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4

알라딘: 다산의 사랑 정찬주

알라딘: 다산의 사랑
다산의 사랑 
정찬주 (지은이)반딧불이(한결미디어)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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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정찬주 장편소설. 정찬주는 정약용을 주인공으로 그려내지는 않았다. 물론 정약용이 서사의 중심임은 분명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는 이 소설의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작가는 주인공을 배경으로 안배하면서 배경 속에서 드러난 물상들이나 사람들을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전 생애를 다루는 듯하면서도 18년 동안의 유배 시기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75년의 생애에서 이 18년이 갖는 의미가 크기는 하다. 우리 사상사에서 굵직한 비중을 차지하는 저서들과 이념들이 이 시간 동안 쓰여지고 빚어졌다. 그렇다고 그 빛나는 저서들과 이념의 내용과 영향, 가치가 이 소설의 주된 골자이지도 않다. 작가의 시선은 우리의 예상과는 다른 지점에 줄곧 머물러 있다.

소설은 유배기와 해배이후의 사건을 교차시키면서 진행되는데, 그 사건의 동력을 제공하는 이는 정역용 자신이 아니다. 정약용이 유배객으로 살 때 들인 소실 남당네(홍임 모)와 그녀가 낳은 딸 홍임이의 이야기가 한 축이 되고, 강진에 유배 살면서 만난 남도 땅의 제자 18명의 이야기가 또 한 축을 이룬다. 이들이 있어 우리가 그동안 소홀히 했던 정약용 유배생활의 틈새가 드러나고 채워진다.


목차


1장
소내나루 뱃길·11
백자찻잔·20
주막집 봉놋방·30
봄나들이·41
겸상·53
남당네·65
유람과 독서·77

2장
영춘화·89
나를 지키는 집·100
꿈·110
순교의 시·121
다산화사·132
원족·142
초의·151
누비옷·163
하피첩·173
믿음과 배교 사이·183
무담씨·196
홍임이·206
찻자리·217
매조도1·228
다신계·239

3장
햇차 한 봉지·253
미리 쓰는 묘지명·265
매조도2·278
두 제자·293
홍임이 출가·303
작별·313

작가 후기 다산의 믿음과 배교 사이를 다시 사색하며·324

부록
유네스코 선정 세계의 인물, 정약용 생애·335
참고문헌·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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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62지가 그 뜻을 생각해 본께 풀허고 나무에 비교허문 아버니는 씨요, 어메는 땅이지라우. 씨를 땅에 막 숭겄을 때는 보잘것읎지만 땅이 질러내는 공은 많이 크지라우. 허지만 밤톨은 밤이 되야뿔고 씨나락은 벼가 되야뿔 듯 몸뗑이를 온전하게 맹글아 내는 거는 모다 땅의 기운이기는 허지만 끝에 가서 각 패로 나누어지는 거는 모다 씨에서 생기... 더보기
P. 178~179“남당네 음식 솜씨는 괜찮더냐?”
“아버님도 만족하시고 초당제자들도 모두 좋아합니다.”
“다행이구나.”
홍씨 부인의 목소리가 힘없이 작아졌다. 등골이 찌릿찌릿하다면서 두 손으로 허리를 잡았다. 통증이 하체로 내려가면 두 다리까지 결린다고 했다. 잠시 후 홍씨 부인은 속에서 쓴물이 넘어오는지 마른침을 삼키기도 ... 더보기
P. 191~194그런데 잠시 후 정약용이 갑자기 크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그래도 내가 중국에서 온 한 신부를 살렸지. 조선의 천주학을 살린 셈이었지.”
“영감마님, 천주학이란 말씸 함부로 허지 마시랑께요. 누가 들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간당께요.”
“남당네가 날 고발하겠나. 내 얘기를 들어보게.”
“그... 더보기
P. 236정약용은 이전과 같이 종이에 몇 번 연습을 하더니 바로 천 조각을 폈다. 그런데 지난번에 그린 「매조도」와는 조금 다르게 그리기 시작했다. 오래된 고매 두 가지를 그리더니 잔가지를 눈에 띄게 줄였다. 꽃망울 개수도 적고 더욱이 멧새는 한 마리만 그렸다. 붓 가는 데가 적다 보니 지난번 그림보다 단조롭게 보였다. 또 어찌 보면 욕심... 더보기
P. 263~264기러기 끊기고 잉어 잠긴 천리 밖
해마다 오는 소식 한 봉지 차로구나.
雁斷魚沈千里外
每年消息一封茶

