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5

알라딘: 2009 오강남 또 다른 예수

알라딘:  2009 오강남 또 다른 예수

또 다른 예수 -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의 '도마복음'풀이   
오강남 (지은이)예담200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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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16,000원
Sales Point : 1,792 

 9.1100자평(14)리뷰(9)

기본정보

양장본
446쪽



책소개
예수의 어록으로 이루어진 <도마복음>의 텍스트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비교종교학의 관점에서 풀이하여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도마복음>은 구원에만 초점을 맞춘 신약성경의 공관복음에 비해
내 속에 계시는 하느님을 아는 것과 이것을 깨닫는 깨침을 통해 내가 새 사람이 되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저자는 <도마복음>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환기식 독법’으로 재해석해낸다. 환기식 독법이란 본문 자체의 의도를 찾아보고 오늘날 우리에게 메시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적용해보는 ‘독자 반응 중심의’ 독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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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서문 독자들께

예수의 비밀의 말씀
서언 살아 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제1절 올바르게 풀이하는 사람은
제2절 찾으면 혼란해하고
제3절a 천국이 하늘에 있으면 새들이
제3절b 너 자신을 알라
제4절 늙은이도 갓난아기에게서 배우고
제5절 바로 앞에 있는 것을 깨달으면
제6절 금식을 할까요?
제7절 사람이 사자를 먹으면

본래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라
제8절 지혜로운 어부와 같으니
제9절 씨를 한 줌 쥐고 뿌리는데
제10절 불을 지피다
제11절 하늘은 사라질 것이고
제12절 의인 야고보에게 가야
제13절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작에서 끝을 보라
제14절 금식을 하면
제15절 여자가 낳지 아니한 사람을 보거든
제16절 이땅에 분쟁을
제17절 눈으로 보지도 못했고
제18절 끝은 시작이 있는 곳에
제19절 있기 전에 있는 사람은 행복하니
제20절 그 나라는 겨자씨와 같으니

목숨처럼 사랑하고 눈동자처럼 지키라
제21절 남의 땅에서 노는 어린아이들과 같아
제22절 젖 먹는 아이를 보시고
제23절 천 명에서 한 명, 만 명에서 두 명
제24절 당신이 계신 곳을
제25절 목숨처럼 사랑하고 눈동자처럼 지키라
제26절 티는 보고 들보는 못 보는

세상의 아픔으로 아파하고
제27절 금식하지 않으면
제28절 내 영혼이 세상을 아파하고
제29절 육이 영을 위해
제30절 둘이나 한 명이 있는 곳에
제31절 예언자가 고향에서는
제32절 산 위의 도성은
제33절 지붕 위에서 외치라

깨침의 열쇠를 찾아
제34절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제35절 힘센 사람의 손을 묶어놓고
제36절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제37절 부끄럼 없이 옷을 벗어
제38절 나를 찾아도 나를 볼 수 없는 날이
제39절 깨달음의 열쇠를 감추고
제40절 포도 줄기가 아버지와 떨어져

나그네가 되어라
제41절 가지고 있는 사람은 더 많이
제42절 나그네가 되어라
제43절 당신은 누구십니까?
제44절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제45절 덤불과 가시는 좋은 과일을 맺을 수 없기에
제46절 여자에게서 난 사람 중에
제47절 동시에 두 마리 말을 탈 수 없고
제48절 한 집에서 두 사람이 서로 화목하고

어디서 왔느냐고 묻거든
제49절 홀로이며 택함을 받은 이는
제50절 어디서 왔느냐고 묻거든
제51절 언제 쉼이 있겠으며 언제 새 세상이
제52절 산 사람은 무시하고
제53절 할례가 쓸데 있습니까?
제54절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니
제55절 자기 부모를 미워하고
제56절 세상을 알게 된 사람은 시체를 찾은 사람
제57절 가라지 씨를 뿌리고

당신은 구구시기에
제58절 아픔을 겪는 사람은 행복하니
제59절 살아 있을 동안 살아 계신 이를 주목하라
제60절 잡아먹히지 않도록
제61절 당신은 누구시기에
제62절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알지 못하도록
제63절 부자 농부는 그날 밤 죽고
제64절 손님을 초청했으나
제65절 소작인들이 주인 아들을 죽이고
제66절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고
제67절 자기를 모르면

핍박을 받으면 행복하다
제68절 미움과 핍박을 받으면 행복하니
제69절 자기 마음속에서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하니
제70절 여러분 속에 있는 그것을
제71절 내가 이 집을 헐면
제72절 나누도록 말해주십시오
제73절 추수할 것은 많은데
제74절 우물 안에는 아무도
제75절 홀로인 사람만이 신방에
제76절 다 팔아 진주 하나를
제77절 나는 모든 것 위에 있는 빛
제78절 무엇을 보러 광야에
제79절 당신을 낳은 자궁이

