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4

16 마성스님 “초기불교 깨달음과 禪의 구경각은 다른 차원”

붓다의 옛길

실론섬 2016. 2. 18.   
http://blog.daum.net/gikoship/15782760
“초기불교 깨달음과 禪의 구경각은 다른 차원”
마성스님, 깨달음 논쟁 관련 논문 ‘초기불교에서 본 깨달음’ 기고
“논쟁 대상 아닌 것 놓고 논쟁…선정은 지혜 얻기 위한 전제 조건”
2016-02-17 (수) 10:29


마성스님 | ripl@daum.net


[율장과 초기불교 전공자 마성스님(철학박사, 팔리문헌연구소장)이 정초부터 <미디어붓다> 지면을 통해 불붙은 ‘깨달음 논쟁’과 관련하여 짧은 논문을 한 편 작성해 보내왔다. 일찍이 계율, 초기불교 분야와 관련하여 많은 논문과 고견을 제시해온 마성스님의 이번 논문은 ‘초기불교에서 본 깨달음’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논쟁의 근본을 해박한 초기불전에 대한 식견을 통해 밝혀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설날 연휴 ‘휴지기’를 거쳐 다소 열기가 식은 듯한 깨달음 논쟁이 스님의 이번 논문을 통해 다시금 가열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편집자

초기불교에서 본 깨달음

Ⅰ. 머리말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 현응(玄應) 스님이 2015년 9월 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깨달음과 역사 그 이후> 제하의 기조발제문에서 ‘깨달음이란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이른바 ‘깨달음 논쟁’이 촉발되었다. 처음 이 기사가 보도된 이후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깨달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개념에 대한 정의조차 없이 개인적인 신념이나 의견들을 개진함으로써 불필요한 논쟁을 가중시켰다. 그리고 지금은 주제에서 벗어난 엉뚱한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사회정책연구소장 법응(法應) 스님이 수불 스님과 현응 스님의 공개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만일 공개토론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두 스님 사이의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깨달음에 대한 정의’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 논쟁이 보다 생산적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초기성전에 나타난 붓다의 깨달음’, 즉 ‘붓다의 깨달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럴 때 현응 스님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초기불교에서 본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Ⅱ. 초기성전에 묘사된 깨달음

1. ≪율장≫의 <대품>에 대하여 
현응 스님은 ‘깨달음이란 잘 이해하는 것’이라는 자신의 지론을 증명하기 위해 ≪율장≫의 <대품>에 언급된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빨리어로 기록된 ≪율장(Vinayapiṭaka)≫의 <대품(Mahāvagga)>은 초기불교의 깨달음을 언급한 문헌이 아니다.

빨리 ≪율장≫은 크게 숫따비방가(Suttavibhaṅga, 經分別), 칸다카(Khandhaka, 犍度), 빠리와라(Parivāra, 附隨)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경분별은 율장의 본문 골자인 조문(條文), 즉 빠띠목카(pātimokha, 波羅提木叉)를 설명한 부분이다. 둘째, 건도는 교단의 제도와 규정을 편품(編品)으로 구분하여 설명한 부분이다. 셋째, 부수는 앞의 경분별과 건도에서 설명한 사항을 분류하고 요약 정리한 보유편(補遺編)이다.

그러나 빨리성전협회(PTS)에서 발행한 로마자 빨리 ≪율장≫은 건도, 경분별, 부수의 순으로 편찬되어 있다. 이것은 빨리 ≪율장≫을 로마자로 편찬한 독일의 헤르만 올덴베르크(H. Oldenberg, 1854-1920)가 율장의 건도(犍度)부터 편찬했기 때문이다. 그는 승려들이 지켜야 할 바라제목차보다 교단의 제도나 규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너(I. B. Horner, 1896-1981) 여사는 원래의 빨리 ≪율장≫ 그대로 경분별, 건도, 부수 순으로 영역(英譯)했다.[I. B. Horner, tr. The Book of the Discipline (London: PTS, 1938-1966) vol. Ⅰ, p.vii] 어쨌든 ≪율장≫의 <대품> 첫 번째 편은 마하칸다까(Mahākkhandhaka, 大犍度 또는 受戒編)이다. 이 마하칸다까는 출가입단법(出家入團法), 즉 수계의 방법, 수계자의 자격 등을 언급한 부분이다. 이 수계편(受戒編)에 언급된 내용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붓다는 깨달음을 이루고 제일 먼저 바라나시로 가서 꼰단냐(Koṇḍañña), 밥빠(Vappa), 밧디야(Bhaddiya), 마하나마(Mahānāma), 앗사지(Assaji) 등 다섯 고행자들에게 법을 설했다.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제일 먼저 꼰단냐가 깨달음을 이루었다.[Vin Ⅰ, p.11] 그때 꼰단냐는 “대덕이시여, 저는 세존께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 upasampadā)를 받고자 합니다.”[Vin Ⅰ, p.12]라고 말했다. 그러자 붓다는 “오라. 비구여(ehi bhikkhu, 善來比丘), 법은 잘 설해져 있으니, 바르게 괴로움의 끝을 이루기 위해 범행(梵行)을 닦으라. 이것이 사실 이 존자의 구족계였다.”[Vin Ⅰ, p.13, “ehi bhikkhū 'ti bhagavā avoca, svākkhāto dhammo, cara brahmacariyaṃ sammā dukkhassa antakiriyāyā 'ti. sā 'va tassa āyasmato upasampadā ahosi.”]고 말했다. 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선래비구구족(善來比丘具足, ehi-bhikkhu- upasampadā)’이다.

