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08

이병철 - -노겸 김영일시인 49재에/ 오늘은 이 땅에 민족상잔의 참혹한 비극이 일어난지 72주년의 날이자 우리시대의... | Facebook

(1) 이병철 - -노겸 김영일시인 49재에/ 오늘은 이 땅에 민족상잔의 참혹한 비극이 일어난지 72주년의 날이자 우리시대의... | Facebook

-노겸 김영일시인 49재에/
오늘은 이 땅에 민족상잔의 참혹한 비극이 일어난지 72주년의 날이자 우리시대의 위대한 혼이었던 노겸 김영일시인이 돌아가신 지 49일째 되는 날이다.
흔히 49재라고도 하는 이 날은 고인이 중음 상태에 있다가 49일을 지나면 그 업에 따라 다시 다음 세계로 태어난다는(生有) 대승불교의 관점에 따라 마지막으로 고인의 바른 길을 인도하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 김시인의 49재를 맞아 고인을 추모하며 고인과의 마지막 이별을 하는 '김시인 추모문화제'가 서울에서 열린다.
우리 시대에서 아마도 김시인만큼 생전에 찬양과 비난을 극단적으로 받은 인물은 없으리라 싶다.
그런 점에서도 오늘 49재를 맞아 행하는 이 추모행사의 의미는 각별하다. 이 행사가 생전의 오해와 아픔을 화해상생의 대동 굿판으로 풀어내어 망자와 생혼을 함께 위로하고 치유하는 자리가 되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까닭이다.
몸을 지닌 존재는 모두 장단점과 그 행위에 따른 공과가 있다. 이것이 한정된 존재의 의미이기도 하다.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이란 그래서 만들어진 이미지라고 하겠다.
문제는 한 사람, 한 존재에 대한 평가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생전에 김시인에 대한 평가 또한 그러하다.
최근 김시인을 추모하는 글이나 언사에서 김시인을 위한 '변명'이란 이름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1991년의 이른바 조선일보 "죽음의 굿판’ 필화사건이다. 이 칼럼의 제목은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였다. 그러나 당시 소위 민주 진보진영에선 김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진의는 외면한 체 그 칼럼의 소제목이었던 ‘죽음의 굿판 걷어치워라’는 것을 과장하여 그를 민주화의 위대한 투사에서 변절자로 끌어내리기에 급급했다. 그들의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김시인은 그 칼럼에서 '왜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어야하는가'를 분명하게 천명하고 생명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문건은 생명운동, 아니 이 땅의 사상적 전환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사적 문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김시인을 위한 변명 등에서 그의 이 칼럼을 김시인이 고문 후유증 등으로 정신이상 상태에서 쓴 글, 또는 섬망(譫妄) 중에 저지른 위악적 행위의 자해적 결과라고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이런 의도가 '김시인을 위한 변명''이란 것에서 보듯 생전의 김시인을 존경하고 따르며 사후에도 김시인이 이 시대의 위대한 혼이었음을 이어가기 위한 선의의 의도임을 모르진 않는다.
그럼에도 김시인의 글과 그 의미를 이렇게 왜곡하는 것은 김시인을 다시 모독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도 김시인 추모문화제 추진위원으로 이름은 올렸지만 오늘 서울에서 열리는 추모제엔 참석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 DMZ 평화생명 동산에서 젊은 벗들과 함께 '지리산정치학교' 1,2,3기가 함께 하는 연찬에 참여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생명의 전환문명을 위해 도울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이 추모제에 참여하여 또다른 변명에 함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겸 김영일시인, 생전에 나의 사형이기도 한 선생의 49재, 그 마직막 날에 형님의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위해 다시 두 손을 모은다.
이 땅의 생명사상가로 앞서 제시한 그 깊은 뜻을 잘 살피고 새겨 전환의 세상을 여는 일에 조금이라도 거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김지하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 치워라
젊은 벗들!
나는 너스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 당신들은 잘못 들어서고 있다. 그것도 크게!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렸다. 젊은 당신들의 슬기로운 결단이 있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숱한 사람들의 간곡한 호소가 있었고,여기저기서 자제요청이 빗발쳐 당연히 그쯤에서 조촐한 자세로 돌아올 줄로 믿었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정권보다 큰 생명
생명이 신성하다는 금과옥조를 새삼 되풀이 하고 싶지는 않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생명은 출발점이요 도착점이라는 것이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심지어 종교까지도 생명의 보위와 양생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그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근본을 말살하자는 것인가? 신외무물이 무슨 뜻인가? 당신들 자신의 생명은 그렇게도 가벼운가? 한 개인의 생명은 정권보다도 더 크다. 이것이 모든 참된 운동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당신들은 민중을 위해서! 라고 말한다. 그것이 당신들의 방향이다. 당신들은 민중에게 배우자! 라고 외친다.
