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2

알라딘: 무교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최준식 2009





알라딘: 무교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최준식 (지은이) | 모시는사람들 | 2009-10-25



정가 10,000원
판매가 9,500원 (5%, 500원 할인) | 무이자 할부


반양장본 | 208쪽 | 140*210mm | 270g | ISBN : 9788990699787


한국인의 정신세계의 근저에 기층문화로서 자리 잡고 있는 무교(巫敎)가 우리 역사에서 어떻게 ‘미신’이자 ‘무속’으로 왜곡되고 비하되어 왔는지 살펴보는 책이다. 저자는 한국 종교의 기본 코드는 표층의 유교(儒敎)보다 더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무교라고 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종교 전반을 일별한다.

책은 결론적으로 “종교로서의 무교”를 제자리에 복권시킴으로써, 정신세계의 실제(무교)와 현상(외래종교, 기성종교) 사이의 괴리로부터 빚어지는 한국사회 정신문화, 종교문화의 부조리와 파행을 치유하고 무교의 문화적 자산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Ⅰ. 한국의 고유 종교인 무교는 미신인가?

- 무교는 어떤 종교?
무교에 대한 간단한 소개 / 무교의 기본 구조/ 무당은 순전한 사제 / 무당이 되려면? / 후post 내림굿 이야기

- 굿은 어떻게 하나
굿이란 언제 그리고 왜 하는 것일까 / 굿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 굿은 어떤 내용으로 되어 있을까?

- 한국인의 근원 신앙으로서의 무교
굿의 종류에 대해 / 전형적인 문화영웅, 바리공주 이야기 / 무교의 신령은 잡령?

Ⅱ. 왜 한국은 무교의 나라인가?

- 한국 무교 약사
무교는 한국인의 근본 종교 / 한국 무교 약사略史와 그 전개 양상 / 신라 금관 이야기 / 신라 이후의 무교 이야기

- 무교의 현재
무교의 종교사회학적인 의미를 찾아 / 조선 이후의 무교 / 현재의 무교 / 한국인의 근본 종교는 분명 무교!

Ⅲ. 한국인의 종교적인 내면 세계

- 무교에서 바라본 불교와 그리스도교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기본 신행信行 구조 / 그리스도교의 경우 / 불교의 경우
불교나 그리스도교에서는 초월적인 존재와 정말로 소통하는 것일까? / 맹신 혹은 유치한 신앙의 폐해
- 종교 신앙은 일반적으로 다 똑같다
고등종교와 기층 종교의 차이란? / 그저 권력으로 판가름 날 뿐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인사회)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무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거둬라! 한국인은 모두 똑같은 신앙을 가졌다. 한국인의 정신세계의 근저에 기층문화로서 자리 잡고 있는 무교(巫敎)가 우리 역사에서 어떻게 ‘미신’이자 ‘무속’으로 왜곡되고 비하되어 왔는지 살펴보고 있다.





지은이 : 최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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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무의식 연구의 새로운 지평 (반양장)>,<서 북촌 이야기 - 상>,<동 북촌 이야기> … 총 114종 (모두보기)
소개 :
서강대학교에서 역사학(한국사)을 전공하고 미국 템플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했다(종교학 박사). 1992년에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한국학과에 교수로 부임하면서 한국 문화에 대해 폭넓은 공부를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국제한국학회’를 만들어 김봉렬 교수(2018년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나 고(故) 오주석 선생 등과 같은 동학들과 더불어 한국 문화를 다각도로 연구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사단법인 ‘한국문화표현단’을 만들어 우리 예술문화를 공연형태로 소개하는 운동을 시작했고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다.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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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인터넷과 무선통신이 생활필수품이 되고, 우리나라에서도 우주로 로케트가 날아가는 21세기, 그리고 기독교를 비롯한 ‘고등종교’가 엄청난 교세를 확장시켜가는 현대사회에, 무속이나 점집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대로라면, 사양산업이 되었어야 마땅할 터. 그러나 현실은 그와 정반대 방향으로 펼쳐지고 있다. 무속인(무당)의 숫자는, 최소한 줄어들지는 않고 있으며, 골목과 산기슭을 배회하던 점집이나 귀신이야기는 TV를 넘어 인터넷 속에서 더욱 활개를 치고 있다. 이는 ‘무속’의 이면에 간단히 치부하거나 무시해 버릴 수 없는 깊이가 존재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무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거둬라!
저자는 무교야말로 우리 민족의 유일의 자생적 전통종교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교를 무속으로 비하하고, 그 속성에 대해 오해하거나 편견을 거두어들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무교가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 동안 힘없고 가난하고 억압당한 민중의 한을 풀어주고 아픔을 달래 왔던 핵심적인 종교임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기성종교의 신앙행태조차 무교의 속성을 차용한 것이 대부분이라고 분석한다. 그것은 고스란히 현 사회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성종교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기실 무교가 ‘무속’으로 전락한 것은 순전히 무교가 ‘권력’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빚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무교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시각 필요
무교의 복원 내지 복권이 왜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인가?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무엇보다 한국인들이 잃어버린, 혹은 유폐시킨 종교적 정체성을 양지로 드러내서, 표리가 일치하는 정신적인 성숙을 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이 지금껏 겪고 있는 온갖 파행적 사회문화의 치유와 대안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무교의 문화 속에 대단한 문화적 자산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즉흥 연극판이라 할 수 있는 굿판에서 연주되는 음악, 춤, 음식, 복식 등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적 자산을 갖고 있다. 이렇듯 무교를 연구할 수 있는 시각은 다양하다. 우리가 우리 것을 제대로 보고 연구하지 않으면 외국인도 우리를 대신해 주지 않는다.
셋째는, 한국사회가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서 남북 통일이나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 등을 앞에 두고, 한국 정신의 원형을 오롯이 함으로써 새로운 문화적 격변에 대응할 수 있는 정신적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민간신앙으로서의 무교의 복권이 논의되어야 한다.