비록 붓다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깨달음을 이루었더라도 반드시 구족계를 받아야만 한다. 그래야 ‘상가(Saṅgha, 僧伽)’의 구성원이 되기 때문이다. 제자가 구족계를 받는 것은 승가 성립의 가장 기본적인 절차이다. 이어서 밥빠, 밧디야, 마하나마, 앗사지 등도 같은 방식으로 구족계를 받았다.[Vin Ⅰ, p.13] 그때 비로소 ‘승가’가 형성되었다. 왜냐하면 율(律)에서 승가의 최소 단위는 네 명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섯 비구가 모두 구족계를 받았기 때문에 승가, 즉 승단(僧團)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율장≫에서는 승가 성립에 관한 언급은 없다. 다만 “그때 세간에 여섯 명의 아라한이 있었다.”[Vin Ⅰ, p.14, “tena kho pana samayena cha loke arahanto honti.”]고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야사(Yasa)를 찾아 나섰던 야사의 아버지가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그 자리에서 삼귀의를 외우고 최초로 재가신자가 되었다. ≪율장≫에서는 “이와 같이 그는 삼귀의를 외움으로써 이 세상에서 첫 번째의 우바새가 되었다.”[Vin Ⅰ, pp.16-17, “so 'va loke paṭhamaṃ upāsako ahisi tevāciko.”]라고 기술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다섯 비구가 구족계를 받았기 때문에 이미 ‘승가’가 성립되었던 것이다. 율의 편찬자들도 이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뒤 야사(Yasa)도 구족계를 받아 붓다의 여섯 번째 제자가 되었다.[Vin Ⅰ, pp.17-18] 이어서 야사의 친구, 즉 위말라(Vimala), 수바후(Subāhu), 뿐나지(Puṇṇaji), 가밤빠띠(Gavampati) 등도 똑같은 방식으로 구족계를 받아 승가에 합류했다.[Vin Ⅰ, pp.18-19] 또한 야사의 친구였던 50명의 젊은 귀족의 자제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구족계를 받아 승가에 합류했다.[Vin Ⅰ, p.20] ≪율장≫에는 “그때 이 세상에는 61명의 아라한들이 있었다.”[Vin Ⅰ, p.20, “tena kho pana samayena ekasaṭṭhi loke arahanto honti.”]고 기록되어 있다.

그때 붓다는 60명의 제자들에게 전도의 길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이것이 저 유명한 전도선언(傳道宣言)이다.[Vin. Ⅰ, pp.20-21; SN Ⅰ, pp.105-106] 그런데 제자들이 교화를 하게 되면 출가를 원하는 자에게 구족계를 줄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승가를 확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붓다는 ‘선래비구구족’에 의해 승가에 합류시켰지만, 제자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구족계 의식이 제정되었다. 그것이 바로 ‘삼귀의에 의한 구족계(tīhi saraṇagamanehi upasampadā)’ 의식이다.[Vin. Ⅰ, p.22]

제자들이 전도를 떠난 뒤, 붓다는 다시 마가다국의 우루웰라(Uruvalā)로 돌아왔다. 그때 붓다는 우루웰라의 숲속에서 유흥을 즐기고 있던 30명의 젊은이들을 교화시켰다. 그들은 붓다로부터 ‘오라. 비구들이여!(etha bhikkhavo)’라는 구족계를 받고 승가에 합류했다.[Vin. Ⅰ, pp.23-24] 그런 다음 깟사빠(Kassapa, 迦葉) 삼형제와 그들의 추종자를 교화시켜 승가에 합류시켰다. 이른바 우루웰라깟사빠(Uruvelakassapa)와 그의 제자 500명, 나디깟사빠(Nadīkassapa)와 그의 제자 300명, 가야깟사빠(Gayākassapa)와 그의 제자 200명이었다. 이들을 동시에 개종시킨 것은 큰 사건이었다. 특히 우루웰라깟사빠와 같은 당대 최고의 종교 지도자를 개종시킴으로써 붓다의 명성은 크게 드높아졌다.[Vin Ⅰ, p.24]

그 후 마가다국의 라자가하(Rājagaha, 王舍城)에서 산자야(Sañjaya)의 제자였던 사리뿟따(Sāriputta)와 목갈라나(Moggallāna)가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 이어서 산자야의 제자 250명도 개종했다. 그들은 모두 붓다로부터 ‘오라. 비구들이여!’라는 구족계를 받고 승가에 합류했다.[Vin Ⅰ, p.43] ≪율장≫의 <대품>에서는 여기까지만 언급되어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율장≫의 <대품>에 언급된 내용은 초기승가의 성립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율장≫의 <대품>은 다섯 비구가 어떻게 깨달음을 이루게 되었는가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붓다의 제자 중에서 최초로 꼰단냐(Koṇḍañña)가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은 ≪상윳따 니까야≫의 <전법륜경(轉法輪經)>(SN56:11)에 설해져 있다. <전법륜경>의 내용을 언급하기에 앞서, 먼저 붓다의 깨달음, 즉 붓다는 무엇을 깨달았는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2. 붓다는 무엇을 깨달았는가? 
붓다는 앗삿타(assattha, pippala라고도 함) 나무 아래에서 명상하다가 드디어 ‘위없는 바른 깨달음’(anuttara sammāsambodhi, 無上正等覺)을 얻어 붓다(Buddha), 즉 각자(覺者)가 되었다. 이것을 중국․한국․일본에서는 ‘성도(成道)’라고 부른다. 붓다의 성도는 출가의 목적인 해탈의 완성이며 현세에서의 열반을 실현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붓다의 깨달음 자체가 바로 불교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붓다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이것은 예로부터 매우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이를테면 중국의 선승(禪僧)들이 ‘무엇이 곧 부처인가’라든가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도 ‘붓다의 깨달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체득한 경지가 붓다의 깨달음과 일치하는가를 점검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후지타 코타츠 外, ≪초기․부파불교의 역사≫, 권오민 옮김(서울: 민족사, 1989), pp.64-65]

그러나 초기성전에서는 붓다의 깨달음에 대해 여러 가지 형태로 서술하고 있다. 초기경전에 언급된 붓다의 깨달음에 관한 내용은 일치하지 않으며 많은 이설(異說)들이 나타난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열다섯 가지 정도의 이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 열다섯 가지 이설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사성제(四聖諦)나 십이연기(十二緣起)와 같은 이법(理法)의 체득에 의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 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支․八正道)과 같은 수행도(修行道)의 완성에 의했다는 것이다. 셋째는 오온(五蘊)․십이처(十二處)와 같은 제법(諸法)의 관찰에 의했다는 것이다. 넷째는 사선(四禪)․삼명(三明)의 체득에 의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붓다의 깨달음은 문헌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이것은 붓다가 자신의 깨달음을 특정한 교설로서 고정시켜 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붓다는 듣는 자의 근기에 따라 설하는 방법을 달리했기 때문에 깨달음의 내용이 여러 가지 형태로 전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붓다의 깨달음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붓다의 깨달음은 연기(緣起)의 자각(自覺)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때의 연기(緣起)는 십이지연기(十二支緣起)처럼 완성된 형태는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기의 자각이란 다른 말로 사성제에 대한 통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연기법을 실천수행의 체계로 조직한 것이 사성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성제(苦聖諦)와 집성제(集聖諦)는 유전연기(流轉緣起)에 해당되고, 멸성제(滅聖諦)와 도성제(道聖諦)는 환멸연기(還滅緣起)에 해당된다. 부파불교시대에 ‘깨달음에 이르는 서른일곱 가지 부분’이라는 삼십칠조도품(bodhipakkhiya-dhamma)으로 조직화된 사념처(四念處)․사정근(四正勤) 등의 실천 수행법도 연기의 역관(逆觀)에서 드러나는 무명(無明)․갈애(渴愛)를 소멸하기 위한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후지타 코타츠 外, ≪초기․부파불교의 역사≫, p.65]

