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무료 백과 사전 "Wikipedia (Wikipedia)"
대일본 보덕사 의 정문( 시즈오카 현 가케가와시 ). 왼쪽의 문 기둥 에는 「경옥문」, 오른쪽의 문 기둥에는 「도덕문」이라고 새겨져 있어 보덕사상이 설하는 경제와 도덕의 조화 를 표현 하고 있다
보덕사상 (호토쿠시소)은 니노미야 존덕이 전파한 경제사상 , 경제학설 .
개요 [ 편집 ]
경제 와 도덕 의 융화를 호소하고 사리 사욕에 달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공헌하면 어느 쪽 스스로 환원된다고 설. 사탕 속의 물에 비유하는 경우도 많다. 공익사단법인 인 대일본보덕사 와 전국 지역, 직역마다 있는 보덕사 (공익사단법인)가 중심이 되어 보급활동에 노력하고 있다.
보덕의 가르침 [ 편집 ]
보덕의 가르침이란 니노미야 존덕이 독학으로 배운 신도 · 불교 · 유교 등과 농업 의 실천에서 짜낸 풍부하게 살기 위한 지혜 이다. 신불 유를 궁극적으로는 하나에 이르는 다른 길 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리매김하고, 신불 유 각각의 개념을 자유롭게 조합해 설설되고 있다. 따라서 보덕의 가르침을 보덕교라고 부르는 것이 있어도 그것은 종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보덕의 가르침의 중심 개념은 극 이다. 이 대극에 따른 실천을 한다는 것이 보덕교의 근간을 이룬다. 니노미야 존덕은 이 대극을 『3세 보덕 금모록』 속에서 엔을 그려서 하고 있다. 이 엔을 나누는 것으로, 천지· 음양 등의 구별이 잘 된다. 즉, 대극이란, 모든 것이 미분화된 상태, 일종의 혼돈 상태를 말한다.
대극은 항상 거기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무엇을 하든 항상 대극과 함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우리이기 때문에 항상 대극과 어떤 관계를 취해야 한다. 거기에서 대극에 대해 적극적으로 향하는 자세인 천도 와 대극으로 소극적으로 향하는 인도의 구별이 태어난다.
존덕은 천도에서만 살아가는 마음을 자세를 도심 이라고 부르고, 인도를 따라 사는 마음을 인심이라고 불렀다. 도심이란 하늘의 이리에 따라 사욕을 버리고 사는 것이다. 인도와는 욕심에 사로잡힌 마음이며, 원하는 만큼 만들지 않는다. 마음이 인도에 갇힌 상태에 있는 한 인간은 풍성해질 수 없다. 도심에 걸친 생활 방식을 하고, 처음으로 사람은 진정한 풍요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심에 걸친 삶의 방식이 어디까지나 실리적·실용적으로 설득되고 있는 곳이다. 도심은 그것이 선이기 때문에 등의 도덕적 인 이유로 선택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보덕교는 단순히 인심에 순종하면 쇠약해지고, 도심에 순종하면 번성한다는 도리를 설득할 뿐이다 .
지성·근로·분도·추양 [ 편집 ]
도심에 따른 마음의 상태를 보덕교에서는 성이라고 부른다. 이 마코토는 유교에서 말하는 덕과 인 이라는 개념과 같다. 즉, 대극에 대해 적극적으로 향해 가는 생활은 우선 성실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대극과 적극적으로 관련시키는 상태, 즉 성·덕·인의 상태에 두는 것을 「지성(시세이)」이라고 하며, 지성이 우선 실천 의 제일을 이룬다.근로
이 지성의 상태로 일상생활의 모든 선택을 해 나가는 것을 「근로」 라고 한다. 지성이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에 비해, 근로는 그것이 행동이 되어 나타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근로란 일하는 것을 포함하지만 단순히 일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분도
근로함으로써 일상의 모든 행동이 성의 상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그것은 소비활동에도 나타난다. 낭비가 없어져, 사치를 스스로 신중하게 된다. 이것을 「분도(부도)」라고 한다. 즉, 분도와 빗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으로부터 근로한 결과에 자연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것만을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추양
그리고 마지막으로 분도하여 남은 잉여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을 '추양'이라고 한다 . 분도와 마찬가지로 추양은 단순한 증여가 아니라 지성·근로·분도의 결과로 남은 것을 양보하고 처음으로 추양이 되는 것이다.
실천으로서의 보덕의 가르침 [ 편집 ]
이상과 같이, 도심을 세운 결과로서, 지성·근로·분도·추양을 실시해 가는 것으로 처음으로 사람은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풍부하게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보덕교의 근본적인 논리이다. 여기서 논리라고 할 때, 그것이 가르침 자체가 아니라는 점에 주의가 필요하다. 보덕의 가르침의 진수란, 이러한 지성·근로·분도·추양의 실천 속에서 어떻게 덕이 덕에 의해 보상되어 가는가를 파악하는 것에 있다. 이 실천 속에서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화할 수 없는 것이야말로 보덕의 가르침의 진수가 있어, 존덕이 「보이지 않는 경을 먹는다」라는 말로 나타내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또 존덕이 단지 책을 읽는 것만으로 실천에 이르지 못하는 태도를 가리켜 '단순한 책 읽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도 같은 사정에 의한 것이다.
참고 문헌 [ 편집 ]
코다마 코타 책임 편집편「니노미야 존덕」중앙 공론사〈중공 벅스 일본의 명저 26〉, 1984년 4월. ISBN 4-12-400416-8 .코다마 유키타 「인간과 대지와의 대화」
도미타 타카케이「보덕기」
후쿠즈미 마사오 "니노미야 쇼야 이야기"
니노미야 존덕 「3세 보덕 금모록」・마법 관계 제편・서간・일기
니노미야 존덕구 술저, 와타나베 편역 편 『니노미야 쇼야화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토모에의 말 현대어 초역』후쿠즈미 마사오 형 필기, PHP 연구소, 2005년 2월. ISBN 4-569-64087-7 .
