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6

알기쉬운 주역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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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주역풀이> 
1. 역易이란 무엇인가?
◆ 주역周易이란 무엇인가?
주역은 책의 이름이다. 춘추시대 주周 나라에서 편집된 역易이라 하여 주역 周易이라 한다. 그럼 역易이란 무엇인가? 본래는 나라의 큰일을 앞두고 길흉 을 점치는 일을 역이라 하였다. 천지의 변화와 자연의 징조를 보고 길흉을 판단하는데 점차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생각이 들어가서 오랜 경험과 더불어 체계화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 역이다. 다시 말하여 축적된 역사적 경험과 문화를 바탕으로 뛰어난 지혜를 얻은 성인이 여러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64가지 상황적 이야기로 체계화하여 역이라는 책으로 편집한 것이다. 물론 한 사람이 한번에 저술한 것이 아니고 수백년에 걸쳐 여러 편집자들이 손에 의해 오늘날 보게 되는 텍스트로 정리된 것이 주역이다. 따라서 역에서는 성 인의 마음이 나타나 있는데 성인의 지혜를 기호와 상징으로 표시한 것이 특 징이다. 즉 역에는 성인의 마음이 나타나 있다. 그래서 역경이라 한다. 역은 경전이다. 이렇듯 성인의 마음과 뜻을 드러내자는 책이기에 역에는 성인의 마음을 통해서 보는 우주와 만물의 이치를 볼 수가 있다. 
송나라 시절 신유학자들은 주역을 유교의 가장 높은 경으로 숭상하면서 그 역사를 옛날 태고의 복희씨부터 전해오던 것을 주나라의 문왕과 주공이 체 계화하고 공자가 거기에 철학적 설명을 덧붙였다고 한다. 공자 당시에는 종 이가 없을 때라 대쪽에 부호와 글자를 새기고 글을 새긴 대쪽을 모아서 가 죽끈으로 묶어 죽간이라는 책으로 만들었다. 죽간으로 된 책을 묶은 가죽끈 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공자는 주역을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 공자의 위편삼절韋編三絶란 말이 유명하다. 
앞서 말했듯 역이란 본래 점을 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주나라 문왕과 무왕 의 정치철학을 체계화하고 공자의 해설을 거쳐 유교의 경전이 된 것이다. 유 교는 한무제(BC159-BC87) 때의 유학자 동중서董仲舒에 의해 크게 진흥되었 다고 한다. 무제는 동중서의 건의에 따라 태학을 설치하고 오경五經을 가르 쳐서 관료를 양성했다고 한다. 오경이란 역경, 시경, 서경, 예기, 춘추를 말한 다. 당나라 때 공영달孔穎達은 오경의 주석서인 <오경정의>를 펴냈으며 오경 을 공부한 학자들을 오경박사라 했다. 백제도 태학을 설치하고 오경박사를 두었으며 오경박사를 일본에 파견하여 유학을 전했다고 한다. 이처럼 유교 경전은 삼국시대부터 우리 땅에 전해졌다. 그래서 주역은 논어와 효경 등과 함께 널리 읽히고 알려졌다. 
그런데 유교의 학문을 연구하는 새로운 기풍이 중국 북송시대에 일어났다.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던 유생들이 불교와 노장사상의 영향을 받아 유교의 경전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연구하고 풀이하여 보다 현대적인 해석으로 체계 화한 것인데 인간의 천성과 우주의 원리를 이理와 기氣로 파악하는 학문이 라 하여 성리학性理學이라 한다. 성리학은 주돈이周敦頤(1017-1073, 렴계)로 부터 비롯되었고 그의 제자인 정재 정호를 통하여 계승되고 정이程頤
(1033-1107, 이천) 정호程顥(1032-1085, 명도) 두 형제를 스승으로 삼아 유학 을 배웠던 주희朱熹(1130-1200)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래서 성리학을 정주학, 또는 주자학이라 하기도 한다. ‘주자朱子’라는 칭호는 주희를 공자처럼 성 인으로 존경한다는 뜻이다. 
고려중기에 안향安珦(1243-1306)이 성리학을 받아들여 유학자를 길렀는데 이 들이 신진 사대부가 되어 새로운 조선시대를 여는 세력이 되었다. 성리학을 완성한 주자는 경전을 풀이하면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정했는데 삼경은 시 경 서경 주역이고 사서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이다. 그래서 성리학에서 말한 삼경의 하나가 주역, 또는 역경이다. 
역경易經에서 역은 바뀔 역이고 경은 성인의 말씀을 담은 책이다. 그래서 영 어로 번역할 때 BOOK OF CHANGES, 변화의 책이라고 한다.
◆ 왜 변화의 책이라 하는가?
주역은 세상의 변화를 다룬 책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인간도 변하고 땅도 변하고 우주도 변한다. 인간의 변화를 생로병사라고 한다. 이런 인간과 세상의 변화에 관한 성인의 말씀을 적어놓은 책이 주역이다. 계속 변 화되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와 목적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그 지혜를 알려주자는 것이다. 
◆ 주역을 왜 공부하는가? 
변화되는 세상에서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얻자는 것이다. 변화에는 능 동적 변화와 수동적 변화가 있다. 계란이 병아리로 변하는 것은 능동적 변화 라면 계란이 깨져서 계란프라이가 되면 수동적 변화다. 물고기가 살아있으면 물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죽으면 물을 따라 흘러간다. 거스름이 능동적 변화 라면 흘러감은 수동적 변화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능동적 주체로 살 것인가 아니면 피동적 좀비로 살 것인가. 주역의 지혜란 그 능동적 변화의 삶을 살 아가는 능력이다. 그런 지혜를 얻으려면 3가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역에 는 세 가지 뜻이 들어 있다. 변역變易, 불역不易, 간역簡易이다. 간역을 간이 또는 이간易簡이라 한다.
◆ 이간易簡이란 무엇인가? 
변역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뜻이다. 불역은 변화 속에는 변하지 않는 법칙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간은 변화속에서 불변의 이치를 얻으면 쉽고 간단 하게 살 수 있는 능동적 변화의 힘을 얻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을 이간의 지 혜라 한다. 그래서 주역을 공부하는 목적은 한마디로 이간易簡의 지혜를 얻 자는 것이다. 이간易簡에 대해서 공자가 설명한 말이 있다. 건이이지乾以易知 곤이간능坤以簡能 (하늘의 빛을 얻으면 알기가 쉽고 땅의 힘을 얻으면 간단하게 할 수 있다.) 이즉이지易則易知 간즉이종簡則易從
(쉬우니까 알기 쉽고, 간단해서 따르기 쉽다.) 이간이천하지리득의易簡而天下之理得矣
(이간易簡이 되면 천하의 이치를 얻은 것이다.) 천하지리득이 성위호기중의天下之理得而成位乎其中矣 (천하의 이치를 얻으면 그 세상 한 가온에서 지위를 이룬다.)
◆ 이간易簡에 대한 공자의 말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하늘의 빛을 얻으면 밝아서 알기 쉽다. 해도 하늘에 있고 달도 하늘에 있고 별도 하늘에 있다. 하늘은 빛이다. 하늘을 쳐다보고 모를 사람은 하나도 없 다. 누구나 다 하늘의 태양을 볼 수 있다. 땅은 힘이다. 그래서 간능簡能이
다. 힘을 얻으면 간단히 할 수 있다
이간이 되면 천하지리天下之理, 천하가 변화되는 이치를 얻은 사람이다. 이 치를 얻으면 성위호기중成位乎其中이다. 달리 말해서 천하지리를 진리라 하 면 성위호기중成位乎其中은 자유라 할 수 있다. 진리를 깨달으면 어디에 있 든지 그 가온데 지위를 이루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진리를 깨닫고 지혜를 얻으면 자기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 과학자는 변화하는 사물의 이치를 깨 닫고 기계를 만들어 세상을 움직인다. 이처럼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경제와 사회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 이치를 알고서 변화에 대처하면 무슨 문제든지 현상을 쉽게 이해하고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을 성위호기 중成位乎其中이라 했다. 한마디로 중용中庸이다. 중용에서 중中이란 이치를 깨달은 지도자가 되었다는 뜻이고 용이란 원리를 가지고 변화에 잘 대처하 는 지혜와 능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지도자의 조건이 이간易簡이다. 진리를 깨닫고 체득하여 지혜의 능력을 얻은 사람이라야 나라와 집단을 올바로 이 끄는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 역은 형식과 내용이 독특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되어있는가?
주역의 형식은 간단한 그림과 글로 되어있다. 그림을 괘卦라고 한다. 괘도처 럼 그림을 그려놓고 거기에 글씨를 써서 설명한 것이다. 그림을 설명하는 말 을 사辭라고 한다. 그러니까 주역은 괘와 사로 되어있다. 괘라는 그림을 풀 이한 말씀이 괘사卦辭다. 
동양화를 보면 사군자나 산수화를 그려놓고 그림 여백에 제목과 내용을 간 단히 적어놓는다. 주역도 마찬가지로 괘를 그려놓고 그것을 설명하는 말씀인 괘사를 붙여놓았다. 말하자면 주역은 괘도같은 그림책이요 요새로 말하면 컴 퓨터로 글과 그림을 사용하여 설명자료를 만들 때 사용하는 파워포인트 같 은 형식으로 되어있다. 
그림같은 상징의 괘를 그려놓고 거기에 간단히 설명을 붙여서 성인의 뜻을 밝히는 것이다. 그 보이지 않는 성인의 뜻이 어떤 형상으로 나타나 보이면 그것을 상象이라 한다. 그 상을 보는 내면의 눈을 관觀이라 한다. 그러니까 주역은 괘를 그려놓고 거기서 상을 보는 것이요 그 괘의 상을 보고 설명한 성인의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보이지 않는 그 상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 렇듯 보이지 않는 형이상의 세계를 상을 통하여 전하자는 것이 주역이요 그 형식과 방법은 괘와 사를 혼합한 독특한 것이다. 
◆ 역에서 사용하는 그림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역이 사용하는 그림은 자연현상을 숫자를 그려놓은 것이다. 그래서 추상적 그림이 되었는데 8가지가 있다. 자연의 역동적 근원을 음양陰陽으로 보고 음 과 양이라는 이진법을 사용하여 3차원으로 확대하면 8가지 숫자가 나온다. 이진법으로 0부터 7까지 숫자를 기호로 표시하여 팔괘라 한다. 팔괘에 음양 의 분포를 보고 자연의 특징과 연결지어 하늘(건), 땅(곤), 물(감), 불(이), 우 레(진), 바람(손), 산(간), 호수(태) 이렇게 8가지 자연현상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나라 태극기를 보면 동그란 태극도가 중심에 그려져 있고 네 모서리에 ‘건곤감이乾坤坎離’라는 네 가지 괘를 그려놓았다. 나머지 ‘진손간태震巽艮兌’를 합하여 8괘라 한다. 8괘를 암기하면 주역의 입문자다. 영어를 배울 때 먼저 알파벳을 배우듯 주역의 알파벳은 8괘다. 8괘에 익숙해지면 주역은 아주 쉽고 간단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사辭는 그림을 풀이한 말씀이다. 건乾을 그려놓고 이것은 하 늘이라 한다. 곤坤을 그려놓고 이것은 땅이라 한다. 그리고 땅의 이치, 하늘 의 이치, 하늘과 땅이 있는 이치를 설명하는 말을 괘사卦辭라 한다. 괘사를 공부하면 이치를 알게 되고 이치를 알면 간단하고 쉽게 사는 이간易簡의 지 혜를 얻게 된다. 이런 지혜를 얻자는 것이 주역을 공부하는 목적이다. 
▲ 1강 마무리 오늘은 주역이 무슨 책이며 왜 주역을 공부해야 되는지 공부했다. 주역 공부 의 목적은 우리 모두 성인의 마음을 알고 성인의 지혜를 얻자는 것이다. 주 역의 형식은 괘사로 되어있고 괘에는 8가지가 있다. 8괘는 음양을 기초로 하 는 이진법을 3차원으로 표시한 것이다. 숫자로 상징되는 8괘는 또한 음양의 배열과 성질에 따라 8가지 자연현상과 연결이 되어있다. 주역공부의 기초는 영어의 알파벳처럼 8괘를 숙지하는 것이다. 2강에서 8괘를 좀더 알아보자. <알기쉬운 주역 제2>
2. 사상과 팔괘, 그리고 팔괘도는 무엇인가?
◆ 4상과 8괘가 있고 또 64괘가 있다고 하는데 ... 
8괘는 음양의 조합을 3겹으로 표시하여 나온 것이라 했다. 음양이 한 겹일 때는 음효와 양효 둘이고, 2겹이면 4가지가 나온다. 네 가지를 사상四象이라 하고 8가지는 8괘라 한다. 이 8괘를 겹치면 모두 64괘가 된다. 달리 말해서 음양의 기호를 6겹, 즉 6층으로 만들면 모두 64괘가 된다. 2의 3제곱은 8이 고 2의 6제곱은 64이기 때문이다.
8괘와 64괘를 구분하기 위해서 8괘는 소성괘小成卦라 하고 64괘는 대성괘大成卦라 한다. 주역은 음을 나타내는 끊어진 금을 음효, 이어진 금을 양효라 하는데 음효와 양효라는 2가지를 가지고 만든 이진법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0과 1이라는 이진법으로 계산하는 컴퓨터 방식과 같은 것이다. 다만 컴퓨터 는 초기에 8비트, 즉 8층이 기본이었지만 주역은 3층이 기본이다. 오늘날 컴 퓨터는 대개 64비트다. 주역의 괘가 모두 64개라는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니 라 2진법을 공유한 때문이다.
음과 양, 두 기호를 섞어서 2겹으로 조합하면 4종류가 나와서 사상四象이라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4상이라 하면 다 안다. 우리나라 한의학은 허준의 동의보감에서 비롯하여 이제마의 사상의학으로 체계화된 것인데 사상의학에 따르면 사람의 체질을 4상으로 분류하여 각기 처방이 달라진다고 한다. 같은 증세라도 태음 태양 소음 소양 이렇게 체질을 분류하여 처방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체질을 사상으로 보거나 우주를 지수화풍으로 보거나 인격을 인의예지, 또는 지혜 용기 절제 정의로 보거나 모두 넷으로 보는 것이다. 나 라를 볼 때도 경제국방, 정치외교, 사회복지, 문화교육 이렇게 네 범주를 보 는 것이다. 칸트의 인식론도 수량, 성질, 관계, 양태라는 4가지 범주로 본다. 생물학에서 단백질의 합성도 기본이 4가지요 유전자의 DNA를 구성하는 기 본 요소도 4가지다. 무엇이나 이처럼 생성 변화 움직이는 현상과 그것을 인 식하는 범주로서 기본적으로 4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좀 더 세분하면 
8가지가 되고 더 세분하면 64괘가 되는 것이다.
 
◆ 팔괘와 팔괘도八卦圖는 다른 것인가?
그렇다. 팔괘는 8가지 괘를 지칭하는 말이고 팔괘도는 그 8가지 괘를 하나의 원으로 둥그렇게 배열한 그림을 지칭하는 말이다. 음양과 팔괘에 대하여 다 시 한번 복습해보자.
역에서는 세상과 자연의 모든 변화와 생성과 운동의 바탕에는 음과 양이라 는 두 가지 기운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뤄지는 것으로 본다. 즉 음양이 상호 대립 모순관계, 또는 길항의 상극 상생관계를 통하여 생명과 운동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음양관계의 중심을 태극太極이라 한다.
음양陰陽을 기호로 표기할 때, 음은 끊어진 금, 양은 이어진 금이라 했다. 이 두가지 기호를 조합하여 2차원이 되면 사상四象이 나오고 3차원이 되면 8괘 가 된다고 하였다. 이를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이진법으로 생각할 때 음은 0, 양은 1이라 보면 된다. 그래서 곤괘坤卦를 이진법으로 표시하면 000이 되고 건괘乾卦는 111이 된다.  
 음양의 조합에 따라 이렇게 8가지 괘가 나오는데 그 성질을 보고 이름을 붙인 것이 ‘건곤감이진손간태’라는 것이다. 건은 하늘, 곤은 땅, 감은 물, 이는 불, 진은 우레, 손은 바람, 간은 산, 태는 호수다. 음양의 배합과 추이에 따라 이렇게 8괘로 변화되는데 이런 변화를 자연의 변화와 연결지어 공간으 로 배열한 최초의 사람이 복희씨라고 한다. 복희씨는 동서남북 사방과 팔방 의 방위를 8개의 괘와 연결시켜 배열하였다. 그렇게 배열된 팔괘도를 복희팔 괘차서도, 또는 간단히 복희팔괘도라 한다.
그리고 주나라 문왕은 복희씨의 공간적 배열을 바꾸어 새롭게 시간을 기준 으로 배치하였는데 그것을 문왕팔괘도라고 한다. 복희팔괘도는 선천팔괘도, 문왕팔괘도는 후천팔괘도라 하기도 한다. 선천 후천은 앞 시대와 뒷 시대라 는 뜻인데 주나라를 기점으로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주나라 문왕이 팔괘의 시간적 배열을 생각한 것은 자연의 변화 때문이다. 자 연의 변화는 사계절로 대표되지만 좀더 세분하면 24절기가 된다. 24절기를 3 개씩 괘에 할당하면 계절의 순환을 팔괘로 표시할 수 있다. 이렇게 일년의 변화를 원으로 하여 팔괘로 배열한 것이 문왕팔괘도라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 우리나라 김일부는 새로운 후천개벽을 위한 팔괘도를 만들었 는데 그것을 정역팔괘도라 한다. 이렇게 팔괘도에는 복희팔괘도와 문왕팔괘 도, 그리고 정역팔괘도가 있다. 
◆ 팔괘도八卦圖의 종류에 따른 그 특징은 무엇인가?
먼저 각 팔괘도의 모습부터 알아보자. 복희팔괘도와 문왕팔괘도, 그리고 정역팔괘도
 
이렇게 8가지 괘를 원으로 배열하는 방법으로 복희팔괘가 있고 문왕팔괘가 있고 우리나라 김일부의 정역팔괘가 있는데 그 밖에 다른 배열방법도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배열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으러면 각 괘의 성질과 어떤 관련성을 가져야 된다.
팔괘도에 이같이 3가지가 있는데 그 깊은 세계는 말할 수 없이 크고 신비하 여 다 알았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들여다보고 생각할수록 심연을 보 는 듯 깊어진다. 그래서 알기도 어렵고 설명도 어렵지만 그것을 누구나 알기 쉬운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간단히 가족관계의 비유로 설명해 보는 것 도 주역 입문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팔괘를 인간관계로 보면 하늘과 땅의 건곤을 부모라 하고 장남은 우레 진, 장녀는 바람 손, 막내아들은 산 간, 막내딸은 연못 태, 가운데 아들 딸은 물 과 불인 감과 이괘가 된다. 우주를 한 가족으로 보면 이렇게 하늘과 땅이 부 모라면 그 사이에 아들이 셋 딸이 셋이다. 우레, 물, 산이 하늘에 속한 아들 이요 바람, 불, 호수는 땅에 속한 딸이다. 
