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0

유관순 열사 키운 우리암 선교사 아시나요 휴심정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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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 키운 우리암 선교사 아시나요

등록 :2022-08-10

조현 기자 
공주영명학교 세운 프랭크 윌리엄스
1940년 일제 강제추방…2년 뒤 폐교

한국선교유적연구회·기독실업인회
미국 12개 도시 사는 후손 27명 초청
8·15 광복 77돌 특별 감사 연합예배

프랭크 윌리엄스, 한국 이름 우리암 선교사. 한국선교유적연구회 제공

일제강점기에 서양 제국주의자들은 선교사들에게 독립운동과 같은 현실참여를 못 하도록 교회에서 정교분리 원칙을 지킬 것을 명했다. 이때 나라 잃은 조선 사람들을 남몰래 도운 선교사들도 있었다. 충남 공주영명학교를 1906년 설립해 1940년 강제추방(1942년 폐교)될 때까지 교장을 지낸 프랭크 윌리엄스(1883~1962·한국 이름 우리암)와 그의 아들 조지 윌리엄스(1907~1994·한국 이름 우광복) 부자가 대표적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몸 바치는 애국자를 기르자’를 교훈으로 내건 우리암 교장은 앞서 영명여학교를 세운 사애리시(샤프) 선교사와 함께 2학년까지 다닌 유관순 열사가 서울 이화학당으로 편입하도록 주선해주기도 했다..

윌리엄스 부자의 헌신과 사랑을 잊지 않고, 그들의 후손들을 초청하는 보은 행사가 펼쳐진다. 한국선교유적연구회는 오는 12일부터 22일까지 10박11일 일정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우 선교사 부자의 후손 27명을 초청해 다양한 감사 행사를 진행한다.

공주대 총장을 지낸 뒤 한국선교유적연구회를 통해 기독교 선교 유적을 과학적으로 보전하고, 나아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운동을 펼치고 있는 서만철(67) 회장은 “부자 선교사의 헌신이 알려지면서 의정부와 공주의 기독실업인까지 나서 미국 12개 도시에 흩어져 사는 두분의 자손들을 초청해 두분을 기리고 보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1937년 일제강점기 공주영명학교 출신들이 우리암(앞줄 오른쪽 다섯째) 선교사를 기리기 위해 흉상 제막식을 한 뒤 기념 촬영한 모습. 한국선교유적연구회 제공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추방되기 직전 공주영명학교 교사·학생들과 기념 촬영을 한 우리암(앞줄 왼쪽 여섯번째). 이어 1942년 학교는 문을 닫았다. 한국선교유적연구회 제공.

서 회장은 “우리암 선교사는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된 뒤 인도 가지아바드에 농업학교를 설립해 5년간 머물렀는데, 이때 인도에 있던 영국군사령부에서 광복군들을 상대로 영어교육을 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그는 “당시 버마(미얀마) 전선에서 영국군에 배속된 광복군이 일제 통신을 감청하는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우리암 선교사가 뒷받침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말을 덧붙였다. “우리암의 막내 아들인 로버트 윌리엄스(한국 이름 우귀복)가 미국에 보낸 서신을 보면, 1937년 공주영명학교 출신들이 우리암 선교사를 기리기 위해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을 상징하는 33개의 돌을 깎아 받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 우리암의 흉상을 세웠는데, 태평양전쟁 때 일제가 포탄을 만들기 위해 이 흉상까지 공출해갔다”고 그는 덧붙였다.

아버지에 의해 ‘우리나라의 광복’을 의미한다는 뜻의 이름을 얻은 우광복은 공주영명학교에를 다니다 14살 때 미국 콜로라도로 돌아가 의사가 되었고, 1945년 광복이 되자 미 해군 군의관에 자원해 다시 한국에 왔다. 그때 우리암 선교사도 함께 돌아와 미군정청 농업 고문을 지냈고, 우광복은 하지 사령관의 통역 등 사실상 비서실장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특히 우광복은 하지 사령관의 요청으로 미군정과 함께할 한국인 50명을 추천했는데, 이 가운데 48명이 기독교도였다. 이런 이유로 그는 미군정 시절 소수파였던 기독교가 남한에서 실권을 얻는 데 주요한 기여를 한 인물로 손꼽힌다.





지난해 9월 영명학원과 ‘우리암·우광복 선교사 기념사업’을 위한 협약식을 체결한 한국선교유적연구회와 기독실업회 회원들. 한국선교유적연구회 제공

두 선교사 부자의 후손들은 오는 14일 오후 2시 공주영명중·고 교내 영명학당에서 ‘8·15 광복 77주년 기념 특별감사연합예배’를 드리고, 다음날인 15일 오후 2시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기독실업인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우리암·우광복 선교사 후손 초청 감사 행사’에 참석한다. 부산 벡스코에서는 전국 기독실업인 행사가 열리는 오는 15~16일 이틀간 ‘우리암·우광복 선교사 사진전’도 개최된다.



1910년대 공주에서 살던 시절의 우리암(뒷줄 왼쪽) 선교사 가족. 맏아들 우광복(앞줄 가운데)과 딸 올리브(앞줄 오른쪽)은 공주선교사묘역에 잠들어 있다. 공주시 제공

후손들은 16일 공주제일교회와 공주선교사묘역 등을 순례한다. 공주선교사 묘역엔 우광복 선교사와 그의 여동생 올리브가 나란히 묻혀있다. 우광복 선교사는 1994년 미국에서 별세하기 전 한국에서 11살 때 세상을 떠난 여동생 올리브의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후손들은 17일 공주영명중고에서 ‘프랭크 윌리엄스 학술대회’와 사진전에 참석한 뒤 18일엔 유관순 유적 등을 돌아본다. 이어 19일 서울로 이동해 국회와 세브란스와 판문점 등을 구경하게 된다.

지난해 9월 영명학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한국선교유적연구회와 기독실업인회의 충남연합회·의정부지회·공주지회 등은 ‘우리암·우리복 선교사 기념사업’을 위해 앞으로도 기념 사업을 함께해 나가고, 선교사 묘역과 선교 유적도 공동 관리해가기로 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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