한국인은 모두 똑같은 신앙을 가졌다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종교를 갖든지 기본적으로 무교적인 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은 어떤 신앙을 갖든지 그 숭배하는 대상이 명목상으로만 다를 뿐 실제의 신앙 구조와 내용은 같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무교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음지에서 양지로 복권시키는 데 나름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때, 무교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신문화세계는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비약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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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 2013-08-14
우리의 진짜 전통이자 종교-신앙은 바로 무교이다. 우리 조상들과 우리들은 유교와 기독교-서양 문명에 젖어 무교를 배척하지만, 사실은 원초적인 마음 속에서 여전히 무교를 숭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진짜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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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앙의 본질과 정체성에 대해
운산 2009-11-07


민족 고유의 종교로서 중국에 도교가 있고, 일본에 신도가 있다면 우리에겐 무엇인 있을까? 바로 ‘무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도교나 일본의 신도가 그 나라의 민중 종교로써 충분히 기능하고 있는 반면 우리의 무교는 거의 잊혀져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잊혀져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말일까?



이 책 안에는 놀랍게도 현재 무당의 수가 대략 20~30만 명 정도라고 쓰여 있다. 대비하여 신도의 수가 가장 많다는 기독교의 목사가 10만 명이 못된다고 하니, 참으로 엄청난 수이다. 이로 미루어볼 때 우리나라의 제일의 종교는 무교라고 아니할 수 없다.








저자는 ‘무교’는 어엿한 하나의 종교이며, ‘무당’은 신도가 신령과 만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어엿한 사제이며, ‘굿’은 엄정한 체계를 갖춘 엄연한 종교의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 안에는 무당이 되는 과정, 굿의 종류와 내용,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령들에 관한 얘기들이 매우 재밌고 흥미롭게 쓰여 있다.








저자는 ‘한국은 무교의 나라’라고 과감히 주장한다. 극성스런 기독교도가 들으면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않을 주장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종교는 반드시 그 지역의 토속 신앙과 습합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오리지날’을 유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인도의 불교와 중국의 불교와 한국의 불교와 일본의 불교가 부처를 신앙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내용을 달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 나라의 토속 신앙과 외래 종교가 섞인 혼합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외래 종교 역시 우리 토속신앙인 무교와 혼합되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각 종교의 이름이라는 외피를 벗겨보면 내용물은 오히려 ‘무교적’이라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은 거의가 무교의 신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도 된다.



무교 신앙의 가장 기본적이고 특징적인 것은 ‘주술적인 기복신앙’이라는 점인데, 우리나라의 불교나 기독교를 보면 현세 기복적 특징을 전혀 벗어나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역시 무교적이다.



우리나라이 기독교는 ‘유독 열광적인 기도와 방언이 중시되는 부흥회 같은 집회를 좋아하는데’(p.140), 여기에서 무교의 굿과 같은 열성과 무아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이 책에서는 직접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기독교인이라면 거의가 한다는 새벽기도가 사실은 옛날부터 어머니들이 새벽에 정안수를 떠놓고 손바닥을 비비면서 무사안녕을 기원하던 풍속에서 연유한 것인데, 이 또한 무교적인 것은 아닌가?








우리는 보통 무교를 ‘무속’이라고 하여 불교나 그리스도교에 비교하여 원시적이고 저급하며 미신에 불과한 것이라고 여긴다. 종교라고 이름을 붙인다는 것도 어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다. 초월성에 대한 믿음을 기본으로 하는 종교는 그 종류와 관계없이 본질은 같다는 것이다. 다만 사랑이나 자비 등 인간 윤리의 보편성을 교리로 하는 종교는 나라와 민족을 넘어 전파할 수 있고, 여기에 교리를 일관되게 체계화하고, 다시 권력과 결탁할 때 이른바 ‘고등종교’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종교가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떤 옷을 입어도 그 사람은 그 사람인 것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더 이상 우리를 속이지 말고 무교를 우리의 근본 신앙으로 인정해 우리 문화 발전에 유용하게 쓰자는 것’(p.6)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책 말미에 ‘한국인들은 잃어버린 종교적인 정체성을 찾아 표리가 일치하는 정신적 성숙을 달성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이런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 가타부타하기는 어렵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한 하나의 모색(摸索)으로써 돌아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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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무교
분노의휘갈김 2015-04-28
무교와는 무관하게 굉장히 무식한 책이다. 쓰레기. 자료도 빈약하고 주장의 논거도 엉터리다.불공평하게 하대받는 무교를 대변하고자 쓴 책이라면 더 조심해야 할 것인데, 이 책으로 인해 무교에 관심을 갖는 사람 마저 정이 떨어질 정도다. 심각하다. 책을 읽다읽다 더는 못 참겠다. 과학적 사고의 부재가 이런 총체적 무식함을 부른다. 인문학이 잉여학이라 불리는 이유는 이런 무식한 책 덕분이다. 과학 교육이 필요한 근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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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무교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靑竹 2010-03-20
<무교 -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저자: 최준식
쪽수: 208쪽
가격: 10000원
출판사: 모시는사람들
초판1쇄: 2009년 10월 25일
참조: 일반 대중이 무속에 대해 접하기에는 괜찮은 편이 아닌가 싶군요. 특별한 필요가 있지 않은 다음에야 이 정도에서 그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몰라도 되는 지식입니다.

