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2

03. “내 조국 일본이 본래 모습을 되찾기만 한다면” : 네이버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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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내 조국 일본이 본래 모습을 되찾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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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0. 00:002,727 읽음








우파계 종교의 결집, 일본을 지키는 모임

“아사히나 씨는 본래 평화운동에 열심이었습니다만, 어느 날 이세 신궁(伊勢神宮)을 참배한 후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메이지 신궁의 다테 다쓰미(伊達巽) 신관과 도미오카하치만 궁(富岡八幡宮)의 도미오카 모리히코 신관, 그리고 다니구치 마사하루(谷口雅春) 선생님 같은 분들에게 ‘일본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하자고 호소했습니다. 그 모임이 커지면서 각 종교단체 지도자나 사상가, 문화인이 가세했고 결국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결성된 것입니다.”

무라카미가 말하는 다니구치 마사하루는 신흥종교단체인 ‘생장의 집(生長の家)’의 교조다. 1893년 효고 현(兵庫縣)에서 태어났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30년에 생장의 집을 창설한 괴인물이다. 전쟁 때는 ‘일본 정신의 현현(顯現)’을 호소하며 군부의 전쟁 수행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급속히 신자를 늘려나갔다. 전후에는 한때 신자 수가 300만 명을 웃돌 정도로 교세를 자랑했고, 1964년에는 정치조직으로서 ‘생장의 집 정치연합’, 약칭 ‘생정련’을 조직하여 정계 진출을 도모하기도 했다.


생장의 집 교조, 다니구치 마사하루(谷口雅春)



다시 말해 생장의 집은 우파 경향이 매우 강한 거대한 신흥종교단체로, 한때는 현실 정계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사실 무라카미 마사쿠니 자신도 과거 ‘생장의 집’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자민당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한 ‘생장의 집’계 정치가였다.

생장의 집 교조인 다니구치 마사하루가 ‘일본을 지키는 모임’의 결성에 크게 공헌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이 점에 관해서는 좀 더 정확하게 전후 관계를 확인해두고자 한다.

다음은 ‘일본을 지키는 모임’의 설립에 크게 이바지한 도미오카 모리히코의 뒤를 이어 도미오카하치만 궁의 신관이 된 사와타리 모리후사(澤渡盛房)가 1985년, 《조국과 청년》(같은 해 8월호)에 게재한 글을 인용한 것이다. 《조국과 청년》은 생장의 집 출신자들로 이루어진 우파단체 ‘일본청년협의회’가 발행한 기관지다. 내용이 조금 길지만, 생장의 집이라는 신흥종교와 신도(神道) 일본 고유의 민족종교. 민간신앙에 외래종교인 유교•불교의 영향을 받아 성립했으며, 신사(神社)와 왕실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계 종교단체가 전쟁 후 일본 우파 운동의 원류로서 어떻게 자리 잡아가는지 그 과정을 엿볼 수 있으므로 꼭 읽어주기 바란다.




1973년경의 일이었다. 도미오카하치만 궁의 선대 도미오카 모리히코 신관이 신도 이세의 숙소에서 가마쿠라 엔카쿠지의 아사히나 소겐 관장과 함께 묵을 때였다. 그들은 일본의 현재를 걱정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중략)

두 사람이 앞으로 행동을 일으키려 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무엇보다 메이지 신궁 신사의 경내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다테 다쓰미 신관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다테 신관은 도미오카 신관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유식자 여러 사람을 찾아뵙기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방문한 이가 바로 생장의 집 다니구치 마사하루 총재였다.

당시 나는 도미오카 신관을 따라다니는 일이 많았는데 어느 날, 아사히나와 도미오카 두 신관이 하라주쿠(原宿) 본부로 다니구치 총재를 방문했을 때 나도 함께하였다. 두 신관께서는 다니구치 총재에게 방문 목적을 교대로 이야기하면서 세상을 걱정하고 종교심의 환기를 논하였다. 정신운동의 필요성에 관해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때 다니구치 총재 입에서 강력한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생장의 집이 두세 개쯤 사라지더라도 조국 일본이 본래 모습을 되찾기만 한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 우리는 그런 각오와 굳은 결의로 생장의 집을 거점으로 종교활동에 정진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협력해야 할 일일 뿐만 아니라 생장의 집 활동 자체가 목표하는 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실로 애국자의 잠언이었다. 이에 힘을 얻은 두 신관은 이후 각자 여러 유식자를 방문하여 설득한 결과, 1974년 4월 2일 메이지 기념관에서 ‘일본을 지키는 모임’을 발족하게 되었다.




신도 종교의 중심적 존재라 할 수 있는 메이지 신궁. 그리고 전후 일본 우파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다니구치 마사하루가 이끄는 거대 신흥종교 ‘생장의 집’. 양대 진영의 지도자들에게 우파계 종교인이 호소함으로써 두 진영의 두터운 지원을 받으며 발족한 ‘일본을 지키는 모임’. 거듭 말하지만 이 구도는 지금도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다.

즉, 일본회의라는 존재의 배후에는 신사본청을 축으로 하는 신도 종교단체와 생장의 집의 그림자가 조직과 인맥에 드리웠고, 어쩌면 자금에도 짙게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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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회의의 정체

저자 아오키 오사무

출판 율리시즈

발매 2017.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