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록 / 언행록 / 성학십도 | 동서문화사 월드북 29
이황 (지은이),고산 고정일 (옮긴이)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2008-07-07
한국철학 주간 32위|
Sales Point : 1,129
9.2 100자평(4)리뷰(2)
602쪽
책소개
우리나라에서 성리학의 발달은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을 통해 최고봉에 이르렀으며, 퇴계의 학문과 덕행 또는 문장은 실로 위대한 경지에 도달했다. 퇴계의 학문, 덕행 및 유풍은 그 크기와 규모 영향력에서 한국 역사상 으뜸이며 유림계의 태산이요, 북두성 같은 존재로서 수많은 유림의 사표이며 그 가운데서 크게 빛나고 있다. 주자학 사상에서 보면 동양에서 주자 이후로 제1인자인 것이다.
퇴계 이황은 조선 유림들이 태산북두와 같이 존경하고 사모하여 마지않는 명현(名賢)으로 길이길이 이 민족이 지켜 나갈 길을 밝혀 주는 스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직 문화의 불모지였던 이웃 일본에도 그 높은 학풍을 전해주었던 것이다. 이황은 참으로 조선 이후 우리나라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학문의 창조자가 아닐 수 없다.
목차
자성록(自省錄)
진리 얻으매 깊이 음미해야
남시보(南時甫)에게 1 … 19
도리는 오로지 일상생활에서
남시보에게 2 … 24
예를 행함에 공손함을 다해야
정자중(鄭子中)에게 1 … 25
근본이 서면 도가 드러난다
정자중에게 2 … 26
이(理)는 만물 속에 있으므로
정자중에게 3 … 29
거울같이 맑고 물같이 고요하고
정자중에게 답함 4 … 30
기(氣)에는 삶과 죽음이 있지만 이(理)에는 삶과 죽음이 없다
정자중에게 5 … 33
다만 경(敬)을 지켜 마음을 함부로 잃지 말며
정자중에게 6 … 37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어주지 아니하니
정자중에게 7 … 38
자기에게는 이롭게 남에게는 해롭게, 이것이 순과 도척이 구분되는 사유
정자중에게 8 … 42
어진 이는 산을 즐기고 지혜로운 이는 물을 즐기고
권호문(權好文)에게 … 47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데에 있다
김돈서(金惇叙)에게 … 49
이해가 눈앞에 있더라도 속박되지 않으면
이숙헌(李叔獻) 율곡(栗谷)에게 … 63
높은 곳을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부터
황중거(黃仲擧)에게 답하여 《백록동규집해》를 논함 … 71
천하만물은 오로지 한 가지 이치만으로 되어
황중거에게 거듭 답함 … 78
마음의 영묘함을 이(理)와 기(氣)로 나누어 놓고
기정자 명언(奇正字 明彦)에게 … 83
곤륜이 대추를 통째로 삼킨다
기명언에게 … 90
하늘의 뜻이 그리 시키는 것
정자중과 기명언이 학문을 논함에 답함 … 97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게 되는 것
기명언에게 주는 편지의 별지 … 103
얕으면 얕게, 깊으면 깊게 말해야
노이재(盧伊齋)에게 … 104
오래 사는 것 개의치 않고 덕을 닦아 죽음을 기다린다
기명언에게 … 108
언행록(言行錄)
언행록1 학문‧공경‧덕성을 말하다 … 117
묻고 배움 … 117
독서 … 122
격물치지를 논함 … 128
마음의 보존과 성찰 … 131
경(敬) 공부를 논함 … 134
덕을 이룸 … 139
사람을 가르침 … 141
언행록2 자질‧절도‧몸가짐을 말함 … 152
학문의 강론과 변별 … 152
자질과 품성 … 165
처소와 침묵의 절제 … 166
몸을 다스림 … 169
청빈한 생활 … 171
검약(儉約) … 175
조상을 받드는 일 … 176
가훈(家訓) … 179
시골생활 … 184
사양함과 받아들이기 … 189
언행록3 벼슬살이와 향리생활을 말함 … 194
사람들과의 사귐 … 194
음식과 의복의 절제 … 197
자연을 즐김 … 198
벼슬살이와 물러나기 … 203
임금을 섬김 … 216
임금께 삼가기를 아룀 … 219
나의 벼슬살이 자식들의 벼슬살이 … 230
자식들에게 벼슬살이를 가르침 … 233
언행록4 이(理)와 기(氣)와 예(禮)를 말함 … 235
이(理)와 기(氣)를 논하다 … 235
관혼상제의 예를 논함 … 242
시사(時事)를 논함 … 266
언행록5 바른 학문 바른 인생 … 273
인물을 논하다 … 273
과거의 폐단을 논평함 … 286
바른 학문을 숭상함 … 290
그 밖의 여러 기록 … 294
경연 신하들이 아뢴 말씀 … 300
임종의 기록 … 306
언행록 6 경(敬)‧의(義)‧지(知)‧행(行)이 하나로 관통했던 일생 … 312
사실들을 기록함-김성일(金誠一) … 312
언행을 모두 적음-정유일(鄭惟一) … 323
세상에 남긴 일들-이이(李珥) … 332
행장을 가려 적음-박순(朴淳) … 334
사후 추존(追尊)을 위한 건의 … 335
교지문(敎旨文) … 345
제문(祭文) … 350
성학십도
성학십도 … 359
성학십도를 올리는 글 … 367
《성학십도》 원문 해설 … 374
1. 태극도설(太極圖說) … 374
2. 서명(西銘) … 377
3. 소학제사(小學題辭) … 382
4. 대학경(大學經) … 385
5. 동규후서(洞規後敍) … 388
6. 심통성정도설(心統性情圖說) … 391
7. 인설(仁說) … 394
8. 심학도설(心學圖說) … 398
9. 경재잠(敬齋箴) … 401
10.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 404
논사단칠정서(論四端七情書)
1. 기명언에게 드림-기미(己未) … 411
2. 사단칠정을 이와 기로 나누어 말할 수 없다는 기명언의 변증을 첨부
함 … 412
3. 기명언에게 답함-사단칠정을 논하는 두 번째 글 … 414
4. 기명언에게 답함-사단 칠정을 논하는 세 번째 글 … 442
5. 기명언에게 답함 … 445
6. 기명언에게 거듭 답함 … 447
7. 기명언의 ‘사단 칠정 후설’을 덧붙임 … 450
8. 기명언의 ‘사단 칠정 총론’을 덧붙임 … 452
시
1. 길선생 마을을 지나며{(계사 1533년)} … 457
2. 월영대(月影臺) … 458
3. 촉석루(矗石樓) … 458
4. 영남루(嶺南樓) … 459
5. 봄에{(병신 1536년)} … 459
6. 복사꽃 아래에서 … 460
7. 봄날 냇가에 … 461
8. 압록강 천연해수 … 461
9. 위화도(威化島) … 462
10. 청평산(淸平山)을 지나며 … 462
11. 도산 달밤의 매화 … 465
12. 망호당의 매화를 찾아 … 466
13. 도수매(倒垂梅) … 466
14. 호당(湖堂) 매화 늦봄에 피어나다 … 467
15. 고산(孤山) … 469
16. 퇴계 초가에서 황금계(黃錦溪) 찾아옴을 기뻐하며 … 469
17. 초가 계서(溪西)로 옮겨 한서암(寒棲庵)이라 이름짓다 … 469
18. 이선생 한서암에 오시다 … 470
19. 퇴계 … 470
20. 한서(寒棲) … 470
21. 가재 … 470
22. 맑은 연꽃 향기 … 471
23. 배 안에서 … 471
24. 도연명의 음주에 화창함 … 472
25. 이포(梨浦)를 지나며 … 474
26. 어부 … 475
27. 반궁(泮宮) … 475
28. 서당에서 김응림(金應霖) 추회(秋懷)에 합창함 … 476
29. 소나무를 읊는다 … 476
30. 모춘우작(暮春偶作) … 477
31. 세모에 고향 편지 받아들고 감회를 … 478
32. 저물녘 거닐며 … 479
33. 눈 속의 대나무 … 479
소(疏)
한낮의 태백성은 병란의 징조(甲辰乞勿絶倭使疏) … 483
무엇을 의(義)라 하겠습니까(戊午辭職疏) … 490
천도(天道)는 가까이에 있다(戊辰六條疏) … 498
경연일기(經筵日記)
건괘상구강의(乾卦上九講義) … 523
서명고증강의(西銘考證講義) … 525
퇴계 이황의 생애와 사상
퇴계 이황의 생애와 사상 … 545
이황 연보 … 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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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36“기(氣)에는 삶과 죽음이 있지만, 이(理)에는 삶과 죽음이 없다.”