세상을 깨닫게 된 사람은
제80절 세상을 알게 된 사람은
제81절 힘을 가진 사람은
제82절 나에게 가까이 함은 불 가까이
제83절 그들 안에 있는 빛은
제84절 여러분이 나기 전에
제85절 아담도 합당하지 않아
제86절 여우도 굴이 있고
제87절 몸에 의지하는 몸은
제88절 사자使者들과 예언자들이 와서
제89절 왜 잔의 밖을 씻는가
제90절 내게로 오라
제91절 당신이 누구신지
제92절 구하라 그리하면
제93절 거룩한 것을 개나 돼지에게
제94절 구하는 자는
제95절 돈이 있으면

아버지의 나라는
제96절 아버지의 나라는 작은 양의 누룩을
제97절 곡식이 가득한 항아리
제98절 그 힘센 자를 죽였더라
제99절 내 형제와 어머니
제100절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제101절 미워하지 않으면
제102절 자기도 먹지 않고 남도 먹지 못하게
제103절 도둑이 어디로 들어올지 아는 사람은
제104절 신랑이 신방을 떠날 때

둘을 하나로 만들면
제105절 창녀의 아들이라 불릴 것
제106절 둘을 하나로 만들면
제107절 아흔아홉 마리보다 너를 더
제108절 내 입으로부터 마시는 사람은
제109절 밭에 감추어진 보물
제110절 세상 것으로 부자 된 사람은
제111절 하늘과 땅이 말려 올라가도
제112절 영혼에 의존하는 몸이나 몸에 의존하는 영혼이나
제113절 아버지의 나라는 온 세상에 두루 퍼져 있어
제114절 여자를 남자로 만들어

저자후기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천국의 비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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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 도마복음』에 나오는 말씀들 중에는 신약 성경에 나오는 공관복음, 곧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아는 분들에게는 귀에 익은 말씀들이 많습니다. 실제적으로 약 50% 정도가 공관복음에 나오는 말씀과 평행을 이루는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도마복음』이 공관복음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공관복음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는 
    • 기적, 예언의 성취, 재림, 종말, 부활, 최후 심판, 대속 등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고, 
    • 그 대신 내 속에 빛으로 계시는 하느님을 아는 것, 
    • 이것을 깨닫는 ‘깨달’을 통해 내가 새 사람이 되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
  • 을 계속해서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 “저자서문” 중에서

    훌륭한 종교적 가르침은 ‘편안한 사람에게는 혼란을, 혼란한 사람에게는 편안을 준다
  • Disturbing the comforted, comforting the disturbed’고 한다. 언제나 안전지역에서의 편안한 삶,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삶만을 보장하는 종교는 우선은 편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성장과 발돋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선불교에서 사용하는 ‘화두話頭’나 ‘공안公案’도 우리의 상식적인 의식에 혼란을 주기 위한 것이라 하지 않는가. 이런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말씀의 더욱 깊은 뜻을 깨닫게 되면 놀랄 수밖에 없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하다. 전에는 볼 수 없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놀라운 은혜’이다.
    - 제2절 “찾으면 혼란해하고” 중에서  접기
  • 깨달음은 평생에 단 한 번 오는 일생일대의 대사건일 수 있겠지만, 일회적으로 그치기보다는 매일, 매순간 깨달음의 연속을 맛보며 신나게 사는 삶, 매사에서 죽음과 부활의 연속을 체험하며 사는 삶이 더 현실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옛 편견을 벗고 새로운 빛으로 들어서는 것, 산을 올라가며 점점 널리 전개되는 풍광을 내려다보며 계속적으로 외치는 “아하!” 경험, 바울이 말하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의 경험이 모두 깨침의 경험이라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제23절 “천 명에서 한 명, 만 명에서 두 명” 중에서

    이런 믿음은 실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표현한 대로, 천만 길도 더 되는 깊은 바닷물에 나를 턱 맡기고 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잔뜩 긴장을 하고 허우적거리면 허우적거릴수록 더욱더 빨리 가라앉고 말지만, 긴장을 풀고 느긋한 마음으로 몸을 물에 턱 맡기고 있으면 결국 뜨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을 믿는 것은 하느님의 뜨게 하심을 믿고 거기에 의탁하는 것이다.
    - 제36절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중에서  접기
  • 최근에는 경제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그리스도인 지도자도 있다. 경제가 인생사의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인임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물론 배고픈 사람들에게 당장 먹을 것을 구해주는 것 같은 ‘경제 활동’이라면 그것이 최우선의 과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빈익빈 부익부,’ 철저히 천박한 자본주의적 재테크에 따라 땅 투기나 기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오로지 돈을 모으겠다는 일념으로 살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받들고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예수님 따르는 사람이라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는 그냥 금송아지를 섬기는 사람일 뿐이다.
    - 제54절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니”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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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및 역자소개
    오강남 (지은이)


