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05

류시화 “덜 움츠리고 덜 비난하고 더 많이 예찬하라” | YES24 문화웹진 채널예스

류시화 “덜 움츠리고 덜 비난하고 더 많이 예찬하라” | YES24 문화웹진 채널예스



류시화 “덜 움츠리고 덜 비난하고 더 많이 예찬하라”
<월간 채널예스> 4월호 커버 스토리
『새는 날아보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펴내
류시화는 “다만 길 위에서 당신과 함께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학의 길을 걷겠다고 노숙자가 되자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시를 쓰고 책을 읽
느라 학교는 낙제했다. 국문학을 공부하고 국어 교사가 되는 행운을 얻었으나 포기하고 잡
지사에 들어간다. 하지만 반년이 안 돼 퇴사했다. 이후 클래식 음악카페를 열었지만 석 달
만에 문을 닫았다. 출판사에 취직했다가, 바바 하리 다스의 『성자가 된 청소부』 원서를 읽
고 그 책을 번역하겠다는 일념으로 회사에 사표를 냈다. 이후 뉴욕으로 떠났다가 인도의 명
상 센터에 머물다가 서귀포에서 두 해를 살다 또 서울로 왔다. 지금도 한 해에 서너 번 인도
를 여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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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는 자신의 삶을 두고 “방황한다고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인간은 ‘호모 비
아토르Homo Viator’ 즉 떠도는 사람, 길 위의 사람이다. 봄이 자꾸 머뭇거리던 3월의 한
낮. 류시화 시인과 마주했다. 그는 선택을 앞둔 순간 ‘이 길에 마음이 담겨 있는가?’를 생각
한다고 했다. 불확실한 시대에 한 권의 책을 쓰고 남기는 일.



류시화는 “다만 길 위에서 당
신과 함께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내게 독자란, 글을 나눠 읽는 동지
20년 만에 펴낸 에세이다. 30대 초반에 쓴 산문집은 바로 절판을 시켰다.
내가 깊이 경험하지 않은 것,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해 문
학적 수사를 동원해 글을 썼다는 자책감이 컸다. 이후 ‘나 자신이
경험한 것만을 쓰자’
고 결심했다. 경희대학교 국문학과에 문예장
학생으로 입학해 산문을 몇 편 썼는데, 당시 우리를 가르치시던 소
설가 황순원 교수께서 이런 말씀을 했다. “시는 젊어서 쓰는 것이
고, 산문은 나이 들어서 쓰는 것이다.” 시는 고뇌를, 산문은 인생을
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이제 산문을 쓸 만큼 나이가 들었다. 하
지만 더 나이가 들어 ‘경전’을 쓰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언제
까지나 그저 시인이고 떠돌이 여행자일 뿐이다.
평소 인터뷰를 안 하기로 유명하다. 독자들을 따로 만나는 행사도 하지 않았다.
강연과 인터뷰는 거의 사절해 왔다.




거절하는 것이 곤혹스러울 때도 있지만, 나는 글 쓰는
사람이지 말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그렇다. 지금 이 인터뷰도 여러 차례 거절했지만, 출판
시장이 불황이기 때문에 도와줘야 한다는 요청에 등 떠밀려 하게 됐다.



이집트 사막에서 수
행하던 초기 기독교 교부 중 한 명은 사람들이 찾아올수록 더 깊은 사막으로 달아났다. 세
상에 나와서 좋은 말씀을 해달라는 사람들의 요청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추하고 보
잘것없기 때문에 세상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 것이다. 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나의 덕행
때문이 아니라 나의 약점 때문이다.” 나도 그렇다
. 내 글이 세상에서 읽히는 것만으로도 두
려울 때가 있다.
시인으로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독자의 관심은 당신에게 어
떤 의미인가.



나는 작가이지만 ‘독자’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낀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우리는 그 저자
와 끈끈한 동맹 관계에 돌입한다. 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책은 실패한 것이다. 내게 독
자란, ‘글을 나눠 읽는 동지’다. 시집과 번역서를 세상에 내놓을 때 나는 같은 공간대와 시간
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적어도 천 명은 내 생각과 느낌에 공감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다. 사랑은 곧 그 공감에서 출발한다. 알베르 카뮈는 “빗속에서 담배를 나눠 피울 때 우리는
동지애를 느낀다”라고 썼지만, 나는 내 글을 읽는 사람을 만날 때 같은 인간 존재로서의 동
지애를 느낀다. 위대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여행을 하다가 칠레의 탄광에 들른 적이 있
다. 그때 갱도에서 일하던 얼굴이 새까매진 광부가 다가와 네루다를 와락 껴안으며 외친다.
“당신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런 동지가 있을 때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굳건해
진다.
이 산문집은 골방에서 쓴 글이 아니다. 따라서 거리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행자로서 만난 사람들이 당신에게는 스승이 아닐까 싶다.
러시아 출신의 게오르기 구르지예프는 20세기 유럽인들의 의식 변화에 큰 영향을 준 신비
가이며 영적 스승이다. 그는 서양 문화권이 명상 교사나 스승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
도록 토대를 닦았다. 심오한 사상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가 미스터리였는데, 훗날 어떤 이
가 그를 가르친 스승들을 추적해 책을 썼다. 놀랍게도 그의 스승들은 구두 수선공, 향수 판
매상, 마을의 숨어 사는 노인 등이었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낯선 여인, 혹은 처음 보는 아이
와 눈이 마주친다. 그럴 때 우리는 언어가 달라도 삶에서 똑같은 경이와 슬픔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똑같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도 무너지거나 절망한 적이 많다. 그럴 때 나를 일으켜 세워 준 사람들, 내가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가리켜 보인 이들 모두가 나의 스승이다.
“인생은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다”라고 했다.



주체적인 인생을 살라는 뜻인가?



 “우리는 우리가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행이 우리를 만들어 나간다”는 말에 동의한
다. “나는 계속 길을 감으로써 가야 할 곳을 발견한다”라는 말도 내가 좋아하는 글귀다. “우
리는 새로운 세상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기
위해 떠나는 것
”이라는 명언도 있다. 자신의 편견과 판단 기준을 들고 여행하는 사람은 전
보다 더 폐쇄적이 되어 돌아온다.
인도 여행 중에 힌디어를 배울 때, 어떤 새로운 단어를 알
고 나면 그 단어가 일상 대화에서 자주 들린다. 없었던 단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
은 늘 거기에 있었지만 내 귀가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매일 힌디어 단어들
을 새롭게 알듯이 여행은 세상에 대한 이해의 원, 인식의 원, 정신의 원을 넓히는 일이다.



근작이 2015년에 출간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이다. 시를 더 많이 발
표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나?



