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OF CONTENTS
2016/06/09
Human Rights Protections in Criminal Justice
Human Rights Protections in Criminal Justice
HUMAN RIGHTS PROTECTIONS IN CRIMINAL JUSTICE
The extent to which human rights are observed and protected within the context of the criminal justice system is an important measure of a society's civilization. That is a simple proposition which few people are likely to dispute. But it is one of those statements, which leaves a number of other questions unanswered. What are the human rights that it is important to protect within the criminal justice system? And more important, perhaps, to what extent should the human rights of the suspect and the defendant be protected when other important interests of society are under attack and in possible conflict with the interests of the defendant? While there is a pretty wide consensus regarding the protections that should be available to the defendant at different stages of the criminal justice process, significant differences dominate the discussion on the extent and scope of these protections.
In the United States, due process of law means that accused persons in criminal cases must be accorded certain rights and they will be tried according to legally established procedures. Of the first ten amendments to the U.S. Constitution, the following are of direct relevance to the issue of constitutional due process of law: the Fourth Amendment (protection against unreasonable search and seizure); the Fifth Amendment (right to grand jury indictment, protection against double jeopardy, privilege against self-incrimination, due process of law); the Sixth Amendment (right to speedy and public trial, right to an impartial jury, defendant's right to notice, right to confront adverse witnesses and right to obtain witnesses in his favor, right to counsel); and the Eight Amendment(right against excessive bail, prohibition against cruel and unusual punishment).
Due process protections are available to the defendant at each of the stages of the criminal justice process: pre-trial procedures, trial procedures and post-trial procedures.
2016/06/08
욥기 - 나무위키
욥기 - 나무위키
Book of Job (히브리어: ספר איוב)
엽기가 아닙니다!
"어차피 그의 손에 죽을 몸, 아무 바랄 것도 없지만 나의 걸어온 발자취를 그의 앞에 낱낱이 밝히리라." (욥기 13장 15절, 공동번역성서)
북부 아라비아의 '욥(איִובֹ, 이요브)'이라는 사람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성경중간 부분에 있지만, 시간대는 창세기 부근이다. 성경은 시간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아랍어에서는 욥을 아이유브(ايوب)로 부른다. 살라흐 앗 딘의 아버지의 이름이기도 하며, 결과로 살라흐 앗 딘이 창건한 아이유브 왕조(أيوبيون)란 이름 자체의 유래가 되었다.
구약성경의 다른 문서와는 다르게 액자식 구성[1]인데 운문체로 쓰인 본문 앞뒤로 산문체로 쓰인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달려 있다. 하나님과 사탄이 대화하거나 중반부부터 친구
놈들과의 기나긴 이야기가 나오는 등 고대 그리스의 희곡 한 편을 읽는 듯 착각할 만큼 문학 양식상 색다르다.
특히 욥의 재앙 이후에 친구
놈들과 논쟁을 벌이는 부분의 경우, 어떻게 보면 흔한_현대_네티즌들의_키보드_배틀.txt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양상이 낯익다.(…) 즉 문제제기 → 겸손한 태도로 주장 시작 → 의견 대립 → 논쟁 과열 → 빈정 상함 →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억지 → 상호간의 인신공격 → "됐습니다, 더 이상 당신과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시전(…) → 게시판 관리자에게 판단 요구 → 열기가 식어가던 중 눈팅회원 뒤늦게 난입[2] → 관리자가 나타나 중재 후 회원 제재조치 → 당초 떡밥이 되었던 문제는 그대로 맥거핀화(…)[3]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욥의 세 친구들과 같은 인과응보식 고난의 개념은 잘못됐다.는 점이다.
홍수나면 무조건 하나님이 벌을 내린다는 헛소리 등 이들은 형용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는 친구를 향해, 처음에는 1주일간 말없이 울면서 욥과 같이 있어주었지만, 욥이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며 고난에 절규에 할 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래도 네가 뭘 잘못한 게 있으니까 합당한 벌을 받은 거겠지, 어서 반성하고 다시 착하게 살아"(…) 의 성질머리 벅벅 긁는 상큼한 망언만을 반복할 따름이었다. 고난의 개념을 단순히 죄악에 따른 벌로 봤기 때문이었다.
한국교회랑 좀 비슷한듯
처음에는 욥에게 세 친구가 와서 이런저런 충고하는데 세 친구
놈들이 다 이야기하고 나면 제32장에 '람족 출신인 부스 사람 바라켈의 아들 엘리후' 란 사람이갑툭튀한다. 욥기 본문상에서는 자신이 앞서 말한 욥의 세 친구보다 나이가 어려 먼저 나서기 어려웠기에, 지금껏 묵묵히 지켜보다가 이제야 말을 꺼낸다고 말한다.
여기서도 나이가 계급인가.[4]
사탄은 우선 사고와 전염병으로 욥의 재산을 모두 날려버린다.[5] 그 다음에는 도적떼가 몰려들게 하여 낙타를 죽이고 집이 무너지게 하여 욥의 자식들을 몰살시킨다. 이럼에도 욥은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예배하며 말하길
하며 조금도 원망하지 않는다. 자신의 재산과 자식들 모두 하느님이 주신 것이니 이를 거두는 것 또한 하느님의 뜻이라고 여긴 것이다. 사탄이 다시 하느님을 만났을 때 하느님은 네가 나를 부추겨 그의 재산과 자식을 잃게 했지만 그는 조금도 나를 원망치 아니했다고 하자 사탄은 "사람이란 제 목숨 하나 건지기 위해 내놓지 못할 것이 없는 법입니다. 이제 손을 들어 그의 뼈와 살을 쳐보십시오. 제가 보장합니다. 그는 반드시 당신께 면전에서 욕을 할 것입니다." 라고 하자 역시 하느님은 "좋다! 이제 내가 그를 네 손에 부친다. 그러나 그의 목숨만은 건드리지 마라." 라고 한다. 이애 사탄은 마지막으로 욥을 피부병(부스럼)에 걸리게 했다.
재산과 자식들을 모두 잃고 피부병에 걸려 기왓장으로 몸을 긁는 불쌍한 신세가 된 욥을 향해 아내는 하느님을 저주하고 걍 죽어 버리라고 악담한다.[6]
병에 걸려 드러누운 욥에게 친구들이 찾아와 처음에는 욥의 상황이 너무 참담하여.. 말로는 위로도 못하고 옷을 찢으며 울면서 그냥 1주일 간(!) 말없이 있어주었다.[7] 그러나 욥이 왜 자기가 고난을 겪는지 이해를 못하고 절규하자,
드디어 키배가 시작됐다.
"이렇게 화를 당하는 것을 보면, 네가 하느님께 죄를 지은 것이 틀림없으니 인정해!!"라고 강요하지만, 욥은 "내 잘못이 이렇게 큰 재난당할 정도로 크지 않은데[8] 내가 이토록 혹독한 재앙을 당함은 억울한 일이야!!"라고 소리 높여 주장한다. 그 다음은 욥과 친구들의 언쟁(…). 욥과 친구들의 언쟁이야말로 욥기의 본문으로, 욥기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담는다.
여기서 특징이 있는 부분은 욥의 친구 셋이 인과응보 논리에 의거해, 욥에게 죄악이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욥이 자신의 정당을 논리로 초월하는 하느님이 내린 고난을 한탄하고 하소연한다면, 친구들은 하나님이 너에게서 부정(否定)을 보았기 때문에 벌했을 것"이라는 논리로 욥을 공격한다. 이 키배 상황만 보면 위로하러 온 게 아니라 욥을 나쁜 놈으로 몰아가 회개하게 하려는 의도로 온 듯하다(…).
