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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0

원불교와 심리학에서 일기기재의 유사성 - 한울안신문 크리스 크레겔로

원불교와 심리학에서 일기기재의 유사성 - 한울안신문



원불교와 심리학에서 일기기재의 유사성

크리스 크레겔로
승인 2020.03.18 14:28
호수 1163

원불교 마음챙김3

원불교에서의 수행 중 중요한 한 가지는 일기를 기재하는 것이다. 이 일기법은 형식적이고 정련화된 수행법이며, 통찰과 지혜를 개발시킨다는 면에서 다른 수행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기를 어떻게 기재하는지는 교전에 잘 설명되어 있다. 선이나 다른 수행과 같이 일기법 또한 일기를 기재하는 습관을 일상화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매일 일기 쓰는 습관을 갖기 위해 처음에는 잘 시작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그 횟수가 줄고 만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일기 쓰는 습관을 계속 유지시키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일기법은 우리들의 반복되는 일상을 유지시켜 주기도 하지만, 반조와 자기개발에 굉장한 힘을 주는 공부이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할 때, 정말 쓸 것이 별로 없었고, 대체로 내가 했던 일이나 내 주위에 일어난 사실들에 대해 쓰면서 마무리 짓곤 했다. 여러분도 계속 그렇게 써 나가다보면, 마침내 변화라고 여겼던 몇 가지 에피소드 (예를 들면 당신이 어떤 환경에 어떻게 반응했고, 왜 그렇게 느꼈는지에 대해서)에 대해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심리치료에서 일기를 쓰는 것은 종종 상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 일기의 활용은 오랫동안 좀 줄어드는 기세도 있었으나 다시 더 활발히 사용되기 시작하는 추세이다. 기초 심리단계에서 일기는 어떤 증상이 일어날 경우 상세히 받아적어 모니터링하는 데 사용되곤 했다. 일기 기재는 당신의 생각을 분석하는 데 또한 도움을 주고 일련의 영감을 안겨준다.

또 다른 일기 기재의 장점은 나의 생각을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이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정성을 들여 글을 쓰려 할 때, 결과적으로 우리의 생각은 종종 더 명확해짐을 보게 된다. 이또한 심리치료에 유용히 사용돼 왔다. 아마 여러분도 이러한 일기법을 사용하다보면 삶이 더 발전적으로 나아감을 알게 되고, 향후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내가 설명한 것보다 더 많은 장점들이 있다. 일기를 기재하는 것이 문제를 다루거나 당장 눈앞에 직면한 변화에 도움을 주는 것만 은 아니다. 지속적인 일기의 기재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인식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당신 자신뿐 아니라 당신이 속한 세상도 지혜롭게 살아가는 능력을 심어준다. 심지어 당신이 현재 자주 하는 일뿐 아니라, 결국 세상을 보는 자세까지도 변하게 한다.

당신이 만약 사진을 찍고 싶다면, 산책을 하면서 습관적으로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기회를 가질 것이다. 시를 쓰고 싶다면, 어떠한 감정이 일어날 때 습관적으로 시에 대한 영감을 받으려 할 것이다.

나는 이를 사진작가와 시인의 ‘마음설정’이라 칭한다. 즉, 습관적으로 일기를 기재하는 것은 '지혜로운 마음설정'을 본인이 기획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일기기재를 자주한다는 것은, 당신이 자동적으로 일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모든 삶의 상황에서 무엇을 기재할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습관화 된 일기 수행으로, 당신 자신이 점점 더 많은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일기법 수행을 통하여 당신의 생각은 점점 더 구체화되어 안정적이 된다. 당신은 전에 하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인식하기 시작할 것이고, 점점 더 궁금해질 것이다. 일기법을 통해 지혜를 개발시키는 것이 곧 당신 삶의 새로운 습관이 될 것이다!

원선일(크리스 크레겔로)
오클랜드교당
예비원무



[원문]

Similarities between keeping a diary in Won Buddhism and Psychology

One important practice in Won Buddhism is that of keeping a diary. I deliberately call this a practice as it has a certain formal and disciplined aspect, and it goes hand in hand with other types of practices that are meant to develop insight and wisdom. The instructions on how to keep a diary are presented in the kyojeon, and like many other practices, such as meditation, it usually takes a while for people to establish diary writing as a habit. Like any habit, they need to be nourished, and we might start writing the diary frequently but then go through a period where we are doing it less often. However, it is important to keep trying to keep it up. Not only does it help us set up a daily routine, but it is also a powerful tool for reflection and self-development.

When I first start writing a diary regularly, I might find that there is little to write, and I end up writing largely about facts such as what I did and what happened around me. If you keep going with it, you will eventually start to write about some episodes that you found challenging, such as how you reacted to certain circumstances or why you felt a particular way. These give you an opportunity to re-live some of the events and see them from a distance. This is particularly the case when you write them down after a few hours have passed, when you had some time to calm down. It is also a good way to practise compassion, as you might try to forgive yourself and others, and try to understand why things happened the way they did.

In psychological therapy, diary writing has often been used to help people. For a while, it has been applied less, but it is now starting to have a comeback. At the most basic level, diaries can be used for monitoring such as noting down when symptoms occur. For example, you could write down the situations when you get angry or how often you had some distressing thoughts. In addition to this, however, diary writing can also help you analyse your thoughts (like a mirror for your thoughts) and give you insight. This is when you write short stories and try to explain why you may have behaved in a certain way. It has also been used to help people take on different perspectives (try to imagine you are somebody else).

One other advantage of diary writing is that it helps me structure and organise my ideas. When we speak, we often change topics quickly, and quite often we don’t even finish our sentences. When we write, however, we need to make a focused effort, and our thoughts often become clearer as a result. This can also be useful in therapy. When the client then sees a psychologist, they already have their concerns structured and grouped together rather than giving all information in no particular order. You can also see progress that you have made and thus use that information to make future goals.

However, there are more benefits than what I have just described. Writing a diary isn’t only about helping you deal with problems and challenges that you have right now. A regular practice of diary keeping also automatically changes your perception and grows more wisdom, starting with yourself and including more and more parts of the world. What you do often, also eventually affects how you see the world. If you are an architect and you travel to a new country, you look more at buildings. If you are a fashion designer, you will look more at people’s clothes. If you are a parent, you look at how other people interact with their children. We can’t help that – it is natural. But this also applies to our hobbies and habits. If you like to take photos, then you see opportunities for beautiful photos when you go for a walk. If you like to write poetry, you see inspiration for poems when you have certain emotions. I call this the photographer’s or poet’s mindset. In my opinion, regular diary writing gives you a “wise mindset” because, if you do it often, you automatically start thinking about your diary and what to write in everyday life situations. You might start carrying a little notebook with you at all times to write something down, or you might use your smartphone.

With a regular diary practice, you will see great changes over time. Gradually, your thoughts become more sophisticated and subtle. You will start to notice things that you haven’t before, and you become more curious. Developing wisdom then becomes your new habit.

마음공부로 삶의 문제 해결하자 < 교화 < 뉴스 < 기사본문 - 원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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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로 삶의 문제 해결하자

기자명
입력 2004.03.23
호수 1096

▲ 김보명 교무

원기100년, 이제 14년 남은 역사적인 시점 앞에 우리들은 놓여있다. 앞으로 14년 후 이 세상과 우리 원불교는 어떻게 변화해 있을까? 그 변화의 흐름을 우리는 어떻게 지향해나가야 할까? 그리고, 그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대종사님은 역사 흐름의 두 물줄기를 물질개벽과 정신개벽으로 말씀하셨다. 그리고, 종교로서 원불교가 담당해야 할 부분을 정신개벽으로 파악하시고 그 작업을 착수하신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다.

세상과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의 주체가 되는 것은 마음이다. 한 개인에 있어서도 결국 마음이 그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다.

개인과 세상과 역사의 주체가 되는 이 마음을 공부해서 개벽의 소식을 이뤄나가는데 개인과 세계의 구원이 있는 것이다.

우리 회상은 교화와 교육 자선 등 전 분야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그 모든 사업에 정신개벽이라는 기조가 생략되어 있다면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인 것 같다.

만법을 통하여 한마음 밝히자는 대종사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앞으로 내가 어느 분야에서 활동을 하건 그 일을 통해 내 마음을 공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올 해 새로운 임지에 부임해서 청소년들과 다음 두 가지로 공부하자고 하였다. 하나는 ‘교당과 내 현실생활을 하나로’이고, 하나는 ‘마음공부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교화현장을 경험하면서 절실히 느낀 것은 마음공부와 현실생활과의 연결 작업이다.

대종사님은 정신개벽이라는 대명제를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해 실현하시고자 하셨는데, 시대가 발달할수록 진실로 자기와 직접 관계가 있고 사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라야 수용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마음공부와 자기와의 관계를 쉽게 알도록 하고 그 공부의 형식은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길을 제시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공부 프로그램의 시대화 대중화 생활화가 필요함을 절감한다. 교법이라는 하드웨어에 ‘마음공부의 효과적인 소프트웨어’를 그 시대와 구성원들에게 적절하게 가공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 점은 후진으로서 참으로 감사한 부분이다.

원기100년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이요 숙제이다. 그 길을 정신개벽이라는 대명제 아래, 마음공부(대종사님의 본의에 가장 부합되는, 시대와 대중과 생활에 가장 적절한)에 대한 프로그램화와 실질적인 훈련으로 인류의 정신을 개벽하여 광대무량한 낙원을 이루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도봉교당 보좌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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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 나는 누구인가?/내가 바로서야 행복합니다/소유인가 마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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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 삶에 자신이 없고 외로움이 밀려올 때 꼭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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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 윤회 전생 인과는 있을까요?/윤회와 마음공부/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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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와 전생, 인과는 있을까요? 
인생이란 한 번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육신은 변함에 따라 흩어지지만
윤회 전생 인과의 주체가 되는 
영식 즉, 마음은 영생을 보증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마음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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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카르마 운명 업보 마음 총정리/카르마를 경영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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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감사와 참회 소망 다짐의 기도 명상 / 감사하고 참회하며 원하고 바랍니다 /2020년 9월의 기도 _ 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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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긍정과 감사의 올바른 사용법/긍정_감사도 잘못하면 독이 된다/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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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누구나 인생에 고비는 온다/조급하지 말고 분발하며 나아가자/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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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너그러운 사람/수용과 소통/대인관계/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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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대인관계/자기로부터의 혁명/자기변화/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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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 마음공부 하는 사람의 꿈_서원/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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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삶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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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려면/있는 그대로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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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마음공부] 그남자 그여자가 만나는 이유/부부_남녀 갈등의 원인과 해결/진정한 사랑/결점인 채로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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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행복의 비밀/행복을 위한 세가지 비밀/근심 걱정없이 사는 방법/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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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마음공부] 힘power을 키웁시다/원불교 자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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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단단한 자존감을 얻으려면/내가 내 인생의 주체가 되는 길/정신수양/원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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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마음이 웃으면 인생이 웃는다/마음과 인생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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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대안학교의 마음공부[교육과 깨달음-변경환]

매주 목요일 지평선고등학교에서는 교사 마음공부가 있다. 학생들도 매일 마음일기를 쓰면서 일주일에 두 시간씩 교장 선생님과 마음공부를 한다.

우리나라에 원불교 특성화 대안학교들은 8개가 넘는다. 그리고 모든 원불교 대안학교는 마음공부를 정규 교육과정으로 운영한다. 그래서 이천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중고등학생 시절을 마음공부를 통해 마음일기를 쓰면서 졸업을 한다.

원불교 마음공부는 종교적 강압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마음공부의 순서를 잠시 쫓아보자.

1. 매사 모든 순간에 경계를 알아차린다.
2. ‘앗! 경계구나!’ 마음의 브레이크를 밟는다.
3. 그 상태에서 내 마음을 바라본다.
4. 상대 마음도 헤아려보기를 한다.
5. 좋은 해결방법을 연구한다.
6. 자성의 정(定)을 세운다. (마음 결정하기)
7. 행동으로 옮긴다.


이런 순서에 따라 마음일기를 쓰는데, 순간의 경계를 잘 잡아서 ‘나의 마음을 바라보고, 너를 헤아리고, 나를 바꾸는 노력’으로 마음공부를 한다. 다음은 부끄럽지만 필자의 마음일기다.

청소 시간이 되었다. 나는 1층 복도 청소를 지도하러 갔는데 OO만 청소를 하고 있었다. △△도 함께 청소를 해야 하는데 청소구역에 안 보여 OO에게 물었다.

“△△는 어디에 갔니?” “아직 안 왔어요. △△는 가끔 늦어요.”

OO의 말을 들으면서 고요했던 내 마음에 경계가 생겨난다. ‘아! 경계다. △△는 왜 아직 안 왔을까? 청소시간도 벌써 10분이나 지나고 있는데…….’ 복잡해진 마음으로 학교 곳곳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복도 반대편에서 막 뛰어들어오는 △△를 보았다. 복잡한 내 마음, 청소시간에 늦게 오는 아이의 행동, 자신의 일에 늑장을 부리는 모습에 화가 났고 내 마음에 경계가 생겼음이 보인다.

“△△야, 청소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이렇게 늦게 오니? 그렇게 되면 OO가 혼자 청소하니 더 힘들지 않을까?”

내 마음에 경계를 가진 상태로 아이에게 물었는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선생님, 바로 앞 시간이 체육시간이었는데 □□가 다쳐서 응급처치를 도와주고 오느라 늦었어요.”

그런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내 마음에 경계가 차분히 가라앉고 있음이 느껴진다. △△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보려는 노력이 부족했음도 보인다.