이 말은 옳습니다. 햇빛이 물(物)에 비치는 것으로 비유한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햇빛은 그래도 없는 때가 있으니 그것은 형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理)는 소리도 냄새도 없고, 형체도 없고, 다하는 일도 없으니, 언제 없을 때가 있겠습니까? 석씨(釋氏)는 성(性)이 이(理)임을 알지 못하고 이른바 정령(精靈)이니, 신식(神識)이니 하는 것으로써 이(理)에 해당시키고,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다느니, 갔다가 다시 온다느니 말하고 있지마는 어찌 이러한 이치가 있겠습니까? (<자성록>) 접기
P. 38요즘 평소에 응접(應接)하는 상황을 검토해 보면, 그릇된 버릇에 젖어서 자기를 잃어버리는 일이 열에 여섯, 일곱은 됩니다. 편지에 ‘처세하기 어려움을 알겠다’, 또 ‘규범에 엄밀하지 못함을 한탄한다’, ‘외모가 단정치 못하면 속마음도 변한다’는 등의 말을 하였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작은 병이 아니며, 마땅히 고쳐야 하나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언어 한 가지만 말하더라도 그 곡절은 바로 편지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이와 같이 미리 쓸데없이 억지로 조절하려 든다면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경(敬)을 지켜 마음을 함부로 잃지 말며, 소홀히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를 오래도록 하여 차츰 익숙한 경지에 도달할 것 같으면, 자연히 자기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고, 사람을 응접함이 절도에 맞을 것이며, 비록 합당하지 아니한 바가 있다 할지라도 사람을 매우 원망하고 괴이하게 여기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을 날씨 선선하니 오직 진중히 수련하시길 바라며 이만 그칩니다 (<자성록>) 접기
P. 94무릇 의리의 학은 지극히 정밀한 것이므로 반드시 마음가짐을 크게 하고 착안하기를 높게 하여, 절대로 한 가지 말을 앞세우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그 뜻을 차근차근히 살펴보되 같은 것 가운데 다른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하고 다른 것 가운데 같은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분별하여 두 가지로 볼지라도 분별되지 않을 때의 의미를 손상시켜서는 안 되며, 한 가지로 합쳐서 볼지라도 실속으로는 서로 섞이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니, 이렇게 해야만 곧 두루 빠짐없이 살피게 되어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것입니다. (<자성록>) 접기
P. 171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봉양하기를 매우 조심스럽게 하여, 언제나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고 뜻에 순종해서 일마다 어김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의 뜻이 높고 깨끗해서 세상과 맞지 않을 것을 생각하여 일찍이 말씀하셨다. “네가 벼슬을 하려면 주(州)나 현(縣) 같은 고을살이가 마땅하니, 높은 벼슬에는 나아가지 마라. 세상이 너를 용납하지 않을까 두렵다.”(김성일) (<언행록>) 접기
P. 203한번은 선생을 모시고 산당(山堂)에 앉았는데, 앞들에 말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산당을 지키는 중이 말하였다.
“그 사람 괴이하다. 나으리 앞을 지나면서 말에서 내리지 않다니.”
그러니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말 탄 사람이 그림 속 사람같이 하나의 좋은 경치를 더해 주는데 허물할 것이 무엇이냐.”(이덕홍) (<언행록>)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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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退溪) 이황(李滉)은 1501년 11월 25일 안동 예안현 온계리에서 진사 이식(李埴)과 박씨 부인의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6세에 이웃 노인에게서 ≪천자문(千字文)≫과 ≪동몽선습(童蒙先習)≫, ≪명심보감(明心寶鑑)≫, ≪소학(小學)≫ 등을 배웠고 12세에는 숙부 송재공(松齋公) 이우(李?)에게 ≪논어(論語)≫를 배웠다. 15세에 게[蟹]를 보고 <부석천사자유가(負石穿沙自由家)> 등의 시를 지었고 20세에는 ≪주역(周易)≫을 탐독했다.
21세에 서울로 올라와 성균관에 유학한다. 27세에 경상도 향시에 2위로 합격하고 28세에 진사회시에 2등으로 합격, 32세에 문과 초시 2등으로 합격하고 다음 해인 33세(1533)에 반궁(泮宮)에 유학하며 경상도 향시에 합격한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와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36세에 선무랑과 성균관전적을 거쳐 9월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37세에 선교랑, 승훈랑, 승의랑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 박씨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난다.
39세에 3년 상을 마치고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지제교로 승진해 40세에는 사간원정언, 승문원교검,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교리에 임명되었고 42세에는 홍문관부교리, 충청도·강원도어사로 순찰했으나, 43세에 병을 이유로 관직을 사임했다. 이후 종친부전첨, 세자시강원필선, 사간원사간, 성균관사성 등에 여러 차례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44세 10월에 상경한 후 중종이 승하하자 부고와 시장을 집필했다. 47세 7월에 안동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임했다. 홍문관응교에 제수되어 상경해 사퇴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48세에 외직을 자청해 단양군수로 취임했다. 10월에 풍기군수로 전임했다. 49세에 소수 서원을 개칭해 사액 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9월에 신병으로 사임해 귀향했다. 그러나 신병을 이유로 세 번이나 사직원을 제출한 후 회답을 기다리지 않고 퇴계로 돌아와 임소를 이탈했다는 죄목으로 직첩을 박탈당했다. 50세에 예안 하명동에 한서암(寒棲庵)을 짓고 학문에 전념한다. 53세 4월에 성균관대사성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한다.
54세에 형조·병조참의,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고 경복궁에 새로 지은 여러 전각의 편액을 썼으나 이듬해 병으로 모든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한다. 56세에 도산에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편찬 완성하고 다음 해인 57세에 도산 서당을 지을 터를 마련하고 ≪계몽전의(啓蒙傳疑)≫를 저술했다. 58세에 대사성에 임명되자 사직을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하고 공조참판에 임명되었다. 59세에 휴가를 얻어 귀향한 후 관직을 사임하고 ≪송계원명리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을 저술했다.
60세에 고봉 기대승(奇大升)과 편지로 사단칠정론(四端七情)을 변론했다. 도산서당(陶山書院)이 완공된다. 61세에 <도산기(陶山記)>를 저술했다. 64세 2월에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의 발문을 썼으며 65세에 ≪경현록(景賢錄)≫, ≪역학계몽(易學啓蒙)≫, ≪명당실어(名堂室語)≫ 등을 저술했다. 66세에 공조판서와 홍문관·예문관대제학에 제수되었고, 다음 해인 67세에 다시 예조판서, 경연춘추관사로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8월에 귀향, 역동 서원(易東書院)을 새로 건축했다.
68세에 선조 원년 의정부우찬성과 판중추부사에 제수되자 6월에 소명을 어기지 못해 상경해 양관의 대제학을 겸임했다. 재임 중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저술했다. 69세(1569)에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귀향했다. 70세 7월 역동 서원에 가서 ≪심경(心經)≫을 강의하고, 8월 역동 서원의 낙성식에 참여했다. 11월 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을 개정하다 병이 심상치 않자 12월 봉화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큰아들을 사직, 귀가하게 해 장례 준비를 갖추도록 했다.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 명문(銘文)과 자명(自銘)을 몸소 짓고, 임종 직적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과 함께 한서암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영의정에 추서되었다. 접기
최근작 : <성학십도>,<아들에게 쓴 퇴계의 편지 3 분수를 넘지 마라>,<아들에게 쓴 퇴계의 편지 2 국법은 지엄한 것이다> … 총 67종 (모두보기)
고산 고정일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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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출생. 성균관대학교국문학과졸업. 성균관대학교대학원비교문화학전공졸업. 任昌淳泰東고전연구소 수학. 소설 《청계천》으로 《자유문학》 등단. 동서문화사 창업 발행인. 1977~87년 동인문학상운영위집행위원장. 1996년 《한국세계대백과사전 총31권》 편찬주간. 지은책 대하소설 《매혹된 혼 최승희》 《불과 얼음 장진호》 《전작소설 이중섭》 《한국출판 100년을 찾아서》 《愛國作法‧新文館 崔南善‧講談社 野間淸治》 《망석중이들 잠꼬대》 《춘원이광수 민족정신 찾아서》 옮긴책 《오륜행실도》 이이 《성학집요》 《격몽요결》, 이익 《성호사설》, 이순신 《난중일기》 한국출판학술상수상 한국출판문화상수상 아동문예상수상. 접기
최근작 : <꿈을 심어 주는 독서 고등학교 1>,<꿈을 심어 주는 독서 중학교 1>,<꿈을 심어 주는 독서 초등학교 4학년 2> … 총 35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엄격 부단한 정신도야, 고매한 인품, 깊은 사상
한국 사상 근간 학문의 창성자 이황
퇴계 학문 사상의 진수를 집대성!
민족의 나아갈 길 밝혀준 한국인의 스승
우리나라에서 성리학의 발달은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을 통해 최고봉에 이르렀으며, 퇴계의 학문과 덕행 또는 문장은 실로 위대한 경지에 도달했다. 퇴계의 학문, 덕행 및 유풍은 그 크기와 규모 영향력에서 한국 역사상 으뜸이며 유림계의 태산이요, 북두성 같은 존재로서 수많은 유림의 사표이며 그 가운데서 크게 빛나고 있다. 주자학 사상에서 보면 동양에서 주자 이후로 제1인자인 것이다.