제 견해로는 무속은 이게 무엇인지 알아보는 정도라면 괜찮겠지만 흥미를 가지고 파고드는 일은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위험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무당을 가리켜 '신이 내린 직업'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한 번 무병에 걸리게 되면 거의 대부분(사실상 전부) 무당이 되지 않는 한 낫지 않습니다. 또한 무언가에 씌이는 일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치부해 버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사실입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효력도 가지지 못하는 오랜 풍속이 현대까지 살아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사고방식입니다. 즉 '무속'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을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현존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는 태도는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지만 이렇듯 학문적인 주제와 얽히면 신중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기 쉽습니다. 이 글도 좀 그런 면이 있군요. 또한 얼추 부합된다 싶은 근거만으로 '무속을 종교로서 복권시켜야 한다'라는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전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속은 결국 자신에게서 기원한 신앙이 아니며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천주교와 같은 널리 퍼져 있는 종교에 비해 위험한 편입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바대로 어느 종교나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같다면 굳이 위험을 내포한 길을 걸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단순히 한반도에 기원을 둔 자연종교이기 때문에 한국적인 것을 살리기 위해 무교를 믿어야 한다는 논리는 '국산제품이니까 써야 한다'는 애국심에서 발로한 기업광고와 같습니다. 한국인의 근간이 무교에 있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만(무교는 한국적인 것의 일부일 뿐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은 별개의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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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 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신앙
햇빛 2009-11-28
사람들은 흔히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인생사가 마음처럼 굴러가지 않을때 '굿이라도 해야하나' 혹은 '점이라도 보러가야겠다' 라는 말들을 하고는 한다. 물론 나 역시 농담처럼 쉽게 이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서양인들의 문학이나 문화를 보면 기독교적인 색채가 짙은 것이 종종 느껴지곤 한다. 그들은 오랜 기간을 걸쳐 자연스레 기독교적인 생각으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왔음을 알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부분이 유교적인 관습과 문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역사인 조선시대에 숭유억불 정책으로 유교가 크게 번성하여 중,의, 예, 효 를 중시하였고 현대 역시 그 큰 틀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듯 하다.

우리의 동네 골목 골목 마다 찾을 수 있는 점집이나 무당집, 험한 산을 오르고 올라 치성 내지는 기도를 하는 이들을 볼 수가 있는데 아주 오래전 부터 우리 곁에 엄연히 존재한 흔히 무속신앙이라 불리는 무교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책을 만났다.



책에서는 무속이라는 단어의 부당을 설명하는데 무속의 속 자가 저속하다라는 의미가 짙기때문에 무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미신이라 천대하고 비하되고 왜곡되었다는 저자의 설명에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기도 하지만 속이라는 단어의 저속하다라는 표현보다는 사람들과 그만큼 가까운 곳에 있는 친근한 종교라 불교에서도 일반 사회를 일컫는 말인 속세(俗世)라는 말 처럼 친근한 종교라 무속이라 불리었고 불리어 왔다고 믿고싶은 마음이다.



무교에대한 오해와 천대가 한국인들의 근본에 깔려있는 무교를 향한 믿음을 저속하고 촌스러운 것, 무시되는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하는 것은 어느정도 사실일지도 모른다. 무교란 범위가 워낙에 광범위하고 쉽사리 질서를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러한 왜곡이 더욱 심화되었고 저자가 지적 하는 것 처럼 자생 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자체적으로 통합의 어려움이 있기에 지금껏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였고 또한 그러기에 한국인들의 근본신앙임에도 무교를 신봉하는 이들이 미신이라 비하를 받은것이 사실일 것이다.



저자는 무교에는 많은 문화적 자산이 안겨져 있기에 무교를 복원하여 사회적인 통합과 사회적 성숙을 위한 기틀 아래에에 서게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문화적 격변에 대응할 수 있는 정신적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 민간신앙으로서의 무교의 복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무교를 정당화 하는 수단으로 다른 종교를 빗대어 비하하거나 혹은 저것도 그러한데 이것이 이러한 것 쯤이야 어떻겠느냐 식의 뉘앙스가 무교가 한국인의 근본신앙임을 주장하는 말에 제동을 걸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너희 나라는 원숭이 골에 달팽이에 무엇 무엇도 먹지 않느냐'

'그럼 우리가 개고기 먹는게 뭐 어때?'하는식의 빈약한 주장으로밖에는 비쳐지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개고기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원숭이 골이나 달팽이를 트집잡아서는 기대하는 만큼의 설득력을 이끌어낼 수 없기에 우리에게 개고기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어떤 역사가 있으며 어떤 개고기 문화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외려 더 자연스레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은 아닐까말이다.