그것이 당신들의 공부이다. 민중의 무엇을 위해서인가? 민중이 생명의 보위, 그 해방을 위해서일 것이다.
당신들이 믿고 있는 그 해방의 전망은 확고한가?
목적에 대한 신념은 과학적으로 확실한가? 만약 그것이 기존의 사회주의라면 그 전망은 이미 끝이 났다.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민족이 패망하는 극한 상황도 아닌 터에 생명포기를 요구할 정도의 목적의 인프레션 따위는 있을수도 없으며 다만 뼈를 깎는 기다림과 겸허한 모색이 있을 뿐이다. 모색하는 자가 매일 매일 북 치고 장구 칠 수 있는가?
도대체 그 긴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왜 덤비는가?
모색과정에도 위기에 대한 긴급한 행동은 있을수 있다. 하나 그때의 행동은 달라야 한다.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당신들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당신들은 민중에게서 무엇을 배우자고 외쳤는가?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과 삶의 존중,삶의 지혜를 놔두고 도대체 무엇을 배운다고 하는가?
어느 민중이 당신들처럼 그리도 경박스럽게 목숨을 버리던가?
당신들은 흔히 지도라는 말을 쓴다. 또 선동이란 말도 즐겨쓴다. 스스로도 확신 못하는 환상적 전망을 가지고 감히 누구를 지도하고 누구를 선동하려 하는가?
더욱이 죽음을 찬양하고 요구하는가? 제 정신인가, 아닌가? 과학이란 말을 자주 쓴다. 그것이 과학인가? 그보다도 더 자주 정치라는 말을 쓴다.
그것이 정치인가? 분명히 못박아 말하지만 정치란 도덕적 확신에 기초한 엄밀한 이성과 수학의 세계다.
-자살 전염 부채질
당신들에겐 분명 그것이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학생운동 본연의 순결한 정의감, 그리고 대안적 정열이 요구하는 바대로, 그리고 혼란한 전환기에 대응하는 확률적인 모색의 태도로 전시민적인 요청에 대답하는 합당한 행동을 선택하라. 그런데 지금 당신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전환기는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 지배하는 것이 특징이다. 실수하기 안성맞춤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 지금 당신들은 조심성이 있고 없고의 차원을 훨씬 넘어섰다. 당연한 얘기지만 고전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나 주사파의 스테레오타입마저 이미 이탈했다.
철부지라는 말도 정확하지 않다. 당신들은 지금 극히 위태롭다. 생명은 자기 목숨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무서운 것인데 하물며 남의 죽음을 제멋대로 부풀려 좌지우지 정치적 목표아래 이용할수 있단 말인가? 그럴수 있다고 대답하는 모양인데, 그렇다. 바로 그 대답에 당신들의 병의 뿌리가 있고 문제의 초점이 있다.
지금 당신들 주변에는 검은 유령히 배회하고 있다. 그 유령의 이름을 분명히 말한다. 네크로필리아 시체선호증이다. 싹쓸이 충동, 자살특공대, 테러리즘과 파시즘의 시작이다.
이미 당신들의 화염병은 방어용 몰로토프 칵테일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파괴력에서가 아니라 상황과의 관계상실과 거기에 실린 당신들의 거의 장난기에 가까운 생명말살 충동에서다. 당신들의 그 숱한 죽음을 찬미하는 국적불명의 괴기한 노래들, 당신들이 즐기는 군화와 군복,집회와 시위때마다 노출되는 군사적 편제 선호 속에 그 유령이 이미 잠복해 있었던 것이다. 당신들은 맥도날드 햄버거를 즐기며 반미를 외치고 전사를 자처하면서 반파쇼를 역설했다. 당신들의 구호와 몸짓은 이미 순발적 정열을 이탈하여 의식화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이미 오래전에 일본 전학연의 몰락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 모순을 어찌할 셈인가?
그런데 한술 더 떠 지금 당신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자살은 전염한다.