이시구로 타다 아츠 덴 하시모토 덴 사에몬 · 일본 농업 연구소 이와나미 서점 1969 년
일본 헌법이란 무엇인가 야기 히데지 PHP 연구소 2003년 ISBN 9784569628394
관련 인물 [ 편집 ]
관련 항목 [ 편집 ]
근로의 의무 ( 일본국헌법 ) - 보덕사상과의 관련성이 알려져 있다 [1] 가, 당시의 일본 사회당이 타카노 이와사부로 등의 헌법연구회 의 헌법초안요강을 참고로 제안하고 이 의무 규정이 추가되었을 수도 있다 [2] .
보덕학원 중학교·고등학교 - 보덕사상의 실천자였던 오에시마츠 가 창립했다. 덕을 통해 덕에 보답하는 일원융합의 합의 정신을 바탕으로 휴머니즘 풍부한 개성 있는 인간형성을 본교의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보덕사
개신교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
플러그 마티즘
각주 [ 편집 ]
[ 각주 사용법 ]
^ 이시구로 타다 아츠 덴 하시모토 덴 사에몬 · 일본 농업 연구소 이와나미 서점 1969 년
↑ 일본국 헌법이란 무엇인가 야기 히데지 PHP 연구소 2003년 ISBN 9784569628394 p167-168
외부 링크 [ 편집 ]
「니노미야 옥야화」현대어 신번역(의역) - 웨이백 머신 (2011년 11월 23일 아카이브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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報徳の教え[編集]
報徳の教えとは、二宮尊徳が独学で学んだ神道・仏教・儒教などと、農業の実践から編み出した、豊かに生きるための知恵である。神仏儒を究極的には一つにいたる異なる道に過ぎないと位置づけ、神仏儒それぞれの概念を自由に組み合わせて説かれている。そのため報徳の教えを報徳教と呼ぶことがあってもそれは宗教を意味するものではない。
報徳の教えの中心的概念は大極である。この大極にそった実践を行うということが報徳教の根幹をなす。二宮尊徳はこの大極を『三才報徳金毛録』のなかで円を描くことによってしめしている。この円を分けることにより、天地・陰陽などの区別がうまれる。つまり、大極とは、すべてのものが未分化な状態、一種の混沌状態をさす。
大極はつねにそこにあるものであるため、人間が何をしようがつねに大極とともにある。しかしながら、人間は我であるため、つねに大極と何らかの関係をとらなければならない。そこから大極に対して積極的に向かう姿勢である天道と大極に消極的に向かう人道の区別が生まれる。
尊徳は、天道にのみそって生きるこころ構えを道心と呼び、人道にそって生きるこころを人心と呼んだ。道心とは、天の理にそって、私欲を捨て生きることである。人道とは我欲にとらわれた心であり、欲するばかりで作ることがない。心が人道に囚われた状態でいる限り人間は豊かになることができない。道心にそった生き方をして、初めて人は真の豊かさを実現できるのである。
ここで重要なのは、道心にそった生き方というのが何処までも実利的・実用的に説かれているところである。道心は、それが善だからなどの道徳的な理由で選択されるべきものなのではない。報徳教は単に、人心に従えば衰え朽ち、道心に従えば栄えるという道理を説くに過ぎないのである。
至誠・勤労・分度・推譲[編集]
- 至誠
道心にそったこころの状態を報徳教では誠とよぶ。この誠は儒教で言うところの徳や仁という概念に等しいものである。つまり、大極にたいして積極的に向かっていく暮らしとは、まず誠を尽くしたものでなければならない。我の心を大極と積極的にかかわる状態、つまり誠・徳・仁の状態に置くことを「至誠(しせい)」とよび、至誠がまず実践の第一をなす。
- 勤労
この至誠の状態で日常生活のすべての選択を行っていくことを「勤労(きんろう)」とよぶ。至誠がこころの状態をさすのに対し、勤労はそれが行動になって現れた状態をさすのである。そのため、勤労とは働くことを含むが単に働くことをさすのではない。
- 分度
勤労することで日常のすべての行動が誠の状態から行われるため、当然それは消費活動にも現れる。無駄がなくなり、贅沢を自ずから慎むようになる。これを「分度(ぶんど)」という。つまり、分度とはけちをすることではなく、至誠から勤労した結果に自然と使わざるをえないもののみを使うということを意味する。
- 推譲
そして、最後に分度して残った剰余を他に譲ることを「推譲(すいじょう)」とよぶ。分度と同様に、推譲は単なる贈与なのではなくて、至誠・勤労・分度の結果として残ったものを譲ってはじめて推譲になるのである。
実践としての報徳の教え [編集]
以上のように、道心を立てた結果として、至誠・勤労・分度・推譲を行っていくことではじめて人は物質的にも精神的にも豊かに暮らすことができるというのが報徳教の根本的論理である。ここで論理というとき、それが教えそのものでないことに注意が必要である。報徳の教えの真髄とは、これらの至誠・勤労・分度・推譲の実践のなかでいかに徳が徳によって報われていくかということを見極めることにある。この実践のなかで初めて理解できる言語化できないものこそに報徳の教えの真髄があり、尊徳が「見えぬ経をよむ」という言葉で示しているのはまさにこのことをさす。また尊徳が、たんに本を読むだけで実践につながらない態度を諌めて「たんなる本読み」になってはいけないと語ったのも同様の事情によるものであ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