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3

일본의 동양 의학 오쓰카 야스오 2000 大塚恭男

일본의 동양 의학 |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53 | 오쓰카 야스오 | 알라딘


일본의 동양 의학 |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53
오쓰카 야스오 (지은이),이광준 (옮긴이)소화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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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장. 동양의학과 서양의학
제2장. 일본 동양 의학의 역사
제3장. 일본의 동양 의학과 중국의 의학
제4장. 동양의 신체관과 질병관
제5장. 본초의 역사
제6장. 한방의 진단법
제7장. 한방약
제8장. 소화기계 질환의 한방 치료
제9장. 산부인과 질환의 한방 지료
제10장. 노인성 질환의 한방 치료
제11장. 소아과 질환의 한방 치료
제12장. 통증의 한방 치료

- 후기-동양의학과 나
- 역자의 말
- 일본의 동양 의학을 떠받친 사람들
- 이 책에 나오는 주 생약
- 한방약의 처방(1일량 단위 g)
- 약력



저자 및 역자소개
오쓰카 야스오 (大塚 康生 )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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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생. 의학박사. 현재 기타자토연구소 부속 동양의학종합연구소 소장. 기타자토연구소 부소장.

최근작 : <일본의 동양 의학> … 총 13종 (모두보기)

이광준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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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석사, 일본 고마자와대학(駒澤大學) 심리학 박사. 전공은 카운슬링, 치료심리학, 선심리학.
백상창신경정신과 임상심리실장, 한림성심대학교 교수, 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외국인 연구원(교수), 하나조노대학(花園大學) 국제선학연구소 연구원, 류코쿠대학(龍谷大學) 강사, 류코쿠대학 세계불교문화연구센터 객원연구원 역임. 현재 서울불교대학원 대학교 석좌교수.
저서로 『반야심경 제대로 공부하기』, 『붓다의 법담학 연구』, 『한국적 치료심리학』, 『일본, 그 문화와 사회』, 『카운슬링과 심리치료』, 『정신분석 해... 더보기

최근작 : <반야경의 사상 개설>,<반야심경 제대로 공부하기>,<붓다의 법담학 연구> … 총 13종 (모두보기)


good introduction

일본 동양의학의 ‘개론서’다. 일본 내 유명 연구소의 책임자이고 임상을 직접 했던 저자가 기초부터 임상 실제에까지 간략하지만 요모조모 잘 지어낸 잘 가꿔진 보석 같다. 그리고 일본 동양의학의 서적과 인맥의 계보도 설명되어 있다. 그 동안 사람 이름만 가지고 보았던 책들의 일본 동양의학사에서의 자리를 가늠할 수 있었다.

독서 동안 자신의 전통의학을 자랑하려고 하는 의도 섞인 어투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 조차도 그가 자신의 전통 문화를 얼마나 아끼고 있는 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우리도 많은 사상과 문화를 중국에서부터 받아들였지만 우리민족의 사람이 손수 만든 것이라면 아무리 중국과 똑같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으로 우리 민족의 수용 사상이 담긴 것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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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ongq 2001-08-14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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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쓰카 야스오의 저작에 관한 기본 정보와 요약 평론입니다.

<저자 정보 및 주요 저서>

<저자의 일본어 표기>
大塚恭男 (おおつか やすお, Otsuka Yasuo)

<다른 주요 저서 (한국어 번역 명칭)>

<동양의학 입문>  
국내도서 - 교보문고

<한방과 약 이야기>

<동서 생약고>

<동양의학의 세계>

<의학사 이야기>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간조 | 스즈키 노리히사 1995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간조 |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11 | 스즈키 노리히사 | 알라딘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간조 |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11
스즈키 노리히사 (지은이)소화1995-11-01



목차


1. 젊은날의 꿈
2. 홀로서다
3. 광야를 외치다
4. 평화의 길
5. 나무를 기르며
6. 코스모스를 기다림



저자 및 역자소개
스즈키 노리히사 (鈴木範久)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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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간조>

최근작 :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간조> … 총 15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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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길이란 예쁘며 착하고 기쁜 삶길





믿음길이란 예쁘며 착하고 기쁜 삶길
[책읽기 삶읽기 39] 스즈키 노리히사,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


우치무라 간조라는 일본사람을 이야기할 때에 으레 ‘무교회주의자’라는 이름을 앞에 붙입니다. 이 이름은 틀리지 않습니다. 우치무라 간조 님은 ‘교회 없어도 되는 믿음’을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치무라 간조 님이 말한 ‘교회 없어도 되는 믿음’이란, ‘교회에 얽매이는 넋’이 아니라 ‘하느님을 참답게 믿으면서 내 삶을 아름다이 일구자는 넋’입니다.


.. 우치무라 간조 하면 어딘지 모르게 근접하기 어렵고, 근엄한 인물을 연상할지 모르지만, 실은 들이나 산에 피는 한 송이 꽃에도 눈길을 돌리고 말을 건네는 사람이었다 .. (7쪽)


하느님을 믿든 부처님을 믿든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믿어야지, 예배당이나 절간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어야지, 하느님 얼굴을 새긴 동상이나 그림을 믿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을 믿는 사람이어야지, 부처님 모습을 새긴 동상이나 그림을 믿는 사람이 될 수 없어요.

조각상이나 그림은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늘 떠올리려고 마련합니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으면서 우리를 보살필 뿐 아니라 우리가 엇나가지 않도록 알뜰히 이끈다고 생각하려고 마련합니다.

거짓스러운 껍데기라는 ‘우상’을 섬기지 않을 노릇이면서,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우상으로 받들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믿음으로 사랑할 넋입니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내 삶으로 녹일 얼입니다. 나 스스로 하느님이 되어야 합니다. 나부터 부처님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 모든 말이 하느님이 들려주는 말과 같아야 합니다. 내 모든 낯빛과 매무새가 부처님이 살아움직이는 흐름과 같아야 합니다.


.. 간조가 그리는 천국에는 거기에 상응하는 노동이 있고, 이 노동의 하나로 교육이 있다. 천국의 교육이 현세의 교육과 다른 것은 거기에는 “정부에 아부하고 국민에게 아양을 떠는” 학자는 없고, “무학이라고 해서 남 앞에 수치를 느낄 필요”가 없으며, 국회의원(간조는 현재의 국회의원으로 천국에 들어갈 자는 거의 없다는 것을 부언한다)과 어린이가 함께 공부한다. 천국에서의 미술은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이상의 발표”이며,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미켈란젤로나 베토벤이다 … 간조가 부정하려 한 것은 서양에서 전해진 기독교에 집착한 서양적인 제도나 의례이다. 그와 동시에 서양의 교파와 선교단체의 지배하에 굴복하고 있는 일본 교회의 체질이다 .. (82, 99쪽)


일본사람 우치무라 간조 님은 적잖은 한국사람한테 믿음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한테는 ‘무교회주의’라는 주의주장을 나누어 주었을 테지만, 어떤 사람한테는 ‘옳고 바르며 착한 삶’이나 ‘예쁘며 참답고 기쁜 삶’을 나누어 주었겠지요.