마지막에 갑툭튀한 엘리후라는 젊은 놈도 세 친구가 욥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다며 욥을 호되게 몰아친다. 무엇보다도 욥이 자기는 의롭다는 소리를 옳지 못하다고 여겼다. 이에 욥은 하느님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데
정말로 하느님이 나타났다.(…) 하지만 하느님은 욥의 고통에 대답하는 대신,당신의 초월적인 권능을 감히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답한다. 여기서 레비아탄, 베헤모스
불 뿜는 공룡 이야기도 나온다.[9]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욥은, 하느님의 권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순응한다.
결국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은 욥은 하느님에게 이전보다 크게 은총을 받아, 전보다 많은 재산과 많은 자손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편을 들었다고 할 만한 욥의 세 친구들이 하나님에게 "너희의 말한 것은 내 종 욥의 말같이 알맞지(right) 않았다." 라며 단죄받지만, 욥이 그들을 배려해 빌어준다면 용서해 주겠다고 한다. 욥기 글쓴이가 무슨 생각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 욥기의 주제가 단순히 신앙을 계속 유지하면 복받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하나님에게 알맞지 않다고 직접 까인 욥의 세 친구들 측의 의견이 '신앙을 계속 유지하면 복받는다.' 쪽이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피해자나 낙태아를 위시해 현실에서 실패하거나 미온한 채 죽는 사람이나 별다른 잘못도 없었는데 고통받고 보상받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실재하는 상황에서 믿으면 복받는다는 논리가 알맞을 리가 없으니,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결론이다. 욥의 세 친구들은 '하나님이 있다면 왜 선한 사람이 고통받는가?'라는 질문에 똑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고통받는 놈이 악한 놈(첫째 친구 엘리바스)이라든지 고통받는 놈의 관계자, 자식들이 악해서 연좌로 걸렸다던지(둘째 친구 빌닷) 고통받는 놈의 벌이 그가 지은 죄보다는 가벼우니 입 닥치라는 식(셋째 친구 소발)의 말장난으로 대답하여 질문을 회피했고 이는 당연히 알맞은 대답이 될 수 없었다. 특별한 악의도 없었는데 고통받고 보상받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좋은 일만 생긴다는 논리와도 다른 결론이다. 즉, 욥이 복받은 내용이 서술된 에필로그는 문학상 결코 가볍지 않은 해피앤딩. (다시 말해서, 아무리 의로운 인간일지라도 조물주의 훈육이 필요 없을 만큼의 겸손을 갖춘 자는 없다!)
욥기 제8장 제7절에 욥의 세 친구 중 하나인 빌닷이 말한 이 구절이 유명하다. 한동안 이걸 사업 번창하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개업하는 날 가게에 걸어두는 개신교 신자가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앞의 구절들을 고려하면 그다지 긍정적인 맥락에서 나온 말은 아니다. 빌닷은 자네 아들들이 몰살당한 것은 걔네가 뭔 죄를 지어서일 것이고 자네가 죄가 없다면야 그분이 신세를 고쳐주시겠지라는 선인선과(善因善果)의 응보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욥은 하느님과 사탄의 내기에 휘말려 재산을 털리고 자식을 털린 사람이다! 일각에서는 '오직 성경'의 이데올로기를 이어받은 한국 개신교가 오히려 성경에 취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의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사람이 겪는 고통을 대상으로 해 사람들이 희망하는 고전이 될 만한 내용이 있는 관점은 나쁜 짓을 하면 벌받거나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욥기의 저자는 이 문제를 두고 욥이라는 사람을 이용해 착한 사람이 고통받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나쁜 짓을 해서 벌받는다고 하는데 이런 관점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나쁜 짓을 했으니까 벌받는다고 해석할 이유가 된다.
윤회가 빈부격차를 설명하는 방법 이에 욥기의 저자는 고통받는 사람이 선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기독교도는 욥기가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나쁜 사람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라고 희망을 주는 내용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이 하느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제시한다고도 간주한다.
한편 이 이야기에서 가장 크게 걸리는 부분이 있는데 욥이야 나중에 부와 가족을 되돌려 받으니 됐다고 해도 이미 죽은 욥의 가족들과 하인들은 어쩌라는 것인가이다.(…) 그러나 욥의 가족들이나 하인들이 죽지 않는다면, 욥이 극을 관람하듯이 인상 깊고 감동스러운 재앙으로 나락에 떨어져 신세를 한탄한다는 구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의 중심 내용이 '고통받는 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고찰' 대신, '고통받지만 언젠가 보상받을 수 있는 선한 사람들에 대상으로 한 고찰'로 좁아지게 된다. 이럴 때 보상받지 못한 고통받는 선한 사람들을 무시하게 되고 원래 주제와 고찰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가 완전히 무의미해진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자. 그들 모두가 확실하게 결백했는가?
특히 아내 분은 욥에게 신성모독과 자살을 부추기시는 성향이 (제2장 제9절)...
또 한 가지 거론되는 부분은 욥의 재산이 모두 배증했는데 아들과 딸은 배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양 7,000마리가 있었는데 마지막 부분에 늘어난 양을 보면 양이 14,000마리로 되어 있는데 처음에 나온 아들 7명과 딸 3명은 아들 14명과 딸 6명이 되는 게 아니라, 그대로 아들 7명과 딸 3명이다. 이 부분을 다룬 해석은 여러 가지이고 셋으로 대분하면
욥의 세 친구들의 대화는 인과응보의 논리에 따라 욥에게 숨은 잘못이 있다거나 지나치게 오만하다고 비난하는 내용이라면 엘리후는 다른 각도, 즉 사람이 하느님보다 과소거나 하느님이 사람에게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주장한다.[11] 엘리후가 하는 말은 조금 더 후기 사회상을 반영하기도 하고 다른 친구들의 말에는 욥이 다 대답해 주는데 엘리후의 말에는 욥이 대꾸하지 않는다는 점, 어투가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고 수많은 아람어 단어를 사용하는 점, 그의 논증 바로 뒤에 하느님이 대답을 한다는 점 등을 들어, 이 부분은 조금 후대에 본문에 삽입한 부분이고 이스라엘 민족 전통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주위의 설화에서 따오거나 혼합된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욥기는 성경의 다른 장들과 매우 다른 내용으로, 저술 시기는 바빌론 유수 이후로 추측된다. 성경의 다른 장들이 이스라엘의 전성기에 작성되어 하느님이 권선징악을 하는 존재로 묘사되어 왔지만(신명기다운 역사관), 욥기는 이스라엘이 고난을 겪을 때 작성되어 하느님은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왜 이러한 징벌을 내리셨는가 하는 온 민족이 관계된 질문을 하는 것이다.(욥기다운 역사관)
그런데도 욥기가 성경에 편입된 이유는 "하느님이 있다면 왜 착한 사람이 고통을 받는가?" 하는 세계 모든 사람의 유구한 궁금증 때문이다. 욥은 "그런데도 그는 나의 걸음을 낱낱이 아시다니. 털고 또 털어도 나는 순금처럼 깨끗하리라." (제23장 제10절)라고 고백하며 고통의 이유를 짐작한다. 하느님은 나중에 "너희는 내 이야기를 할 때 욥처럼 솔직하지 못하였다." (42장 7절)라고 욥의 신학관을 입증해준다. 이를 보았을 때 고통의 목적이 단련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욥기는 결코 완전히 선한 사람은 없다고 이 질문 자체를 반박하고 있다(!)욥기에서 하느님은 레비아탄, 베히모스 같은 자연의 다양한 경이를 보여주면서 사람의 한계를 지적한다. 사람이 인식하는 범위와 논리 체계를 벗어난 것들을 이용하여, 불완전한 사람은 하느님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하느님이 욥에게 던지는 "대장부답게 허리를 묶고 나서라. 나 이제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하여라. 네가 나의 판결을 뒤엎을 셈이냐? 너의 무죄함을 내세워 나를 죄인으로 몰 작정이냐?" (40장 7-8절)는 말은 곧 "네가 옳기 위해 나를 심판하겠느냐?"라는 질문이다. "나 착한 사람이야"라는 주장은 결국 "조물주가 틀렸어"라는 교만한 맥락과 상통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건 욥기서는 인간이 하느님을 이해하는게 아예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자들에게 성령을 아낌 없이 부어주는 신약성서를 제외하더라도 구약성서 내부에서 이미 인간이 하느님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요엘서에서는 하느님이 말세에 자신의 영을 모든 백성에게 부어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그 외의 부분에서도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영'이 임하는 부분도 존재한다. 아니, 그런건 둘째 치더라도 인간이 신을 아예 이해할 수 없다면, 욥부터가 어떻게 신과 대화하고 그 뜻이 '사람이 신의 뜻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즉, 욥기서의 주제는 인간이 하느님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전부는 이해할 수 없고, 네가 선하더라도 고통을 받을 수 있지만, 분명 거기에는 하느님의 선한 뜻이 있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하느님의 구원을 기다리라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서, 욥이 겪었던 인간의 생각으로 보기에는 불합리한 상황도 어떤 선한 뜻이 숨어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해 믿음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위의 내용은 욥기 23장의 7~10절에서 발췌한 것으로 '욥기의 전체적인 주제'를 함축한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성서 중에서도 굉장히 특이한 위치와 의미가 있는 편으로, 이것을 대상으로 한 해석 중에 제일 특이한 해석으로 철학자 겸 심리학자인 카를 융이 적은 책 '사람의 상과 하느님의 상'에 포함되어 있는 '욥에의 응답'이란 것이 있다. 욥기를 대상으로 해 흥미가 있다면 한번은 읽어볼 볼 가치가 있다.
