸당하는 것을 친히 보았고, 수도 코펜하겐이 영군(英軍)의포격으로 말미암아 두 번이나 불바다로 화하는 것을 또한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조국의 수난을 몸소 겪은 사람이었다.

 

그의 생애에 있어서 우리가 특기할 것은 그가 전 날의 적국이었던 영국을 시찰하던 중 조국 덴마아크의 걸어갈 새 방향을 발견한 사실이다. 당시 영국은 기계 문명이 바야흐로 융성하여 공업의 눈부신 발달에 따라 농촌 청년들이 도시로 모여들고 있었다. 이렇게 청년들이 홍수처럼 도시로 밀려드는 동안에 농촌은 피폐의 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영국뿐만이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불 수 있었던 경향이었다. 그룬트비히의 머리 속에는 번개와 같은 섬광(閃光)이 비쳤다.

 

「우리 덴마아크의 갈 길은 이제야 확실하다. 영국을 비롯한 여러 공업국에 대하여 덴마아크는 일치 단결하여 협동 농업국으로 매진하는 것만이 조국을 건지는 길이다.그는 조국의 갈 길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는 또 런던 시민들의 정력에 넘치는 활동의 모습을 바라보고 덴마아크의 청년들을 교육할 국민교육에 대한 새 이념이 비쳐지게 되었다. 덴마아크의 새로운 역사를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청년들을 새로운 길로 교육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청년기는 곧 영혼의 창조기이다. 인생의 최고 이상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이 시기에 반드시 한 번은 열정에 불탈 것이니 이 때 작열한 강철처럼 달구어서 그 열이 식기 전에 덴마아크의 애국자로 두드려 내야만한다.

 

"역사적으로 진실하게"
"윤리적으로 고상하게"
"심미적(審美的)으로 순미 (純美)하게"
"이렇게 개조된 젊은 국민만이 덴마아크를 이 역경 속에서 구원해 낼 수가 있을 뿐이다"

 

그룬트비히가 절실하게 느끼고 분명하게 깨달은 바는 곧 이것이었다. 이 각성이야 말로 덴마아크 새 역사의 진로를 밝혀 준 빛나는 샛별이 된 것이었다. 그룬트비히는 조국의 내일을 바라보고 새로운 희망에 불타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의 가르친 정의와 박애로, 덴마아크의 나아갈 방향을 「역사교육」에서 찾는 것이 새 교육의 가장 건실하고 가까운 길이라고 믿게 되었다.

 

"기독교적 애국 청년으로하여금 덴마아크 자신을 구하게 하고,또 영양이 풍부한 좋은 식품을 만들어 세계 각국에 보내는 것은, 안류에 봉사하는 우려 조국 덴마아크의 올바른 사명일 것이다 "

 

이것이 그가  품은 농업국 덴마아크의 기본 정신이었다. 그룬트비히는 불타는 구국교육의 정열과 이념을 안고 고국에 돌아가서 그의 포부를 국민들에게 열렬히 창도(唱導)하였다.


농민 교육,특히 청년 교육은 민족 갱생의 초석(礎石)임을 깊이 깨닫고, 이 획기적 교육운동을 전개했다.

이것이 덴마아크 부흥의 근본적 첫 출발이었다. 지금 우리가 이 현실에 처하여 그들의 주장을 검토하여 보면 그들은 지엽말초(技葉末稍)에 붙잡히지 않고 확고히 근본적인 점에 착안하여,그 이상과 신념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한 길로 매진한 것을 알 수 있다. 그 현명하고 꾸준함을 거듭 감탄하게 된다.

 

그룬트비히의 감화로 국민 고등 학교의 교육을 실천에 옮겨 위대하게 발천시킨 크리스텐 콜 ( Kristen Kold) 도 또한 이 나라의 찬란한 부흥의 횃불이며, 덴마아크의 유명한 협동 조합의 장점을 널리 선전 계몽하여 협동 운동의 기초를 닦아 놓은 에반도 회그스부로도 잊을 수 없는 인물이다.

 

역사는 생명을 짜내는 한 폭의 깁이다. 아름다운 생명의 약동만이 빛나는 역사 창조의 씨와 날이 되는 것이다. 이 역사 창조의 소재가 되지 못하는 생을 일러 티끌 같다 할 것이다.