퇴계 이황은 조선 유림들이 태산북두와 같이 존경하고 사모하여 마지않는 명현(名賢)으로 길이길이 이 민족이 지켜 나갈 길을 밝혀 주는 스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직 문화의 불모지였던 이웃 일본에도 그 높은 학풍을 전해주었던 것이다. 이황은 참으로 조선 이후 우리나라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학문의 창조자가 아닐 수 없다.
퇴계의 고매한 인품, 깊은 사상이 담긴《자성록》
《자성록》은 퇴계가 자신의 사상적 원숙기라고 할 수 있는 55∼60세 때까지의 시기에 문인들에게 보낸 서간 가운데서 수양과 성찰에 도움이 되는 편지 22통을 모아 직접 편집한 책이다.
퇴계는 성학을 배우는 초학자들의 공통적인 심기(心氣)의 병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초학자들의 병은 아직 이(理)를 통찰함이 투철하지 못해서 천착하여 억지로 탐구하고, 마음 가지는 방법에 어두워 조급히 서두르는 데 있다. 정유일과 권호문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성학을 배우는 기본자세를 전반적으로 설명한다. 뜻을 세우고 학문하는 근본과 말단을 알며, 서로 도와 참을성 있게 공부하여 인(仁)과 지(智)를 추구하라는 것이다. 또한 ‘독서’, ‘마음을 붙잡아두고 기르며 공경하는 마음속에 머무름’, ‘잘잘못을 살피고 이치를 탐구함’ 등을 다루며, 얕은 지식을 쌓아 헛된 꿈에 사로잡혀 명성에 집착해서는 안 됨을 강조한다.
《자성록》 한 권만 연구해도 그 속에서 참으로 많은 철학적 사상과 학문적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거기에는 성학을 배우는 초학자들의 공통된 병을 고치는 처방, 학문하는 기본자세, 거경궁리의 방법, 세상을 속이고 명예를 훔치는 데 대한 준엄한 경계 등이 있으며, 이러한 내용들은 학자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가장 친절하고 신뢰할 만한 안내자가 된다. 또한 엄격하고도 부단한, 퇴계의 학문하는 정신과 고매한 인품, 깊은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퇴계의 《언행록》을 후인들은 공자의 《논어》에 비유한 바 있거니와, 이러한 비유를 확대한다면 《자성록》이 《가어(家語)》와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매화향처럼 깨끗하고 고결한 품격의 책《퇴계 언행록》
퇴계는 그 언어와 행실에서 지극히 겸손하고 발라서 무릇 세인의 모범이 되었다. 그의 매화향처럼 깨끗하고 고결한 품격을 책으로 썼으니 그것이 바로 《퇴계 언행록》이다.
《퇴계 언행록》은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숙종 때 권두경(權斗經:1654∼1726)이 편찬․간행했는데, 나중에 중간된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간행연대는 알 수 없다. 저자는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영남학파의 거두인 이현일(李玄逸)의 문인이다. 책머리에는 목록에 이어 차기제자목록(箚記諸子目錄)이 있다. 목록에 수록된 인물은 김성일․권호문․김부륜․정구․조목 등 거의 퇴계의 제자들이며, 이이․유희춘도 있다.
권1은 학문․공경․덕성을 말한다. 권2는 자질과 절도, 몸가짐을 말한다. 권3은 벼슬살이와 향리 생활을 말한다. 권4는 이(理)와 기(氣), 예(禮)를 말한다. 권5는 바른 학문 바른 인생을 말한다. 권6은 경(敬)․의(義)․지(知)․행(行)이 하나로 관통했던 일생에 대해 말한다.
퇴계 유학 사상의 진수!《성학십도》
‘성학’이란 곧 ‘유학’을 의미하고, 그 유학 중에도 특히 ‘성리학’을 일컫는다. 유학 또는 성리학을 굳이 성학이라 일컫는 까닭은 이 학문이 곧 ‘성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갖춘 학문’임을 자부하는 데 있다. 그리고 특히 임금에 대하여는 ‘성왕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갖춘 학문’임을 강조하려는 데 있다.
《성학십도》는 퇴계 유학 사상의 진수를 빠짐없이 드러낸 가장 중요한 저작이다. 퇴계는 68세 때, 일생동안 쌓아올린 학문적 지식을 쏟아 마지막 봉공(奉公)의 정성을 다하여 임금께 《진성학십도차》를 올린다. 그런 만큼 《성학십도》는 퇴계의 가장 원숙한 말년의 사상의 전모가 일목요연하게 압축 요약되어 있는 것이요, 그의 심혈을 경주한 대표적인 명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은퇴한 퇴계가 국가에 바친 만년 충절의 일단이기도 하다.
제1도는 도와 도설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며, 제2도에서 서명은 장재의 글이고, 도는 정임은의 작품이다. 제4도에서 본문은 주자의 《대학경》 일장(章)이고, 도는 권근의 작품이다. 제5도에서 규약은 주자의 글이고 도는 이황의 작품이며, 제6도에서 상도(上圖) 및 도설은 정임은의 저작이고 도는 이황의 작품이다. 제7도는 도 및 도설이 모두 정임은의 저작, 제9도에서 잠은 주자의 말이고 도는 왕노재의 작품이며, 제10도에서 잠은 진남당의 말이고 도는 이황의 작품이다. 이들 유학사상의 정수들의 집약은 퇴계가 독창적으로 배치하여 서로 유기적으로 관련됨으로써 생명 있는 전체적 체계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지성의 찬란한 금자탑《논사단칠정서》
《논사단칠정서》는 퇴계 철학의 진수가 담긴 서한집으로, 고봉 기대승과 ‘사단칠정’의 발현 문제를 둘러싸고 벌인 논쟁을 담은 퇴계의 대표 걸작이다. 퇴계와 기대승의 14년에 걸친 철학적 논란은 성리학사상 한국 지성의 찬란한 금자탑이다.
사단은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각각 인(仁)․의(義)․예(禮)․지(智)․심(心)의 착한 본성에서 발로되어 나오는 정감이다. 측은지심은 타인의 불행을 아파하는 마음, 수오지심은 악한 일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 사양지심은 윗사람에게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은 선악시비를 판별하는 마음이다. 칠정은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의 일곱 가지 감정으로서, 인간 심리의 숨김없는 현 실태를 총칭한 것이다.
퇴계는 사단은 이의 발이요, 칠정은 기의 발이다(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며 둘을 따로 떼어 생각했는데, 그 주장에 기대승이 반론을 펼치며 논쟁이 시작된다. 이에 따라 퇴계는 자신의 이론을 몇 차례에 걸쳐 수정하여, 사단은 이가 발해서 기가 따르고, 칠정은 기가 발해서 이가 탄다(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고 주장한다. 이렇게 시작된 사단칠정에 관한 논쟁은 성혼과 이이를 거쳐 한말에 이르기까지 한국 성리학 이론 논쟁의 중요 쟁점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논구로 사단칠정론 중심의 한국 성리학의 심성론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향상되어 중국 성리학을 능가하게 되었다.
퇴계의 격조 높은 시(詩) 세계
퇴계의 도학에 대한 열성은 시작(詩作)으로 이어졌다. 그의 시들은 실천궁행하는 도학자로서의 삶이 생활 속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시에는 드높은 인품이 배어 있어 선비로서의 고고한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퇴계는 자연을 음송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자연에 의지하여 우주의 심원한 이치를 드높은 운치로 읊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생활의 소회(所懷)를 느끼고 생각나는 대로 그리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퇴계의 시는 그 자신의 도학으로 수양함으로써 우러나온 격조 높은 시정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는 때로는 도산(陶山)에서, 동암(東巖)의 바위 위에서, 아니면 병상에서 느끼는 갖가지 생각들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가고 있다.
퇴계는 자연과 더불어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고자 했다. 그래서 유난히도 산수시를 많이 남겼다. 초야에 묻혀 살면서 세속의 찌든 때를 씻고자 했고, 그리하여 도학자로서의 기풍을 잃지 않고자 했던 것이다. 퇴계는 선비이자 대학자요 순수하고 깨끗한 기품을 지닌 시인이었다.
이 책에는 두고두고 새겨 읽을 만한 퇴계의 시 33편을 실어, 독자들이 선인의 탁월한 삶의 지혜를 깨우칠 수 있도록 했다.
<무진육조소>의 퇴계 정치사상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는 총 7400자로 된 긴 소문이다. 이는 퇴계 이후 물러나는 대신이나 물러간 재야 유신들이 국왕에게 정책이나 의견을 개진하는 길을 가르쳐 준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왕통 승계의 법통을 중히 여겨서 어질게 효도를 다하여 모실 것. 둘째, 간사한 무리의 참언을 막고, 왕실의 자전과 본생 친가 부모 양궁(兩宮:생가와 양가인 왕가)을 친근하게 해서 사이를 좋게 유지할 것. 셋째, 제왕학(帝王學:임금이 갖추고 있어야 할 학문)을 공부하여 치국의 근본을 확립할 것. 넷째, 도덕과 학문을 밝히고 인심을 바르게 이끌 것. 다섯째, 임금의 속마음을 잘 알아차리는 인물을 골라서 귀와 눈이 바르게 보고 들을 수 있게 할 것. 여섯째, 지성스럽게 자신을 반성하고 수양을 거듭하며, 하늘의 사랑(하늘이 백성을 사랑하는 자애)을 받들 것.
