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남명 조식 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칼을 찬 유학자 - 한국사상가대계 6
이종묵,한형조,박병련,정순우 (지은이)청계(휴먼필드)2001-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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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쪽
책소개
남명 조식(1501∼1572)은 16세기 중엽 퇴계와 더불어 영남을 좌우로 가른 인물이지만, 퇴계에 비해 그동안 역사적 조명을 받지 못했다. 이는 인조반정을 계기로 북인이 몰락했던 정치적인 배경도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학문론' 자체에 기인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남명의 일대기보다는 학문론, 공부론, 정치론 등에 초점을 맞춰 그의 학문세계를 재조명하고 있다.
목차
책을 내면서
남명, 칼을 찬 유학자 / 한형조
1. 문헌부족징, 잊혀진 유학자
2. 시퍼런 칼날의 유학
3. 유협의 기질과 도학으로의 전기
4. 남명의 학문론(1) : 철학을 폐하라
5. 남명의 학문론(2) : 공부법
6. 남명 사상의 의미와 과제
남명의 공부론과 '처사'의 성격 / 정순우
1. 처사와 공부론
2. 공부론에 나타난 남명의 출처관
3. 경의의 공부론과 처사의 성격
4. 남명의 상달처와 처사의 성격
5. 결어
남명 사상에서의 도학과 정치 / 박병련
1. 서론
2. 유자 관료상 균열의 사상적 근원
3. 조선조 '유자관료'형의 변천
4. 새로운 '유자관료'형의 등장과 갈들
5. 남명 사상의 형성 배경과 보편적 도학주의에 대한 비판
6. 남명의 심법체계에서의 도학과 정치
7. 진정한 유자는 어떤 사람인가? - 도학적 경세가
남명 조식의 삶과 문학 / 이종묵
1. 서론
2. 삼가에서의 출생과 한양에서의 성장
3. 김해로의 낙향과 문학 활동
4. 삼가에서의 삶과 문학 활동
5. 만년의 덕산 생활과 문학 활동
6.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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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종묵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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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을 거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다. 옛사람의 운치 있는 삶을 사랑하여 우리 옛 시와 글을 읽고 그 아름다움을 분석하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조선 시대 경강의 별서』(전 3권), 『한시 마중』, 『부부』, 『우리 한시를 읽다』, 『조선의 문화 공간』(전 4권)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한국 산문선』(전 10권, 공역), 『누워서 노니는 산수』, 『부휴자담론』, 『사의당지, 우리 집을 말한다』, 『글로 세상을 호령하다』,... 더보기
최근작 : <한국문학개론 (조규익 외)>,<황화집과 황화수창>,<조선 사람이 좋아한 당시> … 총 99종 (모두보기)
한형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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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의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랐다. 부산의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불교로 동양학에 입문하여, 일상에서 구원을 모색하는 유학을 공부했다. 다산 정약용의 고전해석학(經學)을 다룬 "주희에서 정약용으로의 철학적 전환"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띠풀로 덮인 동아시아 고전의 옛길을 헤쳐왔다. 고전을 통해 삶의 길을 배우고, 문명의 비평적 전망을 탐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왜 동양철학인가>(2000...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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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련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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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관료제도사와 한국정치사상사를 전공하고,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명예교수 및 (사)남명학연구원 원장으로 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조교수, 부교수, 교수를 지냈으며, 한국학대학원 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원장 등을 역임했다. 밀양 초동에서 태어나 화재華齋 이우섭李雨燮 선생 문하에서 유학儒學을 배워 후송後松이란 호號를 받고, 또 벽사碧史 이우성李佑成 선생을 따라 묻고 배우며 남야南野란 호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한국행정학회 학술상(저술 부문)을 받은 『한국 정치... 더보기
최근작 : <점필재 김종직의 도학 다시보기>,<석실서원>,<한국정치.행정의 역사와 유교> … 총 21종 (모두보기)