    현재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비교종교학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며,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연을 힌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교에서 『화엄의 법계연기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 등의 객원교수,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으며, 제17회 《코리아 타임스》 한국현대문학 영문번역상(장편소설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종교의 이해와 분석을 담은 『예수는 없다』, 『세계 종교 둘러보기』... 더보기


    최근작 :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고전 강연 2>,<도덕경 (큰글씨책)> … 총 59종 (모두보기)
    인터뷰 : 예수는 없지만 예수는 있다 - 2002.12.03


    출판사 제공 책소개

    내 속에 계신 하느님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예수가 진정 우리에게 원했던 삶을 담은 『도마복음』에 대한 풀이. 구원에만 초점을 맞춘 신약성경의 공관복음에 비해 내 속에 계시는 하느님을 아는 것과 이것을 깨닫는 깨침을 통해 내가 새 사람이 되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도마복음』을,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가 학자로서의 풀이와 이해를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환기식 독법’으로 재해석해냈다. 따뜻함과 명쾌함이 묻어나는 그의 해설을 통해 믿음을 넘어 깨달음을 추구했던 전정한 예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믿음을 넘어 깨달음을 전파한 예수를 만나다

    『또 다른 예수』는 예수의 어록으로 이루어진 『도마복음』의 텍스트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비교종교학의 관점에서 풀이하여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1945년 이집트 북부 나그함마디Nag Hammadi에서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된 문서 중 일부분이 『도마복음』이다. 4세기 초 로마 제국을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면서,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하나의 하느님, 하나의 종교, 하나의 신조, 하나의 성서’로 통일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개별적으로 떠돌아다니던 그리스도교 문헌들 중 27권을 선별해 기독교의 경전으로 정경화하고, 자신의 신학적 판단 기준에 따라 ‘이단적’이라고 여겨지는 책들을 모두 파기 처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때 『도마복음』은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판단하여 지금까지 외경으로 인식되었다.

    『도마복음』은 총 114절의 예수의 말씀인 어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50퍼센트 이상이 공관복음에 나오는 구절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성서고고학자들에게 『도마복음』의 발견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예수가 전한 ‘비밀의 말씀’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도마복음』은 공관복음에서 주로 언급되는 기적, 예언의 성취, 재림, 종말, 부활, 최후 심판, 대속 등은 없지만, 대신 내 속에 빛으로 계신 하느님을 아는 것, 이것을 깨닫는 깨달음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공관복음이 예수의 구원과 믿음에 대해 강조하였다면, 『도마복음』은 깨달음을 강조하면서도 공관복음과 전혀 상호배타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 공관복음과 동일한 평행구의 예수의 말씀을 통해 내 안의 하느님 나라와 내 안의 참나를 깨닫고 우리의 종교의식이 한층 업그레이드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떻게 믿고, 또 어떤 삶으로써 깨달음을 드러내야 할지를 선명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공관복음에 나타난 것과는 또 다른 예수를 통해 종교의 본질을 다시금 진솔하게 사색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내 안에 있는 하느님 나라”, 기독교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도마복음』은 현재적 “하느님 나라”를 강조하면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어떻게 살 것인지를 다루는 현실 복음이라고 할 수 있다.
    성서에서 예수는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설교하면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과 같은 장소의 개념이 지배적이고, 이렇게 이해하는 기독교인들도 많다. 이 책은 종말론적 입장에서 보는 내세적 하느님 나라보다 현재적 의미적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강조하면서 『도마복음』은 이 “하느님 나라”의 현재성과 그에 대한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 『도마복음』은 믿음을 부인하지 않지만, 믿음을 넘어서 의식의 변혁을 촉구하고 있다. 공관복음에서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고 강조하지만, 『도마복음』에서는 믿음을 넘어서서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과 그를 통해 자유와 해방을 얻고 새 생명으로 태어나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진정한 종교의 의미는 무엇이며, 참 종교인의 모습으로 사는 것에 대해 깊이 숙고해볼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저자는 『도마복음』이 씨? 사상과 맞닿아 있음을 설명하면서 깨달음을 통해 “믿는 것은 그리스도다. 그 그리스도는 영원한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 된다. 그는 예수에게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내 속에도 있다. 그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와 나는 서로 다른 인격이 아니라 하나라는 체험에 들어갈 수 있다”는 험석헌 선생님의 말씀처럼 깨침을 얻으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오강남 교수의 『장자』『도덕경』에 이은 고전 풀이의 역작

    『장자』『도덕경』을 펴낸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가 예수의 어록만으로 구성된 『도마복음』을 특유의 ‘환기식 독법’으로 풀어냈다. 환기식 독법이란 본문 자체의 의도를 찾아보고 오늘날 우리에게 메시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적용해보는 ‘독자 반응 중심의’ 독법을 말한다. 이 책에서 오 교수는 해박한 비교종교학의 지식으로 『도마복음』을 깊이 있게 풀어내면서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을 깨닫는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비교종교학을 공부한 배경을 살려 다른 종교 전통의 문헌들, 특히 『장자』『도덕경』『불경』 등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과 비교하면서 이해하려고 시도했다. 또한 학자적 관점으로만 풀이하기보다 한 구절 한 구절의 깊이 있는 의미를 다양한 관점으로 풀이하면서 역사적 문헌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떤 메시지로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에 주안점을 두었다. 접기


