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경세론과 불교비판
이이의 변통론
이이(李珥)는 사회 개혁의 문제와 관련하여 바꿀 수 있고 또 바꿔야 하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는 개혁에 있어서 근본적인 이념과 구체적인 실현 방법의 문제에 관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이이는 우선 때에 맞게 법을 바꾸는 '변통'(變通)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변통'이란 말은 『주역』의 "역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 계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서 이를 도와서, 길하여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易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是以自天祐之, 吉無不利., 「계사 하」2]에서 연원하는데, 기존의 질서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 닥치면 변화시켜 통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이는 여기서 『주역』의 이러한 논리에 대한 정이의 언급을 인용하면서 변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법령과 제도는 바꿀 수 있지만 왕도(王道)와 인정(仁政)과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은 영원히 바꿀 수 없다고 함으로써, 변통의 내용 내지 대상을 법제에 한정시키고 유학의 근본 원리, 봉건적 윤리 질서는 바꿀 수 없다고 하여 변통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리는 두루 통하고 기는 국한된다는 이통기국론(理通氣局論)의 함의와 상응한다고 할 수 있다. 아래의 인용문은 1574년에 쓴 「만언봉사(萬言封事)」의 일부이다.
신의 생각으로는 정치는 때를 아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일은 실질적인 것에 힘쓰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정치를 하면서도 때에 알맞게 할 줄 모르고 일을 당하여 실질적인 결과에 힘쓰지 않는다면, 비록 성왕과 현신이 만난다 하더라도 다스림의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것입니다. […] 이른바 때에 알맞게 한다는 것은 때에 따라 변통해서 법을 제정하여 백성을 구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이(程頤) 선생께서 『주역』에 대해 논하여 말하기를 "때를 알고 형세를 아는 것이 『주역』을 배우는 큰 방법이다."라고 하셨고, "때에 따라 변화하여 바꾸는[變易] 것이 바로 영원한 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법이란 시대에 따라 제정하는 것이어서 시대가 변하면 법도 같지 않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순(舜) 임금이 요(堯) 임금을 계승하였으니 당연히 다르게 할 것이 없어야 했을 터인데도 9주(州)를 나누어 12주로 만들었고, 우(禹) 임금이 순 임금을 계승하였으니 당연히 다르게 할 것이 없어야 했을 터인데도 12주를 바꾸어 9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성인들이 변화시켜 바꾸기를 좋아해서이겠습니까? 단지 때에 따른 것에 불과합니다. 예부터 후세에 이르는 수천 년 동안 역대의 다스려지고 어지러웠던 자취는 대체로 이와 같습니다만, 때를 따라 폐단을 잘 구제했던 것은 오직 하(夏)·은(殷)·주(周)의 삼대에서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삼대 이후로는 폐단을 구제했던 일이 본디 드물기도 하지만, 그 올바른 방법을 다하지도 못하였습니다. 대체로 때를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은 법령과 제도이며, 고금을 통하여 변해서는 안되는 것은 왕도(王道)와 인정(仁政)과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입니다. 후세에는 원리와 시행방법[道術]이 밝혀지지 못해서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을 고치고 바꾸는 때가 있었고 변할 수 있는 것을 굳게 지키는 때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잘 다스려지던 날은 언제나 적고 어지러운 날들이 언제나 많았던 이유입니다. (李珥, 『萬言封事』, 『율곡전서』 5-12ㄴ~14ㄴ)
