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0

[김조년] 여행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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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여행을 하면서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6.05.26 
한남대 명예교수

바람 따라 흐르는 구름처럼, 물길 따라 흐르는 물처럼, 길 따라 걸어가는 나그네처럼 스스럼없고 여유 있는 여행을 하고 싶을 때가 많다. 나는 이번에 한 달간 길고 큰 여행을 하였다. 영국의 지극히 작은 부분과 독일의 몇 점을 보고 생각하였다. 땅을 보고, 하늘을 보며, 사람을 만나고, 느끼고, 관찰하고, 흐르는 역사와 달라지는 사회를 맛보면서 지냈다. 자리 잡고 살던 낯익은 곳을 떠나 낯설고 물설은 곳으로 간다는 것은 큰 사건임이 분명하다. 매일 매순간 만나고 생각하고 관계하던 것들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다시 경험하면서, 할 수만 있다면 즐겁게 지내고 싶었다. 삶은 지금 내가 있는 곳 여기에서 끝없이 이어져 나간다. 두고 온 곳이 지나간 것들이요,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곳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지만,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든 지금 여기에 내가 있는 것이 내 삶임은 분명하다.


독일에 살고 있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의 식구들, 그러니까 사위와 며느리와 손녀들을 만나러 가는 것은 어려서 소풍 갈 때의 설렘이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영국 런던에서 개최되는 영국 퀘이커들의 연회에 참석하고, 퀘이커들이 처음 활동하고 의미를 찾아가던 곳, 그러니까 퀘이커운동을 시작하던 때 조지 폭스(George Fox)가 큰 깨달음을 얻고 일생을 던져 불같은 삶을 살게 한 펜들힐(Pendle Hill)을 가보았고, 그에게 영향을 받고 그를 돕고 나중에 부부가 된 마거릿 펠(Margaret Fell)이 퀘이커의 기초를 단단히 하던 스와스모어 홀(Smarthmoor Hall)을 가보았다. 그런 곳에 간다고 그들이 깨달은 그것이 나에게 오는 것도 아니고, 그 놀라운 삶이 나에게 불붙듯이 다가오는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의미 있다는 곳을 찾으면서 나를 다시 점검하여 본다는 것은 매우 좋았다. 그 여정을 함께 한 영국에 살고 있는 친우들을 통하여 그들의 퀘이커답게 살아가는 모습, 찾아온 친구를 맞이하는 모습에서 아름다운 삶을 맛보았다. 이것들은 내 나름으로는 사사로운 여행이면서 또한 공공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것들이었다.

그런 다음 독일에서 우리 식구들끼리 시골에 있는 소박한 호텔에서 함께 휴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었다. 성숙한 삶을 사는 딸과 아들, 싱싱하게 자라는 손녀들을 보면서 생명의 흐름을 보았다. 휴가 하는 곳에 가까이 있는 종교개혁 당시 마틴 루터와 쯔빙글리가 기독교의 핵심을 두고 치열하게 논쟁하였다는 마르부르크성과 그 아래 있는 교회를 둘러보고, 귀하고 중요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새롭게 생각하여 보았다. 우리 부부가 오래도록 일하고 공부하면서 머물던 대학도시 괴팅엔에서 옛 친구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회포를 푼다는 것 역시 참 귀한 일임이 분명하다. 거기서 찾아지는 낯익은 듯 낯설고, 낯선 듯 낯익은 거리와 땅과 집과 사람들의 생활행태에서 세월이 그렇게 함께 흘렀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다 같은 삶을 누리지만 낯설게 느끼는 것은 무엇이며, 다르게 살아가는 행태를 보면서 낯익은 내 일상을 만지고 보는 듯한 느낌을 가지는 것은 착각일까 아니면 실제로 다가오는 일상일까? 여기에 가면 이런 것이 보이고, 그것에 따른 굉장한 느낌과 생각들이 떠오르다가 지나가고, 저기에 가면 또 다른 것들이 그렇게 왔다가 지나간다. 이 사람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저 사람에게서 또 다른 듯 같은 흐름 속에 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같은 시대를 이렇게 소리 없이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1960년대 중반부터 한국인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독일에 많이 갔다. 특히 루르지역은 독일의 탄광지역으로 철강산업의 기초를 다지고 이끌던 곳이다. 거기에서 우리에게는 가족같이 귀하게 여기던 친구 부부를 만났다. 형과 동생, 언니와 동생처럼 느끼는 그들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아주 편안히 휴식하는 시간을 가졌다. 거기에는 가짜 광부로 와서 그 어렵고 무서운 석탄광에서 젊음을 불살랐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거기에서 마침 매주 목요일마다 모여서 함께 먹고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고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염원하면서 활동하는 분들을 만난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었다. 나는 고국에서 왔다는 것 때문에 그분들 앞에서 몇 마디 이야기를 해야 했다. 변변치 않은 내 삶을 이야기했다. 진솔하게 던지고 싶으나 어둔한 내 말에서 어떤 실마리를 잡아서 이런 저런 질문들과 대답들이 매우 진지하고 깊었다. 그분들의 삶의 흔적과 지금 집중하여 파고드는 생각과 관심을 볼 수 있었다. 처음 왔을 때의 어려웠던 자신과 조국의 모습과는 달리, 지금은 격이 달라진 생각과 관심과 의미를 느끼면서, 고국의 진정한 삶의 질의 변화와 통일과 평화를 갈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감동스러웠다.

여행은 한 두 점 내게 잡히는 것을 느끼고 스치게 할 뿐이다. 시대의 변화를 무엇으로 잡고 바라보아야 할까? 왜 사람이 사는 나라, 사회는 흥망과 성쇠와 명멸을 반복하는 것일까? 영국과 독일은 산업혁명 이후 세계의 새로운 산업을 이끌던 곳이다. 그런 지역들을 지금 가보면 열악하고 낙후되어 어려운 경제생활을 하는 곳이 많다. 이것들도 물같이 흐르고,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새로운 곳에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끝없이 흐르고 흐른다. 어느 권력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어느 부강한 국가도 영속하는 것이 아니다. 근 1500m 이상 땅을 파고 들어가 석탄을 캐오던 탄광은 폐쇄됐지만, 그곳을 물로 채우지 않으면 땅이 허물어져 내리기 때문에 끝없이 펌푸작업을 하여야 하는 것은 또 다른 몸부림이다. 보쿰(Bochum)에 있는 석탄광박물관을 안내하는, 그 아버지가 광부였다는 안내자의 말이 인상깊다. ‘이렇게 깊은 탄광 속에서 이차대전 때 이 주변 사람들이 방공호로 삼아 생존을 유지했습니다. 어떤 전쟁도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물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흐르고 지나간다. 그런 속에서 품위 있고 의미 있는 삶을 같이 꾸리고 나가는 것은 어떠해야 하는 것일까? 지금 잘 살게 되었다는 우리나라의 삶의 질은 어떤 모습으로 흐를까? 나는 내내 그 생각에 잠겨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