차 한 봉지를 받으며 홍임 모녀의 안부를 짐작한다는 시였다. 홍씨 부인과 자식들의 눈치 때문에 더 이상 자세하게 쓰지 못하는 편지였다. 홍임 모 또한 윤종진이 읽어주는 한자의 시구만 듣고서도 정...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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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정찬주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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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불교적 사유가 배어 있는 명상적 산문과 소설을 발표해온 작가. 1983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작가가 된 이래, 자신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변함없이 천착하고 있다. 호는 벽록(檗綠).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상명여대부속여고 국어교사로 교단에 섰다가 십수 년간 샘터사 편집자로 법정스님 책들을 만들면서 법정 스님은 저자를 재가제자로 받아들여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無染)이라는 법명을 내렸다. 현재 전남 화순 계당산 산자락에 산방 이불재(耳佛齋)를 짓고 2002년부터... 더보기

수상 : 2023년 유심작품상 , 2010년 동국문학상
최근작 : <2023 제21회 유심작품상 수상문집>,<서른부터 다가온 반야심경의 행복>,<부처님 인생응원가> … 총 147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정약용이 사랑한 여인,
혜장, 초의, 차(茶)와 제자들

사람 사는 세상에서의 다산 정약용
역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사람을 소설로 형상화하기는 ‘사자가 동물의 왕’임을 설득하는 글만큼이나 싱겁고 어려운 일이다. 그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속속들이 다 안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논의하고 소개해서 과연 뭘 새롭게 제시할 수 있는지 찾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진부한 중첩이 되지 않으면 엉뚱한 넋두리에 빠질 소지도 크다. 그러므로 더 큰 의문을 가져야 하고, 남들이 보지 못했던 구석을 찾아 그곳에 빛을 뿌려야 한다.
수박 겉핥기든 수박을 통째로 다 먹었든 다산 정약용(1762-1836)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안다고 해서 과연 우리는 그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일까? 한 인간의 모습은 다면체다. 더구나 그의 정신세계나 삶의 영역은 아무리 조각내고 조립해도 틈새는 생기고 만다. 묘하게도 틈새는 보일 때도 있지만 보이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작가 정찬주가 찾아낸 다산의 틈새는 어디였을까? 정찬주는 처음부터 우리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다산에 대한 이야기는 할 생각이 없었다. 현군(賢君) 정조의 지지 아래 자신의 역량을 펼쳤던 청장년 시절, 천주교 신앙과 관련해 받았던 시련의 시간들, 그리고 그 여파에 휩쓸려 겪어야 했던 기나긴 유배 생활과 저작 활동, 또 유배에서 풀려난 뒤 보낸 쓸쓸하고 울분에 찬 만년. 물론 이런 이야기들만으로도 훌륭한 한 편의 소설은 완성된다. 소설이라는 입체적인 구상과 묘사가 잡아내는 핍진함은 역사가나 학자들이 조명한 정약용의 면모들과는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정약용을 다룬 소설은 쓰기 쉽지 않다. 그러고 보니 황인경과 이수광의 작품 외에 정약용을 소설로 그려낸 작품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정찬주는 자신의 소설에서 정약용을 주인공으로 그려내지는 않았다. 물론 정약용이 서사의 중심임은 분명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는 이 소설의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작가는 주인공을 배경으로 안배하면서 배경 속에서 드러난 물상들이나 사람들을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전 생애를 다루는 듯하면서도 18년 동안의 유배 시기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75년의 생애에서 이 18년이 갖는 의미가 크기는 하다. 우리 사상사에서 굵직한 비중을 차지하는 저서들과 이념들이 이 시간 동안 쓰여지고 빚어졌다. 그렇다고 그 빛나는 저서들과 이념의 내용과 영향, 가치가 이 소설의 주된 골자이지도 않다. 작가의 시선은 우리의 예상과는 다른 지점에 줄곧 머물러 있다.