슬라보예 지젝과 존 밀뱅크의 공저 <예수는 괴물이다(The Monstrosity of Christ)>에서 지젝은 G.K 체스턴턴의 "욥기 개설"을 인용하여 욥이 하느님의 침묵에 만족한 중요한 이유는, 하느님이 욥 자신의 고통에 축어적인 대답 대신 질문과 침묵을 동반한 더 큰 수수께끼로 덮어서 욥은 "하느님의 절규"를 알게 되었으며 결과로 심판대에 오른 것은 욥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라고 해석한다. 자세한 것은 본서를 읽어볼 것.
여담으로 플롯상 도입부에 나왔던 사탄이 중간에 실종되는 문제가 있다. 성서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바로 그렇기 떄문에 신과 사탄과의 대결은 단순한 문학적 기법으로 봐야 한다고 한다. 욥기 자체가 어느 정도 문학성을 띄는 서적이지만, 앞부분은 특히 그런 부분이 더 심하다고. 욥이 고난을 받은 걸 실제로 있었던 일로 보더라도 하느님과 사탄의 대화를 사실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할 수 있다.
근데 "아, 누가 있어 나의 말을 기록해 두랴? 누가 있어 구리판에 새겨두랴?" (19장 23절) 하고 외치는 욥은 상당히 자신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우리가 알기 원하는 듯 들린다
5. 욥기의
욥기는 선한 사람[12]이 고통에 빠지고, 남이 보기에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부터 논쟁을 시작한다.[13] "욥은 명백히 선한 사람이다."란 명제를 항상 참인 것으로 밝히고 시작한다는 것에 주의하자. 선한 사람인 "욥"이 빠진 고통을 불구경하러온 3명+1명은, 친구[14]임에도 불구하고, 위로를 하기는 커녕,인민재판을 개최한다. 욥은 명백히 선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욥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욥의 고통을 욥의 잘못으로 돌리는 논리를 풀어놓고, 욥은 이것을 반박한다. 이 4명의 사람은 4 부류의 사람들을 지칭하며, 해당 부류의 사람들 특유의 주장을 펼치고, 해당 부류다운 오류를 범한다. 이들 중에서는 율법에 능한자[15]도 있지만, 잉여한 인물도 있다. 이 세 부류의 사람은 하나같이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그것이 욥에 의해 반박되고 있다. 욥의 자칭 친구들의 주장은 계속해서 욥에게 반박당하며, 애초에 주장 자체에 허점들이 가득하다. 갑자기 튀어나와서 말을 늘어놓는 엘리후라는 인물은 "나이가 어리다"고 하는데, "어리다"란 말 그대로 횡설수설을 한다. 어쩐지 사업용 부적 (...) 취급받는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구절은 좀만 신경써서 읽어봐도 도대체 이게 뭔 소린가 싶은 헛소리다. 계속해서 반박됨에도 불구하고 욥에 대한 다굴은 끝이 나지 않을 듯 하다가, 하나님이 나타나 선한 사람 인증을 하고 인민재판을 펼친 자칭 친구들을 꾸짖는데, 그 요지만 정리하면, "지식은 진리가 아니기에 결국 '모름'이다. 너희들이 지식은 많다만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럼 결국 모르는 것이지 않느냐? 그럼, 대관절 무얼 안다고 욥을 까고 있는 거냐?"가 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자신에게 찾아온 고난을 하나님탓으로 돌리는 것에 대한 꾸짖음이 이어지는데, 이것의 요지도 욥의 자칭 친구들과 비슷하긴 하지만, 욥이 선한사람, 곧 하나님의 종이라는 배경이 있기 때문에, 사실은 굉장히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16] 다만, 자세한 내용은 역시 율법사들이나 알법한 내용들이라... 참고로, 욥기에 사용되는 기법은 유대 랍비들은 알아듣지만[17], 랍비들의 경우 "욥이 도대체 누굴 지칭하는 것인가?"라는 문제 때문에 역시 완전한 해석은 못해준다.
욥기의 제일 큰 문제는 진정한 정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는 전재 하에서 해석이 되게 되어있는데 (제8장 제3절 같은 식), 정작 그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중간 중간 나온다는 것이다. 성경 내용의 상당수가 대관절 무슨소린지 알 수 없거나,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아보이는 것은 대부분 이 문제 때문이다. 논리의 이해를 위해 필수적인 여러가지 명제들이 "알아서 찾으슈" 같은 느낌으로 죄다 누락되어 있으니 정상적인 소리로 들리면 그게 더 이상하다.[18] 그나마 어떻게든 핵심적인 배경논리를 찾아 넣어도, 세부적인 배경논리들이 누락되면 일단 뭔가 굉장히 논리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기는 한데 뭔소린지는 여전히 모르는 (...) 안습한 상황이 이어진다... (예를 들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가복음 4장 9절)같은 문장). 제일 유명한 케이스는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원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제19장 제25절). 만약 독자가 신이 땅 위에 우뚝 설 수 있다고 믿으면 이해하기 말그대로 예수 같은 인물이 상상되겠지만, 그런 신을 믿지 않는 독자라면 아리까리 할만한 구절.
멕거핀 덩어리 성경
정리하면, 욥기는 상당한 배경지식이 있는 고단수 독자를 위한 흥미로운 마녀사냥 스토리이며, 욥을 도와야할 이들이 돕기는 커녕 더 큰 고통을 주고, 욥은 그 고통에 절규에 가까운 저항을 하는 것이 포인트.
레비아탄과 베헤모스는 욥기에서 언급된 덕분에 네임드 거대한 괴수로서 엄청난 인지도를 얻었고 토마스 홉스가 국가의 본질/기원/조직/형태/발달 따위에 관한 이론을 주제로 저술한 <리바이어던>을 필두로 수많은 창작물에 등장하게 됐다.
중동의 크립티드 함께 유대교 전설에 등장했었으나 여기서 언급이 안 되어 완전히 새 된 지즈와는 상이해 대비된다.