나뿐만 아니라 모든 시인은 한 가지 딜레마에 빠진다. 시를 쓰면서 동시에 내가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다. 이것은 다른 직업군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민이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더 많은 물건을 만들기를 원할 것이고, 집 짓는 사람은 더
많은 집을 지으려고 할 거다. 그러나 유독 이 괴팍하기로 소문난 시인은 밤을 새워 시를 쓰
고서도 스스로 단어와 행들을 줄이고, 마침내는 폐기해 버린다. 에밀리 디킨슨이 평생 시만
쓰고 1,770여 편의 시를 썼으면서도 작품을 거의 발표하지 않았던 것도 단순히 그녀의 개
인주의적이고 비사교적인 성격 탓만이 아니라 그런 결벽증에 기인한 것이라고 나는 해석
한다. 내가 제3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을 낸 것이 5년 전인데, 그 시들도
350여 편의 미발표시 중에서 고른 것이다.
평소 시를 종이에 쓰지 않고, 입속에서 수없이 중얼거리면서 외워 쓴다.



메모는 전혀 하지
않나?



메모를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계속 소리 내어 암송하면서 시를 쓴다. 인도의 기차 안에 서
는 이 방법이 매우 용이하고 효과적이다. 뜻 모를 말을 계속 중얼거리는 나를 머리가 이상
한 자나 만트라를 외는 명상 수행자로 여기기 때문에 나도 사람들을 경계할 필요가 없다.



최근에 암송해서 쓴 시가 있나?



‘선운사 동백’이라는 제목의 시다.
당신과 나
그 사이에
아무도 없었던 적이 있었다
이 붉은 동백만이
모든 꽃은 다음에 피는 꽃에
지는 법
지금은
바닥에 떨어진 심장처럼
붉은 이 동백만이
당신과 나
그 사이에
구호와 선동이 난무하는 시대,
시가 더 많이 필요하다



당신에게 문학은 어떤 의미를 갖나?



문학은 ‘은유’다. 은유로 말하는 것이 시이며 문학이다. 은유는 그 안에 많은 층을 지니고 있
다. 그래서 해석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그것이 문학의 은유가 주는 울림과 깊이다. 직설
적인 표현과 구호가 지배하는 사회는 획일적이고 공격적이며 깊이가 얕다. 은유가 사라진
사회는 비극이다. 사람들이 은유를 이해할 인내와 상상력을 잃어버릴 때, 그들이 선호하고
열광하는 지도자들은 대개 직설적인 구호를 남발하고 돌직구를 날리는 선동꾼이다. 작가
와 시인들은 여기에 동참하지 말아야 한다. 은유는 풀꽃이고, 강의 물결이고, 철쭉의 붉음
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 세계와 영혼의 세계도 은유로 가득 차 있다. 인도 시인 K. 사치다
난단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당신의 시선은 돌/ 그것이 유리처럼 나를 깨뜨린다’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예술인은 블랙리스트, 즉 위험인물 명단에 오른다. 이는 가장
힘없는 자가 예술인이면서 가장 강한 자가 예술인이라는 증거다. 말 그대로 ‘동태가 수상한
자’가 곧 예술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세상을 수상하게 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가치
관, 진행 방식 등을 째려보는 거다. 어느 정권에서든 편애를 받는 예술인은 예술인이기를
포기하고 기생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예술인이 가장 멀리해야 하는 집단이 정치인, 권력
자들이다
. 도스토옙스키의 일화가 있다.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혁명 운동에 가담한 혐의
로 체포되어 총살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다른 사형수들과 함께 사형 집행장으로 끌려간다.
죄수들이 말뚝에 묶이고 방아쇠가 당겨지려는 순간, 한 병사가 “중지!”를 외치며 달려온다.
황제의 특별 감형이 내려진 거다. 그렇게 해서 죽음 직전에 갑자기 자유인이 된다. 같이 밧
줄에 묶여 있던 친구 하나는 이 일을 겪고 나서 정신이상자가 돼 버리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죽음의 순간에 갑자기 살아난 그 순간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는 남은 생을 문학에 바쳐 ‘이
미 죽은 사람들이 깨달은 것’을 표현하겠노라고 다짐한다. “과거를 되돌아보며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가 생각했다. 삶은 하나의 선물이다.” 그 결심으로 도스토옙스키
는 『죽음의 집의 기록』
『지하 생활자의 수기』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죄와 벌』 등 불후의
명작들을 탄생시켰다.
“타인이 생각하는 나는 내가 아닐 때가 많다”고 했다. 자신을 잘 아는 것만큼 인생에 큰 도
움이 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잘 알 수 있을까?



영화로도 만들어진 미국의 소설가 톰 로빈스의 소설 『카우걸 블루스Even Cowgirls Get
the Blues』의 주인공 씨씨는 기형적으로 커다란 엄지손가락을 가지고 태어난다. 주위에서
손가락을 수술하라고 권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기형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타인들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자기 자신이라고 여긴다. 또한 세상 사람들
이 사물을 보는 방식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에 저항한다. 거울 앞에 선 그녀는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성형수술을 받으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거부한
다. 그리고 어느 날 실룩거리는 자신의 커다란 엄지손가락을 보다가 남다른 재능을 발견한
다. 즉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히치하이커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거대한 크기 덕분에 그
녀가 엄지손가락을 세우기만 하면 4차선 반대편의 차들도 멈춰선다. 그래서 그녀는 미국
전역을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하며 새로운 삶을 발견해 나간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세상이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자기 자신으로 착각하지 않는’ 일이다. 또한 세상이 자신에게 부
여한 역할이나 기능을 자기 자신이라고 오해하지 않는 일이다. 큰 엄지손가락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따라서 숨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세상은 결코 말해 주지 않는다. 여기서 비극
이 시작된다. 자신의 불완전한 부분을 숨겨야만 완전하게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
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50여 권의 명상 서적을 번역했다.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서 번역한 책이 아니라
직접 선택한 책들이다.
내가 공부하면서 읽은 책 중에서 나 자신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고 마음에 울림을 주는
책을 선정해 번역했다. 나는 의뢰를 받아 책을 번역할 만큼 외국어 실력이 뛰어나지 못하
다. 지금도 책 한 권을 번역하려면 수없이 단어를 찾아야 하고, 장발 머리를 쥐어뜯는다.

