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29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참된 영성이다 - 뉴스앤조이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참된 영성이다 - 뉴스앤조이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참된 영성이다 
파커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글항아리)

이원석  | 2015.12.14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글항아리)는 <뉴스앤조이> '톨레레게' 12월 21일(월) 모임에서 나눌 책입니다. 톨레레게에 참가하길 원하시거나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면 글 아래를 참고해 주세요.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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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에 어느 정도 관심 있는 독자라면 거의 다 파커 파머(Parker J. Palmer)를 알 것이다. 기독교 교육학자로 시작한 그의 경력은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To Know as We Are Known>(IVP)을 통해 나래를 단다. 이 책은 비교적 얇은 지면 속에 교육의 영성적 차원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담아낸 걸작이다(서문에 소개하듯이 여기에는 헨리 나우웬의 영향이 스며 있다). 이로 인해 교육학계의 구루로 거듭난 그의 포지션은 <가르칠 수 있는 용기 Courage To Teach>(한문화)로 귀결된다(아마도 이 제목은 폴 틸리히가 예일대에서 했던 테리 강연을 책으로 묶어 펴낸 저작, <존재에의 용기 Courage to Be>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정치, 영성, 마음




▲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파커 파머 지음 / 김찬호 옮김 / 글항아리 펴냄 / 328쪽 / 1만 5,000원

 
갈수록 확장되는 파커 파머의 영향력은 교육의 장을 넘어 사회 전체를 향하게 된다(또한 이에 따라 그의 접근 방식은 기독교적 언어와 개념을 넘어 개방적이고 포괄적으로 진전하게 된다). 그러한 결실이 바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글항아리)이다. 민주주의를 열렬하게 추구하는 미국 시민의 한 명으로서 써낸 이 작품 이면에는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퀘이커 교도(202쪽)로서의 영혼이 불타오르고 있다. 따라서 "폭력은 절대로 답이 될 수 없다"(36쪽)는 게 그의 타협할 수 없는 신념이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은 정치를 다루지만, 실제로는 영성을 강조하는 책이다.

정치와 영성이 마음이라는 단어에서 수렴된다. 이와 관련해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의 원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제('민주주의의 마음을 치유하기 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를 구성하는 세 단어(민주주의, 마음, 치유) 모두가 중요하다. 사실 역서의 제목은 서문의 제목(The Politics of the Brokenhearted)을 풀어 옮긴 것이다. 파머는 마음이 상한 자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은 곧 마음이 상한 자들이 정치적 주체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것은 링컨이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향해 상한 마음을 개방해 나갈 때 실행했던 정치다."(38쪽)

마음의 치유에서 정치적 용기로

마음(heart)은 "자아의 핵심을 가리"(38쪽)키며, 여기에서 지정의가 통합된다. heart의 어원은 라틴어 cor인데, 이는 courage의 어원이기도 하다. "우리가 자아와 세계라고 이해하는 모든 것이 마음이라고 불리는 중심부에서 하나가 될 때 자신이 아는 바에 따라 인간적으로 행동할 용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38쪽) 마음과 용기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치유가 발생한다. 마음이 상한 자들, 곧 비탄한 자들이야말로 우리와 너희, 당위와 현실의 간극을 오롯이 껴안으며 긴장을 감수하는 이들이다. 이때 필요한 덕성이 바로 용기이다. 원서의 부제가 보여 주듯이 우리에게는 '인간 영혼에 조응하는 정치를 창조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한 면으로 미국적 덕성이다. 미국 개척의 역사는 스스로 돌보고(self-help, 자기 계발), 스스로 지키는 태도를 미국적 삶의 기본자세로 만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 면으로 보면, 용기는 예언자적 덕성이다. 예언자는 강자 앞에서는 강하지만, 약자 앞에서 온유(배려)하다. 약자와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는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예수님이 양과 염소를 가르는 기준이 바로 소자(약자)를 대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강자 앞에 당당하게 서고, 약자 곁에 함께 서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용기이다.

