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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를 다시 묻는다'
기자명 정성헌 기자
입력 2018.08.23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한·일 공동학술대회 개최
이번 한·일 공동학술대회는 '서구 근대' 개념을 무분별하게 차용해 국가의 잃어버린 고유 근대사 가치를 되찾기 위한 비서구 학계의 시도였다.
[원불교신문=정성헌 기자] 도올 김용옥은 우리 역사에 '근대란 없다'고 했다. 500년 동안 중세에 머물고 있던 조선은 세계적 흐름을 눈치채지 못한 채, 개화의 틈을 탄 열강들의 침략으로 조선의 근대화는 역사에서 일제강점기로 덧씌워졌다.
15일~16일 열린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원장 박맹수) 한일공동학술대회 '한국의 근대를 다시 묻는다:근대 한국종교의 토착적 근대화 운동'은 서구가 독점해온 근대의 개념 속에 왜곡되고 날조된 근대 인식과 한국 민족종교 맥락을 심도있게 짚어나갔다. 지난 1세기 동안 서구 중심 일변도로 치우친 서구적 근대 개념을 넘어서기 위한 '비서구적 근대성'에 대한 고민은 한일 양국 학자들의 오랜 화두로 이번 학술대회의 주된 쟁점이 됐다.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은 서구의 근대 개념이 세계에 일률적으로 적용돼 야기되는 대표적인 한계로 미·소 냉전체제에서 찾는다. 소련의 과학적 사회주의 우월성이나 미국의 자본주의도 근대 서양 열강들이 행했던 마구잡이 식민통치와 생명경시의 연장선으로 내다봤다. 그래서 개개인이 특정 이데올로기나 거짓종교의 지배를 벗어나는 '영혼의 탈식민지화'가 될 때 왜곡된 서구 근대 개념을 넘어설 수 있다고 말한다.
'토착적 근대'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40년간 아프리카 문학을 연구해온 요카이치대학 기타지마 기신 명예교수가 제시한 개념이다. 1970년대 이란의 이슬람 부흥주의,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 남아프리카의 흑인의식운동을 통해 그가 성찰했던 새로운 근대 개념은 '토착문화·사상을 기본 축으로 한 내발적 현실 변혁의 시도'였다. 물질문명으로 세계를 일원화하려는 제국주의들에 의해 만들어진 근대 개념 속에 드러나지 않았던 또 다른 평화적 상생지향의 근대 개념인 것이다.
원광대학교 조성환 교수에 의해 외래 사상으로부터 오염된 한국 근대사도 재발견됐다. 일본 실학이 조선 실학으로 둔갑한 경우다. 조선후기의 사상사를 실학이라는 범주로 해석하려다보니 외재적인 틀을 후쿠자와 유키치의 실학 개념을 차용해버린 것이다. 그의 실학은 일본이 서구적으로 근대화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아시아 학문을 벗어나 서구적인 과학 세계로 진입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일본 식민통치로 잃어버린 근대를 조선후기에서 찾으려는 일종의 정신적 위안과 욕심이 희대 조작극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사회 손꼽히는 4대종교 가운데 원불교를 제외한 3대 종교 모두를 외래종교라 한 인제대학교 강신표 명예교수의 주장도 새롭다. 그 이유는 불교, 유교가 한국화된 중국사상사라서다. 우리의 토착은 동학이다. 그래서 한국 고유 영성과 사상인 동학과 증산도를 이어 탄생한 원불교 탄생은 한국 근대화 운동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라 평한다. 그러다보니 한국 근대 개념에는 서구 근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영성'이 등장한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로 알려진 교토대학 오구라 기조 교수는 '조선사상 최대의 민중운동이며, 19세기 후반의 조선민중의 심령을 포착하여 20세기 모든 근대성의 토착적 기반을 형성했다'는 도올 김용옥을 말을 인용하며 "동학은 현대사회에 생기넘치는 영성을 아낌없이 제공해주고 있다"고 평한다.
서울대학교 성해영 교수도 한국적인 근대 현상을 동학의 영성 구현 운동에서 찾았다. 그것은 '인간존중'과 '평등'을 한반도에서 찾아낸 시천주(侍天主) 사상과 민초들의 자발적 영성운동 때문이다. 인간존중과 평등은 현대사회 빼놓을 수 없는 보편적 윤리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이는 서구 근대화의 저력, 즉 자유와 평등을 실현시킨 시민혁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단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영성적 차원으로 근대적 시도를 했다는 점이다.
서구 근대 개념은 물질문명으로 정체기를 겪던 아프리카, 중동세계, 아시아를 놓고 노예무역·식민지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해 접근했던 패권주의의 산물임을 한일 학자들은 공감했다. 그러기에 서구 근대의 개념은 다양한 민족과 국가가 지녔던 독특한 정치·사회·종교·문화를 획일화시키는 오류를 낳고 현대를 포스트-모더니즘(탈근대)이라고 읽는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다. ▷관련기사 9면
한편,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원불교학 진흥과 신진연구자 발굴을 위해 원불교사상연구원이 처음 제정한 제1회 원불교학 신진연구자 학술상 시상식도 함께 진행됐다. 첫 수상자로는 '원불교 개벽사상의 역사적 전개와 특징' 논문을 쓴 장흥교당 정현숙 교무가 수상했다.
[2018년 8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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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헌 기자 jung@wo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