정순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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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출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설 한국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버클리 대학교 및 캐나다 UBC 대학교 방문교수를 지냈으며, 파리 7대학 강의교수를 지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관장 및 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2013년 현재 한국학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후기 교육사와 지성사 분야에 관한 약 40여 권의 공저서, 100여 편의 논문이 있다. 조선조 선비들의 사유 방식과 삶의 태도를 다양한 시선으로 헤아려 보고, 그 현재적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고 ... 더보기
최근작 :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후조당 종가의 가문 세우기>,<우반동 양반가의 가계경영> … 총 23종 (모두보기)
오랜만에 만나는 강대하고 굳건한 정신
madwife 2015-12-24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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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車書在一無邪
부산에 내려 오기 전에는 남명 조식을 알지 못했다.그저 이름 정도만 들어본게 전부다.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에 비해 그의 이름은 전국구라 하기엔 좀 낯설다.하지만 서부 경남을 중심으로 남명 조식은 꽤나 알려져 있는 분이다.이 고장 아이들은 초등학교때부터 '우리 고장의 인물'로 남명 선생을 배웠을 것이다.그래서 진주나 산청 쪽으로 가면 평범한 농사꾼들 조차도 '남명 조식' 그러면 한마디 씩 거든다.안동쪽으로 가면 퇴계에 대해 사람들이 다 전문가처럼 이야기하는 것과도 비슷할 것이다. 퇴계 이황은 국사시간에도 국민윤리 시간에도 배웠다.또 일상생활에서도 언제든 만날 수 있다.지금 당장 지갑을 열면 그의 얼굴을 만날 수도 있다.하지만 퇴계와 동시대사람인 남명 조식은 어떠한가? 그는 성리학의 주류에서 비껴 서있었던 사람이다.또한 왕의 부름에도 끝끝내 벼슬자리를 마다했던 아웃사이더이다.그러므로 서부 경남을 제껴두고 나머지 지역 사람들에게 그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과 진배없다.나의 호기심은 그의 아웃사이더 기질과 이 동네 꼬맹이도 아는 사람을 나는 잘 모른다는 부끄러움에서 시작되었다.
남명 조식은 퇴계 이황과 같은해에 태어났다.한 사람은 경상 좌도에서 또한 사람은 경상 우도에서 그 학문을 떨쳤다.퇴계 이황이 조선 성리학의 태두로 이름을 떨친 반면 남명 조식의 학문은 후대로 크게 이어지지 못했다.대개 남명 조식의 학풍이 이어지지 못한 것을 광해군과 북인세력의 몰락에 두고 있다.잠깐 국사시간에 배웠던 당파 계보를 한번 기억해볼 필요가 있다.먼저 조선 개국 공신인 훈구파 부터 시작해야한다.개국 당시 혁명세력이었던 신진사대부들은 조선이 안정되면서 권문세가를 형성한다.이들이 훈구파다.그러다보니 왕은 이들을 견제할 세력이 필요했다. 여말 지방으로 숨어들었던 정몽주,길재들의 학풍을 이었던 선비들이 등장한다.이들이 사림들이다.사림 중흥의 핵심에는 조광조가 있다.하지만 조광조의 개혁은 하룻밤의 꿈으로 사라진다.그렇다 하더라도 사림의 정치 진출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선조 때가 되면 동인과 서인으로 사림이 분열한다.동인에서 이황계열인 서애 유성룡,김성일 같은 사람이 후에 남인으로 분류된다.남인 계열은 이후에도 야당세력을 형성한다.이수광,윤선도,정약용 이런 사람들이 남인의 계를 잇는다.반면 동인중 조식 계열로 임란후 광해군의 지원세력이 되는 북인세력이 있다.이들은 광해군때 잠시 빛을 보지만 그후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남명 조식의 학문이 세상에 가려진 것에는 이런 역사적 이유도 있다. 동인의 반대쪽에는 서인들이 있는데 이들 서인은 이이를 중심으로 한 기호세력이다.이들이 광해군의 북인정권을 몰락 시킨후 조선 말 세도정치가 벌어질 때까지 정권을 쥔다.서인 세력 역시 성리학적 대의명분을 앞세우는 송시열의 노론계열이 적자임을 자부한다.
남명 조식의 학문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남명 철학 자체에 있다고 한다.남명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형이상학에 대한 배격이다.그는 도를 세우는 길이 간명하고 단순하다고 생각했다.남명은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방법을 배격하고 오직 <마음의 자기조명>만을 강조했다.맹자가 말한 "학문하는 도는 다른 것이 없다.놓아 버린 마음을 구하는 것일 뿐이다"라는 것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이 마음을 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극기였고 경과 의의 실천이었다.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쇄소응대의 철학'-즉 손으로 물뿌리고 비질하는 실천하는 것이었다.남명은 이기담론에 몰두하는 것은 '당나귀 가죽에 기린의 형상을 뒤집어 씌운 것처럼'겉은 화려하고 풍성해 보일지 모르나 속은 볼품없이 초라하고 너절해다고 비판했다.또한 실천적 공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물건은 사지 않고 흥정만 하다 떠다니는'것 처럼 부질없는 짓이라고 비판했다.퇴계 이황은 상달의 세계-즉 도의 세계-에 중심을 두었던 반면 남명 조식은 하학의 세계-즉 일상의 세계-에 촛점을 맞춘 것이다.남명이 일상영역과 지행합일을 목소리 높여 외쳤기 때문에 양명학의 전통과 맥이 닿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있고 실학의 선구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양명학이나 법가의 전통에 닿아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학의 실사구시와 연결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처럼 보인다.