이들 온 가족이 둥그렇게 한 자리에 앉는다고 할 때 그 배열에 따라 복희의 선천팔괘와 문왕의 후천팔괘가 있고 우리나라 김일부가 배열한 정역팔괘가 있다. 이것들의 관계를 간단하게 생각하면 내가 태어나기 전의 가족이 있고 내가 자랄 때의 가족이 있고 내가 부모가 되어 형성한 가족이 있다. 복희팔 괘도에는 내가 태어나기 전의 나의 모습이 있고, 문왕팔괘도는 내가 자랄 때 의 모습이 있고, 정역팔괘도에는 내가 부모가 되었을 때의 모습이 그려져 있 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역사와 발달의 단계로 3가지 팔괘도를 생각하는 것 이다. 또는 세가지 팔괘도가 각각 우주관 역사관 인생관을 나타낸다고 보아 도 좋을 것이다. 
관觀이란 보이는 세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직관하는 체험을 말한다. 과학의 우주론은 보이는 세계를 관찰하고 계측하여 엄밀하고 객관적인 수학적 체계로 이론화하는 것이지만 우주관은 성인이 보이지 않는 우주 전체와의 교감을 통해 직관하는 근본체험을 상징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런 관을 가질 때 다석은 가온찍기라 했다. 가온찍기도 셋이 있다. 하나님 을 만나는 가온찍기는 우주관, 그리스도를 만나는 가온찍기는 세계관, 성령 의 얼을 만나는 가온찍기는 인생관이다. 그래서 천지인 삼재라 한다.  
◆ 8괘의 구성과 성질을 좀 더 설명한다면?
만물의 성질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을 8괘라 했다. 음양의 조합에 따라 8가지 가 나오는데 만물의 성질에 맞춰 이름을 붙인 것이다.
건괘는 하늘, 곤괘는 땅, 감괘는 물, 이괘는 불, 진괘는 우레, 손괘는 바람, 간괘는 산, 태괘는 호수라 한다.
먼저 건괘는 모두가 양효로 되어있다. 아래도 양이고 중간도 양이고 위도 양 이다. 이와 반대로 곤괘는 모두 음효다. 이렇게 건의 양효와 곤의 음효가 섞 이고 조합되어 다른 6가지 괘가 나온다. 우주자연을 생각할 때는 건을 하늘 이라 하고 곤을 땅이라 한다. 세 금 가운데 이어진 강한 금이 하나면 양괘이 고 이어진 강한 금이 둘이면 음괘가 된다. 이것도 독특하다. 강한 것이 하나 있는 괘를 양괘라 하고 강한 것이 둘이 있으면 음괘가 된다. 음괘에 양의 강 한 성질이 더 많다는 것이다. 물은 가운데 강한 금이 하나 있으니까 양이고 불은 양 끝에 강한 금이 두 개가 있어서 음이다. 양을 나타내는 물은 속이 강하다고 가운데 하나가 양효이고 양끝이 음효인데 음을 나타내는 불은 겉 이 강하다 하여 양끝이 강한 양효이고 속이 부드러운 음효로 되었다. 말하자 면 음괘 속에는 양의 기운이 더 많고 양괘 속에는 음의 기운이 더 많다. 이 처럼 음양으로 나누면서도 음양을 이분법으로 분리하거나 단절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를 드러낸 것이다. 음양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늘 다양한 상호 작용 안에서 공존하는 것이다. 대립의 상극 가운데 상생의 기운이 작용하여 음과 양이 길항하고 갈마들며 움직이는 것이다. 비근한 예를 들어 우리 몸의 소화과정을 보면 먼저 침샘에서는 알칼리성의 침이 나오지만 위에서는 강한 산성의 위산이 나오고 이어서 십이지장에서는 다시 알칼리성의 담즙과 소화 효소가 나와서 중화가 된다. 이처럼 음양은 어디서나 길항작용과 갈마듦의 역동적 과정으로 상생하는 상보적 관계라는 것이다.  
▲ 마무리
2강에서 우리는 사상과 팔괘를 알아보고 음양과 팔괘의 성질에 따라 자연현 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았다. 팔괘를 소성괘라 하고 64괘는 대성괘라 한다. 또 팔괘의 배열인 팔괘도는 3가지가 있는데 복희팔괘도와 문왕팔괘도 그리고 정역팔괘도가 있다. 
<평산의 알기쉬운 주역풀이>
3. 나는 누구인가?
건위천, 곤위지 ; 하늘과 땅
◆ 천자문과 주역 조선시대 아동교육의 기본교재는 천자문이었다. 1천 자의 한자가 중복되지 않게 4글 자씩 250구절로 된 책이다. 첫 구절이 천지현황天地玄黃인데, 아이들은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르황’ 이렇게 외웠다. 이어서 우주가 넓고 크다는 ‘우주홍황宇宙弘荒’이 나 온다. 이렇게 조상들은 어려서부터 천자문을 통해 글을 배우면서 맨 먼저 하늘과 땅 을 생각하게 하였다. 주역도 하늘과 땅으로 시작된다. 말하자면 천자문의 내용은 주역 을 압축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또한 주역을 학문의 마지막 단계로 간주하 였다. 어려서 천자문으로 주역의 입문을 하고 늙어서 주역으로 졸업하는 과정으로 일 생을 살았다. 
왜 아이들에게 이렇게 하늘과 땅을 가르쳤을까. 인간의 기원이 하늘과 땅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려주려고 한 게 아닐까. 우리 조상들은 하늘과 땅의 기운으로 사람이 태어 나고 자란다고 본 것이다. 우리 문화 속에는 우리가 하늘의 자손, 즉 천손이라는 의 식이 배어있다. 천지와 우주를 인간의 고향으로 바라보고 아이들에게 그런 의식을 일 깨워준 것이다. 
◆ 하늘 건 땅 곤 역에서 하늘을 건이라 하고 땅을 곤이라 한다. 건은 6금이 모두 양효로 되어있고 곤 은 6금이 모두 음효로 되어있다. 건은 양을 대표하고 곤은 음을 대표한다. 그런데 음 과 양은 모두 태극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음양은 늘 함께 있지 따로 떨어질 수 있 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음양이 둘이 아니듯 건곤, 즉 하늘땅도 또한 둘이 아니다.
음양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현대과학에서도 밝혀주고 있다. 현대물리학은 양자역학 이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원자보다 작은 입자가 서로 얽혀 있게 되면 아무리 멀리 떨 어져 있어도 하나가 된다. 즉 한 쪽이 음이 되면 다른 하나는 즉시 양이 된다고 한
다. 두 입자가 떨어져 있는 공간적 거리와는 상관없이 하나가 양이 되면 다른 하나는 바로 음이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빛보다 빨리 정보가 전달되는지 신비할 뿐 이다. 두 입자가 양자로 얽히면 한쌍이 되어 상보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주역의 음양도 이런 상보적 관계를 말하고 있다. 따라서 건괘는 양을 나타내고 곤 괘는 음을 나타내지만 그 둘은 상보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하나를 알면 나머지도 알게 되는 것이다. 건괘 하나를 알면 곤괘도 알게 된다. 건곤을 알면 64괘 모두 알게 된다 는 말이다. 이런 건곤을 하나로 말할 때는 태극이라 한다. 
◆ 64괘는 모두 태극의 변형이다.
건곤이 하나되는 그것을 태극이라 한다. 태극이 무엇인가. 왜 태극을 찾는가. 나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태극을 찾는 것은 나를 찾는 일이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나를 알고자 하는 것이다. 음양이 합쳐진 것이 태극이요 그것이 또 나라는 것이다. 태극에서 음양이 나오고 음양에서 사상팔괘가 나온다 했다. 팔괘에서 64괘가 나온다. 64괘 모두가 하나의 태극이다. 
64괘 모두 하나의 태극의 변형이다. 건괘도 태극이 나타난 모습이요 곤괘도 태극의 모습이다. 그래서 건괘 하나를 알면 곤괘도 알게 되고 나아가 모든 64괘를 다 알게 된다. 그래서 결국 건乾괘가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 시간 공간 인간 모든 괘卦에는 시간時間, 공간空間, 인간人間 세 가지를 함축하고 있다. 시간 공간 인간, 이런 세 가지 내용이 괘에 들어있다. 그래서 64괘를 시간적으로 배열할 수도 있고 공간적으로 표시할 수도 있고 인간적으로 나타낼 수도 있다.
건괘나 곤괘에도 시간 공간 인간이 겹쳐있다. 춘하추동으로 말하면 시간이요 천지
수화로 말하면 공간이요 인의예지로 말하면 인간이다. 그래서 중립적인 말로 건이나 곤이라 한다. 
건乾이라 할 때 이 건괘 속에도 시간과 공간과 인간의 내용이 함께 들어있음을 보 아야 한다. 나에게 시간이 무엇인가, 나에게 공간이 무엇인가, 나에게 인간이란 무엇 인가. 결국 나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있다. 시간 공간 인간이 무엇 인지 알자는 것이 역易이다. 시간을 찾으면 종교宗敎가 되고, 공간을 찾으면 과학科學이 되고, 인간을 찾으면 철학哲學이 된다. 우리가 왜 과학을 하고 철학을 하고 종 교를 하는가. 나를 알고 내가 되기 위해서다. 
건乾괘가 제일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것은 건괘를 알면 다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피 한방울의 검사로 내 몸상태를 다 알 수 있듯이 건괘 하나를 통해서 주역 전체를 알 수가 있다. 주역에서 무엇을 아는가. 나를 아는 것이다. 주역은 곧 나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거울을 경이라 한다. 역경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를 보는 것이다. 나는 무엇 인가? 
◆ 건괘의 괘사인 원형이정이 무슨 뜻일까?
건괘를 보면 양효를 여섯 개 그려놓고 이름을 건괘라 하고 괘에 대해 붙여놓은 설
명으로 원형이정이라 했다. 즉 여섯 양효는 괘의 모습이고 괘의 이름은 건이고 괘사, 즉 건괘를 설명하는 말은 원형이정이라 했다. 괘마다 이렇게 괘의 이름과 괘를 설명 하는 괘사가 있다. 건괘와 곤괘에 대한 설명으로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는 네 글자가 붙어있다. 
원형이정이 무슨 뜻일까? 주역 전체의 내용이 한마디로 원형이정이라 하겠다. 원형
이정, 네 글자의 뜻을 알자는 것이 주역이다. 건도 원형이정이요 곤도 원형이정이다. 나머지 괘들은 다 이 원형이정의 부분을 설명하는 것이다. 원형이정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나를 말하는 것이다. 
◆ 나는 무엇인가. 
원형이정元亨利貞, 그것은 나를 말하는 것이다. 원형이정이 나다. 원형이정을 해석하 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원元, 형亨, 이利, 정貞 네 가지로 보는 방법이 있고 원형 元亨과 이정利貞, 이렇게 둘로 보는 것이 있다. 정이천선생은 넷으로 설명했고, 주희 선생는 둘로 설명했다. 이천선생은 설명하길 원元이란 만물의 시작이요 탄생이라면 형亨은 만물이 자라나고 성장하는 것이고 이利는 가을의 수렴작용으로 이뤄진 결실을 얻음이요 정貞은 만물의 완성을 깊이 간직하는 것이라 했다. 주희선생은 설명하길 원 元은 큰 것이요, 형亨은 형통하는 것이며, 이利는 마땅한 것이요, 정貞은 바르고 굳은 것이라 하여 ‘크게 형통하니 마땅한 것은 바름이라’고 했다. 오늘은 주자의 해석에 따 라서 둘로 해석해보기로 한다. 
원형은 크게 형통하여 발전하는 모습이다. 이정은 올바르고 진실한 모습이다. 주자
는 이것을 점괘로 풀어서 ‘크게 형통하니 바르게 함이 마땅하다.’ 했다. 그런데 현재 김흥호는 영원히 발전하는 모습과 진리와 일치하는 모습이라고 풀어서 실존적 차원으 로 설명했다. 나는 무엇인가 하면 원형과 이정이다. 원형은 영생이요 이정은 진리와 일치함이다. 그래서 원형과 이정은 곧 나를 설명하는 말이라 보는 것이다. 나는 영원 한 생명이다. 나는 영원한 생명인데 그저 영원한 생명이 아니다. 진리와 함께 진리와 일치하는 영원한 생명이다. 그것을 원형이정이라 했다.
◆ 건위천乾爲天乾이란 원형이정의 세계이다.(건乾은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다.) 하늘 위의 하늘을 건괘라 한다. 하늘 위에 또 하늘은 무엇일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격물이라 한다. 격물의 결과 건의 뜻이 원형이정이라고 했다.
판단하여 말한다. 위대하구나 건乾의 으뜸 됨이여, 만물의 바탕과 비롯이 되니 이에 
하늘을 거느린다. 단왈彖曰 대재大哉 건원乾元 만물자시萬物資始 내통천乃統天
만물의 바탕과 시초가 건에서 비롯된다. 만물을 창조하는 창조력을 건이라 본 것이 다. 그것을 건의 원, 건의 으뜸됨이다. 그래서 하늘을 통치하는 주재자가 건이라 한
다. 하늘은 무엇인가? 요새로 말하면 우주라 할 수도 있고, 태양이라 할 수도 있고, 왕이라 할 수도 있다. 
구름을 움직이고 비를 베풀어 만물이 형태를 갖추고 자라게 한다. 마치고 시작함을 
크게 밝혀서 여섯 지위가 때를 따라 이루어지고 때에 맞추어 여섯 용을 타고 올라가 니 이로써 하늘을 다스린다.
운행우시雲行雨施 품물유형品物流形 대명종시大明終始 육위시성六位時成 시승육룡
時乘六龍 이어천以御天
이것은 건의 원에 이어 형에 대한 설명이다. 건원이라는 근원을 가지면 원의 작용
인 형, 즉 생명력을 가지고 발전하게 된다는 말이다. 원의 작용은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뿌려주어 만물이 흘러나와 형태를 이룬다. 성인은 이를 보고 종시를 크게 밝혀 서 여섯 지위를 때를 따라 완성하고 때에 맞춰 여섯 용을 타고 올라가 하늘을 다스린 다. 
건도의 변화로 각각 성품과 천명을 바르게 하여 보호하고 화합하여 크게 화합함을 
이루니 이에 아름답고 올곧게 된다. 건도변화乾道變化 각정성명各正性命 보합대화保合大和 내이정乃利貞
원형에 이어 이정을 설명하는 말이다. 건도는 음양인데 그 작용으로 만물이 변화되
고 탈바꿈된다. 건도 변화의 힘으로 각기 성품을 바로잡고 사명을 실천한다. 품성과 사명을 지켜서 모두가 하나가 되면 큰 화평을 이루게 되니 이에 모두가 진실하고 정 직한 모습이 된다.
으뜸으로 뭇 만물을 내니 만국이 모두 다 평안하다. 수출서물首出庶物 만국함녕萬國咸寧
건도의 창조성으로 으뜸이 되어 만물을 산출하니 온 세상 모든 나라가 평안하고 고
요하다. 창조적 지성인 성인이 나타나서 온갖 물건과 제도와 문물을 생산해 냄으로 모두가 풍족하고 행복한 세상이 된다.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 이런 모든 혁신 의 핵심이 창조성이다. 이런 창조성을 건원이라 했고 문물의 발전을 형이라 한다. 이 정은 모두가 진실하고 정직하다는 것이다. 즉 원형이정을 요새로 말하면, 창조성, 경 영능력 즉 경륜성, 그리고 진실성과 정직성이라 하겠다. 진실이 사랑과 정직의 기쁨이 넘치는 세상을 이루자는 것인데 그 원천이 창조적 지성인 건원이라고 보는 것이다. 
◆ 상象을 보아 말한다. 하늘의 운행이 강건하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굳세어 쉬지 않는다.
상왈象曰 천행건天行健 군자이君子以 자강불식自彊不息
◆ 곤위지坤爲地 곤坤은 땅이니 크게 형통한다. 이로운 것은 암말의 곧음이다. 곤坤 원형빈마지정元亨利牝馬之貞.
곤坤이란 땅이다. 곤坤은 하늘에 신종申從하는 땅이다. 신申이란 천지가 통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늘에 6번 신종申從하는 6차원의 땅이 곤坤이다. 원형元亨이란 한없 이 발전한다는 뜻이고 이정利貞이란 진리와 일치한다는 뜻이라 무엇과의 일치냐 하면 건乾과의 일치다. 건乾이 대아大我라면 곤坤은 무아無我다. 무아의 세계는 모든 종교의 핵심이다. 
◆ 군자의 가는 바가 있으니 먼저 가면 안 되고 (스승) 뒤를 따라야 된다. 주인이 되 어야 이롭다. 서남쪽에서 친구를 얻고 동북쪽에서 친구를 잃는다. 평안하고 정직하니 행복하다. 군자유유왕君子有攸往 선미후득先迷後得 주리主利 서남득붕西南得朋 동북상붕東北喪朋 안정길安貞吉
◆ (판단하여 말한다. 지극하구나, 곤의 으뜸됨이여! 만물을 생육하여 마침내 하늘과 하나가 된다. 단왈彖曰 지재至哉 곤원坤元 만물자생萬物資生 내순승천乃順承天
땅은 두터워 만물을 실어주니 그 덕은 한이 없다. 한없이 넓고 큰 빛을 품고 만물
이 모두 잘 되도록 길러낸다. 곤후재물坤厚載物 덕합무강德合无疆 함홍광대含弘光大 품물함형品物咸亨
암말은 땅의 동물이라 땅을 지나가는데 끝이 없다. 유순하고 좋은 실력이 있다. 이
런 힘과 실력으로 가는 것이 군자다. 빈마지류牝馬地類 행지무강行地无疆 유순리정柔順利貞 군자유행君子攸行
학생이 앞서가면 길을 잃으나 스승을 따라 순종하면 행복하다. 서남쪽(음陰)에서 친 구를 얻어 함께 더불어 가다가 동북쪽(양陽)에서 친구를 잃는다. 마침내 행복하게 된 다. 평안함과 실력을 갖추어 행복하게 되고 또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자유롭게 된다.
선미실도先迷失道 후순득상後順得常 서남득붕西南得朋 내여류행乃與類行 동북상붕
東北喪朋 내종유경乃終有慶 안정지길安貞之吉 응지무강應地无疆
◆ 상象을 보며 말한다. 땅의 모습이 곤坤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서 덕을 쌓아 모 든 사람을 살려준다.) 