‘교회 없어도 되는 믿음’이라 해서 ‘교회는 반드시 없애야 한다’는 주의주장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교회가 없어도 되는 믿음이란 교회가 있어도 되는 믿음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있고 없고를 떠나,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착한 믿음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없으면 없는 대로 믿고, 교회가 있으면 있는 대로 믿습니다.

아이한테 젖을 물리면서도 비손을 드립니다. 아이를 토닥토닥 재우면서도 비손을 합니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면서도 비손을 합니다. 조그마한 아이 손에 숟가락을 쥐어 스스로 밥을 떠먹도록 오랜 나날 가르치거나 이끌면서 비손을 품습니다.

삶이 온통 비손입니다. 삶이 온통 사랑입니다. 삶이 온통 믿음입니다.

믿음은 교회 안팎 어디에나 있지, 교회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믿음은 성경책에도 적히지만 성경책에만 붙들리지 않습니다. 믿음은 신부님이나 수녀님이나 목사님만 읊을 수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사랑을 나누는 모든 사람들 착한 가슴속에서 샘솟습니다.


.. 전쟁이라면 모조리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사상에 도달하는 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간조가 오직 성서에 깊숙이 빠져든 결과였다 .. (110쪽)


믿음을 고이 건사하기에 아름답습니다. 믿음길을 걸으며 빙그레 웃기에 아리땁습니다. 믿음씨앗을 솔솔 뿌려 다 함께 하느님나라로 가자고 손을 잡아 이끌기에 어여쁩니다.

하느님나라란 하늘나라일 수 있고 흙나라일 수 있습니다. 두 눈을 감고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 거름이 되어도 하느님나라일 수 있습니다. 나무로 짠 마지막 쉼터에 깃들어 땅속에 깊이 묻혀도 하느님나라일 수 있습니다.

작고 좁다는 가난한 사람 살림집이 하느님나라일 수 있습니다. 시골자락 흙집이 하느님나라일 수 있습니다. 어디나 하느님나라요, 어디나 하느님나라가 아닙니다.


.. 어떤 인간의 전기를 읽거나 쓰는 일은 한동안 그 사람과 마음의 여행을 함께하는 것이다. 더욱 때만 달랐지 그 인물과 몸도 함께 여행하는 것이다 .. (164쪽)


우치무라 간조 님 이야기를 읽는 까닭은 우치무라 간조라 하는 대단하거나 훌륭하다는 사람을 떠받들 생각 때문이 아닙니다. 우치무라 간조라 하는 한 사람이 사랑하려고 한 ‘아름다움’이 무엇일까를 가만히 돌아보면서, 내 삶을 한껏 ‘아름다이’ 북돋울 길을 내 손으로 씩씩하게 일구고픈 기운을 보듬고 싶기 때문입니다.

책읽기란 아름다운 삶을 읽는 즐거운 웃음꽃입니다. 책읽기란 예쁜 꽃송이를 품에 살포시 안으며 활짝 웃다가는 너를 꺾어 품에 안으니 미안하구나 하고 울 줄 아는 눈물바람입니다. (4344.3.4.쇠.ㅎㄲㅅㄱ)


―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 (스즈키 노리히사 글,김진만 옮김,소화 펴냄,1995.11.30./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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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1-03-04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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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불교 | 와타나베 쇼코 1995

일본의 불교 |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5 | 와타나베 쇼코 | 알라딘



일본의 불교 |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5
와타나베 쇼코 (지은이)소화1995-05-01




목차


1. 일본불교를 세운 사람들
2. 일본불교의 실태
3. 여러갈래의 흐름



저자 및 역자소개
와타나베 쇼코 (渡? 照宏)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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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저명한 불교학자. 동경대학교 문학부 인도철학과에서 인도철학 및 불교를 전공했으며, 졸업과 동시에 독일에 4년 동안 유학했다. 귀국 후 동양대학 문학부 교수와 불교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했다. 언어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힌두어와 팔리어에 능통했으며, 불교와 인도 사상 전반에 걸친 연구에 불후의 업적을 남기고 1977년 세상을 떠났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불타 석가모니> 외에 <불교사의 전개> <불교의 자취>, <불교>, <경 이야기>, <법화경 강화>, <유마경 강화>, <석존을 따르는 여성들> 등이 있다. 타고르 시집 <기탄잘리>와 <자타카>를 일본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접기

최근작 : <불타 석가모니>,<경이야기>,<불타 석가모니> … 총 5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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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1

"한국 불교와 일본 불교와의 왕래의 역사를 너무 소홀이 다룬 것이 <일본의 불교>의 큰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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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8

일본 불교 분야 입문서&비판서. 나온지 오래된 책이지만 잘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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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1

[나눔강좌] 9강 – 더불어살기 스스로살기 생태공동체 산안마을 | 녹색연합

[나눔강좌] 9강 – 더불어살기 스스로살기 생태공동체 산안마을 | 녹색연합

[나눔강좌] 9강 – 더불어살기 스스로살기 생태공동체 산안마을

2008.08.18| 행사/교육/공지




산안마을은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구문천리에 있는 농촌마을로서 정식명칭은 ‘야마기시즘사회 경향 실현지’이다. ‘산안’이란 이름은 야마기시 공동체의 정신적 기반이다. 야마기시 미요조(1901~1961)의 야마기시(山岸)에서 온듯하다. 1965년 일군의 사람들이 야마기시즘을 처음 소개한 이래 1984년부터 지금까지 화성에 야마기시즘 실현지를 24년째 이어오고 있다.’경향’이란 이름은 ‘경기도 향남면’의 머리글자를 딴것이라 한다. 야마기시즘은 자연과 인위, 즉 天 地 人 의 조화를 도모하여, 풍부한 물자와 건강과 친애의 정으로 가득 찬, 안정되고 쾌적한 사회를 인류에 가져오는 것을 목적으로 1950년대에 일본에서 시작된 하나의 사회개혁이념이자 운동이다. 이러한 상생의 야마기시즘이 지향하는 사회를 야마기시즘사회라고 하는데 실현지를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야마기시회분들은 ‘공동체’라는 표현을 피하고 대신 ‘일체(一體)사회’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그 까닭은 공동체는 개체의 모임이며 개체가 독립성을 유지한 채 협동과 조정을 통해 그들 사이의 공통관심사나 목적의 달성을 추구하는 조직이나 단체라고 한다면, 야마기시즘에서는 개인과 사회와 우주는 연속적인 것이며 전체로서 하나라고 보기 때문이다.