소설은 유배기와 해배解配이후의 사건을 교차시키면서 진행되는데, 그 사건의 동력을 제공하는 이는 정역용 자신이 아니다. 정약용이 유배객으로 살 때 들인 소실小室 남당네(홍임 모)와 그녀가 낳은 딸 홍임이의 이야기가 한 축이 되고, 강진에 유배 살면서 만난 남도 땅의 제자 18명의 이야기가 또 한 축을 이룬다. 이들이 있어 우리가 그동안 소홀히 했던 정약용 유배생활의 틈새가 드러나고 채워진다.
자칫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쉬운 유배 생활을 혼신의 힘과 정성으로 뒷바라지한 남당네(홍임 모). 늦둥이로 태어나 쓸쓸한 유배의 삶에 빛과 위안, 아비로서의 위치를 일깨운 홍임이. 두 사람에 대해 정약용은 누구보다 각별한 애정과 염려를 아끼지 않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삶은 정약용이 미칠 수 없는 영역으로 멀어져가기만 한다. 위대한 학자이자 철학자였지만, 사랑하는 피붙이조차 뜻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정약용의 삶은 보기보다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암울하고 참담하다.
18명을 헤아리는 강진 제자들의 삶은 또 어땠을까? 생사고락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은 정약용이 가장 고난의 시기를 살 때 함께 뜻을 모았고, 정약용의 부족한 점을 채워 학문적으로 매진할 수 있게 만든 장본인들이다. 그들이 어떤 야심과 기대를 가지고 정약용 문하에서 배움의 길을 갔든, 유배의 삶이 길었고 해배 이후의 삶도 순탄치 않았던 정약용에게 그들은 많지 않은 제자군弟子群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자신의 재능과 포부를 실현한 사람은 거의 없다. 자신들의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자 긴 기다림의 시간에 지쳐 하나둘 정약용을 등지거나 심지어 배신까지 했지만 소설을 읽노라면 그들을 탓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소실댁 남당네와 서녀 홍임이. 투박하지만 진심을 다해 정약용을 스승으로 섬겼던 남도의 제자들. 그들이 겪는 애환과 좌절, 서툰 욕심과 지극히 인간적이라서 외면할 수 없는 몸짓들이 이 소설에서 우리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넉넉히 제공한다.
나는 작가 정찬주가 이들을 소설의 전면에 내세우면서 “잡초라 하여 어찌 이름이 없겠는가? 무명의 꽃이라 해서 밟혀도 어찌 아픔이 없겠는가?” 하는 화두를 던졌던 것 같다. 역모와 흉계, 아첨과 이해관계로 이합집산하는 도성에 틀어 앉은, 속 보이는 무리들의 작태들을 보고 신물이 난 정약용에게 과연 누가 진정한 도반道伴이었는지 묻고, 암시적이면서도 당연히 드러날 법한 대안을 이 소설에서 구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도 땅 사람들은 하나같이 서울의 말쑥한 표준어가 아니라 구수한 남도의 사투리를 쓰고 있다. 전혀 놀랄 게 없는 일인 데도 나는 소설의 대화 가운데 8할 정도를 차지하는 사투리의 구사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다. 나는 고향이 호남이 아니라 이 사투리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 같은 구절을 여러 번 읽는 수고를 들여야 했지만, 내 고향 사람들이 쓰는 사투리들, 그리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 사람들이 쓰는 사투리들을 떠올리면서 내가 남도의 어느 동네에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내 이웃이고 나와 함께 흙을 묻히고 냇물의 물을 마시면서 미역을 감는 듯한 짜릿한 현장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사람들의 냄새가 물씬 나는 작품이다. 정약용 역시 18년 동안 유배를 살면서 이 걸쭉한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에게서 그가 어디서도 맡을 수 없었던 사람 냄새를 맡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정약용은 18년 유배기 가운데 첫 해인 1801년 2월에서 11월까지 10개월 정도는 경상도 장기 땅에서 지냈고, 그곳에서도 상당한 작품과 저서를 썼다.)
정약용은 유배를 살면서 생애 가운데 가장 괴로운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히 장담하건대 새소리나 물소리만큼이나 정겨운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과 지낸 그때가 가장 사람답게 산 시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약용의 마음을 헤아려 진솔한 사람들의 사연으로 정찬주는 소설을 꾸몄다. 그래서 소설의 제목도 ‘다산의 유배’ 아닌 ‘다산의 사랑’인 듯하다. - 임종욱(문학평론가, 소설가)
?
집필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매듭짓는 <다산의 사랑> 결정판