붓다의 최초 설법으로 알려져 있는 <전법륜경(轉法輪經)>에서는 붓다가 사성제의 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 tiparivaṭṭaṃ dvādasākāraṃ)을 통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게 되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전법륜경>에 의하면 붓다는 “비구들이여, 내가 이와 같이 세 가지 양상과 열두 가지 형태[三轉十二行]를 갖추어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 지극히 청정하게 되지 못했다면 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했다고 신(神)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인간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스스로 천명하지 않았을 것이다.”[SN Ⅴ, pp.422-423, “yāva kīvañca me bhikkhave imesu catusu ariyasaccesu evaṃ tiparivaṭṭaṃ dvādasākāraṃ yathābhūtaṃ ñāṇadassanaṃ na suvisuddham ahosi, neva tāvāham bhikkhave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n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anuttaraṃ sammāsambodhim abhisambuddho ti paccaññāsiṃ.”]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붓다는 사성제를 있는 그대로 통찰함으로써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게 되었다.

<전법륜경>에서 붓다는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괴로움의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SN Ⅴ, p.422, “idaṃ dukkham ariyasaccan 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m udapādi ñāṇam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고 말했다. 이에 대응하는 한역 <전법륜경>에서는 “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는 과거에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법이니 마땅히 바르게 사유하라. 그러면 그때 눈[眼]․지혜[智]․밝음[明]․깨달음[覺]이 생길 것이다.”[≪잡아함경≫ 권15 제379경(T2, p.103c), “此苦聖諦, 本所未曾聞法, 當正思惟. 時, 生眼․智․明․覺.”]고 설해져 있다.

이와 같이 붓다는 사성제라는 진리를 통해 눈[眼]이 생기고, 지혜[智]가 생기고, 통찰지[慧]가 생기고, 명지[明]가 생기고, 광명[光]이 생겼던 것이다. 한역에서는 이것을 안(眼)․지(智)․명(明)․각(覺)이 생겼다고 옮기고 있다.

Ⅲ. 수행의 단계와 깨달음의 경지

1. 초기경전에 묘사된 아라한 
<전법륜경>에 의하면 붓다의 설법을 들고 마침내 “꼰단냐(Koṇḍañña) 존자에게 ‘일어나는 법은 그 무엇이건 모두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라는 티 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法眼]이 생겼다.”[SN Ⅴ, p.423, “āyasmato Koṇḍaññassa virajaṃ vītamalaṃ dhammacakkhum udapādi, yaṃ kiñci samudayadhammaṃ sabban taṃ nirodhadhamman ti.”]고 묘사되어 있다. 그때 세존께서는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SN Ⅴ, p.424, “aññāsi vata bho Koṇḍañño aññāsi vata bho Koṇḍañño ti.”]라고 읊었다. 이렇게 해서 꼰단냐 존자는 안냐꼰단냐(Aññāta-Koṇḍañña)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SN Ⅴ, p.424]

이와 같이 꼰단냐는 붓다의 설법을 듣고, ‘일어난 법은 모두 소멸한다.(集法卽滅法)’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것은 꼰단냐가 사성제에 대한 붓다의 설법을 듣고 연기(緣起)의 이치를 터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진리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경에서는 법안(法眼, dhamma-cakkhu)이 생겼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율장≫의 <대품>에서는 최초의 다섯 비구를 비롯한 야사와 그의 친구 네 명, 그리고 귀족의 자제 50명이 붓다의 설법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두 아라한과를 증득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실제로 초기경전에서는 붓다께 귀의하고 그 가르침을 실천한 제자들은 곧바로 아라한이 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를테면 최초의 다섯 비구들은 붓다께 귀의한 지 5일 만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후지타 코타츠 外, ≪초기․부파불교의 역사≫, p.134] 붓다의 상수제자였던 사리뿟따(Sāriputta)는 라자가하에서 유행하다가 다섯 비구 중 한 명이었던 앗사지(Assaji, 馬勝)를 만나 그로부터 붓다의 가르침을 전해 듣게 되었다. 앗사지는 사리뿟따에게 “모든 법은 인(因)으로 말미암아 생긴다. 여래께서는 이 인(因)을 설하셨다. 모든 법의 소멸에 대해서도 위대한 사문은 그와 같다고 설하셨다.”[Vin Ⅰ, p.40, “ye dhammā hetuppabhavā, tesaṃ heuṃ tathāgato āha, tesañ ca yo nirodho, evaṃvādī mahāsamaṇo.”] 사리뿟따는 이 게송을 듣고 먼지와 때를 멀리 여읜 법안을 얻었다. 곧 ‘생겨난 것은 모두 소멸하는 것’이라고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소따빤냐(sotāpanna, 預流果)를 얻었다.[Vin Ⅰ, p.40] 목갈라나(Mogallāna)도 사리뿟따로부터 앗사지가 전해준 게송을 듣고 예류과를 얻었다. 그리고 목갈라나는 붓다께 귀의한 지 7일 만에 아라한과를 증득했고,[G. P. Malalasekera, Dictionary of Pali Proper Names(=DPPN), (New Delhi: Munshiram Manoharlal, 1983), vol. Ⅱ, p.542] 사리뿟따는 2주가 지나기 전에 아라한이 되었다.[DPPN, vol. Ⅱ, p.1109]

또한 사마(Sāmā) 장로니는 아난다 존자의 법문을 듣고 통찰력을 얻은 후 7일째 되는 날 아라한이 되었다.[Thig. vs. 37-38; ThigA. 44] 수자따(Sujātā) 장로니는 사께따(Saketa)의 백만장자의 딸이었는데, 같은 부류의 남편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어느 날 그녀는 여행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안자나와나(Añjanavana)에서 붓다를 친견하고 법문을 들었다. 그녀는 붓다의 법문을 듣고 곧바로 아라한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의 허락을 얻어 출가했다.[Thig. 145-150; ThigA. 136f] 한편 닷바 말라뿟따(Dabba-Mallaputta) 장로는 여섯 살에 아라한이 되었으며,[DPPN, vol. Ⅰ, p.1059] 밧다(Bhadda) 장로는 일곱 살에 아라한이 되었다.[DPPN, vol. Ⅱ, p.348] 이러한 기술은 붓다에게 귀의하고 그 가르침을 실천한 사람들이 어떻게 도(道)를 구했는가 하는 사실을 설명하는 동시에 아라한에 대한 초기불교의 입장을 잘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응 스님은 이러한 기록을 근거로 ‘깨달음이란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 같다.

