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1

Sunghwan Jo | Facebook 인류세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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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돌아보며: 지구학과의 만남, 지구인문학의 출발>
내가 '지구학'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건 2019년에 이병한 선생과 <개벽파선언>을 연재하면서부터이다. 그때는 '개벽학'에 빠져 있어서 '지구학'이 뭔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2020년 2월 18일, 허남진 박사와 대화 중에 '지구인문학'이라는 말이 나왔다. 향후의 연구소 방향을 고민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4월, 본격적으로 '지구인문학스터디'가 시작되었다.
그때 1997년에 나온 울리히 벡의 <지구화의 길>을 읽었다(원제는 What is Globalization?). 거기에서 처음으로 '지구성'(globality)이라는 말을 배웠다. 내친김에 1986년에 나온 <위험사회>도 읽었다. 거기에서 "위험의 지구화"(globalization of risk) 개념을 접하고, 울리히 벡의 가치를 알았다. 두권의 책 덕분에 '세계화'와 '지구화'의 차이를 알았다. 둘다 원어는 globalization이다.
그리고 1988년에 나온 토마스 베리의 <지구의 꿈>을 읽다가 "지구공동체"(Earth Community) 개념을 접했다. 내친김에 2000년에 나온 <위대한 과업>도 읽었다. 그리고 토마스 베리의 '지구학 신자'가 되었다.
여름에는 2013년에 나온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를 읽었다. 13번째 스터디 책인데, 가히 '인류학'이야말로 이 시대 인문학의 최고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학의 언어가 수학으로 이루어졌다면 인문학의 절정은 인류학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8월 26일, 대망의 첫 발표 기회가 주어졌다. "COVID-19 대학연구소의 나아갈 길"이라는 주제로 열린 원광대학교 교책연구소 연합포럼이다. 부총장님을 비롯하여 각 연구소 소장님들을 대상으로 한 발표였다. 이날 허남진 박사와 <코로나시대의 지구인문학>이라는 제목으로 40분 동안 발표를 하였다. 기업으로 말하면 새 상품을 선보이는 무대였다. 하지만 법학과 교수님 앞에서 <지구법>을 언급하고, 서양철학 교수님 앞에서 <신유물론>을 말해야 하는 조심스런 자리이기도 했다.
우리는 90년대 이래로 서양에서 대두된 Global Studies와 토마스 베리 등이 말하는 Globalogy 와의 차이를 부각시키면서, 전자가 지구화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이라면 후자는 인문학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지구인문학'이라고 명명할 수 있으며, 동학이나 원불교와 같은 개벽학도 지구인문학에 다름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맨 앞에 앉아 계셨던 전정환 부총장님이 맨 먼저 박수를 쳐주셨다.
그리고 10월말, 이날 발표를 보완해서 대망의 첫 논문이 나왔다. 제목은 <지구인문학의 관점에서 본 한국종교 - 홍대용의 "의산문답"과 개벽종교를 중심으로>. '종교'를 강조한건 투고한 저널이 우연히 종교분야였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는 발표때 언급한 홍대용에 한 챕터를 할애하였다. 그의 <의산문답>은 실로 "한국철학에서의 지구인문학 1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고를 보내고 다음날 링겔을 맞았다.
그 사이에도 지구인문학 스터디는 계속되었다. 9월에는 최한기의 <지구전요> 강독이 추가되었다. 홍대용이 한국철학에서의 지구인문학 1호라면, 최한기는 2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구전요>는 국내에 번역이 없기 때문에 한문에 능하신 김봉곤 교수님이 번역을 하고, 최한기로 학위를 한 야규 마코토 박사가 해설을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9월 2일 첫날 강독에는 박맹수 총장님도 참석하셨다. 강독이 끝나자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지구학과 한국학의 만남"이자 "최한기 지구학 연구의 최강팀"이라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스터디때 읽은 <지구전요> 서문과 세계종교 부분은 <다시개벽>에 번역문을 싣기로 했다.
그리고 2020년을 하루 앞둔 어제, 2017년에 나온 클라이브 해밀턴의 <인류세> 전반부를 읽었다. 우리가 지구인문학의 대부로 생각하던 토마스 베리와 차크라바르티를 비판하는 대목이 흥미로웠다. "과연 경제학을 전공한 사회과학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마스 베리에 대한 비판은 피상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지만, 차크라바르티에 대해서는 꼼꼼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문제의 차크라바르티의 <역사의 기후>를 영어와 한글로 읽기 시작했다. 앞부분만 읽었는데 뜻밖에도 생태학과 지구학의 개념적 차이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얻었다. 대가는 이름값을 한다.
이렇게 해서 2020년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예년과 다름없이 원고, 수업, 강연, 발표, 업무로 쫓긴 1년이었지만, 올해의 핵심은 단연 연구였다. "대학은 연구하는 기관이다."는 말은 일본에서 6년 동안 지도교수님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온 뒤로는 이런 얘기를 들을 기회가 없다. 한국 대학에서 주로 듣는 얘기는 취업, 영어, 등재지 등등... 우리가 여전히 외국 유학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런 풍토에서 새로운 학문이나 철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수운이 말했듯이 "사근취원(捨近取遠)"하는 관성을 버리지 않는한 "다시개벽"은 일어나지 않는다.
- 2020년 12월 31일 새벽 상주선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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