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8

02 북한 한걸음 다가서기



북한 한걸음 다가서기 | 갓피플몰
북한 한걸음 다가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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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조용관,김병로 | 출판사 : 예수전도단
발행일 : 2002-08-03 | 신국판(152*224)mm 164p | 89-5536-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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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도서소개 | 차례 | 추천의 글 | 저자/역자소개


신앙도서 > 전도/선교 > 선교이론/훈련과 실제


하나됨을 위한 새로운 시작, 새로운 도전 북한 주민에 대해선 끝없는 연민으로, 그러나 북한에 대해선 알 수 없는 적개심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도리어 북한을 '북한'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이다. 한반도 역사가운데 형성된 그들의 사회와 의식 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땅을 향한 하나님아버지의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통일을 준비하라. 진정한 하나됨을 위해, 열방을 향한 그 분의 역사에 함께 발맞춰가기 위해 이제 용기 있는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할 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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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 북한 사회에 대한 '전 이해'의 필요
· 통일 준비의 적절한 길잡이
· 21세기 북한선교의 새로운 도전
· 복음전파의 구체적 준비를 위한 책

1부 우리가 생각하는 북하는 지구상에 없다 - 김병로
1. '한국:조선' 그리고 '남조선:북한'
2. 지역 자립 체제, 한국전이 남긴 심리적 자폐증후군
3. 계층구조, 한국전이 남긴 계층구조의 돌연변이
4. 주체사상에 기초한 조직 생활
5. 북한사회의 변화와 통일의 비전

2부 우리가 해야하는 북한선교, 우리가 하고있는 북한선교 - 조용관
1. 북한선교, 이래서 해야한다.
2. 북한선교, 이렇게 하고 있다.
3. 북한선교, 이렇게 해야한다.

3부 탈북자, 21세기 북한선교의 화두 - 조용관
1. 탈북자 입국 현황과 정부의 지원체계
2. 북한선교 전략으로서 탈북자들이 중요한 이유
3. 탈북자의 남한적응 실태를 통해 본 북한주민의 의식 구조
4. 탈북자 선교의 구체적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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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의 남한 사회 정착은 이 시대 북한선교와 통일 준비의 새로운 시작이다. 오랫동안 북한과 탈북자, 그리고 통일 문제에 대해 연구해온 조용관 · 김병로 박사님이 집필한 이 책은 바람직한 북한 션교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좋은 지침서가 되랄 확신한다.

- 김장환 목사 (극동방송 사장)-


통일을 준비한다는 것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통일 이후 남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참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데 유익한 길잡이가 된다. 북한선교와 북한을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 양영식 장로 (전 통일부 차관)-


이 책은 북한 선교에 대한 이해와 자원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 주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한반도 위에 부어질 하나님의 영의 새로운 역사하심에 참여하고자 한다면 이 책을 읽고 연구하기 바란다

- 오대원 목사 (북한선교연구원원장)-


오랫동안 공산주의가 무너지기를 윟9ㅐ 간절히 기도했었지만 막상 공산주의 국가들의 문이 열렸을 때, 서구의 교회들은 복음을 전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지 않았다. 이 책은 북한을 히해하고 그 땅 안에 복음이 잘 전파되도록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 홍성건 목사 (한국예수전도단대표)-



조용관

고려대학교 중문과를 졸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철학 박사 국립 경찰대학 연구관 인천대학교 정외과 겸임 교수 북한선교연구원 부원장 저서 : <중국혁명과 가정윤리>(고려원)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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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서로 다른 가치체계 이해 ‘북한 한걸음 다가서기’
기사입력 2002.09.17.


북한 사회와 주민들에 대한 이해와 바람직한 북한 선교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지침서 ‘북한 한 걸음 다가서기’가 출간됐다.

모두 3부로 구성돼 있으며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인 김병로 박사가 집필한
1부는 북한 사회가 어떤 체제로 지탱되고 있고 북한 사회의 계층 구조와 주체 사상이 북한 주민의 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2부는 북한 선교의 필요성과 현황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3부는 공저자인 조용관 박사가 지난 7년동안 탈북민 선교를 통해 경험한 바를 토대로 탈북민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며 나아가 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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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는 전문가들이 쓴 책인만큼 북한에 대한 정확한 이해,그 정치와 사회의 구조및 내용,북한 선교를 위해 필요한 우리의 구체적인 준비 등 실질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통일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는 남북한 주민들이 그동안 배워온 잘못된 지식 때문에 서로의 가치체계안에 설정돼버린 잘못된 가상의 틀에 갇혀 서로에 대해 알려고도,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무관심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저자들은 이 책의 목적이 북한을 사랑하고 주님의 마음을 품고 북한 선교를 하기 원하는 믿음의 식구들을 위해 북한 사회와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들은 또 북한에 있는 동포들을 끌어안을 것을 강조하고 있고 그들로부터 배우고 그들을 통일을 바라는 한반도의 남과 북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될 사람들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 김병로 박사는 미국 인디애나주립대와 럿거스 대학에서 각각 사회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은 뒤 현재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겸임 교수와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용관 박사는 고려대 중문과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을 거쳐 현재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 및 북한선교연구원 대표 간사로 일하고 있다(예수전도단·5000원).