나아가 용기의 미덕은 국가를 바르게 세우는 주요한 토대가 된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뿐'이라는 선언은 어디로 갔는가? 폭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에는 적어도 그만큼의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언제쯤 깨닫게 될까? (중략) 국가의 위대함을 가늠하는 척도는 강자가 얼마만큼 성공하느냐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약자를 얼마나 잘 지지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왜 이해하지 못하는가?"(33쪽) 약자를 지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렇게 예언자적으로, 아니 "인간적으로 행동할 용기"(38쪽)가 부재하는 이유는 마음의 통합(치유)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마음

상한 마음의 치유를 개인적 맥락으로 한정해서는 곤란하다. 원제가 말해 주듯이 민주주의의 마음 또한 치유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폭력이 가해지는 상황은 언제나 치유를 요청한다. "군인들의 마음에 가해진 폭력은 자아와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부숴 버린다. 그리고 폭력은 전쟁터에서만 가해지는 것이 아니다. (중략) 따라서 정치에서 상대방을 악마화하거나, 절박한 인간적 요구를 무시한 채 정치적으로 편리한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40쪽)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정치는 게임이거나 투쟁일 것이다. 하지만 참된 정치는 그저 자기 욕망을 따르는 게임도 아니고,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투쟁도 아니다.


"제대로 이해한다면 정치는 절대로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창조하기 위한 오래되고 고귀한 인간적인 노력이다. 거기에서는 강자만이 아니라 약자도 번영할 수 있고, 사랑과 권력이 협력할 수 있으며, 정의와 너그러움이 함께 실현될 수 있다." (41쪽) 이러한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마음이 치유되어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는 항상 위기에 처해 있다"(43쪽)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파커 파머는 "민주주의는 끝이 없는 실험이고, 그 성과는 결코 확신할 수 없다"(15쪽)고 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민주주의가 "시민이 이룩한 최고의 정치적 성취"(18쪽)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렇게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두 가지가 요청된다. 한 면으로 대중매체가 시민의 정치적 무력감을 조장하는 방식에 저항해야 하고, 다른 한 면으로 창조적(생산적)으로 긴장(갈등)을 끌어안는 "마음의 습관"(17쪽)을 들여야 한다.

'마음의 습관'이라는 용어는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한길사)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이 습관, 즉 우리를 통제하는 습속인 아비투스(Habitus)가 민주주의를 형성하고 지탱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형성을 위해 제도적 차원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마음의 차원이다. 파커 파머는 우리 생활을 지탱하는 여러 물리적 인프라가 소홀하게 취급되는 이상으로 무심하게 다루어져 왔던 민주주의 인프라의 두 층위에 주목한다. "인간의 마음이 지닌 보이지 않는 역동 그리고 그 역동이 형성되는 가시적인 삶의 현장들이 그것이다."(43쪽) 그러니까 민주주의가 부흥하기 위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곳은 무엇보다도 마음이다.

우리의 마음이야말로 민주주의 형성과 지속, 그리고 부흥을 위한 참된 출발점이다. "각자 안에 존재하는 마음을 통해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우리가 서로에게 구성원임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갈등을 끌어안을 수 있다."(43~44쪽) 정상적인 민주주의는 인간 사이와 집단 사이의 갈등을 전제한다. 이러한 갈등은 당연히 인간의 마음을 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파커 파머는 이렇게 마음이 깨어지는 가운데 마음이 열릴 수 있다고 본다. 바로 여기에서 정치가 시작되어야 한다. 마음이 열릴 때, 다시 말해 마음이 치유될 때에 인간적으로 행동할 용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정치란 권력을 사용하여 삶에 질서를 함께 부여하는 행위로서, 심층적으로 하나의 인간적인 기획이다. 마음이 부서져 흩어진 게 아니라 깨져서 열린 사람들이 정치의 주축을 이룬다면, 보다 평등하고 정의롭고 자비로운 세계를 위해 차이를 창조적으로 끌어안고 힘을 용기 있게 사용할 수 있다." (57쪽) 민주주의의 교육

정치의 영성적 차원을 다루는 파커 파머의 논의는 넓고 깊다. 각 장마다 풍요로운 통찰이 숨어 있어서 여기에서 자세하게 다루는 것조차도 벅차다. 여기에서는 민주주의 교육 공간에 대한 파머의 논의를 소개하는 것으로 한정 지으려고 한다. 민주주의의 형성과 지속은 창조적으로 긴장을 끌어안는 마음의 습관을 형성하는 데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한 양육 공간으로 그가 제시하는 것이 바로 학교와 종교 공동체이다. 교회와 학교는 우리를 내적으로 바로 형성하거나 일그러뜨릴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세계에 대한 심상을 내면화하게 된다. 이러한 인간 양육의 장은 동시에 시민 형성의 장이 된다.


