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1

Namgok Lee - '(분노) 연찬'

Namgok Lee - 나는 25여년 전 야마기시즘 특강을 여러 차례 진행했다. 요즘 특강을 했던 여러 사람들과... | Facebook

Namgok Lee
3 days ago
  · 
오늘 완주에서 야마기시 특강(7박8일)을 경험한 사람들의 만남이 있다.
지난 번 실현지 40주년 기념 연찬을 하면서 후속 모임으로 이루어졌다.
나도 초대 받아서 함께 한다.
기대도 있지만 우려도 있어서 담담한 심정으로 참석하려 한다.
우려는 지나친 기대가 실망으로 이어지는 많은 경험들 때문이다.
7박8일의 압축된 연찬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준다.
그러나 그 기간의 연찬 경험이 강고한 기존의 관념이나 생활양식을 바꿀 정도로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많은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감동들을 받는다.
그러나 그 효과는 몇 달을 못넘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약발’이 다했다는 말도 있다. 심지어는 이 프로그램에서 저 프로그램으로 옮겨다니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야마기시 특강은 두 방향의 목표를 함께 검토한다.
하나는 인간의 마음이고, 하나는 인간의 사회다.
이 둘을 검토하는 방식이 ‘연찬(硏鑽)’이라는 것이 야마기시 특강의 특징이다.
‘연찬(硏鑽)’은 무지(無知)의 자각을 바탕으로 서로 마주보고 누가 옳은가를 따지는 논쟁의 장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무엇이 옳은가를 함께 찾아가는 개별적이고 집단적인 소통과 탐구의 장(場)이다.
스스로 확증편향에 지배되고 있지 않는가하는 자각과 성찰이 그 출발점이다.
 지금 우리의 사회·정치·문명은 일대 전환의 시점에 와 있다.
문명 자체가 기로에 서 있다. 절망하는 사람도 많지만, 인간의 역사가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상 최대의 분기점이다.
이 전환의 분기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진정한 연찬(硏鑽) 태도가 아닌가 한다.
특정한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신앙적 확증편향을 내려놓는 것이 그 출발이다.
개인적 충돌에서 대량학살의 전쟁까지 그 원인이 바로 확증편향 간의 대립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자기와 다른 정치적 견해나 자기와 다른 종교적 관점이나 자기와 다른 이해관계를 인정할 수 없으면 아무리 연찬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출발부터가 진정한 연찬과는 거리가 멀다.
특강을 경험한 사람들의 삶은 그야말로 천태만상(千態萬象)으로 다양하다.
이 다양한 삶 속에서 마음의 세계와 현실의 사회생활을 영위한다.
각자가 자기의 삶과 사회적 활동의 분야에서 연찬 태도를 스스로 견지하면서 그것을 확장하는 것이야말로 공통의 이상(理想)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 연찬의 테마가 ‘연찬(硏鑽)’인 것 같다.
아마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첫 만남의 인상들이 좋기를 바란다.
열정적인 사람일수록 자신의 연찬 태도를 더 깊게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열정(熱情)은 확증편향과 연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각자가 서 있는 여러 분야에서 이 연찬이 어떻게 삶과 실천 속에서 연습되고 실천되고 있는지를 함께 풀어놓고 검토함으로서 시너지를 내는 모임으로 발전한다면 좋을 것이다.
날씨가 좋다.
날씨처럼 쾌청한 만남이 되기를 바라면서.

======
Namgok Lee

  · 
나는 25여년 전 야마기시즘 특강을 여러 차례 진행했다.
요즘 특강을 했던 여러 사람들과 만나면서 부끄러움과 함께 성찰하게 되는 것이 많다.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진행을 맡아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잘 짜여진 매뉴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매뉴얼  자체를 검토할만한 실력은 물론 갖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나'를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통해 인간의 마음과 인간의 사회를 깊게 들여다보는 잘 준비된 프로그램이라는 신뢰가 있었다.
핵심은 '연찬'인데, 과연 특강(특별강습연찬)의 진행이 '연찬'과 모순되지 않았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대표적인 연찬 테마인 '화(분노)  연찬'에 대해서만 언급해본다.

특강장에 게시하여 늘 접하는  특강의 목표 첫번째가 '어떤 경우에도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 된다'이고,  거의 1박2일 정도로 자신이 내놓은 화가 났던 실례를 놓고 '왜 화가 납니까?'라는 일관된 질문 앞에 서기 때문에 이 연찬이 가장 인상에 남는 것 같다.
심지어는 이 '화연찬'을 참지 못하고 특강을 포기하는 사례도 있을 정도다.