“그랬구나. 내가 미처 네 상황을 잘 몰랐어. 그냥 다그치기만 해서 미안하네. 늦게라도 청소를 하러 왔으니 함께 하자. OO가 혼자서 거의 청소를 다 했는데 OO에게도 상황을 설명해주면 좋겠다.” (이하 생략) 2010. OO. OO.

마음공부는 원래의 평정했던 마음이 경계를 따라 요란해지고 이를 바로 깨달아 은혜를 찾고 서로에게 은혜를 심는 과정이다. △△의 청소시간 늦는 행동을 보면서 경계가 생긴 나의 마음을 보면서 왜 그랬는지 다시 되짚어보는 마음일기가 되었다. 그러기에 매일 매 순간 유무념(有無念)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마음공부는 가르친다.

물론 이 마음공부는 원불교 법전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길이 되고 있다. 졸업을 해서도 저마다 힘에 겨울 때 마음공부를 다시 찾는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공부가 아이들에게 몸으로 배어있음이 느껴진다.

원불교 대안학교에는 마음공부가 있다. 그럼 우리 가톨릭교회에는 무엇이 있을까?

머리에 선뜻 떠오르는 것은 무지개원리(차동엽 신부), 청소년성장프로그램(양업고), PESS(논산대건고) 등이 있다. 아마도 가톨릭교회 역시 곳곳에서 펼쳐지는 영성 및 생활프로그램들이 다양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다음 차례는 무엇이 있을까? 예를 들어 ‘무지개원리’를 생활지도로 삼는 대안학교들이 생겨나면 어떨까? 아니면 가톨릭 학교와 본당 주일학교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더욱 활성화 시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지난여름에 논산대건고등학교에서 PESS 교사 연수에 참가했는데 만일 가톨릭 대안학교에서 이런 귀한 프로그램들을 더욱 활성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오늘날 원불교 대안학교의 마음공부는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보편화하고 있다. 가톨릭 교육자들에게 묻고 싶다.

“무엇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변경환(베드로)
지평선고등학교(특성화 대안학교) 교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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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우리 시대의 마음공부

우리 시대의 마음공부  
권도갑 (지은이)열음사2007-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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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쪽152*223mm (A5신)322gISBN : 978897427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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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원광대학 교당, 교정원 문화부, 서울 도봉교당 교무를 역임한 권도갑씨가 자신이 개발한 마음공부 프로그램의 내용을 읽기 쉽게 써놓은 일종의 에세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의식 아래 강박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할 것을 권하고 있다.
목차
1장_참마음과 만나기
마음공부란 무엇인가 / 분별없는 마음을 찾아서 / 생각은 선택할 수 있다 / 생각은 사실이 아니다1 / 생각은 사실이 아니다2 / 마음의 장난 / 마음의 법칙 / 나를 들여다보라 / 받아들이면 사라진다 /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 우리 시대의 마음공부 / 최고의 수행, 웃음 / 선 수행과 참마음 / 이것이 나입니다 / 나를 살피는 이야기 1: 내가 만나는 사람은……

2장_화 바라보기
화의 원인은 저항에 있다 / 분노는 애타는 외침 / 화 잘 표현하는 법 / 마음을 깨끗이 내놓자 / 행복을 발견하는 길 / 화를 내지 않는 능력 / 나를 살피는 이야기 2: 지금이 최고입니다

3장_인연 간의 만남 함께하기
관점 내려놓기 / 억지로 이해하는 것은 위험하다 / 경계는 소중한 거울이다 / 분별의 안경을 쓰고 / 만남의 고유한 법칙 / 나 자신과의 만남 / 행복은 지금, 바로 여기에 / 상대와 하나되기 / 나를 살피는 이야기 3: 가장 좋은 것

4장_가족과 하나되기
가장 가까운 거울 / 내 부모는 내가 선택한다 / 순임금의 대효大孝 / 내 인생 최고의 인연 / 부부의 만남 속에 감춰진 비밀 /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 모두가 상생의 인연 / 나를 살피는 이야기 4: 자기 발견과 책임

5장_마음의 자유
모든 것은 내가 만든다 / 최고의 마음먹기 / 어느 것도 나쁜 것은 없다 /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마음밭에 심어야 할 씨앗 / 모두가 부처입니다 / 더불어 사는 삶 / 나를 살피는 이야기 5: 완전한 만족

6장_건강한 몸과 마음을 찾아서
내 몸을 믿어주면 / 아픔은 곧 치유 / ‘숨’은 사랑이고 생명이다 / 몸과 대화하는 법 / 죽음에 대한 이해 / 생사에 대한 소중한 법문 / 나를 살피는 이야기 6: 나는 행복합니다

7장 실천_온 삶 마음공부
마음 성장 프로그램 / 참나 발견하기 / 과거 정리 / 4개의 창을 통한 온 삶 마음공부 / 온 삶 마음공부 사례

책속에서
현실 경계는 나를 괴롭힐 힘이 없습니다. 다만 나의 분별심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나의 분별만 내려놓으면 됩니다. 화가 날 대 이를 수용하여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발견하면, 나는 깨어나고 마음속에 샇여있는 화는 흔적없이 정리됩니다.-p75 중에서

두려움이란 곧 불신입니다. 처음에는 약한 감기부터 시작해보십시오. 그러면 정말 감기는 내 몸에 좋은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가래가 끓고 콧물이 나는 것은 몸이 회복되는 아주 좋은 증상입니다. 질병은 바로 건강입니다. 이 둘은 나눌 수가 없습니다.-p172 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권도갑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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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교무. 원광디지털대학 외래교수(마음공부방법론 강의). 현장 교화를 하면서 국내외 수많은 수행법을 섭렵하고, T-그룹 훈련 지도자와 아바타 마스터로 활동했다. 사회단체와 마음학교, 평생대학원, 기업과 여러 방송 매체(KBS <아름다운 사람들>, <부산 아침마당> 등)에서 마음공부에 대한 안내와 특강을 해왔다. 현재는 30여 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계발한 마음공부 프로그램 ‘온삶 마음일기’를 통해 마음치유사의 길을 걷고 있다. 도반들이 모여 마음공부를 하는 온삶 마음공부방과, 1박2일짜리 <행복한 가족 캠프>를 매달 운영한다.

인터넷 다음카페(cafe.daum.net/maumstudys)를 통해서도 상담 및 마음훈련과 인간관계 갈등의 치유에 힘쓰고 있다. 저서에 《행복을 여는 마음공부》, 《지금까지 나를 괴롭힌 사람은 없다》, 《마음아 안녕》, 《우리시대의 마음공부》 등이 있다.

신간 《당신은 나의 거울입니다》는 권 교무 자신과 모두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온삶 마음공부’는 현실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비춰주는 부모를 비롯한 여러 거울들을 통해 깨어나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그리하여 어두운 마음을 밝히고 마음의 자유를 얻어, 온전하고 행복하게 사는 길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접기
최근작 : <당신은 나의 거울입니다>,<우리 시대의 마음공부>,<지금까지 나를 괴롭힌 사람은 없다> … 총 6종 (모두보기)
권도갑(지은이)의 말
마음공부는 마음이 깨어나는 일에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지금 여기에서 최고의 마음을 먹도록 합니다. 그러면 누구나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세상을 살아갈 것입니다. 애정을 가지고 다가선다면 이 책은 독자 여러분에게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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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편안하게 하는책. 관련된 종교랑 상관없이 읽어보면 좋은책입니다.  구매
magnum21 2008-12-0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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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아직 읽지 않았어요...알기쉽게 편한책이라고 하네요  구매
장미빛인생 2008-08-2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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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아, 안녕! 새창으로 보기
언제부턴가 불교방송에 주파수를 맞추어두고 시간이 되면 즐겨 듣고 있다. 난 불교 신자가 아니지만, 찬찬히 들려주는 불경 혹은 말씀들이 하루종일 요동친 마음을 정돈시켜주는 효과를 내고 있기에, 달리 명상하거나 요가를 하거나 적극적인 행위를 못하는 나같은 게으름쟁이에겐 딱 맞는다.

방송 멘트 중 자주 나오는 단어가 '마음공부'인데, 그래서 이 책 제목을 보고 마음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끌린 책을 읽으면서 의외였던 점은, 편하게 그저 마음 다잡는 법 쯤으로 생각했던 마음공부가 원불교에서는 어떤 체계를 이룬 적극적인 행동방식을 말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마음공부가 복잡하거나 어떤 절차를 갖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마음이 흔들릴 때, 화가 나서 난리를 부릴 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주시하는 법을 일깨워주는데, 그 결론은 "아무도 나를 괴롭힌 사람은 없다"는 것. 언뜻 수용하기 힘든 명제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정말 신기하게도 모든 갈등이 사라진다.

몇 가지 개인적인 사례를 놓고 실험해보고 있는 중이다. 이게 성공한다면 나는 책 한 권으로 일상의 고통을 덜어내고 지금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꾸려갈 수 있으리라. 노력해봐야지. 어쨌거나 지금 내 앞의 사람이 최고의 사람이고, 내가 있는 직장이 최고의 일터이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최상의 일이라는 데, 무엇을 두려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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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lover 2007-07-09 공감(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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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마음공부를 읽고 새창으로 보기
수행효과에 관심이 있어 그동안 기공, 명상 등 각종 수행서들을 많이 읽게되었습니다.

우리시대의 마음공부는 비교적 쉽게 잘 읽히는 책입니다.  마음공부의 원리와 방법에 대한 설명

과 사례들을 들고 구체적인 실천방안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다른 수행법이나 마음공부와는 달리 경계는 나의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역활을 할 뿐 나

괴롭힐 힘은 없다고 밝히고 이를 실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사례들을

보여 줌으로써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실천해 보고 많은 도움이 되었

습니다.

가족관계에서, 직장 인간관계 등 대인관계에서 과거의 아픈 기억으로 고통을 받는 분 등 마음의

상처가 있는 분들 마음공부나 수행에 한계를 느끼는 분들께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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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aoo 2007-07-06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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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없애는 공부 새창으로 보기 구매
알고 보면 생각이란 욕심이나 계산과 연관되어 있을 때가 많다.
손해보지 않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진심을 따로 헤아리기 위해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내 맘대로 할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안보이는 것을 굳이 찾아서 보기 위해서, 내가 아닌 다른 어떤 누가 되기 위해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한다고 하는 생각들이 오히려 나 자신을 괴롭히고 상처를 준다.
저자는 수년 동안 원불교 교무로 봉직해오며 마음 공부 방법론을 강의해왔다고 하는데, 나는 원불교에 대해 아는바 거의 없고, 저자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었으나 어느 날 일간신문에 이 분의 인터뷰 기사가 난 것을 보고 이 책을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
생각을 놓고, 분별을 놓고, 일상 생활에서 늘 자기를 살피고 깨어나게 함으로써 삶의 문제를 자신에게서 찾고 해결하라고 가르친다. 문제는 상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에 있는 것이니 내 마음을 바로 사용하도록 마음 공부를 하라고 한다. 본디 사람의 마음은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으며, 선과 악을 구별하려는 분별에서 자유로와지라고.
마음에 안드는 어떤 것을 애써 극복하려고 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비로소 그것에서 자유로와진다니.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나를 진실로 사랑하며 밝게 살아가는 길이라니.

자신을 미워하고 싫어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부단히 무언가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나를 싫어하는 것처럼 상대의 문제점을 보고 강하게 혐오합니다. 그의 허물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가 어떤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를 통해서 나를 보면 그의 모습이 바로 나 자신의 모습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47쪽)
언젠가 배우자 문제로 고민하는 친구에게 내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배우자를 가졌다는 것의 의의는, 내가 어렵고 힘들 때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상대를 가졌다라기 보다는, 그를 통해 내 마음 수양의 기회를 부여받았음이라고. 계획하지 않았던 말이 내 입에서 저절로 나와 나도 자꾸 돌이켜 보는 말이다. 배우자의 못마땅한 점은 바로 내가 자신에게 못마땅하던 점이 부각되어 보이는 것이라는 본문중의 말과 통하는 것일까.
내가 최고이며, 지금 내 앞에 일어나는 어떤 일도, 어떤 사람도 나에게 가장 좋은 일, 좋은 사람이고, 주어진 환경 또한 내게 가장 좋은 것임을 인정하고 자각하는 것. 중요한 것은 그 일, 사람, 환경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니까 말이다.

이전에 읽은 책, '관(觀)', 그리고 '지금도 쓸쓸하냐'를 여러 번 떠올렸다.
나는 나로서 살아갈 뿐이다. 지난 일을 괴로워하지 않고, 오지 않은 앞날을 미리 걱정하지 않으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고 조바심 내지 않으며, 오늘을 나로써, 내 식대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살 뿐이다.
또 한번의 가르침.
나는 아직도 이런 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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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4-10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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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 새창으로 보기 구매
어떤 글이든 내게 맞는 책이 있고 그렇지 못한 책이 있다.

즉 공감하는 부분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책을 보면서 전혀 내 의견을 삽입하지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앍어내렸다.

그건 모두 공감했다는 뜻이다.

처음 마음공부를 시작하는 분들에게는 약간 공감하지 못할 부분도 있다. 뭐 이런게 가능할까 의아해하기 때문이다. 선으로 읽는 금강경을 몇번씩읽고 마음공부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좋다. 

모든 이치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분별하지 않는 것이다. 허나 세상사는 분별을 잘해야 성공한다.

문제가 있음에도 그 문제를 문제로 보지않고 존재가치의 소중함을 깨달으면 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 이게 마음공부의 길잡이가 아닐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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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2008-01-1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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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어떻게 다룰지 알려주는 소중한 책 새창으로 보기 구매
마음이라는 놈이 무엇인지?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마음이라는 놈으로 마음을 바라보니

내 맘속에 그려지는 마음은 참 편하게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만들어버리면서  그 마음이 본 마음인냥 행세합니다.