김병철기자 bckim@kmib.co.kr





























"교회는 통일선교 대전략이 있어야 한다" : 제휴 : 기독일보

"교회는 통일선교 대전략이 있어야 한다" : 제휴 : 기독일보

"교회는 통일선교 대전략이 있어야 한다"
기독일보 홍은혜 기자 (press@cdaily.co.kr)
입력 2018. 04. 20

(사)민족통일에스라운동협의회 주최로 '미스터 미션 조동진' 출판기념회 및 통일 토론회



"미스터 미션 조동진"(도서출판 사도행전) 출판기념회와 동시에 "새로운 한반도 환경과 한국교회 통일비전"을 논하는 포럼이 19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렸다. ©홍은혜 기자

[기독일보 홍은혜 기자] 한국교회 선교의 아버지 조동진 박사(조동진선교학연구소)를 기념하는 "미스터 미션 조동진"(이민교 저, 도서출판 사도행전) 출판기념회와 동시에 
"새로운 한반도 환경과 한국교회 통일비전"을 논하는 통일선교포럼이 겸해 열렸다.

조동진 박사(조동진선교학연구소)는 김일성종합대학교 종교학과 초빙교수 및 평양신학원 초빙교수로서 평화통일과 민족교회 운동에 힘써 왔고, (사)민족통일에스라운동협의회(Global Blessing)를 1995년 10월 12일 통일부 산하 사단법인으로 설립하기도 했는데, 협의회 고문들을 주축으로 한반도 정황과 맞물려 이번 행사가 마련됐다.



19일 오전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행사에서는 먼저 이상만 박사(한반도개발협력연구소 이사장 및 중앙대 경영경제대학 명예교수)의 사회로 허문영 박사(평화한국 대표, 통일선교아카데미 원장·통일연구원)와 조용중 박사(KWMA 사무총장, GH 이사장), 김병로 박사(북한연구학회 회장 및 서울대 통일평화 연구원 교수)의 주제발표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허문영 박사는 "한반도의 돌아가는 일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 보고, "대한민국은 남북정상회담·북미정상회담 등을 어떻게 해야 한다 정도가 아니라 '국가대전략'을 짜내야 한다"면서 "비핵화, 체제 함몰 정도가 아닌, 한반도 평화와 통일로 가기 위한 마스터 플랜을 다양한 각도에서 만들어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별히 허 박사는 "교회가 통일선교 대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북한 동포는 선교대상이 아닌, 또 다른 선교주체가 되어야 한다"면서 북한교회의 회복이 이뤄져야 하고 그 주역이 바로 북한 주민, 특별히 김정은 위원장이 되어야 한다고도 이야기 했다.

때문에 허 박사는 ▶이런 상황일수록 안보가 튼튼해야 한다. 군사력 강화, 한미동맹 강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한국형 통일대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교회가 우리 사회를 건강한 사회로 만들 수 있도록 사회정의 수립과 국민화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동아시아 평화로 발전시켜야 한다 ▶통일 대한민국이 온 인류를 살리고 공헌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미스터 미션 조동진"(도서출판 사도행전) 출판기념회와 동시에 "새로운 한반도 환경과 한국교회 통일비전"을 논하는 포럼이 19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렸다.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이 함께 발언하고 있다. ©홍은혜 기자

조용중 박사는 KWMA가 선교단체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를 토대로 "선교단체 및 한국교회 통일선교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통일은 그냥 조국 통일, 북한 통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이 함께 나아가 세계 선교에 이바지하는 통로로써 쓰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먼저 남북교회가 하나 되어서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히 그는 "북한 땅에는 교파를 초월한 하나의 교회가 설립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병로 박사는 최근 이슈가 된 종전협정 혹은 평화협정에 대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이나 아일랜드 등 비록 협정 후 그것이 제대로 이뤄진 곳은 지구상에 단 한 군데도 없다"고 지적했지만, 그러나 기도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대한민국만은 다를 것이라며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후 종합토론의 시간에는 조정훈 박사(아주대 통일연구소장), 양창석 대표(숭실대 초빙교수 및 사단법인 선양하나 대표), 박종근 목사(서울모자이크교회 및 사단법인 모두함께 이사장) 등이 패널로 나서서 발언하기도 했다. 또 토론회 이후 출판기념식에서는 저자인 이민교 선교사(GP선교회, Global Blessing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조동진 박사가 축사를 전하기도 했다. 행사 전에는 황성주 박사(Global Blessing 한국이사장)가 인사말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 조동진 박사는 장신대를 졸업하고 미국 에즈베리 신학교 대학원(석사), 미국 월리엄캐리대학교 대학원(박사)을 졸업했다. 후암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다 선교사로 헌신, 후에 국제선교협력기구(KIM)와 동서선교연구개발원(EWC)을 설립했다. 아시아선교협의회(AMA)를 창립하고 초대 사무총장과 회장으로 섬겼으며, 제3세계선교협의회(TWMA)를 창립하고 창립 회장으로 섬겼다.

11[ ‘바울의 집’ 설립자 조동진 목사 (15) ] 연재를 마치면서 - 기독신문

[ ‘바울의 집’ 설립자 조동진 목사 (15) ] 연재를 마치면서 - 기독신문

[ ‘바울의 집’ 설립자 조동진 목사 (15) ] 연재를 마치면서

박민균
승인 2011.04.25


통일 위한 서독의 노력 본받아야


▲ 조동진 목사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서 화해와 교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거목은 키가 너무 높고 가지가 너무 넓어 온전히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다. 거목 아래 시원한 그늘 속에 있지만, 주위가 온통 거목의 그늘인 탓에 그 아래 있는 것도 모른다. 지난 1월부터 열네 차례에 걸쳐 ‘나의 삶 나의 신앙’을 연재한 조동진 목사가 바로 그런 거목이다. 연재를 마치며 경기도 의왕시의 조동진 목사 자택에서 ‘나의 삶 나의 신앙’에 모두 담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1924년 평북 용천에서 출생한 조동진 목사. 80세를 훌쩍 넘겨 미수를 앞두고 있지만, 지금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원로 선교학자로 세계 곳곳에서 요청하는 강의와 원고청탁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기자가 방문한 날도 두 명의 제자들이 요청한 원고를 검토하고 있었다.