사회의 부정과 불의를 변혁하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불의에 대한 분노'는 운동의 동력인데, 그것이 부정당하는 것 같이 생각되어 특강 초기부터 빗나가게 되고 적당히 타협(?)하게 되어 연찬의  참 모습에서 멀어지는 결과로 된 면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이 '화 연찬'이 다른 누구보다 변혁적인 운동가들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연찬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의 진보 운동에 이 연찬이 보다 깊숙히 들어가 진보운동의 흐름에 일정한 영향을 주기를 바랐던 개인적 소망도 있었다.

어쩌면 그  소망이 참선이나 명상 같은 수행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던 내가 마치 화두처럼 들리는 '왜 홰가 납니까'라는 테마를 계속 묻게 할 수 있었던 동력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런 개인적인 소망이나 연찬장에 게시한 목표나 진행자의 미숙으로 '화가 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라거나 심지어 '화가 나는 것은 나쁘다'거나 '화가 나서는 안된다'라는 관념이 들어가서 그야말로 연찬을 처음부터 비틀어버린 경우가 많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진행자는 몰라도 나 자신은 큰 자괴감을 가지고 반성하게 된다.

어떤 당위적 전제나 선험적 기준은 연찬의 근본 장애로 되는 것이다.
'왜 화가 나는지'에 대해 온전히 집중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이런 점들은 나뿐만 아니라, 초창기 특강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근본변혁(나는 일본판 개벽운동이라고 생각했다)에 대한 과도한(?) 소망들이 작용하지 않았나 짐작한다.

나는 지금도 '화 연찬'은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도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도 근본적인 테마라고 생각한다.
다만 화가 나는 것은 나쁘다든지 화가 나서는 안된다든지 하는 전제에 사로잡히지 않고 
'왜 화가 나는지'를 구체적 삻과 실천 속에서 '연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프로그램이거나 그것은  단지 단초일뿐, 중요한 것은 이 연찬이 자신 안에서 지속되는 것이다.

구체적이고 과학적으로.
내가 공자를 만나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이 연찬의 목표는
  •  '어떤 경우에도 화가 나지 않는 사람으로 된다'가 아니라 
  • 공자가 제시한 '불천노不遷怒' 정도가 아닐까 한다.
==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 화를 옮기지 않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인문고전산책   2016. 3. 14.
복사https://blog.naver.com/chamnet21/220654620730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 화를 옮기지 않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수제자 안연에 대한 공자의 사랑은 남달랐다. 안연은 재능이 워낙 탁월하기도 했지만 성실함이 특히 돋보였다. 평소에 워낙 말수가 적어 다소 모자라 보이기까지 했지만 학교생활과 방과 후의 실생활 등 모든 면에서 안연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제자였다. 거친 밥과 물 한 병으로 누추한 곳에서 살아도 그걸 즐길 줄 아는 제자가 안연이었고, 죽음을 넘나드는 사선에서도 스승을 배신하지 않고 따를 정도로 충직했던 제자가 안연이었다. 문학과 예술에 두루 뛰어났던 자공조차도 안연에 비하면 반에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제자였다. 자공이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아는 정도라면 안연은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우치는 수재였다. 

안연에 대한 논어의 다양한 기록 가운데 내가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옹야 편의 다음 구절이다. 노나라의 애공이 어느 날 공자에게 제자들 가운데 배움을 좋아하는 제자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이에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안연이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배우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노여움을 옮기지 않았고 잘못을 두 번 되풀이 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애석하게도 명이 짧아 일찍 죽었지만 안연이 죽은 후로는 배움을 좋아하는 제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공자의 제자들은 모두 배우기 위해 아카데미에 입학한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안연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배움을 좋아한 제자가 없었다고 말한다. 나머지 제자들은 모두가 학문을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생각했다는 뜻이다.