"종교뿐만 아니라 교육에서도 우리는 미리 정해진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내면 탐구를 수행하도록 여러 방법으로 도와야 한다. 그것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지침과 자원들을 제공해야 한다. 우리는 그런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어떤 마음의 습관을 형성해 가고 있을 것이다." (203쪽) 이를 위해서 교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먼저는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에 담겨 있는 '큰 이야기'를 학생의 삶에 있는 '작은 이야기'와 분명하게 연결시키(206쪽)"는 것이다. 학교에서 5·18 민주화 투쟁을 가르친다면 [?] , 한 면으로 지금 주변에서 일어나는 지역 차별 문제(현실 세계)에, 다른 한 면으로 어둠의 힘이 넘실거리는 학생의 내면세계에 이를 연결해야 한다. 또한 이에 더해 "학교 안에서 민주주의를 실행"(211쪽)해야 한다. "교사에게 요구되는 도전은 시민 교육적 가르침의 실천 모델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를 그런 교육을 지지하는 장소로 바꾸는 투쟁에 앞장서는 것이다."(213쪽)

하지만 사실상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이 그 권위를 찬탈한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이런 제안들을 실행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홈스쿨링이나 마을 공동체에서의 공동 교육 등 해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좋은 대안 교육을 통해서 파머가 제시하는 그림에 근접하는 결실을 얻는 경우도 종종 목격한다. 이는 학교 안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교사와 동료 학생들로 이루어진 올바른 교육 공동체가 인간 형성에 선하게 기여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의 증거로 대안 교육을 제시할 수 있다(물론 대안 학교가 또 다른 귀족 교육으로 전락한 위험성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적 맥락에서 볼 때 학교보다 더욱 심각한 것이 바로 교회다(지금 여기에서 다른 종교 공동체 현실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다). 그저 '개독교'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굳이 다른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안타깝게도 좋은 대안 학교를 찾는 것보다 좋은 지역 교회를 찾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실정이다. 개혁적 성향으로 잘 알려진 교회조차도 많은 경우에 "교회 생활 속에 감춰진 커리큘럼을 바꿔야"(221쪽) 하는 형편에 처해 있다. 목회자와 성도들의 관계 속에서 구현되는 위계적 현실이 강단에서 선포하는 복음적 메시지와 엇갈린다. 많은 설교가 공허한 울림으로 전락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지도자가 일관성 있게 끌어안게 되면 어떤 배움의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겸손함과 뻔뻔스러움의 혼합물을 터득할 수 있게 된다. 그 공동체가 강인해지면서 평신도는 일상생활로 돌아와 신앙과 경험이 서로에게 어떤 식으로 조응하고, 적절한 반응이 일어나는지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226쪽) 

민주주의 동력으로서의 고독과 공동체

미국 교회와 학교도 실은 한국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파커 파머는 미국 교육계와 종교계의 현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교육을 위해 학교와 교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지시한다. 이는 마음의 영역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 제도의 민주주의는 마음의 민주주의를 전제한다. 파머는 마음을 변혁하기 위해 필요한 공간의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를 해방시키거나 제한하는 관념의 공간은 늘 바깥에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안으로부터도 생겨난다. (중략) 관념의 공간이 솟아나는 샘은 인간의 마음이다. 그래서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는 마음을 가리켜 '민주주의의 첫 번째 집'이라고 불렀다."(242쪽)

마음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타자를 압도하는 공포의 순간과 타자를 포용하는 은총의 순간에 그 영향력을 드러낸다. 더불어 다른 힘에 의해 영향 받기도 한다. 우리의 정치적인 개념의 공간을 채우는 것은 주로 대중매체이다. 우리가 스스로 마음을 잘 관리하지 않는다면 미디어가 정치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형성하게 마련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현대인은 미디어가 제공하는 자극적 뉴스에 중독되어 있다. 파커 파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민주주의의 시민이 되고자 한다면 대중매체가 아닌 개인적 경험에 의해 규정되는 개념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 공간에서 안으로부터 들려오는 뉴스를 접할 수 있다."(246쪽)

신화 연구가 조셉 캠벨에 따르면, 누구에게나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온전히 경험하고 말할 수 있는 장소"(247쪽)가 필요하다. 마음속으로 더욱 들어가기 위해 홀로 머무르는 공간을 확보하라는 것이다. "세상의 뉴스는-천국 같은 것이든 지옥 같은 것이든 모두-마음속에서 시작된다."(247쪽) 자기 마음에 대해 알게 되는 만큼 세상을 더욱 잘 알게 된다고 파커 파머는 말한다. 따라서 고독한 묵상의 여정에 생을 바친 수도사 토마스 머튼을 주목하는 것이다. "수도사가 된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절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더욱 깊숙하게 들어가는 것"(247쪽)이다.