이처럼 초기경전에서는 붓다의 제자가 된 사람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초기불교에서는 처음부터 수행의 과정을 단계적으로 나누었던 것은 아니며, 사과(四果: 預流果․一來果․不還果․阿羅漢果)라는 것도 일단의 목표로서 설해졌던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왜냐하면 초기불교의 네 가지 수행 단계는 나중에 체계화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나중에 체계화된 네 가지 수행단계는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는 예류과(預流果, sotāpanna, 須陀洹으로 음역되기 함)로서 성자의 흐름에 들어간 단계이다. 둘째는 일래과(一來果, sakadāgāmin, 斯陀含으로 음역되기 함)로서 한 번만 욕망․미혹의 세계로 돌아오고 해탈을 얻는 단계이다. 셋째는 불환과(不還果, anāgamin, 阿那含)로서 다시 미혹한 세계에 태어나지 않는 단계이다. 넷째는 아라한과(阿羅漢果, arahant)로서 최고의 해탈을 완성한 단계이다.

이 가운데 세 번째까지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유학(有學)의 성자라고 한다. 반면 마지막 아라한은 모든 수행을 완전히 실천하여 더 이상 배워야 할 어떠한 것도 없는 단계이기 때문에 무학(無學)의 성자라고 한다. 이러한 네 가지 단계는 다시 그것으로 향하는 상태와 거기에 도달한 상태로 나누어 모두 여덟 가지의 상태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것을 사향사과(四向四果) 또는 사쌍팔배(四雙八輩)라고 부른다.

그러나 후대 부파불교의 아비달마 논사들에 의해 수행의 단계는 매우 복잡한 체계로 정리되었다. 그 결과 마지막 아라한과는 대단히 높은 수준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경지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초기경전에 설해져 있는 아라한은 수행에 의해 도달되는 것이지 아비달마 교학의 그것처럼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최초기 아라한의 경지는 어떤 것인가? 나중에 체계화된 네 가지 수행단계에 의하면, 처음 다섯 비구들이 터득한 경지는 성자의 초기단계인 예류향(預流向)이나 예류과(預流果)를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꼰단냐의 경우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비록 꼰단냐가 연기의 원리를 터득함으로써 법안(法眼)이 생겼지만, 그가 궁극의 목적인 열반을 증득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열반은 탐(貪)․진(瞋)․치(癡)의 삼독(三毒)이 완전히 소멸된 경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율장≫의 <대품>에서는 “오라. 비구여, 법은 잘 설해져 있으니, 바르게 괴로움의 끝을 이루기 위해 범행(梵行)을 닦으라.”[Vin Ⅰ, p.3]고 설해져 있다. 이것은 꼰단냐가 비로소 법의 눈[法眼]을 뜨게 되었으므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괴로움을 종식시키기 위해 범행을 닦으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비록 다섯 비구들이 붓다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도선언(傳道宣言)’을 통해서도 초기 아라한들의 경지를 엿볼 수 있다. ≪상윳따 니까야>의 <올가미경(pāsa-sutta)>(SN4:4)에 “비구들이여, 나는 신들과 인간들의 모든 덫으로부터 벗어났다.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신들과 인간들의 모든 덫으로부터 벗어났다.”[SN Ⅰ, p.105; Vin Ⅰ, p.20, “mutto-ham bhikkhave sabbapāsehi ye dibbā ye ca mānusā.]라는 대목이 나온다. 빨리어 빠사(pāsa)는 ‘올가미’, ‘덫’을 의미한다. 이 경과 대응하는 ≪잡아함경≫ 권39 제1096경에는 “나는 이미 인간과 천상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대들도 인간과 천상의 속박을 벗어났다.”[T2, p.288a, “我已(以)解脫人天繩索, 汝等亦復解脫人天繩索.”]고 설해져 있다.

붓다는 60명의 제자들에게 전도의 길의 떠나라고 당부하면서 제일 먼저 “나는 신들과 인간들의 모든 덫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대들도 신들과 인간들의 모든 덫으로부터 벗어났다.”고 말했다. 이것은 ‘전법자의 자격’을 말한 것이다. 즉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와 체험이 갖추어졌음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신들과 인간들의 모든 덫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은 붓다시대의 바라문들의 전변설(轉變說)과 사문들의 적취설(積聚說)을 상징한 것이다. 바라문들의 전변설은 상주론(常住論)이고, 사문들의 적취설은 단멸론(斷滅論)이다. 붓다는 연기의 자각을 통해 전별설과 적취설, 혹은 상주론과 단멸론이 진리가 아님을 깨달았던 것이다. 붓다는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60명의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그러자 60명의 제자들은 짧은 기간에 그 이치를 터득했다. 그래서 붓다는 각자 전도의 길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때 60명의 제자들이 터득한 경지는 그렇게 높은 차원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필자는 초기불교 아라한들의 경지는 ‘진리에 대한 눈뜸’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계속되며 점차 그 깊이를 더하게 된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아라한과를 증득하게 된다. 그때 비로소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것을 해탈의 완성, 혹은 현세에서의 열반을 실현한 것이라고 한다.

≪율장≫의 <대품>에는 붓다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구족계를 받은 제자가 60명이 되었을 때, “그때 이 세상에는 61명의 아라한들이 있었다.”[Vin Ⅰ, p.20, “tena kho pana samayena ekasaṭṭhi loke arahanto honti.”]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붓다도 아라한들 가운데 한 명으로 포함시킨 것이다. 이처럼 초기승가에서는 붓다도 다른 아라한들과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점차 추대로 내려오면서 붓다와 다른 아라한들을 구별하기 시작했다. 아라한들은 붓다의 가르침으로 인해 깨달음을 이루었기 때문에 ‘붓다누붓다(buddhānubuddha)’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 즉 아라한의 경지는 선불교에서 말하는 구경각(究竟覺)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처음부터 논쟁의 대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 법을 본다는 의미와 점차적 수행 
≪맛지마 니까야≫(MN28)에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MN Ⅰ, pp.190-191, “yo paṭiccasamuppādaṃ passati so dhammaṃ passati, yo dhammaṃ passati so paṭiccasamuppādaṃ passatī'ti.”; 瞿曇僧伽提婆譯, <中阿含經> 권7 제10 象跡喩經(<大正藏> 1, p.467a), “若見緣起便見法, 若見法便見緣起.”]고 했다. 또한 ≪상윳따 니까야≫(SN22:87)에서 붓다는 왁깔리 존자(āyasmā Vakkali)에게 “법을 보는 자는 나[붓다]를 보고, 나[붓다]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SN Ⅲ, p.120, “yo kho dhammaṃ passati so maṃ passati, yo maṃ passati so dhammaṃ passati.”; <增壹阿含經> 卷20(<大正藏> 2, p.652c), “若觀法者, 則觀我已.”]고 설했다. 왁깔리 존자는 이러한 붓다의 설법을 듣고 곧바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자결했다.[SN Ⅲ, p.119f]