상처주고 상처받으면서 그것이 제대로 사는냥 착각하게 만듭니다.

이 책은 그런 마음이란 놈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서 사라지는지, 어떻게 마음이 우리의 근원인척 행세하는지 뿐만 아니라,

왜 현재 내가 이런 저런 고민속에 빠져 있는지를 되돌아 보게 해줍니다.

물론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이 원불교의 마음공부와 관련이 있어서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만,  책을 읽고나면 그런 마음이 왜 일어나는지도 살펴볼 수 있게 해줍니다.

제 경우엔 책의 매력에 빠져서 결국 책에 소개된 마음공부 카페에도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한가지 방편으로서 쉽고도 강력한 실천법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마음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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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바람 2007-08-2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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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바람 일으킨 ‘원불교의 아난 존자’ : 종교 : 사회 : 뉴스 : 한겨레

‘마음공부’ 바람 일으킨 ‘원불교의 아난 존자’ : 종교 : 사회 : 뉴스 : 한겨레


‘마음공부’ 바람 일으킨 ‘원불교의 아난 존자’

등록 :2019-10-06 
원불교 장산 황직평종사 열반


원불교 장산 황직평 종사원불교 마음공부 교령으로서 ‘마음공부’ 바람을 불러일으킨 원불교 장산 황직평 종사가 6일 오전 5시20분 전북 익산 원광효도요양병원에서 열반했다. 세수 88, 법랍 62년6개월.

장산 종사는 원불교 3대 종법사인 대산 김대거 종사를 33년간 시봉해 원불교 내에선 평생 부처님 곁을 지킨 아난 존자에 비견된다.

함경북도 청진 출생인 고인은 한국전쟁 당시 소년병으로 입대해 수없이 사선을 넘나들며 인생과 생사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끝에 제대 뒤, 1954년 원불교에 입교해 수계농원 간사를 시작으로 교무의 길을 걸었다.


고인은 1966년 종법사 부속실인 법무실 교무로 부임 할 때 당시 종법사인 대산 종사가 “첫째, 교단적 화합을 도모하는데 주력하라. 둘째, 너는 앞으로 한없는 시비가 있을 것이니 바보가 되어 살아라. 셋째, 어떤 경계가 오더라도 여래위하고 바꾸지 말라.”고 한 당부를 잊지 않고 33년을 대산종사를 모시고 봉직했다. 고인은 독신인 정남(貞男)으로 평생을 수도에 전념하면서 수차례 건강상의 위기를 겪었으나 힘든 고비에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도반 교무들의 도움이 없이 자력으로 병마를 이겨냈다.

특히 그는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대산 종사의 가르침을 받들어 마음공부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그의 지도로 마음공부를 배운 이들이 원불교가 만든 전남 함평 영산성지고와 경북 경주 화랑고, 경남 합천 원경고 등에서 학생들에게 마음공부를 지도해 큰 변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인은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던 1982부터는 역대 종법사들의 가르침을 기도문으로 만들어 후진들에게 전하였으며, 그 기도문으로 열반에 이르기까지 매일 기도를 올렸다.

장례는 원불교 교단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전북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 향적당이다. 발인은 8일 오전 10시30분 원불교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 진행한다. 장지는 익산시 왕궁면 원불교 영모묘원이다. (063)850-3365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912195.html#csidx5a7f80c1220d77daa655665cc2eac54

원불교의 마음공부

원불교의 마음공부



원불교의 마음공부
사건과 신학 2019. 8. 28. 15:33





원불교의 마음공부

- 원익선(원불교 교무, 원광대학교 정역원)



원불교의 기원은 1916년 소태산 박중빈(少太山 朴重彬, 1891-1943)의 깨달음이다. 1924년에는 익산에 성불제중(成佛濟衆, 부처가 되어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것)을 향한 교단을 창립하였다. 그리고 해방 후인 1948년 원불교로 개명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원불교는 개혁불교이자 현대불교다. 일제의 억압으로 암울했던 시기에 박중빈은 자수자각(自修自覺, 스스로 수행하여 스스로 깨달음을 얻음)하여 민족의 앞날을 희망으로 비추고,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슬로건을 내걸어 인류 문명의 미래를 바르게 인도하고자 하였다. 그 방법, 즉 인류를 낙원 세계로 인도하고자 하는 길은 다름이 아닌 마음공부다.

박중빈은 “모든 학술을 공부하되 쓰는 데에 들어가서는 끊임이 있으나, 마음 작용하는 공부를 하여 놓으면 일분 일각도 끊임이 없이 활용되나니, 그러므로 마음공부는 모든 공부의 근본이 되나니라”(『대종경(大宗經)』 제11요훈품(要訓品) 제1장)라고 설한다. 이를 달리 표현한다면,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마음공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현실의 삶은 인간의 마음이 운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건물을 짓는다고 하자. 그 건물의 원모습은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설계도로 나타나고, 물적 인적 자원을 동원하여 건축된 것이다.

인간관계 또한 인간의 마음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삶에서 경험하는 희비애환은 마음의 다양한 모습이다. 이렇게 본다면, 문명은 인류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찬란한 예술 문화는 인간의 마음이 아름다운 미적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철학과 종교 또한 진리와 선함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의해 나타난 것이다. 전쟁은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의 증오가 상대방을 절멸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발생한 것이다. 원효(元曉)대사는 이러한 마음의 작용을 일심(一心)으로 표현한다. 마음에서 일체가 생성되고, 일체가 소멸된다. 마음은 마음먹기에 따라 좁쌀보다도 작기도 하지만, 우주를 포용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마음의 묘한 작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러한 마음을 알고, 자신의 운명을 바꾸자는 마음공부가 유행하고 있다. 다양한 명상체험이 아울러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전횡에 따라 인간의 자아가 왜소해지면서 삶의 중심이 흔들리고, 존재 자체가 물적 조건에 흔들리며, 존재 자체의 기쁨을 빼앗기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일어난 것으로 본다. 마음공부나 명상 모두는 인간의 삶을 새롭게 재구성하여 주체적인 삶의 의미를 되찾고자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현대종교인 원불교 또한 이 점에서 마음공부를 하나의 종교적 트레이드 마크로 삼고 있다.

원불교의 마음공부는 초기교단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불법연구회는 전통적 불교가 위기 때마다 실천한 결사정신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그 결사야말로 재가, 출가가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주경야독, 반농반선(半農半禪, 하루의 반은 생산활동에, 반은 수행에 집중하는 것)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 생활에서 마음을 찾고, 마음을 가꾸며, 마음을 활용하는 마음공부를 했던 것이다. 원불교 마음공부는 이 경험을 기반으로 교의적으로나 실천적으로 확대되어 정착되었다. 나아가 현대문명의 근본문제를 치유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고자 한다.

특히 1990년대에 들어서는 원불교 마음공부가 좀 더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전통적으로 전해지는 나(我)와 경계(境界, 안이비설신의 육근이 부딪히는 모든 상황을 말함)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식에서 촉발되었다. 간단히 언급하자면 경계에 부딪혔을 때, 그 경계를 계기로 나의 본성인 불성(佛性)을 청정하고도 온전한 본래의 위치로 회복시키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STAR 마음공부’라는 것이 있다. S: Stop (멈추기) 온전한 정신수양, T: Think (생각하기) 생각으로 사리연구, A: Act (실행하기) 옳고 그름을 취사하기, R: Review (반조하기) 주의할 것, 이라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이것은 원불교의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라는 삼학과 함께 그 과정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검토하는 반조공부가 곁들여진 것이다.

이 삼학은 불교의 전통적인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것이다. 근본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원불교 수행은 견성(見成, 불성을 찾아 회복하는 것), 양성(養性, 부처의 삶이 되도록 불성을 잘 기르는 것), 솔성(率性, 실생활에서 부처의 행을 하는 것)이 목표다. 결국 이 불성을 깨달아 부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된다. 불성은 모든 사람이 고유하게 품고 있으며, 누구든지 부처가 될 수 있는 근본적 요소가 된다. 여기에서 불법의 평등성을 확인할 수 있다.

불성과 성품은 같은 뜻이다. 단 성품은 불성을 품고 있는 마음이다. 마음은 불성을 기반으로 하되 온갖 번뇌로 뒤덮여 자신의 업(karma)을 쌓아가는 불성의 외피다. 이 마음은 진리와 연계된 불성과는 달리 경계를 만나 발현된 파편화되고, 단절된 자기중심주의로 이끄는 원인 제공자이다. 불성은 이러한 마음의 독단에 끌리지 않는 원만구족(圓滿具足)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한 세계다. 이 불성의 성격이 현실에서 그대로 작동되면 부처의 삶이 된다.

예를 들어 무시선법(無時禪法)이라는 원불교 수행의 최고 단계에서는 “진공(眞空)으로 체(體)를 삼고 묘유(妙有)로 용(用)을 삼아 밖으로 천만 경계를 대하되 부동함은 태산과 같이 하고, 안으로 마음을 지키되 청정함은 허공과 같이 하여, 동하여도 동하는 바가 없고 정하여도 정하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작용하라.”라고 한다. 우리의 불성이 완전히 비어 있음을 알게 되면, 어떤 경계에도 걸림이 없게 된다. 즉 맑은 호수에 기러기가 날아가도 호수에 파도가 일지 않듯이 불성에는 어떤 파도도 일지 않는다. 그리고 그 텅 빈 마음으로 대하는 모든 존재는 각각 절대적 존재로서의 가치가 있다. 즉 인간과 자연 모두는 그 하나하나가 절대적 존재인 것이다. 처처불상(處處佛像, 모든 존재는 부처로 현현해 있다는 뜻)은 이를 말한다. 진공묘유는 불성의 또 다른 성격이다.

무시선법의 핵심은 “응하여도 주한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라고 가르치는 『금강경』(대승경전의 하나로 선종에서도 활용되는 경전)의 핵심 내용이다. 즉 우리 성품의 근본 자리에서 경계를 대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상의 어떠한 평지풍파도 나의 삶에서는 객관화가 된다. 희로애락에 끌려다니지 않는 청정무위(淸淨無爲, 마음이 청정하여 힘쓰지 않고도 자연스러운 삶이 영위되는 경지)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무시선법은 “우리의 몸인 육근이 일이 없을 때는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며, 육근이 일이 있을 때는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라”고 한다. 일심은 깨어 있는 마음, 번뇌로부터 해방된 마음, 우주와 하나 된 마음이다.

원불교 마음공부의 핵심은 “일상수행의 요법 9조”에 잘 나타난다. 이 가운데 1, 2, 3조는 “심지(心地)는 원래 요란함(2: 어리석음, 3: 그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2: 어리석음, 3: 그름)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自性)의 정(定)(2: 혜(慧), 3:(戒))을 세우자”이다. 이는 일상 속에서 삼학수행을 하는 것으로, 앞의 무시선법과 상통한다. 심지라는 것은 마음이 의지해 있는 근본, 즉 거의 같은 의미인 불성, 성품, 자성을 말한다.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이 불성에는 원래 없다. 이를 자성삼학이라고 한다. 중국 선종의 6조 혜능(惠能)대사의 행장인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 일찍이 확립된 선사상이다. 원불교는 이에 더 나아가 마지막 9조“공익심 없는 사람을 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리자”라고 하여 마음공부의 범위를 사회로 확장하고 있다.

원불교는 오늘날 다양한 현대불교와 같은 구조를 공유하고 있다. 즉 인간 개개인의 고통과 고뇌를 소멸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부조리와 불의를 물리치고 부처들이 사는 불토 낙원으로 변화시키자는 참여불교(Engaged Buddhism)에 속한다. 또한 기본적으로 마음을 통한 개혁 또는 개벽을 주장한다. 즉 마음공부가 근본 동력이다. 그 핵심은 불성의 다른 모습인 공적영지(空寂靈知, 공한 가운데에도 신령하게 아는 것)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에 있다. 삶과 문명은 이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변화될 수 있다. 물론 원불교 수행은 ‘평상심이 도’와 같은 선사상과 ‘단전주(丹田住)’와 같은 전통 선법도 계승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원불교야말로 기존의 불교교의를 통합 활용하는 회통불교라고 할 수 있다.

이 진공묘유 또는 공적영지한 성품을 최근 일부에서는 ‘메타마음(Meta-Mind)이라고도 한다. 어떤 형태로 표현하든 그 최종에는 신앙의 대상이자 수행의 표본인 법신불(法身佛, Dharma-kāya-buddha, 부처를 부처이게끔 하는 근본 부처이자 우주의 근본 진리)의 진리로 귀결된다. 앞에서 언급한 불성 또는 성품은 곧 법신불의 속성이며, 인간 누구나 이 법신불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즉 깨닫게 되면, 무명(無明, 마음이 밝지 못하여 죄업을 짓게 되는 마음)을 벗어나 법신불과 일치가 되는 것이다. 법신불은 “우주 만유의 본원이며, 제불제성의 심인(心印)이며, 일체중생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법신불의 상징은 또한 원불교를 상징하는 일원상(一圓相)이다. 원불교 마음공부는 이 근본 진리와 합일하여 진리적인 삶, 즉 부처의 삶을 살며, 이 지상을 불국정토로 변화시키는 것이 최종 목표가 된다.