“당시 신학교는 전도나 선교를 가르치지 않았어요. 신학은 우등생인데, 목회자로서 전도는 낙제생이었어요. 그래서 전도학과 선교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지요.”

그러나 1960년대 미국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의 신학교 중 선교학으로 학위를 주는 학교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켄터키주의 에즈베리신학교가 유일하게 선교학과 전도학으로 Th.M 학위과정이 있었는데, 당시 학교에서 조 목사가 백인 외에 선교학을 공부하는 유일한 학생이었다.

“백인 곧 서구 교회 외에서 유일하게 선교학을 공부했기에, 내가 아시아와 제3세계에서 최초의 선교학자가 됐어요. 그때부터 선교의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비서구 선교세력이 선교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일에 사명을 갖고 지금도 일하고 있습니다.”

‘나의 삶 나의 신앙’에 기술한 것처럼, 조 목사의 이후 사역은 무엇을 하든지 ‘아시아와 비서구권 국가에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1968년 최초의 선교대학원 과정인 국제선교신학원 설립, 세계 최초 비서구세계 선교단체 지도자들의 지역조직인 아시아선교협의회 조직, 최초의 아시아 선교지도력 개발 기관인 동서선교연구개발원, 최초로 동서양 선교지도자 협력 컨소시엄 구성 등등 조 목사가 이뤄낸 ‘최초’는 수없이 많다.
최초는 곧 유일하다는 의미이다. 동서선교연구개발원은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한국 교회의 인재는 물론 아시아 각국의 선교 인재들이 모여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한국선교역사에서 1980년대까지 선교사로 나간 사람은 모두 이곳 출신으로, 현재 한국 선교계의 원로와 리더들 상당수가 조 박사의 제자들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아시아 인재들도 교육을 시켰기에, 홍콩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등의 교회 지도자들 역시 조 목사의 손을 거쳤다.

조동진 목사의 사역 중 또 하나 놀라운 일은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위한 활동이다. 조 목사는 1978년 후암교회를 사임한 후, 한경직 목사 백낙준 박사 조향록 목사 김일환 장로 등과 함께 북한해방기도운동을 펼쳤다
. 이후 국내에서 대북활동이 어렵게 되자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하면서, 김일성종합대학 방문교수로 임명되고 김일성 주석과 면담하는 등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사역을 펼쳤다. 특히 카터 전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주선한 일은 극적이기까지 하다.

이렇게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노력했기에 조 목사는 현재 남북 갈등이 너무 안타깝다. 

“김정일이 쓰러지면 통일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보입니다. 북한이 붕괴되면 미국과 휴전협정을 한 중국이 바로 북한으로 진입합니다. 동독이 무너지지 않도록 엄청난 지원을 했던 서독을 보십시오. 서독은 국방예산보다 더 많은 재정을 동독과 인근 나라에 지원하는 동방정책을 수립하고 20년 넘게 지원했습니다. 그러면서 주위 국가들의 협력을 이끌어냈습니다. 우리는 서독이 했던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조동진(1924~) 박사





kcm.kr/dic_view.php?nid=38710



인명사전 작성일 2007-08-24
제목 조동진(1924~) 박사
주제어 [현대신학자] [선교지도자]
자료출처 조동진선교학연구소 성경본문
내용

조동진 박사


장로회신학대학교(B.D)
미국애지브레신학교(Th.M.)
미국 윌리암캐리대학교(Ph.D.)
국제선교협력기구(KIM) 창립, 창립총재 취임(1961)
현, 동서선교연구개발원장
사단법인 민족통일에스라운동협의회 이사장





조동진은 1924년, 1905년부터 한국을 침략하여 한국을 통치하던 일본 제국주의 정권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을 이끌던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조상항은 열 살의 어린시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였다. 조동진은 나면서부터 그리스도인의 자녀로 성장하였고 내어난 지 열흘만에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는 일본 제국 통치 아래서 교육을 받았다.


1945년 제 2차 세계대번 종전으로 한국민이 일제 통치로부터 해방된 후에 그는 서울에 설립된 장로회신학교에서 신학 교육을 받았다. 그는 1956년 이후까지 더 높은 신학교육을 받고 1960년 에즈베리신학교 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석사(Th.M.) 학위를 받았다. 1980년과 1981년에 미시시피 주의 벨헤이븐대학과 모교인 에즈베리신학교 두 곳으로부터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그후 캘리포니아 주 파사데나에 있는 윌리암케리대학교에서 국제개발학을 연구하여 철학박사(Ph.D.) 학위를 취득하였다.