여기서 ‘본다’는 동사 빳사띠(passati)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철저한 부정의 사고로 내부의 성품이나 본연의 진리를 꿰뚫어 보는 지혜를 지니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므로 ‘진리(법)를 보는’이란 무아(無我)를 이해하는 것이고, ‘연기를 보는’이란 인과법을 이해하는 과학적 눈뿐만 아니라, 모든 현상들은 상관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깨우치는 진리의 눈(法眼, dhamma-cakkhu)도 갖추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응 스님이 ‘깨달음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해서 전혀 근거가 없는 틀린 말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붓다는 사성제를 통찰함으로써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었다. 하지만 사성제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은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SN Ⅴ, p.452 이하] 이를테면 괴로움,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차례대로 하나씩 깨달아 나간다. 이처럼 사성제의 깨달음은 단박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성취된다는 것이 초기불교의 시각이다.

≪맛지마 니까야≫(MN70)에 “비구들이여, 나는 완전한 지혜(aññā)의 성취가 단번에 이루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와 반대로 점차적으로 배우고 점차적으로 실천하고 점차적으로 닦아 완전한 지혜의 성취가 있게 된다.”[MN Ⅰ, pp.479-480, “nāhaṃ bhikkhave ādiken’ eva aññārādhanaṃ vadāmi, api ca bhikkhave anubbasikkhā anupubbakiriyā anupubbapaṭipadā aññārādhanā hoti.”]고 설해져 있다. 이것은 완전한 지혜의 성취, 즉 아라한과는 단박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붓다는 점차적인 닦음에 의해 점진적으로 무르익는 깨달음을 가르쳤다.

초기불교에서 가르치는 깨달음에 대해 임승택 교수는 “사성제를 내용으로 하는 깨달음의 경지는 결코 현실과 유리된 초월적 상태가 아니다. 이것은 붓다의 가르침과 행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붓다가 이룬 사성제의 깨달음이란 일상에서 출발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실현하여 완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결코 단박에 성취하였던 것이 아니며 또한 성취하고 나면 그만인 그러한 경지도 아니다. 그것은 탐욕과 집착이 남아있는 한에서 끊임없이 닦아나가야 할 과제로 제시되는 그러한 경지하고 할 수 있다.”[임승택, ≪초기불교: 94가지 주제로 풀다≫(서울: 종이거울, 2013), p.30]고 말했다.

3. 선정 없는 지혜는 없다 
현응 스님은 선정이 없어도 깨달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선정 없는 지혜는 상상할 수도 없다. 초기불교에서 팔정도(八正道)는 수행의 근간이다. 또한 팔정도는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불교수행의 핵심은 계․정․혜 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초기불교에서부터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불교 고유의 전통설이다. 

붓다는 선정을 배척하지 않았다. 다만 당시의 수행자들이 수행의 목적을 선정에 두었기 때문에 그것을 비판했을 뿐이다. 즉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것을 붓다가 지적했을 뿐, 선정 자체를 배척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선정 없이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은 바른 견해라고 할 수 없다. 불교의 모든 수행은 계․정․혜 삼학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사마타(samatha, 止)와 위빳사나(vipassanā, 觀)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따라서 지관겸수(止觀兼修)는 초기불교에서부터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수행의 지남침이 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디가 니까야≫의 <대반열반경(Mahāparinibbāna-sutta)>에 의하면, “이것이 계(戒)이다. 이것이 정(定)이다. 이것이 혜(慧)이다. 계(戒)가 실천되었을 때, 정(定)의 큰 이익과 과보가 있다. 정이 실천되었을 때, 혜(慧)의 큰 이익과 과보가 있다. 혜가 실천되었을 때, 마음은 번뇌, 즉 욕루(欲漏, kammāsava)․유루(有漏, bhavāsavā)․견루(見漏, diṭṭhāsavā)․무명루(無明漏, avijāsavā)로부터 해탈하게 된다.”[DN Ⅱ, p.81, “iti sīlaṃ iti samādhi iti paññā,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ṃso,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paññā-paribhāvitaṃ cittaṃ sammad 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īdaṃ kāmāsavā bhavāsavā diṭṭhāsavā avijjāsavā ti.”]고 했다.
≪법구경(Dhammapada)≫에서도 “지혜 없는 자에게 선정이 없고, 선정이 없는 자에게 지혜가 없다. 선정과 지혜를 갖춘 사람은 열반에 가까이 간다.”[Dhammapada(=Dhp), ed. O. van Hinüber and K.R. Roman, (Oxford: PTS, 1995), v.372, “n'atthi jhānaṃ apaññassa paññā n'atthi ajhāyato, yamhi jhānañ ca paññā ca sa ve nibbānasantike.”]고 했다.

이 세 가지 가운데 계(戒)가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도덕적 기초 없이는 어떠한 정신적 발전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지계는 선정이나 지혜를 얻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지계를 다른 말로 ‘심신(心身)의 조정(調整)’이라고도 한다. ‘심신의 조정’ 없이는 정신을 통일․집중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선정이 필요한가? 통일․집중된 정신을 통해 올바른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선정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붓다 당시 외도(外道) 중에는 선정을 수행의 최후 목적으로 삼아 선정을 얻으면 그것으로 열반의 이상경에 도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붓다가 성도 전에 사사(師事)했던 알라라 깔라마(Āḷāra Kālāma)와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āmaputta)라는 두 선인과 62견(見) 가운데 초선(初禪) 내지 제사선(第四禪)의 선정 그 자체를 열반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이들을 주정주의자(主定主義者), 혹은 수정주의자(修定主義者)라고 부른다. 붓다가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를 만나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과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체험했지만, 그들의 곁을 떠났다. 이것은 붓다가 선정이나 수정주의를 버린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선정 수행 자체를 그 목적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의 곁을 떠났던 것이다. 학자들은 이것을 붓다가 수정주의를 버린 것으로 잘못 해석하지만, 붓다는 결코 선정이나 수정(修定)을 버리지 않았다. 또한 붓다는 선정이 무익(無益)하다고 말하지도 않았다.[조준호, 「석가모니 붓다는 수정주의(修定主義)를 버렸는가」, <韓國禪學> 제11호(한국선학회, 2005), pp.193-238 참조] 선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초기경전은 수없이 많다.

