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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정신과 원불교 4. 유교의 개혁운동과 원불교 [개혁정신과 원불교 [교리 [기사본문 - 원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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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정신과 원불교 4. 유교의 개혁운동과 원불교

기자명 류성태 교무
입력 2020.07.23


류성태 교무

[원불교신문=류성태 교무] 정도전과 권근은 조선 건국의 개혁주의 사상가이다. 이들은 고려불교를 비판하고 유학을 국교로 삼고 개혁의 선봉에 섰다. 유교를 국가 개혁의 사상적 근간으로 삼고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공을 세웠다. 불교를 극복하고 유교로의 전개는 건국 초기의 개혁이라는 이슈가 강력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뒤이어 조선 선조 때 율곡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을 통해 시대의 변화를 바르게 파악하고 새롭게 변화하려는 변통론(變通論)과 사회모순을 개혁하는 경장론(更張論)을 주장했다.

시대의 구폐를 개혁하고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서 인정(仁政)과 삼강오륜의 이념에 근거한 개혁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그의 상소문 『만언봉사(萬言封事)』에서는 지시(知時), 시의(時宜)를 거론하며 개혁을 강조한 것이 이와 관련된다.


이처럼 조선의 개혁론으로서 변통론경장론 등은 후대의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지향하는 실학자들의 개혁정신으로 이어진다. 최한기, 이익, 정약용, 유형원이 그들이다. 이익은 이에 말한다. “법이 오래가면 폐해가 생기고, 폐해가 생기면 반드시 개혁이 있어야 한다.” 경장(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망할 것이라는 논리이며, 혹 실패를 한다고 해도 다시 경장해야 치국이 된다는 것이다. 최한기도 ‘새로운 것으로 낡은 것을 바꾸는’ 변혁의 중요성을 인지해 차라리 옛것을 버릴지언정 지금을 버릴 수는 없다는 진보정신을 표방했다. 정약용은 도탄에 빠진 민중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키도록 사회의 개혁의 경세론을 집대성했다.

근세 유교의 개혁론 중 돋보이는 것은 백암 박은식의 ‘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이다. 그는 불혹의 40세(1898)부터 망국의 52세 때에 심기일전해 사회 계몽운동가로 변신했다.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서 교육문화의 개혁운동을 추진했던 백암은 유교구신론을 통해 사변적인 성리학의 한계를 직시하고 심학인 양명학으로써 유교를 근대화하고자 하였다.

계몽적 애국운동가로서 박은식, 신채호, 정인보 등은 나라를 구하려는 유교개혁 운동을 펼쳤지만 아쉽게도 급변하던 시류 속에 개혁을 완수하지 못했다. 유교의 개혁운동은 실학자들의 열망에도 큰 성공을 이루지 못한 채 경술국치라는 암울한 역사에 매몰되고 말았다.

유교의 『변통론』, 『경장론』 『구신론』에서 못다 이룬 개혁의 꿈은 ‘개벽(開闢)’의 닻으로서 소태산의 『혁신론』, 정산의 『건국론』 태동의 마중물이었다. 국가와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변통(變通), 개혁하려는 경장(更張),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구신(求新)이 원불교의 선천을 마감하는 ‘개벽(開闢)’과 같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음은 흥미롭다.

조선유교의 개혁이슈들이 불교개혁의 소태산과 정산의 삼교 활용의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음이 주목된다. 유교의 개혁사상이 원불교 교법의 ‘사실적 도덕의 수행’, ‘실학적 교리’, ‘의례의 예전’에 용해되어 새 시대의 개혁운동으로서 응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있다. ‘주역’의 혁괘(革卦) 5효에서는 인간사의 대변혁에 또한 대인(大人)이 요청된다고 했으니, 원불교의 대인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주역’의 우환의식을 새기면서 원불교 미래의 불안감을 극복할 수 있는 개혁 프로그램의 실제적·실용적 대안을 제시하는 자일 것이다.

/원광대학교

[2020년 7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