상왈象曰 지세곤地勢坤 군자이후덕재물君子以厚德載物
◆ 군자는 하늘을 본받아 자강불식하고 땅을 본받아 후덕재물한다. 자강불식은 스스 로 강하여 쉬지않고 발전하는 건강한 정신이요 후덕재물은 만물을 실어줄 만큼 두터 운 덕을 지닌 건강한 몸이다. 땅처럼 우주를 받치는 강한 기운을 가지고 하늘의 운행 처럼 씩씩하고 성실한 것이 군자의 모습이요 건곤을 통해서 보여주는 그것이 우리 인 간의 이상이라는 것이다. 결국, 천지를 본받아 천지를 넘어서는 것, 그것이 곧 나라는 것이다. 그래서 소강절邵康節(1011-1077)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몸은 천지보다 뒤에 나왔지만 마음은 천지보다 앞서 있었네 (신생천지후 심재천지전 身生天地後 心在天地先) 
천지가 내게서 나왔으니 이 밖에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천지자아생 기여하족언 天地自我出 其餘何足言)
  
<평산의 알기쉬운 주역풀이>
4. 생명의 탄생과 교육  수뢰둔(준), 산수몽
◆ 탄생의 고통과 생명의 교육 무엇이나 새로운 시작은 어렵고 힘들다. 그러나 산고의 고통이 없이 어떻게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 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없다면 어찌 봄의 아 름다운 꽃을 바라볼 수가 있으랴. 인생의 출발도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세 상에 나오기 전 어머니 뱃속에서 열달 동안 어머니와 함께 기쁨과 슬픔 즐 거움과 괴로움을 같이 하다가 마침내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는 산고를 겪고 야 세상에 나온다. 
그래서 생명의 탄생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물과 우레를 사용했다. 물은 죽음 을 나타내고 우레는 새로운 시작을 말한다. 죽음의 바다에서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 나타났다. 그것을 수뢰둔水雷屯이라 한다. 둔은 땅에서 싹이 올라올 때 너무 힘이 들어서 구부러진 모습으로 그렸다. 수뢰둔이 생명의 탄생을 말 하는 것인데 천산둔괘와 혼돈을 피하기 위해서 수뢰둔水雷屯은 수뢰준으로 읽는다.   
 수뢰준水雷屯 괘는 이처럼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 가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물과 우레인데 물은 생명이 나오는 바다요 우레는 생명의 시작이다. 지구의 역사를 보면 수십 억 년 전에 바다에서 첫 생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생명이 물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우리 몸의 70퍼센트 가 물이다. 지구의 70퍼센트가 바닷물로 덮여있다. 태아가 자라는 어머니 자 궁의 양수도 바닷물과 비슷하다고 한다. 생명이 바닷물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도 신비다. 생명의 탄생은 알 수 없이 신비하고 또 위대한 우주적 사건이다. 광활한 우주에서 미생물이라도 발견하고자 아무리 찾아도 아직 지구 밖에 생물이 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그만큼 지구의 생명은 희귀하고 신비하
다. 
생명만이 신비한 것이 아니다. 지구의 출현도 신비하다. 태양계의 탄생도 신 비다. 결국 우주의 탄생과 모든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신비 아닌 것은 없다. 모든 신비 가운데 가장 신비한 것은 역시 생각하는 인간의 탄생이다. 생각하 면 생각할수록 생각만큼 신비한 것도 없다. 생각이 무엇인가? 신비를 그리워 하는 그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신비의 근원이 생각이다. 이 생각의 신비를 놓치는 순간 인간은 땅으로 떨어져 그야말로 괴물이 되고 악마가 된 다. 현대인의 비극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따라서 어렵게 태어난 생명이 잘 자라나도록 돌보는 일이 중요하다. 특히 사 람이 되려면 사랑과 지혜로 돌보며 보살펴야 된다. 사람은 저절로 인간이 되 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빵만으로 사람이 되지 못한다. 사랑으로 길러지 고 지혜로 키워져야 사람이 된다. 산 같은 사랑과 물 같은 지혜의 교육으로 거듭나야 사람이 된다. 이런 교육을 말하자는 것이 산수몽山水蒙 괘다. 수뢰준水雷屯을 뒤집으면 산수몽山水蒙이 된다. 이렇게 수뢰준과 산수몽은 짝이 되어 생명의 탄생과 교육을 말한다. 인간의 생명이 올바로 자라려면 사 랑의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육과 인생은 늘 함께 있다.
◆ 수뢰준水雷屯(3) 수뢰준水雷屯인데 수뢰水雷는 물에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 과정이 험 하고 힘들다고 둔이라 한다. 둔屯이란 글자는 땅 속에서 새싹이 어렵게 올라 오는 모습으로 얼마나 힘들던지 구부러지고 비틀어졌다. 수뢰준, 물 속에 우레가 있다. 말하자면 바닷속으로 번개가 떨어진 것이다. 또는 구름 속에서 번개가 친다고 해도 좋다. 물 속에 번개가 떨어짐으로 생 명의 탄생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런 이렇게 어렵게 태어난 생명은 위험하 고 고통스럽다. 태어나기도 힘들지만 살아남는 일도 힘들고 고통스럽다.
◆ 괘를 판단해 본다. 준은 굳센 강과 부드러운 유가 비로소 만나 어렵게 태어나는 것이다. 바닷물은 부드러운 것이요 우레는 강한 것이다. 험난한 가운데 움직이니 크게 형통하여 바르게 된다. 번개가 치고 비가 내려 만물이 가득 차게 된다. 캄캄하고 어 두운 혼돈의 위기 속에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 제후를 세워야 마땅하다. 그러나 평안 할 수 없다.
단왈彖曰 둔강유시교이난생屯剛柔始交而難生 동호험중動乎險中 대형정大亨貞 뇌우지 동만영雷雨之動滿盈 천조초매天造草昧 의건후宜建侯 이불녕而不寧  
강한 것은 벼락이요 부드러운 것은 바닷물이다. 또 바닷물은 험난함이요 벽력은 움 직임이다. 험난한 위기 가운데 벼락처럼 신속한 결단과 움직임이 필요하다. 22년 서 울 이태원에서 불행한 사고가 일어났는데 그처럼 군중이 몰려 위험한 상황이 되면 전 광석화처럼 신속한 결단으로 지휘통제하는 위기관리 지도자가 나타냐야 한다. 또 금 년 폭우로 오송 지하차도에서 사고가 났다. 이렇게 위험하다 싶을 때 신속하게 판단 하고 통제하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위험한 상황에서 미리미리 대비하는 그런 제후 를 세워야 마땅하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는 것이 재해의 위험이다. 지도자는 미리 내다보고 염려하는 마음에서 늘 편안할 수가 없다. 이런 것을 ‘의건후宜建侯 이불녕 而不寧’이라 한다.       
◆ 괘의 모습을 보면 구름과 우레가 있음이 준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세상을 경 륜한다. 상왈象曰 운뢰준雲雷屯 군자이경륜君子以經綸 
최고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이 경륜이다. ‘경륜經綸’이란 무엇인가. 혼란한 세상을 잘 다스려서 평화로운 세상으로 만드는 능력을 말한다. 나라를 잘 정리해서 평화롭게 만들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하나? 수뢰준水雷屯괘는 경륜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준屯 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1) 생명의 싹이 돋는다. 2) 군대가 주둔한다. 3) 지도자를 세운다. 이 세가지가 경륜의 내용이다. 백성의 생명을 일으켜야 하고, 나라를 안정시 켜야 하고, 지도자를 잘 세워야 한다.
경륜의 핵심은 무엇인가? 먼저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방식이다. 물[水]이란 죽음이
요, 우레[雷]는 살아나는 것이다. 죽음의 물속으로 뛰어들어 번개처럼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119 구급대만 아니라 모든 지도자의 지도 원리가 죽었다 사는 방식이다.  
예수는 요단강에 물에서 구세주로서의 사명을 자각했다. 그리고 복음을 전했다. 예 수는 어떤 복음으로 세상을 구원했는가? 예수는 죽었다 사는 삶으로 세상을 구원했
다. 그것이 예수의 복음이요 구원의 방법이다. 바울도 다메섹을 향하여 가다가 벼락과 함께 천둥치는 소리를 듣고 자기의 사명을 자각했다. 이처럼 누구나 천명을 자각하는 데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된다. 
군자는 이런 생명의 탄생을 보고 경륜을 생각한다. 구름 속에서 번개가 치는 것이 생명의 시작인 수뢰준이다. 이런 준괘를 보고 군자는 천명의 자각이 천하 경륜의 진 수眞髓(사물이나 현상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임을 깨닫고 비전을 세워 실천 한다. 경륜의 방법은 진리의 힘으로 물이라는 죽음에 뛰어들어 생명을 살리는 사랑이 다. 그래서 생명은 죽음을 이기는 것이다. 죽음을 이기고 나온 생명이 온 천하를 구 원하는 것이다.
◆ 산수몽山水蒙 (4)
수뢰준 괘를 180도 뒤집으면 산수몽이 된다. 그래서 준괘와 몽괘는 짝이 된 다. 위에는 산이 있고 아래는 물이 있는 것이 산수몽山水蒙이다. 설악산 밑에 폭포수 가 흘러가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길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라고 했다. 어질고 덕이 큰 사람은 산을 즐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즐긴다. 그래서 산수山水 라 하면 그것은 어질고 큰 덕과 지혜로운 것을 나타낸다. 
산이란 인간의 어질고 덕스런 면을 나타내서 인仁의 상징이고 물이란 인간에 있어서 의 지혜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仁을 사랑이라 하고 지를 지혜라 하면 산수山水는 사랑과 지혜가 합해진 것이다. 산이 있고 물이 있어야 아름답다. 지 혜와 사랑의 인격으로 거듭나야 아름다운 사람이다. 인간이 거듭나는 것을 유교식 으로 말하자면 천명天命의 자각과 도道의 수행이다. 천명을 깨닫고 도를 닦 아야 사람이 된다는 것이 유교다. 기독교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화聖化된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돈오頓悟의 깨달음과 점수漸修의 수행을 이야기 한다. 돈오는 유교식으로 천명의 자각이요 점수는 교육과 훈련의 과정이라 하겠다. 
◆ 괘의 판단이다. 몽괘는 산 아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위험하니 멈춰야 한다. 단왈彖曰 몽蒙 산하유험山下有險 험이지險而止 몽蒙 
산 아래 물이 있는 것이 몽매蒙昧하다는 몽蒙이다.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운 것을 몽매하다고 한다. 물은 위험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산 밑에 위험이 있다고 한다. 산 아래 강물이 흐르고 안개가 자욱하니 위험하다. 위험하면 더 나가지 말고 멈춰야 한 다. 
몽蒙 괘에는 선생을 나타낸 뜻과 학생을 나타낸 뜻이 함께 있다. 가르치는 측면에
서는 몽이란 선생을 의미하고, 배우는 측면에서는 학생이 몽이 된다. 학생이 몽매할 때, 즉 어둠에 덮여 캄캄해서 보이지 않을 때 선생이 와서 학생을 덮고 있는 어둠의 장막을 열어준다. 이것을 계몽啓蒙이라 한다. 그러니까 산에서 물이 나온다고 할 때 는 산수몽山水蒙을 선생의 모습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 산이 물안개로 가득 하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고 볼 때는 산수몽이 학생의 몽매함을 말하는 것이다. 
물안개로 캄캄해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 산을 오르다 험한 계곡에 떨어져 죽
을 수도 있다. 그래서 ‘위험하다’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물 수(☵)를 구름으로 보느냐 안개로 보느냐 또는 물로 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 괘의 상을 보면 산 아래 솟아나는 샘의 모습이 몽蒙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과 업을 수행하고 덕德을 기른다. 상왈象曰 산하출천山下出泉 몽蒙 군자君子 이과행육덕以果行育德
상象을 보면서 ‘산하출천山下出泉’이라고 했다. 즉 산 밑에 샘물이 콸콸 쏟아진다는 뜻이다. ‘산하출천山下出泉’, 위에는 산이 있고 아래로는 물이 흘러간다. 이것을 뒤집 어서 풀이하길 ‘과행果行 육덕育德’이라고 한다. 과행果行은 물이 흘러가듯 과감한 도 의 실천이요 육덕育德은 산처럼 높은 덕을 기르는 것이다.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사 람은 도道를 닦아야 한다. 사람이 되는 길을 닦는 이것이 과행果行이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나? 육덕育德이다. 산처럼 덕을 쌓아 올려야 한다. 인격이 
산처럼 높아지는 것이다. 이렇게 과행果行은 물에 해당하고 육덕育德은 산에 해당한 다. 사람이 자꾸자꾸 실천하고 실천해서 결국은 사랑과 지혜의 덕으로 꽉 찬 높은 산 이 된다. 이것을 우리는 인仁이라고 한다. 그리고 산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지知 라고 한다. 인仁과 지知가 하나로 완성된 사람이 성인이다.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데스를 보면서 인과 지가 하나된 성인이라 하여 필로소퍼라 
하였다. 사랑인 필로philos와 지혜인 소피아sophia를 합쳐 필로소피아라 한다. 그래 서 지혜와 사랑을 합친 사람이 필로소퍼라는 철인이다. 철인은 지혜를 사랑하는 애지 자, 즉 철학자가 아니라 지혜와 사랑이 합쳐진 성인이라 본다. 지혜를 가지고 온 인 류를 사랑하는 사람이 필로소퍼요 철인이요 성인이다. 공자의 제자들은 스승을 보면 서 지와 인이 하나가 된 성인의 모습이라 하였다. 예수의 제자 베드로는 고백하길 주 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다. 이것도 또한 같은 내용을 풀어볼 수 있다. 그리스도란 하늘 높이 솟은 산처럼 큰 사랑의 인격을 말함이요 하나님의 아 들은 물처럼 지혜로운 분,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분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스승과 학생
산수몽山水蒙이 형통한다 함은 모든 게 순조롭게 잘 통해서 길을 가는 것이다. 그렇 게 형통한 길을 가려면 때를 맞춰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어린 학생인 동몽童蒙을 찾 는 것이 아니라 동몽이 나를 찾아와야 한다. 학생과 스승의 뜻이 서로 응해야 된다는 말이다.
몽형蒙亨 이형행以亨行 시중야時中也. 비아구동몽匪我求童蒙 동몽구아童蒙求我 지
응야志應也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억지로 가르치려고 애쓰면 안 된다. 그것을 ‘비아구동몽匪我求童蒙’이라 한다. 선생은 학생들에게 배우라고 강요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그럼 어떻 게 해야 하나? 학생이 배우고 싶어 선생님을 찾으려고 애써야 교육이 된다. 그것을 ‘동몽구아童蒙求我’라 한다.
선생이 되려면 상象에서 말한 것처럼 ‘산하출천山下出泉’이 되어야 한다. 자기 속에 서 진리의 말씀이 샘물처럼, 강처럼 흘러나와야 된다. 산처럼 흔들리지 않는 자기의 입장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어야 스승이다. 자기의 입장이 확실해야 자기 속에서 다른 사람을 도와 줄 수 있는 힘이 저절로 쏟아져 나오게 된다. 그것이 출천出泉이다. 
산을 올라가려고 하는데 안개가 가득하여 캄캄하다. 이때 만큼 스승이 필요한 적이 
없다. 몽매한 어린 학생에게는 선생이 꼭 필요하다. 캄캄하고 어두운 데서 해매는 것 은 위험하기 때문에 조용히 멈춰 서서 먼저 스승을 찾아야 한다. 어떤 스승을 찾아야 하는가. 스승의 조건은 산하출천山下出泉이다. 산같은 사랑과 물같은 지혜를 가진 사 람이라야 스승이다. 그런 스승을 만나야 학생은 인생의 과업을 수행할 수 있고 덕을 길러갈 수 있다. 이것이 몽괘의 뜻이다.
◆ 새로운 출발은 배움으로부터  무엇이나 새로운 시작은 힘들고 어렵다. 그래서 배움의 학습이 필요하다.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이해한 것을 체득하도록 실천하는 일이다. 인생으로 태어나는 일도 어렵지만 사람이 되는 일은 더 어렵다. 그래서 인생은 학습이 필요하다. 논어의 첫 마디가 배우고 때로 익히라는‘학이시습學而時習’이 다. 학이시습을 줄여서 학습이라 한다.
사람은 태어나기 전부터 태교라는 교육을 한다. 임신을 준비하면서 벌써 교 육이 시작된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해서 부모가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 고 준비하여 임신이 되면 보는 것도 바른 것만 보고 듣는 것도 바른 소리만 듣고 먹는 것도 바른 것만 먹고 행동하는 것도 바른 행동을 하도록 힘쓴다. 이렇게 인생은 태아를 위한 부모의 학습으로부터 시작된다. 
인생만이 아니라 새로운 일이나 단체나 나라를 시작하려 해도 학습이 있어 야 한다. 조선왕조가 개국된 것도 성리학이라는 학습 공동체가 있었기에 가 능한 일이었다. 학원을 설립하려 해도 교사들의 학습공동체가 먼저 이뤄져야 된다. 직업을 바꾸려 해도 먼저 학습이 있어야 된다. 학습을 위해서는 또 스 승을 찾아야 된다.  수뢰준水雷屯은 새로운 탄생과 시작의 어려움을 말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기는 과정에서 얻는 지혜는 무엇인가? 그것은 또한 수뢰, 즉 죽었다 사는 것이다. 죽었다 가 다시 사는 그것이 지혜다. 그리고 산수몽山水蒙은 그렇게 어렵고 위험할수록 반드 시 스승을 찾아서 스승과 함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위험하지 않고 마침 내 어려움을 이겨내서 과업을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학습과 새 출발이라 는 이 둘이 늘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이 수뢰준과 산수몽이 주는 교훈이 아닐까 한다. 
<평산의 알기쉬운 주역풀이>   
5. 진실한 믿음과 기다림의 지혜: 
수천수(5), 천수송(6)
◆ 아버지와 아들
수천수水天需 괘卦를 보면 하늘(건☰) 위에 물(감☵)이 있다는 것이다. 물이 하늘로 올라가면 구름이 된다. 그래서 하늘 위의 구름이라 한다. 또 하늘을 아버지라고 하면 물은 아들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등에 올라가 있다. 그것을 수천수水天需라 한다. 수需는 기다린다는 뜻이다. 하늘에서 비가 오기를 기 다리듯 아버지는 아들을 업고 자라나길 기다린다. 이렇게 수천수는 생명에 대한 믿음과 기다림의 지혜를 말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수천수水天需 괘卦를 180도 뒤집으면 천수송天水訟이 된다. 천수송天水訟 괘卦는 하늘(☰) 아래 물(☵)이 있다. 즉 물이 하늘 위에 있으면 수천수, 물이 하늘 아래 있으면 천수송天水訟이다. 수需는 기다림이요 송訟은 다툼이
다.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야 되는데 욕심으로 기다리다 보면 요구하게 된다. 기다림이 지나치면 요구가 나온다. 요구하면 서로 다툼이 일어난다. 아버지 와 아들 사이에 틈이 갈라져 다투게 된다. 이런 다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 면 어떻게 해야 될까? 
