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6

【12-08】 유가와 중일 양국의 인연 | Science Portal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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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 유가와 주니치 양국의 인연

주림림(산동전력건설 제3공정공사 해외시장부 부경리) 2012년 8월 29일

 유교는 중국 문화의 중심 사상이다. 공자를 시조로 하는 유학은 위기의식을 인생철학으로 승화시켜 전국시대 제자의 대두 백가 쟁명을 가져왔다. 수백년에 걸친 논쟁과 실천을 거쳐 중앙집권적인 봉건제도가 성립되면 유학도 확고한 지위를 쌓았다.

 한대에 천하통일이 실현되면 한무제는 이중중계의 '파랑 백가, 독존 유술'이라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른바 ‘독존 유술’이란 유가를 주로 하고 그 밖의 사상을 흡수·융합시키는 것이었다.

 송, 명대의 '송명리학'은 불교, 도교의 철리를 흡수하고, 생명과 하늘의 도리를 깊이 모색함으로써 심화해 유교의 철학화가 진행되었다. 이학은 '신유학'이라고도 불리며 유교는 두 번째 개혁과 통합을 맞아 유가 사상의 성숙을 나타내는 것이 되었다.

 중국 유가 사상이 성숙함에 따라 일본 문화도 그 영향을 받았다. 응신천황에서 추고천황에 이르기까지 약 300년간 '논어' '춘추' 등 유학전적을 중심으로 한 중국 고대 사상문화는 중국 대륙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7세기 이후, 중일 양국은 서로 사자를 보내, 양국간의 문화 교류의 직접적인 루트를 열었다. 다이화의 개신(645년)은 유학을 개혁의 지도적 사상으로 한 뒤 중국의 정치기구를 모범으로 관료제도를 구축하고 유학을 기조로 하는 율령정치를 확립하고 일본사회의 발전을 촉구했다. 이렇게 일본은 유가 사상을 거의 전면적으로 받아들였다.

 13세기에는 중국의 송학이 일본에 전해지게 되어, 의리를 주로 하는 새로운 유학이, 명경도·훈정학을 주로 하는 낡은 유학에 서서히 취해 대신, 일본에 있어서의 유학의 주류 되었다. 14~15세기가 되면 일본에서는 송학 붐이 일어나 송학학파가 서서히 형성되게 되었다. 1603년 도쿠가와 막부의 성립부터 메이지 유신전까지는 일본 유학 전성기였다. 가장 세력이 있던 송학학파는 주자학파였다. 양명학과 주자학은 일본에서 대유행했다. 보다 중시된 것은 양명학으로, 메이지 유신의 원동력이 되었다고조차 말했다.

 일본은 오랜 역사에 있어서 중국의 유가 사상과 문화를 받아들여왔다고는 해도, 그것을 항상 일본화해 온 것이고, 주로 유학을 일본의 신도와 융합시켜 왔다. 예를 들어 유학의 '미츠츠나 5상'의 대의는 국가나 집안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하나의 '줄다', 즉 이른바 권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일본의 전통에 깊이 들어간 결과, 민족의 단결과 사회의 연대를 효과적으로 촉구해 대외적인 수단이나 사상상의 무기가 되어 왔다.

 유가의 '시사 닌인, 무구생 이해인, 유살신 이성인 그래도 인의 길을 달성하려고 한다)의 정신은 신도와 융합함으로써 무사도의 근본이 되었다. 중국의 유가 사상은 일본 문화의 사상의 근원의 하나가 되어 일본 문화의 혈액이 되어 민족 정신과 성격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일본은 애국적인 무사와 유가 사상의 가오루를 받은 관료들이 메이지 유신을 실현해 근대사 시련에 적응해 근대화를 달성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유」의 문화체계의 명칭에는 변화가 생겨 유학, 유가, 유교, 공자교 등 많은 호칭이 나왔지만, 「유교」가 보다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에서 볼 수 있다.

 나카무라 케이우와 핫토리 우노요시 등, 일본을 대표하는 연구자도, 「가르침」으로서의 의미를 많이 도입하고 있다. 유교란 대성전에서 하는 석유례와 같이 강한 종교의식과 도덕적 의의를 나타내는 것이다.