인생이 어찌 신념 없이 살 것인가. 사명 없이 살 것인가. 우리 나라 청년들이 그룬트비히, 달가스, 콜과 같은 덴마아크의 선각자들의 그 신념을 신념으로, 그 이상을 이상으로 한다면 우리의 바라는 비전은 통일된 국토 위에 확실히 실현될것이요,  우리의 문화가 세계에 기여할 날도 반드시 오고 말 것이다.

 

"신은 스스로 돕는 사람만을 돕는다."

라고 갈파한 금언은 천고의 진리가 아닐 수 없다. 덴마아크의 애국자들은 우리에게 요행을 버리라고 경고한다. 스스로 씨뿌리지 않은 땅에서 열매를 거두고자 하는 따위의 근성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가 겪는 역사적 고난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고자 힘을 다하지 않는 한, 결코 우리의 걷고 있는 험난한 골짜기를 벗어날 수는 없다,

 

출처 : 충신사 기독교 문서 선교회
글쓴이 : joseph 원글보기
메모 :
Posted by Sejin at May 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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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s: Grundtvig, 그룬트비, グルントヴィ

덴마크의 그룬트비를 주목해야 하는 까닭 < 문화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덴마크의 그룬트비를 주목해야 하는 까닭 < 문화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덴마크의 그룬트비를 주목해야 하는 까닭
성공회대 고병헌 교수…끊어진 교육의 맥 여기서 찾자
기자명 이경근
승인 2002.10.04


▲ 9월 28일 성공회대학교 새천년기념관에서는 '덴마크교육에서 배우자'란 주제로
하반기 교육사랑방이 문을 열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뉴스앤조이>는 성공회대학교 민주사회교육원이 '덴마크 교육에서 배우자'라는 주제로 진행하는 2002년 하반기 교육사랑방에서 논의되는 내용을 연재한다. 첫째로 9월 28일 첫 모임에서 발표한 고병헌 교수(성공회대·광명시평생학습원장)의 발표 내용을 요약한다.

6개월 동안 열리는 하반기 교육사랑방 오리엔테이션을 겸한 이날 강의에서, 고 교수는 왜 우리가 덴마크 교육과 그룬트비에 주목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두 번째 모임은 10월 18일 광명시평생학습원에서 진행되며 풀무학교 교장을 지내신 홍순명 선생에게서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예정이다. (편집자주)

대안교육이라는 단어를 한 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지금 정부 교육정책의 큰 그림은 95년 5월 31일의 교육개혁에서 비롯되었는데, 그로부터 한 달 뒤 몇몇 분들과 함께 대안교육에 관한 워크숍을 열었다. 이후 일본·유럽 등지의 대안교육과 대안학교가 소개되면서 국내에서도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아졌다. 대안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짚고 넘어갔으면 한다.

대안교육은 수단이 되어야 한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지금 우리 나라 대안교육은 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 대안교육을 크게 법적인 면과 철학적인 면으로 나눌 수 있는데, 우리는 법적인 면만 생각하고 있다. 즉, 대안교육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슨 무슨 대안학교라고 이름 붙인다고 저절로 대안교육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학교를 대안학교로 만들겠다'란 말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거란 말과 같다.대안교육은 철학적인 면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존의 학교교육에서 무엇이 실현되지 않는지, 대안교육으로 무엇을 추구하려고 하는지, 이런 것들을 고민하고 연구해서 추구하려는 가치에 맞는 교육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기존의 교육으로 가능하다면 현 교육제도를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고, 그것과는 다른 교육이 필요하다면 대안이 될 만한 교육을 찾는 것이다.

대안교육은 '무슨 무슨 대안학교'라는 이름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실현하고픈 가치를 기존의 교육과는 다른 대안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안교육의 본질은 대안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아니고 교육을 통해 실현하고픈 이상을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살아있는 언어에 대해서

그룬트비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말'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혹자는 교육 3요소를 교사·학생·교재라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 3요소에는 학생과 선생의 '만남'이 있어야 하고, 삶을 매개로 한 '내용'도 있어야 한다. 그 때 중요한 것이 서로간의 '말'이다.

덴마크 교육학자 에기디우스 선생은 그룬트비의 정신적 유산이 글이 아닌 말에 의해 전해져 왔다고 말한다. 교육의 기본 수단은 살아있는 언어(the living word), 즉 '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쓰이는 말은 너무나 오염되었다. 한 문장을 말하는데 비속어가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모른다. 뜻이 맞는 우리말을 놔두고 영어 또한 얼마나 많이 쓰고 있는가.