◆ 수천수水天需
수는 기다림이다. 믿음과 진실을 가지고 기다려야 빛나고 형통하고 의롭고 행복하게 된다. 큰 내를 건너가는 것이 이롭다.
(수需는 유부有孚하여 광형光亨이요 정길貞吉하니 이섭대천利涉大川이니라.) 
수천수, 하늘 위에 구름이 있다. 그래서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것을 수천수水天需라 한다. 왜 비를 기다리는가? 비가 와야 만물이 자라고 곡식을 얻게 된다. 비는 생명의 물이다. 비가 와서 곡식을 얻게 되고 곡식으 로 밥과 술을 지어 먹고 마시는 것이 기쁨이다. 기다림에는 믿음과 진실함이 있어야 빛나고 형통한다. 기다릴 때는 그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진 실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빛나고 형통하게 되며 의롭고 행복하여 큰일을 해낼 수 있다.
◆ 괘를 판단해본다. 수는 기다림이다. 위험이 눈앞에 있다. 강건하여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 그 의로움으로 곤궁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단왈彖曰 수需는 수야須也니라. 험재전야險在前也라. 강건이불함剛健而不陷이니 기 의불곤궁의其義不困窮矣니라.
수需에는 ‘기다린다’는 뜻 외에도 ‘요구한다’는 뜻이 있다. 기다림도 중도에서 벗어 나 지나치면 요구함이 된다. 서로 요구하게 되면 충돌하게 된다. 그래서 기다림은 자 칫 요구함이 되기 십상이니 위험한 상태가 눈앞에 있다는 말이다. 수천수水天需의 수(☵)를 길을 가다가 만난 눈앞의 강물처럼 위험한 것으로 본다. 눈앞에 위험이 있음 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건剛健’해야 곤궁함에 빠지지 않는다. 강을 건너려 면 물에 뜰 수 있는 법을 가져야 하고 자력이건 타력이건 물을 건널 힘을 가져야 한 다. 수영 실력과 체력을 가져야 한다. 또는 타고 갈 배와 연료를 준비하면 된다. 강건이란 무엇인가? 정신이 강한 것을 강剛이라 하고, 육체가 강한 것을 건健이라 
한다. 노자는 강건함을 허심실복虛心實腹이라 한다. 정신의 강건함을 빈 마음이라 하 고 육체의 강건함을 뱃심이 가득 찼다고 한다. 욕심 없는 마음이라야 온몸에 원기가 가득 찬다. 나라나 단체도 이렇게 강건해야 위험과 곤궁에 빠지지 않는다. 지도자는 욕심이 없고 구성원들이 활기로 가득 차 있으면 결코 위험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 강건한 정신, 즉 그 의로움 때문에 위험에 빠져서 곤궁에 처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 이다. 바다를 건너가는데 튼튼한 배가 있고 상세한 지도를 가진 선장이라면 어찌 바 다에 빠지거나 길을 잃는 곤궁함이 있겠는가.
◆ 기다리는데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니 빛나고 형통하고 의롭고 행복하다. 무슨 뜻인 가? 하늘의 지위에 올라가서 정중正中이 되었다는 말이다.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 함 은 무슨 말인가? 나가서 공을 이루게 된다는 뜻이다.
수需는 유부有孚이니 광형光亨하고 정길貞吉함은 위호천위位乎天位하야 이정중야以正中也니라. 이섭대천利涉大川이니 왕유공야往有功也니라.
 하늘의 지위란 무엇인가? 수천수 괘에서 물(☵)의 가운데 획인 구오九五를 말한다. 초구初九를 백성으로 보고, 그다음 차례로 과장, 국장, 장관으로 보고 구오九五를 대 통령으로 본다. 우선 대통령부터 정중正中이 되어야 한다. 정중正中이란 무엇인가? 괘에서 홀수 번째 자리에 양이 오는 것을 정正이라 하고, 가운데 처하는 것을 중中이 라 한다. 정이란 올바른 것이요 중이란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의지함이 없이 한 가운 데 처하는 것이다. 수천수 괘의 5번째 자리를 보면 가운데 양효로 되어 있다. 그래서 구오九五는 정중正中이 된 것이다. 
정중正中은 무엇을 말하는가? 앞에서는 강건剛健이라 하였는데 여기서는 정중正中
이라 한 것이다. 강건이 개인적 차원이라면 정중은 사회적 차원이다.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입장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정正이요 하는 일마다 시대와 상황에 알맞게 처리 하는 것이 중中이다. 또는 정正이란 사회에 정의의 기운이 가득한 것이고 중中이란 온 씨알과 백성의 마음이 하나로 모이는 일이다. 지도자는 정신을 차리고 정중正中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이라면 정의의 기운이 강하여 올바로 서서 온 백성의 마음을 하 나로 모으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을 진실한 지도자라 한다.
수需는 기다림이다. 자녀의 성숙을 기다리는 사람은 부모요 나라가 성장하길 기다
리는 사람은 지도자다. 부모는 자녀 앞에 있는 위험을 볼 수 있고 나라의 지도자는 국가의 앞날에 위험이 다가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위험의 위기 앞에서 부모에 게 필요한 것이 기다림의 지혜이다. 어떻게 기다리는가? 진실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
다. 유부有孚, 생명에 대한 진실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생명은 스르로 함이요 저절로 됨이다. 자주 자립 자유로 성숙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광형光亨, 정길貞吉이 다. 빛나는 지혜로 형통케 하는 굳센 힘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자녀들이 올바로 자 라나서 행복하게 된다. 자기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일어서고 스스로 날아 가는 자유의 기쁨이 행복이다.
나라에서는 누가 이렇게 해야 하나, 대통령부터 해야 한다. 어디서나 올바른 지도자 가 나와서 정신을 차리고 강건과 중정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씨알과 구성원들 이 호응하면 나라의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큰 강을 건널 수 있고 나가서 공 을 이루게 된다. 이섭대천利涉大川이요 왕유공야往有功也니라.
◆ 수천수 괘卦의 모습을 보고 말한다. 구름이 하늘 위로 올라간 것을 수천 수라 하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을 편안히 즐긴다. 상왈象曰 운상어천雲上於天이 수需이니 군자君子 이以로써 음식연락飮食宴樂 하느니라.
수천수는 기다림의 지혜라 하였다.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그 래서 자녀가 성인이 되고 집안이 바르게 되고 나라가 발전하고 온 세상이 천국이 되어야 한다. 
정역의 저자 이정호는 수천수 괘를 기독교식으로 해석했다. 즉 진실한 예수 가 나와서 믿음으로 온 인류를 죄악의 위험으로부터 구원하는 큰 공을 이루 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천국에 올라가서 아버 지 하나님과 함께 기쁨의 연회를 베푸는 것으로 해석했다. 
수천수 괘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먹고 마시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수는 기다 림인데 몸과 마음이 자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때 기다림의 지혜는 먹고 마시는 일을 아무 때나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꼭 정해진 때를 기다려서 먹고 마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식사를 끄니(끊이)라 했다. 먹는 것을 끊었다 가 때에 맞춰 먹는 것이 식사의 법이다. 밥이 되는 것도 때를 기다려야 한
다. 밥솥에 쌀과 물을 넣고 불로 끓인 다음에 밥이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어야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 밥솥의 물이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 간 것을 보고 밥이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맛있는 밥을 즐길 수 있다. 요즘이야 전기밥솥이 자동으로 해주기 때문에 편리하지만 이처럼 때의 지혜를 배울 기회를 잃어버리는 아쉬움이 있다.
무엇이나 알맞게 때를 기다린다는 것이 지혜다. 먹는 것도 때가 되어야 먹고 마시며 즐길 수 있다. 먹고 마시는 것을 편안하게 즐기는 것은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때를 기다려야 된다는 것이 또한 수천수에서 말하는 기다 림의 지혜다. 어디서나 무슨 일이나 기다림의 지혜가 부족하면 지나친 요구 가 되어 서로의 틈이 벌어지고 다툼과 송사가 일어난다.
◆ 천수송天水訟
천수송天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물이다. 즉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말하는데 이 비 가 차가운 북쪽 하늘에서 떨어지면 눈이 된다.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얼어붙고 결빙 으로 뒤덮이게 된다. 그런데 하늘의 비가 따뜻한 지방에 내리게 되면 만물을 살려주 는 생명수가 된다. 따뜻한 봄에 내리는 비는 만물을 살리는 단비가 되어 초목들이 생 기를 얻고 살아나지만 같은 하늘의 물이라도 겨울철 눈으로 내리면 만물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이다. 
송訟이란 글자는 사사로움이 없는 공공公公한 말씀(言)이라는 뜻이다. 말씀(言)이 
모든 만물을 살리는 생명수처럼 되면 진리眞理라 할 수 있지만 공공하다는 말씀이 세 상을 얼어붙게 만들면 그것은 도그마의 이념理念이요 교조주의敎條主義가 된다. 공산 주의나 자본주의나 무엇이건 하나의 사상이 주의主義(ism)가 되면 그것이 절대의 주 主가 되고 그것이 가장 옳은(義) 것이 되니까 다른 사상이나 생각들은 설 자리를 잃 게 된다. 그래서 하나의 주의主義 속에 빠진 사람은 그 이념에 얼어붙어서 꼼작 못하 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다석 류영모는 일체의 주의(ism)를 배격하였다. 진리는 고정될 수 없는 미정고(아직 완성되지 못한 작품의 원고)라 하였다. 체계화되고 굳어진 사상이나 이념 은 결코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의 입장은 늘 ‘모 름지기’라 하였다. 문을 지키는 문지기처럼 모름을 지키는 ‘모름지기’라야 진정한 구 도자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것은 진리라 하면 그것은 이미 참 진리가 아니다. 그런데 참 진리가 아닌 그것을 진리로 붙잡고 있으면 많은 생명을 억압하고 죽이는 교조주의 가 된다. 모름지기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모름지기다. 
◆ 송은 도그마의 싸움이라 믿음의 힘이 있지만 막혀있어 두려운 것이다. 중도에 길 함이 있으나 마침내 망한다. 송訟은 유부有孚이니 질척窒惕하여 중길中吉이나 종흉終凶이니라. 
송訟은 다투는 것이다. 왜 다투게 되는가? 도그마 때문이다. 자기가 주인이고 자기 가 가장 옳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도그마 속에 있는 사람에게도 믿음의 힘이 있
다. 누구보다 강한 자기 확신이 있다. 그래서 자기는 누구보다 정의를 위해 열정을 바치는 의로운 사람이라는 위험한 확신이 있다. 그것을 ‘송유부訟有孚’라 한다. 송이 라는 도그마 속에 어떤 힘이 있다는 것이다. 사탄에게도 세상을 움직이는 강한 힘이 있다. 
‘질窒’은 막힌 것이다. 두려워할 척惕이다.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막혀서 생각이 얼 어붙은 것이다.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동태처럼 얼어붙어서 꼼짝 못하게 되었다. 그것은 사탄에 사로잡힌 독재자가 지배하는 공포의 세계다. 그런 독재 자가 다스리는 세계는 도중에 잠시 잘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독재자는 자신의 길이 더욱 옳다고 확신하며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 약속한다. 그런데 그 거짓 된 진리가 어떻게 영원히 지속될 수 있겠는가? 마침내 망하고 만다. 그래서 ‘종흉終凶’이라 했다.
◆ 대인을 봄이 이롭다. 큰 강을 건너가는 것은 이롭지 않다. 이견대인利見大人이니 불리섭대천不利涉大川이니라. 
도그마에 빠져 있을 때 어떻게 해야 되는가? 자신을 구원해줄 대인을 만나야 된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좋은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야 미망에서 벗어난다는 말이다. 불리섭 대천不利涉大川’이다. 큰 강을 건너는 일은 이롭지 않다.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미망의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대 인을 만나야 되지 않겠는가? 평천하를 위해서는 먼저 수신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수신위본修身爲本이라 한다. 다석 류영모는 같은 뜻을 우리말로 바꿔서 ‘나므름 없이 제계로부터’라 했다. 예수의 말로 하자면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을 보기 전에 먼저 자기 눈 속의 들보부터 빼내라는 말이다. 
◆ 천수송괘를 판단해본다. 송訟괘를 보면 위는 강하고 아래는 험하다. 위험하고 씩 씩한 것이 송이라는 도그마다. 단왈彖曰 송訟 상강하험上剛下險 험이건송險而健訟
도그마의 집단은 힘이 있으나 막혀있기에 두려운 것이다. 중中이 길하다 함은 강한 
것이 와서 가운데를 잡았다는 말이다. 송訟은 유부有孚하여 질척窒惕이니 중길中吉은 강래이득중야剛來而得中也이니라.
현대에 도그마가 지배하는 대표적인 사회가 공산주의다. 그래서 송訟을 공산주의라
고 보면 위에는 독재자가 있고 그 밑에 독재자의 명령에 따라서 무슨 짓이라도 하는 아주 험악한 권력집단이 있다. 독재 세력이란 대개 깡패의 집단이다. 그래서 사람 목 숨을 파리 목숨처럼 가볍게 여긴다. 독재자는 강한 힘을 가지고 지배하기 때문에 그 사회는 폐쇄되고 막혀있어 두렵고 위험한 것이다. 그런 강력한 독재자가 지배하면 한 때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끝내 죽고 만다는 말은 거짓된 도그마의 이상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종흉終凶 송부가성야訟不可成也 
사탄의 세계는 결국 망하고 만다. 거짓된 도그마의 이념이 실현될 수는 없다. 그래 서 결국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로마제국, 몽고제국, 일본제국, 소련 등 모든 독재국 가는 다 멸망하고 말았다. 
큰 사람을 만나야 이롭다 함은 중정을 숭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견대인利見大人 상중정야尙中正也 큰 강을 건넘이 이롭지 않다 함은 깊은 바다에 빠지기 때문이다. 불리섭대천不利涉大川 입우연야入于淵也
이념의 도그마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선지식을 만나야 한다. 철인 을 만나야 된다. 대인을 만나야 한다. 대인을 찾는 것은 중정을 숭상하는 것이다. 중 정을 잃은 것이 도그마요 이념이요 천수송이다. 한번 물에 빠지면 스스로 헤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구원자를 만나야 된다.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다가는 더 깊은 물 에 빠지고 만다. 
◆ 천수송 괘의 모습을 보고 말한다. 하늘과 물이 어긋나게 가는 것을 송이 라 한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사업을 시작할 때 철저한 준비를 한다.
상왈象曰 천여수天與水 위행違行이 송訟이니 군자君子는 이以로써 작사모시 作事謀始 하느니라.
송은 다툼이다. 하늘은 아버지요 물을 아들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뜻과 다르 게 간다. 아버지와 아들은 친함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서로 어긋나면 불 화하게 된다. 사람이 하늘의 뜻에 어긋나게 행동하면 하늘의 심판을 받는다. 송은 심판하는 일이다. 서로 다투면 재판을 하게 되는데 재판의 기준은 하늘 의 말씀이요 또 공공의 말씀인 법률이다. 송의 뜻에는 이처럼 다툰다는 뜻도 있고, 재판이라는 뜻도 있고, 법이라는 뜻도 있고, 진리라는 뜻도 있고, 도그 마라는 뜻도 있다. 모든 심판은 공공의 말씀이 한다. 사람은 법의 심판을 받 는다. 
그런데 군자가 바라는 것은 이런 다툼이 없고 재판이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거나 미리미리 잘 헤아리고 준비하여 조금의 분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힘쓴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충분한 검토와 준비가 필요하다. 그것을 작사모시作事謀始라 한다. 무슨 사업이건 무모하게 덤벼들지 말고 미리서 계획을 잘 세워서 일이 진행된 다음에 일어 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검토와 대비를 철저히 마련해 놓는다는 뜻 이다.   
논어를 보면 송사에 대한 공자의 말씀이 나온다. “내가 송사를 처리하는 방 법이야 남들과 같겠지요. 그렇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송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미리 예방하는 것입니다.”
송사가 일어나면 법으로 심판을 한다. 그런데 법으로 심판을 하면 반드시 원 한이 남게 된다. 그래서 심판에 이르기 전에 화해하는 것이 좋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미리 불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다. 그래서 군자는 일을 시작할 때 다툼이 일어날 여지가 없도록 깊이 생각하여 지혜롭게 준비한다 는 것이다. 무슨 일이나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라는 것과 기다리면서 미리미리 지혜롭게 준비하라는 것이 수천수와 천수송에서 말하는 내용이다.
◆ 수천수괘에서 수需는 기다린다, 요구한다는 뜻이다. 천수송의 송訟은 송 사한다, 다툰다는 송이다. 기다리며 요구한다는 수需와 서로 다툰다는 송訟 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서로 요구하다 보면 다투게 되는 것이다. 서로 요구 하고 다투는 대상은 무엇인가. 권력과 돈과 명예를 바라고 다툰다. 이런 것 을 탐진치 삼독三毒이라 한다. 우리는 탐진치를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가? 공 공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와 일치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수천수는 아버지가 아들을 업고 철이 나길 기다리는 것이고 천수송은 아들 이 아버지를 업고서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아들이 아들답게 되기를 기다림이 수천수요 아버지가 아버지다운 모습이 무엇인지를 가리킴이 천수 송이다. 그래서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이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욕심 때문에 믿음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너무 야단치거나 앞서 면 아들과의 사이에 틈이 벌어진다. 그렇다고 또 지나친 애정으로 친압을 해 도 성장을 방해한다. 
그래서 유부有孚, 진실한 믿음을 가지라 한다. 진실 부孚는 어미닭이 계란을 쪼는 모습이다. 계란이 어미 닭 품 안에서 병아리로 부화할 때의 형상을 진 실 부孚라고 한다. 부자유친이 되려면 이런 진실이 있어야 한다. 아버지는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아들이 성숙할 때를 기다려서 알맞게 일깨워야 한다. 이렇듯 부자유친의 비결은 진실한 믿음과 때에 맞추는 지혜다. 유부有孚이면 광형光亨이다. 부모가 진실한 믿음과 사랑으로 기다리면 마침내 자녀들이 빛 나게 되고 형통하게 된다. 
<평산의 주역풀이> 
6. 전쟁과 평화, 생사즉열반 지수사(7) 수지비(8)
◆ 지수사地水師의 사師는 전쟁이고 수지비水地比의 비比는 평화를 말한다. 천수송의 내용인 다툼과 송사가 국내적 문제라면 지수사의 전쟁은 국제적인 문제다. 다툼이 커지면 전쟁이 된다. 전쟁과 평화는 나라와 세계를 어떻게 바로잡냐 하는 문제다. 나라의 목적은 씨알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평화와 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나라에 분쟁과 전쟁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할 것인
가. 
◆ 지수사地水師
지수사의 사師는 의로운 전쟁을 말한다. 의롭고 올바른 장수가 나와야 길하고 허물이 없다. 지수사地水師는 정貞이니 장인丈人이 길吉하고 무구無咎니라.