 왕가호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중국의 유학은 동시대의 서양 철학에 비해 추상적 존재론적 사고는 별로 발전하지 않았지만, 일본의 유학은 중국의 유학보다 추상적인 세계관에 대한 사고가 더욱 희박하다 . 

 중국에서는 존재론, 우주론, 인식론, 궁리론을 융합하여 일체화한 송명리학이라는 큰 철학체계가 존재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란 만물과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 논리적으로는 만물에 앞서, 그리고 만물보다 높고 초월한 존재를 가리키고, 자연의 섭리뿐만 아니라, 사회를 통치하는 도덕 규범과도 관계한다. 일본의 유학은 이와 달리 송명리학에서 가장 강조되는 존재론이 일본의 유학사상체계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다. 비록 '리'라는 카테고리를 받아들였다고 해도 일본에서는 오히려 그것을 자연의 섭리나 도덕적인 규율로 이해하고 형이상학적인 세계의 존재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중국의 유학은 「경」이 중심, 일본의 유학은 「마코토」가 중심이며, 거기에서 양국간의 윤리 사상에 차이가 생겼다고, 많은 일본인 연구자는 생각하고 있지만, 이에 일어난 일이다.

 '마코토'라는 카테고리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 대해, 왕가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중국의 유학은 '마코토'를 감정적인 도덕 개념에서 우주의 존재로 승화시켰지만, 일본의 유학은 반대로 그것을 존재론의 높이에서 인간성 있는 도덕 개념으로 환원시켰다. 중국의 윤리사상에 비교적 강하게 존재하는 금욕적인 인상과 비교하면 일본 유학의 윤리관은 정욕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가 나타나 정감적인 인상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일본이 역사적으로 실천해 온 「와혼 한재」란, 전통적인 신도의 사상을 「와혼」으로 하는 민족이 실시한 유학과 신도의 문화 교류였다면, 일본의 자본주의 성립 과정에서 실천된 '화혼양재'란 유학과 신도가 융합되어 민족의 사상이 된 '화혼'에 대한 한층 더 동서문화의 교류였다. 이것이야말로 일본이 근대화의 시련에 대해 잘 맞은 기초라고 할 수 있다.


中国では、存在論、宇宙論、認識論、工夫論を融合して一体化した宋明理学という大きな哲学体系が存在する。ここで言う「理」とは万物とともに存在するもので、論理的には万物に先立ち、そ して万物より高く超越した存在を指し、自然の摂理だけでなく、社会を統治する道徳規範とも関係する。日本の儒学はこれとは異なり、宋明理学では最も強調される存在論が、日 本の儒学思想体系では重要な位置を占めない。たとえ「理」と いうカテゴリーを受け入れたとしても、日本ではむしろそれを自然の摂理や道徳的な規律として理解し、形而上学的な世界の存在としては理解されない。   

 中国の儒学は「敬」が中心、日本の儒学は「誠」が中心であり、そこから両国間の倫理思想に相違が生じた、と多くの日本人研究者は考えているが、理にかなったことである。

 「誠」というカテゴリーに対する理解の相違について、王家驊は次のように語っている。中国の儒学は『誠』を感情的な道徳概念から宇宙の存在に昇華させたが、日本の儒学は逆に、そ れを存在論の高みから人間性のある道徳概念へと還元させた。中国の倫理思想に比較的強く存在する禁欲的な印象と比べると、日本の儒学における倫理観は情欲に対して寛容な態度が示され、情 感的な印象がより強くなっている。

 日本が歴史的に実践してきた「和魂漢才」とは、伝統的な神道の思想を「和魂」とする民族が行った儒学と神道の文化交流であったとするなら、日本の資本主義成立過程で実践された「和魂洋才」とは、儒 学と神道が融合して民族の思想となった「和魂」に対する更なる東西文化の交流であった。これこそが、日本が近代化の試練に対して、うまく立ち向かった基礎だと言えよ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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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림림(ZHU Lintao) : 산동전력건설 제3공정공사 해외시장부 부경리

중국 산동성 聊城시 출생.
2002.9--2007.6 서북공업대학 학사
2007.9--현재 산동전력건설 제3공정공사 외 시장부 부경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