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3

[김조년] 정치와 제사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정치와 제사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정치와 제사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1.07.12 18:59  수정 2021.07.12 19:0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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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 명예교수

[금강일보] 앤소니 드 멜로 신부가 쓴 책을 보다가 이런 대목을 읽었다.

어느 신부가 시골 한 성당에 부임하였다. 그는 오래 전에 거기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성당을 돌아볼 때, 옛날에 그곳에서 일하던 집사가 계속하여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집사님은 어떻게 그렇게 마치 촛대에, 강론대에, 성찬그릇에, 계단에, 신자들이나 신부가 앉는 자리에, 풍금이나 오르간에, 벽에 걸려 있는 성화에, 드나드는 문에, 그것을 잠그는 문고리에, 성수대에 마치 하느님이 거기 계신 것처럼 그렇게 경건하고 지극한 맘으로 예배하듯이 그것들을 닦고 정리합니까?’ 그 늙은 집사가 물음으로 대답했다. ‘그럼 신부님은 그런 맘을 가지고 미사를 집전하지 않으십니까?’ 그 늙은 신도가 하는 그것이 곧 예배요 미사요 제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제사가 많았다. 매달 있었던 듯하다. 그 때가 되면 할아버지의 지시로 미리 집안 여기저기를 깨끗이 청소하였고, 길을 쓸었고,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하였고, 제사상에 올릴 음식을 마련할 때도 잡담을 하거나 깔깔거리고 가볍게 하지 못하게 하였다. 모든 음식은 간결하지만 깔끔하고 정갈하게 차리게 하였다. 밤 열두 시 넘어서 드리는 제사까지 어린 우리에게도 잠을 자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시간이 임박하면 도랑에 나가 찬물로 얼굴을 씻게 하였다. 그날 제사를 받기 위하여 오는 조상신을 거북스럽게, 불편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상을 차리고 잔을 올리고 절을 하고 기다리고 하는 일이나 다 끝난 뒤 음식을 같이 나누는 일이나, 이웃에게 제사음식을 나누어 드릴 때까지도 아주 거룩하고 엄숙하게 일을 치렀다. 멀리 있던 조상신이 그날 당신의 제삿밥을 드시기 위하여 오실 때 기쁘고 행복하게 해드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제사하는 맘이라는 것이었다. 제사는 한 마디로 희생을 드리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조상님이 생시에 자녀들에게 하였다는 교훈되거나 좋은 일에 대한 회상을 하고는 하였다. 그렇게 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어린 나에게는 의문이 있었다. 그런 말씀들을 그날, 제삿날 하루만이 아니라, 보통 때도 실천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제사를 거룩하게 하는 사람들도 일상에서는 다투고 욕하고 거짓말하고 지저분하고 속이고 도둑질하고 욕심을 부리고 악을 쓰면서 사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제사 때가 되면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거룩해 진 듯하였다. 그런 말을 그 때는 몰랐지만, 저런 것은 형식과 내용을 분리하여 사는 삶, 정직하고 솔직하지 못한 거짓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자기분열의 삶을 사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 뒤 내 삶도 그렇게 분열되고 분리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보면서 반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삶은 제사와 일상이 비슷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린 때도 가졌었던 싶다.


 
아무튼, 아주 오랜 옛날에는 정치와 종교가 하나였다고 한다. 사람들의 지성이 깨이고, 삶이 복잡하여지면서 이 둘은 갈라서게 되었다. 지금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서 다행이기도 하지만, 또 한 면으로는 아쉬움도 있다. 다행이라는 것은 그것이 하나가 되어 있는 동안 매우 큰 폐해가 심했던 것이 사라진 것이고, 아쉬운 것은 정치나 종교는 둘 다 희생을 드리는 것, 곧 제사였다는 것이 사라진 점이다. 잘하는 정치나 종교행위는 곧 하늘에 드리는 제사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을 섬기는 제사행위였기 때문에, 지금은 두 곳에서 이런 것들이 사라진 것이 아쉬움이란 말이다.

현대는 정치의 시대요, 지금은 정치의 시절이다. 종교성이 사라지고 제사가 없는, 마치 다스림과 통치만이 정상인 것처럼 된 시대다. 나는 정치가 없는 사회를 꿈꾸지만, 그런 사회가 올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정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같이 모여 사는 사람들이 꾸리는 자치생활이다. 자기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아주 다양하게 얽힌 그물망으로 조직된 자치조직을 통한 공동생활, 즉 모두가 모두를 섬기는 그런 공동자치생활이 되면 좋겠다는 맘이다. 그러려면 역시 어떤 깊은 철학과 종교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 말 속에는 자치생활로 이루어지는 공동생활 자체가 하나의 제사행위, 곧 희생을 바치는 생활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모든 의식의 근본이 되는 근본의식, 하늘이라거나 도라거나 사리라거나 자연이라고 흔히 말할 수 있는 개인을 초월한 보편의식이 있다고 본다. 그것을 계발하고 존중하며 섬기는 전제에서 공동생활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거짓이 아니라, 진정으로 드리는 제사와 같은 거룩한 자치공동체가 되면 좋겠다.

그렇다면 지금 정치시절에 떠도는 스스로 영웅이라거나 위대한 영도자라는 착각에 빠진 정치중독자들을 구제하는 일이다. 한두 가지 허울에 속아서 인간의 속 바탈을 잃어버린 데서 벗어나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정치를 하겠다고 떠들기 전에 ‘네 맘을 길러라’ 하는 말을 일반 시민은 그들에게 요청해야 한다. 편협하고 의도를 가지고 편파방송을 하는 사이비 언론에 혹하여 부는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가랑잎 같은 줏대 없는 존재가 아니라, ‘나는 나다’ 하는 맘과 ‘내 줏대에 따라 판단한다’는 아주 냉정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시민, ‘내가 곧 제사를 받을 존재다’라는 도도하고 당당한 의식을 가진 차가운 시민의 자리로 갈 때 정치망둥이들이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정치는 제사행위라야 한다. 시민앞에 정치풍각쟁이들이 차리는 제사상과 자세와 맘을 읽을 수 있는 시민으로 존재할 때 바른 정치는 자리를 잡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