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1

[최민자의 한국학 산책] 배달국 신시개천(神市開天)과 태백산 < 일요서울i 2310

[최민자의 한국학 산책] 배달국 신시개천(神市開天)과 태백산 < 일요서울i

[최민자의 한국학 산책] 배달국 신시개천(神市開天)과 태백산
기자명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3.10.20 


『삼국유사』(中宗壬申刊本, 1512) 고조선 왕검조선조에는 환국의 서자 환웅(桓雄: 광명한 정치를 하는 영웅이란 뜻)이 환인천제로부터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받고 신시(神市)에 도읍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환국의 서자 환웅이 인간 세상에 뜻을 품으매 환인이 그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白)을 내려다보니 가히 홍익인간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이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神壇樹) 아래 내려와 그곳을 신시라 이르니 그가 바로 환웅천왕이다.…” 이 인용문은 환국시대가 막을 내리고 환웅 18대로 이어지는 배달국(倍達國) 신시개천(神市開天)의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서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첫째, 위 인용문에 나오는 환웅은 기원전 3898년에 배달국 신시시대를 개창한 배달국 제1대 거발환(居發桓) 환웅이라는 점이다. 환웅은 단군왕검의 아버지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환인’이나 ‘단군’과 마찬가지로 감군(監群: 무리의 우두머리)을 의미하는 칭호로서 보통명사이다. 다만 배달국 제1대는 환웅천왕이라고도 부른다. 단군조선이 개창한 것은 그로부터 1,565년 후인 기원전 2,333년이며, 단군왕검의 아버지는 배달국 마지막 제18대 환웅인 거불단(居弗檀) 환웅이다. 「삼성기전」 하편과 「태백일사」 신시본기 등에서는 환국의 제7대 지위리(智爲利) 환인의 뒤를 이어 거발환 환웅이 기원전 3898년에 배달국을 개창해 18대를 전하여 지난 햇수가 1,565년이라고 기록하였다.

그런데 『삼국유사』에서는 배달국 신시시대의 개창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고 곧이어 환웅이 ‘곰 토템족’의 웅씨(熊氏) 왕녀와 혼인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고 적시함으로써 오독(誤讀)될 여지를 남기고 있다. 그렇게 되면 배달국 신시시대가 시작과 동시에 단군조선시대로 넘어가게 되므로 신시시대 1,565년이 증발해버리는 셈이 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국통(國統)이 환국·배달국·단군조선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므로 장구한 역사를 압축하여 기록한 점을 감안해서 읽어야 할 것이다.

둘째, ‘삼위태백’이라는 지명에 관한 것이다. ‘삼위태백’은 배달국 신시시대의 개창과 관련된 지명이다. ‘삼위’를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간쑤성) 돈황현에 있는 삼위산이라고 보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것은 돈황 천불동 석불에서 신라 승려 혜초가 쓴 『왕오천축국전』(727)이 발견되기도 했고, 또 천불동 벽화에는 고구려 기마수렵도와 풍백·우사·운사로 해석되는 벽화 등이 있어 우리 민족과 관련이 깊은 곳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태백’을 태백산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도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어느 태백산이냐에 대해서는 견해가 일치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위 인용문 “환웅이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 내려와 그곳을 신시라 이르니…”에서 배달국 신시개천을 한 태백산을 한반도의 백두산으로 단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평양’이 도읍을 뜻하는 고대의 보통명사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태백산’은 산을 뜻하는 고대의 보통명사였다. 감숙성과 접해 있는 섬서성(陝西省, 산시성)에는 태백산이라는 지명이 감숙성의 삼위산과 함께 나란히 지도상에 표기되어 있어 ‘삼위태백’이라는 연결된 지명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

『환단고기』, 『단기고사』, 『규원사화』 등에는 섬서성 빈(邠)·기(岐)의 땅에 관제(官制)를 설치하고 백성들이 오래도록 고속(古俗)을 유지하고 살았으며, 빈·기의 유민과 결속해 나라를 세워 ‘여(黎)’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거니와, 동이족의 활약상과 관련된 주요 지명들의 분포로 볼 때 그 땅이 이미 배달국시대 때부터 우리 민족과 관련이 깊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장안의 화제’라는 말이 시사하듯, 섬서성 수도 장안(長安, 西安)은 동이족의 활동 무대였다. 따라서 배달국이 열린 당시의 태백산 위치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셋째, ‘서자’라는 명칭에 관한 것이다. 일제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내용 중에 “옛날 환국에 서자 환웅이 있어(昔有桓國庶子桓雄)”를 “옛날 환인의 서자 환웅이 있어(昔有桓因庶子桓雄)”로 변조하고, 환인의 첩의 아들(서자) 환웅을 유도해 냄으로써 환국·배달국·단군조선의 역사적 연맥을 끊어 ‘단군신화’로 만든 점이다. 여기서 서자는 ‘높은 서자 벼슬을 하는 관리’라는 의미이다. 이는 “서자부에 대인 환웅이 있어(庶子之部 有大人桓雄者)…”라고 한 「태백일사」 신시본기의 기록이나, 당나라 유인궤의 관직이 좌서자(左庶子)인 데서도 알 수 있다. 천부인은 청동검·청동거울·곡옥(曲玉)의 세 가지이며 제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신표다.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mzchoi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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