당신들은 지금 전염을 부채질하고 있다. 열사호칭과 대규모 장례식으로 연약한 영혼에 대해 끊임없이 죽음을 유혹하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 생명말살에 환각적 명성을 들씌워 주고 있다. 컴컴하고 기괴한 심리적 원형이 난무한다.
-종교냐 유물이냐
삶의 행진이 아니라 죽음의 행진이 시작되고 있다. 그것이 해방의 몸짓인가? 무엇을 해방할 작정인가? 귀신인가?
절정은 당신들의 그 혼을 분리하는 굿에 있다. 시체가 당신들 것인가? 왜 탈취하려 하는가? 그 시체의 주인공이 조선시대의 사대부집안의 그 가족도 없는 종인가? 왜 가족을 무시하는가? 그러나 그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당신들의 그 기괴한 이원론이다. 당신들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를 인정하고 있다. 당신들의 결정적 파탄의 증거다. 묻겠다. 당신들의 신조는 종교인가? 유물주의인가? 육신을 경멸하고 영혼의 찬란한 해방을 광신하는 고대종교인가? 육신의 물질성만을 주장하는 속류 유물주의인가? 도대체 어느쪽인가?
도대체 그놈의 굿판에 사제노릇을 하고 있는 중과 신부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악령인가? 성령인가? 저는 살길을 찾으면서 죽음을 부추기고 있는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들은 선비인가? 악당인가? 당신들은 지금 굿에서의 이른바 불림 을 행하는 모양인데, 불림에는 조건이 있는 법이다.
영매는 자기목적이 없어야 하고 불림의 대상은 귀신이 아니라 신명이어야 한다. 검은 귀신이 아니라 밝은 신명이라고 주장하겠지. 그러나 젊은 벗들! 귀신은 영육분리의 형상이지만 신명은 영육합일, 몸과 함께만 현상한다네! 그래서 신명은 곧 생명이라네. 당신들의 귀신숭배는 더욱이 급진적 폭력을 동반함으로써 바로 네차예프사건과 인민사원의 집단학살, 그리고 연합적군 모리(삼)그룹의 산장에서의 피의 인민재판을 예고하고 있다. 죽음숭배, 귀신숭배의 결과는 풍수의 표현으로 당판,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비수터, 울부짖는 터, 갈기갈기 찢어지는 참혹한 종말이다. 어찌할 작정인가?
-운동은 이제 끝장
젊은 벗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 그리고 그 소름끼치는 의사굿을 당장 걷어 치워라. 영육이 합일된 당신들 자신의 신명, 곧 생명을 공경하며 그 생명의 자연스러운 요구에 따라 끈질기고 슬기로운 창조적인 저항행동을 선택하라.
나는 군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잘라 말하겠다. 내 말을 듣지 않겠다면 좋다. 할 대로 해보라. 당신들 운동은 이제 끝이다! 그래도 지성인이라면, 최소한 내말을 접수라도 한다면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 자신의 신조가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종교인가? 유물주의인가? 대답이 다행히 창조적 통일로 끝났을 때, 그때 우리는 현정권에 대한 효력있는 저항을 참색할수 있을 것이다. 부디 자중자애 하라. 부디 절망하지 말라. 절망은 폭력과 죽음, 그리고 종말의 서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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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崔明淑, 박정미 and 93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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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崔明淑
    1991년 당시에 그 칼럼을 읽었던 사람으로서 생명사상의 글을 쓰기 시작했던 김시인 님의 생각의 맥락으로 이해했었습니다. 고문후유증이라는 말은 희극적입니다. 지금 만약 같은 일이 벌어져 같은 칼럼을 읽는다면 당시의 판단과는 다른 의견이 많이 있을 것이라 봅니다...한국 정신계를 앞서서 리드하셨던 것이지요
    3
  • 류창희
    으음....
  • 이민우
    '죽음의 굿판을 때려 치워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갑자기 활자가 대문짝만 하게 커지는 느낌이 들었던 게 지금도 기억납니다. 컬럼을 읽고 나서는 그만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 꼭 해야 하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나서서 하기를 주저하는 말을 참으로 용기있게 했다고, 그래서 이 사회의 존경과 

김봉준 - 겨레문화의 신화창조, 한류의 원조, 생명사상가 김지하시인을 추모하며.... |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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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문화의 신화창조, 한류의 원조, 생명사상가 김지하시인을 추모하며.