대한민국의 플래시 애니메이터 북서니의 플래시 '찔러맨'에 등장하는 사람 중 하나인 스펜타는 욥의 일대기를 그대로 따왔다. 찔러 리메이크판은 기독교 성경구절을 토대로 재구성했기 때문. 하지만 스펜타는 지구의 신이 되었다. 참고로 북서니의 세계관에서 신은 절대자가 아니라 천사보다 조금 높은 수준으로 간주되고 있다. 작중 주인공인 찔러의 무기의 원래 주인들도 신인데 꼬리 형태의 채찍 주인인 라큄은 물의 신, 물을 검으로 바꾸는 장갑의 주인인 베알제불은 생명의 신 출신이지만, 베알제불은 친구인 라큄을 배신하고 그의 무기도 빼앗으려다 그에게 죽었고 그때의 피로 무기가 오염되었다고 한다.
미션 임파서블 영화 1편에서 욥의 철자가 Job(영어 발음은 조브)으로 '직업, 일'을 의미하는 단어와 철자가 같은데 발음은 약간 다르다는 점을 이용했다. 상관이 'Job'을 언급했을 때 이든 헌트(톰 크루즈)가 몇 시간 삽질하던 것은 Job을 '일'로 인식했다. 이 부분이 언역 시 매끄럽게 살려지지 못해 그냥 '욥'이라고 언급되어 관객 중에는 "'욥'이면 '욥기' 얘기 아냐? 이든이 바보인 듯."이라던 사람도 있었다.
이 같은 패러디는 스티브 잡스와도 엮이곤 하는데, 그 중 압권은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내놓은 것. 아예 제목을 대놓고 'The Book of Jobs'라고 썼다.예수 대신 스티브 잡스가 주인공이고, 성경책 대신 아이패드가 손에 들려 있는 모습을 그려 놓았다.
욥기
최근 수정 시각 : 2016-05-31 00:11:45
욥기(Book of Job) | ||||
이름 | 욥기(Book of Job) |
Book of Job (히브리어: ספר איוב)
1. 개요[편집]
구약성경의 한 대목."어차피 그의 손에 죽을 몸, 아무 바랄 것도 없지만 나의 걸어온 발자취를 그의 앞에 낱낱이 밝히리라." (욥기 13장 15절, 공동번역성서)
북부 아라비아의 '욥(איִובֹ, 이요브)'이라는 사람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성경중간 부분에 있지만, 시간대는 창세기 부근이다. 성경은 시간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아랍어에서는 욥을 아이유브(ايوب)로 부른다. 살라흐 앗 딘의 아버지의 이름이기도 하며, 결과로 살라흐 앗 딘이 창건한 아이유브 왕조(أيوبيون)란 이름 자체의 유래가 되었다.
구약성경의 다른 문서와는 다르게 액자식 구성[1]인데 운문체로 쓰인 본문 앞뒤로 산문체로 쓰인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달려 있다. 하나님과 사탄이 대화하거나 중반부부터 친구
특히 욥의 재앙 이후에 친구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욥의 세 친구들과 같은 인과응보식 고난의 개념은 잘못됐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욥에게 세 친구가 와서 이런저런 충고하는데 세 친구
2. 내용[편집]
어느 날, 사탄이 하느님에게 내기를 걸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상에 '욥'이라는 하느님을 향한 믿음이 깊은 사람이 있는데, 욥에게 재앙을 가져다주면 하느님을 욕하게 될 것인지 아닌지 내기를 하게 되었다. 우선 사탄이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면 틀림없이 원망할것이라고 부추기고 하느님은 "네가 하거라. 단 그에게는 손대지 말고." 라고 하며 허락하고, 사탄은 욥에게 재앙을 가져다준다.사탄은 우선 사고와 전염병으로 욥의 재산을 모두 날려버린다.[5] 그 다음에는 도적떼가 몰려들게 하여 낙타를 죽이고 집이 무너지게 하여 욥의 자식들을 몰살시킨다. 이럼에도 욥은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예배하며 말하길
"벌거벗고 세상에 태어난 몸, 알몸으로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던 것, 주님께서 도로 가져가시니 다만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지라."
욥기 1장 21절.
하며 조금도 원망하지 않는다. 자신의 재산과 자식들 모두 하느님이 주신 것이니 이를 거두는 것 또한 하느님의 뜻이라고 여긴 것이다. 사탄이 다시 하느님을 만났을 때 하느님은 네가 나를 부추겨 그의 재산과 자식을 잃게 했지만 그는 조금도 나를 원망치 아니했다고 하자 사탄은 "사람이란 제 목숨 하나 건지기 위해 내놓지 못할 것이 없는 법입니다. 이제 손을 들어 그의 뼈와 살을 쳐보십시오. 제가 보장합니다. 그는 반드시 당신께 면전에서 욕을 할 것입니다." 라고 하자 역시 하느님은 "좋다! 이제 내가 그를 네 손에 부친다. 그러나 그의 목숨만은 건드리지 마라." 라고 한다. 이애 사탄은 마지막으로 욥을 피부병(부스럼)에 걸리게 했다.
재산과 자식들을 모두 잃고 피부병에 걸려 기왓장으로 몸을 긁는 불쌍한 신세가 된 욥을 향해 아내는 하느님을 저주하고 걍 죽어 버리라고 악담한다.[6]
병에 걸려 드러누운 욥에게 친구들이 찾아와 처음에는 욥의 상황이 너무 참담하여.. 말로는 위로도 못하고 옷을 찢으며 울면서 그냥 1주일 간(!) 말없이 있어주었다.[7] 그러나 욥이 왜 자기가 고난을 겪는지 이해를 못하고 절규하자,
"이렇게 화를 당하는 것을 보면, 네가 하느님께 죄를 지은 것이 틀림없으니 인정해!!"라고 강요하지만, 욥은 "내 잘못이 이렇게 큰 재난당할 정도로 크지 않은데[8] 내가 이토록 혹독한 재앙을 당함은 억울한 일이야!!"라고 소리 높여 주장한다. 그 다음은 욥과 친구들의 언쟁(…). 욥과 친구들의 언쟁이야말로 욥기의 본문으로, 욥기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담는다.
여기서 특징이 있는 부분은 욥의 친구 셋이 인과응보 논리에 의거해, 욥에게 죄악이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욥이 자신의 정당을 논리로 초월하는 하느님이 내린 고난을 한탄하고 하소연한다면, 친구들은 하나님이 너에게서 부정(否定)을 보았기 때문에 벌했을 것"이라는 논리로 욥을 공격한다. 이 키배 상황만 보면 위로하러 온 게 아니라 욥을 나쁜 놈으로 몰아가 회개하게 하려는 의도로 온 듯하다(…).
마지막에 갑툭튀한 엘리후라는 젊은 놈도 세 친구가 욥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다며 욥을 호되게 몰아친다. 무엇보다도 욥이 자기는 의롭다는 소리를 옳지 못하다고 여겼다. 이에 욥은 하느님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데
정말로 하느님이 나타났다.(…) 하지만 하느님은 욥의 고통에 대답하는 대신,당신의 초월적인 권능을 감히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답한다. 여기서 레비아탄, 베헤모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그렇게 세상물정을 잘 알거든 말해 보아라. (중략)
네가 바닷속 깊이 더듬어 내려가 바닷물이 솟는 샘구멍까지 찾아가 보았느냐? (중략)
네가 천상의 운행 법칙을 결정하고 지상의 자연 법칙을 만들었느냐? (중략)
너는 구름에 호령하여 물을 동이로 쏟아 땅을 뒤덮게 할 수 있느냐? (중략)
-욥기 38장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욥은, 하느님의 권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순응한다.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지 이루십니다. 부질없는 말로 당신의 뜻을 가린 자, 그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이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을 영문도 모르면서 지껄였습니다."
