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05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문화정책 방향 모색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웹진 2017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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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거세다. 2016년 다보스 포럼의 키워드로 부상한 이후 일 년이 갓 지났을 뿐이지만, 이미 전 세계의 주요 정부와 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상수로 받아들이면서 대응책 마련으로 분주한 모양새다. 우리 정부 역시 2월 중 4차 산업혁명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범정부 컨트롤타워로서 '4차 산업혁명 전략위원회'를 신설하고, 4월 중에는 '4차 산업혁명 대책'을 마련해 발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양질의 저서와 급조된 저서들이 뒤엉켜 서점의 신간코너를 가득 차지하고 있고, 시사 프로그램은 물론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자녀교육 관련 내용들이 그득하다.

이러한 급류 속에서 우리나라의 문화정책은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할까? 2017년 문체부 업무계획에도 '4차 산업혁명'은 하나의 주제어로 제시되어 있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아직까지 구체적인 정책적 대안이 가시화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식의 시류에 편승한 대책 마련은 정책적 조급증의 일환으로서 환영받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정책을 고민하는 입장에서, 국민적 관심이 지대한 사회적 현상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백안시하는 태도 역시 바람직한 것일 수는 없다. 오해와 곡해, 편취와 과장을 넘어 차분히 전체를 조망하며, 나름의 관점을 수립하고, 진중하게 대안을 준비하는 것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이 글은 문화부 차원에서 제4차 산업혁명을 처음으로 화두로 삼은 <2016 문화융성포럼>에서 이루어진 발제들과 이후 진행된 두 차례의 자문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위한 문화정책의 방향을 탐색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는다.

결론을 선취하자면, 제4차 산업혁명은 단순히 새롭고 강력한 기술의 출현이 아니라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도전을 제기하기 때문에 문화정책의 핵심적인 조건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널리 알려져 있는 평가적(evaluative) 정의와 기술적(descriptive) 정의를 종합하여, 문화를 '살되 좀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인간 공동체가 만들어낸 비(非)발생적인 행위의 총체'로 이해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인간'에 대한 대조군으로 '짐승'이 차지하던 자리를 '로봇'이 차지하게 되는 변곡점이 제4차 산업혁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4차 산업혁명의 역사적·개념적 위치를 포착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창조경제 vs 4차 산업혁명

2016년의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를 마주하면서, 2013년의 '창조경제'라는 화두를 떠올리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양자는 모두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야심찬 기획으로 제시되었으며, 사회 각 부문에 떠들썩한 논쟁거리를 가져다주었다.

가령 1998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창조산업/창조경제 정책이 제시되었을 때, 존 하틀리, 스튜어트 커닝햄, 테리 플류 등의 학자들은 신경제와 창조성을 바탕으로 21세기 문화정책과 산업정책의 융합이 추진된다며 열렬한 환영의 의사를 표시하였지만, 앤디 프랫, 토비 밀러, 니콜라스 간햄과 같은 학자들은 한 세기 넘게 지속되어온 조야한 기술결정론의 판본이자 부정확한 개념들로 이루어진 선동에 불과하다는 격렬한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1) 그나마 예술과 문화산업을 중심으로 한 13개의 산업영역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던 영국식 창조경제 정책에 대해서도 이처럼 찬반양론이 격렬하게 대립하였으니, 훨씬 더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제시된 한국식 창조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현 정부 내내 의심과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든 해외에서든 '4차 산업혁명' 담론에 대한 언론과 학계의 태도는 '창조경제'에 대한 그것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왜 일까?