선정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만 지혜를 얻기 위한 전제 조건임은 분명하다. 붓다가 보리수 아래에서 연기의 도리를 깨달은 것은 선정의 상태에서였다. 올바른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신이 통일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얻고자 하는 지혜가 고도로 순수한 것일수록 선정도 극도로 순화되고 통일되어야만 한다. 이와 같이 선정은 올바르고 뛰어난 반야의 지혜를 획득하는 데 꼭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이미 얻은 지혜․경험을 최고도로 활용하는 데에도 필요한 것이다. 가령 우리가 이미 뛰어난 지혜․경험을 얻었다고 해도, 정신이 통일되어 있지 않고 냉철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면, 그 지혜․경험을 충분히 구사할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팔정도가 없는 수행은 바른 수행법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깨달았다는 자가 사성제와 연기법을 잘못 이해하거나 존재의 세 가지 특성인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의 삼특상(三特相)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그의 깨달음은 한 번쯤 의심해 볼만 하다. 사성제, 연기법, 삼법인에 벗어난 것이라면 붓다의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깨달았다고 하는 자가 아직도 탐․진․치 삼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바르게 수행했다고 볼 수 없다.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열반의 증득에 있기 때문이다.

Ⅳ. 맺음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과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 특히 중국의 선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개념이나 정의는 전혀 다르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고 오직 자신의 견해만 옳고 다른 사람의 견해는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만큼 불교사상 전체를 이해하는 수준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불교는 단일한 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교설은 정반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모든 불교도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불교사상사나 불교교리발달사 또는 경전성립사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끝으로 현응 스님의 기조발제문은 논리정연하지는 않지만, ‘불교의 핵심은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이다’고 강조한 그의 주장은 타당하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불교의 핵심은 보리(bodhi, 깨달음)와 살타(sattva, 역사)’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응 스님의 불교관은 붓다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 여기서’ 어떻게 지혜와 자비를 실현할 것인가 하는 것이 과제로 남는다. 이런 의미에서 현응 스님은 한국의 많은 승려들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깨달음’에 함몰되어 있는 것을 지적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현응 스님은 ‘지금 여기서’ 대승의 보살로서 보리살타(菩提薩埵)를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급선무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마성/ 철학박사․팔리문헌연구소장


비밀댓글입니다
어떤 하나의 교리나 주제에 대해서 초기불교적인 관점과 선불교적인 관점이 많이 다른 경우가 마성스님이 지적하신 내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그동안 깨달음이나 선정이라는 것 자체가 선불교적인 관점으로 치중되어 있다가 이제는 초기불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늘어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마성스님 지적대로 깨달음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선불교와 초기불교의 관점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사실 논쟁의 대상이 되는게 아니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논쟁이라기 보다는 어느것이 옳으냐하는 취사선택의 기로에 서있다고 봐야 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먹을 쥐고 보여주면서 손 안에 보석이 있다라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사람 말대로 그대로 믿든가 아니면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못믿겠다든가 양자 택일을 해야 할 것 입니다.

초기불교에서는 진리를 통찰하여 꿰뚫는다를 본다(SEE), 알았다, 확인했다라는 뜻입니다. 경전에서는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라고 합니다.

이 말은 내 눈으로 보석을 직접 확인했다는 말이지 결코 관념적으로 추상적으로 상상으로만 저 사람 손안에 보석이 있을꺼야.. 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뜻이 절대로 아닙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는 것입니다. 보석이라는 진리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여 알아채는 것이 곧 지혜입니다. 이것을 초기불교에서는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리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즉 보석이구나 돌이구나 하는 그 눈을 어떻게 만드냐는 바로 선정의 목적입니다. 선정은 진리를 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수행법일 뿐 결코 선정 그 자체가 목적이지 않습니다. 선정은 지혜의 힘을 키우는 수행방법이고 수단일 뿐입니다. 본문에서도 강조를 하고 있지만 선정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리면 이건 불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선정이라는 것은 불교뿐만 아니라 타종교에서도 엄청 하는 것이며 이러한 선정으로는 누구나 비상비비상처까지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붓다께서 두 사람의 요가수행자를 떠난 이유가 바로 선정이 선정일뿐 결코 궁극의 지혜를 보는 지혜의 힘을 키우는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씀드리지만 해탈이라는 것은 불교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해탈 자체가 인도의 전통적인 수행법에서 이미 존재했던 것이고 또한 누구나 해탈은 얻습니다. 카톨릭의 명상만으로도 8해탈중 일정한 해탈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불교는 해탈을 넘어서 열반이라는 새로운 덕목을 세움으로써 불교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해탈하고 열반한다"라고 하지 결코 해탈=열반을 동격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또한 경전에 나오는 수많은 해탈 이야기는 진정한 의미에서는 불교적 해탈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코 외도들이 얻는 그런 해탈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외도들에게는 해탈이 해탈로써 끝나지만 불교에서는 해탈하고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당연히 팔정도에 의한 수행이 중요하고 올바른 수행에 의한 불교적인 혜안 즉 법안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팔정도 수행에 의한 올바른 법안 즉 불교적인 지혜를 갖추어야 비로소 사성제 무아 무상 고를 보는 것입니다. 같은 해탈자들이라도 불교적인 혜안이 없다면 무아 무상 고를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이 불교와 타종교와의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다시말씀드려서 보석을 보더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서 수많은 말들을 할 수 있습니다. 보석을 보는 것은 같겠지만 외도들은 빛난다 아름답다 영롱하다라고 하겠지만 불교도들은 그 보석에서 무상 무아를 보는 것입니다.

또한 불교에서 깨닫는다 알아챈다 안다라는 뜻은 진리를 보는 눈 즉 보석을 보더라도 영롱하다거나 빛난다라는 것으로 보는게 아니라 사성제를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결코 일반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불교에서는 안다=알음알이라고 하여 상당히 폄훼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것은 초기불교에서의 깨달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전혀 모르거나 또는 오해를 한 아주 서글픈 것입니다.
맑은 물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하나는 찌꺼기가 가라앉은 상태이고 또다른 하나는 찌꺼기가 완전히 제거된 상태입니다. 이 둘은 맑은 물이긴 하지만 180도 다릅니다. 찌꺼기가 가라앉은 맑은 물은 언제든지 찌꺼기가 올라와서 물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찌꺼기가 완전히 제거된 맑은 물은 어떠한 경우에도 맑은 물을 유지합니다.

