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8

나카에 도주(中江藤樹) 엄상익 2021

나카에 도주(中江藤樹)


나카에 도주(中江藤樹)

‘감옥 바깥에 있는 또 다른 감옥은 세계를 집어넣을 만큼 넓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책을 통해 저 세상으로 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많은 인물들을 만났다. 우연히 일본의 역사 속에 숨어 있던 '나카에 도주(中江藤樹)’라는 사람을 만났다. 일본의 영주들이 치열하게 싸우다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막부가 들어선 지 얼마 안 된 천육백팔년 그가 태어났다. 그 시대 젊은 남자들의 주된 일은 전투였다. 우연히 공자의 ‘대학(大學)’을 본 그는 새로운 경이의 세계를 발견했다.
  
  ‘이런 책이 있었다니 하늘에 감사드린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공자의 책들을 전부 힘들게 구했다. 책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자신의 보물이 된 그 책들에 빠져들었다. 사무라이의 본분이 무예이던 그 시절 그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싸움질만이 사무라이가 할 일이 아니야. 사무라이가 평시에 해야 할 일이 있어. 머리가 비어있는 사무라이는 그저 물건이나 노예에 지나지 않아.’
  
  그는 사무라이의 혼(魂)같이 귀하게 취급하는 검(劒)을 팔고 행상꾼이 되어 여기저기 세상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자기 초라한 집으로 돌아와 명상을 하면서 내면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내면은 바깥세계보다 더 넓고 귀중한 무엇이 있는 것 같았다. 일을 하고 책을 보고 명상을 하면서 그는 여러 해에 걸친 은둔생활을 했다. 가까운 이웃사람이 자기 집에 찾아오면 자기가 깨달은 몇 마디를 해줄 뿐이었다.
  
  그 무렵 한 청년이 마을의 시골여관에 묵게 됐다. 그는 스승으로 존경할 만한 인물을 찾아 전국 곳곳을 다니는 중이었다. 그가 우연히 여관의 옆방에서 일어난 일을 목격하게 됐다. 옆방에는 주군의 명령으로 수백 냥의 돈을 맡아가는 사무라이가 있었다. 그는 돈을 품 속에 넣은 채 한시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그런데 그 마을로 들어온 날 하필이면 숙소에 도착해서 말안장에 묶어놓은 돈전대를 깜빡잊고 마부와 함께 그냥 보내고 만 것이다. 마부의 이름도 모르니 찾기가 불가능했다. 그 마부를 찾아도 벌써 감추거나 써버렸을지도 몰랐다. 그 사무라이는 한밤중까지 고민하다가 마침내 자결을 결심했다. 그게 당시 사무라이의 윤리였다. 그때 숙소의 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돌려보낸 마부가 찾아온 것이다. 마부는 그에게 돈이 든 전대를 주었다. 사무라이가 마부에게 보상을 하려고 했으나 마부는 단호히 거절하면서 말했다.
  
  “제가 사는 마을에 ‘도주’라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들은 그 분에게 배웁니다. 그 분은 돈을 얻는 것만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정직이 인생을 사는 올바른 길이라고 가르치십니다. 마을 사람 모두 그 분의 가르침을 받고 삽니다.”
  
  스승을 찾아 헤매던 청년은 무릎을 치고 도주를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나카에 도주의 유일한 제자가 됐다. 그리고 후일 그 청년은 일본의 행정과 재정을 담당하는 큰 관리가 되어 개혁에 영향을 끼쳤다. 일본은 그런 인물들을 자세히 기록한 책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근대 일본의 신앙인이자 철학자인 우치무라 간조는 ‘인물 일본사’라는 책에서 막부시대 마을에서 조용히 은둔생활을 했던 ‘도주’라는 인물에 대해 이렇게 평을 했다.
  
  ‘도주의 내면에는 거대한 왕국이 있었다. 그는 구십 퍼센트의 영(靈)과 십퍼센트의 육(肉)으로 되어있는 사람 같다. 기존 공자의 경전을 과감하게 자기 식으로 해석했다. 그가 살았다면 이단(異端)으로 처벌받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가에 도주라는 인물이 어떤 말을 했는지 찾아보았다. 이런 게 있었다.
  
  ‘감옥 바깥에 있는 또 다른 감옥은 세계를 집어넣을 만큼 넓다. 그 사방의 벽이 명예, 이익, 욕망에의 집착이다. 서글프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 갇혀 끊임없이 신음하고 있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계곡이나 산골짜기나 이 나라 가는 곳마다 성현(聖賢)이 있다. 단지 그 사람들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므로 세상이 모를 따름이다. 그들이 참된 성현이다.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은 그들 참된 성현의 발바닥에도 이르지 못한다.’
  
  책 속에는 위대한 성현이나 철학자 문학가들이 있었다. 나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를 만나기도 했다. 나카에 도주도 책을 통해 공자를 만났던 것 같았다.
  
[ 2021-06-07, 08:4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