무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다른 종교의 폐혜를 가지고서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무교가 한국인의 근본신앙임을 더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풀어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조금 더 세밀하고 농도 짙은 무교의 세계를 경험하고자 하는 이들 보다는 무교에 대한 막연한 생각과 궁금증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어울릴만한 책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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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
fw6kies 2009-12-13
주변에서 쉽게 점을 본다니, 사주팔자가 어떻다니
하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호기심이 막 쏟구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에이~ 그냥 미신인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무심코 지나가곤 했다. 그것을 이 책에서 말하는 것
처럼 무교라는 종교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보통 단순히 미신이라고 치부하여
왔던 무당, 굿, 점 이런 것을 무교라고 하는 하나의
종교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개념이 나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보면 호기심을 일게 만들었다.
정말 어쩌면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한국인의 가장
뿌리깊은 신앙은 무교와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주변에도 기독교나 불교신자이면서도 정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점을 보러 가는 사람 찾는것은
어렵지 않다. 평소에는 미신이야 미신 하면서 조금
낮게 치부하는 사람들도 마지막에 찾는 곳은 바로
그런 곳들이다.
정말 억압되어 표현은 못하지만 뿌리깊은 마음속에는
그런게 남아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종교의 개념으로 다시 한번
이런 분야를 새롭게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이 책을 읽은 덕분에 앞으로 단순히 미신이야 이런
말은 잘 안하게 될 것 같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기독교나 불교 처럼 엄연한 종교로서 받아들이고 인정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 보다 더 친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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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원] 공주에서 동학한다는 것은 - 성산기획