상의 모든 번역가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그래서 저자를 비롯해 세상의 모든 번역가들이
내 옆에 앉아서 나에게 조언을 해 준다고 상상하면서 작업한다. 그런 상상이 원활히 이루어
질 때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 오로지 나의 힘만으로 번역한다고 생각했다면 작업이 불가능
했을 거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때 나는 나 이전에 그 길을 여행한 모든 존재가 내 옆에서
나와 함께 걷고 있다고 상상한다. 마음을 열고 그들의 안내에 따르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두려움과 고난이 사라지고 길이 열린다. 그때 나는 더 강하고 세상과 더 연결된다. 혼자라
고 여기고, 거부하고 단절할 때 우리는 허약해진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의 표지는 20년 가까이 함께한 디자이너 ‘행복한 물
고기’가 맡았다.
본문 편집 역시 15년 넘게 내 창작집과 번역서를 담당해 온 편집자가 맡아주었다. 그들의
올바른 판단과 헌신적인 노동으로 완성된 책이다. 나는 오래된 인연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좋다. 많은 것이 변해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표지화는 내 부
탁을 두말없이 들어주는 일본 판화가 호사카 유코의 작품이다. 나 역시도 젊은 시절에는 독
립적이고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했는데, 결국 깨닫게 된 것은 어느 누구도 이 세상의 상호의
존과 연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성장을 가로막는 것은 자기 중심성이다. 우리는
서로가 있어야만 온전해질 수 있다.
최근 ‘엮은 시집’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1998년에 펴낸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
라면』이 시초가 됐는데, 몇 차례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했던 책으로 알고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은 내가 읽은 명상 관련 서적들에서 발견한 시들을
10여 년에 걸쳐 모은 책이다. 처음 이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을 때 반응은 “시를 읽는 독자
는 거의 없다” “유명한 시인들보다 무명 시인들의 시가 더 많기 때문에 상품성이 부족하다”
등이었다. 그러다 대학교 후배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겨우 내게 되었는데 1백만 부가 넘게
책이 판매됐다. 이 시집의 성공 이후 많은 엮은 시집이 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형태
로든 시를 소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구호와 선동이 난무하는 시대에는 시가 더 많이 필
요하다.
예찬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이 가장 가난한 사람
여행 중에는 책을 들고 가지 않는다고 들었다. 대신 여행지에서는 책방을 들른다고.
어느 도시에 가든 먼저 그곳의 책방을 들르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특색 있는 책방과
책방 주인을 만나면 그 도시에 대한 인상도 당연히 좋아진다. 인도 델리의 옥스포드 서점이
나 북웜(책벌레) 서점, 바라나시의 아시가트에 있는 서점들, 네팔 카트만두의 필그림 서점
등을 좋아한다. 이런 독특한 서점에서 책을 뒤적이며 하루 이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내 여
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이다
. 올해 1월, 델리 칸마켓의 서점에서 발견한 심리치료사 토
머스 무어의 대표작 『영혼의 돌봄Care of the Soul』은 여행 내내 좋은 독서가 됐다.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나?



어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와 심하게 다투고 나서 경솔하게 여자를 비난하고 결별하는 편
지를 쓴다. 편지가 도착하기 전에 그는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편지를 읽지 말라고 말한
다. 여자는 편지를 받고 나서 바로 찢어 버린다. 그리고 호기심을 느껴 휴지통에 버린 편지
조각들을 보니까 남자가 적은 글씨와 단어들이 보인다. 하지만 여자는 유혹을 이기고 휴지
통을 비워버렸고, 두 사람은 다시 예전의 사랑하는 관계로 돌아온다. ‘영혼의 돌봄’을 선택
한 거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책은 때로는 외롭기도 한 여행의 좋은 동행이 되어 준
다. 여행 중의 독서는 그 저자와 함께 다닌다는 상상을 불러일으켜서 좋다. 국내여행도 마
찬가지다.



지금 어떤 시집을 읽고 있나?



19세기 우르두 시인 미르자 갈리브의 시집들을 읽고 있다. 무굴 왕조의 마지막 시인이기도
한 그는 산문가로도 명성을 떨쳤다. 그가 쓴 가잘Ghazal, 즉 2행시가 계속 연결된 형식의
시들은 오늘날에도 인도와 아랍의 많은 전통 음악 가수들에 의해 불리고 있다. 갈리브는 종
교의 형식 안에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과 내면에서 신을 발견하라는 것을 노래한 시인
이다. 언젠가는 갈리브의 시들을 번역해 보려고 한다. ‘내 손금을 보려고 하지 말라/ 손이
없는 자에게도 행운이 찾아오리니’
번역가로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 년에 적어도 한 권은 번역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이번 생에 내게 주어진 사명이
라고 여긴다. 성경의 『시편』과 『아가서』를 번역하고 싶고, 인도의 고대 사상서 『바가바드 기
타』를 번역하고 싶고, 소로우의 방대한 일기도 번역하고 싶다. 이 계획들을 10년 전, 아니
20년 전부터 해 오고 있지만, 매번 새로운 책들에 유혹당해 미루고 있다. 지금은 융 심리학
자이며 원형 이론 전문가인 캐럴 피어슨이 쓴 『The Hero Within』을 번역하는 중이다. 우
리 내면에는 고아, 방랑자, 전사, 이타주의자, 순수주의자, 마법사 등 6가지 심리적 원형들
이 있는데, 이 중 어떤 원형이 자신을 지배하고 어떤 원형이 억압되어 있는지 이해함으로써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다.
현실에 색을 입히는 법으로 ‘예찬’을 꼽았다. “덜 움츠리고 덜 비난하고 더 많이 예찬하
라”고 했다. 당신은 세월을 보내며, 예찬의 대상이 달라졌나? 또 덜 움츠리게 되었나? 당신
이 감동할 때는 어떤 순간인가?
우리는 나쁜 뉴스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쁜 뉴스’란 우리가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할 수도 없이 이미 일어나 버린 나쁜 일들을 의미한다. 세상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나쁜 뉴스가 계속해서 일어난다. 그 나쁜 뉴스들은 우리에게서 삶과 세상에 대한
‘예찬’ 능력을 앗아가 버린다. 사실 이것이 우리 자신에게는 훨씬 더 나쁜 뉴스다. 프랑스의
소설가이며 심미가인 미셸 투르니에는 산문집 『예찬』에서 ‘볼바시옹volvation’이라는 단어
를 소개한다. 이는 고슴도치가 조금만 위험이 닥쳐도 몸을 둥글게 움츠리는 현상을 의미한
다. 고슴도치식의 방어법이다. 인간 역시 세상을 향해 마음을 닫는 반사적인 행동에 길들여
진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에 대해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나쁜 뉴스가 아
니다. 어김없이 봄이 오고, 세상의 모든 곳에서 일출과 일몰의 릴레이가 이어지고, 파도가
쉼 없이 춤추는 한 우리는 수많은 예찬할 것들로 둘러싸여 있다. 예찬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이 가장 가난한 사람이다.
예찬과 행복은 비례할까?
여기 좋은 일화가 있다. 삶과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는 제자에게 어느 날 영
적 스승이 소금 한 줌을 물에 타서 마시게 한다. 그리고 묻는다. “맛이 어떤가?” 제자가 말
한다. “너무 짜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는 스승이 근처 호숫가로 제자를 데리고 가
서 호수에 소금 한 줌을 뿌리고는 호수의 물을 한 모금 마셔 보게 한다. 그리고 맛이 어떠냐
고 묻자, 제자가 말한다. “시원합니다.” 스승이 “소금 맛이 나느냐?”고 묻자 제자는 “안난
다”고 대답한다. 삶과 세상의 문제는 소금과도 같다. 소금의 양은 같지만, 우리가 얼마만 한
넓이의 마음으로 그것을 인식하는가에 따라 불평의 정도가 달라진다. 스승은 제자에게 조
언한다. “유리잔이 되지 말고 넓은 호수가 되라.”
아마 책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인터뷰를 읽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시를 읽으시길 바란다. 그것이 ‘영혼의 돌봄’이다. 우리의 눈은
활자를 읽어 내려가지만, 그때 우리의 영혼은 세상을 읽어 내려가고 풍요로워진다. 나는 우
리가 “영혼을 가진 육체가 아니라 육체를 가진 영혼”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인도의 라자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저 | 더숲
51편의 산문이 태피스트리를 직조해 가며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궁극적인 물음에 답하는 이 책은 오랫동
안 그의 신작을 기다려 온 독자들에게는 그가 20여
년 전에 발표했던 첫 산문집보다 더 첫 산문집인 것
처럼 신선하다. 그의 글들이 언제나 ‘지금, 살아 있다
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다
작하지 않는 작가이기에 그의 새 글을 읽는 마음이
탄 지역을 여행한 사람이라면, 낙타 사파리를 하면서 사막에서 텐트를 치고 하루나 이틀 자
본 적이 있다. 자정 너머 밖으로 나오면 별들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단단하게 못과 콘크리
트로 고정된 지붕, 단단히 동여맨 관념들에서 벗어나 내 눈동자 속에 활자로 흐르는 별들의
반짝임을 갖는 것이 독서다.
시인이기 전에 한 개인으로 바라는 것이 있나?
언제나 나답게 사는 것, 그것이 나의 계획이고 소망이다. 여행을 더 자주 하고, 더 열심히
글 쓰는 것.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일들보다 현재의 일에 더 집중하는 것.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루미의 시가 있다.