남명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과 의이다."경과 의를 함께 가지면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다.내짐에 이 두 글자가 있는 것은 마치 하늘에 해와 달이 잇는 것과 같다.만고에 걸쳐 바뀌지 않을 것이며,성현의 천가지 만가지 말쓴도 그 귀착하는 요점은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퇴계는 경을 성을 이루는 실천방법으로 설명하지만 남명에겐 겨의 실천을 위한 극기를 권한다.성과 경의 문제는 조금 형이상학적인 논쟁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하지만 남명이 말하고자하는 바는 경이란 스스로 얻는 것이며 또한 이를 위해 자신을 극한 상황까지 몰아갈 수 있는 극기복례가 필요하다는 것임음 명확하다.이외도 남명의 정신세계는 당대 성리학적 전통과 많이 다르다.그의 유명한 사직소에는 이런 말이 있다. "불씨의 이른바 진정이란 다만 이 마음을 보존하는 것일 뿐이니,위로 천리는 통달하는 측면에서는 유교와 불교가 한가지입니다" 당시로서는 과감한 견해이다.남명의 철학은 유,불,선의 삼교회통적인 성격을 갖는다.남명의 공부법은 불교에서 말하는 돈오적인 성격이 강하다.앞서서도 이야기했지만 남명은 <마음>을 얻는 것이 공부의 목표이다. "다섯 수레의 책들도 생각의 그릇됨을 없애기 위함" 일 뿐다.
남명의 철학이 실천형 자기만족에만 머물렀다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남명이 경과 함께 가장 강조한 것이 바로 '의'이다.의란 것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옯바름?추구하는 것이다.남명이 의를 추구한 것은 공자대의 원시 유학의 원론을 ?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남명은 비록 산속에 묻혀있었지만 끊임없이 세상과 관계하려 하였다.그는 제자들에게 유학경전이나 문학 공부만 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였다. "일의 상황을 모르는 성현은 없으며 변통할 줄 모르는 성현도 없으며,문을 닫고 혼자 앉아 있는 성현도 없다.율력,형법,천문,지리,군사,관직 등의 일도 모두 알아야 장애가 없게된다" 라고 말하고 있다.남명에게 또한 가장 중요한 것중에 하나는 출처의 문제였다.즉 물러남과 머뭄의 철학이다.남명은 유학이 개인의 신분상승과 유지를 위한 학문으로 변해가는 것에 크게 실망했다.선비들이 공부를 통해 세상을 밝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달만을 취한다면 옯바?공부가 못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남명은 이말을 자신의 출처론의 기본으로 삼았다고 한다."나아가 벼슬하면 나라를 위해 크게 하는 일이 있어야 하고 물러나 은거해 있으면 스스로를 지킬 줄 알아야한다.대장부는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아 한다.나아가 벼슬해도 하는 일이없고 물러나 은거하면서도 지키는 것이 없다면 뜻하고 배운들 무엇하겠는가" 너무 쉬운 말처럼 들리지만 요즘 세태와 비교해 봐도 전혀 그릇됨이 없다.남명 본인은 과거의 뜻을 접은 젊은 시절 부터 세상과 관계하지만 스스로를 지키고 진리를 지키는 길을 택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남명 조식은 어린시절을 빼놓고는 경상 우도를 떠난 적이 없다.이 동네를 여행하다 보면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김해의 신산서원,합천 뇌룡정,산청군 덕천서원,지리산 산천재 등등..... 아마 각 지역마다 살펴보면 비록 전국적인 지명도는 떨어졌을 지라도 그의 사상이나 학문 또는 업적이 출중했던 많은 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이 아웃사이더들에 관심을 갖는 것 또한 역사를 읽는 즐거운 일이 아닐까 한다.
남명 조식...매력적인 분이다.
p.s)...책 자체에 대한 이야기.....