[정선원] 공주에서 동학한다는 것은 - 성산기획



공주에서 동학한다는 것은

정선원 (계룡중학교 교사/공주동학기념사업회 이사)
동학을 한다는 것은 동학 정신을 계승하는 것으로, 동학 정신을 가슴에 모시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동학 정신을 항상 생활에서 실천한다는 것이리라. 종교인로서 동학에 접근하지 않더라도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영향력은 우리 근대 역사에서 인간 평등 사상, 반외세 민족 자주 정신 그리고 생명운동, 환경 운동에까지 미치고 있다.
공주는 내가 고향 여수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공주사범대학으로 진학하면서 만난 제2의 고향이다. 1979년 유신 말기에 공주사범대학 역사교육과에 입학할 때 공주에는 막연하게나마 동학혁명의 격전지인 우금티(고개 우금치를 공주에서는 우금티로 부른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입시 지옥에서 해방되어 대학에 가면 무엇인가 희망찬 세상을 볼 줄 알았는데, 대학에 입학해도 무엇인가 답답하여 우금티의 농민혁명군들을 비유하면서 공주대학 신문사에 투고를 하기도 했었다.
대학 1학년 때, 여기저기 대학교를 다니다가 삼수해서 공주사대에 들어온 동급생 선배가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1학기 때 수십 명이 모였던 독서 모임이 2학기 들어 정치적 토론도 하게 되면서 많은 친구들이 떨어져 나갔다. 그즈음 ‘김영삼 총재 가처분 사건’, 신민당사에서 ‘YH노조 김경숙 사망 사건’이 생기자 교내에 사복 경찰이 좍 깔리기 시작했다. 이때 그 선배가 한 건 할 것을 제의했다. 네 명이 한밤에 공주사대 곳곳에 “유신철폐”, “정보원 물러가라”는 빨간색 벽서를 감행했다. 그날이 10월 13일이었다. 며칠 뒤 강의실에서 경찰에 잡혀갔고, 경찰서 유치장 테레비에서 부산·마산 항쟁을 보았다. 그리고 부모님들에게 한 사람씩 인계되어 석방되었다.
이 건으로 나는 대학에서 무기정학 처분을 받아 집으로 가야 했는데, 고향에서 오신 어머니가 멀미가 있어 바로 고향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자취방에서 하룻밤 자고 고향 여수로 가기로 하였다. 새벽에 라디오를 트는데(당시 자취방에 티비는 아주 귀했다) 장송곡이 울려 나오면서 ‘박정희 암살 사건’(10.26)을 보도하였다. 그렇게 물러가라고 한 독재자가 암살로 물러나는 경우도 있구나 하면서 역사의 여러 다양성을 생각했었다.
박정희 암살로 무기정학이 풀려 다음해 3월부터 등교를 했고, 대학가는 박정희 체제 18년 및 유신체제의 독재적 과거를 청산하기 위한 어용 교수 퇴진 등 민주화 운동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하였다. 개학 후 ‘유신철폐 벽서파’ 우리들은 독서 모임을 다시 시작했다. 군부 재집권 반대 시위로 전국 대학이 들썩였는데 ‘5.17 계엄확대조치’로 전두환 군사 정부가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사회 과학 공부 독서 모임에 지도 교수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우리의 독서 모임은 자연스레 비밀 독서 모임이 되었다.
박정희 군사 정권의 죄악상 그리고 광주학살사건의 진상을 하나둘 접하면서 이러한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독서 모임은 당시 우리에게는 하나의 숨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군사 정권에 대한 분노 때문에 모인 친구들이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해서 “금강회”라는 단체 이름도 만들고, 노래도 만들었다. “금강회”는 군사 정권과 싸울만한 능력이 있었던 조직이 아니라 분노에 갈팡질팡했던 수준 낮은 모임이었다. 그 노래 가사에는 “우금치 얼 이어받은 금강의 소명, 금강의 흐름은 역사의 생명”이 있었다. 공주에서의 민주화 운동은 당연히 우금치 정신을 잇는 것이었다. 그해 겨울에는 회원들이 모여 공주 남쪽에서 동학농민군의 진격로를 상상하며 탄천에서 이인 그리고 우금티 위령탑까지 15km를 걸어 위령탑에 참배하기도 하였다.
81년 3학년 여름이 되면서 “금강회” 회원들에 대한 구속이 시작되었다. 전국적인 학생 운동 및 사회 운동 탄압의 하나이어서 “학림”, “부림”, “아람회” 등의 사건으로 구속된 사람들을 교도소에서 만날 수 있었다.
2년 가까이 구속되었다가 석방되면서 나는 나에게 학생 운동을 가르쳐준 공주에서 살기로 결정했다. 공주에서 사회 과학 서점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85년 전두환 정권하의 제적생들이 중심이 되어 ‘선도투’를 하겠다고 결성한 “충남민주운동청년연합”(약칭 충남민청)의 임원이 되어 활동했다. 충남민청은 그 첫 대외 사업으로 4.19 기념 마라톤을 공주대에서 시작하여 우금티 위령탑까지 하기로 하였다.
1985년은 전두환 정권이 시퍼렇게 살아 있을 때였다. 충남대, 목원대, 공주사대 학생 운동권 100여 명이 모여 마라톤을 했고, 그리고 사전에 예정한 대로 우금티 위령탑 비문의 역사 왜곡 바로잡기 행사를 진행하였다. 유신 직후인 1973년 공주 우금티에 세워진 위령탑 비문에는 ‘동학혁명’이 ‘5.16 군사혁명’, ‘10월 유신’으로 계승되고 있다고 씌여 있었다. 또한 위령탑의 몸에 새겨진 “동학혁명군위령탑”의 글씨는 박정희가 써서 내려 준 것이다. 공주의 위령탑을 볼 때마다 군사 정권의 역사 왜곡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는 것은 위령탑을 찾는 모든 양심 있는 인사들의 공통된 심정이었다.
박정희의 동학 역사 왜곡에 대한 비판은 바로 전두환 군사 정권 비판이었다. “충남민주운동청년연합” 의장 오원진 형은 구속을 각오하고 이 행사를 주관했다. 오원진형은 우금티 위령탑의 역사 왜곡의 비문을 파손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구속은 되지 않았다. 공주에서 행사 실무 준비를 맡았던 나는 철물점에서 산 쇠망치를 찾을 수가 없어서 주위에서 큰 돌멩이를 주워 오원진 형께 교도소 먼저 잘 가시라고 드렸던 기억이 새롭다. 오원진 형은 유신 때 충남대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유신반대투쟁’으로 제적과 강제 징집되었고, 1980년에 복학하여 총학생회장을 역임하였으나 전두환 정권 반대 투쟁으로 제적, 구속되었다. 그 뒤 충남에서 여러 사회 활동을 하다 92년 젊은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위령탑을 볼 때마다 오원진 형을 생각하게 된다.
“동학혁명 100주년”이 되는 1990년 들어 학계에서부터 동학혁명 기념행사들이 열렸다. 공주에서는 93년에 우금티 위령탑 근처에 주유소를 세운다고 하였다. 주유소 반대 운동을 하면서 공주에 “동학기념사업단체”가 결성되었다. 94년 들어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행사가 서울, 정읍, 전주, 그리고 공주에서 거행되었다. 공주에서 1억 5천만 원의 국가 지원비로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시청에서 간부들과 동학기념사업단체 임원들이 회의를 하는데 시청 간부가 ‘동학은 역적인데 왜 기념 사업을 하느냐?’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러한 공주의 동학농민혁명 반대 분위기 때문에 공주에서는 93년 이후 동학 기념 사업을 하면서 한동안 동학농민혁명이 무엇인지 공주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을 위주로 하였다.
공주에서 시민들과 함께 동학 사업을 시도한 일로는 거리 예술제가 있다. 공주 중심 시가지의 사거리 한쪽을 2시간 정도 ‘차 없는 거리’로 만들고 많은 시민 단체와 함께 거리 예술제와 먹거리 나누기 행사 등을 95년부터 2000년까지 5년 동안 시행했었다. 예술제 현장 한쪽에서는 몇 단체가 나누어 맡아 즉석에서 부침개를 붙여 행사 참가자 및 시장 상인들과 나누어 먹었다. 부침개를 담당한 단체는 재료를 준비하고 거리에서 부치고 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도, 동학 행사는 그렇게 나눠야 되는 것으로 알고 진행했다. 그런데 부침개를 먹던 시장 상인 말씀이 “동아생명에서 부침개 나눠준데!”라고 하신다. 플래카드와 포스터 그리고 방송으로 동학 기념행사라고 홍보를 했어도 지역 주민들에게는 “동아생명”으로 들렸던 모양이었다.
94년 10월 29일과 30일에 전국적 규모로 공주에서 동학 기념행사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 직후인 11월 23일에 공주의 이인면 초봉리 검바위에 “유림의병정란사적비(儒林義兵靖亂事蹟碑)”가 공주노인회, 공주유도회 명의로 세워졌다. 공주의 보수층을 대표하는 몇몇 분들이 94년 6월부터 공주에서 동학혁명 기념 사업 반대 입장의 홍보물을 학교 등에 배포했고 또한 “국가 사적지 지정 취소 촉구서”를 관련 기관에 보냈다고 했다. 위의 비에는 정통성을 가진 조선 왕조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 동학군을 공주에서 관군 측 유림 의병이 동학군을 패퇴시킨 것을 기념한다고 새겨져 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기념 사업이 전국에서 행해질 때 전국에서 두 군데 즉 공주와 경상도 어느 지역에선가 반대 기념비가 세워졌다고 했다. 이러한 민심 때문에 공주에서는 94년 동학 기념행사 뒤 마을 노인회관 곳곳에 기념행사 자료집을 보냈다. 그 뒤로 사무실에 어르신 한 분이 사탕 한 봉지를 들고 찾아와 고생했다고 격려한 일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아울러 전한다.
공주시는 99년 7월에 2차선의 우금티를 깊게 파서(고개를 낮춰서) 4차선으로 만들겠다고 설명회를 개최하였다. 공주의 동학기념사업단체는 터널 방식으로 하여 우금티 국가 사적지의 원상을 유지하는 방안을 제안하였다. 이미 터널 방식으로 공주터널을 개통하기도 했는데, 왜 우금티는 터널 방식을 고려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그 후 우금티 고개를 두고 전국의 동학기념사업단체와 함께 성명전을 거듭하였는데 3년 반 정도 지나 결국 문화재청이 우리 단체의 편을 들어 터널로 결정되었다.
공주시청에서 동학 기념 사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첫 사건은, 2000년 공주시 체육대회 입장식에서 사적지 우금티가 있는 금학동의 유치원생들이 위령탑의 모형을 앞세우고 죽창과 괭이 모형을 들고 입장했을 때이다. 당시 금학동 동장님이 여성이었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2004년에는 동학군이 일본군·관군 연합군과 격전을 벌였던 공주산줄기(공주에서 공주대간이라고 부른다)를 문화관광과 과장과 직원 분들과 함께 답사하였다. 그쯤에서야 공주의 동학혁명을 공주시에서 지역의 역사 자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2005년에 원광대학교 박맹수 교수님, 일본인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님 등 몇 분이 방문하여 공주 회원들과 간담회를 한 적이 있다. 그분들은 2018년에도 ‘한일시민과 함께 하는 동학기행’으로 공주를 방문하여 공주기념사업회와 교류를 하기도 했다. 박맹수 교수님은 평생을, 동학 연구에만 그치고 않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한살림운동, 생평평화모임 등을 이끌어 오셨다.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님은 일본인이지만 역사 연구를 통해 일본에서 동학농민혁명 시기에 일본군에 의한 조선인 학살 규명, 침략 전쟁 반대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한일의 양심적인 시민의 교류를 추진해 온 분이다. ‘한일시민과 함께 하는 동학기행’은 2006년부터 시작하여 작년에 13회째를 마쳤다. 동학기념사업을 한국·일본의 진보적 시민운동이 연대하는 국제 교류 사업으로 침략 전쟁 반대와 동아시아 평화를 모색하는 역할로까지 확대한 것이다.
공주의 우금티 전투가 전라도 농민군이 공주에 와서 일본군·관군 연합군에 학살된 전투라는 인식이 한동안 공주에 널리 퍼져있었다. 공주에서 아직 동학이 불온시될 때, 공주의 구상회, 조재훈 선생님이 동학에 관심을 가지고 구전 조사와 학술 연구를 해 오신 일은 꼭 기억했으면 하는 일이다. 공주동학기념사업을 계기로 ‘공주 사람들은 동학농민혁명 시기에 어떻게 활동했을까?’ ‘얼마나 주체적으로 참여했을까’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공주 지역 구전 조사를 시작했다. 공주 토박이 어른인 구상회 선생님은 이미 구전 조사를 시작하여 많은 자료를 가지고 계셨다. 나는 기회가 되는대로 구상회 선생님을 모시고 공주의 리 단위까지 샅샅이 방문하였다.
그리하여 공주에서도 싸움터 우금티뿐만 아니라 금강 이남과 이북 그리고 많은 지역에서 동학농민군의 이야기를 찾아내었다. 열 분을 동학 참여자로 국가 기관에 등록시켰으며, 2005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공주와 동학농민혁명”(박맹수, 정선원 공저)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2007년에는 지역 신문에 스물한 분의 공주 동학 참여자를 소개하며 관심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박맹수 교수 등 연구자의 연구로 공주에서 동학은 1881년부터 공주 사람 윤상오가 동학에 입도해서 충청도 서부와 전라도에 포교한 것이 밝혀졌고, 최시형 선생은 공주에 비밀리에 다섯 차례 이상 잠입하여 활동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공주는 1892년 교조신원운동의 첫 출발지이며 1894년에는 3월부터 공주의 동학군이 활동한 사실이 밝혀졌다. 1894년의 동학혁명이 전국적 상황이었듯이 공주에서도 우금티만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많은 주민들이 함께한 운동이었던 것이다. 또한 동학혁명의 계기가 된 인물인 조병갑 집안의 세거지가 공주 신풍면 평소리로 공주와 동학은 매우 깊이 얽혀 있는 곳이었다.


