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4

Kang-nam Oh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예습 - 존재의 바탕 [the ground of being] - 신성 [Godhead]

 Kang-nam Oh -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에서 다음달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읽는다고 하여 예습삼아...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에서 다음달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읽는다고 하여 예습삼아 읽어보시라고 제가 <종교, 심층을 보다>(2011, 현암사)에 실었던 글 하나 옮깁니다. 신에 대해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피상적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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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터 에크하르트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전통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를 꼽으라면 거의 모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를 꼽을 것이다. 그는 그 당시까지의 신비사상을 모두 통합하고 그 이후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독일 남서부의 투린기아 주 호크하임(Hochheim)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15세에 도미니크회 수도원에 들어갔다. 처음 에르프르트에서 훈련을 받고, 곧 쾰른으로 옮겨가 같은 도미니크회 신학자로서 막 세상을 떠난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의 저작을 공부했다. 파리에서 공부를 끝내고 1302년 42세에 ‘마이스터'가 되고 이때부터 그는 요한네스 에크하르트라는 이름 대신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도미니크회 수도원에서의 봉사 기간이 끝나고 1311년 그가 51세 되던 해부터 파리, 스트라스부르그, 쾰른 등지에서 가르치면서 훌륭한 설교가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1314년 이후에는 라인강 계곡에서 관상기도에 전념하는 수녀들에게 설교하는 일에 힘썼다.
그러던 중 그가 66세 되던 해 도미니크회에 극히 비우호적이던 프란체스코회 소속 쾰른의 대주교로부터 이단적 가르침을 전한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쾰른에서 재판을 받고, 이어서 그 당시 아비뇽에 있던 교황에게 상소했지만, 최후 판결이 나기 2년 전인 1327년 세상을 떠났다. 최후 판결에서 그의 사상을 요점적으로 정리한 28개 조항 중 17개 조항은 이단적이고, 나머지 11개 조항은 완전히 이단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 어투로 보아 역시 개탄스러운 것이라 했다. 
에크하르트는 그의 변론에서 “나는 오류를 범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나는 이단일 수 없다. 전자는 지력에 속하는 것이고, 후자는 의지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기가 가르치는 것은 ‘발가벗은 진리’ 뿐이라고 했다.
아무튼 이런 유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향력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의 저작들을 공개적으로 회람하거나 토의할 수는 없었다. 이 때문에 세월이 가면서 그의 저작 중 상당수가 훼손되거나 분실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855년 오스트리아의 어느 학자가 그의 독일어 저작을 수집하여 책으로 출판하였는데, 그 때 이후 그의 저술이 다시 활발한 연구 대상이 되고, 또 그의 영향력이 다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80에는 도미니크회에서 그의 가르침에 대한 모든 검열의 중단을 공식적으로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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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신비주의자와 마찬가지로 에크하르트도 신의 초월성과 동시에 내재성을 강조했다. 여러번 지적한 것처럼 신의 초월만 강조하는 것은 유신론이고, 내재만 강조하는 것은 범신론이지만, 초월과 내재를 동시에 강조하는 것, 초월이며 동시에 내재이고, 내재이며 동시에 초월임을 강조하는 것은 ‘범재신론(panentheism)으로서, 에크하르트는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용어를 쓰기는 했지만 그의 사상 전체를 볼 때 그의 입장은 결국 이런 범재신론적인 것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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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하르트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앞에서 말한 위 디오니시우스에게서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영혼이 신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말은 그의 존재에 대한 진정한 진실을 내포하고 있지 못하다....우리가 신에 대해서 말하는 무엇이나 그것은 신과 직접 상관이 없는 것이다. 신은 우리가 그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오히려 말하지 않는 바의 무엇이다.”
무한의 신은 모든 말을 초월한다는 뜻이다. 불교적으로 하면 언설을 이(離)한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는 뜻이고, 〈도덕경〉 식으로 말하면 제1장 첫머리에 나오는 것처럼, “말로 할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라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궁극 실재 [ultimate reality] 를 에크하르트와 그가 속했던 독일 신비주의 학파에서는 ‘Nichts’ ['Nothing']라고 했다. ‘무(無)’나 ‘공(空)’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에크하르트 자신의 말로 “신은 모든 유한한 존재보다 높다. 최고의 천사가 벌레보다 더 높은 것처럼... 신은 이것이라 할 수도 없고 저것이라 할 수도 없다.” 힌두교 베단타에서 말하는 ‘네티 네티(neti-neti)’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표현과 같은 ‘부정의 신학’ 계통이다.
그러나 에크하르트는 신을 완전한 비실재로 보기보다는 모든 존재의 바탕 [the ground of being] 으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신은 선하지도 않고, 더 선하지도 않고, 최고로 선하지도 않다.” 성경 마태복음 19:17에 보면 ‘선한 이는 오직 한 분’ 곧 신 이외에는 선한 자가 없다고 했지만, 이것은 신이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낼 경우에 한한 것이지 신의 본성 자체에 있어서는 선악 같은 모든 속성이나 분별을 초월하기 때문에 선하다거나 더 선하다는 등의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의미에서 신은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고, 오로지 조용함과 침묵 속에서만 가능한 신비적 체험을 통해 알 수 있을 뿐이다.
에크하르트는 신(神)과 신성(神性)을 구별한다. 신을 라틴어로는 Deus, 독일어로는 Gott, 영어로는 God이라 한다면 신성은 각각 Deitas, Gottheit, Godhead라 한다.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말하는 삼위일체의 신, 창조주로서의 신, 인격이나 선하심 등의 속성을 가진 신, 우리 머리로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신(God)은 어떤 형태로도 나타나지 않는 절대적 실재로서의 신성(Godhead)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신과 신성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고 했다. 힌두교 베단타 철학에서 말하는 훌륭한 속성을 가진 절대자로서의 싸구나브라흐만(Saguna Brahman)과 속성을 초월하는 무속성으로서의 절대자로서의 니르구나브라흐만(Nirguna Brahman)이라는 생각을 연상케 한다. 이렇게 표현 불가능한 궁극 실재를 불교식으로 하면 법신(法身)이라 할 수 있을까?
영혼은 신에게서 나와서 신에게로 돌아가고자 한다. 우리가 의지의 영역에 머무르는 한 신의 선하심만 가지고도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직관이나 통찰의 영역으로 옮기면 그것으로는 부족하고 오로지 신성의 차원까지 꿰뚫고 들어가야 만족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의 종교적 경험은 신성으로서의 신을 보는 것으로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될 때 참다운 앎,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고 하였다. “신 자체이신 빛으로 빨려들어 가보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신성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런 경험은 사실 우리 영혼 속에 신의 불꽃, 바로 영혼의 중심이면서 동시에 바탕인 이 불꽃이 다름 아닌 우리 속에 거하는 신 자신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참 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
에크하르트는 이처럼 신성 자체와의 합일을 통해서만이 인간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유한성의 한계를 초극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런 신성 자체와의 합일은 두 가지 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진다.