이러니 교육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실제 쓰는 말로 교육을 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실제로 쓰는 말과 교육을 위한 '정제된' 글이 분리되어 있다. 그룬트비의 영향을 받은 톨스토이는 지식인들이 말로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죽은 글, 거짓 글이 되고 있다고 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어린아이들도 말은 알아듣는다. 말을 올바르게 쓰는 것은 교육에 있어 상당히 중요하다.

그룬트비가 살아있는 언어라고 정의한 '말'은 교사와 학생간에 이루어지는 동등한 입장에서의 대화이며, 감정을 표현하게 하고 듣는 이의 가슴을 파고들어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놀라운 힘의 원천이다. 우리가 그룬트비를 공부하고 덴마크 교육의 본질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앞서 말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한다.

풀무학교는 왜 그룬트비에 주목하는가



▲ⓒ뉴스앤조이 신철민
그룬트비는 19세기 활동했던 사람이며, 덴마크의 괴테라고 불린다. 덴마크 사회 모든 곳에 영향을 끼쳐 지금의 덴마크를 일으켜 세운 사람이다. 그룬트비의 사상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 톨스토이, 간디를 거쳐 마틴 루터 킹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함석헌, 김교신, 이찬갑 등이 영향을 받았다. 즉 우리 나라의 선구자적 교육 사상이 그룬트비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정신적 흐름의 연결선 위에 풀무학교가 세워졌다. 풀무학교는 40년 동안 세상의 관심 밖에 있다가 90년 이후 조금씩 알려졌다. 그나마 아는 사람들도 '시골에 있는 대안학교' 정도로 알고 있다. 하지만 풀무학교는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풀무학교의 교육은 세계적 수준이다.

풀무학교에서 사용하는 국어책에 이런 문제가 나온다. '전쟁 원인이 되는 사회적 긴장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글쓴이는 비폭력 실행의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 현 교육은 논술시험 성적을 매기기 위해 이런 문제에 대한 자기 표현을 평가한다. 하지만 풀무학교는 그렇지 않았다. 풀무학교는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논술을 수단으로 삼는다. 엄청난 저력을 가진 학교다.

'그 나라의 역사와 말'이 아니고는 그 민족을 깨칠 수 없다는 그룬트비의 가르침으로 풀무학교를 만든 이찬갑과 주옥로. 이들이 추구했던 가치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예수를 본 받아 묵묵히 이 세상 짐을 지고 갈 일꾼, 참된 평민을 키워내는 일이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이승훈, 이찬갑 등이 건설하고자 했던 이상촌의 맥박에서부터 지금 시대의 위대한 평민을 기르는 일 까지, 1백년을 이어온 자아 혁신의 이상이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것이 대안교육이며 이 사회를 위한 대안이다. 하지만 규모의 경제학이 위세를 떨치고, 온갖 '화려한' 교육이론과 교육 방법론이 교육현장을 휘두르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저력이 40년 가까이 단절되었다. 그러나 풀무학교는 저 외딴 시골구석에서 반세기동안 서야 할 자리를 조용하고 묵묵하게 지키며 끊어진 우리 교육의 맥을 그룬트비를 통해 찾으려 하고 있다.

이제 우리 정신적 원류를 찾아야 한다. 전통으로부터 이어져 왔어야 할 교육의 맥을 지금 다시 이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덴마크를, 그 중에서도 그룬트비를 주목하는 이유다.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Posted by Sejin at May 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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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덴마크’ 건설 꿈꾼 류달영 2015

‘동양의 덴마크’ 건설 꿈꾼 류달영

‘동양의 덴마크’ 건설 꿈꾼 류달영
김건우 대전대 교수·국문학
입력 2015-11-18

[주간동아 1013호/광복 70년 특별기획 | 대한민국 설계자들 ⑫]
김교신 영향으로 농촌계몽 참여…5·16 군정기 재건국민운동본부 이끌어
1962년 6월 3일 경기 김포에서 모내기를 하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오른쪽)과 최고위원들. 5·16 군사정부 시절 시작된 재건국민운동은 이후 새마을운동의 주요 모델이 됐다.
류달영은 김교신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했다. 함남 흥남 공장에서 김교신과 한방을 쓰며 생활하던 터였지만, 1945년 4월 잠시 개성으로 나왔다 맹장이 터져 급작스럽게 수술을 받느라 스승의 와병도 모르고 있었다. 4월 25일, 김교신 선생이 별세했다는 전보를 받았을 때를 류달영은 이렇게 기억했다. “천지가 캄캄하였다.”