        
    9.1




        


    오강남 교수의 편향되지 않은 작품이다.  
    거북이 2011-08-09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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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관련 서적이라도 오강남의 책은 자주 읽는다. 아니, 골라서라도 읽으려 한다.
    나름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종교학자다.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학문 또는 앎으로서의 기독교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라 다양한 앎을 위해 오강남의 저작은 의미가 있다.  
    독서꽝 2014-07-20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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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여년간기독교를믿고교회에열심히다녔지만근본주의와문자주의에굳어있는죽어있는 신앙에회의를느껴교회를나와진짜예수를찾기위해무척해맸습니다신론,무신론기독교의역사,성경의역사,영지주의,진화론,창조론에관한수십권의책을읽었는데
    이책은저에게유익한많은참고가되어저자에게감사드립니다  
    jsdpaul 2013-07-25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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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 내내 전율을 느꼈었는데 다시 읽으니 더욱 감흥이 새롭게 온다. 도마복음의 가치를 폄훼하려는 부류가 있겠지만 4대복음과는 또 다른 진짜 예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특정 종교를 떠나 영성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Ajna 2019-03-30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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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는 믿음을 넘어선 깨달음을 원했다! - 도마복음 이야기 




    오강남 교수의 '도마복음' 풀이



    공관복음이라는 말도 첨 들어본 나로서는 '도마복음'은 낯설었다.

    그런데 이미 서론을 읽으면서도 이 책, 교회의 고집쟁이들은 참 싫어하겠단 생각이 든다. ㅋ~

    그래서 맘에 들었다.

    특히 한국 교회처럼 '성장 교회주의'를 우선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런 책들은 더 나와야 한다.

    물론, 오강남 교수는 한국에서 활동하기 어렵겠다만...



    여러분이 여자가 낳지 아니한 사람을 보거든 엎드려 경배하십시오.

    그분이 바로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15절, 95)



    성령으로 혹은 불로 다시 태어난 사람,

    스스로 내 안의 하느님을 발견하라는 도마복음서의 취지에 따르면,

    교회에 계신 하느님을 찾지 말고, 내 속에 빛으로 계시는 하느님(GNOSIS)을 깨달으라는 말이 된다고 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158)



    이 회개는 어원적으로 '의식의 변화'를 뜻한다고 한다.

    반성해서 그분의 세계에 편입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의식의 변화 혹은 변혁의 체험'을 바랐던 분이 예수님이셨다고...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 '도마복음'을 배격하고 '요한복음'까지 설정한 것은 의미가 깊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깨달음에 이르므로 모두 예수님처럼 자유의 사람이 되라는 '도마복음'식 기별을 받아들이는 사람보다,

    예수를 믿고 은혜의 선물로 주는 영생을 강조하는 '요한복음'의 길을 채택한 사람들이 많았다.(135)



    많은 기독교 교회들이 권력과 결탁하여 부를 누리고 있다.

    첨탑이 뾰족하게 자꾸 높아지면서 진리에서는 멀어지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이런 현실에서는 '요한복음'처럼 빛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도마복음'처럼 빛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우리 스스로도 빛임을 깨닫고 이를 비추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임을 공부하는 일도 신선한 경험이다.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말을 인용하면서 종교의 기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무엇을 해야 할까보다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할까를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성결의 기초를 행위에다 두지 말고 됨됨이에다 두도록 하라.

    행위가 우리를 성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위를 성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본질적 됨됨이에 있어서 위대하지 못한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그 행위는 헛수고에 그치고 만다.(176)



    헌금을 많이 하고, 신도 수를 늘리기 위하여 역전에서, 지하철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할까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무엇을 할까를 골몰한다.

    길거리에서 노래부르며 커피 나눠주는 '00교회' 신도들 역시 그렇다.

    그들의 됨됨이가 <등경 위의 등잔> 같다면, <우뚝 솟은 바위산> 같다면,

    애써 기타 튕기며 노래하고 커피 주지 않아도 교회로 사람들이 갈 것이다.



    도마복음의 가르침에서 뭔가를 얻을 수 있다면,

    오늘날 그리스도교에서 해야할 가장 시급한 일도

    이처럼 종교 지도자들이 감추거나 잃어버린 '깨침의 열쇠'를 다시 찾아 활용하라는 열쇠.(207)



    두드려야 열리고, 찾으면 구할 것인데,

    무엇을 할까에 골몰하는 그들은 두드리거나 찾지 않고, '감추거나' 애써 '잃어버리는' 교회로 가는 것은 아닌지.