1960년부터 1978년까지 그는 서울에 있는 후암장로교회의 담임목사로 시무하였다. 그가 개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는 동안 총회신학교와 그 밖의 몇 개의 주요 교단 신학교에서 선교학과 전도학, 그리고 교회행정학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1961년, 조동진은 한국의 신학교들에서 처음으로 선교학 강좌를 개설한 선도자이다.
그는 1963년 서울에 국제선교신학원(International School of Mission:ISM)을 설립하였다. 이 선교신학원은 1973년 동서선교연구개발원(East-West Center for Missions Research and Development:EWC/mrd)으로 확장되었다. 이 선교연구기관은 비 서구세계에 설립된 최초의 선교사 훈련과 연구를 위한 교육기관이었다.


1972년부터 그는 1973년 8월 서울에서 개최된 <범아시아선교지도자회의: All Asian Mission Consultation)의 소집을 주도하였다. 1975년, 그는 이 범아시아선교지도자회의의 계속위원회의 실행위원장으로서 <아시아선교협의회: Asia Missions Association/AMA>의 창립을 주도하였다. 이 협의회는 세계 최초의 역내 국가들의 선교단체들을 연합한 지역협의회(regional association)가 되었다. 그는 이 협의회 창립총회가 발표한 '기독교 선교에 관한 서울선언'의 기초자이며, 이 선언은 1966년 휫튼선언과 1970년 프랑크푸르트선언과 맥을 같이 하는 아시아인의 선언으로써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조동진 박사는 미국의 위리암케리대학교 교수와 고려연구소장으로 봉사하는 한편, 오레곤 주 포틀랜드에 있는 웨스턴신학교의 선교학 교수로,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 파사데나에 있는 풀러선교대학원의 방문교수로 봉사하였다.
조동진 박사는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개최된 <제 1회 세계복음화국제대회: The First 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의 전체회의의 '선교 구조의쇄신'에 대한 강사였으며, 또한 같은 해에 소집된 세계복음주의협의회(World Evangelical Fellowship:WEF) 총회가 그를 선교위원회 조직위원(Ad Hoc Committee of Missions Commission/WEF)의 3인 위원(유럽 1인, 미국 1인, 제삼세계 1인) 중 1인으로 선정되었으며, 그는 1975년 8월 서울에서 WEF 선교위원회 (Missions Commission of WEF) 창립회의를 소집하는 일을 주도하였다.
1988년, 조동진 박사는 1989년에 제삼세계선교협의회(Third World Missions Association/TWMA)를 낳게하는 제삼세계 선교발전을 위한 지도자회의(Third World Missions Advance Consultation)를 소집하였으며 1995년까지 그 협의회 회장으로 봉사하였다.


1988년 이래, 조동진 박사는 매 4년마다 미국 휫튼대학에서 개최되는 '한인세계대회'의 주강사로 초청되었다.
이러한 모든 사역 외에 휫튼대학 대학원, 무디성경학교, 트리니티선교대학원,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달라스신학교, 리폼드신학교 등 미국의 여러 선교대학원에서 강의하였다.


조동진 박사는 1989년 이래 20회 이상 북한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일성과 세 차례에 걸친 단독회담을 가졌다. 그는 김일성종합대학과 평양신학원의 방문교수로 임명을 받았으며 두 곳 밖에 없는 평양의 교회에서 여러 차례 북한 신도들을 위하여 설교할 기회를 가졌었다. 조동진 박사는 그 밖에도 미국의 빌리그래함 박사와 지미 카터 대통령을 북한 최고지도자 김일성이 초청하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1991년에는 북한의 UN 주재 대사였던 한시해를 데리고 조지아 주 플레인에 있는 지미 카터 대통령의 저택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의 평양 초청을 전달하도록 주선하였다.


그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면서 '러시아지도력개발원'을 설립하고 그곳 출신 목사들을 중심으로 '러시아기독교개혁교회 모스크바대회(Synod)를 조직하였다. 2003년 9월에는 제 8회 아시아선교협의회 총회를 러시아에서 소집하여 30여 개국으로부터 350여 명의 아시아 선교지도자들이 참석함으로써 아시아 선교세력을 유로아시아로 확대시켰다.


조동진 박사는 그의 80세가 되는 2004년부터 그의 후학 동문들과 선교동역자들의 후원으로 <조동진선교학연구소>를 설립하고 또한 세계선교박물관을 서울에 설립할 계획을 추진하게 되었다. 한편, 조동진 박사는 그가 설립했던 동서선교연구개발원이 계속되기를 원하는 후학 동문들의 뜻에 따라 미국 풀러선교대학원 교수 박기호 박사를 동서선교연구개발원 원장으로 임명하였다. 박기호 박사는 동서선교연구개발원을 선교대학원대학교로 확대 개편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조동진은 1949년 6월 그의 신학교 동기동창인 라신복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4녀의 자녀가 있고, 손자와 손녀 1명씨과 외손녀 한 명이 있다. 조동진 박사의 동역자이며 아내인 라신복은 1992년 10월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묘지는 조동진 박사가 설립한 바울의 집 언덕 위에 있다.


2020/01/07

알라딘: 18 이민교. 터 미션, 조동진

알라딘: 미스터 미션, 조동진

미스터 미션, 조동진 - 한국교회 선교와 북한 사역의 살아있는 전설
이민교 (지은이)
사도행전2018-04-19





























미리보기


정가
20,000원

336쪽
132*19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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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교회 근현대사는 물론, 특히 해외선교운동과 북한선교와 통일사역을 말할 때 반드시 앞세워야 할 인물이 있다. 해방 이후 서울에 세워진 장로회신학교와 미국 윌리엄캐리대학을 졸업하고, 옥인교회와 서대문교회 등에서 목회활동을 하다 유학을 다녀온 후 후암교회 담임을 거쳐 KIM선교회 등을 설립했던 조동진 박사(목사)다.