공주에서도 ‘박근혜대통령탄핵촛불운동’ 시작인 2016년 11월부터 2017년 4월까지 매주 1회 이상 꼬박꼬박 집회를 가졌다. 공주에서는 동학기념사업단체 회원들을 포함해 시민 단체 회원들이 주도적으로 집회를 조직하고 참여했다. ‘세월호진상규명촛불’에도 함께 했고, 2008년 ‘광우병촛불시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894년의 동학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현실의 부정부패와 불의한 정권에도 항거하는 것이었다.
우금티에는 장승들이 서있다. 1994년 동학 100주년 기념행사를 하면서 공주의 우성 어천리 주민들이 참여해 민족의 아픔을 함께 하는 장승을 우금티에 세웠다. 그 자리에 세웠던 장승은 세월과 함께 쓰러졌지만 지금까지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공주 지역 시민 사회 단체들이 모여 각 단체의 이름으로 장승을 세우고 새해 인사를 함께 나누어 왔다. 2017년에는 ‘촛불민심’을 몸에 새긴 장승을 세웠는데 어느 땐가 ‘촛불민심’ 등 장승 몇 개의 몸이 토치램프로 글씨를 알아 볼 수 없게 그을려 있었다. 역사의 진보와 함께하는 문화 행사에 대한 폭력적인 대응에 대해 우리들은 새로운 장승을 계속 세우는 것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1894년 동학혁명의 격전지 우금티가 있는 공주에서 동학한다는 것, 동학기념사업을 한다는 것은 우금티의 동학 정신을 가슴에 지니고 지역의 보수적 민심을 넘어서 인간의 자유로운 해방, 지역의 시민운동, 민주주의 그리고 통일 운동에도 함께하는 것이다. 매년 공주 지역에서는 정월 보름날 우금티에 모여 새로운 장승을 세우며 민족의 비원을 넘어서는 통일을 갈망하며 새해 새 결의를 다질 것이다.