 ‘내가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는가/

내가 나를 소유하
는 순간은/

숨을 들이마시는 동안인가/

아니면 내쉬는 동안인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다음
은 무엇을 쓸지/

연필이 알고 있는 정도/

또는 다음에 어디로 갈지/

그 연필심이 짐작하는
정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문화정책 방향 모색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웹진 2017년 03월



처음 > 이달의 이슈1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문화정책 방향 모색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거세다. 2016년 다보스 포럼의 키워드로 부상한 이후 일 년이 갓 지났을 뿐이지만, 이미 전 세계의 주요 정부와 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상수로 받아들이면서 대응책 마련으로 분주한 모양새다. 우리 정부 역시 2월 중 4차 산업혁명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범정부 컨트롤타워로서 '4차 산업혁명 전략위원회'를 신설하고, 4월 중에는 '4차 산업혁명 대책'을 마련해 발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양질의 저서와 급조된 저서들이 뒤엉켜 서점의 신간코너를 가득 차지하고 있고, 시사 프로그램은 물론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자녀교육 관련 내용들이 그득하다.

이러한 급류 속에서 우리나라의 문화정책은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할까? 2017년 문체부 업무계획에도 '4차 산업혁명'은 하나의 주제어로 제시되어 있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아직까지 구체적인 정책적 대안이 가시화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식의 시류에 편승한 대책 마련은 정책적 조급증의 일환으로서 환영받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정책을 고민하는 입장에서, 국민적 관심이 지대한 사회적 현상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백안시하는 태도 역시 바람직한 것일 수는 없다. 오해와 곡해, 편취와 과장을 넘어 차분히 전체를 조망하며, 나름의 관점을 수립하고, 진중하게 대안을 준비하는 것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이 글은 문화부 차원에서 제4차 산업혁명을 처음으로 화두로 삼은 <2016 문화융성포럼>에서 이루어진 발제들과 이후 진행된 두 차례의 자문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위한 문화정책의 방향을 탐색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는다.

결론을 선취하자면, 제4차 산업혁명은 단순히 새롭고 강력한 기술의 출현이 아니라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도전을 제기하기 때문에 문화정책의 핵심적인 조건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널리 알려져 있는 평가적(evaluative) 정의와 기술적(descriptive) 정의를 종합하여, 문화를 '살되 좀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인간 공동체가 만들어낸 비(非)발생적인 행위의 총체'로 이해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인간'에 대한 대조군으로 '짐승'이 차지하던 자리를 '로봇'이 차지하게 되는 변곡점이 제4차 산업혁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4차 산업혁명의 역사적·개념적 위치를 포착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창조경제 vs 4차 산업혁명

2016년의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를 마주하면서, 2013년의 '창조경제'라는 화두를 떠올리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양자는 모두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야심찬 기획으로 제시되었으며, 사회 각 부문에 떠들썩한 논쟁거리를 가져다주었다.

가령 1998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창조산업/창조경제 정책이 제시되었을 때, 존 하틀리, 스튜어트 커닝햄, 테리 플류 등의 학자들은 신경제와 창조성을 바탕으로 21세기 문화정책과 산업정책의 융합이 추진된다며 열렬한 환영의 의사를 표시하였지만, 앤디 프랫, 토비 밀러, 니콜라스 간햄과 같은 학자들은 한 세기 넘게 지속되어온 조야한 기술결정론의 판본이자 부정확한 개념들로 이루어진 선동에 불과하다는 격렬한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1) 그나마 예술과 문화산업을 중심으로 한 13개의 산업영역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던 영국식 창조경제 정책에 대해서도 이처럼 찬반양론이 격렬하게 대립하였으니, 훨씬 더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제시된 한국식 창조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현 정부 내내 의심과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든 해외에서든 '4차 산업혁명' 담론에 대한 언론과 학계의 태도는 '창조경제'에 대한 그것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왜 일까?

