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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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의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를 읽고 있다. 문학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내가 읽어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해나 할까 싶었지만 의외로 재밌게 읽고 있다. 창비담론의 종합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태 백낙청을 민족주의 좌파쯤 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과 박사학위논문을 읽다보니 그냥 로런스 연구자이자 비평가로서 여태까지 발언해왔던 것이지, 좌파니 민족주의자니 하는 것들은 크게 의미없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로런스 연구자라는 생각이 든다. 백낙청의 많은 말들이 다 로런스 연구로 환원될 수 있다.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론이니 중도적 변혁주의니 할 때는 생각만큼 그렇게 대단한 학자라 보기 어려운데 왜들 그렇게 떠받들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로런스 연구를 읽어보니 좀 다르게 보인다.
그렇다고 내가 이 책을 마냥 높게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서구적 근대'의 황혼기라는 현실인식에서부터 후천개벽을 중심으로 동서양의 회통會通을 이뤄내 자본주의를 넘어설 사유를 마련해보자는 야심찬 포부까지 하나도 나와 통하는 것이 없다.
문학비평가도 아니고, 로런스를 제대로 읽어본 이도 아닌 문학과 거리가 먼 나같은 사람이 이 책을 어떻게 비평해야 좋을지 머리가 아프다. 괜히 이 책의 발제를 맡는 바람에.. 잘 알지도 못하는 문학비평에 대한 비평을 해야 하니 생각이 복잡해진다.
지금 생각하기로는 마르크스판 '역사의 종언'이 지니는 의미를 명료하게 해서 백낙청 식의 후천개벽론과 대비시키는 게 제일 좋지 않은가 싶다. 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거치며 인류사가 '진정한' 의미의 역사의 단계에 도달하게 되는지, 다시 말해서 공산주의 이전의, 전前역사적 단계의 최후의 단계로 왜 자본주의가 상정되는지를 그려내면서 백낙청이 말하는 후천개벽론이 지니는 한계를 지적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모르겠다. 책을 빨리 냈어야 좀 편하게 말을 하는데 이것 참.. 아무튼 백낙청을 좀 다시 보게 된 책이라 머리가 아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