현재 원불교 내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STAR 마음공부’만이 아니라, ‘정전 마음공부’, ‘온삶 마음공부’, ‘알아차림 마음공부’ 등 다양한 마음공부의 방법이 개발되고 있다. 어떠한 마음공부든 최종적으로는 이 법신불과 하나 되는 삶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길을 다르게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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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의 사회적 확산 과정
심심풀이 M3(meta-mind meditation)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Social Expansion of Mind Practice : Focused on Simsim-Puli M3(meta-mind meditation) Program

장진영(원광대학교),  박세훈(세종시 조치원청소년수련관),  고시용(원광대학교)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원불교사상과종교문화원불교사상과종교문화 제72집2017.06261 - 288 (28 pages)KCI등재
UCI(KEPA) : I410-ECN-0101-2018-228-000979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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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마음공부의 사회적 확산 과정을 ‘심심풀이 M3(meta-mind meditation)’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마음공부가 기타의 공부법과 크게 다른 점은 그 공부의 대상과 주체가 일치한다는 점이다. 실제 마음공부는 스스로의 체험과 자각을 중시한다. 이를 위해 그 마음이 현상적으로 나타날 때, 즉 마음에서 분별이 나타나는 순간에 마음을 포착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처럼 마음공부에서 어떤 경계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는 마음이 바로 ‘메타 마인드(meta-mind)’라 할 수 있다. 즉 이는 마음이 어떤 대상을 대하여 느낌·생각·감정 등의 마음작용을 일으킬 때, 그 작용하는 마음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마음공부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참다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마음공부의 사회화 혹은 사회적 확산은 마음공부의 구체적인 효과가 내면의 평안과 심신의 건강만이 아니라 가정, 직장, 학교, 국가 등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도록 하자는 것이다. 마음공부의 사회화 과정의 한 예로서 기존의 원불교 마음공부의 이론적 토대를 ‘메타 마인드’를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동시에 사회적 요청을 수용하여 다양한 콘텐츠 개발, 강화된 체험활동, 인성교육의 핵심덕목 등이 반영된 프로그램으로 변천되는 과정을 검토해보았다. 이러한 마음공부의 사회화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지속적인 개발이 필요함은 물론, 이를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전문가) 양성 및 재교육, 마지막으로 전문훈련센터 및 일상의 공부모임(커뮤니티) 등의 지원이 요청된다. This Paper explored the social expansion of mind practice focused 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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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요약문〉
Ⅰ. 머리말 : 메타 마인드(Meta-mind)와 마음공부의 사회화
Ⅱ. 심심풀이 M3 프로그램의 개발 및 보완과정
Ⅲ. 심심풀이 M3 프로그램의 사회적 확산 현황
Ⅳ. 맺음말 : 마음공부의 사회적 확산을 위한 향후 과제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마음공부#마음공부의 사회적 확산#메타 마인드#심심풀이 M3#인성교육#mind practice#social expansion of mind practice#meta-mind#Simsim-Puli M3(Meta-mind meditation)#personality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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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 - 도법 스님의 생명평화 이야기 2008슬람교, 힌두교, 동학, 원불교, 동양 철학 등 인류사에서 존재의 실상에 근거하여 가꾸어진 모든 세계관을 함축해서 만든 것이 바로 ‘생명평화경’이다. 그중 제일 많이 참고한 것이 화엄경이다. 화엄의 핵심 철학은 한마디로 ‘제망중중무진연기법(帝網重重無盡緣起法)’이다. 연기법의 세계관으로 볼 때 세계는 본래 그물의 그물코처럼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생명 공동체이다. 즉 세계가 마치 살아 있는 그물이라면 낱낱 존재들은 그물코와 같은 격이다. 이렇듯 세계는 본래부터 한몸 한생명의 인드라망 생명 공동체로서, 생명 공동체의 길에는 평화롭게 함께 사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도법 스님은 궁극적으로 인류와 모든 생명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생명평화 사상 뿐이라 여기고, 소유욕과 탐욕에 길들여진 대중들에게 생명평화의 숭고함을 전하고 있다. ‘생명평화경’은 생명평화 세계관, 생명평화 사회상, 생명평화 인간상, 생명평화 수행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기완성, 사회완성을 실현하는 길, 생명평화 백대서원 절 명상 생명평화 백대서원 절 명상은 지금 여기 현장에서 자리이타 즉 자기완성, 사회완성을 실현하기 위한 생명평화 수행론이다. 생명평화경을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수행의 생활화, 생활의 수행화를 위해 생명평화를 서원하며 백 번의 절을 올리는 것이다. 백이란 숫자는 부족함과 결함이 없는 완전한 상태를 나타낸다. 일상 속에서 생명평화 백대서원문의 내용대로 생활하면 바로 그 순간 생명평화의 삶이 완전하게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생명평화 백대서원 절 명상 CD는 생명평화결사에서 만든 음악을 배경으로 도법 스님의 목소리로 새롭게 녹음했다. 인드라망 세계관을 형상화시킨 생명평화 로고 총체적 관계의 진리(중중무진연기법)인 불일불이의 인드라망 세계관과 철학을 형상화시킨 것이 생명평화 로고이다. 로고 맨 아래쪽이 지금 여기 나(인간)이다. 오른쪽이 네 발 달린 짐승이고, 왼쪽이 날짐승과 물짐승이다. 사람 머리 위쪽이 나무, 숲, 식물이고, 붉은 원형은 해, 하얀 원형은 달이다.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관념에 물들기 이전의 본래 청정한 무위자연의 우주 삼라만상과 인위적 관념에 물든 이후의 인간 사회가 그물의 그물코처럼 불일불이의 총체적 관계로 존재하고 있음을 단순화시켜 표현했다. 생명평화 로고는 이병철 선생의 제안으로 홍익대학교 안상수 교수님이 제작했다. 접기 북플 bookple 이 책의 마니아가 남긴 글 친구가 남긴 글 내가 남긴 글 친구가 남긴 글이 아직 없습니다. 마니아 읽고 싶어요 (0) 읽고 있어요 (0) 읽었어요 (4) 이 책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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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진리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님은 `구체적 사실과 진실인 실상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삶을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게 불행의 씨앗이라는 것이다. 지식과 언어를 전도몽상,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만 다룰 뿐, 실상에 대한 성찰이나 참회가 없었다고 지적한다. 실상은 뭔가? 우리 존재의 실상은? 스님은 명쾌하게 말한다. 상호의존성과 상호변화성이라고. 인드라망 세계관을 말씀하시며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물과 그물코의 관계에서 보듯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관계란다. 그러니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불일불이 不一不二가 존재의 실상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상호의존성에 입각한 존재의 실상을 믿기보다 자기중심적 세계관에 빠져 있다. 그러니 대화보다 일방적 견해 표현에 익숙하며, 자기를 내세우는 일에 보다 적극적이다.(그런 점에서 소위 진보적 운동을 하는 이들에 대한 문제 지적 또한 잊지 않고 있다. 깊이 반성할 일이다.) 상호변화성은 머물러 있는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리다. 과거는 존재하지 않고, 미래도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존재하지 않으며, 지금 당장의 현재만이 의미있는 순간이다. 그래서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며, 지금 만나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며, 그 사람에게 지극한 정성을 다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일인 것이다. 또한 세상 만물은 흘러 변화하는 것이므로 집착할 일도 없어진다. 소유욕, 명예욕도 실상의 진리에 비추어 보면 크게 무게를 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런 진리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너보다 나가, 달관보다는 집착이 강화된다. 여기서 반생명적 폭력이 일상화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님은 생명평화경을 통한 백배서원을 통해 생명평화의 길을 열어가고자 한다. 내가 이 생명평화경에 이끌린 것은 마음이 부대끼는 날이 많은 나를 보면서부터였다. 답답하고 화가 나고, 하지만 이런 날이 많아서는 숨을 쉴 수 없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던 것이다.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너무 쉽게 받는 내 모습이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지금 스님의 생명평화경을 통한 백배서원을 날마다 올린다. 생명평화경에는 불교, 기독교, 천도교의 사상을 모두 담고 있으니 어느 종교 하나에 편향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모든 선지자가 `진리가 그대의 삶을 자유롭게 한다.`고 했다. 이 생명평화경은 삶을 자유롭게 할 진리인 것이다. - 접기 햇귀 2012-07-13 공감(1) 댓글(0) Thanks to 공감

알라딘: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 - 도법 스님의 생명평화 이야기 

도법 (지은이)불광출판사2008-08-21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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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쪽152*223mm (A5신)374gISBN : 978897479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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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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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한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안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60여 년 동안 살아온 도법 스님 사유의 총화이다. 또한 생명평화의 삶을 화두로 살아온 도법 스님이 길을 걸으며 사유하고 대화하면서 가꾸고 다듬어 온 생명평화 사상의 결정체로서 ‘생명평화경’과 ‘생명평화 백대서원 절 명상’을 포함한다.



총 4부로 구성해, 1부에서는 생명평화의 세계관과 철학에 대하여, 2부에서는 생명평화경에 대하여, 3부에서는 생명평화 수행체계에 대하여, 4부에서는 생명평화 탁발 순례를 하며 대중들과 나눈 대화를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모았다. 그 외에 도법 스님의 생명평화 탁발 순례길의 모습을 찍은 원색 사진이 있으며 부록으로 도법 스님의 목소리로 녹음한 생명평화 백대서원 절 명상 CD와 작은책 ‘생명평화 절 명상 백대서원문’을 넣었다.



생명평화 백대서원 절 명상은 지금 여기 현장에서 자리이타 즉 자기완성, 사회완성을 실현하기 위한 생명평화 수행론이다. 생명평화경을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수행의 생활화, 생활의 수행화를 위해 생명평화를 서원하며 백 번의 절을 올리는 것이다. 백이란 숫자는 완전한 상태를 나타낸다. 일상 속에서 생명평화 백대서원문의 내용대로 생활하면 바로 그 순간 생명평화의 삶이 완전하게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목차

(1) 생명평화의 세계관과 철학

생명평화경

생명평화 로고이야기



(2) 생명평화. 인드라망의 눈으로 삶을 본다.

공부를 시작하며

생명평화경 이야기

생명평화 세계관

생명평화 사회상

생명평화 인간상

생명평화 수행관



(3) 생명평화 수행

생명평화 백대서원 절 명상

언어에 대한 이야기

생명에 대한 이야기

평화에 대한 이야기

백(100)에 대한 이야기

위대함(大)에 대한 이야기

서원에 대한 이야기

절에 대한 이야기

명상에 대한 이야기

화보 생명평롸 탁발순례의 길

백대서원 절 명상 수행



(4) 질문과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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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어. 그러므로 돈이 최고야.'하는 믿음과 논리가 판치고 있습니다. 돈 앞에 양심도 개성도 신의도 자존심도 품위도 모두 무너지고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돈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돈이 인생의 목적처럼 되어가고 있는데 정말 그러한가. 앞에서처럼 그 지식과 믿음을 구체적 사실과 진실에 직결시켜 봅시다. 돈이 최고라는 말을 실사구시적으로 짚어보면 그야말로 헛소리입니다. 사회를 살아가는 데 적절한 돈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돈이 최고이거나 인생의 목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돈의 노예가 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나의 지식과 신념, 언어와 논리들을 구체적 사실과 진실에 직결시켜 다루지 않고 관념적, 추상적으로 다루기 때문입니다. 삶의 문제를 실사구시적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에 나의 지식과 신념, 나의 언어와 논리들이 오히려 삶을 더 왜곡시키고 혼란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관념화된 지식과 신념, 언어와 논리에 속거나 구속되어 실체도 없는 환상에 현혹됨으로써 삶의 무게가 천근만근이 되는 것입니다. ((142쪽, '백대서원 절 명상 수행' 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도법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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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제주에서 태어나, 17세가 되던 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출가했다. 66년 금산사에서 출가하여 69년 해인사 강원을 거치고, 이후 13년 동안 봉암사와 송광사 등 제방선원에서 선수행을 했다. 87년엔 금산사 부주지를 맡았고, 90년엔 청정불교운동을 이끈 개혁승가 결사체 선우도량을 만들었다. 95년부터 실상사 주지를 맡아 인간화 생명살림의 길을 열어가기 위해 98년 실상사 소유의 땅 3만 평을 내놓고 귀농전문학교를 설립했다. 1998년 말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이 기존의 총무원과 정화개혁회의로 나뉘어 다툴 때 총무원장... 더보기

최근작 : <붓다, 중도로 살다>,<붓다로 살자>,<스님과 철학자> … 총 23종 (모두보기)

Editor Blog[종교] 불교출판 문화협회 2008 올해의 불서 10종 l 2008-12-02

불교계의 전문가들이 뽑은 올해의 주목할만한 불서 10권을 만나보시죠. ^^대한불교 조계종이 주최하고 불교출판문화협회가 주관하는 불교출판문화상이 5회를 맞았습니다. 총 68권이 후보작으로 신청되었으며,그 중 대상 1종, 우수상 2종을 포함한 10종을 선정했습니다. 그 분야도 종류도 다양해서 깐깐히 고른 목록이라는 느낌이 와닿습니다. 찬찬히 살펴보세요.



출판사 소개

불광출판사

출판사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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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명상가 붓다의 삶>,<부처님의 감정수업>,<메타휴먼>등 총 440종

대표분야 : 불교 1위 (브랜드 지수 312,827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도법 스님의 생명평화 이야기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이 불광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부록으로 도법 스님의 목소리로 새롭게 녹음한 생명평화 백대서원 절 명상 CD와 작은책 ‘생명평화 절 명상 백대서원문’이 들어 있다.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은 생명평화의 삶을 화두로 살아온 저자가 길을 걸으며 사유하고 대화하면서 가꾸고 다듬어 온 생명평화 사상의 결정체로서 ‘생명평화경’과 ‘생명평화 백대서원 절 명상’을 포함하고 있다. 이 책은 또한 한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안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60여 년 동안 살아온 도법 스님 사유의 총화이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서는 생명평화의 세계관과 철학에 대하여, 2부에서는 생명평화경에 대하여, 3부에서는 생명평화 수행체계에 대하여, 4부에서는 도법 스님이 생명평화 탁발 순례를 하는 동안 대중들과 나누었던 대화들을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모았다. 그 외에 도법 스님의 생명평화 탁발 순례길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화보가 들어 있다.