서서히 그러나 어느덧, 우리 곁에 있는 4차 산업혁명

엇갈린 운명의 첫 번째 이유는 1차 산업혁명(수력과 증기기관)-2차 산업혁명(전기)-3차 산업혁명(전자기술과 IT)-4차 산업혁명(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이라는 사적(史的) 진화단계에 대한 서술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담론을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것은 다보스 포럼의 설립자인 클라우스 슈밥2)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이 관점은 2011년부터 스마트 팩토리를 목표로 진행된 독일정부의 '인더스트리 4.0'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독일기술과학아카데미의 헤닝 카거만 회장에게 직접적으로 빚을 지고 있다. 또한 인간의 육체적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고자 했던 제1의 기계시대(1, 2차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정신적 노동마저 기계로 대체하고자 하는 제2의 기계시대(3, 4차 산업혁명)가 열렸으며, 이러한 새로운 시대에는 '컴퓨터와 로봇으로 상징되는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가 된다는 MIT의 정보경제학자들(에릭 브린욜프슨&앤드루 맥아피)의 관점도 상당 부분 녹아들어있다. 이외에도 다보스 포럼이 자체적으로 진행한 다양한 설문조사와 보고서들이 존재한다. 즉, 거시적인 산업발전의 단계에 대한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연구와 성과를 바탕으로 담론적 포지셔닝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상당한 설득력을 노정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보다 중요한 이유는 4차 산업혁명의 엔진으로 제시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이미 (알파고나 자율주행차의 사례와 같이) 상당부분 상용화된 기술이라는 사실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이 ICT와 제조업의 융합에 초점을 맞춘 다소 작은 범위의 지능화와 자동화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면,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이 제조업은 물론이고 물리학과 생물학 같은 기초학문 분과와 융합되고, 개인의 취향이나 사회적 관계, 정치 체계 등 모든 사회 영역에도 스며들게 된다는 관점을 갖추고 있다. 사물인터넷, 블록체인기술, 3D프린팅, 첨단로봇공학, 합성생물학, VR/AR, 무인운송수단,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 등 현재 4차 산업혁명과 연계된 기술은 엄청난 사회적 관심과 자본 투자를 바탕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거대한 범위와 규모를 갖추고 엄청난 강도와 속도로 쏟아져 나오는 '증거'들이 4차 산업혁명 담론의 확산을 추동하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어디까지 보아야 제대로 보는 것일까?

4차 산업혁명의 범위와 규모, 강도와 속도가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은 4차 산업혁명의 실체를 규정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어렵게 만드는 수준을 넘어, 끊임없이 변화하며 융합하는 속성으로 인해 아예 불가능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문화정책을 고민하고 탐색하려는 우리의 관심에 비추어 볼 때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국면에 대해서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그림 1 4차 산업혁명의 다각적 국면들

앞서도 강조하였지만, 4차 산업혁명의 차별성을 담보하는 핵심기술로서 (1)인공지능과 빅데이터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까지 인공지능은 감독된 학습(supervised learning)을 통해서 작동하고 있는데, 이는 일종의 '극단적인 주입식 교육'의 방식, 즉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입력하여 기계가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 설계된 것이다. 물론 기계가 실행하는 알고리즘이 엄청나게 복잡해졌고 빨라졌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Volume, Velocity, Variety라는 3V를 추구하는 빅데이터 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러한 데이터에 대한 가치판단을 실행하는 인간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투입되지 않는다면, 기계의 지능화와 자동화의 '표상'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인공지능의 발전도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현재까지는 빅데이터의 수집과 분석이 어려운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의 적용이 제한적이다.

하지만 (2)웨어러블 인터넷과 유비쿼터스 컴퓨팅 등의 기술 발전으로 만물인터넷(Internet Of Every Thing) 실현이 가까워오면 올수록,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은 점차로 지구상에서 사라져갈 것이다. 이와 같은 초연결사회에서는 더 이상 소품종 대량생산은 이루어질 이유가 없으며, (3)실시간으로 취향을 만족시키는 온디맨드 경제를 넘어서 소비자 스스로 4D프린터 등을 활용한 자족적인 '메이커'의 라이프스타일 역시 빠르게 확산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4)비즈니스 기업들은 상품기획은 물론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있어서도 초개인화된 수요자들과의 협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며, 골드코프 광산이나 캐글의 사례 등을 통해서 이미 검증된 개방형 혁신 플랫폼을 중심으로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을 기술혁신이나 문제해결의 핵심적인 수단으로 삼게 될 것이다. 한편 이미 (5)게임분야를 중심으로 그래픽의 완성도나 어지럼증 등의 기술적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한 VR/AR 기술은 현실과 가상현실, 증강현실의 구분과 간섭, 혼합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세대와 함께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측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짐승과 기계 사이에 선 사이보그

이러한 다양한 변화들을 단순히 새로운 기술 도입의 파급효과 차원에서가 아니라, 인류 문화사의 흐름에서 새로운 도전의 출현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경작하다'라는 의미의 문화(culture) 개념이 처음 출현했을 때, 인류는 더 이상 있는 그대로의 자연(nature)과 뒤엉켜서는 안 되는 존재로 스스로를 규정하였다.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일반화된 이러한 개념은 문화정책이 추구하는 인간형을 짐승과 구분되는 '교양인'으로 제시하는 논법의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IOT 기술과 뇌파를 연결하여 생각만으로 자신의 취향을 관철하고자하는 극단적인 초연결사회의 초개인화된 시민-소비자(citizen-consumer)들에게 더 이상 근대적인 논법만으로는 소구할 수 없다. 이들은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모바일 혁명을 거치면서 이미 '자신의 신체와 정신의 일부를 기계화한 사이보그'가 되었으며, 4차 산업혁명은 유전자 편집 및 인공지능의 고도화를 통해서 인류의 사이보그화를 가속화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3)

짐승과 구분되는 교양인이라는 근대적 문화정책의 이념은 이제 로봇과 구분되는 사이보그를 위한 접근 방식을 새롭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 이르렀다. 4차 산업혁명이 촉진하는 초연결사회(존재론: 융합과 편재의 패러다임 속에서 사람, 사물, 기계가 뒤섞이는 가운데 인간은 존재의 위계질서를 어떻게 정리해야할 것인가?)와 혼합현실(인식론: 가상, 실상, 그리고 증강된 현실 속에서 인간은 참과 거짓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초개인화(미학: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자동적으로 만족시키는 인류의 감성적 인식과 심미적 판단은 과연 충분히 반성적일 수 있을까?)와 협업창작(윤리학: 개방/공유/참여라는 웹2.0의 금언이 이제는 개인과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정언명령으로 자리 잡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기만 한 것일까?)은 앞으로도 한참동안 우리가 곱씹어야할 주제들이 분명하다.

사이보그를 위한 문화정책 마련의 단초

'사이보그를 위한 문화정책'은 이러한 고민들을 통해 서서히 구체화되어 나가겠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몇 가지 지향점들을 통해 발견한 단초는 다음과 같다. 먼저, 인문정신 관련 정책의 역할이 중요하다. 단순히 전통에 머무르는 대신에 '기계와 다른 인간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데 미션을 집중해야한다. '호모 루덴스'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 요구되고 문화정체성 형성에 필수적인 서사들의 종류가 완전히 바뀌고 있는 시점에 과거보다는 미래에 시야를 고정한 정책 발굴이 필요하다. 문화예술교육 관련 정책 역시 귀추가 주목되는 분야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엄청난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것은 더 이상 창조적인 활동이 아니다. 즉, 기존의 창조성에 대한 이해와 정의가 상당 부분 맞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는 기계와 경쟁하는 대신에 기계를 활용하여/하되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사이보그적 창조성' 계발이 가치를 갖는다. 또한 혼합현실이 강화될수록 만질 수 있는 것(tangibility)에 대한 갈구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역문화 정책은 실질적인 참여와 체험을 중심으로 이러한 욕구를 공간 단위에서 해결하는 장을 활성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지역 사정에 정통하면서도 새로운 문화적 실험에 갈급한 문화기획자들의 역할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팹랩, 메이커 스페이스 등 생활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연결하는 공간들을 지역 단위의 문화예술기반시설에 조성하고 24시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같은 맥락에서 고민되어야 한다.