-욥기 42장 2-3절
결국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은 욥은 하느님에게 이전보다 크게 은총을 받아, 전보다 많은 재산과 많은 자손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편을 들었다고 할 만한 욥의 세 친구들이 하나님에게 "너희의 말한 것은 내 종 욥의 말같이 알맞지(right) 않았다." 라며 단죄받지만, 욥이 그들을 배려해 빌어준다면 용서해 주겠다고 한다. 욥기 글쓴이가 무슨 생각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 욥기의 주제가 단순히 신앙을 계속 유지하면 복받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하나님에게 알맞지 않다고 직접 까인 욥의 세 친구들 측의 의견이 '신앙을 계속 유지하면 복받는다.' 쪽이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피해자나 낙태아를 위시해 현실에서 실패하거나 미온한 채 죽는 사람이나 별다른 잘못도 없었는데 고통받고 보상받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실재하는 상황에서 믿으면 복받는다는 논리가 알맞을 리가 없으니,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결론이다. 욥의 세 친구들은 '하나님이 있다면 왜 선한 사람이 고통받는가?'라는 질문에 똑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고통받는 놈이 악한 놈(첫째 친구 엘리바스)이라든지 고통받는 놈의 관계자, 자식들이 악해서 연좌로 걸렸다던지(둘째 친구 빌닷) 고통받는 놈의 벌이 그가 지은 죄보다는 가벼우니 입 닥치라는 식(셋째 친구 소발)의 말장난으로 대답하여 질문을 회피했고 이는 당연히 알맞은 대답이 될 수 없었다. 특별한 악의도 없었는데 고통받고 보상받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좋은 일만 생긴다는 논리와도 다른 결론이다. 즉, 욥이 복받은 내용이 서술된 에필로그는 문학상 결코 가볍지 않은 해피앤딩. (다시 말해서, 아무리 의로운 인간일지라도 조물주의 훈육이 필요 없을 만큼의 겸손을 갖춘 자는 없다!)
3.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편집]
처음에는 보잘것없겠지만 나중에는 훌륭하게 될 것일세. (공동번역성서)
자네의 시작은 보잘것없었지만 자네의 앞날은 크게 번창할 것이네. (가톨릭 성경)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개신교 성경개역개정판)
욥기 제8장 제7절에 욥의 세 친구 중 하나인 빌닷이 말한 이 구절이 유명하다. 한동안 이걸 사업 번창하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개업하는 날 가게에 걸어두는 개신교 신자가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앞의 구절들을 고려하면 그다지 긍정적인 맥락에서 나온 말은 아니다. 빌닷은 자네 아들들이 몰살당한 것은 걔네가 뭔 죄를 지어서일 것이고 자네가 죄가 없다면야 그분이 신세를 고쳐주시겠지라는 선인선과(善因善果)의 응보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욥은 하느님과 사탄의 내기에 휘말려 재산을 털리고 자식을 털린 사람이다! 일각에서는 '오직 성경'의 이데올로기를 이어받은 한국 개신교가 오히려 성경에 취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의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4. 해석[편집]
욥기의 주제를 이야기하면 '하느님은(하느님이 있다면) 왜 착한 사람이 고통받을 수 있게 하였는가.'이다. 또 의인의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여야 하는지를 중점으로 설정상 선하고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있는데도 의로운 사람이 고통받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생각할 수 있다[10].사람이 겪는 고통을 대상으로 해 사람들이 희망하는 고전이 될 만한 내용이 있는 관점은 나쁜 짓을 하면 벌받거나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욥기의 저자는 이 문제를 두고 욥이라는 사람을 이용해 착한 사람이 고통받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나쁜 짓을 해서 벌받는다고 하는데 이런 관점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나쁜 짓을 했으니까 벌받는다고 해석할 이유가 된다.
기독교도는 욥기가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나쁜 사람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라고 희망을 주는 내용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이 하느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제시한다고도 간주한다.
한편 이 이야기에서 가장 크게 걸리는 부분이 있는데 욥이야 나중에 부와 가족을 되돌려 받으니 됐다고 해도 이미 죽은 욥의 가족들과 하인들은 어쩌라는 것인가이다.(…) 그러나 욥의 가족들이나 하인들이 죽지 않는다면, 욥이 극을 관람하듯이 인상 깊고 감동스러운 재앙으로 나락에 떨어져 신세를 한탄한다는 구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의 중심 내용이 '고통받는 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고찰' 대신, '고통받지만 언젠가 보상받을 수 있는 선한 사람들에 대상으로 한 고찰'로 좁아지게 된다. 이럴 때 보상받지 못한 고통받는 선한 사람들을 무시하게 되고 원래 주제와 고찰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가 완전히 무의미해진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자. 그들 모두가 확실하게 결백했는가?
또 한 가지 거론되는 부분은 욥의 재산이 모두 배증했는데 아들과 딸은 배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양 7,000마리가 있었는데 마지막 부분에 늘어난 양을 보면 양이 14,000마리로 되어 있는데 처음에 나온 아들 7명과 딸 3명은 아들 14명과 딸 6명이 되는 게 아니라, 그대로 아들 7명과 딸 3명이다. 이 부분을 다룬 해석은 여러 가지이고 셋으로 대분하면
- 당시(창세기 인근)의 자녀와 하인은 현대의 가족의 개념과는 달리 '재산'의 개념에 가까웠을 수 있다. 혹자를 좇으면, 부성애 같은 개념은 중세 이후 대두된 사람으로 당연히 얻는 기본권과 생명 존중 사상에서 비롯되어 퍼진 것으로, 사람의 본능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주장하며 이 이론을 지지하나 위에서 설명했듯 '재산이 모두 배'가 된 것에 비해 자녀의 수는 그대로이므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며, 창세기 시절이라고 해서 꼭 그런 식으로 여겼다고 하기에는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조금 신빙성이 떨어진다.
2. 신앙이 강하고 순명하는 욥은 자손의 생명도 하느님이 준 것이므로 거두어 가시는 것도 하느님의 뜻이니 어쩔 수 없다, 새로 얻은 자식들이나 잘 키우자라고 여겼을 수 있으나 이것도 욥이 절망하는 원인과 앞뒤가 맞지 않고 아무리 신앙이 강한 사람이라도 현대에 사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납득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생각이다.
3. 실제로 부활했다. 허구에 가까운 이야기이라서 가능할 법도 하나, 죽은 사람이 그것도 최소 10명 넘게 부활했다면 아무리 기적이 많이 일어난 창세기당시 일이라도 너무 대단한 사건이다. 욥기 저자가 이것을 대상으로 해 크게 쓰지 않았을 리 없다.