◆ 지수사 괘를 판단한다. 지수사의 사師는 군대의 무리를 말한다. 정貞이란 정의롭 다는 말이다. 많은 무리를 능히 정의롭게 쓰면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실현할 수 있다.
단왈彖曰 사師는 중야衆也니라. 정貞은 정야正也니라. 능이중정能以衆正하면 가이
왕의可以王矣이니라.
땅속에 물이 차 있는 것을 지수사地水師라 한다. 물은 모이는 성질이 있고 위험하다는 뜻도 있다. 물의 양이 적절하면 흙을 단단하도록 뭉치게 하지만 너무 많은 물은 흙을 녹아내리고 무너뜨린다. 적절한 수분은 땅을 견고하게 하지만 땅속의 물이 너무 많으면 위험한 것이다.
땅을 어머니라 하고 물을 아들이라 볼 수도 있다. 어머니가 임신하면 위험한 상태가 된다. 땅은 백성, 즉 씨알들이요 물은 물욕이라 볼 수도 있다. 인간의 물욕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서 활력을 주지만 지나치게 되면 사회를 위험 하게 만든다. 사회에 음란과 사치가 극성하게 되면 씨알들의 불평불만은 커 지게 되고 폭력과 분열로 위험하게 된다. 나라가 혼란하고 수습할 힘이 없게 되면 외부의 침략을 받게 된다.
왕의 잘못으로 백성을 가장 위험한 상태에 빠뜨린 상태가 전쟁이다.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바르고 의로운 장수가 나와야 한다. 그래서 씨알을 모아 이끄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지수사 괘의 여섯 효 가운데 유일하게 구이九二만 양이고 나머지는 모두 음이다. 구이九二는 모든 씨알의 무리를 이끄는 올바른 장수를 상징한다. 의롭고 올바른 장수는 어떤 사람인가? 우리 역사에서 이순신 장군이 본이다. 문무를 겸전한 사람으로서 지인용智仁勇, 지혜와 인덕과 용기를 갖춘 사람이다. 
◆ 지수사 괘의 모습을 본다. 땅속에 물이 있는 것이 사師라는 괘다. 군자는 이로 써 백성을 포용하고 군사의 무리를 기른다.
상왈象曰 지중유수地中有水를 사師라 하니 군자君子는 이以로써 용민휵중容民畜衆하 느니라. 
땅이 물을 품고 있는 그것이 사師다. 군자는 이 괘를 보고 ‘용민축중容民畜衆’에 힘
쓴다. ‘축중’을 ‘휵중’으로 읽을 수도 있다. 쌓는다고 할 때는 축, 그리고 기른다고 할 때는 휵이라 읽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민축중 또는 용민휵중, 두 가지 뜻이 있다. 
용민축중容民畜衆은 민의를 용납하고 중지를 모아서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다. 또 백성의 뜻을 받아들여 농민을 훈련시켜 군사로 길러야 한다는 뜻이 있다. 땅이 물을 품듯 백성들의 불평불만을 해소한다는 뜻이 있고, 또 땅이 만물을 길러내듯 백성들에 게 훈련을 시켜 힘을 길러야 한다는 뜻이 있다. 농경사회에서 백성은 농민이다. 여름 에는 농사를 짓게 하고 겨울에는 군사훈련을 시켜서 나라를 지키게 한다는 말이다.
 
◆ 수지비水地比
땅 위에 물이 있는 것을 수지비 괘라 한다. 비比는 행복이다. 근원이 나타난 것이
다. 싹이 트고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는다. 허물이 없다. 비比는 길吉이니라. 원서原筮하고 원영정元永貞이니 무구无咎이니라 
비比라는 글자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따른다, 좇는다, 비 교한다는 뜻이 있다. 서로 어깨동무하며 평화로운 관계를 비比라고 한다. 지수사 괘 가 나라에 위험이 가득한 전쟁상태라면 수지비는 위험과 고통이 변하여 기쁨과 희망 으로 솟아나는 평화의 세계다. 지수사 괘의 구이九二가 수지비 괘에서 구오九五가 되 었다. 즉 민중 속에서 씨알의 지도자가 나타나서 마침내 왕위에 오른 것이 수지 비괘 다.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서 땅 위로 물이 솟아나듯 백성의 기쁨이 솟아나는 모습 을 수지비라고 보는 것이다. 
사막에서 물이 솟아나면 오아시스가 되는데 수지비水地比가 이런 오아시스를 상징 한다고 볼 수 있다. 갈등과 분열의 위험이 극복되어 화합과 일치의 평화의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 이상세계가 되려면 씨알의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어떻게 씨알의 지도자 가 되는가? 씨알의 지도자가 되려면 하나님을 만나서 사명을 받아야 된다. 그래서 원 서原筮라 하였다. 지도자의 조건이 원서原筮라 하는 절대자와의 만남이다. 서筮는 점 을 친다는 말이다. 점을 치는 것은 하늘의 뜻을 알기 위함이다. 하늘이 뜻을 찾아 천 명을 자각한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 하늘이 점지해준 사람이라야 나라의 지도자가 되 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사명을 받은 사람, 천명을 자각한 철인이 나와야 이상 국가를 세울 수 있다. 그런 철인의 모습은 무엇인가? 원영정元永貞이다. 원元, 진리를 깨친 사람이요, 영永, 영원히 발전하는 사람이요, 정貞, 하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다. 진리를 깨치면 자기라는 욕심이 없기에 겸손히 배우며 영원히 발전한다. 노자는 성인이 되면 자기 마음이라는 것이 없고 늘 백성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그만큼 백성과 하나가 되어 발전한다는 말이요 천심에 순종한다는 말이다.
편안하지 않은 자들이 사방에서 찾아온다. 뒤진 자는 망한다. 불영방래不寧方來하니 후부後夫는 흉凶이니라 
새로운 지도자는 누구나 그를 찾아온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 누구든지 문제
가 있는 사람, 편치 않은 사람은 오라고 초청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태 11:28). 초청을 받아서 남들은 다 왔는데도 거기에 끼지 못하면 불 행할 것이다. 빨리 찾아와서 생명의 물을 함께 마셔야지 오지 않아서 못 마시면 죽는 다는 말이다. 새로운 지도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뒤에서 거부하며 헐뜯는 자는 모두 죽게 될 것이다.
◆ 수지비 괘를 판단한다. 비는 행복한 것이다. 서로 돕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랫사 람들이 순종하는 모습이다. 단왈彖曰 비比는 길야吉也니라. 비比는 보야輔也라, 하순종야下順從也니라. 
비比는 서로 사랑하며 돌보아주는 것이다.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들어 연약한 사람 들을 돌보는 일이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 것이 행복한 나라의 근원이다. 하순종下順從, 스스로 낮추고 겸손하게 진리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다.
하늘이 점지한 지도자가 나와서 이상세계가 된다. 진리를 깨닫고 영원히 발전하며 
하늘의 뜻에 순종하니 허물이 없다. 철인이 나와서 나라의 중심을 잡은 것이다. 원서原筮하여 원영정元永貞이니 무구无咎라 이강중야以剛中也이니라 강중剛中이란 구오九五를 말한다. 하늘의 뜻을 점지받은 강한 사람(剛)이 나와서 모 든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그 중심(中)을 잡은 것이다. 모든 씨알이 그 새로운 지 도자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말이다. 
편안하지 못한 사람이 찾아온다고 함은 위아래가 서로 응한다는 말이다. 늦게 오는 
자가 흉하다고 함은 그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불녕방래不寧方來는 상하응지上下應也이니 후부흉後夫凶은 기도其道가 궁야窮也니 라. 
편안치 않은 사람은 모두 오라는 말은 지도자가 그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것이
다. 그런데 아무리 오라 해도 오지 않는 사람은 불행하게 된다. 왜냐면 그가 살아날 길을 찾지 못하고 막히기 때문이다.
◆ 수지비 괘의 모습을 본다. 땅 위에 물이 있는 것을 수지 비比라고 한다. 선왕 은 이것을 보고 만국을 세워서 모든 나라와 친하게 지냈다.
상왈象曰 지상유수地上有水가 비比이니 선왕先王은 이以로써 건만국建萬國하고 친제 후親諸侯하니라.
땅 위로 물이 솟아나서 호수를 이루니 모든 만물이 모여 친하게 지낸다. ‘선왕先王’
이란 성인聖人 즉 철인哲人을 말한다. 이상국가가 되려면 철인이 왕이 되든지 왕이 철학을 하든지 해야 한다. 철인 왕이 나와야 모든 나라와 모든 씨알이 행복하게 산 다. 
‘선왕先王’을 기독교로 풀어보면 왕중의 왕인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와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진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모두가 친하게 지 내자는 게 복음이다. 땅에서 나무가 자라나서 숲을 이루는 것처럼 세상에 나라들이 일어서서 평화의 세상이 온다. 이렇듯 모든 나라가 서로 친하여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게 되는 이상세계를 수지비水地比라 한다. 모든 철인이 꿈꾸는 이상세계의 모습을 수지비 괘에서 본 것이다. 
◆ 지수사地水師는 전쟁의 상징이고 수지비水地比는 평화의 상징이다. 지수 사 괘를 뒤집으면 수지비 괘가 된다. 전쟁을 뒤집으면 평화가 된다. 지수사 는 땅속의 지하수요 수지비는 땅 위로 솟는 샘물이다. 지하수가 가득하게 되 면 땅이 위험하게 되지만 지하수가 샘물로 터져 나오면 만물을 살리는 생수 가 되어 기쁨이 열린다. 
땅속의 지하수가 터져 나오면 기쁨의 샘물이 되듯이 인생의 고민도 어느 순 간 가슴을 뚫고 나와 진리가 된다. 그래서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 한다. 진 리와 번뇌는 서로 다름이 아니라 번뇌가 변하여 진리가 되는 것이다. 진실이 땅속에 들어가면 불만과 번뇌가 되지만 그것이 밖으로 터져 나오면 기쁨과 진리가 된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새 생명의 싹이 나와서 많 은 열매를 맺는다. 땅인 어머니가 생명의 씨를 임신하면 위험하고 괴롭고 힘 들어도 그것을 길러 마침내 밖으로 낳게 되면 새 생명을 출산하는 기쁨이 터지고 평화가 온다. 
◆ 구도자의 길 누구나 사람은 자기의 실존적 고뇌를 지니고 산다. 자기의 문제가 없는 사람 은 없다. 그런데 그 문제를 스스로 의식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구도자는 자 기의 문제를 찾아서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까 붙들고 고민한다. 자기의 문제 를 파고 들어가는 일이 참선이다. 그것은 마치 뜨거운 쇠구슬을 삼킨 듯 괴 롭고 힘들어서 토하고 싶어도 토할 수도 없다. 온갖 생각과 방편으로 기력을 다하여 애써보지만 결국 다 포기하고 힘이 빠졌을 때 번뇌는 어느덧 사라져 없고 텅 빈 충만의 기쁨이 온다. 자기도 모르게 새로운 생명을 출산한 것이
다. 내가 이제 나를 낳아 대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나 밖에 부처가 어디 있으며 조사가 어디 있느냐? 생사를 넘고 윤회를 벗어난 나는 이제 지옥에 들어가도 유희삼매를 즐길 뿐이다. 생사가 곧 열반이요 지옥이 곧 천국이다. 이렇듯 부처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는 번뇌의 진흙 속에서 깨달음의 연꽃 을 피워야 한다. 깨끗한 연꽃이라 하여 깨끗한 허공을 찾아가서는 도저히 연 꽃을 피울 수 없다. 더러움 속이라야 깨끗함이 있는 것이다. 짐승들의 분뇨 로 더러워진 땅일수록 옥토가 되어 아름다운 향기의 꽃을 피워낼 수 있다. 연꽃이 자라는 것을 보면 3층천을 산다. 맨 밑바닥 뿌리는 어둡고 더러운 진 흙밭이요 줄기는 물속에서 뻗어나고 꽃은 물 밖으로 솟아 공중에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떨친다. 우리가 처해서 사는 환경이 추하고 험악할수록 성인 들은 그 속에서 더 아름다운 진리의 꽃을 피워낼 수 있다는 것이다.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는 말이 좋다. 내적 모순의 번뇌와 죽음이 없으면 외 적 생명의 보리와 평화도 없는 것이다. 지수사와 수지비는 전쟁과 평화를 말 한다. 번뇌와의 싸움이 전쟁이요 번뇌가 사라졌을 때 평화가 온다. 내적 모 순의 전쟁을 잘 다스리고 극복하면 발전과 통일의 평화가 된다. 깨달음이란 우리말은 돈오頓悟의 깨침과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점수漸修로 계속 달려감을 합친 말이다. 깨서 달려간다는 말이 깨달음이다. 병아리로 깨어나서 달리다 가 날아간다. 
불교가 개인적 차원이라면 유교는 사회적 차원을 강조한다. 그래서 내적 모 순의 극복과정을 용민휵중容民畜衆이라 한다. 내적 모순을 극복하고 통일하 는 일이 용민容民이요 새로운 백성으로 길러감이 휵중畜衆이다. 그래서 평화 로운 만국을 건설하자는 것이 지수사와 수지비 괘의 가르침이다. 개인이 깨 어나듯 나라도 깨어나서 발전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라를 일깨우려면 철인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철인이 나와서 나라를 다스려야 이상국가가 된다고 한다. 나라를 일깨우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씨알이다. 그래서 씨알이 먼저 깨어나야 한다. 깨지 못하면 생사의 전쟁이지만 깨어나면 생사가 곧 열 반이라는 평화가 된다. 씨알들이 깨어나면 생사의 전쟁터가 변하여 열반의 평화가 온다. 그래서 깨어나길 힘써야 한다. 깨어나기 위해 힘쓰는 씨알들이 나와야 나라가 살아나고 평화가 오기 때문이다. 깨어나기를 힘씁시다. 깨기 를 힘씁시다. 이것이 또한 나라를 사랑하는 다석 류영모선생의 외침이기도 하다.  
<알기쉬운 주역풀이>
7. 진리와 생명의 기쁨과 평화 : 
풍천소축(9), 천택리(10)
◆ 하늘 위로 바람이 불어간다. 그것을 풍천소축風天小畜이라 한다. 하늘 위의 바람 은 무엇인가? 천지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숨이요 진리의 바람이다. 우주와 만물이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의 숨결이 태초부터 운행하고 있었다. 아무 형체도 없는 텅 빈 흑암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생명의 근원적 힘으로서 생기가 그 수면 위로 운행하시 며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말씀의 빛이 곧 태초의 시작이었다.
우주의 바다에 하나님의 숨이신 진리의 바람이 불어오자 생명의 물결이 일어난다. 생 명의 물결마다 진리의 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무한한 시공 안에서 빛의 별들과 신명 과 만물이 서로 손을 잡고 한 생명의 춤이 되어 웅장한 교향곡처럼 울림으로 시작된 천지신명의 온생명 세계는 바로 하늘 위에서 불어오는 하나님의 영, 창조의 숨결로부 터 비롯되었다. 말씀의 영에서 생기가 나와 빛이 되고 빛은 모여서 에너지가 되고 에 너지는 뭉쳐서 물질이 되고 물질은 터져서 빛이 되고 빛은 또한 물질을 만나 생명이 된 것이다.
땅에 돋아난 생명의 싹은 비록 작고 작은 것이지만 그 속에 자기가 태어난 우주의 모 든 진리를 품고 있다. 풍천소축風天小畜은 이처럼 연약하고 작은 생명이 우주의 모든 진리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괘의 모습으로 말하면 연약한 것이 다른 강한 것들을 붙 잡고 있다는 뜻이다. 연약한 것이란 무엇인가? 유순하고 겸손한 생명을 유순한 것이 한다. 또 강한 것은 하늘의 덕을 말한다. 하늘의 덕은 강건한 것인데 달리 말하여 진 리를 말한다. 진리처럼 강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생명처럼 유순한 것이 없고, 진리처 럼 강한 것이 없다. 그런데 유순한 생명 속에 가장 강한 진리의 하늘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풍천風天 소축小畜이라 한다. 바람은 유순한 생명의 상징이요 하늘은 강한 진리의 상징이다. 
바람의 또 다른 의미는 태초에 하늘 위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숨결이다. 태초는 언 제인가? 태초의 맨 처음이란 하늘 땅이 나타나기 이전이다. 시공이 나타나기 이전에 하나님의 숨결만이 창조의 근원으로서 운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은 그 태초의 숨결을 지금도 운행하고 계신다. 148억 년 전 초기 우주가 나타날 때 폭발하 는 그 순간의 진동이 이 순간에도 여전히 진동하며 우주배경복사로 나타나듯이 하나 님의 숨결은 지금도 여전히 운행하고 계신다. 창조의 영이신 그 숨결, 그 바람에 부 딪히는 순간이 태초다. 하늘 밖으로 올라가 잠깐이라도 그 숨에 부딪혀 반짝 빛으로 머물 수 있다면 그는 진리를 깨닫고 거듭나는 참 생명이 된다. 나는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있었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는 말이다. 태초부터 있는 나는 참이요 거듭난 생명이다. 생명은 진리의 빛이다. 태초의 숨, 태초의 말씀, 진리의 빛이 없으 면 생명도 아니다. 
그럼 이런 진리를 품고 태어난 생명은 어떻게 살림살이를 살아야 하는가? 풍천소축을 뒤집으면 천택리天澤履가 된다. 하늘이 주는 기쁨을 가지고 사는 우주적 살림살이를 천택리天澤履라 한다. 하늘은 높은 것이요 호수와 바다는 깊고 낮은 것이다. 호수는 기쁨을 상징한다. 가장 낮은 호수는 가장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기뻐한다는 말이다. 하늘을 품고 있는 호수처럼 인생은 기쁨으로 살게 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 천택리天澤履다. 
바람처럼 유순하고 겸손한 덕은 바다와 호수처럼 가장 낮은 곳에 처하여 결국 높은 하늘을 우러러 받들며 기쁨으로 충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삶의 존재의 의미 를 밝히는 것이 풍천소축이라면 인간의 이상을 실현하는 삶의 실천 원리를 밝히는 것 이 천택리라는 것이다. 
◆ 풍천소축風天小畜  하늘 위에 바람이 부는 것을 소축小畜이라 한다. 소축은 형통한다. 구름이 빽빽한데 비가 오지 않는다. 나로부터, 내가 있는 서쪽 교외로부터다. 풍천소축風天小畜이니 형亨이다. 밀운불우密雲不雨이니 자아서교自我西郊니라.
하나님은 진리의 영이시고 창조주로서 생명의 근원이 되시며 우주 만물의 창조와 운 행 및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사랑의 말씀이시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 다 헤아릴 수 없지만 계시로 나타나시는 그 영의 바람을 만나서 휩싸이는 실존적 종교체험으로서 나 자신의 근원을 볼 수가 있다. 이런 종교적 진리체험을 소축이라 한다. 