4편의 글이 모여있다.어떤 글은 다른 논문에 실렸던 글을 그대로 옮겨놓은 인상이 강하다.자기의 글이 이 책 첫장임에도 "앞서 말한 4장에 자세히..." 뭐 이런 것이 들어있다.편집의 성의가 없었다는 비난을 받아도 싸다.또한 중복되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물론 자꾸 반복해서 보는 효과가 있어 처음 읽는 사람으로서 그리 거슬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조금 더 다듬어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마지막 장에는 남명이 남긴 시들이 그의 행적에 따라 진행되는데 한시를 좋아하는 분들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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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5-12-10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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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이유를 찾아서
올해 읽은 책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책중에 하나다. 네 분이 주제별로 남명조식 선생의 삶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가 책을 읽고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이고, 어떻게 우리 삶을
가꿀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남명의 가르침은 섬득하다. 소름이 돋을 정도다
'욕천'이란 시만 봐도 남명의 기상과 선비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책을 읽은 중 줄곳 스스로를 돌아 보곤 했다. 부끄러움에 몇 번이고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곤 했다
마음은 외물의 유혹으로 부터 끊임 없이 공격받고 침탈 당한다. 그 문은 아홉이지만 셋이
다. 귀로 들어오는 적, 눈으로 들어 오는 적, 입으로 들어 오는 적이 그것이다. 외부의 사
물은 자각을 잃으면 언제든지 방비를 뚫고 침범하여 마음의 고요를 뒤 흔든다. 이 기미를
단호하게 대처하여 끊어야 한다. 적을 섬멸하듯 쳐 죽여야 한다. ....마음은 유방과 항우
의 천하를 건 싸움을 벌이는 곳이다 승리하지 못하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노예로 살아
야 한다...자신과의 싸움에서 패한사람은 이미 살람꼴이 아니다....(책 중에서)
남명 선생이 살던 시대와 지금은 50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오히려 지금 우리가 고민 하고 실천
해야할 것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배우고 익히고 있지만 실천앞에서 갈등하는 사람들, 그 배움과
지식이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실천하고 몸으로 체화하고 있는가?
조용히 눈을 감는다. 스스로를 돌아 보고, 침범하는 적들과 한 판 대결을 준비하는 비수를 갈아야
겠다. 날이 새파랗게 선 칼을 곧추세우고 적들이 범하지 못하도록 갈고 닦아야 겠다.
날 마다 침범하는 적들을 만나면 기꺼이 나아가 그 목을 치리라. 나도 보이지 않는 칼을 차야 겠다.
그 칼날을 세우고, 온 갖 적들을 향해 불벼락을 내릴 준비를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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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서만나사람 2007-11-0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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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기절지최(朝鮮氣節之最) 남명 조식
최근 남명에 관한 서책들을 읽으며 독자로서 받은 감동의 물결은 말로다 표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경상 좌도와 경상 우도를 각각 대표하는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학문과 생각을 견주어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으며 사상을 이해하는 데도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남명의 일생을 다루다시피한 남명학 총서들을 차례로 읽어가는 즐거움은 비단 즐거움 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일생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에대한 지표로서의 역할을 올곳이 해주고 있다.
아래의 책들은 남명학 연구의 서책들이므로 주로 남명을 중심으로 조명하고있지만 퇴계 이황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가질수 있게하며 두 인물의 시대적 배경이 같았던 만큼 서로의 학문과 사상을 비교해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계기를 마련해주기도한다. 남명과 퇴계 이황, 어느 한쪽만 알게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편견에 사로잡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어보인다. 그러므로 남명과 퇴계를 모두 공부하고 싶은 열망을 줄것이다.
이 책은 남명의 일대기를 학문과 사상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다룬 책이다. 이 책 하나만으로도 남명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남명을 이 한권으로 마음에 채우기에는 남명에 대한 갈증이 더 커지기 마련이다. 그만큼 남명은 거대하고 위대한 인물이었다. 자연스럽게 남명과 관련한 책들을 찾게마련이다. 적은 분량이지만 남명의 사상이 잘 녹아있다. 남명이 평생 소중하게 간직했던 2글자인 '경의'에 대한 설명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 정말 감동스러워 여러번 읽게되었다. 그의 제자들은 스승님의 사상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그 기절을 발휘하였고 위기의 나리를 구하는데 앞장서게된다. 학문과 사상이 제자에게 끼치는 영향이 그 얼마나 지대한 것인가를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왼 쪽의 이 책은 남명의 생애와 학문, 남명학파에 관하여 여러 연구자료들의 글을 수록하고 있다. 남명의 학문과 사상에 이미 실학적 사상이 담겨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남명의 독자적인 주체성과 당시 사림의 정신에 대한 좋은 글들을 만날 수 있다. 남명은 유자이지만 불교에 대해서도 탄력적인 인물이었다. 퇴계는 남명에게 노장의 병통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과연 퇴계가 지적했던 남명의 사상적 병통은 무엇을 말함인지 그 진실을 알 수가 있다. 남명은 유, 불, 도를 넘나드는 사상가였음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렇다면 남명은 왜 그런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자신 사상을 굽히지 않았을까. 그의 학문과 사상적 배경에는 오로지 백성을 위함이 있었다는 것을 그 답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과연 퇴계는 어떠했을까...궁금해진다.