작가는 2012년에 초판을 내고 나서 2018년에 2백자 원고지 50여 매를 증보하고 2020에 또 50여 매를 증보하여 개정판을 냈다. 작가는 불가피한 사정과 아쉬움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2018년 증보한 내용(278-292쪽)은 다산초당에서 함께 살았던 소실의 딸인 홍임을 위해 그린 매조도의 행방을 추적한 내용인바, 홍임 모가 재가하게 될 것 같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사헌부 감찰직을 버리고 고향 영천으로 내려간 성균관 입학 동기이자 친구인 이인행에게 그 매조도를 보내버린 이야기이다. 그 매조도로 인해서 홍임이 의붓아버지에게 피해를 볼 수도 있고, 정약용 입장에서는 본처 홍씨 부인에게 항상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2020년에 두 번째로 증보한 내용(183-195쪽)은 정약용의 외배내신(外背內信), 즉 겉으로는 배교한 척했으나 마음속으로는 천주교를 믿었던 문제를 다룬 이야기다. 1794년 11월 중국인 주문모 신부는 천주교도 윤유일과 지황, 최인길의 도움을 받아 한양으로 잠입했다. 그러나 주문모의 밀입국은 이벽의 동생, 별군직(別軍職) 무관 이석에 의해 채제공에게 보고되고 만다. 이석과 함께 있었던 정약용은 오위(五衛)의 무관인 부사직(副司直) 신분이었다. 정약용은 역관 최인길 집으로 달려가 주문모 신부를 남대문 안쪽 강원숙 집에 피신시켰다. 목숨을 건 위험한 일이었다. 이후 주문모 신부는 강원숙 사랑채 다락방에 숨어 6년을 지냈다. 이를 보면 정약용의 외배내신(外背內信)은 분명한 것이라며 작가는 소설로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몰랐던 인간 정약용의 따뜻한 슬픔
강진으로 유배 온 다산은 동문 밖 밥집 노파를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지난날의 교만을 버린다. 초당으로 가서는 본연의 선비로 돌아가 강학을 열고 밭뙈기를 일구며 농부들의 수고를 경험한다. 그러던 중에 다산은 남당포 여인을 동암에 들였고 홍임이라는 딸을 얻는다. 초로의 나이에 늦둥이를 보았으니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훗날 홍임에게 주려고 꽃핀 고매(古梅)에 새 한 마리가 나는 그림을 그려둔다. 한때 다산은 유배생활의 후유증으로 반신마비가 와 절망했다. 그러나 홍임 모가 날마다 차(茶)로 병수발을 하여 다산이 다시 집필할 수 있게 해준다.
마침내 다산은 해배가 되어 고향 마재로 간다. 뒤에 홍임 모와 홍임이도 마재로 갔지만 곧 초당으로 돌아오고 만다. 초당과 마재의 공기는 견디지 못할 만큼 달랐다. 그래도 다산은 생이별을 감내할 뿐이다. 마재의 아내와 가족들도 신산하기는 마찬가지. 다산은 홍임 모가 덖어 올리는 햇차로 그녀의 외로운 살림살이를 짐작할 뿐, 몇 해가 지나 그마저도 아득해지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는다.
물론 그림자의 삶으로 울었던 이가 홍임 모만은 아니다. 어린 딸 홍임은 20세가 넘어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빛을 가지려고 살았지만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며 살겠다.’고 백련사에서 머리 깎고 출가를 해버린다. 마재의 아내 홍씨 부인도 안타깝기는 닮은꼴이다, 다산이 강진에서 18년 유배생활을 했다면 아내 역시 마재에서 18년 유배생활을 한 셈이었으니까. 그런 아내가 시집올 때 입고 온 붉은 치마를 다산에게 보낸다. 초당에 소실 홍임 모가 있음을 알고 자신을 잊지 말라며 붉은 치마를 보냈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다산은 아내의 마음도 모르고 가위로 잘라 두 아들에게 주는 글을 써 보낸다. 자식에게 훈계를 하는 하피첩(霞?帖)이다. 사람들은 하피첩을 두고 다산의 자식사랑을 흠모하지만 아내인 홍씨 부인의 가슴에 번진 피멍은 모른다.
어찌 이뿐일까. 다산이 가장 사랑했던 제자 황상은 초당에 오지 않고 늘 겉돈다. 다산이 눈을 감을 무렵에야 모든 제자들이 하나둘 떠나버린 뒤 마재로 올라간다. 황상은 다산에게 붓과 먹, 그리고 부채를 선물 받는다. 황상은 다산의 임종을 보고 제자로서 문상객을 받는다. 장례가 끝나자 황상은 마재에서 강진까지 상복을 입고서 뚜벅뚜벅 걷는다. 봄날 햇살이 따가웠지만 스승을 잘 모시지 못한 죄인이라는 생각으로 하늘을 보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서 스승이 준 부채도 꺼내지 않는다. 황톳길을 걷고, 강을 건너고, 산을 돌아서 천릿길을 걸어 내려온다. 초당시절 다산의 집필을 많이 도왔던 이청은 다산을 배반하고 출사의 꿈을 이루려고 했지만 끝내는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출세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들을 내 주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여 씁쓸했지만 어리석은 그의 생이 왠지 측은했다. 이러한 군상들이 다산의 길고 짙은 그림자가 되지 않았을까.