‘무아집’,’무소유’의 철학으로 8세대 32명(성인 18명, 아이 14명)이 한 가족처럼 일체사회를 이루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 나는 <오래된미래>나 스콧니어링, 헬렌니어링의 책들을 읽으며 ‘지속가능한 삶’ ‘조화로운 삶’ ‘스스로 사는 삶’ 을 꿈꿔왔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극단을 달리는 이 신자유주의의 큰 물결 속에 도시의 파편화된 개인의 삶속에선 그 이상을 실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너무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결코 멈추어지지 않는 소유욕(늘상 ‘광고’들은 외쳐대지 않은가 소유한 것들이 당신임을 드러낸다고, 그러므로 소유하라! MUST HAVE…), 이기심, 무한경쟁, 늘 바쁘게 뛰어다녀도 행복은 저 멀리 도망쳐버리고, 불안은 늘 우리 곁을 따라다닌다.



우리일행을 맞아주신 최창호님께서 이런 야마기시즘의 ‘무아집’ ‘무소유’의 철학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마을곳곳을 안내해주셨다. 꽃과 풀들 나무들이 어우러진 마을길을 따라 첫 번째 가본 양계장은 놀랍도록 깨끗하고, 더운 여름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냄새가 나지 않았다. 닭들은 그들이 가진 본연의 당당함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위풍당당’ 바로 그것이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시스템, 세상 모든 것을 ‘상품’으로 치환하는 자본주의의 생리 속에서는 가능하지 않는 닭의 모습이었다. 야마기시식 양계에서 사고의 초점이 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닭이다. 그 닭이 일생을 통해서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 닭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어야 그 닭이 낳은 달걀을 먹는 우리도 건강해지고 행복해질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상의 모든 삶은 연결되어있다! 우리 모두는 이것을 알면서도 상품과 이윤의 논리로 생명의 대량생산과 소비를 도덕적 회의 없이 저지르고 있다. 참가자 17명은 산안마을에서 두번의 식사를 했는데 마을에서 달걀을 아낌없이 제공해주셔서 삶은 계란, 계란말이를 너무 맛있게 먹었고 너무도 쫄깃하고 맛있는 토종닭백숙을 네 마리나 뚝딱 해치우는 먹성을 발휘했다.





야마기시의 ‘나, 모두가 함께 번영한다’는 상생의 정신은 두 번째 둘러본 채소밭에서도 적용되고 있었다.’天 地 人 의 조화’ 自然과 人爲의 조화’ ‘일체순환’이라는 자연관위에 동식물-인간 일체의 ‘순환농법’으로 짓는다. 당연히 유기농법이며 단순 유기농법을 뛰어 넘는 개념이다. 인간과 자연의 공생공명, 공존공활을 지향하며 ‘자연과의 일체’라는 ‘종합 유기적 일체농업’을 추구한다. 그곳을 지키시는 채소아저씨의 넉넉하고도 맑으며 깊은 우물 같은 모습은 그 땅과 농작물을 대하시는 그분의 철학을 드러내고도 남음이 있었다. 다음날 우리 모두는 가위를 들고 고구마 밭, 파밭의 잡초제거에 2시간여쯤 힘을 모았는데 짧은 노동 뒤의 껍질째 먹는 감자의 맛이라니 단순히 먹는 음식 이상의 기쁨을 함께 먹었다.





산안마을 같은 일체 생활 공동체인 경우 더욱 더 효과적으로 녹색의 삶을 실현할 수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주민들의 작업복은 매우 낡아 보였는데, 의류는 완전히 폐기될 때까지 외출복-평상복-작업복-기름 닦는 걸레 등의 사이클을 거친다. 비닐 등 폐기물의 재활용도도 대단히 높고, 식생활에서도 쌀뜨물은 모아 1차로 식기세척에 이용한 다음 다시 수거하여 돼지 먹이로 준다. 모든 것이 순환 재생되므로 전부가 자원이다. 채소찌꺼기나 콩비지등도 토끼사료나 닭 먹이 혹은 유기질비료로 이용된다. 나는 일주일에 한번 씩 종이와 비닐, 페트병 등을 분리수거하고 매일 음식찌꺼기를 내놓는다. 그것이 진정으로 순환 재생되기를 빌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마을주민과 ‘씨앗나눔’참가자들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한분한분 모두 평온하고 여유 있고 행복해보였다. 그 빛나는 성취에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다. 특히 이 공동체의 놀라운 점은 ‘야마기시즘 특별 강습 연찬회’나 ‘연찬학교’ ‘어린이, 청소년 낙원촌 개최’등을 통해 외부세계에 자신을 개방하며 매우 적극적으로 외부세계와 교류한다는 점이다. 즉 자신의 순수성을 잘 지켜나가면서도 열려있는 공동체로서 외부와 적극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드문 사례로 평가된다. 이러한 개방성은 삶의 총체적인 모순들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대안의 삶을 적극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행복이 소유와 개발과 성장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 신자유주의시대, 자본주의의 극단으로 치닫는 이 세계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성찰적 인식이 필요하며, 그 대안의 삶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만 우리의 미래가 담보 될 것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정신적 물질적 진보를 향한 변혁의 가능성, 그 단초를 나는 ‘야마기시즘 실현지’인 산안마을에서 보았다. 우리를 자상하게 안내해주시고 배려해주신 최창호님을 비롯한 마을 분 모두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 글 : 9강 참가자 홍순영

40년동안 무소유? 전쟁같고 천국같은 기적의 공동체

40년동안 무소유? 전쟁같고 천국같은 기적의 공동체
레드 기획1511호
40년동안 무소유? 전쟁같고 천국같은 기적의 공동체
‘야마기시즘’ 한국 실현지 화성 산안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내가 옳다’는 생각을 소유하지 않는 데 집중”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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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4-05-06



산안마을의 젊은 세대, 김한결(왼쪽 셋째)씨와 이경묵(넷째)씨가 마을을 설명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사람들은 반가워서 어쩔 줄 몰랐다. 머리에 새하얗게 서리가 내린 50~60대 어른들이 아이처럼 웃으며 말했다.


“하나도 안 늙었네!”


2024년 4월20일, 경기 화성시 향남읍 구문천리 산안마을에서 ‘야마기시즘 실현지’ 설립 40돌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38년 만에 다시 만난 사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18년을 살았고 누군가는 9년, 7년 또는 아주 잠시 거쳐갔다. 강화에서 제주까지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떠들썩했고 근처 양계장 닭들은 꼬꼬댁 홰를 치며 난리법석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쌀쌀했다. 따뜻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밥을 먹으니 대가족 잔치가 따로 없었다.



