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13
현이동훈 edit@catholicpress.kr
5월 15일은 교회력으로는 성령강림대축일, 대한민국 달력에는 스승의 날과 가정의 날로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이날이 ‘세계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아주 드물 것이다. 심지어 병역거부란 말 자체를 싫어해서 모른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양심적”이란 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경북대 법대 김두식 교수 등 일부 사람들은 “양심에 따른”이나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호하고 있지만, 사회에서는 이미 “양심적”이란 말로 굳어져 있어 이 글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쓰도록 하겠다.
남한사회에서 양심이란 말은 주로 준법정신, 의로운 마음, 상식이 통하는 정신으로 알고 있다. 사실 양심은 일본에서 번역된 말인데 원어의 의미는 남한사회에서 고정된 관념과 다르다고 한다. 바로 ‘개인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원래 의미이다. 윗사람이 부당한 일을 시키거나 집단이 모두 옳다고 하는 것을 아니라고 거부하는 마음과 이 길이야말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군복무나 병역거부나 모두 양심에 따른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남한사회는 형평성을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부정적으로 본다.
대한민국 가톨릭교회 역시 양심적 병역거부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교회의 사회교리엔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고 가톨릭교회 내부에도 신자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몇 명 있다. 가톨릭신자인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나왔을 때 한국남자수도회장상연합회가 관심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선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 이들은 아무리 그래도 군대는 다녀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오순절교회와 여호와의 증인의 집총거부 방식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부유계급의 병역기피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한반도는 아직 정전상태라서 안 된다는 이유도 있다. 한국교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오해와 혐오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 박도식 신부의 교리저서에선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사회에 물의를 끼치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병역의무 이행은 인정하지만 총을 잡는 것은 거부한다. 국방부는 여전히 무기를 잡아야 병역이라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해마다 많은 젊은 남성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감옥에 가고, 전과 낙인이 찍힌다. 심지어 국방행정은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의 젊은 20대 초반 승려에게도 징집영장을 발부 했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유엔 인권위는 남한에 양심적 병역거부권과 대체복무제를 인정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남한 국방부는 공익근무제를 이용해 대체복무제를 인정한다고 속이고 있으며, 여전히 정전상황과 분단상황을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권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거부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권과 대체복무제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나라는 바로 독일과 대만이다. 독일은 1년 징병제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으나, 최근 EU에 속해서 더 이상 징병제는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대만을 언제든 침공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대만은 대체복무제를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장애인인 필자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심을 가지고 공감하는 이유는 군사화된 남한사회 때문이다. 남한사회와 교회는 ‘군대를 다녀와야 남자가 된다’고 말한다. 이 말을 극단적으로 바꾼다면 군대를 다녀오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는 여성이나 장애인, 일부 종파 신앙인, 이주민들은 차별의 대상이며 극단적으로는 혐오의 대상까지 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군가산점 논란이다.
요즘 진짜사나이란 군대예능과 얼마전에 끝난 태양의 후예 열풍에 힘입은 ‘하지 말입니다’란 유행어, 여성과 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한 폭력, 신학대학과 수도회 그리고 대학사회, 직장, 문화의 군사문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부 본당에선 계절 신앙캠프에서 군사훈련 비슷한 프로그램을 하고, 대학교 가톨릭 동아리에선 친목을 이유로 군대 훈련 중 하나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군사문화는 폭력을 몸에 배게 하고 정당화하게 만든다. 남한사회가 세월호 희생자들과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가혹하고 심지어 정신대 피해할머니들에게 가혹한 이유가 군사문화 때문이다.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의 폭력에 맞서고 있는 아나키스트 조약골은 자신의 책 「운동권 셀레브리티」에서 군대에서 통용되는 군사문화를 일반사회로 가져와서 폭력이 된다고 지적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군사화된 폭력적인 남한사회에 평화를 가르치는 스승이다. 질서와 안보라는 이유로 자신의 부모, 형제자매와 같은 국민들에게 폭력이 가해지는 것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생명에 대한 살생 대신 ‘공존’을 외치는 사람들이 바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다. 적대적 공존에 “아니오”라고 말하고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다. 자기만 잘 살겠다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돈을 주거나 해외시민권을 얻거나 몸을 망가뜨려서 병역을 기피하는 부유층 아들과 연예인 그리고 운동선수 같은 병역기피자와는 다르다. 병역거부와 병역기피를 혼동하지 말길 바란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발렌타인데이로 유명한 성 발렌티노 신부, 군대에 대해 신랄하게 비난한 교부 테르툴리아누스와 오리게네스가 있었다. 16세기 유럽 그리스도교 분열 혹은 종교개혁 당시 병역거부를 한 개신교인들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나치독일의 징집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 베트남 전쟁 참전에 거부한 미국 가톨릭 신학생들도 있었다. 군대를 다녀왔음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도와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필자가 아는 분들 가운데 군검사까지 했는데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옹호하는 법학교수도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비난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신의 목숨을 지킨다는 믿음으로 착용하는 군철모나 방탄조끼가 방산비리로 만들어진 제품인 걸 알고 제보한 사람은 양심적인 것인가, 배신을 한 것인가. 군대 내 성폭력을 알린 사람은 양심적인 것인가, 배신을 한 것인가. 경비과장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따른 전의경들은 양심적인가. 방산비리, 군대 내 폭력, 군인자살에 대한 국방부의 만행에 한마디도 하지 않는 군종교구와 군종교구장 주교는 양심적인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병역을 거부했으니 군대에 관한 일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군대 내 인권문제에도 공감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감옥에 다녀온 후에는 감옥인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병역에서의 폭력문제는 곧 자신의 친구, 형제자매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평화의 얼굴」, 김두식, 교양인, 2007
「운동권 셀레브리티」, 조약골, 텍스트, 2011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 하승우, 뜨인돌, 2008
「사랑의 법칙과 폭력의 법칙」, L.N.톨스토이(오만규), 아웃사이더, 2004
[필진정보]
현이동훈 (안토니오) : 가톨릭 아나키스트로 아나키즘과 해방신학의 조화를 고민하며 실천하고 있다. 장애인 인권과 생태주의에도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