제가 감히 말씀드리건데 선승들의 선정은 찌꺼기가 가라앉아서 맑게 보일뿐이지 결코 찌꺼기가 완전히 제거된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8 해탈중 하나를 획득했을지 모르지만 결코 열반을 획득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최근 한국의 고승들이 보여준 몇몇가지 행태를 보면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분들은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고 분별을 하며 어떤분은 책을 펴냈다가 절판하라고 하고 어떤 분은 간화선만이 최고다라고 편협된 사고방식까지 보입니다. 간화선만 옳다면 팔정도 사띠 위파사나를 말한 붓다는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찌꺼기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불교의 간화선이 일견 옳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불교에서 주장하듯이 그렇게 ONLY ONE WAY 라고 한다면 그럼 간화선이 아닌 천태대사나 그밖의 화엄성자들 그리고 또 법화 고승들 등등은 모두다 어떻게 설명을 할련지 궁금합니다.

깨달음의 논쟁이 한국불교에서 일어나는 것은 저는 개인적으로 대환영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논쟁이나 대론을 통해서 초기불교의 깨달음에 대한 개념이 바로 설 수 있고 또한 계-정-혜에 대한 올바른 수행법이 정립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덧붙여서 선불교를 옹호하는 일부 승려들이나 재가자들의 글을 보면 케케묵은 중국한자 용어를 동원하거나 조사들의 아리송한 말들을 들고나오는데 솔직히 안타깝습니다. 물론 그분들 입장에서야 자신의 지식을 포장하기 위해서 그런 어려운 한자용어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조사들의 선문답을 들고 나오겠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어리석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입니다.
실론섬 님의 평소 신념들 중 ~ 계-정-혜 ~ 정 없이도 계를 구족할 수 있고, 정 없이도 혜를 증득할 수 있으리라는 그 신념들이 혹시 바뀌셨나요? 아님 아직도 쉽디 쉬운 탐진치-소멸을 믿고 계시는지 또 머리로 굴리는 경안과 불혜를 주장하고 계시는지 문득 궁금하군요.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그럼 계 없이도 올바른 선정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또 할려고... 내가 언제 정 없이도 계가 구족되고 정 없이도 혜를 증득한다고 했나요? 거참...

계는 필요없고 그냥 선정만 하면 구경각을 이룬다고 그리 생각하면 그렇게 수행하면 될 것을 왜 굳이 남의 집에 와서 시비를 거는지..ㅉㅉㅉ 그대 부류들은 계율을 지키지 않아도 되고 수행에는 계가 필요없다는 부류들 아닌가?

그리고 내 주장은 선정은 선정이 목적이 아니라 지혜를 획득하는 수행의 방편 혹은 수단에 불과하다라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구만 그건 눈에 안 보이나 봅니다. 거참... 선정이 왜 지혜를 획득하 수단에 불과하냐고 따지고 싶으면 다른 곳에 가셔서 따지든가 하시면 될 것 같네요.
그리고 솔직히 이런 말씀도 드리고 싶네요.

저는 대론이나 토론을 좋아 합니다.
하지만 마성스님말씀처럼 토론 자체가 안되는 것을 토론이라고 입씨름하고 싶지 않습니다.

요즈음 세상은 내 자식도 마음대로 안되는 세상이더군요.
그런데 타인의 마음을 바꾸고 잘잘못을 지적하여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입니다. 붓다 재세시에도 붓다의 설법을 들은 사람들이 전부다 불교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듯 붓다도 못바꾸는 중생 마음을 제가 어찌 바꿀수 있겠는지요.

내 동생이라면 머리통을 한대 쥐어박기라도 하겠지만 그러지도 못하니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 멋대로 뜻대로 사세요.
님이 내생각에 따라 오라고 하고 싶지 않듯이 나도 님의 생각에 따라가고 싶지 않습니다. 각자 자기 멋대로 살다 갑시다.
해탈이라는 것은 불교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해탈 자체가 인도의 전통적인 수행법에서 이미 존재했던 것이고 또한 누구나 해탈은 얻습니다. 카톨릭의 명상만으로도 8해탈중 일정한 해탈에 도달합니다.
......

말씀 감사합니다.
카톨릭에서도 명상과 기도로 인한
선정상태에서의 해탈을 경험하신 분들이 엄청 많다더군요.
힌두교와 도교, 이슬람,기독교 등 모든 종교와
일반인조차 나름의 깊은 도를 가지신 분들도 그러하시구요..
한국불교의 간화선이나 선정을 통해 깨달음 운운하며
부처님과 아라한에 비견한 깨달음을 성취했다는 자들의
말이나 글들을 보면 실소가 나옵니다.

그건 말씀처럼 단지 정신세계의 강물 속에
찌꺼기가 가라앉은 것에 불과한 것이라 보기 때문이죠.
"경험해 보지 않았으면 말을 마"라고 내지르면 사실상 아무도
터치하지 못하는 개인적 영역이기에 더 그러할테죠.
그래서 전 다른 무엇보다 제대로 누군가가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해하고 비슷한 경험이라도 했다면
일단 그사람은 최소한 화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자유자재 제어할 줄 알며, 독선에 사로 잡히지 않고,
속세인 아니 재가자 누구라도 그들의 마지막을
공감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일례로 
아라한과에 도달하셨다던
성철스님조차 괴팍한 화를 자주 내셨다 들었으며

법정스님은 말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겠다는 이유로
그 엄청난 인쇄를 사후 장학금이나 기부에 쓰시지 않고
모든 저작을 절판하시는 모습을 보고
,
도대체 그분들은 그 어떤 깨달음에 도달 하셨기에
속세인들조차 이해하고 납득하기 힘든 행동과 결정을
하셨는지 전 아직도 불가사의입니다.