이 두 책은 제목 그대로 조선 왕조실록과 승정원 일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남명에 관련한 기록들을 소개하고있다. 이는 철저히 남명의 측근이 아닌 제 3자의 입장에서 써내린 기록들이므로 보다 객관적인 프리즘을 통해 남명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된다. 남명의 상소문을 좀더 세부적으로 알 수있고 시대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는 권력의 핵심및 백성들의 실태를 잘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상소를 통하여 그 누구보다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겼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과연 군신의 예와 의리란 무엇인가, 강직하고도 결단력있는 남명의 상소문은 우리에게 군신의 의리를 가르치고 있다. 남명은 수차례에 걸친 관직을 제부 받았지만 출사하지 않았다. 왜 남명은 출사하기를 거부했을까. 단지 사람으로서 출사를 거부하는 자만이 그 가치를 더욱 높여 차후에 활용하기 위함이던가? 그런 얄팍한 이기심에 의하여 출사를 거부했던 인물들도 실제로 있었다. 그러나 남명은 결코 그러한 조무라기 선비들과는 확연히 다른 인물이었다. 출사했다면 정승에 오르고도 남음이 있었겠지만 남명에게는 철학이 있었다. 바로 출처관이다.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는 남명의 출처관을 알고나면 비로소 수긍이 갈 것이다.
같은 성리학자로 사서를 읽고 주자를 공부했지만 두사람의 사상은 완연하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선비로서 추구하는 바에서는 공통점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학문의 목적이 서로다르며 그러므로 안과 밖으로 드러나는 사상이 확연하게 구별된다. 퇴계 이황은 퇴계학파을 아루었고 남명은 남명학파를 이루었다. 경상 좌우도의 두 거대한 학맥을 형성하고 있으면서도 두 사람은 서로를 백년신교, 천리신교라하여 경외하고 존중했다. 두사람은 같은 해에 태어났으므로 한 시대를 고스런히 공유하게된다. 퇴계는 출사하지 않는 남명을 실득하기위해 대사성으로써 편지를 보내기도한다. 두사람은 사상이 달랐지만 상대방에대한 신뢰를 죽는 그날까지 저버리지 못했다. 현대의 우리는 생각이 다르다하여 상대방을 비방하고 적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두사람은 상대방에게 기본적인 신뢰를 형성하면서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위의 서적들은 남명에 관련한 이야기들과 그의 인간관계를 잘 엿볼 수 있는 것들이다. 남명이 당대의 최고 선비로서 알려지게된 것은 비단 조정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백성들과 무관의 유생들도 그의 이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전설처럼 전해오는 이야기들이 나명과 관련지어 전해오고있다. 남명과 이야기는 그 이야기들 속에서 감지해낼 수 있는 만민들의 남명에 대한 인식이 잘 드러나있다. 매우 흥미로운 소재들이 많아 읽는 내내 독자를 즐겁게한다. 나아가 남명의 인간관계를 아주 잘 엿볼 수 있는 서적이 바로 남명의 인간관계, 남명과 그의 벗들, 수우당 최영경이다.
남명은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절도가 있었으며 벗들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역시 그의 학문에 바탕을 둔 것이라하겠다. 남명은 사회관 및 세상에대한 대응을 철저히 학문에서 바탕을 두고있다. 이처럼 자신의 사상과 행동을 일치하여 일생을 살다 간사람도 찾아보기 드물 것이다. 그러나 남명에게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경과 의를 인생의 방향으로 설정한 남명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며 그러기에 백성들의 삶에 그 누구보다 더 애착을 가지고 소를 올렸던 것이다. 수우당 최영경은 남명의 학문과 기절을 듣고 한양에서 진주로 찾아가 공부하기를 청한 인물이다. 과연 수우당 최영경은 남명의 학문을 배운 후에 어떻 인생을 살아갔을까...