무진육조소는 선조에게 사람으로서 누구나 갖추어야 할 기본 자질과 전통적으로 가르쳐 온 성학(聖學:제왕학)을 정밀하고 쉽게 설명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에 남을 다스리는 법도를 가르친 것이다. 퇴계는 어디까지나 본연의 자세와 심성의 근본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정치를 해야 하는 요체와 방도를 설명했다. 이렇듯 퇴계는 학자든 임금이든 성학에 근본을 두어 그 전통을 지키며, 성현을 스승으로 삼고 인효와 인륜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아뢴 것이다.
퇴계의 소(疏)를 본 선조는 감격해서 다음과 같이 치하했다.
“경의 도덕은 옛 성현의 자질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그 윤리 또한 어질고 깨끗하오. 무릇 이 육조는 진실로 천고의 격언이오니 당장 지금이라도 시급히 힘쓸 것이오. 내 어찌 감히 가슴에 새겨서 지키지 않으리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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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또 보며 익히고 깨우쳐야 한다. 비록 성인이 될 수 없을지라도.
Superunknown 2015-11-14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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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체계적인 이해를 가능케 하는 명저
우왕 2014-01-21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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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의 삶을 자성록, 언행록등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 같다.
거북이 2011-12-03 공감 (0) 댓글 (0)
마이리뷰
퇴계 이황의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 자신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교훈)
닭이 울어 잠이 깨면, 이런저런 생각이 차차 일어난다. 어찌 그동안 고요하게 마음을 정돈하지 않으리오. 때로는 과거의 허물을 반성하며, 때로는 새로 깨달은 것을 생각해 내어, 차례로 조리를 세우며 분명하게 이해하여 두라.
근본이 서면 새벽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빗질하고 의관을 단정히 하고 안색을 가다듬고 나서, 이 마음 이끌기를 마치 돋아 오르는 해와 같이 밝게 하라. 엄숙하고 가지런하며, 마음을 허명정일(虛明靜一 : 마음을 텅 빈 듯하면서도 밝고 고요하게 한결같이 하는 것)하게 가질 것이다.
이때 책을 펴서 성현들을 대하면, 공자께서 자리에 계시고, 안자와 증자가 앞뒤에 계실 것이다. 성현의 말씀은 친절히 경청하고, 제자들의 물음은 반복하여 참고하고 바로잡아라. 일이 생겨 곧 응하게 되면, 곧 가르침을 실천으로 시험해 보아라.
천리(天理)는 밝은 것, 언제나 눈을 여기에 두어라. 일에 응하고 나면, 곧 나는 예전의 나대로 되어야 한다. 마음(方寸)을 고요하게 하여 정신을 모으고 잡념을 버려라. 동(動)・정(靜)이 순환할 때에 오직 마음만이 이것을 볼 것이니, 고요할 때는 보존하고 움직일 때는 살펴서, 마음을 두 갈래 세 갈래로 나누지 마라. 글을 읽다가 여가를 틈타서 간간이 쉬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성정을 길러라.
날이 저물고 권태로워지면, 어두운 기운이 쉽게 타고 들어온다. 재계하고 정제하여 정신을 명랑하게 하여라. 밤이 깊어 잠들 때에는, 손을 가지런히 하고 발을 모으라. 잡생각을 하지 말고 심신이 자리 잡고 머무르게 하라. 야기(夜氣 : 낮 동안 잃었던 양심이 밤사이에 소생됨을 말함.)로써 길러 나가라. 정(貞)하면 원(元)에 돌아오니,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여기에 마음을 두어 밤낮으로 쉬지 않고 부지런히 힘쓰라.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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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향기 2016-01-10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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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록/언행록/성학십도
이이 선생의 스승, 퇴계 이황. 그 학문의 깊이와 품성의 방정함과 임금에 대한 존경심과 애민 정신 무엇 하나 빠뜨릴 게 없는 학자 중에 학자, 실천적 학자이다. 이이와 더불어 한국에 내노라 하는 학자인 것이다. 중국, 일본 등에서는 이미 그의 학문의 깊이를 이해하고 인정하였지만 정작 우리는 명성만 알지 배움이 짧았다. 마침 기회가 되어 너무나 기쁘다. 중국에서는 1920년즈음 상덕여자대학에서 <성학집도>를 간행할 때 그 끝에 붙였다. 높디 높으신 우리 이 선생님/예를 잇고 후세 열어 고금을 꿰뚫으셨습니다./열 폭 그림으로 이학요결 전하시어/백세에 길이 길이 성인 마음 펴시었습니다./학문과 예술은 주자를 따르시었고/우주관과 깨끗하심은 주렴계에 비기겠습니다./높은 성덕 넓은 교화가 삼백 년 뒤 오늘까지 미쳤으니/ 온 세상 인류들이 뉘 아니 공경하오리까! 하였다. 특히 성학집도는 가히 그림에 모든 학문과 삶은 다 담아내는 엄청난 학문의 깊이와 익히기 좋게 요약하는 지혜와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응용능력을 두루 갖춘 천재 중에 천재라고 볼 수 있다.
이황에 아쉬운 것은 조선의 혼란기에 살았다는 것이다. 학문과 실천적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한국 사회에 엄청난 손해인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가 정치에 깊이 관여 했다면 그의 작품들은 많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황의 가난 속에서도 물욕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기개를 당당하게 지켜 왔으며 혼란기에 뇌화부동하지 않고, 정치에 휩싸이지도 않고 자신만의 길을 곳곳이 갔다. 학문 사랑, 친구 사랑, 약자 사랑, 미련한이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학자였다. 논어에 미련한 자를 친구로 하지 말라는 말에 이황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달리 해석하면서 악한 자를 멀리할게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으라고 하고 있다. 배척하고, 외면하는 외골수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모든 사람과 관계하며 변화시켜 보려는 학자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정도의 학문의 깊이 있으면 교만하거나, 무시하는 마음이 있을만도 한데 전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으니 참으로 기이하다.
5세에 천자문을 익히고 배운 것을 자랑하며 크게 떠드는 모습을 보고 그의 어머니가 후실 자식이 배우지 못하여 무시당하니 더욱 학문에 정진하고 조금 배운 것으로 자랑이나 하는 소인배가 되지 말라는 따금한 충고가 평생을 겸손하게 만들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자연 사랑의 성품이 있어 자연 속에서 살기를 좋아 했고, 수많은 시들이 거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작품들이다. 감성이 풍부하여 많은 시를 남겼다. 그 중에서 소나무를 읊는다. 돌 위에 자란 천년 묵은 불로송/검푸른 비늘처럼 쭈굴쭈굴한 껍질이 마치 날아 오르는 용의 기세로다/까마득한 절벽 위에 우뚝 자라난 소나무/높은 하늘 쓸어낼 듯 험준한 산봉우리 찍어 누를 듯/본성이 본디 울긋불긋한 사치를 싫어하니/복숭아꽃 자두꽃 저절로 아양떨게 내버려두며/뿌리 깊이 현무신의 기골을 키웠으니/한겨울 누 서리에도 까딱 없어라
나의 작품
거송(巨松)
거송(巨松)/너는 대장부/너 뭐 그리 잘났다고 높이 서있노/너 뭐 그리 많이 안다고 손들고 있노/너 뭐 그리 잘한다고 얼굴 내미노/
잘나서 그런 게 아니라네/내 먼저 알았기에 바람 맞고/내 먼저 체험했기에 때양 볕 쬐고/내 먼저 받았기에 나눠주러 가는 중이라오
남 몰라줘도 나는 일어서리/남 흉보아도 나 말하리/남 비난해도 나 전하리
거송(巨松)/너는 대장부/나도 너처럼/장부(丈夫)되리!
(바로 이황 같은 분이 아닐까? 이황 선생을 생각하며 지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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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특기생 2013-06-1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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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 주간 32위|
Sales Point : 1,129
9.2 100자평(4)리뷰(2)
602쪽
책소개
우리나라에서 성리학의 발달은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을 통해 최고봉에 이르렀으며, 퇴계의 학문과 덕행 또는 문장은 실로 위대한 경지에 도달했다. 퇴계의 학문, 덕행 및 유풍은 그 크기와 규모 영향력에서 한국 역사상 으뜸이며 유림계의 태산이요, 북두성 같은 존재로서 수많은 유림의 사표이며 그 가운데서 크게 빛나고 있다. 주자학 사상에서 보면 동양에서 주자 이후로 제1인자인 것이다.
퇴계 이황은 조선 유림들이 태산북두와 같이 존경하고 사모하여 마지않는 명현(名賢)으로 길이길이 이 민족이 지켜 나갈 길을 밝혀 주는 스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직 문화의 불모지였던 이웃 일본에도 그 높은 학풍을 전해주었던 것이다. 이황은 참으로 조선 이후 우리나라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학문의 창조자가 아닐 수 없다.