생명평화경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

2001년에 각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좌우익 이념 대립 희생자를 위한 지리산 위령제’와 ‘생명평화 민족화해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지리산 1000일 기도’를 올렸다. 그 후 스님은 정성을 기울였던 기도의 마음을 모아 2004년 3월 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생명평화 탁발순례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지금 5년째 순례 중인 스님은 그동안 2만5천여 리 걸음걸음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으며, 길 위에서 7만5천여 분들을 만나 끊임없이 묻고 배웠다고 한다. 그러한 많은 모색 끝에 기존의 모든 벽을 넘어 범종교 시민 대중이 함께 가꾸어야 할 보편적 이상과 가치인 생명평화 세계관과 철학의 토대를 만들게 된 것이다.



내 삶을 비추는 등불, 생명평화경

‘생명평화경’은 현대 문명의 실상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문명사를 돌이켜 보면 이기적 소유욕을 쫓는 분리, 분열, 대립, 투쟁의 세월이었다. 자아, 가족, 민족, 국가, 종교, 이념의 관점에서 편을 나누어 자유, 정의, 평화의 이름으로 상대의 생명을 죽이고 평화를 파괴하며 질주하고 있는 것이 현대 문명의 실상이다.

도법 스님은 이것을 존재의 실상에 근거하지 아니한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그릇된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그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구체적 진실 즉 존재의 실상에 근거한 올바른 세계관(보편적 세계관)을 확립하는 일이 문제를 해결하는 큰 길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보편적 세계관이란 동과 서, 국가와 국가, 종교와 종교, 종교와 무종교, 종교와 과학, 진보와 보수, 너와 나의 벽을 넘어 모두 함께할 수 있는 진리를 말한다. 따라서 불교뿐만 아니라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동학, 원불교, 동양 철학 등 인류사에서 존재의 실상에 근거하여 가꾸어진 모든 세계관을 함축해서 만든 것이 바로 ‘생명평화경’이다.

그중 제일 많이 참고한 것이 화엄경이다. 화엄의 핵심 철학은 한마디로 ‘제망중중무진연기법(帝網重重無盡緣起法)’이다. 연기법의 세계관으로 볼 때 세계는 본래 그물의 그물코처럼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생명 공동체이다. 즉 세계가 마치 살아 있는 그물이라면 낱낱 존재들은 그물코와 같은 격이다. 이렇듯 세계는 본래부터 한몸 한생명의 인드라망 생명 공동체로서, 생명 공동체의 길에는 평화롭게 함께 사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도법 스님은 궁극적으로 인류와 모든 생명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생명평화 사상 뿐이라 여기고, 소유욕과 탐욕에 길들여진 대중들에게 생명평화의 숭고함을 전하고 있다.

‘생명평화경’은 생명평화 세계관, 생명평화 사회상, 생명평화 인간상, 생명평화 수행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기완성, 사회완성을 실현하는 길, 생명평화 백대서원 절 명상

생명평화 백대서원 절 명상은 지금 여기 현장에서 자리이타 즉 자기완성, 사회완성을 실현하기 위한 생명평화 수행론이다. 생명평화경을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수행의 생활화, 생활의 수행화를 위해 생명평화를 서원하며 백 번의 절을 올리는 것이다. 백이란 숫자는 부족함과 결함이 없는 완전한 상태를 나타낸다. 일상 속에서 생명평화 백대서원문의 내용대로 생활하면 바로 그 순간 생명평화의 삶이 완전하게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생명평화 백대서원 절 명상 CD는 생명평화결사에서 만든 음악을 배경으로 도법 스님의 목소리로 새롭게 녹음했다.



인드라망 세계관을 형상화시킨 생명평화 로고

총체적 관계의 진리(중중무진연기법)인 불일불이의 인드라망 세계관과 철학을 형상화시킨 것이 생명평화 로고이다.

로고 맨 아래쪽이 지금 여기 나(인간)이다. 오른쪽이 네 발 달린 짐승이고, 왼쪽이 날짐승과 물짐승이다. 사람 머리 위쪽이 나무, 숲, 식물이고, 붉은 원형은 해, 하얀 원형은 달이다.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관념에 물들기 이전의 본래 청정한 무위자연의 우주 삼라만상과 인위적 관념에 물든 이후의 인간 사회가 그물의 그물코처럼 불일불이의 총체적 관계로 존재하고 있음을 단순화시켜 표현했다.

생명평화 로고는 이병철 선생의 제안으로 홍익대학교 안상수 교수님이 제작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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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자연에 감사하며 진정 하나되는 생명공동체의 삶을 일깨워 주시는 도법스님!  구매

현정 2009-02-24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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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삶이 한결같으신 분, 물질문명이 질주하는 시대에 정신의 불꽃 한송이 피우시는  구매

mook 2008-08-2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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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코인생 그물코 사랑을 읽고 새창으로 보기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을 읽고



한국 불교 개혁과 생명평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도법 스님이 직접 실천을 통해서 만든 생명평화 절 명상 백대 서원문은 말 그대로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100가지의 생명평화와 관련한 내 삶의 오늘과 내일을 밝히는 등불 구실을 해주는 경구로 되어 있다. 그리고 100번의 절 수행을 통하여 바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존재와 이유에 대하여 속 시원한 해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인가. 왜 태어났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죽게 되는가. 인간의 모든 꿈과 바람을 일시에 허물어 버리는 죽음. 그 죽음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허무하기만 한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스스로 묻고 물어서 터득한 것은 결국 자기 수행과 중생 교화, 자기완성과 사회 완성 즉 선 수행과 보현행원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길을 찾고자 노력한 결과였다고 한다. 도법 스님이 살아온 60여 년 인생길에서 만난 인연들, 어른 아이, 남자 여자,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마음에 드는 사람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이 종교인 저 종교인, 산 사람, 죽은 사람, 우주 자연, 삼라만상 모두가 자신을 키워준 스승이었으며, 허무의 심연도 회의와 고뇌도 만남도 헤어짐도 희로애락 생로병사 등의 숱한 인연들도 모두가 자신을 길러준 좋은 양식이고 밑거름이었다고 하는 저자의 겸손함은 바로 진리의 사랑이었고, 존재의 신비였으며, 기적이었고, 불가사의였던 것이다.



바로 이런 과정에서 사유를 저자는 그물코에 비유하면서 책 제목도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이라 하였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실상은 어떤가. 나는 왜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설법을 잔잔하게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한 분야에서 어느 정도 뜻을 이루고도 전혀 무수한 인연들과 함께 해온 모든 사람들에게 그 공을 돌리고 있는 저자의 모습은 붓다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비록 길에서 주운 꽃인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이 오늘과 내일을 밝히는 등불이라면서 붓다, 예수, 간디의 안목과 마음을 담은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 즉 생명평화의 삶을 온전히 내 삶이 되게 하고 친구의 삶, 이웃의 삶, 세상의 삶이 되게 하는 일일 터라고 강조하는 저자의 단호한 의지가 바로 생명평화의 세상을 만들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생명평화의 절 100가지 명상 내용에 대한 스님의 자세하고 진지한 설법 내용은 바로 마음에 와 닿았고,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갖게 하였다. 현대의 급변하는 여러 모습에서 우리가 챙기고 가져야 할 올바른 의식과 자세에 대한 바른 판단력과 실천력을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질문과 답을 통하여 궁금한 것을 알 수 있게 하고 있어 확실한 보완을 할 수 있어 유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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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박사 2008-09-2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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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평화롭기를!! 새창으로 보기









 최근에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를 읽었다. 김용택 시인과 도법 스님의 문학적, 사상적 자서전의 성격을 지닌 책이었다. 김용택의 삶의 내력에 대해서는 그의 시나 산문, 인터뷰 등을 통해 대강 알고 있었지만, 도법 스님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최근의 조계종 사태로 `화쟁위원회`가 언론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도법이라는 법명을 본 게 기억이 났다. 그런데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를 읽으면서 도법 스님의 삶의 내력을 조금이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새만금, 생명평화 순례와 도법 스님이 연결이 됐다. 그 뒤로 자연스럽게 도법 스님에게 관심이 갔다. 맨발동무 도서관에서 스님과 관련된 책 3권을 빌렸다.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은 도법 스님이 그간의 수행과 실천을 통해 정리한 종교적, 사상적 결정체를 쉽게 풀어쓴 책이다. 그것은 다음 아닌 생명평화였다. 스님은 종교의 존재 이유를 생명평화에서 찾는 듯 보였다. 아니, 인간의 존재 이유가 생명평화에 있는 것이었다.







 스님은 현재 종교의 역할이나 실상에 대해 꽤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주로 불교의 폐단에 대한 지적을 많이 하시지만,(교회 종지기를 하셨던 권정생 선생님은 기독교, 아니 왜곡된 종교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하셨지) 실상은 진리는 간데 없고 우상만 남은 종교 일반에 대한 비판으로 읽혔다. 스님의 말씀은 불교(진리)를 제대로 믿고 따르면 세상이 이렇게 혼탁하지 않을 텐데, 하는 거였다.







 스님은 수행자의 삶을 살면서 청정도량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쉼없이 해왔다. 그것은 진리 실험의 길이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선우도량과 화엄학림이었다. 선우(善友)는 좋은 친구라는 의미로, 부처님도 좋은 친구를 굉장히 중시했다고 한다. 깨달음을 향한 수행가의 전부라고 말할 정도였다니, 스님 또한 좋은 도반과 함께 진리를 찾아나서고자 했던 것이다. 화엄학림은 불교 경전의 본류라 할 수 있는 `화엄경`을 학문적으로 공부하고자 만든 학회 정도다. 스님이 보기에 불교는 참선 중심으로 흘러 경전에 대한 연구는 뒷전이었다. 부처의 말씀, 곧 진리는 경전에 담겼는데, 그걸 공부하지 않는 참선은 헛것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여, 스님은 화엄경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되고, 후에 스님의 생명평화 사상의 근본으로 삼았던 것이다.







 스님은 개인의 완성과 사회의 완성이 별개가 아니라고 말했다. 경전에 상구보리 하화중생 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는 말이 있는데, 위로는 법(진리)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불교에서는 세상을 바로 세우는 일에도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큰 스님 중심의 신비주의나 참선 중심의 상구보리만 부각되는 것 같아 스님은 그게 안타까웠을 것 같다.







 스님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통일적 관점으로 생명평화경을 썼다. 아니, 썼다, 라고 하기 보다, 들은 것을 옮겨 적었다고 하는 게 옳겠다. 그간의 공부와 실천으로 진리의 길을 탐색한 결정체이니, 그것은 만들어졌다기보다 진리가 그렇게 말했다고 보는 게 맞겠기 때문이다.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믿고 기도하고 보시를 한다. 하지만 행복해지기보다-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착각에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 세상은 폭력과 부패와 분열과 대립의 도가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를 믿는 신자 수가 얼마나 되길래 세상은 갈 수록 진리와 멀어지는가? 문제는 진리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님은 `구체적 사실과 진실인 실상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삶을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게 불행의 씨앗이라는 것이다. 지식과 언어를 전도몽상,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만 다룰 뿐, 실상에 대한 성찰이나 참회가 없었다고 지적한다.







 실상은 뭔가? 우리 존재의 실상은? 스님은 명쾌하게 말한다. 상호의존성과 상호변화성이라고. 인드라망 세계관을 말씀하시며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물과 그물코의 관계에서 보듯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관계란다. 그러니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불일불이 不一不二가 존재의 실상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상호의존성에 입각한 존재의 실상을 믿기보다 자기중심적 세계관에 빠져 있다. 그러니 대화보다 일방적 견해 표현에 익숙하며, 자기를 내세우는 일에 보다 적극적이다.(그런 점에서 소위 진보적 운동을 하는 이들에 대한 문제 지적 또한 잊지 않고 있다. 깊이 반성할 일이다.) 상호변화성은 머물러 있는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리다. 과거는 존재하지 않고, 미래도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존재하지 않으며, 지금 당장의 현재만이 의미있는 순간이다. 그래서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며, 지금 만나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며, 그 사람에게 지극한 정성을 다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일인 것이다. 또한 세상 만물은 흘러 변화하는 것이므로 집착할 일도 없어진다. 소유욕, 명예욕도 실상의 진리에 비추어 보면 크게 무게를 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런 진리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너보다 나가, 달관보다는 집착이 강화된다. 여기서 반생명적 폭력이 일상화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님은 생명평화경을 통한 백배서원을 통해 생명평화의 길을 열어가고자 한다.







 내가 이 생명평화경에 이끌린 것은 마음이 부대끼는 날이 많은 나를 보면서부터였다. 답답하고 화가 나고, 하지만 이런 날이 많아서는 숨을 쉴 수 없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던 것이다.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너무 쉽게 받는 내 모습이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지금 스님의 생명평화경을 통한 백배서원을 날마다 올린다. 생명평화경에는 불교, 기독교, 천도교의 사상을 모두 담고 있으니 어느 종교 하나에 편향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모든 선지자가 `진리가 그대의 삶을 자유롭게 한다.`고 했다. 이 생명평화경은 삶을 자유롭게 할 진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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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귀 2012-07-1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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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7

개벽을 살자 개벽파선언을 읽고(5)

개벽을 살자
개벽을 살자
-<개벽파선언>을 읽고(5) 
by소걸음Sep 04. 2019
[편집실 주] 이 글은 '개벽학당' 마지막 수업 시간에 '개벽파 선언'을 읽은 소감을 발표한 글입니다. <개벽신문> 제88호(2019.9)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비움 (유채운)
 
 개벽학당 1학기 종강식에서 소감 발표하는 비움..