2024년 4월20일 밤 10시를 넘겨 연찬회가 끝났다. 사람들이 “야마기시!”라고 외치며 웃고 있다. 이유진 기자


강화, 제주… 전국에서 모여들어 떠들썩


페미니스트 과학철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인간이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세계를 간파했다. 비인간, 유기체, 죽은 것과 산 것이 서로 연결돼 살아가는 ‘실뜨기의 세계’를 말했다. 그것은 다정한 세계라기보다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새길 수밖에 없는 냉혹한 세계이기도 하다. 이론물리학 박사이자 해러웨이 연구자인 최유미씨는 비인간 타자들과 연결되는 해러웨이의 사상(‘심포이에시스’)을 ‘공-산’이라 번역했다. 함께 만드는 공동체.


야마기시즘 실현지라고 하면 이런 ‘공-산’, 실뜨기의 세계가 떠오른다. ‘무소유·공용·일체’라는 사상 아래 진실하고 행복한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 야마기시즘의 정신이다. 야마기시즘 실현지는 1950년대 일본의 농촌운동가 야마기시 미요조(1901~1961)가 제창한 ‘야마기시즘’을 현실에 구현한 공동체다. 한국을 포함해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스위스, 타이, 브라질 등에 실현지가 있다. 한국의 화성 실현지는 올해로 설립 40년이 됐다. 한국어 표현으로 이 공동체는 ‘산안마을’(야마기시, 山岸)이라 일컫는다. 현재 구성원과 체험자를 포함해 16명이 살아간다.


‘무소유’ 마을이 생겨난 지 4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의구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성직자도 자기 재산이 있고, 무소유를 부르짖는 스님들도 제 밥그릇이 있거늘 어떻게 사유재산 일체를 버리고 필요에 따라 물건이나 공간을 공유하는 삶이 가능한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상하고 공동체 일정에 나의 삶을 따르며 나이와 무관하게 서로 ‘씨’라고 부르면서 평등하고 민주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는 ‘연찬’(硏鑽·연구해 뚫는다는 뜻)을 매일 하는 생활이 가능한가?



2021년 완공한 산안마을 공동체 주택. 각 세대에 따라 조금씩 모양이 다르다. 이유진 기자




마을에 도착하자 뾰족지붕을 한 세련된 주거동이 보였다. 유럽의 영성 공동체나 피정 센터 같은 단정함과 우아한 아름다움이 엿보였다. 2021년 완공된 8채의 공동체 주택 중 1동은 마을 공동 사랑방으로 쓰는 커뮤니티 센터이고 나머지 집은 각 세대원이 산다. 마을 사람들은 무소유 원칙에 따라 가전제품, 부엌이나 거실 같은 생활공간, 자동차를 공유한다. 예전엔 옷가지도 공유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마을 사람 김한결(37)씨는 “요즘은 ‘물질적 무소유’에 집중하기보다 각자 생각이 옳다는 생각을 소유하지 않는 데 집중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전과 달리 종교생활을 하거나 개인적인 물건을 구입하거나, 개인적인 시간도 보냅니다. 우리는 사이좋은 즐거운 생활이 목표고, 소유하고 싶은 생각을 억누르기보다 그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내놓고 검토하는 게 더 삶의 질이 올라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모든 구성원이 한 건물에서 살았기에 그들이 키우는 닭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산다는 얘기도 들었다. 각 세대를 가로지르는 판자벽 하나 정도 있을 뿐이어서 옆방에서 하는 이야기 소리가 다 들릴 지경이었다. 젊은 세대는 변화해야 한다고 느꼈고, 아이들을 좀더 쾌적한 환경에서 키우기 위해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하기로 했다. 새 공동체 주택은 법인 소유 건물이며 세법상으로는 사원용 주택이다.



경제활동의 중심은 양계다. 총 21개 동 계사 가운데 16개 동에서 4만 마리 닭이 하루 2만5천 개의 알을 낳는다. 생협 매장, 택배 판매, 그리고 화성시 소매점에서 달걀이 소비자와 만난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지만 계사 안에는 불쾌한 냄새가 거의 없었다. 산안마을 3세대인 이경묵(34)씨는 “산업적으로는 양계가 매력적이다. 물류도 잘돼 있고, 일도 더 잘할 수 있다. 생계와 삶을 한 공동체에서 한다는 것이 어렵고 스위스 사람인 아내도 공동체 바깥에서 취업할 예정이지만 (공동체에서 함께할) 방법이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산안마을의 큰아빠’로 불리는 윤성열씨와 특강 참석자가 마을 어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유진 기자




산안마을 형성은 한국 농업 발전사와 궤를 함께한다. 한때 이 공동체는 ‘한국의 키부츠’로 일컬어졌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농촌운동에 투신한 이건우(1932~2001)가 협업농장을 만들려고 고향인 화성군으로 내려왔다. 1961년 봄 조한규(1935~ ), 김병규(1938~1985)가 결합해 화남협업농장을 설립했다. 부농의 아들이었던 김병규는 서울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일하다가 농촌운동에 뛰어들었다. 대농가에서 자라난 조한규는 청년 농부로 일찌감치 화성지역 농업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세 사람은 결혼 뒤 협업이 와해될 것을 우려해 각자의 여동생과 부부가 되어 합동결혼식을 올렸을 정도로 강고한 ‘동지’였다. 조한규의 동생으로 김병규와 결혼한 조정희(86)씨는 아직까지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 조씨는 “(앞으로도 공동체에) 지속적인 이어짐이 있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1961년 일본 가스가야마에 자연농법을 실시하는 무소유 공동체가 처음 생겼다. 윤세식, 조한규 등은 1965년 ‘선진지 견학’차 일본 산안회 농장을 방문했는데 한국 정부도 지원에 적극적이었다. 이들은 비자를 연장해가며 공동체 정신과 양계법을 배운 뒤 1965년 12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1월부터 야마기시즘의 이론과 정신을 전수하는 ‘특강’을 시작했고 전국 농촌운동가에게 야마기시즘을 소개했다. 무소유의 삶, 자연친화적 순환농법,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평등한 연찬회를 통한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야마기시즘의 핵심 활동이다. 농업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뿐 아니라 스님, 명상가 등도 야마기시 특강을 받았다.


2000년 7월 연찬회. 처음 자기 주장을 펼치던 사람들은 연찬회가 무르익으면서 점점 의견을 수렴해 간다. 이남곡(맨 왼쪽), 김현주(왼쪽 둘째)씨의 모습이 보인다. <한겨레> 자료사진




‘실현지의 큰아빠’로 불리는 윤성열(81)씨는 만 22살 때 2회 특강에 참여했다. 그는 일본 야마기시즘 실현지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1세대 중 한 명인 윤세식씨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귀국 직후 암 투병으로 병상에 눕자 윤성열씨는 공동체에 투신한다. 그는 “종달새가 먼 하늘에서 나를 불러들이는 느낌이 있었다”고 말했다. 1984년, 6가구가 화성시 향남읍 구문천리에 정착했다.