목차
자성록(自省錄)
진리 얻으매 깊이 음미해야
남시보(南時甫)에게 1 … 19
도리는 오로지 일상생활에서
남시보에게 2 … 24
예를 행함에 공손함을 다해야
정자중(鄭子中)에게 1 … 25
근본이 서면 도가 드러난다
정자중에게 2 … 26
이(理)는 만물 속에 있으므로
정자중에게 3 … 29
거울같이 맑고 물같이 고요하고
정자중에게 답함 4 … 30
기(氣)에는 삶과 죽음이 있지만 이(理)에는 삶과 죽음이 없다
정자중에게 5 … 33
다만 경(敬)을 지켜 마음을 함부로 잃지 말며
정자중에게 6 … 37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어주지 아니하니
정자중에게 7 … 38
자기에게는 이롭게 남에게는 해롭게, 이것이 순과 도척이 구분되는 사유
정자중에게 8 … 42
어진 이는 산을 즐기고 지혜로운 이는 물을 즐기고
권호문(權好文)에게 … 47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데에 있다
김돈서(金惇叙)에게 … 49
이해가 눈앞에 있더라도 속박되지 않으면
이숙헌(李叔獻) 율곡(栗谷)에게 … 63
높은 곳을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부터
황중거(黃仲擧)에게 답하여 《백록동규집해》를 논함 … 71
천하만물은 오로지 한 가지 이치만으로 되어
황중거에게 거듭 답함 … 78
마음의 영묘함을 이(理)와 기(氣)로 나누어 놓고
기정자 명언(奇正字 明彦)에게 … 83
곤륜이 대추를 통째로 삼킨다
기명언에게 … 90
하늘의 뜻이 그리 시키는 것
정자중과 기명언이 학문을 논함에 답함 … 97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게 되는 것
기명언에게 주는 편지의 별지 … 103
얕으면 얕게, 깊으면 깊게 말해야
노이재(盧伊齋)에게 … 104
오래 사는 것 개의치 않고 덕을 닦아 죽음을 기다린다
기명언에게 … 108
언행록(言行錄)
언행록1 학문‧공경‧덕성을 말하다 … 117
묻고 배움 … 117
독서 … 122
격물치지를 논함 … 128
마음의 보존과 성찰 … 131
경(敬) 공부를 논함 … 134
덕을 이룸 … 139
사람을 가르침 … 141
언행록2 자질‧절도‧몸가짐을 말함 … 152
학문의 강론과 변별 … 152
자질과 품성 … 165
처소와 침묵의 절제 … 166
몸을 다스림 … 169
청빈한 생활 … 171
검약(儉約) … 175
조상을 받드는 일 … 176
가훈(家訓) … 179
시골생활 … 184
사양함과 받아들이기 … 189
언행록3 벼슬살이와 향리생활을 말함 … 194
사람들과의 사귐 … 194
음식과 의복의 절제 … 197
자연을 즐김 … 198
벼슬살이와 물러나기 … 203
임금을 섬김 … 216
임금께 삼가기를 아룀 … 219
나의 벼슬살이 자식들의 벼슬살이 … 230
자식들에게 벼슬살이를 가르침 … 233
언행록4 이(理)와 기(氣)와 예(禮)를 말함 … 235
이(理)와 기(氣)를 논하다 … 235
관혼상제의 예를 논함 … 242
시사(時事)를 논함 … 266
언행록5 바른 학문 바른 인생 … 273
인물을 논하다 … 273
과거의 폐단을 논평함 … 286
바른 학문을 숭상함 … 290
그 밖의 여러 기록 … 294
경연 신하들이 아뢴 말씀 … 300
임종의 기록 … 306
언행록 6 경(敬)‧의(義)‧지(知)‧행(行)이 하나로 관통했던 일생 … 312
사실들을 기록함-김성일(金誠一) … 312
언행을 모두 적음-정유일(鄭惟一) … 323
세상에 남긴 일들-이이(李珥) … 332
행장을 가려 적음-박순(朴淳) … 334
사후 추존(追尊)을 위한 건의 … 335
교지문(敎旨文) … 345
제문(祭文) … 350
성학십도
성학십도 … 359
성학십도를 올리는 글 … 367
《성학십도》 원문 해설 … 374
1. 태극도설(太極圖說) … 374
2. 서명(西銘) … 377
3. 소학제사(小學題辭) … 382
4. 대학경(大學經) … 385
5. 동규후서(洞規後敍) … 388
6. 심통성정도설(心統性情圖說) … 391
7. 인설(仁說) … 394
8. 심학도설(心學圖說) … 398
9. 경재잠(敬齋箴) … 401
10.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 404
논사단칠정서(論四端七情書)
1. 기명언에게 드림-기미(己未) … 411
2. 사단칠정을 이와 기로 나누어 말할 수 없다는 기명언의 변증을 첨부
함 … 412
3. 기명언에게 답함-사단칠정을 논하는 두 번째 글 … 414
4. 기명언에게 답함-사단 칠정을 논하는 세 번째 글 … 442
5. 기명언에게 답함 … 445
6. 기명언에게 거듭 답함 … 447
7. 기명언의 ‘사단 칠정 후설’을 덧붙임 … 450
8. 기명언의 ‘사단 칠정 총론’을 덧붙임 … 452
시
1. 길선생 마을을 지나며{(계사 1533년)} … 457
2. 월영대(月影臺) … 458
3. 촉석루(矗石樓) … 458
4. 영남루(嶺南樓) … 459
5. 봄에{(병신 1536년)} … 459
6. 복사꽃 아래에서 … 460
7. 봄날 냇가에 … 461
8. 압록강 천연해수 … 461
9. 위화도(威化島) … 462
10. 청평산(淸平山)을 지나며 … 462
11. 도산 달밤의 매화 … 465
12. 망호당의 매화를 찾아 … 466
13. 도수매(倒垂梅) … 466
14. 호당(湖堂) 매화 늦봄에 피어나다 … 467
15. 고산(孤山) … 469
16. 퇴계 초가에서 황금계(黃錦溪) 찾아옴을 기뻐하며 … 469
17. 초가 계서(溪西)로 옮겨 한서암(寒棲庵)이라 이름짓다 … 469
18. 이선생 한서암에 오시다 … 470
19. 퇴계 … 470
20. 한서(寒棲) … 470
21. 가재 … 470
22. 맑은 연꽃 향기 … 471
23. 배 안에서 … 471
24. 도연명의 음주에 화창함 … 472
25. 이포(梨浦)를 지나며 … 474
26. 어부 … 475
27. 반궁(泮宮) … 475
28. 서당에서 김응림(金應霖) 추회(秋懷)에 합창함 … 476
29. 소나무를 읊는다 … 476
30. 모춘우작(暮春偶作) … 477
31. 세모에 고향 편지 받아들고 감회를 … 478
32. 저물녘 거닐며 … 479
33. 눈 속의 대나무 … 479
소(疏)
한낮의 태백성은 병란의 징조(甲辰乞勿絶倭使疏) … 483
무엇을 의(義)라 하겠습니까(戊午辭職疏) … 490
천도(天道)는 가까이에 있다(戊辰六條疏) … 498
경연일기(經筵日記)
건괘상구강의(乾卦上九講義) … 523
서명고증강의(西銘考證講義) … 525
퇴계 이황의 생애와 사상
퇴계 이황의 생애와 사상 … 545
이황 연보 … 596
접기
책속에서
P. 36“기(氣)에는 삶과 죽음이 있지만, 이(理)에는 삶과 죽음이 없다.”
이 말은 옳습니다. 햇빛이 물(物)에 비치는 것으로 비유한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햇빛은 그래도 없는 때가 있으니 그것은 형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理)는 소리도 냄새도 없고, 형체도 없고, 다하는 일도 없으니, 언제 없을 때가 있겠습니까? 석씨(釋氏)는 성(性)이 이(理)임을 알지 못하고 이른바 정령(精靈)이니, 신식(神識)이니 하는 것으로써 이(理)에 해당시키고,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다느니, 갔다가 다시 온다느니 말하고 있지마는 어찌 이러한 이치가 있겠습니까? (<자성록>) 접기
P. 38요즘 평소에 응접(應接)하는 상황을 검토해 보면, 그릇된 버릇에 젖어서 자기를 잃어버리는 일이 열에 여섯, 일곱은 됩니다. 편지에 ‘처세하기 어려움을 알겠다’, 또 ‘규범에 엄밀하지 못함을 한탄한다’, ‘외모가 단정치 못하면 속마음도 변한다’는 등의 말을 하였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작은 병이 아니며, 마땅히 고쳐야 하나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언어 한 가지만 말하더라도 그 곡절은 바로 편지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이와 같이 미리 쓸데없이 억지로 조절하려 든다면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경(敬)을 지켜 마음을 함부로 잃지 말며, 소홀히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를 오래도록 하여 차츰 익숙한 경지에 도달할 것 같으면, 자연히 자기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고, 사람을 응접함이 절도에 맞을 것이며, 비록 합당하지 아니한 바가 있다 할지라도 사람을 매우 원망하고 괴이하게 여기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을 날씨 선선하니 오직 진중히 수련하시길 바라며 이만 그칩니다 (<자성록>) 접기
P. 94무릇 의리의 학은 지극히 정밀한 것이므로 반드시 마음가짐을 크게 하고 착안하기를 높게 하여, 절대로 한 가지 말을 앞세우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그 뜻을 차근차근히 살펴보되 같은 것 가운데 다른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하고 다른 것 가운데 같은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분별하여 두 가지로 볼지라도 분별되지 않을 때의 의미를 손상시켜서는 안 되며, 한 가지로 합쳐서 볼지라도 실속으로는 서로 섞이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니, 이렇게 해야만 곧 두루 빠짐없이 살피게 되어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것입니다. (<자성록>) 접기
P. 171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봉양하기를 매우 조심스럽게 하여, 언제나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고 뜻에 순종해서 일마다 어김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의 뜻이 높고 깨끗해서 세상과 맞지 않을 것을 생각하여 일찍이 말씀하셨다. “네가 벼슬을 하려면 주(州)나 현(縣) 같은 고을살이가 마땅하니, 높은 벼슬에는 나아가지 마라. 세상이 너를 용납하지 않을까 두렵다.”(김성일) (<언행록>) 접기