이 책은 파란만장이라는 진부한 말로는 설명이 부족한 조동진의 일생을 그의 뒤를 이어 북한사역에 몰입하고 있는 이민교 선교사가 정리한 것이다. 조동진 목사는 과거 <지리산으로 간 목사>, <평양으로 간 목사>, <세상으로 나간 목사> 등 세 권으로 자신의 성장 과정과 목회, 북한 사역, 선교 활동 등을 정리했는데, 저자는 이 세 권을 요약 정리하여 이 책을 구성했다.

따라서 조동진 박사 개인의 역사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를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다양한 이면도 볼 수 있고, 한국교회의 생성과 선교운동의 발전 및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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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는 글

1부 지리산으로 간 목사
01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02 민족을 사랑한 전도자의 탄생
03 목사 안수 열흘 만에 피난길에 서다
04 지리산에 들어간 화해의 종
05 총성이 잦아든 섬진강의 부활절

2부 평양으로 간 목사
06 이 민족의 영혼들에게 봉사하리라
07 성벽을 재건하는 느헤미야의 심정으로
08 군사정권 시대 전국복음화운동의 주역
09 민족 화해와 평화 선교 위해 교회 밖으로
10 평양 김일성대학에서 강연한 목사
11 청와대와 주석궁의 가교 역할을 하다
12 한민족의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기대하며

3부 세상으로 나간 목사
13 세상을 향해 눈과 마음이 열린 목사
14 교회갱신과 연합전도운동을 시작하다
15 탈서구, 동아시아 선교의 새 시대를 열다
16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지도자를 양성하다
17 인도네시아, 필리핀, 그리고 KIM선교회
18 쌍방 통행 선교와 광역 선교의 희망과 비전

4부 성경이 말하는 통일
19 형제애가 회복되어야 통일이 쉬워진다
20 통일신학이 풀어야 할 과제
21 통일신학을 위한 실천적
접기


책속에서



P. 36 아버지는 미국 태평양 지역 주둔군 사령관의 명령으로 미 군정 재판을 받았다. 판결은 어처구니없게도 교수형이었다. 1948년 4월 1일, 중앙청 대회의실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가 실시되는 5월 10일을 40일 앞둔 날이었다. 미 군정청은 돈암장의 이승만과 경교장의 김구를 갈라놓으려 했다.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중추 세력을 거세하려는 음모에 아버지가 걸려든 셈이었다. 접기
P. 44 조동진은 원래 결혼식을 1949년 7월 1일, 장로회신학교 졸업식 3일 후로 잡았다. 그러나 경교장의 참변으로 결혼식을 닷새 뒤로 미루었다. 그런데 김구 선생의 국민장이 결혼식 날인 7월 5일로 발표되었다. 결혼식을 이틀 더 미뤄 7월 7일로 바꾸었다. 민족 지도자의 장례를 위해 결혼식 날짜를 두 번이나 바꾸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결혼식에 함께 할 신랑의 부친은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있는 신세였다.
졸업식 다음날, 결혼식을 앞둔 예비 신부를 인사시키기 위해 면회를 간 자리에서 조동진의 부친은 한참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아들의 슬픈 결혼식 때문이 아니었다. 김구 선생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었다. 조동진의 가정은 그러하였다. 접기
P. 72 순천 노회는 비록 전쟁 중이긴 하나, 목사 없이 방치된 여덟 교회를 그냥 둘 수 없었다. 7월 첫 주일이 지나 순천중앙교회에서 임시노회가 열렸다. 아골 골짜기처럼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린 지역에 부임할 순교적 헌신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참석한 목사들이 모두 조동진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조동진은 일어나 자원했다. 여수 순천 반란사건 직후 지역민들의 아픔을 돌보기 위해 내려온 목사로서, 자기가 헌신해야 할 자리라고 고백한 것이다. 조동진의 고백에 노회 참석자들은 침묵으로 응답했다. 조동진 목사가 지리산으로 들어가게 된 과정과 사정은 이렇게 복잡하였다. 접기
P. 75 목사가 경찰뿐 아니라 산 사람의 장례도 치러준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지리산 전역에 퍼졌다. 그날 밤 한 노인이 조동진을 찾아왔다. 전도사도 없는 깊은 산 속의 토지교회 신도이며, 산 사람의 시체 중 하나가 자기의 둘째아들이라고 했다. 산 사람 시체와 관련된 일곱 가족 중 다섯 가족이 모두 장례식에 왔다.
빨치산의 부모들은 산에 살면서 양쪽 눈치를 모두 보고 살아야 했다. 죽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산에서 생활하던 젊은이들이었다. 토벌대의 가족도 목사의 손을 잡고 울었고, 빨치산의 가족도 같은 손을 잡고 울었다. 조동진은 화해를 위한 목사 노릇을 한 셈이었다.
조동진은 그 날 두 번의 장례식을 따로 치르면서 자신이 서야 할 자리와 할 일을 생각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곁에서 지켜보았던 손양원 목사의 사랑의 원자탄 신앙을 전수했다는 것이 보람이었고 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한다. 그것은 조동진의 민족관과 인간관의 바탕이 되는 일이 되기도 했다. 접기
P. 82 총성이 가신 구례에 부활절이 찾아왔다. 그 부활절 전날 밤에 사건이 발생했다. 생후 7개월 된 아들이 갑자기 경기를 일으키더니 숨이 끊긴 것이었다. 부활절 설교를 준비하던 조동진은 조부모와 아내의 통곡 소리를 듣고 뒤늦게 달려갔다. 아들 웅천은 이미 숨이 끊긴 뒤였다. 조동진은 부활절에 ‘사망을 이기신 예수’를 설교할 참이었다.
부친에게서 아들을 넘겨받은 조동진은 “오늘만은 안 됩니다!”라고 오열하며 울부짖었다. “부활절 아침만은 살려 주셨다가 다시 데려가실지언정, 지금은 살려주세요!”라고 부르짖었다. 그러다 조동진마저 맥이 풀려 아들을 방바닥에 내려놓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기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큰소리로 울기도 했다. 맥이 풀렸던 조동진은 기운을 내 아기를 다시 안았다. 온 가족은 한 몸처럼 부둥켜안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 집의 부활절 새벽은 그렇게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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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우리 민족의 통일과 북한선교의 사명을 갖고 있는 많은 분들이 조동진 목사님의 통일비전과 선교전략을 잘 이어받아 우리 시대에 그 사명을 완수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조 목사님의 생애와 업적과 사상을 축약해놓은 이 책이 민족통일과 북한선교를 위해 일하는 많은 분들에게 큰 도전과 희망을 줄 것으로 생각하며 이 책을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
-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이민교 형제는 자신을 굳이 선교사라고 소개하지 않지만, 진정한 선교사입니다. 그가 《미스터 미션, 조동진》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가 선교의 아버지격인 조동진 목사님에 대한 책을 쓰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이 책을 통해 한국 교회에 다시 한번 선교사명의 불꽃이 피어오르기를 소망하면서 이 추천사를 씁니다.
- 주명수