남명의 적통을 이어받은 제자 중 정인홍이라는 인물이 있다. 곽재우과 마찬가지로 임진란을 맞이하여 거병하였고 국난을 승리로 이끄는데 크게 이바지 한 인물이다. 그 공로가 너무나 큰 나머지 광해군은 내암 정인홍에게 중책을 맞긴다. 정인홍의 학문은 그 어느 누구 못지않게 깊었으며 기절은 스승을 닮아 드높은 절의를 가진 인물이었다. 너무나도 강직하고 타협을 할줄 모르는 그의 성품은 오히려 스스로를 고립시키게되고 간신 이이첨에게 이용당하게된다. 결국 인조반정이라는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대역죄로 몰려 최후를 맞이한다. 정녕 정인홍과 같은 인물이 조정에 두어명만 더 있었더라도 조선은 지금의 조선과는 사뭇 달라져있었을 것이다. 불의를 좌시하지 않는 강직함, 왕권과 국력을 강화시켜 조선을 일으켜보겠다는 일념으로 출사했던 정인홍, 그는 오직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목숨을 던진 열사요 기개의 정절이 꽃피운 그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보여준 조선의 선비였다. 사욕을 채우려하지 않았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오로지 국가와 백성을 위해 한 몸을 바친 그는 정녕 백성의 스승이자 군신의 의리를 아는 선비였다. 스승 남명 조식과 더불어 진정한 선비의 사전적인 의미에 가장 합당한 인물이 바로 정인홍이었던 것이다.
위의 책들은 남명의 제자들을 좀더 상세하게 알수 있는 서책들이다.
위의 책들은 남명 조식의 선비사상을 잘 엿볼 수 있는 또다른 책들이다.
선생님의 문집과....
남명의 학문과 문학을 통하여 좀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들이다. 남명의 제자들은 임진란이 일어나자 분연히 일어서 백성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기위해 거병했다. 이는 스승님의 실천학문에 입각한 사상적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퇴계학파와 더불어 조선의 학맥을 이어간 남명의 학문은 최근 많은 연구가 진행중인 듯하다. 그러나 아직 국내의 독자들은 남명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문묘에 배향된 18현 중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자격이 없는 인물도 있어보인다. 오히려 남명 선생님이야말로 그 어느 선비 못지않은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당파적인 잇속때문에 결국 배향되지 못했다. 치열한 당파전은 인조반정 이후에도 조선이 망하는 그날까지 지속되었고, 어쩌면 현재에 이르기까지 노론의 영향력이 진행중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한국인들이 있어보인다. 이는 절대로 국민의 탓이 아니다. 국민들로하여금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하는 역사학자들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고 본다. 국민을 올바른 사관으로 이끌어야하고, 그 역사를 통하여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배울 수 있어야한다. 현재는 과거의 퇴적물이며, 그를 바탕으로 우리는 서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근본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밝은 미래지향적 가치관과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자신이 서있는 근간을 모르고서는 정체성의 상실은 물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마저 불명료하게한다. 온 국민이 우리의 역사를 재인식하고 제대로 파악하여 올바른 사관을 가지는 그 날이 오기를 학수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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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1-04-20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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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1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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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 칼을 찬 유학자>
- 물극필반 物極必反 ; Extremes Meet.
* 마립간의 철학적 관점을 설명하는 핵심어들 http://blog.aladin.co.kr/maripkahn/3459932
6) 뫼비우스의 띠
짧게 정리해 보자. 율곡 이이, 퇴계 이황 두 분 모두 대학자다. 나는 이 두 분의 가치관의 정오正誤를 가릴 수 없을뿐더러, 우열도 가릴 수 없다. 그러나 호불호好不好는 이야기할 수 있다. 현실을 이야기한 율곡보다 이상을 이야기한 퇴계를 더 좋아한다.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비교도 같다. 나는 인仁을 이야기한 퇴계보다 의義를 이야기한 남명이 더 좋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에 비해 남명에 대해 알지 못한다. 나는 그냥 남명의 이미지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p13 남명은 퇴계와 더불어 영남의 사람을 좌우로 갈랐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 동안 잊혀져 있었다. 1) 결정적인 것은 아무래도 정치적 부침이다. 2) 그는 자신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잊혀졌다.
p5 그 까닭을 사람들은 인조반정을 계기로 북인이 몰락했던 정치적 요인에서 찾는다. 그러나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학문론> 자체에 기인한다.
위 글을 읽고 떠오른 인물은 ‘디오게네스’이다. 내게 디오게네스는 흥미진진한 인물이다. 그가 또는 그의 학파가 주장한 가치관이나 가치관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궁금했다.