P. 203한번은 선생을 모시고 산당(山堂)에 앉았는데, 앞들에 말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산당을 지키는 중이 말하였다.
“그 사람 괴이하다. 나으리 앞을 지나면서 말에서 내리지 않다니.”
그러니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말 탄 사람이 그림 속 사람같이 하나의 좋은 경치를 더해 주는데 허물할 것이 무엇이냐.”(이덕홍) (<언행록>)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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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상소에서 배우는 ‘이기는 기술’
- 최효찬 (작가 겸 칼럼니스트)
저자 및 역자소개
이황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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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退溪) 이황(李滉)은 1501년 11월 25일 안동 예안현 온계리에서 진사 이식(李埴)과 박씨 부인의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6세에 이웃 노인에게서 ≪천자문(千字文)≫과 ≪동몽선습(童蒙先習)≫, ≪명심보감(明心寶鑑)≫, ≪소학(小學)≫ 등을 배웠고 12세에는 숙부 송재공(松齋公) 이우(李?)에게 ≪논어(論語)≫를 배웠다. 15세에 게[蟹]를 보고 <부석천사자유가(負石穿沙自由家)> 등의 시를 지었고 20세에는 ≪주역(周易)≫을 탐독했다.
21세에 서울로 올라와 성균관에 유학한다. 27세에 경상도 향시에 2위로 합격하고 28세에 진사회시에 2등으로 합격, 32세에 문과 초시 2등으로 합격하고 다음 해인 33세(1533)에 반궁(泮宮)에 유학하며 경상도 향시에 합격한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와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36세에 선무랑과 성균관전적을 거쳐 9월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37세에 선교랑, 승훈랑, 승의랑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 박씨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난다.
39세에 3년 상을 마치고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지제교로 승진해 40세에는 사간원정언, 승문원교검,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교리에 임명되었고 42세에는 홍문관부교리, 충청도·강원도어사로 순찰했으나, 43세에 병을 이유로 관직을 사임했다. 이후 종친부전첨, 세자시강원필선, 사간원사간, 성균관사성 등에 여러 차례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44세 10월에 상경한 후 중종이 승하하자 부고와 시장을 집필했다. 47세 7월에 안동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임했다. 홍문관응교에 제수되어 상경해 사퇴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48세에 외직을 자청해 단양군수로 취임했다. 10월에 풍기군수로 전임했다. 49세에 소수 서원을 개칭해 사액 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9월에 신병으로 사임해 귀향했다. 그러나 신병을 이유로 세 번이나 사직원을 제출한 후 회답을 기다리지 않고 퇴계로 돌아와 임소를 이탈했다는 죄목으로 직첩을 박탈당했다. 50세에 예안 하명동에 한서암(寒棲庵)을 짓고 학문에 전념한다. 53세 4월에 성균관대사성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한다.
54세에 형조·병조참의,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고 경복궁에 새로 지은 여러 전각의 편액을 썼으나 이듬해 병으로 모든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한다. 56세에 도산에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편찬 완성하고 다음 해인 57세에 도산 서당을 지을 터를 마련하고 ≪계몽전의(啓蒙傳疑)≫를 저술했다. 58세에 대사성에 임명되자 사직을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하고 공조참판에 임명되었다. 59세에 휴가를 얻어 귀향한 후 관직을 사임하고 ≪송계원명리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을 저술했다.
60세에 고봉 기대승(奇大升)과 편지로 사단칠정론(四端七情)을 변론했다. 도산서당(陶山書院)이 완공된다. 61세에 <도산기(陶山記)>를 저술했다. 64세 2월에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의 발문을 썼으며 65세에 ≪경현록(景賢錄)≫, ≪역학계몽(易學啓蒙)≫, ≪명당실어(名堂室語)≫ 등을 저술했다. 66세에 공조판서와 홍문관·예문관대제학에 제수되었고, 다음 해인 67세에 다시 예조판서, 경연춘추관사로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8월에 귀향, 역동 서원(易東書院)을 새로 건축했다.
68세에 선조 원년 의정부우찬성과 판중추부사에 제수되자 6월에 소명을 어기지 못해 상경해 양관의 대제학을 겸임했다. 재임 중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저술했다. 69세(1569)에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귀향했다. 70세 7월 역동 서원에 가서 ≪심경(心經)≫을 강의하고, 8월 역동 서원의 낙성식에 참여했다. 11월 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을 개정하다 병이 심상치 않자 12월 봉화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큰아들을 사직, 귀가하게 해 장례 준비를 갖추도록 했다.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 명문(銘文)과 자명(自銘)을 몸소 짓고, 임종 직적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과 함께 한서암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영의정에 추서되었다. 접기
최근작 : <성학십도>,<아들에게 쓴 퇴계의 편지 3 분수를 넘지 마라>,<아들에게 쓴 퇴계의 편지 2 국법은 지엄한 것이다> … 총 67종 (모두보기)
고산 고정일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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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출생. 성균관대학교국문학과졸업. 성균관대학교대학원비교문화학전공졸업. 任昌淳泰東고전연구소 수학. 소설 《청계천》으로 《자유문학》 등단. 동서문화사 창업 발행인. 1977~87년 동인문학상운영위집행위원장. 1996년 《한국세계대백과사전 총31권》 편찬주간. 지은책 대하소설 《매혹된 혼 최승희》 《불과 얼음 장진호》 《전작소설 이중섭》 《한국출판 100년을 찾아서》 《愛國作法‧新文館 崔南善‧講談社 野間淸治》 《망석중이들 잠꼬대》 《춘원이광수 민족정신 찾아서》 옮긴책 《오륜행실도》 이이 《성학집요》 《격몽요결》, 이익 《성호사설》, 이순신 《난중일기》 한국출판학술상수상 한국출판문화상수상 아동문예상수상. 접기
최근작 : <꿈을 심어 주는 독서 고등학교 1>,<꿈을 심어 주는 독서 중학교 1>,<꿈을 심어 주는 독서 초등학교 4학년 2> … 총 35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엄격 부단한 정신도야, 고매한 인품, 깊은 사상
한국 사상 근간 학문의 창성자 이황
퇴계 학문 사상의 진수를 집대성!
민족의 나아갈 길 밝혀준 한국인의 스승
우리나라에서 성리학의 발달은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을 통해 최고봉에 이르렀으며, 퇴계의 학문과 덕행 또는 문장은 실로 위대한 경지에 도달했다. 퇴계의 학문, 덕행 및 유풍은 그 크기와 규모 영향력에서 한국 역사상 으뜸이며 유림계의 태산이요, 북두성 같은 존재로서 수많은 유림의 사표이며 그 가운데서 크게 빛나고 있다. 주자학 사상에서 보면 동양에서 주자 이후로 제1인자인 것이다.
퇴계 이황은 조선 유림들이 태산북두와 같이 존경하고 사모하여 마지않는 명현(名賢)으로 길이길이 이 민족이 지켜 나갈 길을 밝혀 주는 스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직 문화의 불모지였던 이웃 일본에도 그 높은 학풍을 전해주었던 것이다. 이황은 참으로 조선 이후 우리나라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학문의 창조자가 아닐 수 없다.
퇴계의 고매한 인품, 깊은 사상이 담긴《자성록》
《자성록》은 퇴계가 자신의 사상적 원숙기라고 할 수 있는 55∼60세 때까지의 시기에 문인들에게 보낸 서간 가운데서 수양과 성찰에 도움이 되는 편지 22통을 모아 직접 편집한 책이다.