    <크리스찬> 되기보다 <크리스트>가 되라



    이렇게 가르친 도마 복음을 되짚어 보는 일은, 높은 곳에서 자기들끼리 잘 사는 신도들에게

    뜨거운 죽비가 되지나 않을까?

    이미 죽비따윈 두렵지 않는 단단히 걸어잠근 마음이라면, 교회는 이미 크리스찬들의 천국이 되어버린 곳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든지 알게된 사람은 시체를 찾은 사람입니다.(56절, 267)



    죽음을 알고 겸허한 사람은, 삶을 속도와 성장에 무게두지 않는다.

    삶의 포인트는 밀도여야 한다.

    괴로운 밀도는 트라우마가 되지만, 행복한 밀도는 삶의 자양분이 되는 법.

    '깨달음' 이후로는 삶이 밝고 환하게, 신 나고 즐겁게 이끌어질 수 있다.

    시체를 찾은 사람이 되어라.



    가스펠 송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한 구절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참나>를 찾아 울타리를 떨쳐나갈 용기있는 사람.

    그 사람을 찾는 성경이 <도마 복음>이다.



    새삼, 안중근 선생의 세례명이 '도마'였음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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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샘 2014-01-02 공감(4)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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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사상가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  




    우리나라에도 기독교 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 전국 방방곡곡 솟아 있는 십자가만 봐도 이는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와 같은 비기독교인에게 맹목적으로만 보이는 그들의 믿음은 불편하다. 사랑을 외쳤다는 예수님은 왜 믿지 않는 자에게는 그리 잔인하리만큼 무서운 말씀들을 하셨을까. 살면서 기독교 문화를 많이 접했음에도 믿음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은 일단 믿으면 된다, 믿으면 좋다, 편안해진다는 식의 막무가내 때문이었다.


    오강남 선생님이 쓴 <또 다른 예수>는 이런 막연한 믿음에 일침을 가하는 책이다. 이 책은 <도마복음>을 소개하고 풀이한 책인데, <도마복음>은 1945년 경 이집트에서 발견된 성서로 아직 주류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성서다. 그 까닭은 분명하다. <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 이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음을 예고하고,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으라는 가르침을 설파하는 반면에 <도마복음>에서의 예수님은 스스로의 깨달음을 강조하며, 언제가 아니라 어디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의 예수님 말씀을 저자는 동양의 공자, 노자, 석가 등 기존의 성현들과의 가르침과 비교해 보며 깊이 있게 분석한다. 그러는 동안 나와 같은 비기독교인에게도 예수님은 친근하면서도 위대한 사상가로 다가온다.


    저자는 기독교와 타 종교 간의 연결고리를 <도마복음>에서 찾고 있다. 기독교와 유교, 불교, 도교 심지어 민족종교인 천도교가 어떻게 공통된 주제로 발전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기존 기독교인들이 읽기에는 굉장히 낯설고 불편한 책일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말미에 <도마복음>이 기존 복음서들과 배타적인 위치에 있는 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도마복음>이 기존의 복음서들에 내재한 더 깊고 은밀한 내용을 읽어낼 수 있는 열쇠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기존의 세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믿지 못하며 의문을 제기하는 제자 도마는 <도마복음>에서 유일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샘물처럼 마시고 깨달은 자로 그려져 있다. 예수님이 도마를 따로 불러 말씀을 전하시는데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무슨 말씀을 들었느냐고 물어본다. 그러자 도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님이 내게 하신 말씀 중 하나라도 자네들한테 말하면 자네들은 돌을 들어 나를 칠 것이고, 돌에서 불이 나와 자네들을 삼킬 것일세."(<도마복음> 제13절) 아무래도 <도마복음>이 다른 기독교인들에게 위와 같이 비칠지 모르겠다. 이에 한 구절을 더 인용하면서 글을 마무리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추구하는 사람은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찾으면 혼란스러워지고, 혼란스러워지면 놀랄 것입니다. 그런 후에야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도마복음> 제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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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공 2010-05-28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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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리뷰] 또 다른 예수  


    ˝도마복음˝을 비교종교학자 오강남교수가 해석한 책. 도마복음은 다른 복음서와는 2가지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다른 복음서는 복음 말씀의 지향이 ˝교회˝ 공동체이며, 이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 말씀인 반면, 도마 복음에서는 철저하게 자신의 내면을 지향한다.

    또한, 다른 복음에서는 전체적으로 예수의 생애 속에서 전후 이야기 흐름이 보이는 반면, 도마 복음에서는 `말씀`위주로 구성되어 각 말씀이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도마복음은 말씀에 대한 해설이 필요한데, 이 책에서는 다른 종교와 비교를 통해 성경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비춰 주고 있다.