욥의 세 친구들의 대화는 인과응보의 논리에 따라 욥에게 숨은 잘못이 있다거나 지나치게 오만하다고 비난하는 내용이라면 엘리후는 다른 각도, 즉 사람이 하느님보다 과소거나 하느님이 사람에게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주장한다.[11] 엘리후가 하는 말은 조금 더 후기 사회상을 반영하기도 하고 다른 친구들의 말에는 욥이 다 대답해 주는데 엘리후의 말에는 욥이 대꾸하지 않는다는 점, 어투가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고 수많은 아람어 단어를 사용하는 점, 그의 논증 바로 뒤에 하느님이 대답을 한다는 점 등을 들어, 이 부분은 조금 후대에 본문에 삽입한 부분이고 이스라엘 민족 전통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주위의 설화에서 따오거나 혼합된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욥기는 성경의 다른 장들과 매우 다른 내용으로, 저술 시기는 바빌론 유수 이후로 추측된다. 성경의 다른 장들이 이스라엘의 전성기에 작성되어 하느님이 권선징악을 하는 존재로 묘사되어 왔지만(신명기다운 역사관), 욥기는 이스라엘이 고난을 겪을 때 작성되어 하느님은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왜 이러한 징벌을 내리셨는가 하는 온 민족이 관계된 질문을 하는 것이다.(욥기다운 역사관)
그런데도 욥기가 성경에 편입된 이유는 "하느님이 있다면 왜 착한 사람이 고통을 받는가?" 하는 세계 모든 사람의 유구한 궁금증 때문이다. 욥은 "그런데도 그는 나의 걸음을 낱낱이 아시다니. 털고 또 털어도 나는 순금처럼 깨끗하리라." (제23장 제10절)라고 고백하며 고통의 이유를 짐작한다. 하느님은 나중에 "너희는 내 이야기를 할 때 욥처럼 솔직하지 못하였다." (42장 7절)라고 욥의 신학관을 입증해준다. 이를 보았을 때 고통의 목적이 단련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욥기는 결코 완전히 선한 사람은 없다고 이 질문 자체를 반박하고 있다(!)욥기에서 하느님은 레비아탄, 베히모스 같은 자연의 다양한 경이를 보여주면서 사람의 한계를 지적한다. 사람이 인식하는 범위와 논리 체계를 벗어난 것들을 이용하여, 불완전한 사람은 하느님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하느님이 욥에게 던지는 "대장부답게 허리를 묶고 나서라. 나 이제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하여라. 네가 나의 판결을 뒤엎을 셈이냐? 너의 무죄함을 내세워 나를 죄인으로 몰 작정이냐?" (40장 7-8절)는 말은 곧 "네가 옳기 위해 나를 심판하겠느냐?"라는 질문이다. "나 착한 사람이야"라는 주장은 결국 "조물주가 틀렸어"라는 교만한 맥락과 상통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건 욥기서는 인간이 하느님을 이해하는게 아예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자들에게 성령을 아낌 없이 부어주는 신약성서를 제외하더라도 구약성서 내부에서 이미 인간이 하느님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요엘서에서는 하느님이 말세에 자신의 영을 모든 백성에게 부어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그 외의 부분에서도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영'이 임하는 부분도 존재한다. 아니, 그런건 둘째 치더라도 인간이 신을 아예 이해할 수 없다면, 욥부터가 어떻게 신과 대화하고 그 뜻이 '사람이 신의 뜻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즉, 욥기서의 주제는 인간이 하느님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전부는 이해할 수 없고, 네가 선하더라도 고통을 받을 수 있지만, 분명 거기에는 하느님의 선한 뜻이 있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하느님의 구원을 기다리라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서, 욥이 겪었던 인간의 생각으로 보기에는 불합리한 상황도 어떤 선한 뜻이 숨어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해 믿음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그러면 나의 옳았음을 아시게 될 것이고 나는 나대로 승소할 수 있을 것일세.
그런데 앞으로 가보아도 계시지 않고 뒤를 돌아보아도 보이지 않는구나.
왼쪽으로 가서 찾아도 눈에 뜨이지 아니하고 오른쪽으로 눈을 돌려도 보이지 않는구나.
그런데도 그는 나의 걸음을 낱낱이 아시다니. 털고 또 털어도 나는 순금처럼 깨끗하리라.
위의 내용은 욥기 23장의 7~10절에서 발췌한 것으로 '욥기의 전체적인 주제'를 함축한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성서 중에서도 굉장히 특이한 위치와 의미가 있는 편으로, 이것을 대상으로 한 해석 중에 제일 특이한 해석으로 철학자 겸 심리학자인 카를 융이 적은 책 '사람의 상과 하느님의 상'에 포함되어 있는 '욥에의 응답'이란 것이 있다. 욥기를 대상으로 해 흥미가 있다면 한번은 읽어볼 볼 가치가 있다.
슬라보예 지젝과 존 밀뱅크의 공저 <예수는 괴물이다(The Monstrosity of Christ)>에서 지젝은 G.K 체스턴턴의 "욥기 개설"을 인용하여 욥이 하느님의 침묵에 만족한 중요한 이유는, 하느님이 욥 자신의 고통에 축어적인 대답 대신 질문과 침묵을 동반한 더 큰 수수께끼로 덮어서 욥은 "하느님의 절규"를 알게 되었으며 결과로 심판대에 오른 것은 욥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라고 해석한다. 자세한 것은 본서를 읽어볼 것.
여담으로 플롯상 도입부에 나왔던 사탄이 중간에 실종되는 문제가 있다. 성서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바로 그렇기 떄문에 신과 사탄과의 대결은 단순한 문학적 기법으로 봐야 한다고 한다. 욥기 자체가 어느 정도 문학성을 띄는 서적이지만, 앞부분은 특히 그런 부분이 더 심하다고. 욥이 고난을 받은 걸 실제로 있었던 일로 보더라도 하느님과 사탄의 대화를 사실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할 수 있다.
5. 욥기의 키배 논쟁 해석[편집]
욥기는 선한 사람[12]이 고통에 빠지고, 남이 보기에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부터 논쟁을 시작한다.[13] "욥은 명백히 선한 사람이다."란 명제를 항상 참인 것으로 밝히고 시작한다는 것에 주의하자. 선한 사람인 "욥"이 빠진 고통을 불구경하러온 3명+1명은, 친구[14]임에도 불구하고, 위로를 하기는 커녕,인민재판을 개최한다. 욥은 명백히 선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욥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욥의 고통을 욥의 잘못으로 돌리는 논리를 풀어놓고, 욥은 이것을 반박한다. 이 4명의 사람은 4 부류의 사람들을 지칭하며, 해당 부류의 사람들 특유의 주장을 펼치고, 해당 부류다운 오류를 범한다. 이들 중에서는 율법에 능한자[15]도 있지만, 잉여한 인물도 있다. 이 세 부류의 사람은 하나같이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그것이 욥에 의해 반박되고 있다. 욥의 자칭 친구들의 주장은 계속해서 욥에게 반박당하며, 애초에 주장 자체에 허점들이 가득하다. 갑자기 튀어나와서 말을 늘어놓는 엘리후라는 인물은 "나이가 어리다"고 하는데, "어리다"란 말 그대로 횡설수설을 한다. 어쩐지 사업용 부적 (...) 취급받는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구절은 좀만 신경써서 읽어봐도 도대체 이게 뭔 소린가 싶은 헛소리다. 계속해서 반박됨에도 불구하고 욥에 대한 다굴은 끝이 나지 않을 듯 하다가, 하나님이 나타나 선한 사람 인증을 하고 인민재판을 펼친 자칭 친구들을 꾸짖는데, 그 요지만 정리하면, "지식은 진리가 아니기에 결국 '모름'이다. 너희들이 지식은 많다만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럼 결국 모르는 것이지 않느냐? 그럼, 대관절 무얼 안다고 욥을 까고 있는 거냐?"가 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자신에게 찾아온 고난을 하나님탓으로 돌리는 것에 대한 꾸짖음이 이어지는데, 이것의 요지도 욥의 자칭 친구들과 비슷하긴 하지만, 욥이 선한사람, 곧 하나님의 종이라는 배경이 있기 때문에, 사실은 굉장히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16] 다만, 자세한 내용은 역시 율법사들이나 알법한 내용들이라... 참고로, 욥기에 사용되는 기법은 유대 랍비들은 알아듣지만[17], 랍비들의 경우 "욥이 도대체 누굴 지칭하는 것인가?"라는 문제 때문에 역시 완전한 해석은 못해준다.욥기의 제일 큰 문제는 진정한 정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는 전재 하에서 해석이 되게 되어있는데 (제8장 제3절 같은 식), 정작 그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중간 중간 나온다는 것이다. 성경 내용의 상당수가 대관절 무슨소린지 알 수 없거나,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아보이는 것은 대부분 이 문제 때문이다. 논리의 이해를 위해 필수적인 여러가지 명제들이 "알아서 찾으슈" 같은 느낌으로 죄다 누락되어 있으니 정상적인 소리로 들리면 그게 더 이상하다.[18] 그나마 어떻게든 핵심적인 배경논리를 찾아 넣어도, 세부적인 배경논리들이 누락되면 일단 뭔가 굉장히 논리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기는 한데 뭔소린지는 여전히 모르는 (...) 안습한 상황이 이어진다... (예를 들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가복음 4장 9절)같은 문장). 제일 유명한 케이스는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원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제19장 제25절). 만약 독자가 신이 땅 위에 우뚝 설 수 있다고 믿으면 이해하기 말그대로 예수 같은 인물이 상상되겠지만, 그런 신을 믿지 않는 독자라면 아리까리 할만한 구절.