대학공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가 없었다.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했고, 과제에는 학사경고를 받지 않을 정도로만 시간을 들였다. 대신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거나 꽹과리를 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학교는 교육권 문제로 진통을 앓았다. 시간제강사를 자르고 학과 체제가 학부 체제로 편입되어 가는 동안, 강의의 수는 축소되고 교육의 질은 눈에 띄게 나빠졌다. 유서 깊은 정치학과가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폐지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에 대한 결과는 온전히 학생들이 짊어지게 될 터였다. 
보다 못한 학생들은 교육권 보장을 위한 행동에 나섰다. 나는 깊이 관여하지 않고 멀찍이 서서 지켜보았다. 가끔 단체행동이나 문화제를 할 때, 군중의 한사람으로서 머릿수를 보태주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역할을 다했다고 믿는다. 
학교는 임박한 전환의 시대를 살아갈 지혜를 알려주기는커녕, 지지부진한 갈등을 일으켜 학생들의 진을 뺐다. 그렇다고 학교 수업이 유익한 것도 아니었다. 1학년을 위한 전공과 교양 수업들에서 지적인 자극을 얻을 수는 없었다. 사회학은 한국사회가 지닌 구조적 문제와 원인을 밝히는 데 유용했지만, 비평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못했다. 
 개벽학당의 몸공부-훌라댄스 : "공부는 춤을 추고~"

지루한 학교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매주 수요일 부암동에서 하는 <개벽학당> 덕분이었다. 개벽학당의 공부와 수양이 없었다면 대학의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진즉에 뛰쳐나왔을 것이다. 인류세, 초지능, 호모데우스. 개신유학, 원불교, 한살림, 천도교. 학습과 수양. 수신제가치국평천하. 

3월 초부터 6월 말까지 4개월간, 개벽학당에서는 인류와 지구가 직면한 다급한 문제들을 촘촘히 들여다봤다. 우리는 인류세를 살고 있다. 인간은 전대미문의 힘과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인간의 집합적 의지에 의해 만물과 지구의 운명은 달라질 것이다. 한편, 초지능의 부상을 목격하고 있다. 벽청들과 함께 읽은 <<라이프 3.0>>에 따르면, 머신러닝은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한마디로 인간보다 훨씬 똑똑한,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 여겨지던 자유의지와 자율적인 선택능력까지 지닌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하는 것이다. 인류는 거대한 전환을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가. 
 
우리가 구태여 ‘개벽’을 들여다 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문제를 지적하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거대한 전환 앞에 망연히 서있는 인류의 출로를 궁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성난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개신유학, 원불교, 한살림, 천도교. 최제우가 1860년대에 개창한 동학, 그러니까 개벽에는 자본주의, 산업혁명, 서세동점의 세기가 산출한 기후변화와 지구문명의 위기, 인류세로의 진입과 머신러닝의 부상이라는 대전환을 돌파할 논리들이 담겨있었다. 
  
 개벽학당의 몸수련-몸과 마음(정신) 공부의 병행

향.아.설.위. 

이 네 글자를 발음할 때마다 이상하게 가슴이 울렁였다. 최시형은 신위의 방향을 나에게, 너에게, 우리에게로 돌려버렸다. 최시형이 신위의 방향을 우리에게 돌린 이유는, 우리 모두가 신성한 우주와 하늘을 모시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늘이니 너도 하늘이다. 나이와 신분과 딱딱한 관념은 훌훌 털어버리고 우리 맞절을 주고받자.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개벽은 맑스를 경유하지 않고도 만인과 만물의 평등을 떠올렸다. 개벽의 품안에서는 군자와 소인, 문명과 야만,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친척과 남남 등의 전통적인 구분은 중요하지 않았다. 상하관계와 친소관계를 규정하는 차등의 예를 벗어던지고, 상호가 존엄하고 평등한 관계임을 선언했다. 

어디 그뿐이던가. 개벽은 백성이 행복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가진 경세론이기도 했다. 일제의 침략이 태동하던 구한말의 보국안민은 자주독립운동으로서 발현되었다. 쉽게 말해서 조선의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 하지만 단순히 조선의 평화와 부국강병만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신조선’을 건설하는 것에서 한 발 짝 더 나아가 치국-평천하, 즉 세계의 평화까지 염두에 두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지상천국’을 현세에 건설하는 것이 목표였던 것이다. 지난 4개월 간, 개인의 변화를 시작으로 국가론을 거쳐 평화로운 세계 체제의 건설까지 구상했던 개벽을 탐구하며 때때로 아찔함과 어지러움을 느꼈다.
  
개벽을 또 다른 책상물림과 탁상공론으로 흘려보내지 말자. 
무언가를 한다는 말에는 의지가 개입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힘써서 선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다’는 말은 어떤 당위를 위해서 구태여 일을 진행한다는 뜻이 된다. 반면 ‘산다’는 말은 의식하지 않아도, 힘써서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을 뜻한다. 어떤 가치가 한 번 내면화 되면, 이후에는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삶은 그 가치에 따라 운행한다. 우리가 해야 할 건 개벽을 ‘사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하늘님을 자각하고, 나와 함께 전환의 시기를 견뎌낼 이웃과 동지들을 정성껏 돌보자. 부디 거대한 전환의 시기를 무사히 건너가자. 

후천개벽의 후천개벽을 열어젖히자. 
후천개벽의 후천개벽 시대에서는 동서의 결합이 긴요해질 것이다. 방학을 맞이하여 20권 정도의 책을 대학 기숙사에 가져갔다. 그 중에서 우선 들뢰즈와 가타리가 함께 쓴 <<앙띠 오이디푸스>>, 콜린 크라우치의 <<포스트 민주주의>>, 김상준 교수님의 <<맹자의 땀 성왕의 피>>를 함께 읽고 있다. 우선 나부터 동과 서, 고와 금을 가리지 않는 미더운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앞서 사회학을 비판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회학이 시사하는 바는 유효하다. 1000년간 저 광활한 대륙을 통치했던 유교의 경험과 현실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날카롭게 통찰하는 사회학의 경험이 만나야 한다. 후천개벽의 후천개벽의 시대에서는 지성을 단련하는 것에만 그쳐서도 안 될 것이다. 유려한 자유형으로 물살을 가르고, 나무를 깎아 손수 필요한 물품을 만들어내고, 사랑하는 친구들을 위해 한 끼 든든한 밥상을 차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옹이가 박힌 투박한 손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개벽을 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시작하려고 한다. 

이제 우리, 개벽을 살자.

<개벽파선언 구매 예약 - 9일 이후 받아보게 됨>

개벽파선언 by 조성환 / 이병한
‘개화파 / 척사파’로 대별하여 이해해 온 한국 근대화 흐름에 ‘개벽파’라고 하는 제3의 길과 사상과 운동이 있었음을 주목한 책이다.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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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하는, 평화하는, 개벽하는, 청년
-<개벽파 선언>을 읽고 (4) | [편집실 주] 이 글은 '개벽학당' 마지막 수업 시간에 '개벽파 선언'을 읽은 소감을 발표한 글입니다. <개벽신문> 제88호(2019.9)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아띠 (황지은) 개벽학당 개강을 앞두고 여시재로 답사가던 날, 로샤(이병한 선생님)의 뒤를 좇아 헉헉거리며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그때 새별(조성환 선생님)과는 서먹서먹하고 수줍던 사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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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8

마음 공부방 > 즉설문답 > 원불교의 수행, 즉 삼학수행의 요지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마음 공부방 > 즉설문답 > 원불교의 수행, 즉 삼학수행의 요지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작성일 : 12-05-24 21:00

원불교의 수행, 즉 삼학수행의 요지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233 

지금 삼학수행 11개 과목에 대하여 살펴보고 있습니다.



삼학수행의 정기훈련법이 11가지로 나누어있다보니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 나가야할지 길이 막막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루의 일상생활하기도 빠듯한데 거기에다 수행이라는 명목 하에 11개 과목을 하나하나 챙기려니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도 예비교무 시절에는 주어진 시간에 시키는 것만을 따라하니 흉내는 내었지만 교도들을 교화하면서 그 바쁜 와중에 자신의 삶까지 스스로 돌보아야하니 정말로 수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출가자들이 그러할진대 재가교도들은 어떠하겠습니까? 소태산 그 분께서 익산 총부에 주석하고 계실 때는 재가출가를 불문하고 여름 한철 겨울 한철 하선과 동선을 통하여 수행 정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전통이 사라진지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스스로 수행해나가지 않을 수 없는 환경에 처했습니다, 좌선이야 시간을 내서 하기는 한다지만 생활에 쫓기다보면 설교를 준비하는 일도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냥 일상적이며 반복적인 일과로 하루를 끝내고 맙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 처해있으면서 치열하게 신앙하고 수행한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 깊이 들어가자니 시간과 정성이 부족하고 그러자고 앞으로 더 나아가자니 꽉 막힌 은산철벽에 갇혀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출가자들은 깨달음의 길을 포기하고 그저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서 일상적인 삶과 생활에 자신을 내맡깁니다. 당연히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에 응답할 수 없습니다. 그에 따라 자신뿐만 아니라 원불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마련이죠. 살긴 살아가는데 열정과 희열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수동적으로 주어진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당연히 교화가 정체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교단의 현실이 됩니다. 교화자 스스로 구도자로서의 열정과 열망이 지극하다면 그는 생명에너지가 충만할 것입니다. 깨달음의 과정 속에서 느껴지는 그 열정과 열망은 당연히 그 자신을 넘어 주변으로 흘러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스스로 자신의 집 안에 갇혀 나올 수 없으니 그는 정체할 수밖에 없고 에너지는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당연히 교단의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소태산 그 분께서 이루고자 했던 세상에 대한 비전을 가슴깊이 받아들이면서 원불교의 신앙과 수행의 길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일은 우리 세대에 주어진 필연적인 과제입니다. 원기 100년 안에 그 기반이 닦이고 그 기반을 통하여 이웃과 사회로 전이되어 나아갈 수 있는 기틀을 세워나가지 못한다면 소태산 그 분의 비전과 꿈은 영영 사라지고 말지도 모릅니다.



삼학 수행을 11개 과목으로 정리해놓고 그 방법들을 제시해놓았지만

실질적으로 삼학 수행을 통해서 성취하고자하는 목적은 지극히 단순합니다.

바로 집착심을 제거해나가는 것입니다!

집착심은 고통의 근원이며

스스로를 구속시켜나가는 원인입니다.

부처님께서도 깨닫고 난후

최초로 밝히신 가르침이 바로 집착을 벗어버리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苦集滅道! (고집멸도)

고통은 집착으로부터 일어나는 것

그 집착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면

팔정도를 닦아라!』



『세상은 無常한 것이다! (諸行無常 제행무상)

無常한 것이기에 나라는 실체는 없다! (諸法無我 제법무아)

그를 깨닫지 못하고

그 무엇엔가 집착되어있으므로 고통을 벗어날 수가 없음이니! (一切皆苦 일체개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일체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야한다! (涅槃寂靜 열반적정)』



정신을 수양하고 사리를 연구하며 작업을 취사하는 일의 궁극적인 목적은 집착심을 제거함으로서 마음을 맑히고 마음을 밝히며 마음을 올바르게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의 궁극은, 불교적 세계가 표방하는 중생 구원의 실질적인 과제는 집착심을 제거함으로서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아함을 비롯한 반야, 금강, 화엄, 법화의 세계는 바로 마음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집착의 세계가 형성되고 그 집착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지, 그리고 그 집착을 넘어서면 또 어떠한 세계가 전개되어지는지를 밝혀나간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마음공부의 표준, 즉 삼학 수행의 표준은 집착심을 어떻게 제거해나갈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합니다. 자신이 어디에 어떻게 집착하고 있는지를 모르면서 좌선의 일미를 이야기하고 염불의 공덕을 자랑한다면 그가 하는 좌선과 염불은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겉으로 드러난 자신의 능력을 더 내세움으로서 그는 깨달음에 더 멀어지고 맙니다.



정신 수양, 즉 마음을 크게 쉼으로서 定을 기르고 빈 마음을 만들어나가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동정 간에 불리선법이 될 수 없다면 이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홀로 좌선하고 있을 때 - 그것도 적적성성한 선의 일미를 맛보고 있을 때를 기준으로 - 그리고 상대가 드러나지 않을 때는 마음의 청정함을 느끼고 희열에 차 있다가 경계를 만나 마음이 흔들리고 어두워지며 감정의 기폭에 휩쓸려 마음의 근원을 잃어버린다면 그의 수양은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물론 적적성성한 경지에 이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요. 마음이 종잡을 수 없이 제멋대로 움직이거나 혼란스러우면 앉아있어도 오히려 괴롭기 짝이 없습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조는 것이 훨씬 편하지요. 그러니 수양이 될 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습관에 젖어 수십 년을 앉아있는다 해도 그는 마음의 한 자락을 붙잡을 수도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예 포기를 하고 말기도 합니다.

정신수양 즉 定을 함양하는 공부는 실질적으로 생활 속에서 집착심을 제거해나가는데 있습니다. 집착심을 제거하기 위하여 정신 수양을 하는 것이지 다른 목적을 위하여 수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경계를 만나 요동을 치고 혼란스러운 것은 마음을 흔드는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그 원인을 無明 때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無明의 시원이 어디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홀연연기라 말합니다. 홀연히 그 어디에선가 집착을 부르는 그 어리석은 마음이 나타났다고 말이죠. 제가 위에 밝혀놓은 <마음의 원리> 장을 참조하시면 그 집착의 시원이 되는 無明이 어디에서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났는지를 잘 밝혀주고 있습니다. 참조 바랍니다.



정신 수양의 요지는 바로 집착심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입니다.