배움에 대한 공자의 생각과 함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안연이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되풀이하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不遷怒(불천노) 不貳過(불이과)”라는 원문으로 나와 있는 이 대목이야말로 공직자의 실천윤리 가운데 으뜸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을 흘기는 유형이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으면 자신보다 아래 직급의 직원에게 그 화를 푸는 경우가 흔하다. 국장이 과장을 깨면 과장은 사무관이나 주무관에게 화풀이를 한다. 비단 공직자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그렇다. 담임선생이 아침부터 교장에게 한소리를 들으면 그 학급의 기상도는 하루 종일 흐려진다. 그런데 안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았다. 간단한 것 같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뼈저리게 느낄 때가 많다. 화를 옮기지 말아야 할 때 화를 옮김으로써 가정의 평화가 깨지고 조직의 인화단결이 깨지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봐왔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안연이 잘못을 두 번 되풀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잘못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잘못을 하고도 그것을 고치지 않고 두 번, 세 번 되풀이하는 것은 인격 수양이 덜 되었다는 증거다. 그런 사람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으며, 심할 경우 사회적 악습의 주범이 될 수도 있다. 법에서 초범과 재범의 양형을 달리 정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야구에서 내야수를 보는 선수들이 한 번 실수한다고 교체를 하는 감독은 드물다. 하지만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교체를 한다. 심리적 부담감으로 똑 같은 실수가 또 나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논어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들 가운데 인(仁)의 표상은 공자가 아니라 안연이다. 공자는 실천윤리로서의 인에 있어서는 자기 자신도 안연에 미치지 못한다고 스스로 고백한 바 있다. 논어에서 우리가 발견한 정의의 얼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기본이라는 얼굴이었듯이 공자는 인의 기준을 거창한 것에서 찾지 않는다.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되풀이하지 않는 자세, 그것이 인의 기준이다.

논어 자한 편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도 이런 가르침과 맥을 같이 한다. “法語之言(법어지언) 巽與之言(손여지언) 說而不繹(열이불역) 從而不改(종이불개)” 법어지언이란 바른 말을 의미하고, 손여지언은 부드러운 충고 정도를 뜻한다. 바른 말과 부드러운 충고를 아무리 해줘도 그걸 들은 당사자가 겉으로만 받아들이는 척 하고 행동을 고치려고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문장이다.

공직생활을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업무상 과실을 저지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 윗사람의 지시에 마지못해 따르다가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업무처리가 미숙해서 자신의 과실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주변에 돌리지 않는 것과 그것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화가 나려할 때 공자의 수제자 안연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불천노 불이과"를 입으로 나직이 읊조리면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직장에서의 화를 집으로 옮겨가는 것은 금물이다.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면서 화를 툭 털어버리고 귀가 시에는 머릿속에서 지우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다. 

[출처]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 화를 옮기지 않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작성자 chamnet21

==
불천노불이과(不遷怒不貳過)
BY SS8000 ON 7. 18, 2020
논어 옹야(雍也)편에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란 말이 있다. 함께 쓰여 지는 문구이지만 오늘은 불이과(不貳過)만 중점을 두기로 하자. 과(過)는 허물 또는 과오라는 뜻이다. 고로 ‘불이과’는 두 번 다시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의미다.

 

안회(顔回, 顏淵), 공자의 으뜸 수제자. 공자의 제자가 3천이 넘었단다. 그 중에서 몇몇 아끼는 제자가 있었지만 또한 그 가운데 가장 아끼는 제자가 보로 안연이었다. 혹설에는 공자와 친척관계라는 설도 있지만 그가 친척이라 가장 아꼈다면 공자의 명성은 가짜일 것이다. 제자가 3천이 넘다보니 개 중에는 학자·정치가·웅변가로서 뛰어난 사람이 많았지만, 그러나 안회는 덕의 실천에서 가장 뛰어났다고 한다.

 

안회는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연구와 덕을 수양하는 것에만 전념하여, 공자가 가장 사랑하는 제자가 되었는데, 겸허한 구도자의 상징이 되었으며, 공자의 뜻을 가장 잘 이해하는 동반자이기도 했단다. 오늘날 성균관에 배향된 5성에서 공자 다음의 위치에 있단다. 나머지 셋은 증자, 자사, 맹자이다. 전형적인 백면서생 타입이라 초반에는 괄괄한 성격의 자로와 티격태격했으나 자로가 안회의 덕행에 감격해 붕우유신(朋友有信)하는 친우가 된다.

 

문일지십(聞一知十)이라는 말이 있다. 즉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말은 안회 때문에 나왔다. 정확히는 공자와 자공의 대화에서 나온 것. 하루는 공자가 자공에게 ‘안회와 너를 비교하면 누가 더 나은가?’라고 질문하자 자공은‘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지만 저는 겨우 둘밖에 알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공자는‘네 말이 맞다. 너와 나 모두 안회를 따라가지 못한다.’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이른바 청출어람(靑出於藍)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천재는 요절한다던가, 안타깝게도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면서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정도로 굶는 일이 허다해지다가 29세에 머리가 새하얗게 세어버렸고, 결국 32세에 요절하고 말았다. 요즘 얘기로 하면 영양실조에 의한 죽음.