그 체험은 잠깐이요 또한 한 점 무한소로 자기가 없어지지만 (소小, 소라는 글자가 낱알, 또는 점을 나타냄) 무한하고 영원한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기에 모든 것을 함축 하는 (쌓을 축畜) 순간이요, 시공의 흐름이 잠시 그치고 멈추는(그칠 축畜) 순간이라 서 영원한 현재가 되는 그것을 소축이라 한다. 문왕은 바로 이처럼 하늘 밖의 절대자 를 만나서 자기의 근원을 보게된 체험을 했기에 소축이라 했고 자신을 진리의 왕, 즉 문왕이라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진리체험은 형통하는 것이다. 형통한다는 것은 절대자와 만남으로써 근원과 통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구름은 빽빽한데 비가 오지 않는다. 어찌해야 될까? 진리의 바람은 언제나 어디나 없는 곳이 없다. 구름이 빽빽한데 비가 내리지 않는 것처럼 진리의 바 람은 어디나 있지만 그것을 깨닫고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 바람이 없다고 야단 치지 만 사실은 부채가 없는 것이지 바람이 없는 것이 아니다. 부채만 있으면 어디서나 바 람을 느낄 수 있다. 생명의 바람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부처요 깬 사람이다. 부채를 들고 있는 사람이 부처라는 말이다. 구름이 빽빽하다. 성령의 구름을 붙잡아 진리의 비를 내리는 사람이 성인이다. 
문왕은 진리를 깨닫고 시대적 변화와 변화된 시대의 뜻을 보았다. 그저 하늘만 바라 보던 그런 신화적 시대에서 벗어나 이제는 인간의 덕으로 빽빽한 구름을 붙잡아 비를 내릴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라는 사명이었다. 농기구를 만들고 정전법을 만들고 관 개시설을 만들어 천수답을 수리답으로 변화시켜 백성들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자 했
다. 또 예를 세우고 덕을 베풀어 백성의 마음을 안정시키고자 했다. 문왕은 이처럼 자기의 사명이 성령의 구름을 붙잡아 진리의 비를 내려서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창조 하는 일이라 여겼다. 그래서 유리라는 감옥에 갇혀 지내면서 주역을 풀이했다. 구름이 빽빽하게 차 있는 시대에 진리의 비를 내리게 하는 도구가 무엇인가 하면 주 역이었다. 전쟁과 대사의 길흉을 묻는 점서로서 주역이 아니라 하늘의 도와 인간의 길을 찾는 새로운 진리의 원천으로서 주역을 풀이했다. 주역을 가지고 새로운 사상과 철학으로 세상을 변혁하려고 했던 사람이 문왕이었다. 비가 와야 하는데 누가 비를 내리게 할 것인가? 나로부터, 내가 있는 곳부터 비가와야 되지 않겠는가? 
상나라 문화가 끝나고 새로운 주나라 문화가 시작된 것은 바로 문왕, 진리의 왕인 나 에게서 비롯될 것이다. 문왕은 새 문화 창조의 수단으로서 주역을 풀이했고 특히 주 역 64괘 가운데 풍천소축을 자신의 괘로 여기며 새 시대를 개창하는 진리의 왕이 된 것이다. 
◆ 풍천소축 괘를 판단해본다. 소축은 부드러운 것이 자리를 얻어 상하에서 응하는 것이다. 그것을 말하여 작은 것이 일체를 붙잡고 있다고 한다.  단왈彖曰 소축小畜 유득위이柔得位而 상하응지上下應之 왈曰 소축小畜
건강하고 겸손하다. 진리처럼 강한 중용을 가지고 그 뜻을 실천해가면 마침내 형통
한다. 건이손健而巽이니 강중이지행剛中而志行이라 내형乃亨이니라.
소축괘를 보면 일음오양一陰五陽으로 되어 있는데 네 번째 효 육사라는 일음一陰이 나머지 오양五陽을 붙들고 있는 상이다. 지극히 작은 것, 육사 하나가 강한 것 다섯 을 붙잡고 있는 상이다. 작은 것은 무엇일까. 진리의 빛으로 태어난 작은 생명이다. 진리를 깨닫는 체험, 이것은 비록 작은 것이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모든 새로운 역사를 이루는 씨앗이요 싹이 된다. 다석이 1942년 1월 하나님을 만나서 믿음에 들어 가는 체험을 한다. 그 한 순간의 체험이 있었기에 이후 그 체험을 가지고 수십년간 생명의 말씀이 나온다. 작은 성령체험 가운데 일체의 말씀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 것을 소축小畜이라 한다. 예수는 이름 없는 나자렛 촌뜨기로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 의 아들이 되어 복음을 전하다 반란죄로 십자가형을 받았다. 그러나 그 말씀 안에 생 명이 있기에 온 세상이 그가 없이는 하나도 된 것이 없다. 일즉일체요 일체즉일이다. 앞으로 한국이 새 역사를 일으킨다면 그것은 다석의 말씀을 기반으로 일어날 것이다. 다석은 비록 작은 생명이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진리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풍천 소축이라 한다. 하나님의 진리와 함께 하는 그것을 강중이라 한다. 강한 진리를 가지고 매 순간 중용을 잡아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뜻을 실천해 가 면 결국 형통하게 된다. 나로부터, 우리나라부터, 그리하여 온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 가 이루어 지이다.    
◆ 괘상을 풀어본다. 바람이 하늘 위로 불어 가는 것이 소축이다. 상왈象曰 풍행천상風行天上이 소축小畜이니라   
이로써 군자는 문덕文德을 아름답게 빛낸다. 군자君子는 이의문덕以懿文德이니라.
하늘 위의 바람이 소축小畜이다. 하늘 위의 바람이란 기독교로 말하자면 성령이다. 인도 사람들은 브라만이라고 하는데 브라만도 바람이라는 뜻이다. 우주의 원리 혹은 우주적인 생명을 브라만이라 한다. 그리고 내 안의 생명 또는 내재하는 진리를 아트 만이라 한다. 우주적인 생명과 내 생명이 하나가 되었을 때 범아일여梵我一如라 한 다. 초재와 내재가 일치되는 그런 경험을 풍천소축이라 한다.
군자는 이의문덕以懿文德, 진리眞理로 덕德을 아름답게 펼친다. ‘의懿’란 ‘아름답다’는 뜻이다. 군자는 아름다운 문덕文德을 지녀야 한다. 문덕文德이란 진리의 덕이다. 문은 성인의 말씀인 진리요, 덕은 속알의 생명 또는 예술이다. 다른 말로 철학과 예술이다. 우리 속에 들어있는 참을 찾을 때, 속알을 찾을 때, 그것을 철학이라 하고 자기의 속 알을 밖으로 드러내며 실천하는 것을 예술이라 한다. 다시 말하여 예술의 아름다움이 안으로 들어가면 철학이요 철학의 아름다움이 밖으로 드러나면 예술이라 한다. 철학 의 빛을 밝히고 예술의 아름다움을 빛내는 것, 그것을 문덕文德이라 한다. 
하늘 위의 성령의 바람이 모든 문덕文德의 원천이다. 성령체험에서 진리의 빛이 나오 고 생명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성령체험에서 비롯된 진리의 기쁨을 아름다운 예술 로 드러내는 것을 말하여 이의문덕以懿文德이라 한다. 근본체험을 가지고 진리의 기 쁨과 생명의 덕을 아름답게 높이자는 것이다. 군자의 삶은 이처럼 진리의 기쁨을 철 학으로, 생명의 아름다움을 예술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 천택리天澤履(10) 호랑이 꼬리를 밟는데 사람을 물지 않는다. 형통한다. 이호미履虎尾인데 부질인不咥人이니 형亨이니라 
천리의 세계를 기쁨으로 실천하면 이상세계가 실현된다. 그것을 천택리라 한다. 이 상세계가 되면 어린이와 호랑이가 어울려 평화롭게 산다. 천리를 깨닫고 실천하는 것 은 기쁨의 세계요 평화의 세계다. 모든 생명은 빛 가운데 일어나서 모두와 어울려 평 화를 누린다. 진리에서 터져 나오는 힘이 생명의 기쁨이다. 풍천소축을 뒤집으면 천택리가 된다. 하늘 아래 호수가 있다. 호수는 기쁨을 나타낸
다. 바다처럼 깊은 호수는 높은 하늘의 기쁨을 품고 있다, 하늘을 품고 있는 기쁨의 바다, 그것을 천택이라 한다. 리履는 실천한다는 뜻, 또는 신발이다. 신발을 가지면 걸어갈 수 있고 뛸 수도 있다. 신발은 우리 몸의 맨 아래에서 받쳐주며 산다. 신발처 럼 바닥에서 이웃을 섬기며 기쁘게 사랑을 실천한다는 뜻이 천택리다. 
◆ 천택리 괘를 판단한다. 리履는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밟는 것이다. 단왈彖曰 리履는 유리강야柔履剛也이니라 
백성들이 위정자를 기뻐서 쫓아가는 것이 리履다. 유柔는 백성들이고 강剛은 위정
자들인데 백성들이 위정자를 믿고서 기쁘게 쫓아가면 그것이 이상세계다. 
◆ 기뻐서 하늘에 응한다. 그러므로 호랑이의 꼬리를 밟아도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형통한다. 열이응호건說而應乎乾이니 시이是以로써 이호미履虎尾이나 부질인不咥人이니 형亨이 니라.
백성들이 기쁜 마음으로 왕의 정치에 응하면 그것 또한 이상세계다. ‘열說’은 기쁘 다는 뜻이다. 학생들이 기쁜 마음으로 선생을 쫓아가면 그 학교는 제대로 된 학교다. 또 온 가족들이 아버지를 기쁜 마음으로 쫓아가면 그 집은 잘 되는 집안이다. 온 백 성이 대통령을 기쁜 마음으로 쫓아가면 그 나라는 잘 되는 나라다. 언제나 기쁜 마음 으로 지도자를 쫓아가야 한다. 이상세계의 주인공은 중정을 얻은 구오이다. 이상세계 의 왕은 어떤 사람인가?
◆ 강한 것이 중정이 되어 제왕의 지위에 올라 모든 고질을 없애고 일체를 밝고 투명 하게 비춘다. 강중정剛中正이 리제위履帝位이니 이불구而不疚이면 광명야光明也니라. 
 강剛하고 절대 치우치지 않고(中) 그리고 정말 실력 있는(正) 중정의 사람이 대통
령이 되어야 한다(이제위履帝位). 그리고 부정부패가 없어야 한다(불구不疚). 구疚는 오래된 병이다. 부정부패라는 병이 있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 부정부패는 얼마나 오래 된 고질병인지 모른다. 부정부패가 없고 정의의 빛을 온 세상에 비춰서 명랑하고 기 쁜 광명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이런 중정의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광명으로 다스려야 이상세계가 된다.
◆ 괘상을 본다. 위는 하늘이요 아래는 연못이 있는 것을 리履괘라 한다. 상왈象曰 상천하택上天下澤이니 리履이니라 
생명은 작고 약해도 강한 것을 붙잡는 힘이 있다. 그것을 풍천소축이라 한다. 그리고 하늘의 힘을 얻은 생명은 신발을 신고 기쁨으로 달려간다. 상천하택, 위에 있는 하늘 은 강한 진리의 힘이고, 아래 있는 연못은 생명의 기쁨이다. 생명이 갖는 진리의 힘 을 풍천소축이라 하면 힘이 솟아나는 생명의 기쁨을 천택리라 한다. 진리의 힘과 생 명의 기쁨이다. 하늘(天)은 진리理의 상징이요 호수(澤)는 우리 마음을 상징한다. 그래 서 천택天澤을 심즉리心則理로 볼 수 있다. 하늘의 진리와 열린 사람의 마음이 하나 로 통하여 평화의 기쁨과 사랑이 충만한 것이다. 
◆ 군자는 이것을 보고 상하를 분별하고 백성의 뜻을 안정시킨다. 군자君子는 이以로써 변상하辨上下요 정민지定民志하니라
위는 하늘이고 아래는 호수다.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호수에는 하늘이 비쳐서 하늘
과 호수가 하나가 되었다. 하늘에 별이 반짝이듯 우리 마음속에는 도덕률이 빛나는 것을 실천이성이라 한다. 하늘에서는 진리의 별이 반짝이고 땅에서는 정의의 강이 흘 러간다. 그런 이상세계의 실천을 천택리라 한다. 이상세계의 모습은 무엇인가?
변상하辨上下 정민지定民志다. 높은 하늘은 하늘답고 아래 땅은 땅답게 되어 하늘 과 땅이 하나로 어울린다. 높은 지위와 낮은 지위가 모두 알맞게 자리를 잡아서 임금 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답게 제 역할을 바르게 한다. 그래서 ‘정민지定民志’, 모든 백성이 각자 맡은 직업을 가지고 자기 일에 만족하며 기쁘게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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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주역풀이>  
8. 소통의 시대와 불통의 시대 : 
지천태地天泰(11), 천지비天地否(12)
◆ 땅(곤坤)이 하늘(건乾) 위로 올라간 것을 지천태地天泰라 하고 하늘이 땅 위에 올 라가면 천지부天地否, 또는 천지비天地否라 한다. 부否를 막힐 비否라고도 한다. 아 래 있던 땅이 위로 올라가고 위에 있던 하늘은 아래로 내려오면 그것을 태평한 세상 이라 한다. 말하자면 높은 왕이 땅 아래로 내려와 백성을 하늘로 받드는 민주정치가 되면 크게 태평하다.  
이와 반대로 높은 하늘이 더 높이 올라가고 아래 땅은 더 밑으로 내려가서 가깝던 사 이가 멀어지고 막혀서 통하지 않을 때 그것을 천지비天地否라 한다. 서로 만나 대화 와 소통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하늘과 땅, 위는 내려오고 아래는 올라가서 위와 아래가 서로 가까워지고 서로 입장을 바꿔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역지사지易地思之(서로의 처지를 바꿔서 생각함)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소통하는 시대를 지천태地天泰라 한다. 이와 반대로 자기의 생각이나 편견을 고수하 며 상대의 입장과 의견을 고려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서로 각자의 길을 달리며 대 립하는 불통의 시대를 천지비天地否라 한다. 어떻게 하면 불통의 권위주의 사회를 소 통의 민주적 시민사회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 지천태地天泰(11) 태평시대는 소인들이 물러가고 대인들이 나오는 때다. 행복하고 형통한다 태泰는 소왕대래小往大來이니 길吉하고 형亨하다. 
유교에서 소인小人이란 인격이 부족하여 마음이 협소한 사람을 말하고 대인大人은 
인격과 덕망이 충만하여 마음이 열린 사람이다. 소인들은 물러가고 대인들이 나타나 서 세상을 바로잡으면 행복한 시대가 되어 모든 일이 형통한다. 
태泰는 크다, 편안하다, 통한다는 뜻이다. 큰 사람들이 나와서 모두가 서로 소통하 고 협력하며 발전하는 태평성대의 시대를 지천태라고 한다. 중국에서 태평시대라 하 면 대표적으로 요순시대를 말한다. 요임금 순임금 같은 성왕이 나와서 모든 백성을 뜻을 받들어주니 태평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 지천태 괘를 판단해본다. 소통의 시대는 소인이 물러가고 대인이 나와서 모두 가 행복하고 형통하다. 이것은 곧 하늘과 땅이 어울리고 만물이 서로 소통한다는 말 이다. 서로 어울려 그 뜻과 마음이 하나가 된 것이다. 
단왈彖曰 태泰는 소왕대래길형즉小往大來吉亨則이니 시천지교이是天地交而하고 만물 통야萬物通也니라. 상하교이上下交而이니 기지동야其志同也하니라. 
안으로는 양이요 밖으로는 음이니 안으로는 강건하고 밖으로는 유순하다. 안에는 
군자요 밖에는 소인이니 군자의 도는 나날이 늘어나고 소인의 도는 소멸된다.
내양이외음內陽而外陰이요 내건이외순內健而外順이니 내군자이외소린內君子而外小
人이라 군자도장君子道長이요 소인도소야小人道消也이니라.
태괘를 보면서 음효를 소인으로 보고 양효를 대인으로 해석해 본 것이다. 지천태 
괘를 보면 아래는 건乾괘 위에는 곤坤괘로 되어있다. 아래 있는 건괘를 내內괘라 하 고 위에 있는 곤괘를 외外괘라 한다. 역의 괘를 보면서 해석하기를 시간이 지남에 따 라 아래의 효爻가 점차 위로 올라가는 변화로 생각한다. 그래서 지천태 괘를 보면 양 의 기운은 차츰 자라고 음은 점차 떠나가는 모습이라서 이것을 소왕대래小往大來로 해석한 것이다. 소인들이 물러가고 대인들이 나와서 태평성대를 이루는 것인데 그런 태평시대의 모습은 무엇인가? 하늘과 땅이 함께 어울리고 만물이 서로 소통하는 것이 다. 
하늘과 땅이 서로 어울린다는 뜻이 무엇인가? 자연현상으로, 말하자면 하늘에서는 
비가 내려오고 땅에서는 만물이 자라는 것이다. 만물이 생기를 얻어 자랄 수 있는 것 은 천지와 통하기 때문이다. 하늘이 내려주는 빛을 받고 땅에서 올려주는 물을 끌어 올리는 생명력을 받아서 자라는 것이 만물이다. 옛날부터 태泰는 통通하는 것이라고 하여 태통泰通이라 한다. 하늘과 땅의 기氣가 통하는 것이요, 음기와 양기가 서로 통 하는 것이요, 왕과 백성의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뜻과 시민들의 뜻이 서로 통하는 것이다. 대통령도 정의의 나라를 세우자는 뜻이요 시민도 좋은 나라를 세우자는 뜻으로 한마음이다. 이렇게 한마음으로 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소통하 고 협력하는 시대를 태통이라 한다.
괘의 모습을 보면 안쪽 건괘는 양이고 밖에 있는 곤괘는 음이다. 그래서 태괘의 모 습을 안은 강건하고 밖은 유순하다고 한다. 양효를 군자로 보고 음효를 소인으로 보 면 안쪽은 군자요 밖에는 소인이라 군자의 힘은 자라나고 소인들의 힘은 줄어드는 모 습으로 해석한다. 나라에서 좋은 인재들이 나와서 건강한 기운이 상승하여 모든 소인 의 부정과 병폐가 사라지는 부흥의 때라는 말이다.
내양이외음內陽而外陰이다. 국가의 정부는 유능하고 정직한 현인을 등용하여 권력 의 핵심세력이 되어야 하고 소인들은 밖으로 밀려나야 한다. 도덕적道德的으로 청렴 한 사람이 핵심이 되어야지 욕심 많은 소인들이 내부의 핵심이 되면 안 된다. 그래서 내건이외순內健而外順이다. 대통령이라면 안으로 핵심 관리들에게는 강한 도덕성을 요구하면서 밖으로 국민을 향하여 공손히 순종해야 한다. 