책을 읽으면서 역사에 대한 조 목사님의 통찰력과, 세계를 화폭으로 삼아 일필휘지하는 선 굵은 사역에 큰 감동을 받았다. 매순간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훤히 읽기라도 하는 듯한 선지자적인 파격적 행보, 받은 은혜와 사랑을 조국과 세계에 창조적으로 쏟아붓는 영혼 사랑의 열정을 평생 본받고 싶다.
- 황성주 (이롬 회장)

조동진 목사님은 냉전의 시기에 사회주의권 선교의 길을 여신 분으로서, 한국 선교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하신 분이십니다. 특히 북한에 대한 이해와 기본 자료가 부족했던 시절에 북한 전문가들에게 대북선교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시고, 전문가들이 북한 연구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저는 북한연구자로서 조동진 목사님의 역할에 대해 항상 존경심과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 이상만 (중앙대 경제경영대.대학원 교수, 북한정책포럼 회장)

존경하는 조동진 목사님은 하나님 사랑, 민족 사랑으로 충만한 분이십니다.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나신 목사님은 일평생을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에 헌신하셨습니다. 여순반란사건과 1950년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오직 복음으로 상한 백성들을 치유하며 구령의 일념으로 일하셨습니다. 1960-1970년대에는 교회행정과 선교를 체계화하고, 빌리그래함전도집회 등 대형집회들을 주도하며 한국 교회 부흥의 중심에서 섬기셨습니다.
- 허문영 (통일부 통일교육심의위원)

어쩜 이리도 재미있고 이리도 감동적이고 이리도 도전을 주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지나간 시대의 역사가 한 사람의 인생 역정을 통하여 대하드라마처럼 펼쳐지는 이 책에서,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갈구하는 우리 시대의 얽힌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는 엄청난 지혜의 보고를 발견하는 느낌입니다.
- 곽수광 (푸른나무교회 담임목사, 코스타 코리아 대표)

2018년 4월 판문점 평화의집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 소식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이 소식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주님이 주신 새 계명을 실천하려는 많은 이들의 기도와 헌신의 씨앗들이 반목, 대결, 미움, 증오, 전쟁 연습 등의 어둡고 깊은 땅 속에서도 죽지 않고 생명이 되어 새싹으로 솟아오른 것이 아닐까요? 이 씨앗 속에는 이 책에 소개된 조동진 목사님의 눈물과 헌신도 함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 김정명 (은현교회 원로목사, 사단법인 하나누리 이사장)

우리는 늦었지만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을 통하여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는 김구, 안창호, 이승훈, 손양원 목사 등의 정치지도자, 교육가, 신앙인들의 면면을 되새기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널리 알려지고 읽혀져 조동진 목사님의 실천적인 화해, 평화, 통일의 염원이 재조명되기를 희망한다.
- 김형식

평범한 사람들보다 적어도 25년을 빨리 걸어가신 그의 인생 여정은 항상 외로운 선견자의 길이었습니다. 가장 친서구적 사고를 가졌지만 반서구적이라는 오해를 받았고, 가장 복음적인 신학을 견지했지만 에큐메니컬(ecumenical)로서 살아오셨습니다. 누구보다 많은 오해를 받았던 한국선교의 개척자인 조동진 목사님의 글을 다시 읽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값진 일입니다.
- 조용중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사무총장)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증거하고 싶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으로 민족이 통일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 《미스터 미션, 조동진》은 단순히 미스터 미션, 조동진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민족의 근대사요, 한국 교회사 그 자체이다. 한국 교회의 선교역사요 민족운동과 통일운동의 역사다. 한 사람의 인생 역정을 통하여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 김영제 (선교중앙교회 목사, 디아스포라선교회 대표, Global Blessing 자문위원)

