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종교에 진보는 둘째치고, 영성이나 제대로 있나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
댓글 1
키워드#진보#영성#종교#김상봉 교수#전태일#서준식#민주주의
[김근수 칼럼]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온 예수
- 한국 정치의 파행은 영성의 부재서 비롯
- 전태일 분신 계급의식 아닌 신앙이 견인
- 타인의 고통에 응답 있어야 진정한 종교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
‘철이 든 뒤에는, 이른바 진보 진영에 속한 사람으로서 평생을 살아온’ 철학자 김상봉 교수가 자기비판으로 쓴 책 <영성 없는 진보>를 내놓았다. 소제목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생각함>이다.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온 예수처럼, 김상봉은 진보 진영에 폭탄 같은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하 칼럼에 나오는 괄호 안의 숫자는 김상봉 교수 저서 <영성 없는 진보>의 해당 페이지임)
우리 역사 살린 것은 공동선을 위한 자기희생 덕분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7). 대다수 한국인은 한편에서 과도하게 정치적이지만, 다른 한편에서 한국의 정치가 위기 상황이라는 것에는 의외로 둔감하다(8).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기에, 아시아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였던 한국의 민주주의가 순식간에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일까?(8).
한국 정치의 파행은 영성의 부재에서 비롯된다(9). 하지만 정치와 영성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 이전에 영성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영성이 정치와 어떤 식으로든 상관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왜 보수가 아니라 진보 진영의 문제인가?(9).김상봉 교수 지음 [영성 없는 진보] 책표지.
영성은 나와 전체가 하나라는 믿음을 의미한다(10). 짧게는 해방 이후, 길게는 동학 농민혁명 이래, 이 나라의 진보적 정치활동이란 ‘전체를 위한 자기희생’이었다(11). 해방 이후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만 놓고 보더라도, 독재 권력의 철권통치에도 불구하고 끝내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독재에 맞서 싸운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12). 우리의 역사가 돌이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져들지 않고 의미 있는 진보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고통에 응답하고, 우리 모두의 선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 사람들이 이 땅에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12).
80년대 이후 맥 끊긴 신앙과 혁명적 진보운동의 결합
한국인이라면 동학 농민혁명에서부터 광주 5.18까지 이 땅에서 정치적 실천이 종종 종교적 운동과 결합되어 있었던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15). 19세기 이래 다른 나라에서는 진보적 정치행위가 세속주의에 의거하고 있었던 데 반해, 이 나라에서는 종교적 신앙이 혁명적 진보운동의 토양이 되었던 것은 한국 근현대 민중운동 역사의 특별한 개성이다(16).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이 전통은 끊어진다(16).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오늘날 우리는 어디서도 나와 세계가 하나라는 믿음도, 그 믿음에 근거하여 전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정신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16).
이 나라의 보수 정치에는 전체의 선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다는 정신 자체가 없으므로 믿음이나 영성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18). 그들은 전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18). 우리가 사는 나라를 바로 우리 자신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으로 만들어,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집단적 자살을 향해 치닫고 있는 지금, 이성의 언어만으로는 결코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20).
조선 왕조가 썩은 흙담처럼 무너져 가던 시절, 동학이라는 새로운 믿음의 언어가 필요했던 것처럼, 국가가 아니라 민족 자체가 소멸의 위기에 처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절망적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어떤 믿음이다(20). 새로운 믿음은 우리가 지금까지 형성해온 역사의 의미를 믿음의 관점에서 해명할 때 우리에게 도래할 것이다. 그 역사는 우리가 수난과 저항과 투쟁 속에서 형성해온 우리 자신의 역사이다(118).
전태일과 서준식을 채운 것은 이념 아닌 종교적 영성
한국의 진보적 민중운동이 다시 대중적 참여를 견인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 전태일의 분신 이후라고 말할 수 있다(74-75). 그를 분신으로 이끌었던 것은 계급의식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적 사랑이었다(75). 전태일에게서 그 믿음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순수한 그리스도교적 신앙이었다(77). 전태일을 전태일 되게 만든 것은 자기 개인의 가난과 고통이 아니라 세계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인 것이다(75).
그에게 타인은 자기와 관계없는 타자가 아니라 ‘나의 전체의 일부’였으며, ‘나의 또다른 나’였다. 그는 배고픈 어린 여공들에게, 자신이 버스비로 써야 할 돈으로 붕어빵을 사 주고, 청계천 평화 시장에서 도봉산 기슭 집까지 걸어갔다. 차비를 털어서는 여공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자기의 한쪽 눈을 판 돈으로 착취 없는 공장을 만들려 했다. 그 시도조차 좌절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몸을 불살라 어두운 세상을 밝혔다(13-14).