연관목차
조선 전기 경세론과 불교비판 67/155
조선 전기 경세론과 불교비판
머리말
일러두기
제1부 조선 전기 경세론과 불교 비판 해제
Ⅰ. 조선 전기 경세론 해제
Ⅱ. 조선 전기 불교 비판 해제
제2부 조선 전기 경세론과 불교 비판 해설
1. 경세론
1.1. 총론
1.1.1. 김시습의 명분론
1.1.2. 송흠의 춘왕정월론
1.1.3. 양성지의 민본적 통치론
1.1.4. 양성지의 자주적 통치론
1.1.5. 권벌의 인정론
1.1.6. 조식의 민본사상
1.2. 정치론
1.2.1. 이곡의 정치론
1.2.2. 이첨의 정치론
1.2.3. 정도전의 정치론
1.2.4. 변계량의 정치론
1.2.5. 조광조의 정치론
1.2.6. 이이의 군권제한론
1.2.7. 정인지의 군주찬송가
1.3. 성학론
1.3.1. 이제현의 성학론
1.3.2. 성삼문의 성학론
1.3.3. 이석형의 성학론 1
1.3.4. 이석형의 성학론 2
1.3.5. 이황의 성학론
1.3.6. 이이의 성학론
1.4. 군신관계론
1.4.1. 신용개의 군신관계론
1.4.2. 강희맹의 군신관계론
1.4.3. 김정국의 군신관계론
1.4.4. 이이의 군신관계론
1.4.5. 윤상의 인재 등용론
1.4.6. 이이의 현자등용론
1.4.7. 이이의 군자등용론
1.4.8. 이이의 붕당론
1.5. 법제론
1.5.1. 총론
1.5.1.1. 신용개의 제도론
1.5.1.2. 남수문의 제도론
1.5.2. 토지 제도론
1.5.2.1. 조준의 토지 제도론
1.5.3. 부세 제도론
1.5.3.1. 이이의 공납제 개선안
1.5.4. 교육 제도론
1.5.4.1. 김반의 교육 제도 개혁안
1.5.4.2. 이제현의 유학 진흥 방안
1.5.4.3. 조광조의 유학 진흥 방안
1.5.4.4. 남수문의 교육론
1.5.4.5. 김안국의 교육론
1.5.4.6. 기준의 교육론
1.5.4.7. 신광한의 서원론
1.5.5. 간관론
1.5.5.1. 정도전의 간관론
1.5.5.2. 기준의 간관론
1.5.5.3. 이이의 국시론
1.5.6. 예악론
1.5.6.1. 성현의 음악론
1.5.6.2. 김수온의 예악론
1.5.7. 개혁론
1.5.7.1. 조광조의 개혁론
1.5.7.2. 김정국의 개혁론
1.5.7.3. 이이의 경장론
1.5.7.4. 이이의 변통론 지금 읽는 중
1.5.8. 상벌론
1.5.8.1. 조준의 상벌론
1.6. 대외 관계론
1.6.1. 신숙주의 외세 대응론
1.6.2. 남수문의 외세대응론
1.6.3. 조광조의 대외관계론
1.6.4. 변계량의 자주국가론
1.7. 재이론
1.7.1. 남효온의 재이론
1.7.2. 이색의 재이론
1.7.3. 최항의 천인감응론
2. 불교 비판
2.1. 정몽주의 불교 비판
2.1.1. 불교의 초월적 경향에 대한 비판
2.1.2. 불교의 반윤리성에 대한 비판
2.1.3. 불교의 마음관에 대한 비판
2.2. 정도전의 불교 비판
2.2.1. 유불도 삼교에 대한 종합적 인식
2.2.2. 불교의 심성론에 대한 비판
2.2.3. 불교의 자비에 대한 비판
2.2.4. 불교의 인과응보설에 대한 비판
2.2.5. 불교의 윤회설에 대한 비판
2.2.6. 유교와 불교의 종합적 비교
2.3. 여타의 불교 비판
2.3.1. 백문보의 불교 비판
2.3.2. 이색의 불교 비판
2.3.3. 하륜의 불교 비판
2.3.4. 정극인의 불교 비판
2.3.5. 양희지의 불교 비판
2.3.6. 서거정의 불교 비판
2.3.7. 박상의 불교 비판
2.4. 김수온의 불교 옹호론
2.4.1. 불교 옹호론
2.4.2. 유불 회통론
2.4.3. 불교 신앙 옹호론
2.4.4. 불교적 관점에 의거한 세계 인식
2.5. 절충조화론
2.5.1. 이곡의 절충론
2.5.2. 원천석의 삼교 일리론
2.5.3. 박팽년의 유불 조화론
2.5.4. 성현의 삼교 회통론
2.6. 권근의 불교관
2.6.1. 유불 조화론
2.6.2. 불교 비판
<부록> 조선 전기 인물 해제(가나다순)
(1) 강희맹
(2) 권근
(3) 권벌
(4) 기준
(5) 김반
(6) 김수온
(7) 김시습
(8) 김안국
(9) 김정국
(10) 남수문
(11) 남효온
(12) 박상
(13) 박팽년
(14) 백문보
(15) 변계량
(16) 서거정
(17) 성삼문
(18) 성현
(19) 송흠
(20) 신광한
(21) 신숙주
(22) 신용개
(23) 양성지
(24) 양희지
(25) 원천석
(26) 윤상
(27) 이곡
(28) 이색
(29) 이석형
(30) 이이
(31) 이제현
(32) 이첨
(33) 이황
(34) 정극인
(35) 정도전
(36) 정몽주
(37) 정인지
(38) 조광조
(39) 조식
(40) 조준
(41) 최항
(42) 하륜
참고문헌
출처
제공처 정보
조선 전기 경세론과 불교비판 2004.
저자 강중기
제공처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http://philinst.snu.ac.kr
[네이버 지식백과] 이이의 변통론 (조선 전기 경세론과 불교비판, 2004., 강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