유일하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알렌산드로스 대왕과 일화가 전부다. ;
디오게네스가 일광욕을 하고 있을 때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찾아와 곁에 서서 소원을 물었더니,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햇빛을 가리지 말고 그곳을 비켜 달라고 하였다는 말은 유명하다. 알렉산드로스대왕은 “내가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아니었더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네이버 백과]
이 책에서는 남명이 많은 저작을 남기지 않은 것에
p6 그는 “주자周子, 정자程子의 입언立言에 털끝만큼이라도 더할 것이 없다”면서 도학의 경학화經學化를 경계했다. ; 라고 설명하지만 나는
p5 그는 오연하고 결벽한 성격을 타고났다. ; 이 문장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철학은 완벽할 수 (없거나 최소한 남명의 시대까지 완벽할 수 없었고 현재까지 완벽할 수) 없다. 그래서 결벽증이 있는 남명은 글을 (많이) 남길 수 없었다.
가장 우파적인 가치관을 가진 남명은 가장 좌파적인 가치관을 가진 디오게네스와 같은 행동을 하고만 것이다.
저작著作으로 남으면서 완벽하다고 일컬어지는 것이 있는데, 종교의 경전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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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5-02-23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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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1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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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 칼을 찬 유학자> 서평 별점 ; ★★★★, 도서관 대출
- 남명
내가 조선 사색당파四色黨派 시절에 당파를 고를 수가 있다면 나는 남명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북인계열의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각 당파의 가치관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곤란하지만, 남명-북인은 나의 성향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 많다.
가치관의 일관성으로 볼 때, 조선 중기의 사색당파의 경우는 시조 始祖의 가치관과 일치하지 않는다. (학연뿐만 아니라 지연地緣, 혈연이 뒤엉키고,) 정치적 이해에 따라 구체적 정책에서 당파의 견해를 결정한다. 나는 이를 수구화守舊化 또는 훈구화勳舊化라고 부른다. 요즘 가장 매국적으로 표현되는 서인西人은 가장 서민적이야 했고, 노론은 가장 애국적이여야 했다.
마지막으로 이런 상상을 해 본다. 남명이 어느 정도의 겸손을 갖췄다면 보다 완벽해 보였을까 아니면 남명의 본연本然을 잃어버렸을까?
이 책의 나머지 밑줄긋기를 아래에 정리한다.
* 밑줄긋기
p46 이 실존적 확신이 주자가 본래 구성한 리理=무위無爲, 기氣=유위有爲의 틀을 독창적으로 재구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퇴계 자신은 이 일탈을 감지하지 못했다. ... 주자는 리理에 원초적으로 현실화하는 능동적인 힘을 허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p90 세계관 ; 가장 특징은 극도로 엄격한 명분과 도덕적 판단이 거기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p95 고항지사高亢之士/긍矜, 독선
p97 율곡이 말하는 도학군자는 의리학義理學으로서의 성리학을 궁구할 뿐만 아니라, 경국제세의 실질적인 능력을 갖춘 인물을 가리킨다. ... 이렇게 세 사람의 출처관에는 엄청난 차이가 내재해 있다.
p100 인간은 결코 옳은 길과 나쁜 길을 동시에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 수패 육이효의 의미이다. ; 길 중의 어느 길은 옳고 나쁜 것의 중간 길이거나 옳은 길인 동시에 나쁜 길인 경우가 있다.
p115 경은 글이 아니라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p116 이 문제는 존양의 근원을 미발未發에 둘 것인가, 아니면 이발已發에 둘 것인가 등의 매우 예민한 해석의 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다.
p117 퇴계가 남명을 비판한 핵심은 욕망에 대한 그의 과격한 통제 방식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즉 이러한 이해 방식은 바깥 세상이 존양에 방해될까 두려워하여 객관 세계가 지니는 그것의 고유한 속성과 존재 원리로 무시하는 폐단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p118 객관 세계의 외물을 있는 그대로 맞이하되, 이른바 간기배 艮其背 stop at the back of a thing의 태도를 견지하라는 주장이다./극기복례의 존양 공부가 과연 무욕無慾을 지향하는가, 아니면 과욕寡慾을 지향하는가의 문제는 유학사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었던 부분이다.
p121 점수漸修/돈오頓悟
p127 하학下學 ; 실용학문의 의미는?
p129 재물상간在物上看 vs 전지재구田地在具 ; 나는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지지한다.
p151 심기리心氣理 ; 심=불교, 기=도교, 리=유교
p161 훈구화勳舊化과정 ; 북인이 집권해도 북인의 훈구화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예상한다.
p171 단순화시켜 말한다면, 그는 ‘백이형’과 ‘관중형’ 각각의 장점이 통합된 ‘인격상’을 진정한 유자상儒者像으로 보고 그 실천적 구도를 제시함으로써 개국 이후 균열되었던 두 가지 유형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하려 했던 것이다.