김봉준(화가)
유신시대 나의 대학시절은 시작부터 암담했다. 겨우 미술대에 입학은 했어도 미대 커리큘럼과 학풍이 싫었다. 그러다가 자유를 향한 저항의 시들을 만났다. 담시 '오적'은 김수영의 시와 수필에 매료되었던 청년학생에게 또 다른 신선한 공기같았다. 현대문학에선 외면한 운문적 설화문학과 이어지면서도 자유로운 시로 보였다. 동아일보 투고'1974고행', 김지하가 주필인 미술선언문 '예술은 현실을 반영한다.' 등은 암담한 예술학도에게 어두운 밤길 후레시 같았다.
저 암울하고 공포스런 유신시대 미술대학 생활에서 희망의 빛은 탈춤 풍물 마당극같은 마당예술이었다. 그러나 전통문화에서 미래문화를 눈뜨게 한것은 김지하 선생님이다. 판소리를 담시로 노랫말이 되게 만들어 이걸 '소리내력'으로 김지하석방을 부르던 임진택 창작판소리는 독재시대 긴장 속에도 통쾌한 웃음의 칼노래였다. 전통문화에서 저항문화로 당차게 탈바꿈 한 것은 박정희 유신권력에 저항한 김지하와 임진택 예술 '오적'부터였다.
유신시대 나는 데모보다 마당예술을 좋아했다. 당시 예술창작의 미래의 전범은 김지하 이애주 채희완 임진택 김민기로 대표되는 대안적 저항예술에서 보았다. 서구 예술을 영혼 없이 모방하기에 급급하던 시대에 민중 편에서 저항하는 마당예술이 대안예술 임을 믿게 된 것이다. 그래도 문학이야 모국어가 있으니 예술형식의 고뇌가 미술보다 덜 할 것이나, 미술은 모국어를 잃어 외래미술 모방이 너무 빠르고 순전 서양 모던이즘 따라하기 시대가 되어 있었다. 받아들이되 문예중심을 잃은 시대였다. 미대 다니며 탈춤부흥운동에 함께 했어도 중심잡기 숙제는 여전히 혼미해 내 자신의 미술창작 길찾기가 어려웠다. 모던이즘 미술형식을 좋은건 받아들이되 우리 문화 중심을 잃고 싶지 않았다. 탈춤 탈 풍물 민요 불화 등 전통예술을 체험학습하기에 열심이었던 학창시절이었다.
5.18을 혹독하게 겪어내고 사회에 나온 터라 찍혀버린 나는 오라는 곳도 갈곳도 없었다. 농민회에서 들어가 만화를 그렸다. 1983년에는 애오개예술마당을 벗들과 차리고 거기서 미술동인 <두렁>을 창립했다. 자료집을 탈춤부흥운동 하신 신동수 선배님 지원을 받아서 냈다. 창립선언문에 "미의식의 본질은 신명이다."라고 말해버렸다. 무식하니까 용감하다고 서구 모던이즘 미학을 신앙처럼 받들지는 못하겠고 섭부지만 우리 미학을 찾았다.
그리고 십년후 1993년 내 조그만 개인전(미호화랑 초대전, 신명론 토론장에는 토론 초대인으로 김지하, 채희완, 옥봉환, 라원식, 김봉준 참석)에서 채희완 선배님과 김지하 선생님 등 네분을 토론에 청했다. 예산도 없이 발제자로도 초대하지 못하고 신명론을 주제로 맨입으로 무조건 단도직입적으로 토론하자고 했다. 참 무례한 기획이었으나 이를 흔쾌히 받아주신 김지하 선생님이 먼길을 오신 것이다. 참가분들께 지금도 너무나 감사드린다.
나는 평소 지론대로 "모든 예술에 미적 본질은 신명이다" 하였다. 김지하 선생님은 이를 인정하면서 신명의 개념 정리부터 하셨다. "신명이란 생명에너지의 고양된 충족, 또는 확대된 자아"로 풀었다. 나는 신명이란 '신난다'에서 왔다고 하였고, 채희완 선배님은 우리 민속춤을 근거로 한 '집단적 신명론'을 강조하셨다. 삼십대 당돌한 청년작가는 김시인과 채교수를 전시장까지 오시게 했으나 두분 선배님은 격의 없는 토론을 만들어 주셨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미술의 미적 본질을 '신명'으로 동의하였다. 이 만남으로 나는 미술행동에 큰 용기를 얻었다. 이 때 우리가 동의한 신명론과 생명예술론은 1969년 '예술은 현실을 반영한다' 정도로 보았던 리얼리즘적 민족미술론을 더 진전시킨 일대 쾌거라 생각한다.