류달영이 보여줬던 김교신에 대한 전적인 존경과 신뢰는 유명하다. 후일 그는 “오늘의 나의 인생관과 세계관은 모두 김교신 스승과의 만남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했다(류달영의 ‘소중한 만남’). 류달영이 김교신을 만난 것은 18세가 되던 1928년, 서울 양정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면서였다. 이 해는 김교신도 양정고보에서 교편을 잡은 첫해였고, 이후 류달영이 졸업할 때까지 5년간 담임을 김교신이 맡았다. 당시 양정고보는 한번 신입 1년생을 담임하게 되면 졸업까지 5년간 맡는 구조였다.

류달영은 양정고보 졸업 후 수원고등농림학교(3년제, 서울대 농대 전신)에 재학하던 시절에도 김교신의 주일 성서모임에 출석했고, 수원고농을 졸업하고 개성 호수돈여고보(4년제, 미국 감리교 계통 학교) 교사로 있을 때도 근처 송도고보로 옮겨온 김교신과 일상을 같이했다. 1942년 ‘성서조선’ 사건이 터진 것은 두 사람이 함께 개성에 있을 때였다. 류달영에게 김교신이라는 존재가 지닌 절대성을 생각해보면 류달영이 김교신, 함석헌 등과 같이 가장 오랜 기간 감옥에 있었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성서조선 그룹에 합류



평생을 농촌운동에 바친 류달영 전 서울대 교수(1911~2004)는 5·16 군사정부가 주도한 재건국민운동본부장을 맡았으나 본부가 해체되자 1964년 사단법인 재건국민운동중앙회를 결성해 민간 차원에서 운동을 계속했다.
훗날 ‘농민의 대부’로 추앙받는 류달영이 처음 농촌운동의 꿈을 갖게 된 것은 양정고보 학생 시절이었다. 1931년 여름, 양정고보 4학년이던 류달영은 ‘동아일보’의 ‘브나로드운동’에 참여하면서 “일평생 농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결심”을 세웠다고 한다. 졸업 후 세브란스의학전문으로 보내려는 주변의 움직임을 물리치고, 조선 유일의 농학 고등교육기관인 수원고농에 입학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기본적으로 식민지 조선의 무교회주의자들은 일제강점기 여타 우파 민족운동 진영과 마찬가지로 청년교육과 농촌계몽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류달영이 수원고농을 졸업하고 간 곳은 개성 호수돈여고보 박물(식물·동물·광물) 교사 자리였다. 수원고농 졸업 즈음 김교신의 권유가 있었다. ‘성서조선’ 창간 동인의 한 사람인 양인성이 호수돈여고보를 떠나면서 후임 추천을 함석헌에게 부탁했는데, 그 자리를 김교신이 류달영에게 권한 것이었다.

류달영이 호수돈여고보 교사로 있던 1939년, 최용신 전기를 쓰게 된 것도 무교회주의자들이 갖고 있던 농촌운동에 대한 관심의 발로였다. 류달영의 ‘최용신 소전(小傳)’은, 심훈의 유명 소설 ‘상록수’ 속 주인공 ‘채영신’의 실존 모델인 여성 농촌운동가 최용신(1909~35)의 희생적 삶에 대한 논픽션 기록물이다. 당시 이미 출간돼 있던 심훈의 ‘상록수’가 실제 최용신의 삶에 대해 왜곡이 심하다고 판단한 성서조선 그룹이 최용신의 생애를 정확히 기록해 장차 농촌운동의 모본으로 남기고자 책을 낸 것이었다. 류달영이 집필자로 결정된 것은, 그가 최용신이 활동하던 시흥군 샘골(지금의 경기 안산)과 가까운 수원고농 출신인 데다 수원고농의 조선인학생회 일로 생전의 최용신과 몇 차례 만난 바 있었던 까닭이다. 류달영은 여름방학을 이용해 집필을 마쳤고, 책 서문은 김교신이 썼다. 출판 비용은 김교신, 류영모, 함석헌 등이 거출해 마련했는데 출간 1년 만에 4쇄가 나갔다.