◆ 지천태의 모습을 말해본다. 천지가 서로 사귀고 통하는 것이 태괘다. 왕은 이를 본받아서 천지의 법도를 마련하고 천지의 마땅함을 따라서 백성들을 도와야 한다. 상왈象曰 천지교天地交하여 태泰이니 후이后以로써 재성財成 천지지도天地之道하며 보상輔相 천지지의天地之宜하여 이좌우민以左右民이니라.
천지가 서로 사귀고 통하는 것이 태泰괘의 모습이다. 천지가 통하는 것을 우리의 
몸으로 말하자면 피가 통하고 기와 숨이 통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말하면 말이 통 해야 하고 이치가 통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 자연과 만물, 왕과 백성, 모든 것이 통 해야 산다. 통하는 것이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왕(후后)은 이것을 본받아 천지의 법도를 마련하고 천지의 마땅함을 가지고 백성을 도와야 한다. 먼저 올바른 법과 제 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법과 제도를 잘 관리하고 운영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서는 사람들의 조직과 훈련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말하자면 천지지도天地之道가 백성을 사랑하는 법과 제도적 장치라면 천지지의天地之宜는 의로운 정치와 복지행정 시스템이다. 복지국가를 위한 정의로운 시스템을 만 드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재성천지지도財成天地之道’가 제도와 물적인 하드웨어라 면, ‘보상천지지의輔相天地之宜’는 국가 운영을 위한 문화와 사회의 소프트웨어를 갖 추는 것이다. 하늘과 땅은 만물에게 재능과 소질을 부여하고 자라게 한다. 이것이 하 늘과 땅의 사랑이다. 또 하늘과 땅은 상보적 관계로 하나가 되어 본을 보이면서 만물 이 그처럼 서로 소통하고 협동하여 마땅히 하나가 되게 한다. 이것은 하늘과 땅의 의 로움이다. 왕은 이처럼 하늘과 땅을 본받아 정의와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세상이 되 도록 백성을 돕는 사람이다. 학생들이 소질과 재능을 따라 발전할 수 있도록 즐거운 교육시스템을 만들고 모두가 자기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행복한 산업시스템을 마 련하는 일이 재성財成이라는 ‘천지의 도’道라고 보면, 교육자와 학습자의 관계, 사업 자와 노동자의 관계, 국민과 정부와의 관계등을 바로잡아 화목하고 평화로운 하나의 공동체가 되도록 이끄는 일이 보상輔相이라는 ‘천지의 의宜’가 아닌가 풀어본 것이다. 
◆ 천지비天地否(12)
천지비는 하늘과 땅이 막혀 통하지 못하는 세계이다. 지천태地天泰는 사람과 사람간 의 관계가 서로 이심전심으로 잘 소통하여 행복한 것인데, 천지비天地否는 마음이 서 로 통하지 않고 막혀있다. 막힌 것을 비색否塞이라 한다. 천지비天地否란 이렇게 하 늘과 땅이 막혀있는 답답함을 말하는 것인데 이렇게 막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서로 막혀 통하지 않는 것은 죄인이어서 그렇다. 비지비인否之匪人이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가 통하지 못하고 막히는 까닭은 ‘비인匪人’이라서 그렇다. 기독교
로 말하자면 죄인이어서 막힌 것이다. 죄罪라는 글자나 도둑 비匪라는 글자나 뜻은 마찬가지다. 둘 다 문이 닫혀있는 것을 나타낸다. 정신으로 말하자면 자폐증이다. 문 을 닫아놓고 전혀 다른 사람과 통하지 않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빛이 없는 무명의 감 옥에 갇혀있다고 한다. 금강경에서는 그것을 아상我相이라 한다. 사람이 이념이나 도 그마에 갇히면 거기서 빠져나오기가 너무 어렵다. 특히 자기라는 고정관념은 너무도 강하여 죽기까지 버리지 못한다. 금강처럼 견고해서 깨지지 않는 그런 아상을 벼락처 럼 강력한 진리의 힘으로 깨뜨리자는 것이 금강경이다. 아상이란 쉽게 말하여 맹인이 코끼리를 만지고 자기가 경험한 부분적인 지식과 편견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래서 한 번 자기의 사유방식이나 부분지가 고정되고 자동화되면 무엇을 경험하던 같은 방식으 로 느끼고 반응하는 지각불변성이 되어 타인과 소통이 어렵게 된다. 소통이 단절된 외로운 개인들은 기술사회의 파편화로 외로움과 갈등을 넘어 타인에 대한 증오와 혐 오가 조장되었다. 이처럼 소외된 현대인은 전체와 소통하지 못하고 풍랑을 맞아 조각 조각 부서진 배의 부품이나 조각처럼 세상이라는 바다를 떠도는 파편이 되었다. 인간 은 과학 지식과 분업이 발달하면서 하늘의 진리를 잃어버리고 땅의 부분지部分知에 사로잡혀 그만 온전함의 의미와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하늘과 땅과 사람을 ‘삼재三才’라 한다. 인간의 생명은 이 셋과 항상 통해야 살아간
다. 즉 하나님과 자연과 인간이 서로 통해서 하나가 되어야 생명을 느낀다. 그런데 통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 죄인이라서 그런 것이다. 인간의 죄악 때문에 자연自然은 자연自然대로 오염되고, 신神은 신神대로 사라져 나타나지 않고, 사람은 사람대로 막 혀 있다. 그래서 분열과 다툼과 전쟁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은 하늘과 땅을 다시 소통하게 하는 책임이 있다. 사람 때문에 자연과 세상이 막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공간空間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사람의 책임이요 시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책임도 사람에게 있다. 쉽게 말하자면 시대時代를 어둡게 하 느냐, 또는 시대를 밝게 하느냐 모두 사람 탓이다.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도 사 람이요 그것을 회복시킬 책임도 사람이다. 이 모든 책임이 사람에게 있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는 것이 사람이다. 악惡한 사람이 나오면 시대가 암울해지고 선善한 사람이 나오면 시대가 밝아진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은 자연보다도 영특하고 하늘보다도 영특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만물 가운데 최령最靈이라 한다. 하늘과 통할 수 있고 자연과 통할 수 있고 사람과 통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이다. 그런데 그 런 사람이 막혀서 죄인이 되면 사람과도 통하지 않고 자연과도 통하지 않게 되고 신 神과도 통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온 세상이 어두워지고 오염되고 막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모든 문제는 사람 탓이요 내 탓이라는 말이다. 내가 죄인이 되어서 그런 것이
다. 어떻게 하면 내가 죄인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스스로 만든 무명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천지비 괘를 판단해본다. 막힌 사람들의 세상이 되어 깨끗하고 의로운 사람들 이 살 수 없는 시대가 천지비다. 큰 사람이 가고 작은 사람이 나타난다. 그래서 천지 가 통하지 못하고 만물이 서로 통하지 못하는 것이다. 위와 아래가 서로 통하지 못하 니 천하에 나라가 없는 것이다.
 단왈彖曰 비지비인否之匪人이니 불리군자정不利君子貞이라. 대왕소래大往小來하니 즉시則是 천지불교이天地不交而하야 만물불통야萬物不通也니라. 상하불교이上下不交而하니 천하무방야天下无邦也니라. 
세상이 이렇게 막히게 된 것은 사람이 사람답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막힌 시대가 되면 착한 사람은 죽고 악한 사람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천지天地도 통하지 않게 되고 만물萬物도 통하지 않게 된다. 우리나라 태극기를 보면 건괘가 위에 있고 곤괘가 아래 있어서 천지 비괘이니 이것을 뒤집어 태통의 사회를 바라보자고 한다. 건곤을 뒤집어 태평한 통합의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천지가 막힌 비괘가 되면 백성과 정부가 서로 믿지 못하게 되니 나라라고 할 수가 없다. 상하가 통해야 나라라 할 수 있지 상하가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나라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라에 탐관오리와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가짜뉴스와 거짓말이 가득하면 백성들은 아무것도 믿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나라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때 나라를 살리려면 서로 믿고 소통하는 상생과 대화의 문화를 가꿔야 한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하늘과 통하고 자연과 통하고 사람과 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사랑하는 일이다. 사람이 서로 만나서 공동의 목적을 세우고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면 불안과 두려움을 내려 놓을 수 있고 자기의 느낌과 생 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며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고 경청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상하가 소통하는 법을 배워서 하나가 된다. 
상하가 통해서 하나가 된다는 말은 무엇인가? 위는 숲을 보는 자리요, 아래는 나무
를 보는 자리다. 그래서 상하가 서로의 입장에 서서 숲도 보고 나무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상하가 정직과 진실로 하나가 되는 일치를 이뤄야 한다. 옛 선지자 이 사야가 꿈꾸던 나라도 이처럼 정의와 공의로 상하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누
가복음 3장 5-6)
◆ 괘상을 보고 말한다. 천지가 서로 사귀지 못하는 것이 막혀있는 비색否塞(모든 길이 꽉 막힘)의 시대다. 군자는 이것을 보고 검소함의 덕으로 재난을 피한다. 이런 때 녹봉을 받아 영화로울 수가 없다. 상왈象曰 천지불교天地不交하여 비否이니 군자이君子以로써 검덕피난儉德辟難하니 불가영이록不可榮以祿이니라.
천지가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소통이 되지 않아서 막혀있다. 이런 때에 군자는 검 덕피난儉德辟難을 한다. 검소함의 덕으로 자기 자신을 단속하고 세상의 험난함을 피 해야 한다. 소통이 어려운 시대는 어둠의 시대요 의인들이 수난을 당하는 어려운 시 절이다. 독재자가 나와서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죽이는 불통의 권위주의 시대다. 군자는 이런 때를 당하여 검덕피난儉德辟難 한다. 검덕儉德은 가난하게 살면서 덕을 힘써 기른다는 말이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가진 것 을 나누고 마음을 비워서 가난한 살림을 해야 된다. 그리고 험난한 세상을 피하여 하 늘나라를 위하여 힘쓰는 일이 검덕儉德이다. 가난과 비움은 소통의 비결이다. 마음이 비워지면 맑아지고 심령이 가난하면 밝아진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하 나님을 뵙게 될 것이다. 검덕피난儉德辟難이다. 검약의 덕으로 하늘과 소통하고 온유 함의 덕으로 땅과 통하여 험난한 세상을 피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군자로서 불의한 독재자에게 벼슬을 얻어 세상의 영화榮華를 바라는 것은 생각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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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주역> 
9. 문화적 인간과 우주적 존재 : 
천화동인(13), 화천대유(14)
◆ 하늘의 불 
하늘(건乾)에서 내려온 불(리離), 그것을 천화동인天火同人이라 한다. 하늘의 불이 상 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내려오신 분이 예수님 이라 한다. 공자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 하고, 또 하늘이 자기 속에 덕德(속알) 을 낳아주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만들고 하늘의 신 들만이 가지고 있는 불을 훔쳐다 사람에게 주었다고 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불을 가 지고 사는 것이 사람이다. 불을 과학으로 생각하면 에너지요 철학으로 보면 이성이고 종교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다.  
천화동인天火同人을 뒤집으면 화천대유火天大有가 된다. 불이 하늘 위로 올라간 것 이다. 우주라는 하늘을 밝히는 빛을 대유大有라 본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빛을 천 화동인天火同人이라 했다면 빛이 다시 하늘로 올라간 것을 화천대유火天大有라 했다. 기독교로 말하자면 성육신이 천화동인天火同人이라면 화천대유火天大有는 부활 승천 하여 하나님 나라 우편에 앉아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땅으로 내려와 사람 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천화동인天火同人이라 보면 화천대유火天大有는 하늘에 올 라가서 우주를 다스리신다는 말이다. 
대유大有는 위대한 존재라는 뜻과 대우주를 소유한다는 뜻이 있다. 하나님은 크신 분이요 우주를 소유하신 분이다. 우주라는 하늘나라를 다스리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공자로 말하면 하늘의 불이라는 천명을 부여받은 사람, 또는 하늘의 덕을 얻은 사람 이 천화동인이요 천명과 하늘의 덕을 가지고 천하의 대권을 잡은 성왕을 화천대유라 하겠다. 인간의 실존으로 말하면 천화동인은 말씀의 체험이요 화천대유는 근본경험을 말한다고 보는 것은 어떨까. 또는 천화동인을 생명적 현상의 생체험이라고 보면 화천 대유는 근원적 생명력의 밑체험이라 보는 것은 어떨까?
◆ 천화동인天火同人(13) 들에서 사람들과 함께 협동하니 형통한다. 큰 강을 건너감이 좋다. 이로운 것은 군자 의 바름이다. 동인우야同人于野이니 형亨이다. 이섭대천利涉大川이요 이군자정利君子貞이니라. 천화동인天火同人의 동인同人에 대해서 두 가지 뜻을 생각할 수 있다. 함께 모여 협 동하는 사람들이라는 동인同人과 사람은 모두가 너나 없이 동일하다는 인동人同이다. 동인同人은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합동, 또는 협동의 뜻이고, 인동人同은 사람은 누구나 이성이라는 불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는 말이다. 사람은 이렇게 불을 사용할 줄 아는 이성적 동물이면서 동시에 함께 모여서 협동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이란 인동人同이면서 동시에 동인同人이라는 특징이 있다.  
사람이 함께 모여 협동하는 사회적 존재로서 동인同人인데 그런 활동의 조건을 ‘야 野’라고 한다. 야野란 무엇인가? 인위적인 꾸밈과 거짓이 없는 본래의 순수하고 소박 한 생명의 바탕이다. 모세나 예수도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광야로 나갔다. 아무것도 없는 빈 들에 서서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동인우야同人于野, 빈 들의 광야에서 서 있는 사람의 실존은 누구나 똑같다. 하나 님 앞에 서 있는 실존, 노자는 그런 사람을 통나무(박樸)이라 했다. 견소포박見素包樸 (빛을 보고 통나무를 품은 것)의 통나무를 달리 말하면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통나무 란 무아가 되어서 공명정대하고 무사무욕이 된 산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야野라는 조건은 무위자연의 순박한 생명의 본래 모습이다. 이처럼 꾸밈없 이 순박한 마음으로 만나야 그 동인同人의 모임과 하는 일이 형통하다는 말이다. 다 시 말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천인합일을 통해 공명정대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삶살이의 모임이라야 형통한 것이고 또 그런 사람들이라야 이상적인 세계, 즉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뤄갈 수 있다는 말이다. 
공자는 거듭나는 것을 극기복례克己復禮라 했다. 사람이 자기라는 사욕을 극복하고 
예禮를 회복해야 거듭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논어를 보면 공자가 강조한 것이 예 악禮樂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협동하는 사회를 예禮라고 하고 그 속에서 각자 삶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세계를 악樂이라 했다. 사람이 위대한 것은 이처럼 진리를 깨닫고 거듭나는 철인이 될 수도 있고 또 깬 씨알들이 모여서 아름답고 높은 문화를 창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협동하는 삶살이의 방법이 야野라는 것이다. 무사무욕의 순수함과 무위자연의 진실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큰 강을 건너감이 이롭다는 ‘이섭대천利涉大川’에도 두 가지 뜻이 있다. 모두가 힘 을 합하여 아름답고 큰 일을 이룬다는 뜻이 있다. 씨알이 힘을 합하여 이상세계를 건 설하는 것이 이섭대천이다. 그런데 이것을 인간의 실존으로 생각하면 반야바라밀의 뜻이라 할 수도 있다. 즉 반야라는 지혜를 가지고 이 세상이라는 강을 건너가는 것이 다. 공자로 말하면 극기복례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을 이섭대천이라 할 것이다. 
공자에게 극기의 방법을 묻자 예禮가 아닌 것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행동하지도 말라고 한다. 삶의 이치요 법도라 하는 예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하늘이 부여한 것을 천성이라 한다)이다. 하늘이 부여한 마음의 바탕으로 생명을 살리는 살림살이의 마음이 천성天性이다. 
다석은 그것을 받할(받아서 할 일), 즉 바탈이라 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할 바가 
무엇인지 하늘에서 우리 속에 넣어주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으로 말하면 로고스(말 씀, 도)라 할 것이다. 로고스를 가지고 거듭나는 것이 이섭대천利涉大川이다. 그리고 거듭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한다고 하는 것도 또한 이섭대천利涉大川이다. 이렇게 이섭대천의 뜻도 이성적 존재로서의 의미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의미 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풀어볼 수 있다. 
그래서 참으로 유익한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군자의 곧음이 이로 운 것이다. 곧음이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 있다는 말이요, 말씀대로 실천한다는 뜻 이요 정직한 인격이라는 말이다. 이군자정利君子貞이다. 군자의 올곧음이 이로운 것 이요 아름다운 것이다.
◆ 동인 괘를 판단한다. 동인同人은 유순함이 바른 지위를 얻고 또 중中을 얻어서 하늘에 응應하는 모습이다. 이것을 동인이라고 한다. 
단왈彖曰 동인同人은 유득위득중이柔得位得中而이니 응호건應乎乾하여 왈동인曰同人 이라.
천화동인 괘를 보면 구오九五와 육이六二의 위치가 올바르다. 양이 홀수 자리에 오 고 음이 짝수 자리에 오면 정위正位, 바른 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운데 있 으면 중中이다. 그러니까 구오九五와 육이六二가 모두 가운데 있으면서 바른 자리를 얻었기 때문에 중정中正이다. 그리고 육이六二와 구오九五가 서로 음양이 되어 응한 다. 구오九五가 스승이라면 육이六二는 학생이다. 그래서 육이六二는 구오九五를 찾 아야 한다. 
육이六二는 음이니까 유柔인데 중을 얻었으니까 말하자면 유순한 덕이다. 부드러운 
마음으로 스승을 잘 따르는 학생이다. 자기를 부인하며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다. 육이를 ‘득중이응호건得中而應乎乾’이라 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그 리워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을 일러 동인同人이라 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처럼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갈 수 있고 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면 누구나 똑 같다는 말이다. 불교로 말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어서 부 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불성을 깨치고 부처가 될 수 있으며 부처 가 되면 누구나 똑 같다는 것이다.
들에서 협동하는 사람들이라 형통하니 큰 강을 건넘이 이롭다 함은 하늘길을 가기 때문이다. 
동인우야同人于野는 형亨이요 이섭대천利涉大川이니 건행야乾行也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힘을 모아 큰 강을 건너가야 한다. 그것을 ‘건행乾行’이라 한다. 이상세계를 향하여 큰 강을 건너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성을 다해야 하고 속된 욕심이 없어야 한다. 정이천의 주석으로 말하여 지성무사至誠無私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험난한 세상을 무사히 건너갈 수 있다. 그것이 ‘건행乾行’이다. ‘나’라 는 것이 없어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기독교의 믿음이란 것도 무사無私다. 자 기가 없어지는 것이 믿음이다.
◆ 씩씩하게 문명을 창조하는 중정中正이 되어서 하늘에 응應하는 것이 군자의 바 름이다. 문명이건文明以健하여중정이응中正而應함이 군자정야君子正也니라.