“지금 이 바닥에 깔린 콘크리트 하나하나 우리 손으로 다졌어요. 그때는 무소유, 공용, 일체사회 실현의 꿈이 있었죠. 재산도 없고, 못 먹고 살면 깡통을 차고 빌어먹더라도 헤어지지 말자고 굳게 다짐했어요. 철저하게 서로 마음을 모으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사이가 좋아야 마음도 몸도 합해졌을 때 전진할 수 있어요.”(윤성열)


2000년 초 마을 입구에 서 있던 간판. 한겨레 자료사진


공유·순환농법·민주적 의사결정이 핵심


야마기시 미요조는 자신이 생각한 이상사회의 모습을 상생의 원리에서 찾았고 이를 닭 사육에도 적용했다. 그가 기른 닭은 1940년대 일본의 극심한 홍수 피해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그의 방법을 이어받은 산안마을 농장의 닭들은 넓은 평사식 계사에서 자란다. 바닥은 풀, 볏짚, 왕겨, 톱밥, 흙, 굴 껍데기 등이 미생물에 발효돼 악취가 없다. 계사는 햇볕이 잘 들고 공기 순환이 원활하다. 동물복지 기준으로도 바닥 면적 1㎡당 닭을 9마리까지 키울 수 있지만, 이곳에선 1㎡당 4.4마리가 생활한다. 태양, 공기, 흙, 물이 상호작용하며 상호 번영한다는 대원칙의 야마기시즘 농법으로 만든 유정란은 좋은 품질로 유명하다. 40년 동안 닭들은 한 번도 조류독감(AI)에 걸리지 않았다.





야마기시즘 실현지 ‘산안마을’ 양계장의 닭들. 1㎡ 공간에 평균 4.4마리가 살아간다. 이유진 기자




2021년 공동체에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12월23일 산안마을에서 1.8㎞ 떨어진 산란계 농가에서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발생했다. 행정당국은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라 발생농가 인근 3㎞ 이내 농가 닭들도 예방적 살처분을 해야 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산안마을 닭들은 음성이었다. 예방적 살처분은 구태의 방역 관습일 뿐, 운송수단이 발달한 21세기엔 주변 농장만 더 위험하다고 볼 수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명령에 거부했고 두 달을 버텼다. 화성시청, 세종시, 청와대, 국회로 다니면서 이 명령이 왜 비과학적인지 설명했다. 30대 마을 사람 4명이 밤낮으로 외국 자료를 뒤져서 공부했다.


김현주(61)씨는 “대립투쟁을 하지 않는 것이 우리 마을의 원칙이었고, 대립을 접는 방식도 우리에게 맞게 하자고 결정했다”고 했다. 야마기시적 삶의 태도는 대립보다 호혜와 평등에 바탕을 뒀다. “거듭 연찬을 열어 이야기를 나누면서 ‘건강한 상태’로 싸울 수 있는 마지노선을 기다렸다가 명령 거부를 접었죠.”


2021년 2월19일, 결국 산안마을은 방역 당국의 예방적 살처분 명령을 받아들였다. 3만7천 마리가 인도적 안락사 형식으로 질소가스를 이용해 살처분됐다. 130만 개의 달걀도 폐기됐다. 2년여에 걸쳐 완비해둔 자체 방역시스템은 쓸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김씨는 “공동체의 가장 큰 위기였지만 전국에서 진짜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았다. 시민단체, 동물단체, 시민 등. 연대 서명을 해준 이는 셀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3㎞ 농가 예방적 살처분 거리는 500m로 줄었다. 지금처럼 생산량을 회복하고 거래처를 확보하는 데 꼬박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2021년 2월 산안마을 살처분 당시 모습. 산안마을 제공


변화 실험기… 세대 재생산이 숙제


야마기시즘 실현지에서는 특별강습연찬회(특강)가 열린다. 7박8일 동안 공동체에서 합숙하며 자기 자신과 사회, 자연의 이치를 깨닫도록 이끈다. 일생 동안 딱 한 번만 참가할 수 있다. ‘나의 판단이 절대적인 것인가’ ‘‘정말의 나’는 어떨까’ 등을 숙고하며 상대의 말을 듣고 검토하는 법을 익히는데, 특강을 받은 뒤 다른 세계가 열린다는 사람들이 많다. “30년 화두를 잡았는데 이번에 깨쳤다”는 스님도 있었다.


참가자들은 1990년대 사회주의국가들의 몰락 이후 대안을 찾아 온 사람이 다수였다. 당시 공동체를 대표하는 문장은 ‘누더기와 맹물로 거저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오라’였고, 이 말에 감동받은 사람이 적잖았다. 자기 재산을 털어 넣어 식구가 되는 ‘참획’을 거친 사람들이 2000년대 초 50~60명으로 최대였다. 이후 점점 불편한 생활환경, 이상과 현실의 괴리 같은 문제로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산안마을에서 태어나 자라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기르고 사는 김한결씨가 계사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지금은 성인 7쌍의 부부와 그 가족, 어린이 2명 등이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공동체의 존재 자체가 기적이다. 산안마을은 유기농 농업, 생협운동의 효시이자 상징이 됐고 화성시 안에서도 인정받는 농민 공동체가 됐다. 김현주씨는 “이제는 이름이 야마기시즘이든 무엇이든 상관없다. 젊은 사람들이 살 수 있고 함께 모여서 생각을 나누는 ‘연찬’만 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말했다. 무소유, 무아집, 자유를 추구하는 삶의 지향만은 놓칠 수 없어 야마기시즘 영농법인 정관에 ‘무소유’라는 개념이 실현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젊은이들은 다른 나라의 실현지에 가서 생활하고 짝을 찾기도 한다. 김현주씨의 며느리 국적은 스위스이고 딸은 일본 가스가야마 실현지에 두 달 동안 가 있다. 세대가 바뀌면서 공동체도 실험기에 들어갔다. 사회와 공동체 사이의 공고한 경계가 허물어진다고 볼 수도 있고, “지금이 변화의 골든 타임”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세대 재생산이다.


1세대 김병규-조정희씨의 딸로 거의 평생 이곳에서 살아온 김현주씨는 “그동안 스펙터클해서 재미있었다. 온 세계가 나한테 왔다 간 느낌”이라고 했다. “운동성과 현실을 조화해낸다는 게 심리적 기복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제 개인이 중시되는 흐름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전과 많이 달라졌다”며 웃었다. 대학 때 학생운동으로 오랫동안 수배를 받고 1년간 수감 생활했던 ‘철의 전사’ 김현주씨는 요즘 정원을 가꾼다.