역사의 진보를 위한 투쟁의 가장 치열한 전선에서 싸우면서도, 지난날 안중근이나 백범 김구 같은 위대한 정신이 보여 준 영성을 가장 탁월한 전범으로 보여 준 이가 서준식이다(80). 전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7년 간 감옥에 갇혀 있었던 유물론자에게 종교가 왜 중요한 문제였던 것일까?(81). 그가 천착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예수의 삶이었다(80). “특히 복음서 부분은 소외되고 신음하는 세상 사람들의 인간적 해방을 바라는 자가 몸에 지녀야 할 고귀한 윤리의 보고이다“라고 서준식은 옥중 서한에서 고백한다.
보수는 문제만 일으키고 해답은 내놓을 생각도 없고, 진보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지만 해답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고 김상봉은 말하고 싶은 것일까.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진보운동의 변질이나 타락을 비판한다 하더라도, 불의에 대항하여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싸웠던 사람들과 그들의 시대에 대한 감사와 존중의 감정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87). 김상봉은 진보를 단순히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가 진정한 희망을 제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아직 때 이른 말이다. 지금은 아직 밤이니, 우리는 아직 깨어 기다려야만 하리라. 머지 않아 새벽이 올 때까지”(118).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상춘재 앞에서 종교지도자 오찬 간담회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3.12. 연합뉴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오늘날의 한국 종교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이 사랑이라면(66), 한국 종교에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은 있는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이 있다면, 한국 종교는 윤석열 검찰독재 정권에 왜 저항하지 않는가. 고통받는 사람들과 일치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종교인들이 언젠가 진보 흐름에서 거의 사라져 버렸다. 90년대 이전 한국의 진보적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종교인들은 어느새 구경꾼 신세로 추락하고 말았다.
갈릴래아 예수는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자비로웠다면, 예루살렘 예수는 억압하는 사람들에게 저항했다. 예수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철이 든 것이다. 예수는 자비 영성에서 출발하여 저항 영성에 도달했다. 예수 영성은 자비 영성과 저항 영성이다. 자비 없이 저항 없고, 저항 없이 자비 없다.
나는 김상봉 책 소제목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생각함>에서 한국 종교의 위기를 생각하고, <영성 없는 진보> 책 제목에서 진보 없는 영성을 떠올린다. 한국 종교의 위기는 영성 없는 진보 때문이 아니라 진보 없는 영성 때문에 생겼다는 말이다. 지금 한국 종교에, 진보는 둘째치고, 영성이나 제대로 있기는 있을까. 내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 종교에 영성은 있는가.
‘철이 든 뒤에는, 이른바 진보 진영에 속한 사람으로서 평생을 살아온’ 철학자 김상봉 교수가 자기비판으로 쓴 책 <영성 없는 진보>를 내놓았다. 소제목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생각함>이다.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온 예수처럼, 김상봉은 진보 진영에 폭탄 같은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하 칼럼에 나오는 괄호 안의 숫자는 김상봉 교수 저서 <영성 없는 진보>의 해당 페이지임)
우리 역사 살린 것은 공동선을 위한 자기희생 덕분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7). 대다수 한국인은 한편에서 과도하게 정치적이지만, 다른 한편에서 한국의 정치가 위기 상황이라는 것에는 의외로 둔감하다(8).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기에, 아시아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였던 한국의 민주주의가 순식간에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일까?(8).
한국 정치의 파행은 영성의 부재에서 비롯된다(9). 하지만 정치와 영성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 이전에 영성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영성이 정치와 어떤 식으로든 상관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왜 보수가 아니라 진보 진영의 문제인가?(9).김상봉 교수 지음 [영성 없는 진보] 책표지.
영성은 나와 전체가 하나라는 믿음을 의미한다(10). 짧게는 해방 이후, 길게는 동학 농민혁명 이래, 이 나라의 진보적 정치활동이란 ‘전체를 위한 자기희생’이었다(11). 해방 이후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만 놓고 보더라도, 독재 권력의 철권통치에도 불구하고 끝내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독재에 맞서 싸운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12). 우리의 역사가 돌이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져들지 않고 의미 있는 진보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고통에 응답하고, 우리 모두의 선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 사람들이 이 땅에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12).
80년대 이후 맥 끊긴 신앙과 혁명적 진보운동의 결합
한국인이라면 동학 농민혁명에서부터 광주 5.18까지 이 땅에서 정치적 실천이 종종 종교적 운동과 결합되어 있었던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15). 19세기 이래 다른 나라에서는 진보적 정치행위가 세속주의에 의거하고 있었던 데 반해, 이 나라에서는 종교적 신앙이 혁명적 진보운동의 토양이 되었던 것은 한국 근현대 민중운동 역사의 특별한 개성이다(16).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이 전통은 끊어진다(16).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오늘날 우리는 어디서도 나와 세계가 하나라는 믿음도, 그 믿음에 근거하여 전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정신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16).