동식물도 웃고 춤춘다. 생명은 모두 웃고 운다. 생명은 모두 영혼이 있으며 '생명 에너지가 확대된 자아'로 나타나는 생명은 다 신명이 있어 멋이 있다고 보게 되었다. 예술이 생물과 영혼으로 통하겠다는 데 누가 말리나. 미적 범주는 인간사회만 아니고 우주로 무한하다. 감금된 미를, 인간 독점적 영혼을 해방하라. 인간중심주의 모던이즘 예술을 벗어버리고 동식물도 영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자연을 '싱그러운 힘'의 영혼으로 모시는 일이다.
님의 생명사상에 힘입어 한국 최초로 신화테마뮤지움을 산촌 귀향 15년만에 세울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를 리얼리즘에서 포스트모던의 신화예술로, 아시아의 토템과 천지인 조상신의 영혼을 모시는 예술로, 치유의 숲삶을 구도로 안심하고 넘어가는 치유예술로 격려하신 분은 원주 동향에 사시는 김지하 시인이 분명하다. 님은 토지문화관에서 유승국선생님을 모셔와서 주역을 공부하라고 배푸셨고 강의후엔 김영주관장님과 같이하던 점심, 강원도 매밀막국수를 사주시던 그 시절이 지금도 눈 앞에 그렁거린다.
김지하의 생명사상은 환경과 생명을 분립해서 보지 않는다. 환경이란 개념은 인간중심주의를 못 벗어났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고 자원을 일방적인 욕망으로 소비하고 책임 없이 쓰레기로 버리니까 자연 생명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 김시인은 "자연이 인간의 들러리냐?" 일갈 하시며 밥과 똥은 자연에서 순환한다며 이원론적 철학을 너머 선 해월사상 물아동포를 모신 일원론의 생명사상을 내놓았다. 최열 선배님도 일원론 생명사상을 받아들여 "환경은 생명이다."로 새롭게 슬로건을 내세웠다. 서양 생태주의는 인간과 자연을 분립한 이원론의 한계를 일찌기 말씀하셨다. 이로 말미암아 기후위기를 극복 못한다고 이미 지구위기를 내다보신 듯하다.
님은 인문학과 예술을 겸비한 학예일치(언행일치)형 사상가다. 인문학과 예술을 이성적 인식론과 감성적 직관론으로 동시에 활용하신 분이다. 조선말 추사 이후 보기 드문 분이다. 어문일치 문장으로 생명사상을 펼쳤다. 시인이며 예술가이기에 더 살아있는 문장의 담론이 되었다. 고담준론의 학문개념들이 육신의 언어로 거듭나던 담론들은 책으로 나올 때마다 흡사 회색의 벽을 부수고 숲을 새로 가꾼 듯 했다. 나같은 무지한 장인도 알아먹어서 흥미진진하게 정독하게 했다.
동학의 재해석은 맑스사상과 서양 생태주의 등 이원론에 기초한 외래사상에 또 빠져드는 우리 청년들에게 단비와도 같았다. 아시아 신화와 전통문화의 재해석은 오리엔탈리즘의 컴플렉스를 부수고 우리전통문화의 자존을 세우게 하셨다. 아시아 전통문화를 맹목적 신비주의나 미신 취급하며 폄훼 왜곡 경시로 혼탁했던 시절이다. <밥> <남녘땅 뱃노래>는 신비주의와 미혹의 무덤에 갇힌 우리 전통문화를 지엄한 자주성으로 빛을 보게 했다. 다시 개벽 동학의 복권은 김지하로 시작되었다.
지금 부는 한류문화에는 뿌리가 있다. 사실 1960~70년대부터 시작한 문화운동이 한류의 뿌리다. 촛불혁명의 뿌리가 7,80년대 민주화운동이라면 한류의 뿌리는 60년대부터 시작한 민족문화운동이다. 김지하와 조동일로 시작한 60년대초 민족민속문화연구에서 이어서 김시인의 담시(이야기시), 임진택의 창작판소리, 채희완 임진택의 창작탈춤과 마당극, 김민기의 시노래, 오윤과 미술동인 두렁의 민중미술로 발현된다. 김시인 동시대 조동일, 심우성, 무세중 선생도 빠질 수 없는 한류문화의 원조들이다.