한편 창작지원 정책은 고립된 장르 또는 지역의 칸막이를 걷어내고 '협업창작' 기반의 수평적이고 점진적인 협력형 창작지원 모델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시점이다. 정부 주도의 사업관리플랫폼은 거의 성공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캐글이나 이노센티브 등의 사례처럼 수익창출 플랫폼과 연계하여 협업창작을 위한 새로운 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보다 시급한 것은 향유지원 정책이다. '딥드림'의 사례처럼4) 전혀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내는 창작이 아니라, 엄청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창작이나 일종의 조합적 창작은 supervised learning을 중핵으로 삼는 인공지능이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오히려 뛰어난 감식안을 가지고 세밀한 취향을 적용한 향유는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향유지원 정책이 단순히 저소득층 기회 확대로 가기 보다는 인간적인 감식안의 계발 및 기계와 구별되는 창조성 발전을 위한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콘텐츠산업 정책이 2000년대 초반의 현장감이나 기업가정신에서 다소간 멀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최근의 위기를 거울삼아, 4차 산업혁명의 주요한 계기들을 중심으로 지원체계를 개편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관료화된 장르 지원의 성과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처럼 새로운 정책지원의 영토를 탐색하는 전위의 역할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그림 2 구글의 인공지능 '딥드림'이 그려낸 다양한 회화작품

1) 정종은(2013),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문화정책논총』 제27집 1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슈밥, 2016)은 좋은 입문서가 분명하다. 같은 맥락을 견지하면서도 좀 더 풍성하고 다채로운 논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어서 『4차 산업혁명의 충격』 (슈밥 외, 2016)을 읽으면 된다.
3) 다보스포럼이 2015년 출간한 『거대한 변화-기술의 티핑 포인트와 사회적 영향』에 따르면, 2025년까지 상업화된 최초의 (인체)삽입형 모바일폰이 등장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81.7%의 전문가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4) 구글이 바둑계 평정을 위해 만든 인공지능이 '알파고'라면, 미술계를 위해 만든 인공지능이 '딥드림'이다.

본 웹진에 수록된 원고는 집필자 개인의 견해로, 발행처의 공식적인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Essay) Mary as Christian Goddess by Glenys Livingstone Ph.D. | Return to MAGO E*Magazine

(Essay) Mary as Christian Goddess by Glenys Livingstone Ph.D. | Return to MAGO E*Magazine



(Essay) Mary as Christian Goddess by Glenys Livingstone Ph.D.