정리하면, 욥기는 상당한 배경지식이 있는 고단수 독자를 위한 흥미로운 마녀사냥 스토리이며, 욥을 도와야할 이들이 돕기는 커녕 더 큰 고통을 주고, 욥은 그 고통에 절규에 가까운 저항을 하는 것이 포인트.
6. 트리비아[편집]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는 욥기 초반 부분을 오마주 형식 일종으로 가져왔다. 메피스토펠레스가 하나님에게 "파우스트 박사 유혹해볼깝쇼?" 하자 하나님이 "그래봐라, 그래봤자 파우스트는 안 넘어갈 것임." 하는 대목이 나온다.레비아탄과 베헤모스는 욥기에서 언급된 덕분에 네임드 거대한 괴수로서 엄청난 인지도를 얻었고 토마스 홉스가 국가의 본질/기원/조직/형태/발달 따위에 관한 이론을 주제로 저술한 <리바이어던>을 필두로 수많은 창작물에 등장하게 됐다.
대한민국의 플래시 애니메이터 북서니의 플래시 '찔러맨'에 등장하는 사람 중 하나인 스펜타는 욥의 일대기를 그대로 따왔다. 찔러 리메이크판은 기독교 성경구절을 토대로 재구성했기 때문. 하지만 스펜타는 지구의 신이 되었다. 참고로 북서니의 세계관에서 신은 절대자가 아니라 천사보다 조금 높은 수준으로 간주되고 있다. 작중 주인공인 찔러의 무기의 원래 주인들도 신인데 꼬리 형태의 채찍 주인인 라큄은 물의 신, 물을 검으로 바꾸는 장갑의 주인인 베알제불은 생명의 신 출신이지만, 베알제불은 친구인 라큄을 배신하고 그의 무기도 빼앗으려다 그에게 죽었고 그때의 피로 무기가 오염되었다고 한다.
미션 임파서블 영화 1편에서 욥의 철자가 Job(영어 발음은 조브)으로 '직업, 일'을 의미하는 단어와 철자가 같은데 발음은 약간 다르다는 점을 이용했다. 상관이 'Job'을 언급했을 때 이든 헌트(톰 크루즈)가 몇 시간 삽질하던 것은 Job을 '일'로 인식했다. 이 부분이 언역 시 매끄럽게 살려지지 못해 그냥 '욥'이라고 언급되어 관객 중에는 "'욥'이면 '욥기' 얘기 아냐? 이든이 바보인 듯."이라던 사람도 있었다.
이 같은 패러디는 스티브 잡스와도 엮이곤 하는데, 그 중 압권은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내놓은 것. 아예 제목을 대놓고 'The Book of Jobs'라고 썼다.예수 대신 스티브 잡스가 주인공이고, 성경책 대신 아이패드가 손에 들려 있는 모습을 그려 놓았다.
[1] 額子式構成;소설, 희곡 따위에서 이야기 속에 하나나 以上 이야기가 들어 있는 구성.[2] 엘리후 왈, "저는 여기 계신 올드비 님들에 비하면 뭣도 모르는 눈팅 뉴비지만 보자보자하니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성경이 워낙 점잖은 어조라서 안 느껴질 뿐이지 실제로 이런 식으로 말한다. 사실 욥과 친구놈들이 논쟁을 벌이는 모습 속에서도 굉장히 적나라한 인신공격이 많이 보인다.[3] 그래서인지 욥기라는 책 자체가 아예 이런 식으로 다수 저자에 의해 덧붙여져 가며 쓰였다는 발상도 간혹 있다.[4] 성경에서 나이나 외모등은 보통 그 인물의 지혜로움을 묘사한다. 즉, 제일 마지막에 나타나는 갑툭튀 엘리후는 제일 멍청한 인물. (...) 실제 발언도 멍청하다. (...)[5] 욥의 가축들이 도살되고 머슴들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심부름꾼이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라고 말한 이 구절은 소설모비 딕에서 피쿼드 호에서 생존한 사람이자 일인칭 주인공인 이스마엘이 살아남은 이야기를 담은 마지막 장의 시작이기도 하다.[6] 정말로 이렇게 말했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도 요지부동이군요? 하느님을 욕하고 죽으시오.'" (2장 9절)[7] 그래도 1주일간 울면서 같이 있던 것을 보면 좋은 친구는 맞다. 다만 고난에 대해서 "죄=고난", "No 죄=행복" 이라는 인과응보적인 이분법 사고를 가졌기에 키배를 할 수 밖에 없었다.[8] 욥기 7장 7-21절. 하지만 도입부의 서술과 자신의 증언으로는, 욥처럼 완전하고 진실되며 악행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은 지상에 다시 없다고 한다(…).[9] 이부분의 묘사는 에스겔서와 요한복음의 초반부와 일치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으니 주의깊게 살펴보길 권한다. 서로 시대 상황에 따라 묘하게 바뀐 내용일뿐 근본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동일하다.[10] 다만 이것은 생각할 거리는 되지만 중심 주제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때 하느님과 사탄이 욥을 대상으로 굳이 내기할 필요도 없고 후반에 하느님이 직접 강림하지 않고 심부름꾼인 천사가 욥을 섣부르게 훈계하고 욕한 욥의 친구들이 틀렸다고 알리며 고통받는 사람을 잘못 받아들였다고 질책하고 욥을 축복하는 정도로도 충분한 데다가 창조주인 하느님이 예언자로 고르지도 않은 일개 피조물(하느님도 신실하다고 인정한 욥은 그렇다고 쳐도 알맞지도 않은 쩌리들까지)들 앞에 친히 강림하여 "너희 나 알아? 너흰 나 몰라."하며 클라이막스에서 직접 일갈한 내용이 주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욥기의 주인공인 욥이 고통받고 절규하면서 질문을 던지는 대상이 누구인지 그 질문의 내용이 무엇인지 또한 사람이 신에게 할 근원이 되는 질문이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고려한다면 더욱 명확하다.[11] '그런데 당신의 말에 한마디 답변도 않으신다고 해서 어떻게 하느님을 비난할 수 있겠소?' (욥기 33장 13절)[12] 책에서 사용한 인물로는 욥[13] 이 욥이란 인물이 지칭하는 대상은 히브리 문학/비문학에서 사용되는 기법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마땅한 해석은 아쉽게도 없다.[14] 고난에 처했을때 마땅히 돕기 위해 나서야하는 자.[15] 나이가 많은자.[16] "네가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내탓 하지 마"란 식이 아니다.[17] 선민으로써의 자부심이 굉장한 유대교 랍비들은 전승되어온 해석 기법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공개하지 않는 다.[18] 이건 심지어 그나마 읽기 편한 서신들도 마찮가지. 가만 살펴보면 서신들에 나오는 내용이 묘사하는 그 무언가는 완전한 멕거핀. 신약 전체를 뒤저봐도 띄엄 띄엄 읽으면 안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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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7
Conquest: Sexual Violence and American Indian Genocide: Andrea Smith: 9780822360384: Amazon.com: Books
Conquest: Sexual Violence and American Indian Genocide: Andrea Smith: 9780822360384: Amazon.com: Books
(Julia Sudbury, editor of Global Lockdown: Race, Gender, and the Prison-Industrial Complex)
(Chrystos, artist, poet, and activist)
(Dylan Rodríguez, University of California, Riverside)
(Loretta Ross, coauthor of Undivided Rights: Women of Color Organize for Reproductive Justice and cofounder of Sister Song Women of Color Reproductive Health Collective)
Editorial Reviews
Review
"A must-read for everyone concerned about Native people and our Native world."