    특히, 요한복음에서 믿음이 없는 인물로 묘사되는 `도마`라는 인물과 그의 공동체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내게 의미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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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호랑이 2016-04-18 공감(2) 댓글(0)


        

    [마이리뷰] 또 다른 예수 


    도마복음은 정경에 포함되지 못하고 사장되었다가 1945년 이집트의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기존 복음서와는 달리 예수의 어록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점, 내 안의 참된 하나님을 발견해야 한다는 깨침을 중시한 점 등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이질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도마복음을 쓴 도마(Tomas)는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 갈릴리 출신의 어부이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한복음 20장 24~25절, 개역개정)

    요한복음의 위 구절로 인해 그는 의심 많은 도마(doubting Thomas)로 불려진다.
    그는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인도로 가서 선교하다 순교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그가 예수의 쌍둥이 형제라고 했을 정도로 그는 신비주의의 베일에 싸여있는 인물이다.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가 쓴 <또 다른 예수>는 도마복음을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풀이한 책이다.
    특히 불교나 동양철학과 비교하여 해설한 부분은 도마복음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고 풍부하게 한다.

    두 귀가 있는 자들은 들어라. 깨달은 자 안에는 빛이 있나니 그 빛이 온 세상을 비추노라. 그 빛이 비추지 않으면 어둠이 있으리라. (2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 비밀에 합당한 자에게 내 비밀을 밝히노라. 네 오른손이 하는 바를 네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 (6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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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의뒷편 2014-12-12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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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종교는 결국 '진리의 깨달음'을 위한 길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 도마복음서를 읽고 따랐다면, 만일 그랬다면 인류 역사상 그 숱한 종교로 인한 갈등과 분쟁과 죄악들이 없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세의 욕망의 도구로서 종교행위를 하는 듯이 보이는 많은 종교인들, 특히나 철저히 배타적인 기독교인들을 보면 종교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독단과 맹신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한 것인가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와 이런저런 인연이 있긴 했습니다만 매우 싫어했지요.

    그러나 오강남 선생이 풀이한 도마복음서를 읽고는 참된 예수의 가르침이란 결국 진리의 깨달음을 설한 것, 불경이나 노자, 장자나 다 같은 것임을 알았습니다. 예수가 통탄할 일이지요. 참된 가르침은 외도로 몰리고 그토록 경계하라고 한 현세의 욕망만 추구하고 사는 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팔고 있는 것을 안다면.

    모든 종교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것이고, 진리란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세계와 동떨어진 어디 다른 곳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지금 오욕칠정, 탐진치에 시달리는 이 중생 그대로의 삶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요. 깨달음을 향한 발심을 강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종교간의 위험한 경계를 넘어서 참종교의 실상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책입니다. 교양으로 읽어도 좋지만, 참된 빛, 진리를 찾고자 하는 구도자의 마음을 견결히 하는 책으로 읽히면 더욱 좋겠습니다.

    본문의 한 대목 인용합니다.

    제 69절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 마음속에서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진정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행복합니다. 원하는 사람마다 그 배가 채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면적인 박해를 통해 아버지를 아는 진정한 깨침을 얻게 된다고 했다. <<도마복음>>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말로 공관복음서에는 없는 대목이다. 마음속에서 받는 박해란 무엇일까?

    그 박해란 자신의 이기적인 자아와의 싸움이 아닐까? 이는 교만과 정욕과 욕심 등 우리 내부에서 우리를 못살게 고는 요소들이다. 2세기 말에 살았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도 박해는 외부에서 오는 박해가 있는 반면 , 가장 고통스럽고 심각한 박해는 내면적 박해로서 "각자의 영혼이 부정한 욕망, 다양한 쾌락, 천박한 소망, 파괴적인 꿈 등으로 시달리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내면적 박해가 더욱 고통스럽고 심각한 이유는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그 박해자를 우리 속에 모시고 다니는 셈이기에 도저히 도망하려고 해도 도망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다. 욕망이나 교만이나 정욕 같은 내면적 갈등으로 박해를 받으려면 이런 것을 박해의 요인으로 인지할 수 있는 영적 감수성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누추한 내면을 꿰뚫어보는 것을 전통적인 말로 하면 '자기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스스로의 실상을 본 후에야 그것을 정화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이런 정화를 통해 내면의 빛을 볼 수 있고, 나아가 하느님과 하나 됨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중세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자들은 이런 내면의 길을 각각 자기 발견의 단계, 자기 정화의 단계, 조명의 단계, 합일의 단계라고 했다.

    이 절은 이렇게 마음속에서 생기는 내면적 박해를 시발점으로 하여 그것을 견디고 이기는 사람, 이를 물리쳐 결국 마음이 청결해진 사람만이 아버지를 아는 참된 깨침을 얻을 수 있고, 나아가 그와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14 서윤 <질문> 한국인권뉴스 최덕효 대표님께 드리는 질문. | Facebook



    (2) <질문> 한국인권뉴스 최덕효 대표님께 드리는 질문. | Facebook


    <질문> 한국인권뉴스 최덕효 대표님께 드리는 질문.
    24 December 2014 at 18:12


    김기원 교수의 글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혁과 진보라는 두 가지 키워드인데요. 여기서 좀 더 파고들 필요는 있겠다 싶습니다.