시간이 나서 조용한 곳에 머물러 좌선을 할 때는 마음을 비움에 그 표준을 삼아야합니다.

그래서 나는 無者 화두를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無는 없다는 無가 아니라 비워져있음을 마음의 눈으로 통찰해나가는 것입니다. 조용한 시간은 상대할 그 어떤 대상이 없기에 몸의 감각기관이 쉴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가 되며 육근이 쉬어짐으로 해서 마음의 비워져있음을 통찰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앉아 있다고 해서, 감각기관이 교류할 수 있는 그 대상 사라졌다고 해서, 마음의 작용마저 쉬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감각의 작용들로 인하여 잠재의식 안에 가두어져있던 대상을 잃어버린 마음의 상들은 몸이 쉼으로 해서 더욱 더 요동을 치기 마련입니다. 끊임없이 심상을 일으켜내서는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묶어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바로 집중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죠. 그 집중의 방법이 호흡이 되었건 관찰이 되었건 화두가 되었건 관계없이 그 심상의 요란함을 지워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염불도 흩어지고 산란한 마음들을 묶어낼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좌선과 염불을 11개 과목 중 정신 수양을 위한 과목으로 채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좌선은 앉아만 있다고 해서 더 깊은 체험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집착심이 얼마나 제거가 되었는가에 따라 좌선의 깊이도 그 차원을 달리합니다. 집착심은 내려놓지도 못하면서 좌선의 일미를 맛보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좌선의 깊이는 그 집착심의 무게와 관계가 깊습니다. 그런데 집착심은 혼자 있을 때 잘 드러나지를 않습니다. 상대를 통하여, 즉 어떤 대상을 통하여 그 집착심은 드러납니다. 몸과 마음이 그 어떤 대상과 부딪침으로 해서 마음의 파장이 일어납니다. 그 파장을 깊이 통찰할 수 있다면 자신이 어디에 어떻게 집착하고 매여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어떤 대상과 부딪침으로 해서 고통스럽고 화가 나기도 하며 자신도 억제할 수 없이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를 깊이 관찰해보면 그 과정을 통하여 마음의 상태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치 엑스레이 사진처럼 마음의 실질적인 움직임들을 살펴나갈 수 있는 것이죠.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입니다. 예전에 스님들이 홀로 깊은 산중에서 수행을 하다가 탁발을 하러 시장에 내려가는 이유는 바로 마음의 흔적을 발견하고 더 깊은 마음의 흐름들을 깨닫기 위해섭니다. 똑 같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바로 자신이 대하고 있는 관계와 그 일들과 그 상황들을 통해서 드러나는 자신의 마음들을 깊이 통찰해나감으로서 자신이 어디에 어떻게 집착하고 매여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그 집착심을 제거해야한다는 그 강력한 목적성에 목표를 두고 있다면 그러한 기회는 그에게 엄청난 도움을 줍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고 실질적인 것은 집착심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그 과정들을 통해서 그를 발견하고 끊임없이 인지하고 있다면 그는 언젠가 자신에게 드러났던 그 집착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동정 간 불리선법인 무시선 무처선은 매우 훌륭한 소태산 그 분의 마음 훈련법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일일시시로 그가 대하고 있는 관계와 일과 상황 속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통찰하고 그를 통하여 집착심을 제거해나간다면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생활선이자 정신수양의 참된 의미일 것입니다. 시간이 있을 때는 정좌하여 마음을 비우고 마음의 근원성을 통찰하며 마음이 일을 당해서는 마음의 작용과 그 흐름들을 인식하고 마음의 본질, 즉 그 허상을 통찰해나아가라!

이것이 바로 정신 수양의 요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리연구의 목적은 집착심이 어디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깊이깊이 통찰해나감으로서 몸과 마음의 원리를 깨닫는데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대상을 넘어서 다른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즉 사랑에 눈이 먼 사람들은 오직 그녀 그이만이 관심의 대상이지 다른 이들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것에만 관심을 둘 뿐 그 외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일과 사물의 이치나 세상사가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잘 알 수 없는 것이죠. 집착하는 대상에만 관심을 둔다면 실은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쳐나가는 그러한 존재요소들과 그 변화에 눈을 뜰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변화와 존재의 실상에 대하여 알 수가 없습니다. 존재의 원리를 알 수가 없기에 그 어떤 대상에 대한 지식은 있을지 몰라도 전반적인 세계를 통찰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기는 어렵습니다. 사리연구는 일과 이치를 연구하여 존재의 원리를 깨닫는 일이지만 이 또한 그 길을 찾아내지 못하면 마음의 주변을 빙빙 돌 뿐 참다운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일과 이치는 바로 마음에 관한 일과 이치를 말합니다. 물론 주어진 세계 - 즉 우주와 지구와 생명과 역사등 - 를 관찰하고 비교 분석하고 깊이 연구해나감으로서 지혜를 터득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자칫 마음의 근원을 벗어나면 그가 아는 것은 지식에 불과할 뿐 영혼의 자유로움으로 인도하는 지혜의 빛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앎에 묶이고 그 앎에 집착하기에 권위와 권력적 속성을 벗어날 길이 없게 됩니다. 따라서 몸과 마음의 원리를 터득하고 통찰해내지 못한다면 그는 올바른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집착심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상관관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일이기에 그 집착심의 일어나고 사라져가는 그 전 과정을 깊이깊이 통찰해나가는 일이 바로 사리연구의 핵심이 됩니다. 그 아무리 경전을 외우고 의두와 성리에 밝다고 해도 그 몸과 마음의 원리에 의해서 드러나는 그 집착의 전 과정을 올바르게 통찰할 수 없다면 그는 올바른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의 앎이 칼날이 되어 수많은 이들을 어둠 속에 묻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앎이 오히려 집착의 원인이 되어 질 수도 있는 것이죠. 따라서 일과 그가 처한 상황과 그가 대하고 있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의 작용을 깊이 세밀하게 통찰하고 그에 따라 스스로 그 몸과 마음의 원리를 깨닫는 것이 사리연구의 핵심이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이 어디에 어떻게 집착해있으며 또 그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쌓아올린 그의 경험과 체험은 그를 원하는 많은 이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자신이 경험하고 체험해본 길이기에 다른 이들의 상태를 이해하고 온전히 바라봐 줄 수 있으며 그를 통하여 올바른 안내를 해줄 수 있습니다.

사리연구는 존재하는 세계의 실상과 허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는 공부입니다. 이는 경전의 뜻을 믿고 따른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닙니다. 경전의 의미는 그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 그 깊이와 차원을 달리 하기 때문에 그 경전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을 더욱 더 깊이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삼아야합니다. 그냥 믿고 말씀을 따른다고 해서 그것이 교조의 말씀을 올바르게 이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크게 낭패할 일입니다. 수행자는 더욱 더 깊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통찰해감으로서 또 다른 깊이와 폭으로 자신의 의식을 확장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전의 의미도 자신의 영적인 성장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그 말씀에 묶여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그는 자칫 길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쌓아올린 장벽에 갇혀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리연구, 즉 지혜를 얻고자 하는 이는 끊임없이 자신의 앎과 행위를 비쳐 보아야합니다.



끊임없이

왜?

왜 그러한 것인가?

나의 앎이 진실한 것인가?

나는 근원에 이르렀는가?

나는 그 모든 경계로부터 자유로운가?

살려주는 마음으로 살았는가?

존재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가?

과연 진리란 무엇인가?

부처란 무엇인가?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는 진정 무엇일까?

무시선 무처선을 어떠한 심법이며 행법일까?

등등

끊임없는 회의와 물음을 통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자신의 앎과 행위들을 살펴보아야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냥 무턱대고 믿고 따르는 일이 무척이나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미혹으로부터, 맹신으로부터, 자기적 체험으로부터 벗어나고 진정한 깨달음을 행하기 위하여 멈추어질 수가 없는 구도의 과정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겪어나가면서 비로소 진정한 앎, 즉 지혜의 문을 두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자신의 두발로 걸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 누구에게 의지하거나 의존하지 않고!

그리고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하면 비로소 주변이 보이고 세상이 보이고 일과 이치에 눈이 떠집니다. 알려고 해서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 집착으로부터 벗어난 만큼 세상이 드러나 보이게 됩니다. 인위적인 앎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지혜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 무엇엔가 집착해 있음으로서

관심은 당연히 그 집착의 정도만큼 그 대상에 기울어질 것이고

그에게 보여지는 세계 또한 그 만큼 밖에 열려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세상은 그에게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만큼만을 보여줄 뿐입니다.

올바른 지혜는 집착을 벗어버림으로서 존재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존재 상태를 온전히 통찰해냄으로서 존재 세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없는 세계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집착심으로부터 벗어남으로서 존재의 세계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리연구의 올바른 수행방법인 것입니다.



작업취사는 실질적인 행위에 관한 수행을 말하며 그 역시 집착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에 그 목적을 두어야합니다.

원불교 정전에 『작업이란 함은 무슨 일에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을 작용함을 이름이요, 취사라 함은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림을 이름이니라』하였습니다.

육근 즉 몸과 마음을 사용할 때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정의란 무엇일까요?

자칫 정의를 사회적 혹은 역사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면 작업취사의 요지는 그 목적성을 상실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작업취사는 마음의 근원을 밝혀나가는 수행이 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러한 사회적이며 역사적인 정의와도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마음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이나 역사적 관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한 올바른 견해가 필요합니다. 그 기준을 올바르게 세워놓지 못하면 자기적 견해에 따라 정의는 자의적으로 해석되기 쉽습니다.

마음의 근원성을 찾아나가기 위한 방편으로서 삼학을 이야기하고 그의 수행을 말하고자 한다면 정의는 곧 집착심을 놓아버림으로서 드러나지는 올바른 관계의 정립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집착심은 이기심을 낳습니다.

이기심은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를 해석하며 따라서 관계는 언제나 마찰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기심을 버린 사람은 극소수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이기심과 이기심이 충돌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둘 사이에 일어나는 파장을 해석하려고 합니다.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면 그 둘은 서로서로 충돌의 희생자가 되기 마련이고 그들에게 정의란 드러날 수 없습니다.

정의란 이기심을 버리고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과 연민의 마음이 있는 이들에게서나 드러날 수 있는 성숙한 마음의 상태가 드러나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바로 집착심을 내려놓고

그 집착심을 내려놓음으로서. 존재하는 세계의 실상을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있는 그대로를 바라봄으로서, 세계를 포용하고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바로 이기심을 내려놓음으로서 관계를 사랑과 자비로 이어줄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이기심의 원천은 자기 집착이며 이러한 자기 집착은 탐.진.치(탐욕, 성냄, 어리석음)라는 삼독심을 관계 속에서 발현하게 합니다. 불의, 즉 올바르지 못한 행위의 원천을 만들어냅니다.

따라서 작업취사는 그리 어려운 공부가 아닙니다.

즉 생활 속에서 집착심을 발견하고 그를 발견하면 즉시 내려놓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일단 집착심을 발견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발견했다하더라도 쉽게 놓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강력한 의지와 열망과 열정은 필수불가결한 준비과정입니다.

나는 꼭 내 존재의 끝을 보고 말리라!

나는 부처를 꼭 이루고 말리라!

나는 이렇게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

나는 내가 주인이 되어 세상을 창조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나는 내가 행복의 주인공이 되어 우리 가정을 세상에서 낙원으로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 어떤 나름의 확고한 의지와 열정이 있어야합니다.

마치 죽음의 경계에서도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그 의지의 산악인들처럼!

그러한 마음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면 애초에 삼학 수행은 그 올바른 길을 걸어 나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쌓아놓게 되고 자신에게 편하고 좋은 쪽으로 나아가다보면 그는 마음이 가야할 올바른 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등반가에게 희열은 남들이 볼 수 없는 세계를 스스로의 힘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생각 속에 세상을 그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오감으로 신비로운 세상을 경험하면서 자기 성취의 기쁨을 만끽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음공부나 삼학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존재 세계의 실상을 스스로 경험해나감으로서 보여지는 세계의 신비로움과 조화로움, 그리고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창조적으로 그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움이 그에게는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마찰과 충돌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입니다. 삼학수행을 실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입니다. 바로 내가 어디에 어떻게 집착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작업취사의 표준은 생활 속에서,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해나가면서 옳은 것은(德) 취하고 이기심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여행하는 것입니다. 여행을 하다가 걸리거나 막히는 것이 있으면 깊이깊이 탐구하여 왜 그러한 것인지를 깨닫고 어떻게 구속된 상황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탐구하면서 그 벗어나는 길을 발견하면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이타적인 마음을 취하면 됩니다.

작업취사의 요점은 바로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는 일입니다.

불의를 제거하는 일은 근원적으로 이기심과 자기중심적 생각을 버리는 일입니다.

바로 그 뿌리인 집착심을 제거해나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집착심을 제거해나가면

나와 너를

하나의 마음으로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 하나의 마음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마음

그리고 연민의 마음으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해줌으로서

관계는 따뜻함으로 서로를 살려주게 됩니다.

포용하고 품어주고 살려냄으로서 관계는 아름답게 꽃이 핍니다.

내가 대하고 있는 일과 그 사람 사이에서

품어주는 마음

포용하는 마음

살려내는 마음이 아니거든

반드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깊이깊이 통찰해 보아야합니다.

왜 그러한 마음이 되지를 못하는가를 깊이깊이 바라본다면

당신은 당신이 볼 수 없었던 그 무명의 어두운 마음들, 즉 자신이 인식할 수 없었던 집착심의 뿌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얽어매고 있던 그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지속하다보면 어느새 당신은 자유로운 영혼 따사로운 영혼을 지닌 아름다운 사람으로 변해있을 것입니다.



삼학 수행은 따로 떨어져있는 공부가 아닙니다.