 

그러고 보면 공자도 좀 비인간적인 데가 있다. 제자가 3천이 넘었으면 월사금도 꽤 걷혔을 텐데…요즘처럼 캠퍼스를 증축하거나 냉난방 사설을 했을까? 거의 노천강의였을 텐데…설령 월사금은 면제해 주었더라도 별도의 장학금 좀 주면 어디 덧났을까? 아까운 인재를 그런 식으로 보내고 하는 말이“하늘이 나를 버리시는 도다,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 도다.””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훗날 노나라의 실권자인 계강자가 와서 제자 중 으뜸이 누구냐는 질문에 공자는“안회만이 내 뜻을 알았소. 하지만 지금은 죽고 없다오.”라고 하면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약간 할 얘기가 있다. 나 어릴 적 역시 찢어지게 가난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사친회비라는 게 있었다. 즉, 월사금(매월 내는 공납금)이다. 기억은 안 나지만 요즘으로 치면 껌 한 통 값이나 될까? 그런데 그 돈을 낼 수 없었다. 이는 내가 공부를 멀리하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월사금을 낼 수 없으니 학교가기가 싫었다. 그러면 울 아버지 지개작대기를 들고 따라오시며 독촉을 했고, 수업이 시작된 후 세상에 있는 눈치란 눈치는 다 봐가며 국사범(國事犯)이나 된 놈처럼 책상에 앉아 있지만 공부가 될 리 없다. 종례시간에‘월사금 안 낸 놈’으로 불려가 싸다구 맞을 생각하면 불안하고…찢어지게 가난해 부모가 안 주시는 월사금을 안 냈다고 그 많은 학우들 앞에서 망신을 주고 싸다구를 때리는 샘. 그래도 공자는 안회의 싸다구는 안 때리고 학업에 정진토록 하셨나보다. 그랬기에 대학자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도 아주 공부를 잘하고 특출 난 애들은 좋은 샘을 만나면 샘이 뒤를 봐주기도 했다. 공자가 안회의 수업료를 면제 시킨 거 보면, 이 또한 공부도 못하고 특출 나지도 않은 내 탓이다. 뭐…

 

암튼 노나라의 애공이 어느 날 공자에게 제자들 가운데 배움을 좋아하는 제자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이에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안연이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배우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리고‘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즉 노여움을 옮기지 않았고 잘못을 두 번 되풀이 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애석하게도 명이 짧아 일찍 죽었지만 안연이 죽은 후로는 배움을 좋아하는 제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공자의 3천여 제자가 모두 학문을 닦기 위해 구름처럼 모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안회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배움을 좋아한 제자가 없었다고 말했으니…. 나머지 제자들은 모두가 학문 그 자체를 닦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수단으로 생각했다는 뜻이다.

 

진성준”그래봤자 집값 안떨어져요”…마이크 꺼지자 여당의 속마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17/2020071700148.html

 

이게 모다 삽살개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서 나온 헤프닝이다. 잘못은 두 번 되풀이 하는 게 아니건만 22번을 과오를 범하고도 독 오른 독사 대가리처럼 빳빳하게 대갈빡 쳐들고 저 따위 개수작부리는 삽살개 패당. 정말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이 모든 잘못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 탓이라니….어찌 욕이 안 나오겠는가? ‘불천노불이과(不遷怒不貳過)’, 공자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이 아침 곱씹어 볼 대목이다.
==

==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다"
평화뉴스
입력 2007.08.28 
[청봉의 고사성어]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 남에게도 강요하지 말라"



不遷怒 不貳過(불천노 불이과)

[뜻]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는다.

[자의]
不 아닐 불
遷 옮길 천
怒 성낼 노
不 아닐 불
貳 두 이
過 지날 과

[출전]
논어(논어) 옹야편(雍也篇)

[내용] 논어 옹야편(雍也篇).

노나라 임금 哀公이 공자에게 물었다.
- 哀公 問 : "弟子孰爲好學?"(애공 문:"제자숙위호학?")
제자 중에 누가 학문을 좋아합니까?