“기후위기, 환경위기가 있는데 꽃나무 심는 게 가장 손쉽고 급진적인 일 같아요. 중요한 건 유연한 사고, 그리고 연찬이에요.”
유토피아를 가슴에 품은 사람들


2024년 4월20일 오후 7시부터 시작한 연찬회. 모든 사람들이 한마디씩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유진 기자




저녁이 되자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연찬’이 열렸다. 사람들이 커다란 방에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야마기시즘 삶의 태도가 바로 이 의례에서 비롯한다. 연찬이란 고정되지 않은 상태로 사물이나 현상을 보고 실천한다는 뜻을 담았다. 이날 연찬의 주제는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였다.


“저는 1986년 12월 고3 때 특강 받은 사람입니다.” “희망에, 이상사회에 대한 꿈, 이게 그때의 나였어요. 지금은 여기 있네요.” “38년간 여기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지금도 실현지를 생각하면 스마일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주부로서 정말 유기농 생산인지 확인하러 왔다가 특강을 받았어요.” “참획을 하고 내 옷장, 내 옷만 보이더니 어느 순간 이 안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되더라고요.” 많은 사람이 실현지의 가치와 이념을 좇아 이곳으로 왔노라 밝혔다. 김현주씨의 아들로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이경묵씨는 “어렸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뜨거웠던 이상사회의 열망과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외형은 줄었을지 모르지만 그때 뿌린 씨앗은 지금도 남아 있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그 자리에 함께한 수십 명의 사람들 누구 하나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한마디씩 보탰다.


연찬회 주제를 붙이고 있다. 이날의 주제는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였다. 이유진 기자




강화에서 야마기시즘 실현지의 또 다른 실천을 도모하며 공동체 운동을 하고 있는 유상용(60)씨는 “부처님의 법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1992년 28살의 나이에 찾아가 2009년까지 17년을 살았다. 가장 본질적인 것은 살아 있고, 여전히 지속된다. 고갱이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문운동가인 연찬문화연구소 이남곡(80) 소장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어려운 세상이다. 나라 안팎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그럴수록 유토피아를 가슴에 품는다는 것은 엄청난 것이다. 여든인 지금 나도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고 혁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2세대 청년 농부 김한결씨는 말했다. “여기에서 태어나고 대부분의 삶이 여기서 본 세상입니다. 앞으로도 잘해나가고 싶습니다.”


김현주씨는 “(이 공동체에서) 너무 많은 일을 겪어 다시는 태어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크게 웃었다. 무소유, 평화, 평등 공동체의 40년은 전쟁터 같기도, 천국 같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산안마을에서 생산한 유정란. 산안마을 누리집




야마기시즘 실현지 표지판. 양계를 주로 하는 마을의 상징인 닭과 병아리가 그려져 있다. 이유진 기자




윤성열(맨 왼쪽)씨는 만 22살 때 2회 특강에 참여했다. 그는 일본 야마기시즘 실현지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1세대 중 한 명인 윤세식씨의 아들이다. 야마기시 실현지의 씨앗을 뿌린 조한규의 동생으로, 김병규와 결혼한 조정희(가운데), 김병규-조정희 부부의 딸 김현주씨. 이유진 기자

사유재산 금지한 이 마을, 어떻게 안 망했을까 - 오마이뉴스

사유재산 금지한 이 마을, 어떻게 안 망했을까 - 오마이뉴스

연재노준희의 조화로운 삶을 찾아서 | 6화
20.08.29 16:12ㅣ최종 업데이트 20.10.19 15:22
사유재산 금지한 이 마을, 어떻게 안 망했을까
36년간 무소유 실천해온 영농조합법인 '산안마을'
노준희(dooaium)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는 1984년부터 형성된 '산안마을'이 있다. 양계를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공동체다. 공동주택에서 먹고 자고 생활한다. 공동농장에서 개인이 노동해 번 수익은 개인의 소유가 아닌 공동의 소유로 되어 누구든 함께 쓸 수 있는 사회공동체이다.

처음 이 공동체를 시작할 땐 6가구가 돈을 모아 땅을 사서 양계장을 짓고 집도 짓고 했다. 하지만 누가 돈을 많이 냈고 적게 냈냐를 따지지 않고 무소유(無所有), 공용(共用), 공활(共活)의 원리에 동의하며 지금까지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이 공동체는 2대, 3대까지 이어지며 근 40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앞으로 달라지는 세상에 발맞추어 추구하는 가치 논의도 끊임없이 지속하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그 꿈의 공동체 생활을 실천해 냈을까. 또 어떤 힘으로 그 결속을 유지하고 있을까. 문명이 발달할수록 개인의 것을 더 중요시하는 게 자본주의 현실이 아니던가. 솟아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마을을 찾아갔다.

자연과 조회를 이루며 사는 야마기시즘 공동체


▲산안마을 공동숙소 현재 주민들이 지내는 공동숙소. 공동식당과 공동세탁실 등이 있고 생활은 각자 방에서 한다. 이 숙소는 많이 오래되어 곧 새 숙소로 이동할 예정이다. ⓒ 노준희관련사진보기
이 마을을 이해하려면 먼저 야마기시즘(Yamagishism)을 알아야 한다. 야마기시즘은 1901년 일본 시가현에서 태어난 농민 야마기시 미요조가 주창한 공동체주의 운동이다. 인간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일체 속의 일원으로서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기조다. 이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원리를 무소유, 공동 사용, 공동생활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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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일본에서 자연과 인위의 조화를 기조로 하는 사회활동체 '행복회야마기시회'가 발족해 각지에 퍼져나갔다. 우리나라는 1965년 일본 가스야마 세계중앙실현지에서 연수를 받은 것이 시초가 됐다.

이때 연수받은 6명 중 윤세식씨와 조한규씨가 1966년 화성시 고목천에서 야마기시즘 실현지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암만 무소유라고 해도 먹고 살기는 해야 하는데 경제활동 자체를 할 줄 몰랐다. 일단 돈이 없었다.

그런데 윤세식씨의 아들 윤성열씨가 야마기시즘 특별강습연찬회에 참여했다가 '아! 이런 걸 하려고 하는구나'라고 깨닫고, 아버지가 타계한 후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24세 청년 시절 김병규씨와 두 번째로 실현지 조성을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실패. 이번엔 무소유 일체의 생활을 하기 위한 기술이 없었다.

그러나 확실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였다. 실패를 통해 부족한 게 무언지 알게 되자 정리가 됐고 3가지 목표를 정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야마기시즘을 실현하려는 사람만 모여야 한다. 두 번째는 무소유 생활을 할 사람이 아닌 사람은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세 번째는 들어오려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여기에 다 털어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성열씨가 정한 목표는 지금도 마을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관문 역할을 한다.

현재 위치로 옮겨 온 1984년, 드디어 총 6가구가 모여 산안마을을 꾸렸다. 이후 김병규씨는 타계했지만 그 가족은 지금까지 쭉 함께 살고 있으니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원하는 마을을 이룬 셈이다.