그 셋은 하나의 공부 과정이며

그 하나의 과정 속에

그 셋이 다 함께 합니다.

정기훈련법에 나타난 삼학수행 11개 과목은 따로 떨어져있는 공부들이 아니며

충분한 시간을 내어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을 때

그 기본적인 토대를 구축해나갈 수 있는 훈련법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처해있는 삶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치열할 생존경쟁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먹고 산다는 자체가 가진 이들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겠지만 가진 것이 없는 이들에게는 매우 고달픈 일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서 지켜내지 못하면 가족은 자칫 해체될지 모르는 위기상황 속에서 살아나가는 이들이 우리의 주변에는 가득합니다. 치열함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교도님들은 이렇듯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던져 가족을 지켜나가기 위하여 애를 쓰는데 의식주 걱정 없이 살아가는 구도자들이 치열하게 수행해나가지 못하고 그들의 정신적인 의지처가 되어줄 수 없다면 그 빚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구도의 끝은 결국 사랑과 자비 그리고 연민의 마음을 발현하는 것입니다.

삼학 수행의 끝 역시 배려와 존중 그리고 사랑과 자비의 마음입니다.

구도자가 생활 속에서 그 마음을 발현하지 못한다면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더욱 깊이 통찰해내야 합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하여 수행을 하고 신앙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더불어

내가 관계하는 그들과 소통하고 나누기 위하여 구도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무언가를 향해서 수직적으로 나아가 지혜의 빛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라면

사랑과 자비는 수평적인 나눔의 길입니다.

구도의 끝은 그 수직선과 수평선이 만나는 지금 이곳에 있습니다.

지혜는 결국 사랑과 자비의 길을 찾아나가는 것이며

사랑과 자비의 길은 결국 지혜를 통하여 완성됩니다.

지혜 없는 사랑은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이기적인 소유욕을 사랑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죠.

또한 따뜻함이 없는 지혜는 지혜라 할 수 없습니다.

자신 안에 가두어놓은 앎은 따뜻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는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집착심을 내려놓는 그 모든 작업들!

그 일을 그 무엇이라 부르든 그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 작업이 어떤 종교, 어떤 영적 그룹들 사이에 일어나든지 관계가 없습니다.

내가 가는 길이 더 좋은 길이라고 다툴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길을 나는 과연 올바르게 걸어가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자유롭고 따뜻한 마음들이 서로 전해질 수만 있다면

그 안에서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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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입문을 위한 강화 <13>

기자명 조정중
입력 1974.08.25


진리란 무엇인가 Ⅲ-그 신앙을 중심으로
우주만유와 만법의 근원되는 원리를 신앙의 대상
사은 실체는 법신불의 화신으로 사실적으로 감응

생멸거래 간에 심신작용에 따라 인과응보가 나타나 진리란 무엇인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보다는 오히려 진리를 어떻게 참되게 신앙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더 부심해야 할 관심사가 현대 지성인들에게 요청되는 과제가 아닌 가 본다. 진리를 사고하는 지각과 진리를 행하는 실천이 일치하기 어려운 것이긴 하나 현대인의 생활은 너무나 심한 知와 行의 거리감을 지니고 있다. 대개의 경우 종교적 신앙을 통하여 모시고 받드는 가운데 경전은 심상으로 진리를 터득하려 하지 아니하고 철학적 사유를 통하여 인식하려 하기 때문에 결국 속 깊은 진리의 심연에 이르지 못하여 진리를 다툴만한 소지와 신념과 힘을 갖추지 못하고 오히려 진리를 경시하는 경향에 흐르게 되었다. 동서양의 진리는 필요 한계를 넘을 만큼 너무 구체적으로 분석 소개되어 사람마다 진리의 개념파악 정도는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사회상은 참이 실현되지 못하고 허위와 원망의 가면이 세를 더해가고 있는 현실은 바로 우리 개개인의 심중에 진리를 존중하게 받드는 신앙심이 없는 데 기인한다. 진리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지각하는 것은 진리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주관적인 입장에서 진리를 체 받고 모시는 것은 진리에 대한 종교적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과학적 이해와 종교적 신앙이 병행될 때 비로소 바른 믿음과 바른 앎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이러한 正信 正覺을 기초로한 참된 마음바탕과 생활기조 위에서 올바른 진리 실천도 나오게 된다. 대종사께서는 법신불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게 함으로써 종교적 진리신앙의 길을 열었고, 법신불사은을 신앙의 강령으로 밝힘으로써 과학적 진리파악과 실제적 실용성의 문을 열게 되었다.

먼저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진리는 무엇인가 생각하여 본다. 사람들은 자기 상황에 따라 여러 방향에서 발심하고 신앙하게 되지만 이를 종합하여 보면 ①안정과 해탈을 얻기 위하여 ②완전무결한 지혜를 얻기 위하여 ③구족한 은혜를 얻기 위하여 ④지극한 경지에 이르기 위하여 신앙하게 된다. 구함을 해결해주는 진리는 양면적인 모습을 갖는다. 즉 절대적 하나인 동시에 보편적 다수이며, 본체이면서 현상적이며 영원이면서 순간적이며 객관적이면서 주관적이며 불변의 無인 동시에 가변의 有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절대적이요, 근본적인 면을 주체로한 진리 표현을 「법신불일원상」이라 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보편적이요, 현상적인 면을 주체로한 진리표현을 「법신불사은」으로 하여 신앙의 강령 즉 신앙 방법의 표준으로 세웠다. 법신불일원상은 신앙의 대상이 될 세 가지 방향의 진리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어느 특정인격이나 한 물건을 신앙치 아니하고 우주만유 허공법계 전체를 신앙하는 것으로 이는 개체의 특성을 믿는 것이 아니고 우주만유와 만법의 근원이 되는 원리를 신앙의 대상이 되는 진리로 믿는 것이요 둘째, 모든 형식이나 가식의 신앙을 떠나서 자연계에 나타나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현상 즉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실체는 곧 법신불의 화현이며 법신불의 권능을 가지고 있음으로 사실적으로 감응할 수 있는 진리를 신앙의 대상이 되는 진리로 믿는 것이요 셋째, 미신적인 토속신앙이나 요행신앙을 떠나서 생사거래 간에 심신작용에 따라 인과응보가 있게 되어 하면 한만큼 되고 가면 간만큼 오는 진리를 신앙의 대상이 되는 진리로 믿는 것이다. 이어 신앙의 강령인 법신불사은의 진리면을 살펴본다. 사은에 있어서의 진리는 인과보응의 진리가 주체가 되고 신앙은 진리적 사실신앙에 연관 지을 수 있다. 우주에 유형무형의 일체 존재자는 진리를 갊지 않는 바가 없으므로 곧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부처요, 불생불멸로 인과보응의 권능을 행사하는 진리이며 죄복을 직접 주재하는 생불인바 우주만유가 생성 발전하는 데 있어 서로 바탕이 되고 근원이 되며 도움이 되어서 피차가 없어서는 생존할 수 없는 관계를 恩으로 천명하여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하고 사은을 신앙의 강령으로 정하였다. 사은의 진리면에서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은혜의 진리요, 둘은 보응의 진리이다. 대종사께서는 사은을 정하시고 사은으로부터 은혜를 입었으니 보은하라 하셨다. 사은으로부터 은혜도 입고 해독도 입고하는 것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은혜만을 입었으니 의무적으로 보은하도록 한 것이다. 사은으로부터의 被恩은 한량없는 것이지만 한편 피해의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면 그도 또한 견줄만한 비중에 이른다. 그러나 삼대력을 갖추어 솔성을 순리자연하게 하는 경우 해독과 죄업은 경미한 것이며 그나마 숙세에 지어 놓은 업과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사은의 전체적인 은혜는 은혜다 해독이다 하는 상대적 위치의 은혜가 아니고 大悟의 경지에서 체험할 수 있는 지극한 경지의 은혜를 말한다. 그러므로 사은께서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순역경계에 구애 없이 근본적으로 은혜를 베풀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혜는 진리에 근거한 것이며 또한 사은께서 은혜를 베푸는 것은 근본적 진리이다. 사은은 또한 보응하는 진리가 있다. 陰陽相勝의 원리에 의하여 가는 자는 오게 하고 오는 자는 가게하며 惡因은 惡果로 보응하며 강자약자의 진강급과 사시의 순환원리 등은 사은의 근본진리이다. 진리가 무엇인가 추구하는 것은 진리에 대한 참된 믿음과 같이하여야 한다.


조정중 webmaster@wonnews.co.kr

2020/09/25

Yoo Jung Gil 종교인기후행동선언문 기후위기를 대전환의 희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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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기후행동선언문>
기후위기를 대전환의 희망으로
지금 우리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상승하면서 극지방의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며 해양생태계는 붕괴되고 있습니다. 기록적인 폭염과 혹한, 대규모 산불과 가뭄, 강력한 태풍과 폭우, 토양이 황폐화되고 사막화가 확대되어 농업생태계도 위기에 처했으며,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온난화를 막아줄 산림은 급속히 줄어들고, 생물종 다양성이 파괴되고 있을 뿐 아니라, 기후 불평등이 심화되어 수천만의 기후난민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46억년 지구의 역사에서 최근 200여년 동안 인간에 의해 발생된 일입니다.
우리 스스로 돌아보며 회개합니다.
이 위기는 모든 생명과 만물이 관계 맺고 의존한다는 진실을 깨닫지 못하고, 나누고 차별해온 우리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연결된 세계에서 모든 생명은 확장된 자신입니다. 이웃의 고통은 곧 자신의 고통이며, 뭇 생명의 죽음이 곧 자신의 죽음임을 깨닫지 못한 우리의 무지가 그 원인이었음을 깊이 참회합니다.
함께 누려야 할 자원을 소수의 부유한 나라들이 독식했고, 미래세대들이 써야 할 자원까지 빼앗아 현세대의 탐욕을 채워 왔으며, 천지자연의 은혜를 잊은 채 배은의 삶을 살아온 것을 깊이 반성합니다. 더욱이 우리 종교인들은, 가난한 삶과 무소유의 근본 가르침을 저버리고, 욕망의 사회를 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편승하고 부추기며,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고 이를 위해 자신의 신앙마저 왜곡하고 이용하는 큰 죄를 저질러 왔음을 깊이 참회합니다.
우리 종교인은 다음과 같이 다짐하며 선언합니다.
모든 종교는 파국적인 기후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인류의 양심을 회복할 윤리와 도덕을 새롭게 정립하고 사랑과 자비, 은혜와 공경의 보편적인 가치를 발휘하여 지구생태계를 살리는 길에 모든 방법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관계변화의 정립을 위해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첫째, 더 이상 물질적 경제성장이 인류의 발전을 대표해서는 안되며, 자연의 유한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모두가 연결된 존재임을 깨달아, 서로를 살리는 사회적 관계로 재편되어야 합니다.
둘째, 자연에서 인간이 주인이 아니며 모든 생명들이 지배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평등한 존재로서 그들 고유의 권리가 존중되는 자연과의 관계로 새롭게 재편되어야 합니다.
기후비상사태 극복을 위해 긴급한 대응을 제안합니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시간이 우리에게 불과 10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시간 동안 온 세계가 산업시스템을 비롯한 정치와 경제, 문화 모든 영역에서 ‘신속하고 광범위한 전환’을 이루어내지 않으면 모든 생명들이 대멸종의 파국에 이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긴박한 상황에도 한국과 세계의 정치, 경제인들은 오로지 경제성장과 자국의 이해에 한정된 단기적인 관심사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은 기후악당국가라는 심각한 비난을 받고 있음에도 획기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 미온적인 대응에 머물고 있습니다.
정부는 세계 각국과 힘을 합하여 전 지구적인 정책 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며,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힘을 모아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대전환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이에 우리는 정부가 기후위기를 비상사태로 선언하고 총체적인 대응을 위한 범국가기구를 설치할 것을 강력히 제안합니다.
우리 종교인들은 기후위기의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와 정부가 근본적이고 거대한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협력해 나갈 것이며, 저마다의 교리에 근거하여 개인이 할 수 있는 작은 변화의 실천을 소중히 여기면서 동시에 큰 변화와 전환을 이루기 위해 다음과 같이 행동하겠습니다.
우리 종교인들은 생태위기의 해결을 위해 실천하고 행동하겠습니다.
많은 것보다는 적은 것, 큰 것보다는 작은 것,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에서 함께 하며 깊은 영성과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임을 깨닫고 실천하겠습니다. 또 천지부모의 모든 은혜에 감사하며 생명평화의 세계를 만드는 일에 매진하겠습니다.
특히 기후위기의 해결을 위해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이용하여 탄소중립의 사회가 되도록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또한, 환경교육을 통해 기후위기를 널리 알리고 이웃 생명과 미래세대를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며, 생태적 정의를 세우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행동에 적극 나서겠습니다.
우리 종교인들은 위기를 대전환의 희망으로 만들겠습니다.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우울한 파국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평화를 위해 희망찬 세계를 향한 밝은 기회이며, 굴절된 삶을 올곧게 펴는 거대한 전환의 계기임을 확신합니다. 환경위기와 코로나19는 인류에게 바로 그러한 전환을 촉구하는 절박한 신호입니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과정은 두려움과 혼란이 아니라 미래세계를 위한 적극적인 창조임을 확신하며, 우리 종교인들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공동의 규범과 지침을 만들어 행동할 것을 다짐합니다.
2020년 9월 22일
기독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천주교
종교인 일동
...........
저는 선언문 초안작성과 논의를 통해 완성하는 일, 그리고 당일 종교인 대화마당 진행사회를 보았습니다. 각 종교단체의 실무진들이 애를 많이 썼고. 특히 간사를 맡은 원불교환경연대가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You, songsoonhyun, 강길모 and 104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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