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01

이즈츠, 수피즘, Ch9 Ontological Mercy 존재론적 자애

퀘이커 공부회 Quaker Study Group in Korean (& English) |

崔明淑
이즈츠 수피즘 
Ch 9 Ontological Mercy 존재론적 자애

-지난 두 장에서는 신의 이름에 위계가 있다는 것.. 
낮은 차원의 신의 이름을 높은 차원이 신의 이름이 포함한다는 것이 명료해졌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신의 "이름"은 이븐 알라니에 의하면 그런 이름이 반드시 있다.
 지고한 "이름" 그 이름이 가지는 "성질""하는 일"을 이번 장에서 검토하겠음
신의 자비

-이븐 아라비의 "자비(rahmah)"는 "배려, 관용, 연민, 자비"와는 다른 것.
-존재론적 사실이 "자비" 임

첫 번째 의미;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행위, 사물에 존재를 사물에 존재 부여를 하는 행위.
신은 본성상 관용, 자비가 넘쳐흘러 넘치는 것, 
이븐 아라비는 신의 분노도 인정하지만 자비는 본질적으로 절대자에게 귀속되지만 분노는 절대자의 본질에 포함되지 않다고 한다. 분노는 절대자의 여러 성질이 드러나기 전의 무언가 빠진 형태,, 자비가 분노 앞 있음.

-신의 자비가 존재론적으로 원하는 것에 퍼져 그 원함에게 존재를 부여한다. 그렇게 실현된 원함이 "준비"가 된다. 원형의 "준비"는 원형에게 행하여진 "신의 자비"의 결과이다. 신의 자비는 절대자의 자기 현현의 한 과정.

- 1단계;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기 위한 "준비"를 부여하는 게 1단계,
어떤 것이 어떤 것이라고 인지되기 위해 보이는 일차적 존재 자비로부터 자비 그 자체를 생성.. 따라서 자비가 퍼지는 최초의 대상은 자비 그 자신. 2단계 자비의 대상은 이름의 그 자체성 3단계는 끝없이 생성되는 모든 존재자의 그 자체성-----존재 부여 신학적으로 말하면 "창조"
- 2단계; 자비가 나타나는 이 단계는 “이름 ”혹은 항상 항상 원형의 그 자체의 성질을 확립하는 단계로 자비가 그것들 이름에 존재를 부여한다. 이 단계도 아직 불가 시한 타자기. 1단계 자비와는 다름
- 3단계 자비는 신의 이름이 존재한 2단계와 달리 이름이 실현된 구체적 현실 개체의 자비.
즉, 신의 본질에서 최종적으로 현상된 모든 존재자들 전 세계를 뒤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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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의 선물로 존재 부여를 하는 자비와 다른 인간 본성에 자리한 자비와 가까운 자비도 있다.
그것을 “의무의 자비”라고 하는데 존재론적으로 말하면 이 자비는 각 개체가 “준비”가 된 정도에 따라 차별적으로 주어지는 “자비”. 
“무상의 자비”는 의무의 자비를 포괄한다. 각 개인이 어떤 좋은 행위를 하면 받을 가치가 있는 자비가 의무의 자비처럼 보이지만 이븐 알라비에 의하면 그 자체도 그 행위 자체는 인간이 아니라 신자신이다.

-무상의 선물로서의 자비는 존재자의 선악과 관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는 절대자가 가지는 근본적인 자비가 나타난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선한 것이지 인간이 스스로 주관적 상대적 시점에서 말하는 선과 악은 이븐 아리비에게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마늘냄새를 싫어하는 이유-모양을 싫어하는 것.. 무슨 농담?-천사가 인간의 방귀 냄새를 싫어하는 이유-인간의 구성요소 탓-말똥구리의 예-장미 냄새와 똥 냄새)

-상기의 의미에서 종교적 의미의 선악, 순종, 반역조차도 궁극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것이고 사물이 가지는 두가지 측면에 불과하다.(모세와 이집트 왕 앞에서 지팡이와 뱀) 문맥에 의해 선이 되기도 악이 되기도…
-자비의 두 가지 작용중 하나는 존재를 부여하는 자비와 각각의 사물에 절대자의 본질이 스스로의 가능성과 호응해 존재를 획득하는 자비. 자비의 움직임은 우선 자비 그 자신에게 나타나고 자기 자신의 존재론적 자비를 행사하고 자비는 각각 종교 속에서 창작된 절대자에 존재를 부여한다.

-이븐 아라비는 자비를 구하는 자를 두가지로 나눈다. 
베일에 싸여진 사람과 안 싸여진 사람. 
베일에 싸여진 사람은 스스로의 주에 이것울 달라 저것을 달라고 원한다. 이브아라비는 이것을 실상을 모르는 어리석은 행위. 
베일에 안 싸인 사람(깨달은 자)는 ”알라여 우리에 자비를 주세요 “ 
이말은 자비깊은 사람이 다른사람에게 자비를 보이는 형태의 자비가 아닌 , 
알라라는 이름이 내포한 보편적 자비를 스스로 주체적으로 의식할 수 있게 자비를 받는 수동적 상태를 초월해 자비를 주는 위치에 자기를 두는 것이 원하는 것이다.
신이 숨을 불어넣는 현상; 신의 원래 자기 안쪽에 있었던것을 있어라라는 말로 바깥으로 내보내안에 있던 신 자신이 밖으로 나가 존재 하게 된다. 
이븐 아라비아의 견해로는 자비의 숨결은 과거 어느 지점에서 한번만 일어나는것이 아니라 쌓여있던 숨이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는 스스로의 압력에 의해서 분출하는 과정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자연”은 자비로운 자의 숨결. 최고의 형태에서 죄저의 형태까지 모두 숨결속에서 나타난다. (”신의 숨“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른 것, 4원소는 자연의 형태, )

-“사랑”은 “자비”와 같은 개념이지만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면 
“사랑”은 신학적으로 보면 신이 세상을 창조한 동기이며 
이븐 아라비의 존재론으로 보면 신이 자기를 드러내는 원동력이다.

“신은 숨겨진 보물, 나는 알려지는 것을 원한다, 
따라서 나는 피조물을 창조해 나 자신을 그것들에게 알리어 주었다. 
그러자 그것들은 실제로 나를 알았다”

-진리를 아는 자의 눈으로 보면 
존재하는 모든 차원에서 일어나는 운동현상이 사랑에 의해서 일어난다. 

사랑의 움직임이 없으면 모든 것은 정지상태, 즉 비 운동의 상태일 것이다. 
운동하지 않음은 “비존재”를 의미한다.

비 존재의 상태에서 존재의 상태로 운동해가는 운동은 사랑의 운동다. 
절대자가 스스로를 다로 나누어 나타나 생성되는 “있음”을 완전하게 이끈다. 
세계의 운동은 완전하게하는 “사랑”에서 태어났다고 이해해야 한다. 
이븐 아라비는 “사랑”이라는 개념과 “자비”의 숨결이라는 개념을 연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