친구요 동역자인 이민교 목사님으로부터 《미스터 미션, 조동진》 원고를 받고 이렇게 ‘폭풍독서’를 해본 것도 참 오랜만이다. 내용이 흥미로워 300페이지 넘는 책을 단숨에 읽었다. 무엇보다 책 곳곳에서 발견되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돌아보고 새롭게 결단할 수 있는 한편의 드라마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조동진 목사님의 일생, 곧 조 목사님의 민족의식, 교회와 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 형언할 수 없는 삶의 경험은 후대에게 길이 남겨줄 고귀한 선물이며 유산이다.
- 박종근 ((사)모두함께 이사장, 서울모자이크교회 담임목사, Global Blessing 자문위원)

이 책은 조국의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딛고 한국 교회의 성장과 세계선교의 선두에 섰던 전전(戰前) 세대 조동진 목사의 삶을 북한 장애인 사역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전후(戰後) 세대 이민교 목사를 통해 투영해보고, 민족통일과 세계선교의 길을 제시하는, 세대를 초월한 내비게이션(navigation)이다.
- 양창석 (남북회담본부장 역임, 숭실대학교 초빙교수, (사) 선양하나 대표, Global Blessing 자문위원)

한국을 떠난 지 40년인 이민자의 눈으로 읽는 《미스터 미션, 조동진》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이 책 속에 녹아내려 저의 심장에 남아 있습니다. 통일된 한반도를 그리워하는 디아스포라 코리언이 어디 저 혼자만이겠습니까? 남과 북, 특히 북한과 미국의 가교 역할을 감당했던 조동진 박사님의 증언과, 삶으로 세계선교를 보여준 흔적이 디아스포라 코리언(Korean Diaspora)들에게 읽혀지도록 추천합니다.
- 오상원 (오상원치과병원, Global Blessing 호주 이사장, 시드니순복음 교회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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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민교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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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한센인들에게 불교를 전하던 그는 살아 있는 부처(活佛)가 되고자 눈썹을 깎고 한센인들의 손과 발이 되는 섬김을 통해 ‘진리’를 전하려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부처를 받아들인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불교를 전하는 그를 불쌍히 여기는 한센인들에게서 “예수 믿으라”고 역(逆) 전도를 당하게 된다. 7년이 지난 어느 날, 소록도 법당에서 목탁을 치며 염불하던 중, 소록도 화장터에서 수없이 들었던 찬송이 그의 혀와 온몸을 사로잡았다. 법당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난 그는 용서받은 탕자가 되어 아버지의 사랑을 알아, 신학교에 입학해 목사가 된다. ‘복음에 빚진 사람’이 된 그는 약사로 일하던 아내(이미라)와 어린 두 자녀(하늘, 영광)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에서 축구를 통해 농아교회를 개척했다. 2000년 KBS <한민족 리포트>에 ‘우즈벡 한인목사와 농아축구단’이 방영돼 그의 신분이 드러나게 되고, 마침내 미국에서 발생한 9?11 사태의 영향으로 추방당했다. 그 뒤 카자흐스탄에서 농아들의 자립을 도모하는 일터교회(콩나물, 두부, 뻥튀기 등)를 하는 사역이 2011년 KBS 2TV <사랑 싣고 세계로>에 ‘카자흐스탄에 심은 사랑’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에서 20년 세월 동안 농아축구팀을 만들어 아시안게임 4회, 올림픽 2회, 월드컵 1회에 국가대표 감독으로 출전했다. 중앙아시아 농아들에게 전념하며 살던 그는 하나님의 손짓을 통하여 남북한의 38선(휴전선)이 마치 허리 신경이 마비된 38년 된 중풍병자와 같은 장애인 국가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이에 지금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이 보낸 사람으로, 장애인들의 친구로, GP선교회 소속으로, 사단법인 민족통일에스라운동협의회(Global Blessing) 대표로 사역하고 있다. 저서는 《복음에 빚진 사람》, 《산속에 살았던 물고기》(창조기획), 《하나님이 보낸 사람》(넥서스크로스), 《손짓사랑》(도서출판 사도 행전)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복음에 빚진 사람>,<미스터 미션, 조동진>,<통일 연습> … 총 8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한국교회 선교의 생생한 역사!
“미스터 미션, 조동진 목사님은 한국 선교의 아버지이시다.”

미스터 미션, 조동진 목사님은 해방 이후 전쟁 중에도 목회자의 사명을 감당하셨다. 무엇보다 선교사로서, 선교 동원가이자 선교 지도자로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 사역의 길을 개척하신 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십 차례 북한을 방문해 생전의 김일성 주석을 연속적으로 만난 한국 기독교 인사는 아마도 그가 처음이자 유일한 분이라고 알고 있다. 

조 목사님이 북한에 복음의 씨앗을 심기 위해 헌신하신 모든 일은 한국교회뿐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도 길이 남을 일이다.
필자는 이런 어른의 뒤를 이어 선교와 북한 사역을 하고 있는 다음 세대 선교사로서, 조 목사님이 목회자요 신학자요 선교사로서 살아오신 삶을 정리할 필요성을 오래 전부터 강하게 느껴왔다. 그러나 부족한 사람이 그것을 감히 상세히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은 나의 사명처럼 다가왔다. 