This is an edited version of a radio program by the author in 1994, on 2BLU 89.1 FM, Blue Mountains, Australia, in the context of a series called “Remembering the Great M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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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rge Ouvrante (closed). plate 176, The Great Mother, Erich Neumann.
It could be said, and has been said, that Goddess has survived through the Christianization of many global cultures, as Mary. Geoffrey Ashe in his book The Virgin argues that the world’s nostalgia for a Mother Goddess created a place in theology for Mary, the mother of Jesus. He cites evidence that Mariology was a religion in its own right … the people offered bread in her name; as they had always done in the name of various Great Goddesses. According to Ashe, the Christian church of the fifth century integrated into itself the flourishing Mariology, thus taking the sting out of a rival religion and co-incidentally building itself up in a time of chaos and weakness. Mary, as mother, as womb, represented refuge in an age of peril and insecurity. It was well received by the people when the church proclaimed Mary as the Mother of God at 431 C.E. in Ephesus. Geoffrey Ashe argues that the struggling Christianity would not have survived that period without the swallowing of its “shadow religion”, which he says “filled the gap between earth and heaven, satisfied ancient needs, fulfilled ancient myths, which Jesus (on his own) could not.”[1] Marina Warner, in her book Alone of All Her Sex, also notes that veneration of Mary was encouraged at “times of stress and entrenchment”.[2]
Carl Jung got very excited about the acclamation of Mary as ‘Queen of Heaven’ when a pope officially named her so in an encyclical in 1950. Carl Jung saw it as the most important event since the Reformation, since he believed it represented a recognition of the Female in the “Godhead”; but perhaps he was overlooking the kind of woman who had been permitted this … one who was extolled for submission, modesty and humility, as Marina Warner advises.[3] Mary is understood (the patriarchs hope and decree) to answer to a Father-god … she is daughter-subject and his vessel: that is, power, awesomeness and centrality are only hers by privilege and miracle, not by nature. As Simone de Beauvoir notes: “For the first time in human history the mother kneels before the son”, … as servant, de Beauvoir says, “woman is entitled to the most splendid deification.”[4]
Yet in parts of Catholic tradition Mary changed from the gentle Lady to whom the faithful may turn for help into the unique being to whom they must turn to be sure of saving their souls: such was the inaccessibility of God the Father and the Son (such was the state of fatherhood). Mary as Mother had mercy beyond the Son’s justice … she came to embody mother-love, which was understood to be unconditional: she was the eternal “soft touch”. Whereas in Protestantism, where the image of a divine mother was rejected, where “an exclusively transcendent masculinity alone appears as the symbol of salvation”,[5] there is a harshness in the Divinity. The Protestant has to deal with a Father whose contracts are largely unbendable: at his worst the Deity presents as a terrible and fickle master who will have his pound of flesh, and at his best is still powerless before his own rules. However the problem for Mary, and for aspiring Marys, in Catholic theology, is that the female gets pushed into an eternal “Fiat”/Yes … her taps are never turned off. Mary became an impossible role model for women – a “good mother”, and “omnipotent woman who can do no wrong, whose knowledge, understanding, patience, and love magically overcome all problems large and small”,[6] the ‘Great Tit in the Sky’ who is an endless, eternally available and unreserved source of selfless ‘perfect’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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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vereign or servant?” Vierge Ouvrante (open), plate 177, The Great Mother, Erich Neumann.
The Great Mother as She survived in the Christian era, as Mary, has been an ambivalent image: is She sovereign or is She servant? The need to proclaim Mary as virgin came not from any integral understanding of the term but out of fear of tainting of the Son of God with sexuality, which was understood to be pronounced in the female: where once the Mother was virgin because of her autonomy, in Mary she is virgin because she is asexual. She was not regarded as other women, she was the exceptional woman … the one to attain the ideal of the female eunuch … with God’s help. Mary is honoured at the expense of all other women. Her virgin female body is celebrated as “sealed”, “pure”, a “closed gate”,[7] avoiding any horror fantasy of “avid womb (which seeks) … to achieve satisfaction and fecundation.”[8] Mary was set apart from any possibility of this. The average woman, for a long time, in both Catholic and Anglican traditions, still needing “churching” following childbirth: (that is, she was proclaimed to need isolation for 40 days until clean following birthing), and the infant born of her required sanctification by a male priest with holy water in the name of the Father-God.[9]
An aspect of Mary’s mothering that caused concern amongst the Fathers of the Church was whether or not Mary had breastfed Jesus. At one point Mary’s milk was seen as an emanation from heaven, similar to that of the ancient Mother, except that Mary was the nursing mother of penitents, visionaries and saints: and Sophia, the Judeo-Christian image of Wisdom, was said to have suckled the apostles Peter and Paul … her milk was regarded as “the nectar of the spiritual life, through which death meets its defeat.”[10] But by the 15th century, it had become immodest for Mary to bare her breast … lactation was seen as too human, indeed, part of the penalties of the Fall. Perhaps word of the sensual pleasures of breastfeeding had gotten out.[11] What this meant for Catholic women, was that they were prevailed upon to breastfeed, to submit to the biological destiny of the Fall. What it meant for Mary, who had been spared original sin, so she could be an uncontaminated vessel, was that she wouldn’t have indulged: this was “the end of the road of one of Christian mysticism’s more potent images.”[12]
It is possible to interpret the Assumption of Mary into heaven, received by her son, as a hieros gamos – a sacred marriage, for she sits then beside him, bride of the Christ her Son. Is this union of Mary and Jesus still in fact the union of the Mother Goddess and her Son/Lover, or is it a reversal of the situation? In the conscious mind of the faithful it is understood that the Christ gave her this equality, not allowing his unsullied mother to suffer the corruption of the grave; yet in the unconscious mind where symbols have a life of their own perhaps the image of Mary as Sovereign retains its ancient lineage and power, and Jesus is again the 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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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dess with Dead Son, Sardinia, 1600 B.C.E. Plate 147, The Great Mother, Erich Neu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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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mmaculate Conception, G.B. Tiepolo. p.83, Goddess: Mother of Living Nature, Adele Getty
And where once the Mother had a more apparent dark aspect, in Mary she is drowned in light: perhaps only in images such as the Pieta, where she is depicted holding her dead son, and in the Mater Dolorosa (Our Lady of Sorrows), does she come symbolically close to association with death as does the One of old. An image that typifies the Christian Goddess and that is most unlike the Great Mother, is the image of Mary standing with the snake crushed beneath her foot: the snake, sacred to Goddess as symbol of renewal, the life cycle, is now portrayed as representing death everlasting, with the Divine Mother triumphant over it. Despite this, if pushed to the point, perhaps the Fathers of the Church would admit that keeping Mary in service to them, has been like trying to hold a bubble of air in the bottom of a fish tank … its tendency is always to rise to the open air where it belongs, and so is her tendency. In the aspect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Mary is reverenced alone … the child does not appear with her … an unmistakable image of the Virgin Mother.
REFERENCES:
Ashe, Geoffrey. The Virgin: Mary’s Cult and the Re-emergence of the Goddess. NY: Arkana, 1988.
Daly, Mary. Beyond God the Father. Boston: Beacon Press, 1973.
De Beauvoir, Simone. The Second Sex. New York: Bantam, 1970.
Fisher, Elizabeth. Woman’s Creation: Sexual Evolution and the Shaping of Society. New York: McGraw Hill, 1980.
Getty, Adele. Goddess: Mother of Living Nature. London: Thames and Hudson, 1990.
Lazarre, Jane. The Mother Knot. New York: Dell Publishing Co., 1976.
Livingstone, Glenys. Motherhood Mythology, M.A. thesis, Graduate Theological Union, (1982) Berkeley CA. Australia: Fast Books, 1999.
Neumann, Erich. The Great Mother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4.
Reuther, Rosemary Radford. New Woman/New Earth. New York: Seabury, 1975.
Warner, Marina. Alone of All Her Sex. NY: Alfred Knopf, 1976.
NOTES:
[1] Geoffrey Ashe, The Virgin, cited in Motherhood Mythology, by Glenys Livingstone, p. 23-24.
[2] Marina Warner, Alone of All Her Sex, p.104.
[3] Marina Warner, Alone of All Her Sex, p. 132.
[4] Simone de Beauvoir, The Second Sex, p. 160.
[5] Rosemary Radford Reuther, New Woman, New Earth, p.56.
[6] Jane Lazarre. The Mother Knot, p. 1.
[7] Marina Warner, Alone of All Her Sex, p. 73.
[8] Erich Neumann, The Great Mother, p. 171.
[9] See Mary Daly, Beyond God the Father, p. 195. Scholar Kirsten Brunsgaard Clausen in a recent thesis presented to UPPSALA UNIVERSITET notes that baptism had an earlier indigenous/Goddess communal tradition that was appropriated for Christian dogmatic purposes: http://uu.diva-portal.org/smash/get/diva2:826805/FULLTEXT01.pdf
[10] Warner, Alone of All Her Sex, p. 95.
[11] Elizabeth Fisher, Woman’s Creation, p. 386, notes the aristocratic custom during the Middle Ages, of sending children away to nurse at the breast of a country woman: thus poor women had both the benefit of the birth control effect of lactation plus the sensuality. Other than entering the religious life, this was one way to avoid incessant pregnancies.
[12] Warner, Alone of All Her Sex, p.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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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3

What is Mago and Magoism? | Return to MAGO E*Magazine

What is Mago and Magoism? | Return to MAGO E*Magazine

What is Mago and Magoism?