p172 반면에 남명은 현실의 당면 문제에 구체적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관념적, 내면지향석 사유가 갖는 기만성을 경고하면서
p178 물론 퇴계도 진지眞知는 ‘몸으로 체득하고 마음으로 체험하는’ 곳에서부터 얻어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의 학단學團에서 관심을 기울였던 ... 인간을 경험과 실천의 주체로서 사물을 하나의 목적적 전체로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p180 차원이 다른 문제 ; 즉 치인은 거경존양居敬存養하는 수기의 결과에 의해 저절로 결정되는 영역이 아니라 일용日用의 이치에 대한 적극적 궁리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읽었던 것이다.
p182 객관적 분석적 성격이 강한 ‘리理’보다 살아 있는 유기체적 지평을 갖고 있는 ‘심心’을 중심에 두어서 실천의 맥락에 굳건한 뿌리를 내리게 하고 있다.
p184 대체로 리기를 통합된 것으로 보았으며 (理氣一體),
p267 남명은 사람의 습성이 쉽게 바뀌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이 때문에 남명은 평소 습성을 기르는 것이 높지 않으면 안되고, 평소 거처하는 것이 작고 낮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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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5-03-04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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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150224
* 讀書記錄 150224 <남명 조식 칼을 찬 유학자> - 타락墮落과 소외疏外 어느 영화 장면이었는지, 아니면 다큐멘터리의 재현 장면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 주인공이 어느 산속에 와 보니, 종교를 믿는 수사修士들이 수양修養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남과 갈등, 경쟁 이런 것을 전혀 하지 않고 (또는 않으려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스스로의 마음만 다스린다. 포교布敎를 하지 않는다. 결혼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종파는 소멸되었다. 이 종파는 넓게... + 더보기
마립간 2015-02-24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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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150226
* 讀書記錄 150226
<남명 조식 칼을 찬 유학자>
- 노장老莊사상
남명도 나도 플라톤-노자주의자라고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플라톤주의자의 가장 큰 약점은 이데아-도를 당장 손에 쥘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다음 차선책이 멀리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오류에서 최소의 오류를 선택하게 된다. 약간의 디오게네스-양주주의를 가미한다. 다른 선택도 있다. 현실과 타협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장자주의를 가미하는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은 후자의 선택을 변절로 부른다. (아마도 전자를 드문 변절로 부르겠지.)
p28 <부귀와 재리에 대한 멸시>는 그 자체로 드문 미덕이다. ... 이런 태도는 자연히 <오만>과 <방탄>으로 이어지기 쉽다.
p28 아마도 그의 오세傲世는 세상의 공명을 뜬구름처럼 여기는 노장에 이끌리게 했을 것이고, 그의 유협遊俠은 전쟁의 기술과 권력의 생리를 피력하고 있는 한비류에 이끌리게 했을 것이다.
p31 본지풍광本地風光
p32 겸선천하兼善天下와 독선기신獨善其身, 이 둘의 통합적 지향
p114 남명의 학문은 결코 기존의 사상을 얌전하게 따르고 묵종하는 학문이 아니었다./조선조의 유자들은 그들 양명학자로 혹은 노장류 老莊類의 인물로 혹은 불교를 존숭한 인물로 이해한다.
p278 청향당은 대나무, 소나무, 매화, 연꽃 등이 있고 이원은 그곳에서 경전을 벗삼아 거문고 연주하며 살았다.
- 우리 모두는 이중주의자다
p56 1) 기술 art로서의 지식/p57 작은 공부 小學가 학문의 알파요 오메가
p60 경전은 다만 도구일 뿐/p62 궁극은 경전經傳 너머에 있다
p71 제자 하나가 마음, 본성, 감정, 능력 등의 구분에 대해 물었을 때 육상산은 그를 호되게 나무랐다. 그는 중요한 것은 그 따위 분석이 아니라 근본 배양, 즉 배움의 원천과 근본에 대한 자각이고,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라고 가르쳤다. ; 이 말이 사실이라면 왜 동양은 (문명적으로) 서양에게 뒤졌을까? 문화적으로 뒤지지 않았다고 위안하면 그만인가?
p75 남명의 방식이 주자학보다는 상산과 양명 계통에 접근하고 있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남명의 저술을 통독하고서 짐작컨대 그는 주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p107 주지하는 것처럼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완전히 자기를 버릴 때 신의 본질과 마주하게 된다고 말한다.
p120 慾望 ; 이천伊川은 이것은 육신을 가진 인간의 존재의 한계로 보고 있다.
나는 세상이 플라톤-노자주의, 아리스토텔레스-장자주의, 디오게네스-양주주의가 통합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통합을 꿈꾸는 자체가 플라톤-노자주의자다. 추정하건대, 통합되지 않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