또한 고독을 위한 공간에서 더불어 있는 모임으로 나아가야 한다. "민주주의를 작동하게 하는 마음의 습관을 형성하는 차원으로 가면 고독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에게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하는 작은 모임의 안전한 공간도 필요하다."(251쪽) 이는 그런 공간 안에서 "우리가 타인과 함께 자신의 마음을 회복하고, 연습하고 개방할 수 있"고, "그 자리에 모여서 서로에게 더 잘 연결되고, 민주주의의 긴장을 창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만남을 위해 파커 파머는 '신뢰의 서클' 결성에 주력한다. 그는 또한 오바마 대선 캠프가 이러한 나눔을 위한 공간을 제공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영성

이제까지 보여 준 바와 같이 파커 파머는 교사의 교사에서 이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통해 정치의 교사로 우뚝 서 있다. 교육학계의 구루에서 민주주의의 구루로 진화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파머는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영성을 보여 준다. 민주주의는 종교개혁이 새롭게 천명한 복음의 능력을 정치적으로 전유한다. 민주주의는 인간적인 동시에 종교적이다. 영적인 동시에 윤리적이다. 민주주의에 기반한 삶은 곧 낯선 사람과 함께하는 삶이다. 이웃과 공존하고 타자를 환대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촉구하는 윤리적 삶이며, 종교적 사명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효율성이라는 척도로 평가할 수 없고, 인격적 충실함이라는 기준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충실함이 우리의 기준이 될 때 결코 완수될 수 없는 과업에 계속 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정의를 실현하고, 자비를 사랑하며, 사랑스러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300쪽)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하나님나라가 궁극적으로 완성될 때에야 온전히 실현된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성취와 지속의 과업은 구원론적인 것이다. 우리의 최선에 주님의 은총이 임해야 한다. [?] 이것은 파머가 라인홀드 니버의 아래와 같은 인용문으로 책을 마무리하는 이유이다.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생애 안에 성취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진실하거나 아름답거나 선한 것은 어느 것도 역사의 즉각적인 문맥 속에서 완전하게 이해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리 고결하다 해도 혼자서는 결코 달성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301쪽) 그러니까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은 심리학으로 출발하여 신학에서 종결된다. 서문을 우울증의 세 번째 발병(33쪽)과 회복에 대한 회고로부터 시작하는 이 정치적 매뉴얼은 정치의 심리학(치유와 통합)이자 동시에 정치의 신학(구원과 종말)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둘은 하나다. 종교적 영성이 곧 심리적 치유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척박한 정치 현실에서도 역시 민주주의의 영성이 필요하다. 우리의 정치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마음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은 정치 변혁을 갈망하는 시민들의 내면 변혁을 위한 최고의 지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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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 '톨레레게' 12월 2차 모임 참가 신청
12월의 주제는 '정치'입니다.
2차 모임에서는 파커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글항아리)를 읽습니다. 이원석 작가가 모임을 인도합니다. 12월 21일(월) 저녁 7시 30분, <뉴스앤조이> 사무실에서 진행합니다.
톨레레게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아래 참가 신청서를 작성해 주세요^^
●일시: 12월 21일(월) 저녁 7시 30분
●장소: <뉴스앤조이> 사무실
*숙대입구역(4호선) 10번 출구에서 5분 거리, 남영역(1호선) 1번 출구에서 10분 거리. 오시는 길(클릭)
●진행: 이원석 작가
●도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글항아리)
●회비: 5,000원
●문의: 070-7872-2342, newsnjoy@newsnjoy.or.kr
verbs@hanmail.net(이원석 작가)
모임 참가 신청하기(클릭)


이원석 / 작가, 문화연구자, <뉴스앤조이> 편집위원. 한국 교회와 사회의 본질이 교양의 부재에 있다고 보기에 교양 사회의 구축을 사명으로 생각하며 집필과 강의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거대한 사기극>·<공부란 무엇인가>·<인문학 페티시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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