Mago Academy“Mago” refers to the Great Goddess, Primordial Mother, and Creatrix known through East Asians especially Koreans and Magoism, a totality of the human civilization derived from the veneration of the Great Goddess.
Restoring Mago and Magoism, being written out of patriarchal histories and religions of East Asia, brings back the Story of the Female Origin, a mytho-historical blueprint of the cosmic beginning and its subsequent gynocentric civilizations.
(Updated December 31, 2016)
“As People of Mago, I have no country. As People of Mago, I want no country. My Country is the Whole World.”
Return to Mago, Magoism the Way of She was created in an effort promote connection among people of differences including gender, nationality, race, ethnicity, economic status, and/or sexuality and duly officiated in August, 15 2012.
We are scholars, researchers, teachers, artists, activists, seekers, and/or faith practioners from all centers of the world.
“Mago” is both a common noun meaning “the Great Goddess” and a specific goddess who is the progenitor, nature-shaper, and ultimate sovereign known to East Asians especially Koreans since the time immemorial. Mago is the Progenitor, Creator, and Sovereign, according to Dr. Helen Hye-Sook Hwang’s research.
“Why did I create Return to Mago (Magoism, the Way of S/HE)? It is my way of moving onward and forward to Life and Creativity as someone who is not coming from the dominant gender, race, class, and culture. Alas, we are positioned against one another in patriarchy! Are we going to just accept or sink down into silence? Mago is Here for us to return to the Female Origin of civilization and unity not only among peoples but also among species and cosmic entities!”
For Dr. Hwang’s publication, see her C.V. here.
Summary of the Mago Web up to date:
The Mago Web, a collection of different projects created to serve the mandate of Mago Bokbon (Return to Mago’s Origin), began to spin its first nexus as a result of my interview with Jayne DeMente and Anniitra W. MaKafia Ravenmoon, co-hosts of Creatrix Media Live, March 23, 2011.
Mago CircleFacebook Group, was created shortly after the above interview, May 23, 2011. Founding members included Dr. Mary Ann Ghaffurian, Dr. Rosemary Wright, Deirdre Cruickshank, MaryAnn Columbia, Leslene della Madre, and Anne Wilkerson Allen.
Return to Mago, Magoism the Way of S/HE officially began August 15, 2012. Changed to a full-fledged Webzine with a new URL (magoism.net) in February 3, 2014.
Mago Academy (https://magoacademy.org) began to operate in fall 2012.
Offered “2013 Mago Pilgrimage to Korea,” June 2013.
2014 Mago Pilgrimage to Korea,” October 2014.
“2015 Virtual Mago Pilgrimage to Korea” October 2015.
“2016 Mago Pilgrimage to Korea” June 2016.
Online class “Gaia and Mago: Rekindling Old Gynocentric Unity,” co-facilitated by Dr. Glenys Livingstone and Dr. Helen Hye-Sook Hwang, Feb. 15-July 19, 2014.
Anna Tzanova joins Mago Scholars for the Magoist Studies Program, 2015.
Online class “Korean Historical Dramas,” co-facilitated by Dr. Helen Hwang and Anna Tzanova, MA, Feb. 2016.
Sumaiyah Yates joins Mago Scholars for the Magoist Studies Program, 2016.
Online class “Introduction to Magoism,” October 2016.
Mago Networks, Linkedin Group, was launched in Feb. 21, 2014.
Mago Books (https://magobooks.com) began on December 23, 2014.
Published the first anthology of the collective writing series, She Rises: Why Goddess Feminism, Activism, and Spirituality? Volume 1 in June Solstice, 2015.
Published the second anthology of the collective writing series, She Rises: How Goddess Feminism, Activism, and Spirituality? Volume 2 in June Solstice, 2016.
2017 Mago Work Calendar, November 2016.

How The Mago Circle Facebook Group began: 
This Blog, Return to Mago, Magoism the Way of S/HE, (now Webzine) was an offshoot of the Mago Circle, a Facebook group: https://www.facebook.com/groups/magoism/, which began as a result of Dr. Hwang’s roundtable discussion in the Creatrix Media Live, an internet radio show [http://www.blogtalkradio.com/creatrix-media-live# or http://www.blogtalkradio.com/creatrix-media-live/2012/03/18/march-mago-madness-with-dr-helen-hwang-phd].
The following is an excerpt from Helen Hye-Sook Hwang’s discussion with Jayne DeMente and Anniitra Ravenmoon for the Creative Media Live  aired on March 23, 2011.
Jayne DeMente: Welcome Helen, I was fortunate to read some of your research and I applaud you because, we in the Western WSE movement have long needed to hear more from Asian women spiritual leaders and feminists and your reference to the Neolithic timeline…
 For our listeners and participants online, let’s lead with the question of who is Mago, was she a mother figure, what is Magoism, does any other deity pre-date her?
Helen Hye-Sook Hwang: Mago is the great goddess known to East Asians throughout history. She is the first mother of all, cosmogonist, and ultimate sovereign/ruler. She has many names. Among them are Triad Deity (Samsin), Grandmother (halmi), Auspicious Goddess (Seogo), Evil (Magui), and Old Goddess (Nogo). She is also known as the Giantess who shaped the natural and cultural landscape. Her manifestations are so multivalent that one may think they do not refer to the same goddess. She was well loved, given high esteem, celebrated by East Asians in the past. She was almost completely forgotten, however in modern times, up until the 1980s in Korea, when the principle text of Magoism, the Budoji, re-emerged.
Mago is a mother figure in the sense that she bore two daughters, Kunghee and Sohee, and managed her household called the Castle of Mago, the primordial paradise of humanity. She is the ancestor of all races. She takes care of everything on earth via the equilibrium of cosmic music/sound/vibration.
Magoism is the term that refers to the totality of culture/civilization venerating Mago as the great goddess. It is a tradition largely unnoted but co-opted and distorted in major East Asian religions. The concept of Magoism helps one identify and understand Mago’s multivalent manifestations that are found trans-nationally. It also makes possible to name the female-centered original/primal civilization that gave birth to the forthcoming East Asian civilizations and religions.
Whether Mago is the earliest deity known to East Asia is unknown. In fact, there are goddesses unearthed from “pre-historic” archaeological sites without their names. The life-sized goddess statue was unearthed in the site of Hongshan Culture, northeastern region of present China dating from 4,700 to 2,900 BCE. The heavy use of jade along with the partly bear-figured female icon is congruent with the account of Magoism in the Budoji. Also, of course, there are numerous female figurines called dogu excavated in Japan’s “pre-historic” times.
The ancient origin of Mago or Magoism has a merit to explain some facts that remain a mystery, so to speak. Korea is also known as the land of dolmens. Half of the world megaliths are populated in the Korean peninsula. There are numerous pyramids found in mainland China. There is a documentary film about the sunken temple beneath the sea of Okinawa Japan, etc. dating to 10,000 years ago.
Then, how early does Mago date to? It is difficult to date the earliest evidence of Mago or Magoism simply because written history does not exist in pre-patriarchal times. As you see here, when we talk about the earliest of something, everyone assumes it is of Chinese. So let me follow this line of thought: Ge Hong’s record on Magu from China dates to the early fourth century CE (Ge Hong 283—343 CE).  However, Daoist scholar Robert Ford Campany states that the cult of Mago dates back to the Stone Age.
It is more difficult to date Mago in Korean records simply because ancient written records did not survive. Two books, the Budoji and the Handan Gogi, alleged to have been written in the late 4th or early 5th century and subsequent later times, which refer to Mago otherwise known as Samsin (Triad Deity) remain controversial. Considering that the name Mago is embedded in Korean language as in “gom,” “geum,” and “gam,” whose meaning indicates ruler, sovereign, and head, the origin of Mago is as old as these words. Likewise, most materials that recount Mago as cosmogonist are of folklore, place names, literature, arts, and debris of historical and religious records, most of which are difficult to date for its origin.

Online publications and radio talks on Mago and Magoism by Helen Hye-Sook Hwang, Ph.D.
Publication about Helen Hye-Sook Hwang and her Research about Mago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