공자가 대답하기를
- 孔子對曰 : 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공자대왈 : 유안회자호학 불천노 불이과)
顔回(안회)라는 제자가 학문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불행히도 명이 짧아 일찍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없으니, 다음으로 학문을 좋아 한다는 자를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 남에게도 강요하지 말라"

"기소불욕(己所不欲)을 물시어인(勿施於人)하라"
공자는 또한 논어의 위령공편과 안연편에서 두 번이나 이런 말을 했다.
즉,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도 강요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공자가 聖人(성인)으로 추앙받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특히 태생에서부터 어려웠던 환경을 스스로 극복해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성공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게 생각된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實踐躬行(실천궁행)이다.
즉, 생각으로 알고 말로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몸으로 느끼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것이다.

제후나 관리들을 비롯한 소위 양반 사대부들은 도무지 스스로 행하려 하지 않을 뿐더러 말로만 대신할 뿐이었다.
현실에서의 어려움을 경험으로 알지 못했으며, 극복이란 말은 단지 피상적인 생각과 지식으로만 떠들 뿐이었다.
하물며 늘 가까이 있었던 제자들조차 그러한 자가당착 속에서 그저 글이나 읽고 역사 인물들이나 논하면서 소위 '에헴'하는 양반들 뿐이었던 것이다.

그런 공자의 눈에 안연(顔淵 -안회, 뒤에 그를 높여 顔子라 칭함)이 좋아 보인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안회를 두고 공자는 노(魯) 임금 애공에게 ‘불천노 불이과’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남을 위한 나인가, 나를 위한 남인가"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란 물론 ‘노여움을 옮기지 않는 것이며, 거듭 같은 실수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인격(人格)’이란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과도 다르지 않다. 자신이 싫으면 남도 싫음을 미리 헤아려, 禮(예)의 차원에서 남을 배려하는 인(仁)의 실천을 강조한 것이다.

자신과 배치(配置)되는 제2, 제3의 인격체에 대한 배려는, 더불어 사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인격이 남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가를 알 수 있다. 온전한 인격이란 결국 남을 위한 나인가, 나를 위한 남인가로 귀결될 것이다. 역사가 기록할 큰 인물(人物)의 행함이란, 보다 많은 다른 사람들을 품고 배려하며 스스로를 실천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러한 인물들이 그 사회를 안팎으로 살찌게 하며 더욱 넓은 세상과 아름다운 사회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하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목숨도 빼앗는 세상에서의 일이겠는가.

[청봉의 고사성어 47]
- 서예가 청봉(靑峰) 이정택 선생님의 글입니다 -

* 1960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난 청봉(靑峰) 이정택 선생은, <대한민국 서예대전> 초대작가로, <대한민국 서예대전> 심사위원과 <한국 서협 대구지부> 사무국장을지냈으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청봉의 고사성어>를 통해 옛 성현의 지혜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
不遷怒 不貳過
중앙일보
업데이트 2024.01.01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살다보면 화가 치밀 때도 있고, 실수를 범할 때도 있다. 관건은 치민 화와 저지른 실수를 어떻게 마무리하느냐다. 마무리하는 태도에 따라 배워 닦기를 좋아하는 인격자와 그렇지 못한 사람이 확연히 구별된다.

노나라 애공이 공자에게 “제자 중에 누가 배우기를 좋아하느냐”고 묻자, 공자는 “안회(顔回)라는 제자가 배우기를 좋아하여 성냄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았었는데 불행히도 단명하여 지금은 그만한 제자가 없다”고 답하며 안회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여기서 “성냄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다”라는 뜻의 유명한 6자성어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가 탄생했다.

遷: 옮길 천, 怒: 성낼 노, 貳: 두 이, 過: 허물 과. 성냄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다. 

노여움은 화를 나게 한 당장의 그 일에 대해서만 표해야 한다. ‘화장실 청소 좀 자주 하자’며 다투던 부부싸움이 친정의 교육수준을 들먹이고 시댁의 촌스런 생활습관을 지적하는 데로 옮겨 번지면 이혼을 부르는 큰 싸움이 될 수 있다. ‘양말 뒤집어 벗어놓는’ 잘못 역시 거듭하다 보면 감당할 수 없는 큰 부부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당신 하는 짓이 예나 지금이나 다 그렇지 뭐….” 파탄을 원치 않거든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말이다. 새해엔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로 우리 모두의 삶이 더욱 아름다워졌으면 좋겠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