참과 거짓은 세월이 금을 긋는다
살 줄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 아래서도 자신의 인생을 꽃 피울 수 있다. 그러나 살 줄 모르면 아무리 좋은 여건에서도 죽을 쑤고 마는 것이 인생의 과정이다. 귀양살이에서도 꿋꿋하게 살았던 다산은 오늘까지 숨을 쉬면서 후손들 앞에 당당하게 서 있다. - 법정스님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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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장편소설 《다산의 사랑》 정약용의 후반기를 읽다


다산 정약용! 하면 실학자, 천주교로 고된 생활!? 그정도로,

알려진 업적이나 역사적인 평가정도를 기억했던 것 같습니다.

작가 정찬주의 10년 만에 매듭짓는 장편소설 <다산의 사랑>은

우리가 알던 밝은 면들과 큼직한 사건 을 넘어,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기간동안 어떻게 중년을 살아왔던 것인지

한국사에서 집중하지 않은 '인간 정약용'의 모습을 읽어보게 됩니다.

나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나은데 살아 있고


너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은데 죽었으니


이는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정조시대, 승승장구 할 수 있었다 보였던 명석한 관료 다산.

유교의 율법에 따른 '조상에 제사'를 거부하는

천주교 신자들의 유교 법례에 따른 행동에 반기를 들자,

천주교 교인이 친인척에 몰려있던 다산의 가문은,

이에 따라 문제가 되고...



여러 상소에 따라, 추궁을 당하지만,

그나마 곤장으로 생을 이별하지 않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배의 처벌로 강진에 기거하게 됩니다.

벼슬에 대한 열정을 보이던 다산이었기에,

유배라는 처벌은 살아있으되 생이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만,

삶이란 이어지기 마련인건지,

다산은 백련사의 '혜장' 스님이며

유배로 내쳐진 다산의 숙박을 책임지던 주모며..

그리고, 강진에서 다산의 일상을 수발들던 남당네며...


정찬주 장편소설 <다산의 사랑>은
실제 다산이 강진에서의 유배시절의 생활을 다루면서,
역사에서도 딱히 이름을 알 수 없는 '홍임모' 남당네와의 이야기,
그리고 남당네가 본처가 아닌 '강진'에서 떡잎을 우려 명작인 차를 만들고
그리고... 다산의 막둥이 딸래미인 '홍임'을 기르던 이야기.
차(茶)에 대한 사랑,
명석한 제자인 황상, 그리고
황상과 닮은 우직한 '초의'.
빛을 보고 따르다가 신의를 저버리는 제자들..

더불어, 조정에서 해배를 승인하며
집안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임무를 얻은 듯 하더라도,
결국은 그가 맞닿들인 중년의 인생을 이야기하며,

다산 정약용의 업적을 넘어,
인간적인 중후반의 이야기, 그의 심경고백같은
구성진 시간의 흐름을 장편소설로 읽어보게 됩니다.

10년 만에 매듭짓는정찬주 작가의 장편소설,
사실, 허구인 줄만 생각하고 인터넷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다산의 올곧은 사랑의 끝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부록'으로 참고문헌까지 첨부되어 있어서,
인터넷 자료 이상으로 고증의 글을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긴긴 유배시절의

인간 다산에 대한 이야기.

