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
《천부경(天符經)》은 대종교의 경전 중 하나로, 1975년 교무회의에서 채택되었다. 현재는 환인(桓因)이 환웅(桓雄)에게 전하여 지금까지 내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1917년경 최초의 등장 시에는 단군교의 경전이었다. 실제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17년으로 단군교(檀君敎)에서 처음으로 언급, 유포하기 시작하여 1920년경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 1921년 단군교의 기관지 《단탁》에 의해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대종교에서는 한참 후인 1975년이 되어서야 기본 경전으로 정식 채택하였다. 대종교에서는 단군 시기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이라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사학계에서는 위작이라 보고 있다는 관점이 있으나 이에 대한 드러난 합의는 없다.
전문 81자로, 난해한 숫자와 교리를 담고 있어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으나 현대 한국의 불교계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은 대체로 고대 한민족의 종교관, 우주관, 철학관을 담아 낸 것으로 고도의 종교성을 띄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전래 및 수용[편집]
《천부경》은 대종교의 중광(1909년)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천부경》이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1917년 계연수가 단군교에 《천부경》을 발견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면서부터이다. 편지에 따르면 계연수는 1916년 9월 9일 묘향산에서 수도하던 도중 석벽에서 《천부경》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1917년 단군교에서 공개한 이후 김용기, 강우 등의 일부 대종교 인사들이 관심을 표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만주의 대종교 총본사는 《천부경》을 경전으로 수용하지 않았다. 해방 이후 윤세복이 귀국하여 대종교를 재건하였을 때에도 역시 《천부경》은 대종교의 경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윤세복의 사후 단군교 신자들이 대거 종단에 참여하게 되면서 단군교 계열의 경전들도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1975년에 이르러서야 대종교는 《천부경》과 《참전계경》을 정식 경전으로 받아들였다.
전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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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은 총 81자이다.[3]
묘향산 석벽본, 태백일사본 | 농은 유집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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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독음 | 원문 | 독음 |
一始無始一 | 일시무시일 | 一始無始一 | 일시무시일 |
판본[편집]
재야사학자인 송호수는 천부경의 여러 판본이 전해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 묘향산 석벽본
- 최고운 사적본
- 최문창후전집본
- 노사 전비문본
- 태백일사본
- 농은유집본
- 민홍규가 2000년에 《뉴스피플》에 기고하면서 알려진 것으로, 민안부(閔安富)의 유품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특이사항으로는 일반 천부경이 아닌 갑골문으로 된 천부경이라고 주장하였다.[7] 하지만 이 천부경의 갑골문은 실제 갑골문과 전혀 다른 위작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8]
비판[편집]
- 단재 신채호는 천부경을 두고 후인이 위조한 것이라 위와 같이 단언하였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위의 언급은 “《천부경》이 위작이 아니라 말한 것”이라고 주장[10]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11]
- 《환단고기(桓檀古記)》의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는 《천부경》이 실려 있다. 그런데 《환단고기》에 《천부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단군교 《천부경》에 따르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환단고기》의 저자인 계연수는 1911년에 《환단고기》를 썼다. 그런데 단군교에 보낸 편지에 따르면, 계연수가 《천부경》을 처음 발견한 때는 1916년이다. 그러므로 계연수는 《환단고기》에 자신이 직접 적어 넣었던 《천부경》을 5년 후에 처음 발견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 단군교는 원래 나철이 음력 1월 15일에 중광한 종교로서 항일운동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10년에 일제에 조선이 병합되기 직전 나철은 대종교로 이름을 바꾸고 만주로 나가 일제와 대립하였다. 이때 이러한 나철의 노선에 반발하였던 정훈모는 수하의 친일파들과 함께 조선에 남아 단군교의 이름을 고수하며 새 종단을 세웠다. 이로써 일제에 대항하는 민족종교인 대종교와 일제의 통치에 순응하는 친일 교단인 단군교가 분리·양립하게 되었다. 현재 최초의 출전으로 지목되는 전병훈의 저서 《정신철학통편》(1920) 에 《천부경》을 전한 윤효정은 당시 단군교의 대선사로 활동하고 있었고, 천부경의 유래를 밝힌 <계연수기서> 에 따르면 계연수는 "《천부경》을 발견, 서울의 단군교당에 전했다"고 하는데, 여기의 단군교당이란 바로 정훈모의 단군교를 말하는 것이다. 더하여 《정신철학통편》에 기재된 《천부경》의 유래는 단군교가 주장한 것과 같은 것으로, 결국 원 출전은 단군교인 것이 확실한 것으로 판단된다.[12]
주해서[편집]
- 김택영(金澤榮), 《소호당전집》, 1922년[13]
- 계연수, 《천부경요해발(天符經要解跋)》, 1899년[14]
- 단해(檀海) 이관집(李觀楫), 《천부경직해(天符經直解)》
- 이유립, 《천부경요해(天符經要解)》, 1953년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 ↑ 《정신철학통편》, 윤창대 주해, 우리출판사, 2004년
- ↑ 현존하는 책 중 '천부경'의 내용에 대해 최초로 거론한 책이다. 천부경의 발견된 경위를 밝혔다.
- ↑ 판본 사이에서 다른 부분은 굵은 글씨체로 표시
- ↑ 단군 천부경의 초기주석 연구, 김주진(金洙眞),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2005년
- ↑ 최치원의 후손인 최국술이 집안에 전해졌다고 주장하는 최치원의 글들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 ↑ 《주해[환단고기]》, 김은수 번역·주해, 가나출판사, 1985년
- ↑ 이를 전해받은 사람 역시 송호수다.
- ↑ 문영, 《만들어진 한국사》, 파란미디어, 2010
- ↑ 1924년에서 1925년까지 발표한 6편의 논문을 모은 것으로, 신채호가 '천부경'에 대해 최초로 거론한 책이다.
- ↑ 박성수, 국학연구원 제 6회 학술대회 "천부경의 철학과 역사적 재해석" 기조연설
- ↑ 문영, 《만들어진 한국사》, 파란미디어, 2010
- ↑ 삿사 미츠아키, 〈한말·일제시대 단군신앙운동의 전개 : 대종교·단군교의 활동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3
- ↑ 金洙眞, 단군 천부경의 초기주석 연구,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2005년
- ↑ 윤창대 주해, 《정신철학통편》, 우리출판사, 2004년
참고 문헌[편집]
-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부 링크[편집]
- 「천부경」,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天符經천부경과 풀이 세 가지」, 한검수·대종교도 모임內 Ψ삼대경전Ψ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