    사실상 제도란 것이 인식을 생산하는 이상 제도의 변혁은 매우 중요하지만, 만일 그 제도가 제도를 위한 제도이거나 혹은 의도는 좋으나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제도라면 오히려 인식보다는 음지를 생산하게 됩니다. 제도의 사각지대를 만든다는 얘기죠. 이미 다들 아는, 현 시행중인 성매매 특별법의 폐단이 그런 것이겠습니다.


    제도는 누군가 그것을 이용하여 누군가의 기본권을 해치지 못하도록 하는 최후 방어선이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누군가의 기본권을 신장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제도이겠습니다. 현실적으로 국가가 국민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지는 않으나, 우리 모두는 국가가 국민의 이익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신념에 동의합니다. 이것을 향하여 내딛는 모든 발걸음을 가리켜 진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문제제기에 들어가겠습니다.


    1. 제도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고 신장시키는 데 복무해야 한다는 대전제에는 동의하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여기에 동의하지 못하신다면 이 질문은 의미가 없습니다. 각설하고, 그렇다면 성매매라는 행위는 "성적 인신매매"의 줄임말로써, 그 자체로 "사람의 몸을 사고판다"는 뜻이 됩니다. 마르크스의 설명을 그대로 따온다면, 자본은 노동행위에 의해 양산되는 가치들을 기각함으로써 소외를 불러온다고 합니다. 즉 노동으로부터의 인간소외가 발생하지요. 그렇다면 성매매에서 발생하는 소외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다른 어떤 노동행위에서도 자본의 주된 매입대상이 되는 것은 모두 "노동력"이 되는데 반하여 성매매 행위는 "인간의 몸"입니다. 성매매를 노동이라 파악하는 관점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성매매 종사자는 "성매매라는 노동행위"로부터 소외될 뿐만아니라 "자신의 몸"으로부터도 소외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의 신체에 대한 권한마저도 기각되는 것을 노동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한 성매매 행위의 개념이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매매는 자본의 권력이 인간에게 침식하는 가장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성매매 행위에 대해 이러한 분석을 해내지 못한 것은 그가 보수적이고 당대의 성 관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앙드레 고르는 마르크스가 당대의 시대 저변에 흐르는 사상의 총아로 마르크스의 저작을 이해합니다. 게다가 마르크스는 자기생활에서도 썩 보수적인 편이었으니 노동 소외에 따른 인간 소외를 이끌어낸 자신의 탁월한 논변으로 성매매 행위를 분석하지 못했을 법합니다. 그의 주된 관심사였는지도 사실 의심스럽고요.


    각설하고, 이렇게 볼 때 성매매 행위는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모든 행위들 중, 인간의 몸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자본의 침해행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관념적인 논변이지만, 관념은 반드시 실천의 경험 속에서 나오고 또한 실천은 관념적 논변의 육화를 통하여 나타납니다. 김기원 교수 역시 자신의 글에서 "괜찮은 직업"이라는 인식을 가진 여성들조차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떳떳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서'라는 근거를 들어 말하고는 있습니다만, 그러한 규범적 인식을 굳이 근거삼지 않더라도 멜리사 펄리가 2004년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9개국 854명의 성매매 여성(스트립 클럽, 맛사지, 거리매춘) 중 68%가 치명적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외상성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음을 감안해 보면, 노동행위로서의 성매매가 인간에게 어떤 정신적 피해를 입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비단 스트립 클럽, 맛사지, 거리매춘의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일 자체로 정신적 외상을 경험하는 여성들은 많습니다. 집적적 관리매춘의 형태 즉 집창촌에서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경우에도 그는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지난해 직접 면담했던 여성의 경우 실제 손에 쥐는 돈은 대략 한달에 8백에서 9백만원 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비를 지나치게 하여 돈을 모으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왜 소비가 지나친 것 같은가" 하는 제 질문에 그 여성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아무리 업소에서 하는 일이라지만 방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어떻게 알겠나. 손님들 중에는 별의 별 것들이 다 있다. 우리 업소는 시설이 좋아 그나마 때리고 할 수는 없지만 모욕을 줄 때도 많고, 지가 교수네 의사네 하며 알아달라고 징징거리는 것들은 막을 수가 없다. 그런 비위 일일이 맞춰주고 나면 죽을 맛이다. 돈 쓰는 것밖에 달리 스트레스 풀 일도 없다."