윤성열씨가 받은 특별강습연찬회에서 깊은 감명을 받아 최초 산안마을을 꾸린 6가구 중 한 명이 김상보씨다. 그는 현재도 이 마을에 거주하며 야마기시즘 실현지 영농조합법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일체 속의 일원으로 조화를 이루며 무소유, 공동 사용, 공동생활이 정말 가능하다면 한번 실현해보고 싶었어요. 그때는 결혼하기 전이었는데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 자금과 약간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해서 시작했지요. 재산을 다 털어 넣을 만큼 해보고 싶었어요."

'종란양계방식'으로 생명력 가득한 유정란 생산

함께 사는 마을살이를 시작한 산안마을은 마을의 경제를 책임질 산업으로 '야마기시식 양계법'을 선택했다. 닭에게 싱싱한 청초를 먹이고 닭이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사육방식으로 키운다는 것이 핵심이다.

자연계에는 태양, 공기, 흙과 물에 생존하는 모든 동식물의 순환작용이 반복하며 상호번영하고 있다. 야마기시식 양계법은 야마기시즘 원리에 따라 농경과 축산,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밀접한 관계를 맺은 '동식물 인간 일체'의 순환농법을 지향하는 야마기시즘 농법 중 하나이다.

사실 산안마을은 동물복지 유정란 생산 마을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산안마을이 생산한 달걀은 경기도 내 두레생협 등 친환경농산물 매장에서 판매하고 주문 직거래 등으로도 유통한다. 지난해 12월엔 산안마을이 생산한 유정란이 HACCP 통합인증을 획득했으며 그에 앞서 2012년에는 농장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을 취득해 안정된 고품질의 유정란을 생산 중이다.


▲계사 1 산안마을 닭이 지내는 계사. 멀리 보이는 초원이 닭들에게 먹일 풀을 키우는 초지다. 산안마을은 이 초지의 풀을 베어 풀김치를 만들고 닭들에게 먹인다. 그렇게 먹인 풀은 닭의 배설물로 나오고 다시 초지에 거름으로 쓰인다. ⓒ 노준희관련사진보기

▲계사2 계사 지붕 모양을 자세히 보면 다른 점이 있다. 저 구조는 햇빛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되는 구조로 닭들을 더욱 건강한 상태로 지내게 해준다. 풀김치를 먹고 스트레스 받지 않는 환경에서 자란 닭이라서 그런지 계사 주변에도 그리 심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 노준희관련사진보기
김상보 대표는 산안마을의 특별한 양계방식을 말해주었다.

"산안마을은 동물복지라는 단어가 생기기 이전부터 닭을 사육하는 환경이 친환경 동물복지였어요. 닭이 자라는 환경 자체를 건강하게 해주는 데 주력하죠. 우리가 키우는 닭에게는 들판의 풀을 발효시킨 풀김치를 사료와 섞어 먹여요. 자연의 양기를 먹고 자란 풀은 닭에게 아주 좋은 영양분이 되고 생명력을 전달해주지요. 이 먹이를 먹은 닭의 똥은 다시 들판의 거름이 되어 풀을 잘 자라게 해요. 이렇게 닭의 먹거리 순환은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순환농법인 거죠."

보통 케이지 사육으로 20만 수 이상 키울 공간이지만 산안마을은 5만 수를 적정 사육 개체 수로 정했다. 햇빛이 잘 드는 천장, 바람이 잘 통하는 계사 구조, 닭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한 사육장 안에서 닭이 식구로 아는 최대 마릿수는 120마리 이내이고 이 안에 수탉은 7마리가 적당해요. 우리는 병아리를 부화해 데려올 때도 부리를 자르지 않아요. 상대방을 쪼는 것은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욕구불만일 때 공격하는 건데 자기가 평화롭게 안정되면 남 안 괴롭혀요. 또 유기농 현미를 먹여서 소화력을 길러줘요.

이렇게 키운 닭을 해부해보면 일반 닭의 내장에 비해 아주 길고 단단해요. 사육방식이 건강하잖아요? 몇 년 전 조류독감이 유행했을 때 인근 8km까지 번져서 걱정이 많았어요. 다행히 화성시가 우리 친환경 양계방법을 인정해줘서 우리만 폐사처리를 하지 않았지요. 우리 닭들은 단 한 마리도 조류독감에 걸리지 않았어요. 단 달걀도 외부에 방출하지 말라고 해서 팔지도 못하고 40만여 개의 달걀을 깨트려야 했어요."


▲풀김치 별로 색달라 보일 것 없는 풀김치다. 그런데 풀을 발효한 풀김치를 먹은 닭은 더 건강하다. 김상보 대표는 실제로 풀김치를 먹은 닭은 몇 년 전 조류독감이 유행할 때도 전혀 감염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노준희관련사진보기
산안마을 사람들은 마을살이의 경제력을 해결해주는 이 닭의 세계에서 조화가 무엇인지 배우고 있었다. 닭을 키우면서, 타인과 한솥밥을 먹고 살면서 서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깨쳐가고 있었다.

"닭의 세계에서는 같이 먹고 알 적게 낳는다고 나무라는 닭이 없어요. 알 잘 낳는 닭 쫓아가려고 무리하게 먹지도 않아요. 닭의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간이 배울 점이 많아요. 차별은 사람이 관념적으로 지은 거더라고요. 원래 자연에선 그런 게 없다는 걸 알았어요. 단지 조화만 있을 뿐.

닭들이 행복한 환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기, 물, 햇빛, 사료 그리고 사람이에요. 어떤 사람이 키우냐에 따라 달라져요. 조화롭게 지내면 자연, 식물, 곤충, 동물 사람 다 평화롭게 살 수 있어요. 대부분 사람이 가로막지요."

체험 프로그램 '낙원촌', 함께해본 사람만 느끼는 특별함

김상보 대표의 양계 이야기를 들으며 산안마을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산안마을을 만족스럽게 이해하긴 어려웠다. 그들을 더 들여다보고 그들의 삶을 더 깊이 오래 공유해보지 않으면 알기 쉽지 않을 거 같았다. 김 대표는 "이 마을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며 "특별강습연찬회에 참여해보면 더 이해하기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강습연찬회는 일상생활을 떠나서 참가자 전원이 침식을 함께하며, 누구나가 같은 처지에서 생각해보고 무엇이든 가볍게 서로 내놓고 진짜가 무엇인지 깨달아 가는 합숙 프로그램이다. 기숙사 비슷한 공간에서 자고 공동식사, 공공세탁실 사용 등 늘 함께 하는 게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아야 마음 편하게 같이 살 수 있는데, 그러려면 이론이든 실제든 먼저 익혀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있기 마련.

연찬회는 모두의 중지(衆知)를 모아서 쉽고 간단하게 펼쳐가는 지적인 토론방식으로 이뤄진다. 야마기시즘이 무엇인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특성상 18세 이상 평생에 한 번만 체험 가능하다.