Death and the Atheist Mystic: Zhuangzi's Last Words | HuffPost

Death and the Atheist Mystic: Zhuangzi's Last Words | HuffPost


Brook Ziporyn, Contributor
Professor of Chinese Philosophy, Religion and Comparative Thought, University of Chicago

Death and the Atheist Mystic: Zhuangzi’s Last Words
11/06/2015 04:52 pm ET Updated Nov 06, 2016


No mind ruling the universe; no guarantee of good triumphing over evil; no spirit surviving the body; no life after life after life—and here comes death. No God, no moral world order, no afterlife, no reincarnation—and here comes death. He is a finite human animal, he is an ancient Chinese philosopher, he may or may not be that butterfly, he is Zhuangzi. Here are his last words, his last joke:


Zhuangzi was dying, and his disciples wanted to give him a lavish funeral. Zhuangzi said to them, “I will have heaven and earth as my coffin and crypt, the sun and moon for my paired jades, the stars and constellations for my round and oblong gems, all creatures for my tomb gifts and pallbearers. My funeral accoutrements are already fully prepared! What could possibly be added?” “But we fear the crows and vultures will eat you, Master,” said they. Zhuangzi said, “Above ground I’ll be eaten by crows and vultures, below ground by ants and crickets. Now you want to rob the one to feed the other. Why such favoritism?”


What is this dying man leaving to his solicitous friends? Is it perhaps a bitter parody of their hopes from one who is hopeless? A fat lot of good it does me, he is perhaps saying, your pious funerals, your coffins and crypts, your ceremonial mourning—I might as well be cast on the ground for the crows. Yet the parody turns around: your rituals are silly, yes, but no sillier than heaven and earth. Is it then perhaps the insouciant chill-out manifesto of an ultra-cool Dude who is shockingly at home in the universe? He is thinking big, in the thrall of the eyeless glory that will engulf him as his final resting place. Yet at the same time his words tuck the cosmos itself into a permanent deathbed: at home, yes, but the home he is at home in is one enormous morgue. Zhuangzi is a joker, but also a cruel and insane master: he is condemning his disciples to watch their beloved teacher and friend being devoured, consumed, dismantled, ground to powder, liquified. Zhuangzi’s more tender-hearted contemporary Mencius, the great Confucian philosopher, tells his disciples that the very reason funerals were invented in the first place was to avoid this kind of thing. Back in the day, says Mencius, everyone just tossed mom and dad by the roadside with the trash, but when they happened by a few weeks later they couldn’t bear to see the festering mom and dad had gotten up to in the meantime, and so folks got the idea of putting them in boxes deep underground to do their festering in private. But here at Zhuangzi’s place there is no escape, the disciples are just sparing their own feelings. In any case he has to go, he has to disintegrate, he has to be consumed. Playful Zhuangzi plays dumb when he plays, offering a willful misunderstanding—you rob one to feed the other, gosh, you guys must really love ants and crickets! But of course this is a shot across the bow at another bias: why this bias for life over death? For one form over the disintegration into infinite forms? Not just for the crickets over the crows, but for me over the crickets and crows, for me alive over me dead?