실제 역사에 근거한 생동감 넘치고

빠져드는 정약용의 알려지지 못한 서사.

영화를 보듯 장면을 그려보며 빠져들어 보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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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클라라 2020-12-22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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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사랑

다산 정약용은 후대인들에게 그가 남긴 저서들이 화제가 되면서 마치 수 백년이 지닌 지금을 위해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인데 그런 걸 보면 세상이 참 변하지 않았구나 싶고 인간의 탐욕도 그대로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학자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다산 정약용의 인간적인 부분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좀더 구체적인 그의 삶 자체를 잘 모른다고 봐야 할텐데 『다산의 사랑』은 그런 정약용의 인생기에서 유배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보다 집중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정약용이 유배를 가서 살았는가에... + 더보기
gazahbs 2020-12-19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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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다산의 사랑



그러고 보면 우리가 번영된 이 땅에 살기까지 앞서간 선조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과연 이런 복을 누릴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선택한 땅은 아니지만 어쨌든 반도 끝 조그만 땅을 가진 나라에 태어나 수많은 외세에



시달렸던 민족치고는 제나라 말도 있고 적어도 어떤 나라에 흡수되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대단한 민족이지 않은가. 이런 나라게 되기 까지 앞서간 수많은 선조들을 잠시 떠올려본다.
















조선 500년의 역사중에 우리말을 만든 세종과 조선의 빛이 거의 꺼져갈 무렵 최후의 빛을

발하던 시대에 왕이었던 정조를 가장 존경하는데 적어도 그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그나마

행복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아비의 죽음을 평생의 트라우마로 고통받았던 정조는 워커홀릭

이었다고도 하고 다혈질이라고도 한다. 그런 정조가 총애했던 정약용!

그가 만약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고 현세에 있다면 그의 업적은 좀 더 빛나지 않았을까.











경기도 양주 두물머리 근처에서 태어나 왕의 총애를 받았던 정약용은 많은 시간을 유배로 보내야 했다.

조선은 당파싸움으로 지리멸멸했고 그나마 잠시 영,정조 시대에 누그러진듯도 했지만 정조 승하 이후

다시 엉망이 되어버린다. 그 와중에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고 천주교를 믿었던 정약용의 집안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다. 그 와중에 끌려갔던 정약용은 배교를 선택하고 살아남는다.











그리고 20여년 머물렀던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은 오히려 그에게 많은 작품을 남기는 계기가 된다.

그의 주옥같은 저서들이 그 시절 탄생되었다. 당시 유배생활은 그야말로 모든걸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생활이었다. 알다시피 정약용은 강진의 주막할미가 아니었다면 굶어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곁에 있었던 한 여자!

홍임모로 알려진 그녀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다. 어쨌든 50이란 나이에 늦둥이 딸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여자도 있었을 것이다.












유배생활중 만난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딸을 낳았지만 유배가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간 정약용은

끝내 그 모녀를 돌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겠지만 다시 조정에 들지

못하고 빈한한 처지에 놓였던 정약용의 힘이 강진에 까지 이르지 못했음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홍임과 그의 모친이 절에 의지하는 것으로 그렸지만 어떤 생을 살았는지는 알수 없다.





정약용의 학문과 사람됨에 매료되어 다산초당에 모여든 제자들이 이야기와 선승들과의 인연.

그가 '다산'이라고 호를 지을만큼 사랑했던 차 이야기.

저자는 정약용의 배교에 대한 이야기가 늘 가슴에 걸렸다고 한다.

과연 정약용의 배교는 지탄받아야 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순교도 의미가 있겠지만 정약용의 선택은 그가 남긴 저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살아남아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 있다. 그의 선택에 가장 많은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 바로 본인이기에

그 댓가는 이미 치뤘다고 생각한다.



거중기를 만들고 수원화성을 쌓아올린 과학도로서의 정약용의 능력은 정말 아깝기만 하다.

다만 학자로서의 정약용을 떠나 잠시 유배지의 외로운 남자로 생각하면 그의 곁을 지켜준

여자의 존재가 감사하다. 그가 강진 땅에서 남긴 업적은 그녀의 도움이 컸을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를 부정했지만 그를 욕할 수 없는 것처럼 정약용의 배교도 그렇다.

