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6

불상의 모습 … 한일고금비교론 ⑤ - 대학지성 In&Out

불상의 모습 … 한일고금비교론 ⑤ - 대학지성 In&Out:

불상의 모습 … 한일고금비교론 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승인 2023.09.10 14:11


[조동일 칼럼]

불상은 불교에서 신앙하는 부처, 羅漢(나한), 菩薩(보살), 神將(신장) 등의 모습을 조각한 조형물이다. 인도에서 생겨나 서역을 거쳐 중국에 전래되고, 다시 한국과 일본에 이식되어, 그 모습이 같고 다르다. 같은 것은 불교의 공통점이고, 다른 것에는 제작자의 성향이 나타나 있다.

마음에 지닌 소망을 경배의 대상으로 하려고 제작한 조형물이 불상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일본과 한국의 불상이 다른 것은 일본인과 한국인의 內心(내심)을 각기 보여주기 때문이다. 內心 비교를 불상에서 특히 선명하게 할 수 있다. 공통점을 매개로 차이점을 확인하는 방법을 사용하기에 이것보더 더 좋은 대상을 찾기 어렵다.

일본 불상에 한국 것과 아주 같은 것도 있다. 京都(쿄토) 廣隆寺(토우류지)의 彌勒半跏思惟像(미륵반가사유상)은 한국의 彌勒半跏思惟像과 木彫(목조)와 石彫(석조)라는 것만 다르고, 다른 모든 점에서는 구별할 수 없다. 그 이유가 한국의 불상을 일본으로 가져갔기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나무가 한국산임을 밝혀 입증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비교고찰의 대상이 아니다.

두 나라 불상의 대표작은 奈良(나라) 東大寺(토우다이지)와 慶州(경주) 石窟庵(석굴암)의 大佛(대불)이다. 이 둘은 가장 존중되는 부처의 거대한 坐像(좌상)을 수도에 모셔, 신앙의 구심체 삼고 최고의 문화재로 존중하는 공통점과 함께 많은 차이점이 있다. 여러 면에서 비교하는 말을 표를 만들어 정리한다.


이 모두를 아우르는 말은 ‘홀로’와 ‘더불어’이다. ‘홀로’는 중앙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몸집을 최대한 키워 지배하는 위엄을 보인다. ‘더불어’는 산 위 석굴에서 동쪽을 향해 새로운 기운을 맞이하며, 적절한 크기로 원만한 조화를 보여준다.

한국에는 石佛(석불), 일본에는 木佛(목불)이 많아 서로 대응된다. 이 점이 위의 두 불상에서는 모호하게 나타나지만, 다른 많은 경우에는 분명하게 부각된다. 좋은 돌과 나무가 각기 특산이어서 생긴 소재의 차이점이, 마음을 다르게 나타내는 조형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단단한 돌은 쪼기 어려워 잔손질을 할 수 없다. 나무는 부드러워 기교 자랑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 결과 아주 다른 불상이 생겨났다, 가까이서 보면 눈에 들어오는 모습이 石佛은 거칠고, 木佛은 정교하다. 멀리서 보면 주는 느낌이 石佛은 흐뭇하고, 木佛은 괴이하다. 이런 것이 두 나라 사람의 마음가짐과 맞아들어간다.

일본의 木佛이 어느 정도까지 정교하고 괴이한지 가장 분명하게 알 수 있게 하는 곳이 있다. 京都에 있는 사찰, 건물 길이를 일컬어 三十三間堂(산주선겐도우)라고 하는 곳이다. 그 안에 (가) 本尊(본존)인 千手觀音(천수관음) 坐像(좌상) 양쪽에 (나) 각기 500개의 觀音, (다) 28部衆(부중)의 立像(입상)이 있다.

(가)는 크고 우람한 자세로 앉아 있어, 권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 이상으로 할 말이 없게 한다. (나)는 꼭 같은 모습, 일사불란의 차렷 자세로 정렬해 있는 병사들 같고, 무어라도 해도 순종할 듯하다. (다)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약동하며 온갖 변덕을 다 부리도록 한 조각 솜씨가 아주 뛰어나다. 雷神(뇌신)은 아주 무섭게 팔을 휘두르며 노려본다. 乾達波(건달파)라는 놀이의 신은 짐짓 찌푸린 얼굴, 부릅뜬 눈으로 겁을 주는 척한다.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너무나도 많아 기가 질리게 한다. 무겁기만 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복종하게 한다. 보살은 격식에서 벗어난 부드러운 모습을 하고 있어야 중생이 친근하게 생각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神將들은 구석진 곳에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로 축소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다.

한국 永川(영천) 居祖寺(거조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절인데, 羅漢像(나한상)이 많이 있는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본 三十三間堂의 觀音像 1,000개와 이 절의 羅漢像 526개는 같은 모습을 여럿 만들어놓은 공통점이 놀라게 하는 표면적인 이유이다.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두드러져 일본과 한국이 얼마나 다른지 말해주는 것이 놀라게 하는 심층적인 이유이다.


이것은 ‘홀로’와 ‘더불어’의 다른 표현이다. ‘홀로’의 의의를 역설하려면 東大寺 大佛에서와 같이 몸집을 키우기도 하고, 三十三間堂 觀音像에서 하듯이 같은 것을 되풀이하기도 한다. ‘더불어’는 서로 다른 것들이 공존하면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 양상은 경우에 따라 많이 다르다. 石窟庵 大佛이 보여주는 相生(상생)의 조화만 있지 않고, 相克(상극)의 조화 또는 부조화인 조화도 있다. ‘더불어’가 부조화의 조화까지 나아가면, 일본의 ‘홀로’와 아주 달라진다. 居祖寺 羅漢像이 그 본보기를 잘 보여준다.

일본인과 한국인이 너무 다르다고 한탄할 것은 아니다.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지 말고 서로 다른 것을 실상대로 알면, 이해하고 포용하는 길이 열린다. 相克이 큰 만큼 相生도 커져 커다란 조화를 이룰 수 있다.

眞僞(진위)나 優劣(우열)을 가리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양쪽이 각기 동아시아문명의 진폭을 확대한 공적이 있다고 평가해야 한다. 그 덕분에 인류가 생각을 넓힐 수 있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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