서서히 그러나 어느덧, 우리 곁에 있는 4차 산업혁명

엇갈린 운명의 첫 번째 이유는 1차 산업혁명(수력과 증기기관)-2차 산업혁명(전기)-3차 산업혁명(전자기술과 IT)-4차 산업혁명(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이라는 사적(史的) 진화단계에 대한 서술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담론을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것은 다보스 포럼의 설립자인 클라우스 슈밥2)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이 관점은 2011년부터 스마트 팩토리를 목표로 진행된 독일정부의 '인더스트리 4.0'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독일기술과학아카데미의 헤닝 카거만 회장에게 직접적으로 빚을 지고 있다. 또한 인간의 육체적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고자 했던 제1의 기계시대(1, 2차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정신적 노동마저 기계로 대체하고자 하는 제2의 기계시대(3, 4차 산업혁명)가 열렸으며, 이러한 새로운 시대에는 '컴퓨터와 로봇으로 상징되는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가 된다는 MIT의 정보경제학자들(에릭 브린욜프슨&앤드루 맥아피)의 관점도 상당 부분 녹아들어있다. 이외에도 다보스 포럼이 자체적으로 진행한 다양한 설문조사와 보고서들이 존재한다. 즉, 거시적인 산업발전의 단계에 대한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연구와 성과를 바탕으로 담론적 포지셔닝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상당한 설득력을 노정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보다 중요한 이유는 4차 산업혁명의 엔진으로 제시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이미 (알파고나 자율주행차의 사례와 같이) 상당부분 상용화된 기술이라는 사실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이 ICT와 제조업의 융합에 초점을 맞춘 다소 작은 범위의 지능화와 자동화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면,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이 제조업은 물론이고 물리학과 생물학 같은 기초학문 분과와 융합되고, 개인의 취향이나 사회적 관계, 정치 체계 등 모든 사회 영역에도 스며들게 된다는 관점을 갖추고 있다. 사물인터넷, 블록체인기술, 3D프린팅, 첨단로봇공학, 합성생물학, VR/AR, 무인운송수단,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 등 현재 4차 산업혁명과 연계된 기술은 엄청난 사회적 관심과 자본 투자를 바탕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거대한 범위와 규모를 갖추고 엄청난 강도와 속도로 쏟아져 나오는 '증거'들이 4차 산업혁명 담론의 확산을 추동하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어디까지 보아야 제대로 보는 것일까?

4차 산업혁명의 범위와 규모, 강도와 속도가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은 4차 산업혁명의 실체를 규정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어렵게 만드는 수준을 넘어, 끊임없이 변화하며 융합하는 속성으로 인해 아예 불가능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문화정책을 고민하고 탐색하려는 우리의 관심에 비추어 볼 때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국면에 대해서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그림 1 4차 산업혁명의 다각적 국면들

앞서도 강조하였지만, 4차 산업혁명의 차별성을 담보하는 핵심기술로서 (1)인공지능과 빅데이터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까지 인공지능은 감독된 학습(supervised learning)을 통해서 작동하고 있는데, 이는 일종의 '극단적인 주입식 교육'의 방식, 즉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입력하여 기계가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 설계된 것이다. 물론 기계가 실행하는 알고리즘이 엄청나게 복잡해졌고 빨라졌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Volume, Velocity, Variety라는 3V를 추구하는 빅데이터 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러한 데이터에 대한 가치판단을 실행하는 인간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투입되지 않는다면, 기계의 지능화와 자동화의 '표상'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인공지능의 발전도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현재까지는 빅데이터의 수집과 분석이 어려운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의 적용이 제한적이다.

하지만 (2)웨어러블 인터넷과 유비쿼터스 컴퓨팅 등의 기술 발전으로 만물인터넷(Internet Of Every Thing) 실현이 가까워오면 올수록,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은 점차로 지구상에서 사라져갈 것이다. 이와 같은 초연결사회에서는 더 이상 소품종 대량생산은 이루어질 이유가 없으며, (3)실시간으로 취향을 만족시키는 온디맨드 경제를 넘어서 소비자 스스로 4D프린터 등을 활용한 자족적인 '메이커'의 라이프스타일 역시 빠르게 확산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4)비즈니스 기업들은 상품기획은 물론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있어서도 초개인화된 수요자들과의 협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며, 골드코프 광산이나 캐글의 사례 등을 통해서 이미 검증된 개방형 혁신 플랫폼을 중심으로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을 기술혁신이나 문제해결의 핵심적인 수단으로 삼게 될 것이다. 한편 이미 (5)게임분야를 중심으로 그래픽의 완성도나 어지럼증 등의 기술적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한 VR/AR 기술은 현실과 가상현실, 증강현실의 구분과 간섭, 혼합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세대와 함께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측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짐승과 기계 사이에 선 사이보그

이러한 다양한 변화들을 단순히 새로운 기술 도입의 파급효과 차원에서가 아니라, 인류 문화사의 흐름에서 새로운 도전의 출현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경작하다'라는 의미의 문화(culture) 개념이 처음 출현했을 때, 인류는 더 이상 있는 그대로의 자연(nature)과 뒤엉켜서는 안 되는 존재로 스스로를 규정하였다.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일반화된 이러한 개념은 문화정책이 추구하는 인간형을 짐승과 구분되는 '교양인'으로 제시하는 논법의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IOT 기술과 뇌파를 연결하여 생각만으로 자신의 취향을 관철하고자하는 극단적인 초연결사회의 초개인화된 시민-소비자(citizen-consumer)들에게 더 이상 근대적인 논법만으로는 소구할 수 없다. 이들은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모바일 혁명을 거치면서 이미 '자신의 신체와 정신의 일부를 기계화한 사이보그'가 되었으며, 4차 산업혁명은 유전자 편집 및 인공지능의 고도화를 통해서 인류의 사이보그화를 가속화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3)