조 목사님이 쓰셨던 세 권의 회고록을 토대로 정리하되, 내가 대표이사로 임명 받고 조 목사님이 초대 이사장으로 섬기신 ‘민족통일에스라운동협의회’(Global Blessing)의 사역과 관련하여, 그 분의 삶과 사역이 북한 사역의 문을 열게 된 일과 관련한 부분을 부각하여 회고록을 요약하고 정리하였다.
_저자 이민교 선교사의 ‘들어가는 글’ 중에서

한국교회 근현대사는 물론, 특히 해외선교운동과 북한선교와 통일사역을 말할 때 반드시 앞세워야 할 인물이 있다. 해방 이후 서울에 세워진 장로회신학교와 미국 윌리엄캐리대학을 졸업하고, 옥인교회와 서대문교회 등에서 목회활동을 하다 유학을 다녀온 후 후암교회 담임을 거쳐 KIM선교회 등을 설립했던 조동진 박사(목사)다.
1924년 일제 강점기에 북한에서 김구 선생을 따른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나 자연스레 김구 선생의 민족주의 영향을 받았으며, 신앙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교파를 초월하고 세계적 안목을 지닌 목회자요 선교운동가로서, 해방과 전쟁 이후 한국교회 갱신과 근현대 선교 운동을 실질적으로 선도해온 인물이다. 2018년 4월 현재 경기도 모처에서 딸과 더불어 살고 있다.

그의 선교적 안목과 신학 지식은 탁월하여 1000년 이상 고착돼온 서구 중심의 선교관을 성경적으로 탈바꿈시킴에 따라,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비서구 지역이 새롭게 선교의 중심에 서게 하는 혁신적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 결과 1970년대 초에 동양에서는 최초로 전 세계 선교 지도자들을 서울로 불러모아 국제적 선교 포럼을 개최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최초 대규모 집회였던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의 실무를 진두지휘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다수의 전국적 전도집회를 주도하여 70년대 한국교회 부흥운동을 선도했다.

그는 특히 통일운동에 앞장선 인물로서 생전의 김일성 주석을 세 번 독대했으며,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했고, 빌리 그래함은 물론 지미 카터까지 연결되는 그의 국제적이고 광대한 인맥과 적극적인 대북 활동을 통해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사이의 남북 정상 회담이 성사 직전까지 이르렀으나, 안타깝게도 김일성의 급거로 무산된 것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제자를 보면 스승을 아는 법인데, 그가 발굴하고 훈련시킨 선교사들은 1970년대와 90년대 한국의 세계선교를 실질적으로 선도해왔다. 현재 국내 최대 선교회인 총회해외선교부(GMS) 사무총장을 지낸 강승삼 선교사를 비롯해 GP선교회와 그 전신인 각종 선교회들의 대표적 선교사들이 그의 훈련을 통해 동남아 지역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개척선교를 해왔다. 월간목회 발행인 박종구 대표는 청년기에 그와 함께 기독 신문을 발행했으며,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김경래 장로는 조동진이 발탁하여 기독교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 책은 파란만장이라는 진부한 말로는 설명이 부족한 조동진의 일생을 그의 뒤를 이어 북한사역에 몰입하고 있는 이민교 선교사가 정리한 것이다. 
조동진 목사는 과거 <지리산으로 간 목사>, <평양으로 간 목사>, <세상으로 나간 목사> 등 세 권으로 자신의 성장 과정과 목회, 북한 사역, 선교 활동 등을 정리했는데,
저자는 이 세 권을 요약 정리하여 이 책을 구성했다. 따라서 이 책은 조동진 박사 개인의 역사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를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다양한 이면도 볼 수 있고, 한국교회의 생성과 선교운동의 발전 및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


조동진

서구 중심의 기존 해외선교 패러다임을 아시아인의 사명과 관점으로 새롭게 정립한 최초의 동양계 선교 운동가이자, 생전의 김일성을 세 번 만나고 통일의 씨앗을 심은 북한선교의 산 역사. 애즈배리신학교 교수였던 존 시맨즈는 조동진을 ‘미스터 미션’(Mr. Mission)이라 불렀다. 
삶 자체가 선교라는 뜻이다. 

교회성장학자 도날드 맥가브란은 그를 ‘아시아 선교의 활발한 지지자’로 추켜세웠으며, 세계적 선교학자 랄프 윈터는 “그는 진실로 세계 시민이었다”라고 평했다. 이 모두가 한국교회 목회행정의 선구자요 선교학자이며 선교 동원가이자 선교사인 조동진 목사를 향한 세계적 석학들의 극찬이다. 해방 후 한국교회 선교사에서 그를 뺀다면 한국 선교의 뿌리를 결코 논할 수 없을 것이다.
조동진 목사는 1924년 12월 19일 평북 용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조덕천이다.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애즈베리 신학교 대학원(석사), 미국 윌리엄캐리대학교 대학원(박사)을 졸업했다. 후암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다 선교사로 헌신, 후에

  •  국제선교협력기구(KIM:Korean International Mission)와 
  • 동서선교연구개발원(EWC:East West Center for Mission Research and Development)을 설립했다. 
  • 아시아선교협의회(AMA:Asia Missions Associations)를 창립하고 창립 회장으로 섬겼다. 

  • 김일성종합대학교 종교학과 초빙교수 및 평양신학원 초빙교수로서 
  • 평화통일과 민족교회 운동에 힘썼으며, 
  • 말년에 ‘조동진선교신학연구소’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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