1] 첫째는 우리의 영혼 속에 ‘신의 탄생’, ‘아들 혹은 로고스의 탄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신의 탄생, 혹은 로고스의 탄생은 지금껏 나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일상적인 ‘나’라고 하는 것이 없어져, 신이 내 삶의 중심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될 때만 가능하다. 이렇게 될 때 인간은 그 가장 깊은 차원에서 신과 하나가 된다.
‘나’ 뿐 아니라 시간에 속한 모든 것에 집착하는 일을 그만두고, 무아와 자비, 겸손의 길을 걸어야 한다. “모든 사물에 한결 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어려운 일을 당해도 넘어지지 않고 풍요로움에 스스로를 잊어버리는 일도 없고, 어느 한 가지에 더 기뻐하는 일도, 어느 한 가지에 더 무서워하거나 슬퍼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이런 모든 일이 가능하게 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신과 하나가 된다. 중세 많은 신비자들이 한결 같이 이야기하는 신화(神化, deification), 우리의 옛 자아가 소멸되고 우리 스스로가 신 자체로 변하는 일이 가능해진다고 했다.
2] 둘째는 ‘관통(breakthrough)’의 단계다.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대로의 신에 집착하는 일마저 거부해야 한다. 신에 대한 상상은 모두 신을 우상화하고 상대화하는 일이다. 모든 관념이나 견해를 떨쳐버리고, 우리의 참된 근원인 영원에 거하기를 배워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위일체 같은 교리에 나타난 신을 넘어서 그것이 상징하는 실체 자체로 뚫고 들어가야 한다. 인간이 감행해야 할 최후 최고의 이별은 그가 신을 위해 신과 이별할 때라는 것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신을 넘어서는 신, 곧 ‘신 너머의 신(God beyond God)’을 체험해야 한다는 뜻이다.
신과 하나가 되는 일, 혹은 신이 되는 일은 영혼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다. 에크하르트는 그의 설교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혼이 신과 합일하는 일은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에 거의 믿을 수가 없다. 신은 그 자신 너무나도 높으셔서 어떤 형태의 지식이나 욕망도 그에게 미치지는 못한다. 
욕망은 깊고, 한 없이 깊다. 그러나 지성이 파악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욕망이 바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신일 수는 없다. 이해와 욕망이 끝나는 지점, 거기에 어둠이 있고 거기에 신의 찬연함이 시작된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강조한 ‘믿음으로만(sola fide)’이라든가, 헤겔이 말하는 절대자 개념, 하이데거가 말하는 ‘놓음(Gelassenheit, letting-go)’ 등도 에크하르트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20세기 서양 신학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폴 틸리히(Paul Tillich)가 신을 ‘존재의 바탕’으로 보았다든가, ‘신 너머의 신’ ‘신의 상징으로서의 신’ 등의 개념을 강조한 것 등 많은 면에서 에크하르트에게 빚을 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실 에크하르트의 사상이 힌두교 베단타의 샹카라 철학과 너무나도 비슷하여 종교학의 대가 루도르프 오토(Rudolf Otto)는 〈Mysticism East and West〉라는 책을 내었고, 또 그것이 선불교 가르침과 너무나 비슷하여 선불교를 서양에 소개한 스즈키(D. T. Suzuki)는 〈Mysticism Christian and Buddhist〉라는 책을 낼 정도였다.

Sejin P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