짐승과 구분되는 교양인이라는 근대적 문화정책의 이념은 이제 로봇과 구분되는 사이보그를 위한 접근 방식을 새롭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 이르렀다. 4차 산업혁명이 촉진하는 초연결사회(존재론: 융합과 편재의 패러다임 속에서 사람, 사물, 기계가 뒤섞이는 가운데 인간은 존재의 위계질서를 어떻게 정리해야할 것인가?)와 혼합현실(인식론: 가상, 실상, 그리고 증강된 현실 속에서 인간은 참과 거짓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초개인화(미학: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자동적으로 만족시키는 인류의 감성적 인식과 심미적 판단은 과연 충분히 반성적일 수 있을까?)와 협업창작(윤리학: 개방/공유/참여라는 웹2.0의 금언이 이제는 개인과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정언명령으로 자리 잡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기만 한 것일까?)은 앞으로도 한참동안 우리가 곱씹어야할 주제들이 분명하다.

사이보그를 위한 문화정책 마련의 단초

'사이보그를 위한 문화정책'은 이러한 고민들을 통해 서서히 구체화되어 나가겠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몇 가지 지향점들을 통해 발견한 단초는 다음과 같다. 먼저, 인문정신 관련 정책의 역할이 중요하다. 단순히 전통에 머무르는 대신에 '기계와 다른 인간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데 미션을 집중해야한다. '호모 루덴스'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 요구되고 문화정체성 형성에 필수적인 서사들의 종류가 완전히 바뀌고 있는 시점에 과거보다는 미래에 시야를 고정한 정책 발굴이 필요하다. 문화예술교육 관련 정책 역시 귀추가 주목되는 분야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엄청난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것은 더 이상 창조적인 활동이 아니다. 즉, 기존의 창조성에 대한 이해와 정의가 상당 부분 맞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는 기계와 경쟁하는 대신에 기계를 활용하여/하되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사이보그적 창조성' 계발이 가치를 갖는다. 또한 혼합현실이 강화될수록 만질 수 있는 것(tangibility)에 대한 갈구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역문화 정책은 실질적인 참여와 체험을 중심으로 이러한 욕구를 공간 단위에서 해결하는 장을 활성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지역 사정에 정통하면서도 새로운 문화적 실험에 갈급한 문화기획자들의 역할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팹랩, 메이커 스페이스 등 생활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연결하는 공간들을 지역 단위의 문화예술기반시설에 조성하고 24시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같은 맥락에서 고민되어야 한다.

한편 창작지원 정책은 고립된 장르 또는 지역의 칸막이를 걷어내고 '협업창작' 기반의 수평적이고 점진적인 협력형 창작지원 모델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시점이다. 정부 주도의 사업관리플랫폼은 거의 성공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캐글이나 이노센티브 등의 사례처럼 수익창출 플랫폼과 연계하여 협업창작을 위한 새로운 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보다 시급한 것은 향유지원 정책이다. '딥드림'의 사례처럼4) 전혀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내는 창작이 아니라, 엄청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창작이나 일종의 조합적 창작은 supervised learning을 중핵으로 삼는 인공지능이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오히려 뛰어난 감식안을 가지고 세밀한 취향을 적용한 향유는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향유지원 정책이 단순히 저소득층 기회 확대로 가기 보다는 인간적인 감식안의 계발 및 기계와 구별되는 창조성 발전을 위한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콘텐츠산업 정책이 2000년대 초반의 현장감이나 기업가정신에서 다소간 멀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최근의 위기를 거울삼아, 4차 산업혁명의 주요한 계기들을 중심으로 지원체계를 개편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관료화된 장르 지원의 성과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처럼 새로운 정책지원의 영토를 탐색하는 전위의 역할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그림 2 구글의 인공지능 '딥드림'이 그려낸 다양한 회화작품

1) 정종은(2013), 영국 창조산업 정책의 부상, 『문화정책논총』 제27집 1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슈밥, 2016)은 좋은 입문서가 분명하다. 같은 맥락을 견지하면서도 좀 더 풍성하고 다채로운 논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어서 『4차 산업혁명의 충격』 (슈밥 외, 2016)을 읽으면 된다.
3) 다보스포럼이 2015년 출간한 『거대한 변화-기술의 티핑 포인트와 사회적 영향』에 따르면, 2025년까지 상업화된 최초의 (인체)삽입형 모바일폰이 등장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81.7%의 전문가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4) 구글이 바둑계 평정을 위해 만든 인공지능이 '알파고'라면, 미술계를 위해 만든 인공지능이 '딥드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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