The issue here, as in so much classical Chinese philosophy early and late, is incompleteness. Bias. One-sidedness. And it is just here that Zhuangzi’s bittersweet dying joke itself is unbiased, at once both a resigned and hopeless surrender to the inevitable and an exultant embrace of the totality of ceaseless transformation that is the world worlding, the bubbling source of whatever joy a self feels in happening to have become a self for awhile, and the weirder joy embedded in the sorrow in having to surrender that self after that little while: as Zhuangzi says elsewhere, what makes my life good is also what makes my death good.


What is it? It is tempting to say that Zhuangzi, like Spinoza, reads simultaneously as God-intoxicated man and the most extreme possible nihilist, an atheist’s atheist. Not God-intoxicated, though: tipsy on Dao. That is perhaps the difference that makes the peculiar double-vision buzz delivered by both Dao and Spinoza’s God possible. It is the unbiased that encompasses both meaninglessness and meaning. The contrast to a personal God could not be more stark. For although this God is sometimes appealed to as a locus of justice and fairness, as the unbiased and encompassing, a moment’s reflection reveals that, as long as God is some sort of mind or personal being or spirit, this unbiasedness is quite limited. God is less biased than the warring parties who might appeal to him, but much more biased than the Godless infinities that he is enlisted to replace. More to the point, his relative unbiasedness is usually imagined as ultimately in the service of a larger ultimate bias, an agenda: he is thought to be temporarily all-accepting only as a preliminary to a subsequent judgment. For a personal being is generally supposed to have some things or states he prefers; that is what it usually means for something to be a someone rather than merely a something, a person rather than merely a thing or a principle or a stuff or a substratum. The essence of the usual idea of God as the ruling mind of the universe is preference, is will, is purpose, is care and concern about how things go—and in Daoist perspective, all of those are just words for bias, for one-sidedness, for incompleteness. Dao is precisely the denial of these, the antithesis of purpose and of bias—Dao, the perfect antonym of God, more not God than matter, more not God than the devil. And it is this God-lessness precisely that is powering Zhuangzi’s laughter at his own helplessness, at his own childlike excitement for the new headless adventure ahead, at his disciples’ pettiness, at the glory of the world as giant coffin, at the scandal of coffin as miniature world. The lack of God, which is the lack of bias at the foundation of the world, is itself what makes his death acceptable. For it is not the getting eaten that rankles; or rather, it is the getting eaten that rankles, but only because getting eaten is a particularly vivid form of being limited, being one-sided, being on only one side of a relation, being finite, fixed, trapped, stuck. Getting eaten is one of the way things flow on from form to form, from state to state, but it is so small a portion of the flow; the solution is not to stop that flow but to augment it, to flow from there into all sides of every relation. That is the vastness of Zhuangzi’s coffin.



People who have gotten used to the idea of God find depressing or even terrifying the idea of a heartless cosmos that doesn’t care about our fate, that has no interest in whether we live or die. But perhaps this really is just a question of having gotten used to something, or, to put it less politely, the withdrawal from an addiction. As Zhuangzi says elsewhere, even the most hot-heated man does not go so far as to break the sword of his enemy, or to curse at an empty boat that collides with him. The world thwarts us, which is bad enough, but what is much worse is the bias, the smirking agenda, the contravening will, the know-it-all overall plan, which we imagine to be locking us willfully into only one position: the eaten, not the eater; the me, not the you; the creature, not the creator. The horror is in having to be one or the other, rather than always being both, or ready to be any.


Bias means limitation. It means finitude. It means non-omnipresence: that this is only happening here, not anywhere else; only going in this direction, not any other direction; only serving this use, not any other use. Pain and death are finitude writ large and stark: rude blares of “No further.” The problem of pain is really the problem of being trapped within boundaries and straining against them. For the atheist mystic, the prospect of death leading only to heaven or only to a particular other life is no better than death leading only to being an inert chunk of matter: the problem in all cases is that we have one transformation that leads to no further transformations. The problem is getting stuck in only one state: that’s what it is to be a mortal, a finite being. What if this one change leads to a million more? What if being eaten leads to being not only the eaten but a million eaters? What if the real problem hidden in these traumatic shutdowns and demolitions that we call pain and death is not that they happen, but that their happening is a stopping, they don’t keep happening everywhere. Or do th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