이미 양정고보 시절 농촌운동에 평생을 투신하기로 결심한 류달영이 구체적인 농촌개발 모델을 그리게 된 것은 수원고농에 입학해서였다고 한다. 우치무라 간조가 농업국가 덴마크의 부흥담을 일본에 처음 소개한 소책자 ‘덴마크 이야기’를 김교신이 여러 권 소지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권을 류달영에게 준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훗날 류달영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33년 수원고등농림 재학 시절 일본의 우치무라 간조의 ‘덴마크 이야기’라는 수첩 크기의 작은 책을 읽고 나라 없이 살던 그 시절에 나는 국가관을 확립했다. 내가 일생 동안 할 일은 민족의 광복을 위하여 이바지하는 일이며 조선을 동양의 덴마크로 만드는 일이었다.”(류달영의 ‘소중한 만남’)

해방 후 서울대 농대 교수가 된 류달영은 전쟁 와중인 1952년 피난지 대구에서 몇 년째 구상하던 책 한 권을 출간했다. ‘새 역사를 위하여 : 덴마크의 교육과 협동조합’이었다. 이 책은 몇 년 만에 26쇄를 찍을 정도로 대중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33년 김교신이 양정고등보통학교 교사 시절 제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앞줄 왼쪽이 류달영, 가운데가 김교신이다.


1961년 6월 12일 열린 재건국민운동 촉진대회.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으로 이 대회에 참가한 박정희 전 대통령(앉은 이 가운데 오른쪽 맨 끝)의 모습도 보인다(왼쪽). 심훈 소설 ‘상록수’의 모델인 농촌운동가 최용신(가운데). 왼쪽은 독립운동가 황애덕, 오른쪽은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김활란이다. 류달영은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 시절 농촌운동에 대한 기록의 하나로 ‘최용신 소전(小傳)’을 썼다.
새마을운동의 모델이 된 재건국민운동


1931년 7월 24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브나로드운동’ 제1회 참가자 모집 사고. 브나로드운동은 약 10만 명의 문맹자를 교육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이 책이 1961년 쿠데타 직후 군사정부가 만든 ‘재건국민운동본부’의 본부장을 류달영이 맡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가 여러 차례 직접 류달영을 만나 본부장직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박정희 의장은 “덴마크 연구에 조예가 깊은 류 선생을 재건국민운동의 본부장으로 위촉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류달영은 재건국민운동 일에 박 의장이 간섭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본부장직을 수락했다.

5·16 군사정부(군정) 시기 재건국민운동은 사실상 류달영이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1961년 6월 출범 당시 초대 본부장은 유진오였지만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고 2개월여 만에 사임했다. 류달영은 그해 9월부터 일을 맡아 새롭게 중앙위원회를 구성하고 플랜을 만들어 실행했다. 1년 8개월을 재직하고 63년 5월 사임하면서 류달영은 후임 본부장으로 이관구를 추천했고, 3대 본부장 이관구도 류달영의 운동 방향을 이어나갔다.

재건국민운동본부장으로 취임한 류달영은 곧 덴마크 모델에 따라 국민운동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착수했다. 이 시절을 류달영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는 한결같은 이상인 동양의 덴마크를 이 국토에 건설해보겠다는 정열로 불타고 있었다. 나의 숙소에는 1956년 덴마크에서 사가지고 온 대형의 그룬트비(덴마크 지도자) 사진을 걸어놓고 출근 전에 한 번씩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집을 나섰다.”(류달영의 ‘소중한 만남’)

류달영의 재건국민운동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됐을까. 류달영은 사업 부문을 크게 국민교육, 향토개발, 생활혁신, 사회협동 넷으로 나눴다. ‘국민교육’은 덴마크 모델에 따라 ‘농민교육’에 주안점을 둔 것으로 중앙과 도지부, 시·군지부의 3개 각급에 교육원을 두고 농촌 지도자를 양성하고자 했다. ‘향토개발’은 농로·수로 개설과 농지 개간 사업으로, ‘생활혁신’은 주택과 식생활 등 생활환경 개선 지도로, ‘사회협동’은 도농 자매결연과 결식아동 급식, 학생봉사대 조직으로 전개했다.

운동은 추진력 있게 이뤄졌으며, 취임 1년 만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던 것으로 보인다.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중앙교육원과 시도지부교육원에서 각각 7000여 명과 6만4000여 명의 농촌운동 지도자를 교육했고 마을 청년회관 약 7000동, 농로 5만4000여km, 수로 3300여km를 개설했다. 부엌, 변소 등 생활환경 개선과 농촌 결식아동 급식을 실시하는 것은 물론, 41만여 명의 농어촌학생봉사대를 조직했다.