    이것을 건강한 정신이라고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요컨대, 성매매 행위를 노동으로 보았을 적에도, 성매매 행위가 '인권'이라고 부르는 가치와 양립하지 못한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이론적으로 모두 증명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매매 자체가 인권과 양립할 수 없다는 근거가 되는 다른 실증연구들도 있습니다. 합법화가 되어있는 독일의 경우만을 보겠습니다. 멜리사 펄리를 비롯한 여덟 명의 연구자가 발표한 <Prostitution and Trafficking in 9 Countries>에서 밝히길, 성매매업 종사기간 중 약물 투여를 경험한 여성은 전체의 70%에 달하였습니다. 성매매업의 사유화 및 알선행위만을 금지하는 캐나다의 경우는 95%입니다. 거의 100%에 달하지요? 2013년 5월호 슈피겔Der Spiegel에서는, 2002년 독일에서 성매매를 합법화할 당시 강제 인신매매 등 성매매로부터 파생되는 범죄가 줄어들 것을 예상하였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동일한 기사는 슈피겔온라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권을 보장하는 내용이라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위와 같은 실증적 사실과 이론적 추론에 따라 성매매란 그 자체 내적 구조가, 성매매업으로부터 파생되는 여러 범죄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앞서 제도란 기본권을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형님은 당사자주의를 말씀하십니다. 당사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좋습니다. 당사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것에 큰 불만이 없으며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겠습니다.


    하지만 반면에, 그렇지 않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음을 아실 것입니다. 제가 면담했던 여성은 모두 17명이었습니다. 정자동 업소에서 일하는 6명을 포함하여 성남과 용인지역에서 11명, 서울 강남과 송파에서 일하는 여성이 6명이었습니다. 이들 중 12명(13명이었는지 정확하지 않습니다)은 성매매업 자체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왜 그만두지 못하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배운 게 도둑질"이란 대답을 하였습니다. 여쭙겠습니다. 이것은 당사자의 목소리가 아닌지요?


    그들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벗어나도 딱히 대안이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발제문으로 주신 김기원 교수의 글에서는 근본적 해결방안으로 "개혁"과 "진보"를 말하였습니다. 즉 수요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남성들의 접대문화가 개선되도록 사회 시스템을 개혁하고, 성매매 여성들이 그 업종에서 벗어나더라도 살 길을 열어줄 수 있는 복지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길이라는 것입니다. 김기원 교수는 현재의 성매매 특별법이 단순한 공식적 거래량 감소에만 효과가 있을 뿐 실질적 효력이 없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미국 국무부에서 2007년에 나온 한국 인권보고서에서도, 성매매 특별법이 거래량 감소에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유사 성매매에 대한 대처가 미흡하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의 성매매 특별법이 도덕주의의 발로이며 제도를 위한 제도에 다름아니라는 형님의 지적에 백분 동의합니다. 또한 저는 현재의 성매매업 종사 여성들 중 다수가 생활고로 인하여 그 업종에 들었다는, 한국인권뉴스에서의 기사를 접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매매업에 종사하게 된 것은 그들의 죄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서도 그러하고, 구글에서 검색하여 찾아볼 수 있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례로 미루어 보건대, 설령 성매매업을 도덕주의적으로 죄악시한다 하여도, 종사하는 여성들에게 죄를 묻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경직된 도덕주의의 발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도덕적 태도는 그들의 죄를 묻기 전에 그런 죄에 그들이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현재의 성매매 특별법(비록 이것이 제정되기 전에도 판매자든 구매자든 똑같이 처벌대상이긴 하였으나)의 도덕주의적 태도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성판매자와 구매자 모두를 처벌하는 형태에 저는 반대합니다.


    물론 저는 성매매 행위가 해묵은 도덕관념에 의해 죄악시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만일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인권이라는 가치와 양립할 수 없는 행위라면 기본적으로 부정당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도는 만일의 경우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을 해치는 일에 대하여 방조하는 요소가 생길 때조차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도덕적 죄악시가 아니라, 도덕의 영역 이상의 기본적 인권의식과 관련한 것입니다. 이것마저 도덕주의라고 해야 한다면 한국인권뉴스는 그 이름부터가 도덕주의적인 것임에 다름아닙니다. 그 어떤 당위도 없어야 한다면 도대체 인권뉴스에서는 무엇을 당위 삼아 부르짖으려는지요. 성매매 행위를 부정하는 데서 오는 여러가지 사회적 요인들이 우려된다면, 그러한 요인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개혁"과 "진보"를 주장하는 것이 온당한 처사이리라 생각합니다.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성매매 특별법은 반드시 개선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앞서 여러 실증연구와, 그와 상호적 관계 속에서 개진한 이론적 논의 등은 결국, 판매행위 비범죄화, 그리고 구매행위에 대한 강력처벌, 더불어 음성화를 방지하기 위한 개혁과 진보라는 실천강령으로 이어지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합법화는, 이미 거듭 반복하였으나, 그것이 기본권의 사각지대를 조성할 공산이, 이론적으로 보아도 실증적으로 보아도, 농후하기에 현 상황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하나씩 쪼개어 말씀을 주셔도 좋고, 한꺼번에 이것처럼 길게 써주셔도 좋습니다. 다만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기사 링크를 줄줄이 걸진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형님의 의견을 원합니다. 형님께서 걸어주시는 기사들 중 제가 모르는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16You, Naran Jung, 최덕효 and 13 oth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