1980년대 대학축제는 탈춤부흥운동의 성찰로, 마당극에서 마당굿으로 진화하기시작했다. 대학은 통키타문화에서 대동굿으로 바뀌는 일대 문화개혁이 1980년대 전반기에 일어났다. 탈춤부흥운동으로 대표되는 마당예술운동은 한국민주화운동에서 문화선전대를 자처한것도 사실이다. 문화운동은 민중 속으로 들어가 농민 노동자에게 전통시대 민중문화(풍물 탈춤 굿 민요 민중가요 이야기시 마당극 걸개그림과 판화 등)를 전수하고 공유하기 바빴다. 이름도 빛도 없이 민중이 된 문화패는 아직도 문화운동 중이다. 지난하지만 영광스런 민족문화 한류의 길이 아닐 수 없다. 아, 고달파도 꽃길이다.
이제는 포스트코로나시대, 탈근대의 기운이 완연하다. 세계는 보이는 힘, 즉 경제 군사 정치력 말고 보이지 않지만 매력적인 힘도 세계를 움직이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문화의 힘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즉 김구선생이 예언하신대로 무한한 문화의 힘이다. 이제 드디어 K컬쳐가 세계적 힘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스트웨프스키 말대로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 할 때가 되었다. 한류는 K드라마나 K팝 K방역의 창의성이 한국민주주의에서 왔음을 알아채고 있다. 김지하가 국가폭력에 저항하던 인권과 민주의 가치는 한류정신을 떠바친다. 세계청년들이 한류를 좋아하는 배경에는 한국민주주의 문화를 배우려는 것이 바탕에 있다. 서양의 개인주의민주주의가 코로나사태를 겪으며 위기에 빠졌다. 어떻게 아시아 공동체문화가 민주주의와 양립되나? 그들은 이해를 잘 못한다. 이 답을 한국민주주의문화 한류는 갖게 된것이다. 전통문화를 모시면서도 창조적 자유로 거역하는 "진리는 이중모순이다." 생전에 김지하선생이 벌써 하신 말씀이다.
21세기 융합 인문학 신화학에서는 명제 하나가 있다. "모든 위대한 예술가는 그 나름의 신화를 창조하는 법이다." 신화를 창조했기에 위대한 예술가다. 현대신화창조의 주역은 종교와 과학이 아니다. 인류는 계속 과학적 이성주의 너머로 감성과 영성의 문 열고 신령한 힘의 신화를 갈망한다. 조셉 캠밸 말처럼 "현대는 예술이 신화창조를 주도할 것이다." 김시인이 말년에 캄차카반도에 직접 가서 원주민들을 만나며 여기 있는 수만개 원주민 신화를 알고 가슴 설랬던 이유를 후학들은 이제 알아야한다. 왜 말년에 원주 지명설화에 얼킨 현장답사에 몰두 하셨나 이해해야 한다. 신산고초를 겪은 끝에 노겸 김지하는 이제 신화가 되고있다. 우리는 님을 우상으로 숭배하지도, 신비주의에 감금하지도, 사별했다고 잊고 작별하지도 않는다. 모시며 계승한다. 이제는 뿌린대로 뿌리내려 번성하리라. 마당은 삐뚤어 졌어도 장구는 옳게 치라 하셨네.
하나는 끝이 나지만 끝이 없는 하나이다.(천부경) 노겸 김지하는 말한다. "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묵란으로 화두를 남기고 가셨네. 위대한 시인은 시로 말씀 하시네. '죽고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 부활의 신화 '애린'으로.
"땅끝에 서서
더는 갈 곳 없는 땅끝에 서서
돌아갈 수 없는 막바지
새 되어서 날거나
고기 되어 숨거나
바람이거나 구름이거나 귀신이거나 간에
변하지 않고는 도리 없는 땅끝에
혼자 서서 부르는
불러
내 속에서 차츰 크게 열리어
저 바다만큼
저 하늘만큼 열리다
이 내 작은 한 덩이 검은 돌에 빛나는
한 오리 햇빛
애린
나."
* 사진은 6월25일 김지하추모문화제에서 천도교대교당을 빌려 행사용 걸개서화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