물론 그분들의 선업과 업적이 높디 높으심을 잘 알기에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_()_
기독교나 카톨릭 그리고 이슬람교등에도 감히 일반인들이 흉내낼 수 없는 뛰어난 행적을 보여준 많은 성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요가는 초기대승불교의 유식학파들의 수행방법이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요가하면 몸을 비틀고 묘한 자세를 취하는 체조정도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실제 요가는 엄청난 정신훈련이고 수행입니다. 그리고 범망경에 보면 62가지 외도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들도 과거생을 볼 정도로 엄청난 수행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훗날 수행교리가 정립되면서 사선정과 그리고 요가수행등의 인도전통적인 수행법에서 가져온 사무색정을 합쳐서 구차제정이라는 단계를 정교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요한 것은 비상비비상처까지는 누구나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단적인 예가 붓다께서 출가후 찾아간 두 분의 요가수행자의 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비상비비상처까지는 갈 수 있지만 그것을 뛰어 넘어 그 다음 단계 즉 사성제와 고 무아 무상을 꿰뚫어 통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스개이야기이지만 저는 김수환 추기경도 화장했으면 아마도 사리 엄청 나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죄송한 말씀일지는 몰라도 이분의 수행정도는 웬간한 출가승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붓다께서는 당시의 인도수행법등을 모두다 경험하시고 6년간의 기나긴 고행도 해봤습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당시 알려져있던 모든 수행법은 경험했고 그리고 비상비비상처까지도 도달했던 분입니다. 그러한 모든 수행법을 경험하신 후에 정각을 얻으셨고 그리고 올바른 수행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팔정도 입니다. 그리고 이를 37조도품으로 넓게 펼쳐서 세세하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붓다께서 제시한 이런 수행법으로만이 비로소 법안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법안이란 바로 불교적 지혜 즉 무상 무아 고를 꿰뚫어 통찰하는 지혜입니다. 손안의 보석을 누구나 보되 영롱하다 아름답다 비싸겠다라고 보느냐 아니면 무상 무아 고를 보느냐 이것이 타종교와 불교의 갈림길이라는 것입니다.
한국분들이 굉장히 착각하고 오해를 하고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있는게 바로 선불교의 고승들 즉 조사들입니다. 마치 그분들이 불교의 전부인냥 착각들을 하시는데 ... 선불교는 중국불교 종파의 일개 분파에 불과한 것입니다. 선종을 표방하는 조계종이 한국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갖고 있다보니 착시현상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만 .. 이제는 배운 불자라면 그런 착각에서 벗어나서 올바르게 볼 때도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번 말씀드리지만 고승전을 한번쯤은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모든 고승전에 나오는 그 수많은 고승들이 전부다 선불교의 선승들이 아닙니다. 화엄 법화 정토등에서 수많은 고승들이 탄생을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혜능조사와 천태지의대사중 어느 누가 도력이 높겠는지요? 왜 헤능조사는 알아도 천태지의 대사는 모르는지요? 천태대사가 선불교의 선승 아닙니다. ^^ 화엄성자로 불리우는 법장스님이 선승은 아닙니다. 김묘각 스님이 선승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절에가면 꼭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님 찾으시지요. 그분들 선불교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에 나오는 본존불이나 보살님들이 아닙니다. ...^^ 참으로 안타까운 오해입니다. 아이고 ~~ 그러고 보니 저도 선승들의 선어록이나 선문답을 잔뜩 올려 놓았네요. ㅎㅎ
손안의 보석을 누구나 보되 영롱하다 아름답다 비싸겠다라고 보느냐 아니면 무상 무아 고를 보느냐 이것이 타종교와 불교의 갈림길이라는 것입니다.
.......

옳으신 말씀 이십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고승들의 선 수행과 그들의
선문답이 불교의 모두 인냥 부처님 가르침의 본질과 같다고
여기고 있으니 말입니다.
정말 한국 조계종으로 인한 참된 불교의 왜곡이 심각한 상황이죠.
요근래 초기불교의 대중적 확산으로 많은 분들이
깨치고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초기불교vs대승불교란 편협한 시각을 버려야만
진정 한국불교의 개혁은 가능하리라 봅니다.
_()_
마성스님이 지난번에 올린 기고를 참조해 보면 선불교와 초기불교의 깨달음에 대한 각각의 결론은 간단하며 명명백백하여 더이상 논쟁의 대상이 되질 않습니다. 논쟁이 대상이 되질 않고 특히 물과 기름과 같은 것을 계속하여 논쟁하고 우유와 물처럼 섞일 수 있다고 한다면 이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을 것 같습니다. 즉 마성스님의 말씀처럼 "초기불교 깨달음과 禪의 구경각은 다른 차원" 입니다. 그런데도 논쟁을 계속 한다면 이건 맛지마 니까야의 아래 경구들과 조금도 다름없습니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미혹한 자들이 경‧응송‧수기‧게송‧감흥어‧여시어‧본생담‧미증유법‧문답 같은 법을 배우지만 그 법을 배워 통찰지로 그 법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 그 법의 뜻을 통찰지로 자세히 살피지 않을 때 그들에게 그 법들은 확립되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자기 교리를 주장하기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법을 배우므로 법을 배우는 그 궁극의 의미를 체득하지 못한다. 그들이 잘못 파악한 그 법들은 그들을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다."

다시말씀드려서 최근 한국불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깨달음의 논쟁은 전혀 무의미하며 서로에게 상처만 남길뿐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승이 초기불교로 전부다 개종을 하든가 아니면 초기불교가 대승으로 전부다 개종을 한다면 소란이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천년 만년을 논쟁을 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승과 초기불교는 어차피 소의경전도 다르며 수행방법도 다릅니다. 아무리 초기불교에서 사성제가 깨달음이라고 목이 쉬도록 외쳐도 대승불교에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선불교의 간화선수행이나 참나 같은 것들이 옳다고 하더라도 초기불교에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불교(Buddism)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전혀 다른 불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서로가 내것이 최고이고 내것만이 옳다고 주장한다면 그 결과는 서로의 공멸뿐일 것입니다.

초기불교는 초기불교대로 갈 길을 가고, 대승불교는 대승불교대로 갈 길을 가면서 서로 존중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그런 대내외적으로 화합된 모습만이 상호 상생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언변이나 교설등을 내세워 자신의 지식이 대단하다는 식으로 논쟁하기 보다는 대승과 초기불교가 모두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진리인 보시.자비등에 더 힘을 써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상호 보완하고 의존하는 상생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깨달음이란 논쟁이 일어나자 전혀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는 깨달음을 가지고 그것을 부추키고 편승하여 자신의 이름을 드 날리거나 또는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싶은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분들에게는 뱀의 비유경을 재삼 꼽씹어 보라고 권합니다.

붓다의 옛길

붓다의 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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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섬

스리랑카는 '찬란하게 빛나는 섬'이라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실론이라고 불렸습니다. 붓다의 육성을 간직한 빠알리 경전을 보유하고 있는 근본불교(초기불교.원시불교)의 종주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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