성천 류달영의 생애를 기록한 ‘나라사랑’(성천문화재단, 2006).


정부 문서상 기록으로 실제와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여러 사정을 감안했을 때 의미 있는 결과였다. 이 사업들은 모두 새마을운동에 앞선 것으로 학계의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나, 재건국민운동이 후일 새마을운동의 주요 모델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은 분명하다.

류달영의 구상은 끝내 좌초하고 말았다. 류달영은 재건국민운동본부장으로서 자신의 계획에 따라 국민운동을 전개해나가고자 했지만 내부에서조차 국가주의자들과 갈등이 있었다. 결국 군정 세력이 선거를 통해 ‘민간’ 정권으로 옷을 갈아입은 직후인 1964년 2월, 재건국민운동법이 폐기되고 본부도 해체됐다. 결과적으로 정권에 이용당한 모습이 되자 류달영은 격분했다. 오랜 무교회주의 동지이자 ‘스승의 벗’인 함석헌이 정권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을 즈음, 류달영은 ‘동아일보’ 65년 5월 15일자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

국가동원체제에 대한 혐오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 시절 류달영(왼쪽)과 김교신.


“5·16군사혁명은 실패한 혁명으로 이 나라의 하나의 비극으로 종말지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국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짓밟는 군정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 존재하였고, 또 그것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중략) 군정이 가장 좋은 성과를 거두는 일이 있더라도 이것이 결코 우리 역사의 자랑이 될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단 한 가지 혁명만이 용납될 수 있다. 그것은 민중 자신의 자아혁신을 바탕으로 하는 이른바 고요한 국민의 혁명이라고 할 것이다.”(류달영의 ‘비극의 5·16이 준 이 나라 역사의 교훈’)

근본적으로 우치무라 간조 이후 무교회주의자의 사상은 국가주의와는 상극에 놓인 것이었다. 류달영은 국가적 단위에서 ‘민간운동’을 전개해보려 했지만, 재건국민운동은 관제운동의 성격을 완전히 탈피하기 어려웠고 의도했던 목표도 완성하지 못했다. 재건국민운동본부가 해체되고 나서 류달영은 사단법인 재건국민운동중앙회를 결성해 민간운동을 계속해나가고자 했다. 민간의 자발적인 자기개조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류달영은 훗날 사람들이 자신이 이끌던 군정기 재건국민운동을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연관 짓는 것을 싫어했다. 류달영은 이렇게 말했다.

“재건국민운동을 새마을운동의 전신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 둘은 운동의 정신과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새마을운동은 대통령이 선두에 서서 정부 각료와 각 시도 공무원들이 총동원해서 국민을 끌고 간 백 퍼센트 관 운동이었다.”(‘국회보’ 1997. 10.)

이런 생각은, 국가동원체제를 혐오하는 무교회주의 계보에 류달영이 서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지만 류달영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전개에 실질적인 힘을 보탰다.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원장이 된 김준 등 자신이 재건국민운동본부장을 맡고 있던 시기 운동에 참여케 했던 서울대 농대 제자 가운데 많은 수가 이후 새마을운동의 주요 간부가 됐던 이유도 있었다. 류달영은 이런 방식으로라도 농민이 잘살게 된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류달영은 정치 진영과 무관한 자리에서 오로지 한국 농촌과 농민만 생각했다. 82년 국정자문위원회에 참석했을 때 농촌경제를 파탄 낸 “원흉들의 집단이 바로 경제기획원”이라며 정부를 맹비난하기도 했다.

류달영이 국가정책에 참여함으로써 이룬 성과는 크다. 대한민국 사회에 류달영이 기여한 것은 농촌사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평생교육’ 개념은, 1980년 헌법개정심의위원으로 참여한 류달영이 ‘평생교육’ 조항을 헌법으로 제정케 함으로써 대중화된 것이다. 이때도 류달영은 덴마크 교육모델을 참조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이룬 결과들은 적어도 스승 김교신과 무교회주의자들이 구상하던 사회의 모습은 아니었다.

김건우 대전대 교수·국문학 kwms00@chol.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5.11.18.~11.24|1013호 에 실린 기사입니다.>
#류달영#대한민국 설계자들#재건국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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