퇴계는 성학을 배우는 초학자들의 공통적인 심기(心氣)의 병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초학자들의 병은 아직 이(理)를 통찰함이 투철하지 못해서 천착하여 억지로 탐구하고, 마음 가지는 방법에 어두워 조급히 서두르는 데 있다. 정유일과 권호문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성학을 배우는 기본자세를 전반적으로 설명한다. 뜻을 세우고 학문하는 근본과 말단을 알며, 서로 도와 참을성 있게 공부하여 인(仁)과 지(智)를 추구하라는 것이다. 또한 ‘독서’, ‘마음을 붙잡아두고 기르며 공경하는 마음속에 머무름’, ‘잘잘못을 살피고 이치를 탐구함’ 등을 다루며, 얕은 지식을 쌓아 헛된 꿈에 사로잡혀 명성에 집착해서는 안 됨을 강조한다.
《자성록》 한 권만 연구해도 그 속에서 참으로 많은 철학적 사상과 학문적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거기에는 성학을 배우는 초학자들의 공통된 병을 고치는 처방, 학문하는 기본자세, 거경궁리의 방법, 세상을 속이고 명예를 훔치는 데 대한 준엄한 경계 등이 있으며, 이러한 내용들은 학자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가장 친절하고 신뢰할 만한 안내자가 된다. 또한 엄격하고도 부단한, 퇴계의 학문하는 정신과 고매한 인품, 깊은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퇴계의 《언행록》을 후인들은 공자의 《논어》에 비유한 바 있거니와, 이러한 비유를 확대한다면 《자성록》이 《가어(家語)》와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매화향처럼 깨끗하고 고결한 품격의 책《퇴계 언행록》
퇴계는 그 언어와 행실에서 지극히 겸손하고 발라서 무릇 세인의 모범이 되었다. 그의 매화향처럼 깨끗하고 고결한 품격을 책으로 썼으니 그것이 바로 《퇴계 언행록》이다.
《퇴계 언행록》은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숙종 때 권두경(權斗經:1654∼1726)이 편찬․간행했는데, 나중에 중간된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간행연대는 알 수 없다. 저자는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영남학파의 거두인 이현일(李玄逸)의 문인이다. 책머리에는 목록에 이어 차기제자목록(箚記諸子目錄)이 있다. 목록에 수록된 인물은 김성일․권호문․김부륜․정구․조목 등 거의 퇴계의 제자들이며, 이이․유희춘도 있다.
권1은 학문․공경․덕성을 말한다. 권2는 자질과 절도, 몸가짐을 말한다. 권3은 벼슬살이와 향리 생활을 말한다. 권4는 이(理)와 기(氣), 예(禮)를 말한다. 권5는 바른 학문 바른 인생을 말한다. 권6은 경(敬)․의(義)․지(知)․행(行)이 하나로 관통했던 일생에 대해 말한다.
퇴계 유학 사상의 진수!《성학십도》
‘성학’이란 곧 ‘유학’을 의미하고, 그 유학 중에도 특히 ‘성리학’을 일컫는다. 유학 또는 성리학을 굳이 성학이라 일컫는 까닭은 이 학문이 곧 ‘성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갖춘 학문’임을 자부하는 데 있다. 그리고 특히 임금에 대하여는 ‘성왕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갖춘 학문’임을 강조하려는 데 있다.
《성학십도》는 퇴계 유학 사상의 진수를 빠짐없이 드러낸 가장 중요한 저작이다. 퇴계는 68세 때, 일생동안 쌓아올린 학문적 지식을 쏟아 마지막 봉공(奉公)의 정성을 다하여 임금께 《진성학십도차》를 올린다. 그런 만큼 《성학십도》는 퇴계의 가장 원숙한 말년의 사상의 전모가 일목요연하게 압축 요약되어 있는 것이요, 그의 심혈을 경주한 대표적인 명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은퇴한 퇴계가 국가에 바친 만년 충절의 일단이기도 하다.
제1도는 도와 도설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며, 제2도에서 서명은 장재의 글이고, 도는 정임은의 작품이다. 제4도에서 본문은 주자의 《대학경》 일장(章)이고, 도는 권근의 작품이다. 제5도에서 규약은 주자의 글이고 도는 이황의 작품이며, 제6도에서 상도(上圖) 및 도설은 정임은의 저작이고 도는 이황의 작품이다. 제7도는 도 및 도설이 모두 정임은의 저작, 제9도에서 잠은 주자의 말이고 도는 왕노재의 작품이며, 제10도에서 잠은 진남당의 말이고 도는 이황의 작품이다. 이들 유학사상의 정수들의 집약은 퇴계가 독창적으로 배치하여 서로 유기적으로 관련됨으로써 생명 있는 전체적 체계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지성의 찬란한 금자탑《논사단칠정서》
《논사단칠정서》는 퇴계 철학의 진수가 담긴 서한집으로, 고봉 기대승과 ‘사단칠정’의 발현 문제를 둘러싸고 벌인 논쟁을 담은 퇴계의 대표 걸작이다. 퇴계와 기대승의 14년에 걸친 철학적 논란은 성리학사상 한국 지성의 찬란한 금자탑이다.
사단은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각각 인(仁)․의(義)․예(禮)․지(智)․심(心)의 착한 본성에서 발로되어 나오는 정감이다. 측은지심은 타인의 불행을 아파하는 마음, 수오지심은 악한 일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 사양지심은 윗사람에게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은 선악시비를 판별하는 마음이다. 칠정은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의 일곱 가지 감정으로서, 인간 심리의 숨김없는 현 실태를 총칭한 것이다.
퇴계는 사단은 이의 발이요, 칠정은 기의 발이다(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며 둘을 따로 떼어 생각했는데, 그 주장에 기대승이 반론을 펼치며 논쟁이 시작된다. 이에 따라 퇴계는 자신의 이론을 몇 차례에 걸쳐 수정하여, 사단은 이가 발해서 기가 따르고, 칠정은 기가 발해서 이가 탄다(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고 주장한다. 이렇게 시작된 사단칠정에 관한 논쟁은 성혼과 이이를 거쳐 한말에 이르기까지 한국 성리학 이론 논쟁의 중요 쟁점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논구로 사단칠정론 중심의 한국 성리학의 심성론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향상되어 중국 성리학을 능가하게 되었다.
퇴계의 격조 높은 시(詩) 세계
퇴계의 도학에 대한 열성은 시작(詩作)으로 이어졌다. 그의 시들은 실천궁행하는 도학자로서의 삶이 생활 속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시에는 드높은 인품이 배어 있어 선비로서의 고고한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퇴계는 자연을 음송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자연에 의지하여 우주의 심원한 이치를 드높은 운치로 읊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생활의 소회(所懷)를 느끼고 생각나는 대로 그리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퇴계의 시는 그 자신의 도학으로 수양함으로써 우러나온 격조 높은 시정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는 때로는 도산(陶山)에서, 동암(東巖)의 바위 위에서, 아니면 병상에서 느끼는 갖가지 생각들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가고 있다.
퇴계는 자연과 더불어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고자 했다. 그래서 유난히도 산수시를 많이 남겼다. 초야에 묻혀 살면서 세속의 찌든 때를 씻고자 했고, 그리하여 도학자로서의 기풍을 잃지 않고자 했던 것이다. 퇴계는 선비이자 대학자요 순수하고 깨끗한 기품을 지닌 시인이었다.
이 책에는 두고두고 새겨 읽을 만한 퇴계의 시 33편을 실어, 독자들이 선인의 탁월한 삶의 지혜를 깨우칠 수 있도록 했다.
<무진육조소>의 퇴계 정치사상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는 총 7400자로 된 긴 소문이다. 이는 퇴계 이후 물러나는 대신이나 물러간 재야 유신들이 국왕에게 정책이나 의견을 개진하는 길을 가르쳐 준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왕통 승계의 법통을 중히 여겨서 어질게 효도를 다하여 모실 것. 둘째, 간사한 무리의 참언을 막고, 왕실의 자전과 본생 친가 부모 양궁(兩宮:생가와 양가인 왕가)을 친근하게 해서 사이를 좋게 유지할 것. 셋째, 제왕학(帝王學:임금이 갖추고 있어야 할 학문)을 공부하여 치국의 근본을 확립할 것. 넷째, 도덕과 학문을 밝히고 인심을 바르게 이끌 것. 다섯째, 임금의 속마음을 잘 알아차리는 인물을 골라서 귀와 눈이 바르게 보고 들을 수 있게 할 것. 여섯째, 지성스럽게 자신을 반성하고 수양을 거듭하며, 하늘의 사랑(하늘이 백성을 사랑하는 자애)을 받들 것.
무진육조소는 선조에게 사람으로서 누구나 갖추어야 할 기본 자질과 전통적으로 가르쳐 온 성학(聖學:제왕학)을 정밀하고 쉽게 설명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에 남을 다스리는 법도를 가르친 것이다. 퇴계는 어디까지나 본연의 자세와 심성의 근본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정치를 해야 하는 요체와 방도를 설명했다. 이렇듯 퇴계는 학자든 임금이든 성학에 근본을 두어 그 전통을 지키며, 성현을 스승으로 삼고 인효와 인륜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아뢴 것이다.
퇴계의 소(疏)를 본 선조는 감격해서 다음과 같이 치하했다.
