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과학
[김성철 교수의 실천불교] 불교는 신비체험을 마경이라 간주
수선님 2021. 3. 14.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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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에서 해석하는 종교체험
들리고 보이는 것으로 수행경지 가늠해선 안돼
최근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종교체험에 대해서도 과학의 메스가 가해지기 시작했다. 이웃종교인들 가운데 자신이 믿는 신의 모습을 본다든지 말소리를 듣는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뇌과학자들은 이런 체험들이 ‘측두엽 간질병’의 증상일 뿐이라고 해석한다.
뇌의 구조는 의외로 단순하다. 뉴런(Neuron)이라는 신경세포에서 뻗은 신경섬유가 그물망처럼 얽혀 있다. 신경섬유는 단백질로 만들어진 ‘전기 줄’에 다름 아니다. 일반 전선(電線)과 다른 점은 “방향성이 있다.”는 점과, “중간 중간이 끊어져 있다.”는 점이다.
신경섬유에서 일정한 세기의 전류가 흐르다가 그 말단에 도달하면 ‘신경전달물질’이라는 화학물질을 분비하여 인접한 신경섬유로 전기 신호를 전달한다. 물론 이런 과정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뇌는 ‘껍질을 깐 호두’처럼 생겼다. 주름투성이에 좌우가 대칭이다. 뇌를 옆에서 보면 권투 글러브 모양인데 앞부분을 전두엽, 윗부분을 두정엽, 뒷부분을 후두엽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권투 글러브의 엄지손가락에 해당하는 옆 부분이 측두엽이다.
전두엽과 두정엽 사이에는 뇌를 앞뒤로 가르는 골이 패여 있는데 이것을 중심고랑(Central sulcus)이라고 부른다. 중심고랑 바로 앞쪽 부위의 뇌는 근육운동의 시발점이고, 바로 뒤쪽 부위는 신체감각의 종착점이다.
이마 바로 안쪽의 전두엽에서는 능동적 의지작용이 일어나고 뒤통수 내부의 후두엽에는 시각정보가 각인되며, 귀 위쪽의 측두엽에는 청각정보가 새겨진다. 눈과 귀는 그대로 있어도 후두엽이 손상되면 시각장애가 생기고, 측두엽을 다치면 청각장애가 발생한다.
우리가 무엇을 감각할 때나 손발을 움직일 때마다 뇌신경의 해당부위에는 미세한 전류가 흐른다. 그런데 뇌신경의 특정부위에 이상이 있을 경우 강한 전류가 발생하여 간질 발작이 일어난다. 그 부위에서 발생한 전류가 뇌신경을 타고 급격히 퍼지는데 근육운동을 지배하는 부분까지 전류가 흘러들어가서 몸이 뒤틀리는 발작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를 ‘대발작 간질(Grand mal epilepsy)’이라고 부른다. 대발작이 일어날 경우, 갑자기 쓰러지면서 온 몸이 뒤틀리기에 외상을 입을 위험이 아주 크다. 지금은 좋은 약이 많이 개발되었지만, 과거에는 대발작 간질을 치료하기 위한 시술 중에 뇌량(腦梁)절단술이란 것이 있었다.
뇌량은 좌뇌와 우뇌를 연결시키는 신경다발인데 이것을 자르는 시술이다. 뇌의 한 쪽에서 발생한 이상전류가 반대쪽 뇌로 전달되는 것을 막음으로써 발작의 강도를 완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청각중추인 측두엽에서 경미한 발작이 일어날 경우는 대발작 간질 환자와 달리 겉모습이나 행동에는 아무 변화가 없기에 외견상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인 것처럼 보이지만 당사자에게는 환청이 들린다.
또 시각중추인 후두엽까지 그 전류가 흘러 들어가면 헛것이 보이는 증상이 나타난다. 종교적 성향이 강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믿는 신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 말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환자 자신에게는 진실한 체험이기에 확신에 차서 ‘계시’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그것을 주위에 알린다.
스스로 교주가 되어 신흥종교를 창시하기도 한다. 또는 기성종교 속에 자리를 틀고 교세를 급격히 확장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그런 ‘경미한 뇌 질환’ 환자가 종교의 창시자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선(禪)수행은 물론이고 <능엄경>에서는 이런 신비체험을 모두 마경(魔境)이라고 부르며 물리친다. 무언가 들리고, 보이는 것으로써 수행의 경지를 가늠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뇌과학의 발달로 선과 <능엄경>의 가르침이 새삼 빛난다.
[불교신문 2779호/ 12월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