이 나라의 보수 정치에는 전체의 선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다는 정신 자체가 없으므로 믿음이나 영성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18). 그들은 전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18). 우리가 사는 나라를 바로 우리 자신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으로 만들어,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집단적 자살을 향해 치닫고 있는 지금, 이성의 언어만으로는 결코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20).
조선 왕조가 썩은 흙담처럼 무너져 가던 시절, 동학이라는 새로운 믿음의 언어가 필요했던 것처럼, 국가가 아니라 민족 자체가 소멸의 위기에 처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절망적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어떤 믿음이다(20). 새로운 믿음은 우리가 지금까지 형성해온 역사의 의미를 믿음의 관점에서 해명할 때 우리에게 도래할 것이다. 그 역사는 우리가 수난과 저항과 투쟁 속에서 형성해온 우리 자신의 역사이다(118).
전태일과 서준식을 채운 것은 이념 아닌 종교적 영성
한국의 진보적 민중운동이 다시 대중적 참여를 견인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 전태일의 분신 이후라고 말할 수 있다(74-75). 그를 분신으로 이끌었던 것은 계급의식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적 사랑이었다(75). 전태일에게서 그 믿음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순수한 그리스도교적 신앙이었다(77). 전태일을 전태일 되게 만든 것은 자기 개인의 가난과 고통이 아니라 세계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인 것이다(75).
그에게 타인은 자기와 관계없는 타자가 아니라 ‘나의 전체의 일부’였으며, ‘나의 또다른 나’였다. 그는 배고픈 어린 여공들에게, 자신이 버스비로 써야 할 돈으로 붕어빵을 사 주고, 청계천 평화 시장에서 도봉산 기슭 집까지 걸어갔다. 차비를 털어서는 여공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자기의 한쪽 눈을 판 돈으로 착취 없는 공장을 만들려 했다. 그 시도조차 좌절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몸을 불살라 어두운 세상을 밝혔다(13-14).
역사의 진보를 위한 투쟁의 가장 치열한 전선에서 싸우면서도, 지난날 안중근이나 백범 김구 같은 위대한 정신이 보여 준 영성을 가장 탁월한 전범으로 보여 준 이가 서준식이다(80). 전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7년 간 감옥에 갇혀 있었던 유물론자에게 종교가 왜 중요한 문제였던 것일까?(81). 그가 천착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예수의 삶이었다(80). “특히 복음서 부분은 소외되고 신음하는 세상 사람들의 인간적 해방을 바라는 자가 몸에 지녀야 할 고귀한 윤리의 보고이다“라고 서준식은 옥중 서한에서 고백한다.
보수는 문제만 일으키고 해답은 내놓을 생각도 없고, 진보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지만 해답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고 김상봉은 말하고 싶은 것일까.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진보운동의 변질이나 타락을 비판한다 하더라도, 불의에 대항하여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싸웠던 사람들과 그들의 시대에 대한 감사와 존중의 감정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87). 김상봉은 진보를 단순히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가 진정한 희망을 제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아직 때 이른 말이다. 지금은 아직 밤이니, 우리는 아직 깨어 기다려야만 하리라. 머지 않아 새벽이 올 때까지”(118).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상춘재 앞에서 종교지도자 오찬 간담회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3.12. 연합뉴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오늘날의 한국 종교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이 사랑이라면(66), 한국 종교에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은 있는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이 있다면, 한국 종교는 윤석열 검찰독재 정권에 왜 저항하지 않는가. 고통받는 사람들과 일치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종교인들이 언젠가 진보 흐름에서 거의 사라져 버렸다. 90년대 이전 한국의 진보적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종교인들은 어느새 구경꾼 신세로 추락하고 말았다.
갈릴래아 예수는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자비로웠다면, 예루살렘 예수는 억압하는 사람들에게 저항했다. 예수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철이 든 것이다. 예수는 자비 영성에서 출발하여 저항 영성에 도달했다. 예수 영성은 자비 영성과 저항 영성이다. 자비 없이 저항 없고, 저항 없이 자비 없다.
나는 김상봉 책 소제목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생각함>에서 한국 종교의 위기를 생각하고, <영성 없는 진보> 책 제목에서 진보 없는 영성을 떠올린다. 한국 종교의 위기는 영성 없는 진보 때문이 아니라 진보 없는 영성 때문에 생겼다는 말이다. 지금 한국 종교에, 진보는 둘째치고, 영성이나 제대로 있기는 있을까. 내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 종교에 영성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