“경의 도덕은 옛 성현의 자질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그 윤리 또한 어질고 깨끗하오. 무릇 이 육조는 진실로 천고의 격언이오니 당장 지금이라도 시급히 힘쓸 것이오. 내 어찌 감히 가슴에 새겨서 지키지 않으리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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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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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또 보며 익히고 깨우쳐야 한다. 비록 성인이 될 수 없을지라도.
Superunknown 2015-11-14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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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체계적인 이해를 가능케 하는 명저
우왕 2014-01-21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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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의 삶을 자성록, 언행록등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 같다.
거북이 2011-12-03 공감 (0) 댓글 (0)
마이리뷰
퇴계 이황의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 자신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교훈)
닭이 울어 잠이 깨면, 이런저런 생각이 차차 일어난다. 어찌 그동안 고요하게 마음을 정돈하지 않으리오. 때로는 과거의 허물을 반성하며, 때로는 새로 깨달은 것을 생각해 내어, 차례로 조리를 세우며 분명하게 이해하여 두라.
근본이 서면 새벽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빗질하고 의관을 단정히 하고 안색을 가다듬고 나서, 이 마음 이끌기를 마치 돋아 오르는 해와 같이 밝게 하라. 엄숙하고 가지런하며, 마음을 허명정일(虛明靜一 : 마음을 텅 빈 듯하면서도 밝고 고요하게 한결같이 하는 것)하게 가질 것이다.
이때 책을 펴서 성현들을 대하면, 공자께서 자리에 계시고, 안자와 증자가 앞뒤에 계실 것이다. 성현의 말씀은 친절히 경청하고, 제자들의 물음은 반복하여 참고하고 바로잡아라. 일이 생겨 곧 응하게 되면, 곧 가르침을 실천으로 시험해 보아라.
천리(天理)는 밝은 것, 언제나 눈을 여기에 두어라. 일에 응하고 나면, 곧 나는 예전의 나대로 되어야 한다. 마음(方寸)을 고요하게 하여 정신을 모으고 잡념을 버려라. 동(動)・정(靜)이 순환할 때에 오직 마음만이 이것을 볼 것이니, 고요할 때는 보존하고 움직일 때는 살펴서, 마음을 두 갈래 세 갈래로 나누지 마라. 글을 읽다가 여가를 틈타서 간간이 쉬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성정을 길러라.
날이 저물고 권태로워지면, 어두운 기운이 쉽게 타고 들어온다. 재계하고 정제하여 정신을 명랑하게 하여라. 밤이 깊어 잠들 때에는, 손을 가지런히 하고 발을 모으라. 잡생각을 하지 말고 심신이 자리 잡고 머무르게 하라. 야기(夜氣 : 낮 동안 잃었던 양심이 밤사이에 소생됨을 말함.)로써 길러 나가라. 정(貞)하면 원(元)에 돌아오니,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여기에 마음을 두어 밤낮으로 쉬지 않고 부지런히 힘쓰라.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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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향기 2016-01-10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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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록/언행록/성학십도
이이 선생의 스승, 퇴계 이황. 그 학문의 깊이와 품성의 방정함과 임금에 대한 존경심과 애민 정신 무엇 하나 빠뜨릴 게 없는 학자 중에 학자, 실천적 학자이다. 이이와 더불어 한국에 내노라 하는 학자인 것이다. 중국, 일본 등에서는 이미 그의 학문의 깊이를 이해하고 인정하였지만 정작 우리는 명성만 알지 배움이 짧았다. 마침 기회가 되어 너무나 기쁘다. 중국에서는 1920년즈음 상덕여자대학에서 <성학집도>를 간행할 때 그 끝에 붙였다. 높디 높으신 우리 이 선생님/예를 잇고 후세 열어 고금을 꿰뚫으셨습니다./열 폭 그림으로 이학요결 전하시어/백세에 길이 길이 성인 마음 펴시었습니다./학문과 예술은 주자를 따르시었고/우주관과 깨끗하심은 주렴계에 비기겠습니다./높은 성덕 넓은 교화가 삼백 년 뒤 오늘까지 미쳤으니/ 온 세상 인류들이 뉘 아니 공경하오리까! 하였다. 특히 성학집도는 가히 그림에 모든 학문과 삶은 다 담아내는 엄청난 학문의 깊이와 익히기 좋게 요약하는 지혜와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응용능력을 두루 갖춘 천재 중에 천재라고 볼 수 있다.
이황에 아쉬운 것은 조선의 혼란기에 살았다는 것이다. 학문과 실천적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한국 사회에 엄청난 손해인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가 정치에 깊이 관여 했다면 그의 작품들은 많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황의 가난 속에서도 물욕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기개를 당당하게 지켜 왔으며 혼란기에 뇌화부동하지 않고, 정치에 휩싸이지도 않고 자신만의 길을 곳곳이 갔다. 학문 사랑, 친구 사랑, 약자 사랑, 미련한이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학자였다. 논어에 미련한 자를 친구로 하지 말라는 말에 이황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달리 해석하면서 악한 자를 멀리할게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으라고 하고 있다. 배척하고, 외면하는 외골수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모든 사람과 관계하며 변화시켜 보려는 학자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정도의 학문의 깊이 있으면 교만하거나, 무시하는 마음이 있을만도 한데 전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으니 참으로 기이하다.
5세에 천자문을 익히고 배운 것을 자랑하며 크게 떠드는 모습을 보고 그의 어머니가 후실 자식이 배우지 못하여 무시당하니 더욱 학문에 정진하고 조금 배운 것으로 자랑이나 하는 소인배가 되지 말라는 따금한 충고가 평생을 겸손하게 만들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자연 사랑의 성품이 있어 자연 속에서 살기를 좋아 했고, 수많은 시들이 거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작품들이다. 감성이 풍부하여 많은 시를 남겼다. 그 중에서 소나무를 읊는다. 돌 위에 자란 천년 묵은 불로송/검푸른 비늘처럼 쭈굴쭈굴한 껍질이 마치 날아 오르는 용의 기세로다/까마득한 절벽 위에 우뚝 자라난 소나무/높은 하늘 쓸어낼 듯 험준한 산봉우리 찍어 누를 듯/본성이 본디 울긋불긋한 사치를 싫어하니/복숭아꽃 자두꽃 저절로 아양떨게 내버려두며/뿌리 깊이 현무신의 기골을 키웠으니/한겨울 누 서리에도 까딱 없어라
나의 작품
거송(巨松)
거송(巨松)/너는 대장부/너 뭐 그리 잘났다고 높이 서있노/너 뭐 그리 많이 안다고 손들고 있노/너 뭐 그리 잘한다고 얼굴 내미노/
잘나서 그런 게 아니라네/내 먼저 알았기에 바람 맞고/내 먼저 체험했기에 때양 볕 쬐고/내 먼저 받았기에 나눠주러 가는 중이라오
남 몰라줘도 나는 일어서리/남 흉보아도 나 말하리/남 비난해도 나 전하리
거송(巨松)/너는 대장부/나도 너처럼/장부(丈夫)되리!
(바로 이황 같은 분이 아닐까? 이황 선생을 생각하며 지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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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특기생 2013-06-1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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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자성록 언행록 성학십도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쁠*끄 | 2023-05-23
원문주소 : https://blog.yes24.com/document/18021461
동서문화사에서 발간한 퇴계 이황 님의 <자성록, 언행록, 성학십도> 리뷰입니다.
굉장한 책이네요. 역자 이력도 대단하시고요!
퇴계 이황님의 사상과 학문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사상의 원숙기에 쓴 편지를 엮어 편집한 자성록, 바른 언어와 행실의 품격을 담은 퇴계 언행록, 성리학을 이해할 수 있는 성학십도.
사실 내용이 내용인 만큼 다 읽어내려면 지겹기도 하지만
지폐에도 들어가고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퇴계 이황님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가치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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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조선 최고 유학자의 명저를 묶은 책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M*********n | 2020-08-08
원문주소 : https://blog.yes24.com/document/12839409
대한민국에 살면서 이황이라는 인물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가 쓴 책을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은 드물다.
나 또한 학창 시절부터 그의 이름을 자주 들었지만 그의 책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다.
최근 같은 출판사 동서문화사에서 번역한 이이의 성학집요를 읽은 적이 있다.
그가 왕에게 올린 충성스러우며 직설적이고 단호한 글을 보고 조선시대 유학자이자 선비인 그에게 감동을 받았다.
동서문화사에서 이황의 책도 번역하였기에 주저함이 없이 이 책도 구입했다.
단지 아쉬운 것은 최근 동서문화사에서 사상전집이라고 해서 양장이 아닌 페이퍼백으로 만원 정도의 가격에 시리즈를 팔고 있는데, 이 책과 이이의 책은 그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이이도 이황도 모두 조선시대 주자학에 깊은 영향을 받아 그의 사상적 범위나 융통성에 한계가 있었지만, 그 단일 사상을 깊게 연구한 것으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이와 함께 제대로 된 왕위 교육과정을 밟지 못한 선조를 위해 유학의 정수를 뽑아 올린 그의 성학집도는 조선시대, 그리고 이황의 사상적 품격을 대변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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