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유적지 토산리 향사 옛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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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위치 :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중앙로 16번길 1(토산리 537-1번지)
○ 토산리민 대학살사건 때 최초 집결지였다. 토벌대는 1948년 12월 14일 알토산으로 소개 온 웃토산 주민들과 알토산 주민들을 모두 향사에 모이라 했다. 그 중에서 18세 이상 40세 미만의 남자를 결박한 후 끌고가 표선해수욕장에서 집단 총살했다.
○ 토산리민 대학살사건 때 최초 집결지였다. 토벌대는 1948년 12월 14일 알토산으로 소개 온 웃토산 주민들과 알토산 주민들을 모두 공회당에 모이라 했다. 그 중에서 18세 이상 40세 미만의 남자를 불러모아 결박했다. 젊은 여자들도 따로 불려갔다. 이 날 주민들과 함께 향사에 집결했던 김상보씨는 “남자들을 불러낸 후 여자들에게는 모두 달을 쳐다 보라 했다. 그 날은 음력 보름날이어서 달이 밝았다. 군인들은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는 처녀들을 끄집어냈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표선리 군부대에 끌려가 유치장에서 수감되었고, 12월 18일과 19일 이틀에 걸쳐 남자들이 모두 표선 백사장(한모살, 당캐)에서 집단학살당했다. 여자들은 일주일 후 역시 표선백사장에서 총살당했다.
“누님이 향사마당에 집결됐을 때 끌려가서 희생됐다. 오후 3~4시경, 사람들을 향사에 다 모이라고 했다. 향사터가 200평정도 됐는데 다 모여놓고 남자 18세~40세 남자들은 따로 줄을 서라고 했다. 여자들은 달을보라 해서 안 든 사람들, 우리 누님도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않으니까 끌려갔다. 3일 후에 몰살됐다. 석방돼서 나온다고 했었는데 토벌대장이 죽으니까 보복으로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말이 있었다. 표선지서에 갇혀 있다가 표선백사장 모래밭에서 죽었다. 누님 시신은 아버지가 수습해왔다. 나중에 사혼했다.”(김성헌 증언)
또 이 곳엔 토산리를 에워싸는 성을 만든 뒤부터는 경찰파견소가 들어섰다. 주민들은 파견소를 두르는 성을 겹담으로 쌓아 경비를 섰다. 김씨는 “파견소에는 5~6명의 경찰들이 번갈아 주둔했는데 위미리 출신 강소장은 악독하기로 소문났다.”고 말했다.
※ 출처 : 『개정증보판 제주4·3유적』Ⅱ, 제주4·3연구소, 2020.
현황
어머님!
1918년 4·3사건으로 보리어 도장리 위주 리인은 1844터 일 404 하였다. 다행히 살아남은 우리의 어머님들은 "어어있는 초가지를 일에서 포격이 싸다! 불었는 어린 자식을 중에 중고 시인이 고요히 상동 상사들의 일과 달 을 하디드의 영인들! 및 집단들 알림이 두셨는괴 이십대의 젊은 나이 있기에 아치들을 버리고 다른 대로 가지의 독하게 사실수도 있었으린다 중일에 43-4 : ગયબ 1% 44 2048: કય 들을 키우시서 조선인 태일의 고소득 이들을 만들 이닌 역군들을 만들어 수있습니다.
다만 머리 역탈로 변하시고 허리 굽고 얼굴에 깊 등 둘이 지었어도 지난날을 뒤돌아보시며 산지도 후회하실이 없이 어디 숨은 손으로 손자를 어루만 시시는 자비로우신 이러닝을 될 때 우리 리민들의 가슴을 적시며 드는 이 세상 제일의 어머님 이라 고 사랑스럽게 생각하며 뜻을 모아 이 모사상을 세 웁니다.
2002년 12월 등 김승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