군자가 하는 일은 건강하고 씩씩하게 문화를 창조하고 밝히는 일이다. 과학, 철학, 
예술, 종교라는 문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은 결국 문화문명을 창조 하는 일이다. 
‘문명이건文明以健’이란 어떻게 나온 말인가? 하늘 천天이 건健이고, 불 화火가 문 명文明이다. 그래서 천화天火를 문명이건文明以健이라 풀이한 것이다. 문명이건文明以健, 씩씩하게 문화를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중정中正이다. 구오九五도 중정이요 육 이六二도 중정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도 중정中正이요 아래 있는 사람도 중정中正 이다. 그래서 중정이 된 군자라야 문명이건文明以健이다. 중정이 되어야 문명을 창조 하여 건강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군자의 바름은 중정中正이 되는 것이 요 또한 건강한 문명을 창조하는 일이다.
오직 군자라야 천하의 뜻에 통할 수 있다. 유군자唯君子라야 위능통천하지지爲能通天下之志하니라.
사람은 모두 중정中正의 군자가 되어야 한다. 속이 뚫리고 삶이 바른 사람, 곧 중정 中正이 된 사람이 군자다. 중정의 특징은 ‘지성무사至誠无私’라 했다. 중정이 되면 천 하 사람들과 다 같이 통할 수 있다. 중정中正을 또 중통외직中通外直이라 한다. 이치 를 꿰뚫어 보는 지혜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정직한 것이다. 그런 군자가 되어 야 천하의 뜻에 능히 통할 수 있다. 즉 각기 다른 사람들의 모든 마음과 뜻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는 말이다. 
◆ 천화동인의 모습을 본다. 하늘에 빛나는 불, 그것이 동인同人의 모습이다. 군자는 이것을 보아 인류는 다 같은 겨레임을 밝히고 만물을 분별하여 다스린다. 상왈象曰 천여화天與火 동인同人 군자이君子以 유족변물類族辨物
하늘이 사람에게 불을 내려 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동인同人이다. 사람은 종족이 다르고 인물이 다르지만 누구나 꼭 같이 하나님 앞에서 존엄하고 평등하다. 그래서 또 사람은 함께 모여서 같이 살 수가 있다. 군자 는 이런 것을 보고 유족변물類族辨物한다. 각기 다른 사람과 만물이 무리를 이루어 한 사회를 구성하고 나라를 일으키는 것이 유족類族이요, 변물辨物이란 편리한 세상 을 위해서 다양한 도구와 물건을 만들고 만물을 돌보며 가꾸는 일이다. 종족과 나라 가 많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인류는 하늘 밑에 한 가족이다. 그래서 온 종족이 한 동아 리로 살아야 한다는 유족類族은 인간이 호모 폴리티쿠스(Homo politicus)라는 말이 요, 다양한 만물을 변별하여 다스린다는 변물辨物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인간을 말한다. 유족변물類族辨物이란 결국 사람은 이성적 존재요 사회적 존재라는 말이다. 인간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하늘이 내려준 각자의 불을 가지고 서로 협 동하고 노력하는 살림살이로 하나가 되자는 뜻이다.
◆ 화천대유火天大有(14)
대유大有는 대 우주적 존재로서 근원에 통하여 형통하는 것이다. 대유大有 원형元亨 
천화동인이 인간에 대한 정의라면 화천대유火天大有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대 우주적 생명의 근거는 하나님이다. 우주와 인간과 만물의 생생한 생명의 활동력의 원천이요 뿌리가 하나님이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문화 문명의 뿌리 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근원적이면서 보편적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 또는 도道라고 한다. 진리를 깨닫고 도에 통한 사람이 대유大有가 된다. 대유大有는 대의大義라는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세상에 나 타난 사람이다. 천화동인이 왕도정치를 구현하도록 왕을 돕는 군자君子라면 화천대유 는 왕의 지위를 얻어 세상을 두루 교화하는 성인聖人이라 하겠다. 
◆ 대유 괘를 판단해본다. 대유는 온유한 사람이 존귀한 왕의 지위를 얻은 큰사람 이다. 대 우주의 중심을 잡으니 상하가 모두 그에 응하는 것인데 이것을 큰사람의 대 유라 한다.
단왈彖曰 대유大有는 유柔가 득존위得尊位하여 대중이大中而하고 상하응지上下應之 하니 왈대유曰大有하니라. 
화천대유 괘를 보면 육오六五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양효이다. 그런데 육오六五 의 자리는 왕의 자리다.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으로 보면 하나님이요 세상을 다스리시 는 분으로 보면 성인聖人이요 자기를 다스리는 극기克己의 존재로 보면 철인이다. 성 인이나 철인은 자기가 없는 무아의 사람이다. 성인聖人은 무상심無常心이다. 고집스 런 완고함과 자기의 편견이 없다. 그래서 빈 거울처럼 만사를 비추어 바로잡게 한다. 그것을 허무인응虛無因應이라 한다. 이렇듯 성인은 백성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 아서 모든 백성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 
대유大有를 정치적으로 보면 온유한 대통령이다. 온유하다는 것은 자기가 없는 사람 을 말한다. 그래서 편견이나 고집이 없이 늘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랑으로 남을 돕고 살려준다는 것이다. 이런 무상심無常心의 철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모든 사람의 속마 음(大中)을 붙잡게 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그의 말을 따르게 된다(上下應之). 이렇 게 모든 백성과 상하上下가 하나가 되어야 위대한 대통령이다. 성인聖人은 무상심無常心이라 백성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는다는 노자의 말을 실천하는 성인 대통 령이다.
◆ 그 인격과 속알을 보면 튼튼하고 강건하여 지혜가 빛나는 사람이다. 그는 언제나 하늘에 호응해서 때와 함께 행동한다. 이렇게 생명력의 근원에 통하여 만물을 살려주 는 사람이다. 기덕其德 강건이문명剛健而文明 응호천이시행應乎天而時行 시이원형是以元亨
성인 대통령의 내용은 무엇인가? ‘강건이문명剛健而文明’이다. 이는 천화동인에서 
이미 나온 말이다. 강건이란 하늘처럼 빈 마음이요 문명이란 태양처럼 온 세상을 밝 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뜻을 받아 때에 맞춰 모든 백성을 살리는 일이 응호천이 시행應乎天而時行이다. 그래서 원형元亨이라 한다. 생명의 근본과 원천에 통해서 빛 과 힘을 얻고 모든 백성과 만물의 생명이 형통하여 온 생명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 대유의 괘상을 보고 말한다. 태양의 불이 하늘 꼭대기에 있는 것을 대유라 한
다. 군자는 이를 보고 악의 근원을 막고 선하고 좋음을 높여서 하늘의 뜻에 순종하고 사명을 빛내는 것이다.
상왈象曰 화재천상火在天上이 대유大有이니 군자이君子以로써 알악양선遏惡揚善하고 순청휴명順天休命하느니라.
하늘에 태양이 빛난다. 그것을 대유라 한다. 군자는 이것을 보고 모든 어둠을 끊고 
선과 하나가 된다. 알악양선遏惡揚善이란 어둠의 악을 끊고 올라가서 지선至善에 이 른다는 말이다. 어둠의 행실을 끊고 하늘처럼 맑고 깨끗한 인격이 되는 것이다. 그래 서 하늘이 주시는 말씀, 즉 백성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의 사명을 빛내 는 것이다. 이렇게 알악양선遏惡揚善과 순천휴명順天休命이라는 두 가지가 성인 대통 령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명명덕明明德과 지어지선止於至善으로 모든 백성이 기쁨으 로 하나가 되는 친민親民의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자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명명덕明明德이 되는가? 하늘에 올라가서 빛을 만나야 된다. 화재천상火在天上이다. 이것을 말하자는 것이 화천 대유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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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주역>  
10. 삶의 바탕은 무아의 기쁨이다 지산겸(15), 뇌지예(16)
◆ 지산겸地山謙, 땅 밑에 산이 있다. 산처럼 높은 자가 땅처럼 낮은 자를 섬기는 겸손한 모습을 지산 겸謙이라 한다. 그런데 겸謙이란 글자는 말씀 언言 변에 벼 화禾 자가 두 개 있고 이것을 손으로 붙잡는 모습이다. 겸謙이란 진리의 말씀을 벼를 붙잡 듯이 붙잡고 다시 또 붙잡는 것이다. 철학에서 인식認識이라고 하는 말도 아는 것을 또 안다는 말이다. 아는 것을 다시 또 안다는 말은 메타인지라는 것이다. 결국 앎을 초월하는 자리를 깨닫는 것이 겸이라 하겠다.
지산겸을 뒤집으면 뇌지예雷地豫가 된다. 뇌지예는 땅속에서 번갯불이 솟아나는 것처 럼 기쁨이 뿜어나오는 것이다. 진리를 깨닫게 되면 기쁨이 솟아난다. 지산겸, 진리를 깨달으면 곧 뇌지예라는 기쁨의 세계가 된다. 삶의 바탕은 본래가 기쁨이요 그것을 깨닫는 것이 진리를 아는 것이다. 우리 삶의 바탕이 기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기쁨을 언제 어떻게 잃었는가? 또 어떻게 해야 그것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 지산겸地山謙(15) 말씀을 붙잡고 또 붙잡으면 깨닫게 된다. 진리를 깨달은 군자는 끝마침이 있다. 겸형謙亨이니 군자君子는 유종有終이니라. 
겸괘를 판단해본다. 겸은 형통하는 것이다. 하늘의 도는 천하 만물을 구제하려고 밝
은 빛을 내려주고 땅의 도는 낮은 데서 위로 올라가도록 힘을 준다.
단왈彖曰 겸형謙亨이니 천도天道는 하제이광명下濟而光明하고 지도地道는 비이상
행卑而上行이니라.
 진리를 깨달아야 군자다. 진리를 깨달으면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다. 불생불멸 이 될 수 있다. 물론 ‘겸손한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성공한다. 군자가 끝까지 조심하 면 결국 성공한다.’
◆ 하늘의 도는 교만한 자를 줄이고 겸손한 자를 늘려준다. 땅의 도는 교만한 자를 변화시켜 겸손한 자로 내려가게 한다. 귀신은 교만한 자를 방해하고 겸손한 자에게 복을 준다. 사람의 도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고 겸손한 자를 좋아한다. 천도휴영이익겸天道虧盈而益謙하고 지도변영이유겸地道變盈而流謙하고 귀신해영이복 겸鬼神害盈而福謙하고 인도오영이호겸人道惡盈而好謙이니라.
겸손하면 겸손할수록 높아지고 빛이 난다. 겸손한 사람이 아무리 자기를 낮춰도 다
른 사람이 그 사람을 무시할 수는 없다. 군자는 마지막까지 행복하다. 겸謙은 존이광尊而光하고 비이불가유卑而不可踰하니 군자지종야君子之終也니라.
겸謙은 겸손함이다. 그런데 사람은 실제로 진리를 깨달아야 겸손해지지, 그렇지 않으 면 겸손해질 수 없다.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계속 교만하지 겸손해질 수가 없다. 사 람은 누구나 잘난 맛에 사는데 자기 잘난 맛이 없어지면 살맛이 없어지고 만다. 그러 니까 저 잘난 맛이 없어진다는 것은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진리를 깨닫는다는 것은 한 번 죽는 것이다. 대사일번大死一番 절후재소絶後再蘇.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자기 란 것이 없어질 수 없다. 
◆ 겸괘의 모습을 말한다. 땅속에 산이 있다. 이것을 겸이라 하는데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많은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보태준다. 그래서 만물을 똑 같이 평등하게 사랑한다.
상왈象曰 지중유산地中有山이 겸謙이니 군자이君子以로써 부다익과裒多益寡하며 칭 물평시稱物平施하니라.
땅속에 산이 있다. 산보다 낮지만 산보다 큰 것이 땅이다. 산이 자기보다 낮은 땅속 으로 들어가는 것을 겸손이라 한다. 산을 낮추고 골짜기를 메워 평탄하게 하는 것이 다. 군자는 이런 상징을 보고 지나친 것은 줄이고 모자라는 것은 늘인다. 유정유일惟精惟一이다. 그래서 꼭 알맞게 하는 것이 가온찍기요 중中이다. 윤집궐중允執厥中이
다. 저울로 물건을 저울질해서 좌우를 똑같이 만들 듯이 가온을 붙잡는 것이다. 그 모습은 수직이면서 수평이다. 물은 수평이고 불은 수직이다. 수직과 수평이 만나는 자 리가 십자가요 그것이 중용의 가온찍기다. 십자가의 자리에서 보면 모든 만물은 일체 가 되어 평등이다. 모든 인간과 만물이 하나로 평등하다는 이 지점을 아는 것이 평등 각平等覺이다. 평등각의 진리를 깨쳐야 겸이요, 그래야 겸손하게 만물을 섬기며 사랑 할 수 있다. 칭물평시稱物平施, 만물을 있는 그대로 평등하게 사랑한다는 말이다.
◆ 뇌지예雷地豫(16) 기쁨의 때다. 이때는 평화스런 세상을 위해서는 제후를 세워야 하고 군사를 잘 움
직여야 한다. 예豫는 이건후利建侯하며 행사行師하니라. 뇌지예雷地豫는 땅 위로 번개처럼 기운이 솟구치는 형상이다. 땅에서 양기陽氣가 뿜 어져 나오는 것이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기운이 자꾸 뿜어져 나오는 기쁨이다. 사람이 청년기가 되면 자기도 모르게 기운이 솟아나서 그저 좋아 웃는다. 계절로 말하자면 봄이 와서 모든 만물이 화락하는 시절이다. 이러한 것들이 뇌지예雷地豫가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예豫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열예悅豫의 뜻이다. 기쁘다는 뜻이다. 두 번째 는 이렇게 화락한 세계가 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한다는 예비豫備의 뜻이 있다. 미리 서 모든 준비를 잘 해둬야 기쁨이 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쁨에 빠졌다는 일예佚豫의 뜻이 있다. 향락에 빠져 타락하면 멸망한다는 것이다. 
기쁨의 예豫는 평화스럽고 즐거운 시절이다. 백성들과 왕이 잘 화합하여 모두의 소
원이 모두 이루어지는 좋은 세상이다. 이런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건후利建侯하며 행사行師한다, 즉 제후를 잘 세워야 하고 군사를 잘 움직이라는 말이다. 모두가 기쁘고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좋은 철인들이 나오고 좋은 지도자들이 나와서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한다. 훌륭한 장군이 나와서 외부의 적을 막 고 제후들은 안으로 평화로운 이상세계를 건설해야 한다. 나라 안으로는 정치를 잘 하는 사람이 맡아서 일하고 밖으로는 강한 대장이 외부의 침략을 막아내야 한다. 이 렇게 기쁨과 평화의 세계를 위해서는 반드시 겸손하고 힘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땅처럼 화순한 제후들이 왕에게 순종하여 온 땅을 평화롭게 다스리고 육오六五의 왕을 호위하고 있는 구사九四의 강한 장군이 기쁨으로 보필하니 화락한 세상이 된다. 그것이 뇌지예, 기쁨의 때라는 것이다.  
◆ 예괘를 판단해본다. 강한 것이 순응하여 왕의 뜻이 펼쳐지는 것이다. 진리에 순응 하여 하늘의 뜻에 기쁨으로 움직이는 것을 예라 한다. 단왈彖曰 예豫는 강응이지행剛應而志行하니라. 순이동順以動하니 예豫니라.
땅은 온순함이요 우레는 강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땅과 우레를 보고 ‘순이동 順以動’이라 한다. 이치에 순종하고 기쁨으로 약동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순리열동順理悅動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진리에 순응해야 기쁨으로 움직이지 진리와 상관이 없 으면 기쁨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람이 진리에 순응할 때, 정의를 실천할 때, 기뻐서 실천하게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순리열동順理悅動’, 그것이 예豫 다. 그것이 진짜 기쁨이다.
천지도 진리에 순응하여 기쁨으로 움직이는 까닭에 해와 달도 지나치는 일이 없고 
사시도 어긋남이 없다. 천지이순동天地以順動이니 고일월불과이故日月不過而이요 사시불특四時不忒이니라.
천지도 모두 순리열동順理悅動이다. 이치에 순종하고 기쁨으로 움직인다. 해와 달
도 언제나 순리열동順理悅動이지 이치를 벗어나는 일이 없다. 궤도를 벗어나는 일이 없다. 그래서 사시불특四時不忒, 춘하추동이 항상 질서정연하게 돌아가지 잘못되는 일이 없다. 
성인도 이처럼 진리와 일치하여 기쁨으로 사는 사람이다. 성인이 다스리면 형벌이 
없어지고 모든 백성이 기쁨으로 순종한다. 성인聖人이 이以로써 순동즉順動則하니 형벌청이刑罰淸而하여 민복民服이니라.
성인聖人도 언제나 진리와 함께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형벌이 없어지고 모든 사람
들이 순리열동順理悅動한다. 모두 기쁨으로 사는데 무슨 형벌이 필요하겠는가? 모든 백성이 나라의 정치에 대해서 마음으로 기뻐한다. 그것을 ‘형벌청이민복刑罰淸而民服’ 이라 한다. 
기쁨과 설레임의 예豫라는 때의 뜻이 매우 크구나. 예지시의豫之時義 대의재大矣哉
예豫라는 기쁨의 시절은 하늘의 때와 연결이 된다. 하늘의 때에 맞춰야 기쁨의 시
절이 오는 것이지 하늘의 뜻에 어긋나면 기쁨이 없다. 농사를 지을 때도 언제나 때를 맞춰야 한다. ‘시중時中’이다. 모든 일에 때를 맞춰야 기쁨을 얻게 된다. 
◆ 뇌지예 괘의 모습을 보고 말한다. 번갯불이 땅에서 솟아 나와 분출하는 것을 예의 기쁨이라 한다. 선왕은 이를 보고 음악을 만들어 덕을 높였다. 그래서 상제에게 성대 한 찬송을 바치며 조상을 배향하고 추모했다.
상왈象曰 뇌출지분雷出地奮 예豫 선왕이先王以 작악숭덕作樂崇德 은천지상제殷薦
之上帝 이배조고以配祖考
번개가 땅에서 떨치고 나온다. 생명력의 기氣가 온몸에서 솟구치고 넘쳐 흐른다. 그 것이 기쁨이다. 선왕은 그 기쁨을 무엇으로 구체화했나? 음악으로 구체화했다. 즐거 움을 표시하는 것이 음악이다. 그래서 ‘숭덕崇德’이다. 사람을 더욱 사람답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음악을 가지고 무엇을 하나? ‘은천지상제殷薦之上帝’,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음악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성대한 찬송, 하나님을 기쁘고 힘차게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 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음악이다. 그리고 상제에게만 바치는 것이 아니라 조상이나 선생님, 나라의 유공자들, 인류를 위해서 애써주신 모든 성현에게 찬양으로 바치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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