▲낙원촌 참가자 단체 사진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낙원촌 프로그램. 현재 코로나19로 쉬고 있지만 방학마다 신청 접수가 금방 마감될 정도로 인기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 산안마을관련사진보기
또 어린이·청소년 대상 '낙원촌' 프로그램도 있다. 요즘 아이들이 주로 혼자 크는 경우가 많다 보니 나이 차가 많은 아이들과 지내는 경험을 해보기 쉽지 않다. 낙원촌에서는 전국에서 모여든 아이들이 같이 먹고 자고, 같이 놀고, 동물과 농작물과 숲을 접하면서 조화로운 삶을 몸으로 익히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은 이 안에서 놀이를 통해 사회성을 기른다. 식사 준비, 밥 먹기, 설거지, 청소, 씻기, 세탁, 자기 물건 정리, 일기 쓰기 등 항상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귀찮기 쉬운 일들을 신나게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경험한다. 동물복지가 되어 있는 양계장 체험을 통해 나 외의 생물에 존중을 느끼고 땅 위에서 햇빛과 물을 먹고 자란 농산물을 수확하고 그 농산물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사회성인 양보와 이해, 공감 등을 즐겁게 체험하는 것이다.

이 낙원촌을 경험한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어 스태프로 다시 참여할 만큼 호응이 좋아서 평소에도 빨리 접수 마감이 되곤 했으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쉬고 있다.

"우리 사는 방식으로 사회가 바뀌길"

사회는 진영과 상관없이 이윤의 획득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하는 경제활동인 자본주의 경제가 확고해지고 있다. 이런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개인에게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그런 현실에서 개인의 소유 없이 공동 소유로 같이 먹고 같이 살겠다는 사람들이 여기 모여 있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곳에 오겠다고 해도 다 이 공동체 생활에 적응한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자기가 꿈꾸는 것이니까 뭔가 다르겠지 하고 들어왔다가도 일반사회에 대한 미련이 생기면 이곳에 머물기 어려워 떠난다.

산안마을은 누구나 공평한 사회를 추구한다. 일반사회에서 개인 중심 생활을 해왔던 사람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소유 공동체 생활을 하는 건 이상이 아닌 실제이기 때문에 막연하게 이상을 그리고 들어온다면 현실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매우 다른 세계가 될 수 있다. 기자 또한 산안마을 사람들처럼 살 자신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무소유 공동체 생활을 지속하는 이 마을이 꿈의 마을로 비치는 것이다.


▲김상보 대표 현재 산안마을 야마기시즘 실현지 영농조합법인 대표이다. 1984년 6가구가 모여 산안마을을 처음 만들었을 때 함께 들어와 지금까지 자식과 손주 세대와 함께 살고 있다. ⓒ 노준희관련사진보기
"우리는 가구를 구분하지 않아요. 모두 한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돈지갑이 하나예요. 누가 벌든 쓰고 싶은 사람이 쓸 수 있는 만큼 의논해가며 자유롭게 사용하고 기록해요. 지갑이 하나라는 게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실제로 해보면 제안과 조정이라는 제도를 두기도 하며 쓸 비용을 기록하고 남으면 다시 넣고 영수증 첨부하고 그렇게 사용하니까 큰 문제가 없어요.

근데 무소유 공동체이지만 현행법은 무소유를 인정 안 해요. 그래서 농어촌특별법에 따라 우리 마을을 영농조합법인 화성시 제1호로 설립했어요. 법인은 법인대로 철저하게 결산하죠. 많이 벌었다고 많이 쓰거나 적게 벌었다고 적게 쓰거나 하게 하지 않아요. 장애인도 같이 살 수 있잖아요. 먹고 자고 아무 부담 없이 살 수 있어야 행복하죠."

한때 세상에 마을이 알려지자 이 마을에 들어와 살겠다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추구하는 가치가 농업과 자신이 맞지 않아 떠나고 지금은 20명이 안 되는 인원으로 지내고 있다. 일일이 확인하지 않았지만 처음 이 마을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꾸준히 사는 것 같았다.

김상보 대표의 아들 김한결씨와 이경묵씨도 이 마을에서 2대째로 살고 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그들은 최근 교육과 일반사회를 경험한, 창립자 세대와는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여기서 결혼해 아이도 낳아 키우는 김한결씨는 마을이 달라지는 점과 달라질 점을 말해주었다.

"공동숙소가 오래돼서 지금 숙소 건너편에 새 공동숙소를 짓고 닭들의 환경도 좋게 새 계사도 지을 예정이에요. 새 숙소가 완공되면 이전보다 좀 더 사적인 공간이 확보될 수 있어요. 지금도 잘 지내고 있지만 새 건물에선 우리 방에서 떠드는 소리가 옆 방에 전달되는 일이 줄어들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느슨해지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경묵씨는 마을의 장점이 어떻게 발달했는지 말해주었다.

"돈도 분배 안 하고 역할도 필요에 따라 유동적이고 일반사회처럼 끊어내지 않아 함께 만드는 프로젝트가 많다고 생각해요. 구성원 숫자는 몇 안 되는데 굉장히 많은 활동이 가능하죠. 손 많이 가는 양계장을 하면서 누군가 일이 있으면 서로 봐주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요.

갈등 해결 방식도 최근 성숙해졌어요. 생각, 감정, 표현 등을 상대방 기분을 나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쓰고 화가 나도 상대방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있으려고 애를 써요. 이런 것들이 좀 더 잘 일어나고 있어요. 그러면서 지역활동과 환경활동에 더 탄력을 받았지요."

실제로 마을 인근에서 지난해 재활용공장이 불에 타는 것을 보고 주민들은 많은 걸 느꼈다. 김한결씨는 "쓰레기는 다 우리 인간이 만든 거고 그 안에 내 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이 최고로 플라스틱을 많이 사용하는 나라인데 미래를 생각해서 깨끗한 환경을 어떻게 전해줄 수 있을까 대안을 찾아봤다"며 "달걀 포장 스티로폼 택배를 지난해부터 종이 재질로 케이스를 만들어 플라스틱을 최대한 쓰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묵씨는 사회변혁을 꿈꾸는 묵직한 한마디를 던졌다.

"그래서 마을 주변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도 열심이지만 제가 가장 크게 드는 마음은 우리 마을처럼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거예요. 이 공동체가 사회의 대안이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실제로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마을처럼 사는 게 사회운동이었으면 좋겠어요."

산안마을 2세대들의 표정은 매우 밝았고 웃음이 넘쳤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 또한 건전하게 느껴졌다. 언제까지 산안마을이 지속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들이 이곳에 사는 날까지는 산안마을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산안마을#야마기시즘 실현지#화성 동물복지 유정란#풀김치#무소유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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