다만 힘이 미치지 못하여 강진의 모녀를 거두지 못함은 참으로 아쉬운 노릇이다.

역시 그에 대한 댓가도 그의 몫으로 짊어지고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밝은 시대에 태어나 좀더 큰 능력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운 천재의 일생에 잠시 마음이 숭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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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눈이 2020-12-1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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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수백 권 저술은 바로 차(茶)의 힘



나는 차(茶)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산의 사랑> 표지에 차(茶)라는 말이 나와서 책을 접했다. 소설을 읽다 보니 차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다산이 직접 차를 덖고, 초의가 차를 만들어 가져오기도 한다. 다산만큼 차의 덕을 많이 본 사람도 드물 것이다. 다산은 강진유배시절 반신마비가 와서 유서를 써서 마재 집에 보낼 정도였다. 그런데 아침저녁으로 차를 마시곤 하여 건강을 회복한다. 차가 없었다면 다산의 수백여 권의 저술도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새삼 차가 고맙다. <다산의 사랑> 속에서 차를 만드는 제다법(製茶法)에 있어서 다산과 초의가 약간 다른 것도 흥미롭다. 다산은 그늘에 덖은 차를 말리는 초의와 달리 햇볕에 말리는 일쇄차를 만들었던 것 같다. 백련사 주지 혜장과도 차를 주고받으며 유배생활의 고독을 극복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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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철 2020-11-2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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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사랑 독서록




알고 있는 위인들이 몇 없었던 탓인지

그 유명한 남양주의 케릭터인 다산 정약용을 이황로 착각해 버려서 지역명 나올 때 한참을 강릉을 상상하며 읽었더랬다.

그 어릴적 정약용 케릭터를 보며 남양주시청에서 애들 모아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탓던 어린시절은 심사임당을 검색해 보고서야 기억이 났다.



요즘은 일반 소설이 아닌 판타지 로맨스 소설을 모바일로 읽었던 탓인지

홍임어미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책은 사극 로맨스를 읽는 느낌이 들어 굉장히 재밋게 잃은것 같다.

정약용 아저씨께 첩이 있었을 줄이야! 따로 알려 하지 않았던 사람은 정말 모르는 사생활(?)이 아닌가 싶었고 재미가 없을수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소설 내용에 로맨스는 요즘말로 1도 없으니 많은 기대는 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실 이런 사극소설은 나오는 단어가 어려워서 읽는데 한참 걸리지만 단어쓰는게 더 단촐해져만 가는

나에게는 머리회전도 시킬 겸 참 좋은 독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역시 내겐 너무 생소했던 단어들이 좀 있어서 읽을 때 마다 사전을 조금씩 사용하며 읽었다.

그래서 좀 읽혀지기시작한다 싶었을때 앞 이야기를 다시 잃어야 했다.

제일 재밋게 읽었던 부분은 제자 황상과 이청의 어릴적 이야기인 1장 주막집 봉놋방 이였다.

주막의 큰방에서 제자를 가르쳤다.





“선상님, 뭔 말씸을 허실라고 그런게라우?”“첫째, 외우는데 빠르면 그 병통이 소흘한 데 있지.

둘째, 글을 쉽게 지어나가면 그 병통이 들뜨는 데 있지.

셋째, 앎이 빠르면 그 병통이 거친데 있니. 무릇 둔하지만 정성껏 파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구멍이 뚫어지고 마는 게야. 막혔다가 터지는 흐름은 언젠가 성대해질 것이고, 답답하지만 쉬지 ㅇ낳고 연마하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반들 반들 빛이 나게되지.“

정약용은 손가락을 오도독 꺽으면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뚫는 것은 어떻게 해야할까? 부지런해야지. 틔우는 것은 어떻게 할까? 부지런해야지.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할까? 부지런해야지. 그렇다면 네가 어찌해야 부지런할 수 있을까? 마음을 굳세게 다잡아야지. 오늘 이후 그렇게 할 수 있겠지?”


36p


잘시간이 되서 책을 잠시 손에서 놨더니

몇일이 지나도 못읽게 되었다.

귀찮음의 도진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집 강아지들이 책에 시원하게~ 오줌을 싸주셨다...

ㅠㅠ 책을 바닥에 막 놓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