(Haunani-Kay Trask, author of From a Native Daughter: Colonialism and Sovereignty in Hawai'i)"Conquest is the book Aboriginal women have been waiting for. Andrea Smith has not only meticulously researched the place of rape and violence against Indigenous women in the colonial process, but she is the first to fully articulate the connections between violence against the earth, violence against women, and North America's terrible inclination toward war."
(Lee Maracle, author of I Am Woman: A Native Perspective on Sociology and Feminism)"Andrea Smith has no fear. She challenges conventional activist thinking about global and local, sexism and racism, genocide and imperialism. But what's more, in every chapter she tries to answer the key question: What is to be done? Conquest is unsettling, ambitious, brilliant, disturbing: read it, debate it, use it."
(Ruth Wilson Gilmore, The Graduate Center, City University of New York)"Andrea Smith brilliantly weaves together feminist explanations of violence against Native women, the historical data regarding colonialism and genocide, and a strong critique of the current responses to the gender violence against women of color . . . Conquest is one of the most significant contributions to the literature in Native Studies, feminist theory, and social movement theory in recent years."
(Beth E. Richie, author of Compelled to Crime: The Gender Entrapment of Battered Black Women)"Whether it is our reliance on the criminal justice system to protect women from violence or the legitimacy of the U.S. as a colonial nation-state, Andrea Smith's incisive and courageous analysis cuts through many of our accepted truths and reveals a new way of knowing rooted in Native women's histories of struggle. More than a call for action, this book provides sophisticated strategies and practical examples of organizing that simultaneously take on state and interpersonal violence.Conquest is a must-read not only for those concerned with violence against women and Native sovereignty, but also for antiracist, reproductive rights, environmental justice, antiprison, immigrant rights, and antiwar activists."
"Give thanks for the very great honor of listening to Andrea Smith. This book will burn a hole right through your mind with its accurate analysis and the concise compilation of information that makes it the first of its kind. Conquest is not only instructive, it is healing. I want every Indian I know to read it."
"Conquest radically rethinks the historical scope and dimensionality of 'sexual violence,' a historical vector of bodily domination that is too often reduced to universalizing—hence racist—narratives of gendered oppression and resistance. Offering a breathtaking genealogy of white supremacist genocide and colonization in North America, this book provides a theoretical model that speaks urgently to a broad continuum of political and intellectual traditions. In this incisive and stunningly comprehensive work, we learn how the proliferation of sexual violence as a normalized feature of modern Euro-American patriarchies is inseparable from violence against Indigenous women, and women of color. InConquest, Andrea Smith has presented us with an epochal challenge, one that should productively disrupt and perhaps transform our visions of liberation and radical freedom."
"Conquest is not for those who flinch from an honest examination of white supremacist history, or who shy away from today's controversies in the reproductive health and anti-violence movements. This book is a tough, thoughtful, and passionate analysis of the colonization of America and the resistance of Indigenous women. Andrea Smith is one of this country's premiere intellectuals and a good old-fashioned organizer—a rare combination that illuminates her praxis and gift to social justice movement building in the 21st century."
(Loretta Ross, coauthor of Undivided Rights: Women of Color Organize for Reproductive Justice and cofounder of Sister Song Women of Color Reproductive Health Collective)
About the Author
Andrea Smith is Associate Professor of Ethnic Studies and Media and Cultural Studies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Riverside. She is the author of Native Americans and the Christian Right: The Gendered Politics of Unlikely Alliances and coeditor of Theorizing Native Studies, both also published by Duke University Press.
Native Wisdom for White Minds: Anne Wilson Schaef: 9780345394057: Amazon.com: Books
Native Wisdom for White Minds: Anne Wilson Schaef
From the Publisher
From the world-renowned author of such international bestsellers as MEDITATIONS FOR WOMEN WHO DO TOO MUCH (over 2 million copies in print) and MEDITATIONS FOR PEOPLE WHO (MAY) WORRY TOO MUCH, Anne Wilson Schaef has crafted a meditation book based on ancient wisdom.
Wilson Schaef shares the richness of truth poured out to her by Native Americans, Australian Aboriginals, Africans, Maori, and others who still honor the old ways. In daily meditations, she gives us the Elders' own words about fear, time, possessiveness, family, work, loneliness, change, intimacy, and many other subjects, along with her own personal reflections. The result is a wonderful book of meditations and a healing, provocative, deeply spiritual companion.
Be sure to look for Anne Wilson Schaef's new book, LIVING IN PROCESS: BASIC TRUTHS FOR LIVING THE PATH OF THE SOUL available in November of 1998. In it, Anne explores her evolutionary action philosophy that guides and informs all of her healing work.
From the Inside Flap
You don't have to be white to have a white mind.
What is a white mind? As Anne Wilson Schaef learned during her travels throughout the world among Native Peoples, anyone raised in modern Western society or by Western culture can have a white mind. White minds are trapped in a closed system of thinking that sees life in black and white, either/or terms; they are hierarchical and mechanistic; they see nature as a force to be tamed and people as objects to be controlled with no regard for the future.
This worldview is not shared by most Native Peoples, and in this provocative book, Anne Wilson Schaef shares the richness poured out to her by Native Americans, Aborigines, Africans, Maoris, and others. In the words of Native Peoples themselves, we come to understand Native ideas about our earth, spirituality, family, work, loneliness, and change. For in every area of our lives we have the capacity to transcend our white minds--we simply need to listen with open hearts and open minds to other voices, other perceptions, other cultures.
Anne Wilson Schaef often heard Elders from a wide variety of Native Peoples say, "Our legends tell us that a time will come when our wisdom and way of living will be necessary to save the planet, and that time is now." Anyone ready to move from feeling separate to a profound sense of connectedness, from the personal to the global, will find the path in this mind-expanding, deeply spiritual book.
From the Publisher
From the world-renowned author of such international bestsellers as MEDITATIONS FOR WOMEN WHO DO TOO MUCH (over 2 million copies in print) and MEDITATIONS FOR PEOPLE WHO (MAY) WORRY TOO MUCH, Anne Wilson Schaef has crafted a meditation book based on ancient wisdom.
Wilson Schaef shares the richness of truth poured out to her by Native Americans, Australian Aboriginals, Africans, Maori, and others who still honor the old ways. In daily meditations, she gives us the Elders' own words about fear, time, possessiveness, family, work, loneliness, change, intimacy, and many other subjects, along with her own personal reflections. The result is a wonderful book of meditations and a healing, provocative, deeply spiritual companion.
Be sure to look for Anne Wilson Schaef's new book, LIVING IN PROCESS: BASIC TRUTHS FOR LIVING THE PATH OF THE SOUL available in November of 1998. In it, Anne explores her evolutionary action philosophy that guides and informs all of her healing work.
From the Inside Flap
You don't have to be white to have a white mind.
What is a white mind? As Anne Wilson Schaef learned during her travels throughout the world among Native Peoples, anyone raised in modern Western society or by Western culture can have a white mind. White minds are trapped in a closed system of thinking that sees life in black and white, either/or terms; they are hierarchical and mechanistic; they see nature as a force to be tamed and people as objects to be controlled with no regard for the future.
This worldview is not shared by most Native Peoples, and in this provocative book, Anne Wilson Schaef shares the richness poured out to her by Native Americans, Aborigines, Africans, Maoris, and others. In the words of Native Peoples themselves, we come to understand Native ideas about our earth, spirituality, family, work, loneliness, and change. For in every area of our lives we have the capacity to transcend our white minds--we simply need to listen with open hearts and open minds to other voices, other perceptions, other cultures.
Anne Wilson Schaef often heard Elders from a wide variety of Native Peoples say, "Our legends tell us that a time will come when our wisdom and way of living will be necessary to save the planet, and that time is now." Anyone ready to move from feeling separate to a profound sense of connectedness, from the personal to the global, will find the path in this mind-expanding, deeply spiritual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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