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4

퇴계 와 율곡 사상 비교

퇴계 와 율곡 사상 비교



퇴계 와 율곡 사상 비교 |

원두막 201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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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퇴계의 사상



2.1 聖學十圖

퇴계가 어린선조가 임금에 등극하자 聖君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을 10개의 그림으로 구성하여 선조에게 올렸다

성학십도는 소학과 대학을 중심으로 위로는 그 우주론적 근거와 기준을 탐구하고 아래로는 가치의 본원을 밝히고 체득하며 이를 현실세계에서 구현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에는 우주와 인간의 참모습,여기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론,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이 추구해야할 바른 삶의 방향에 대한 최선의 지식을 자각하게 하는 내용이 들어있고 특히 心統性情圖에 퇴계사상의 핵심이 들어있다



2.2 사단칠정론쟁

四端은 맹자의 측은지심은 인지단(仁之端), 수오지심은 의지단(義之端), 사양지심은 예지단(禮之端), 시비지심은 지지단(智之端)이라고 한 仁義禮智 端을 모아서 사단이라고 하며,



칠정이란 예기에 나오는 사람이 갖고 있는 일곱 가지 감정, 喜怒哀懼愛惡欲을 말한다.

이 사단과 칠정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어서 그 주장을 사칠론이라고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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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것은 사람의 견해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며 조선시대의 성리학에 있어서 오랫동안

논쟁 대상이 되었다.(기대승과의 논쟁)



2.3 이기론

理氣論은 조선시대 성리학에 있어서 자연의 존재법칙을 연구하는 우주론의 하나이다.

이기론은 사칠론과 얽히어 조선시대 유교계에 있어서 논쟁의 초점이 되었다.

四端은 理에 發하므로 순선(純善)이요, 七情은 氣를 겸하였으므로 선악(善惡)이 있다

사단은 이의 발이요, 칠정은 기의 발이다.사단에도 기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이가 주가 되므로 사단은 이의 발이라 말하고, 칠정에도 이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기의 발이라 한다고 하여 理氣二元論을 취하고 理氣互發說을 주장하였다.



퇴계의 사상은 정자, 주자의 입장을 바탕에 둔 정주학의 토대 위에서 세워졌다. 그리하여 그 좋은 예가 심성론 특히 사단칠정론이다. 퇴계는 기대승과의 4단7정론을 통하여 이기론의 이론을 심성 개념의 분석과 해명에 적용하여 한국 유학의 중요한 특징인 심성론(인성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와 같은 퇴계의 사상으로 인하여 한국 성리학은 강한 독자성을 지니고 발전하며 일본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퇴계의 학문정신은 이론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 완성을 추구하는 수양론으로 열려 있기 때문에, 인간의 심성을 살아 움직이는 현실 속에서 이해한다는데 중요한 특징이 있다. 퇴계의 수양론은 심(心)과 경(敬)의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심은 수양이 이루어지는 바탕이요, 경은 수양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퇴계의 학문적 관심은 항상 인간의 도덕적 자기완성을 추구하는 수양론으로 귀결되고 있으므로 이 '경'이야말로 퇴계 사상의 핵심이며, 퇴계가 존경받는 이유도 이러한 경의 태도를 한 평생 몸소 실천한 인격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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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율곡의 사상



율곡은 한국 도학사상의 정맥을 계승하여 通儒로서 유교의 고전과 송대 선현들의 학술을 깊이 이해하고 그 기본정신에 투철하였으며 실제적인 현실문제에까지 연결시켰다



4.1 理氣之妙

理와 氣는 보기도 어렵고 말하기도 어렵다. 무릇 리의 근원도 하나이며 기의 근원도 하나이다 (氣發理乘 : 운동하는 것은 氣요, 스스로는 운동하지 않으면서 기의 운동 원인이 되는 것은 理다.) 율곡은 理氣一途說로써 理發을 부정하고 氣發理乘만을 관철하였으며, 사단과 칠정의 근원으로서 퇴계의 이른바 이발·기발이란 두 묘맥(苗脈)을 부정하고 기발의 한 묘맥만을 인정하였다. 율곡은 선배인 퇴계의 이원적 이기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율곡은 “인심도심이 다 기의 발이요, 기에 있어 本然之理를 順한다면 기가 본시 本然之氣이다.”라고 하고 퇴계의 주장처럼 하나는 기발, 하나는 이발로 서로 다른 본질과 근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하나의 심이 “단지 발하는 곳에 있어서 이단(二端)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4.2 人心道心說

인심은 본능적 욕구이고 도심은 도덕적인 순수의욕이다.

퇴계는 인심과 도심을 이기론으로 설명하면서 도심은 사단, 인심은 칠정으로 규정했으나 율곡은 인심과 도심은 사단이 칠정에 내포되므로 사.칠이 하나의 情인것과는 달리 서로 대립



적인 두 개의 마음으로 보고 인심과 도심은 다같이 理라고 하는 하나의 원천에서 흘러나와

두가지 마음이 된 것이다 (源一而流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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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은 성현이라도 면할 수 없으며, “먹을 때 먹고 입을 때 입는 것”은 바로 천리인 것이다. 율곡은 인심이라 해도 그것이 알맞게 조절된 상태에서는 “인심 또한 도심이 된다.”고 하였다.氣質之性 은 理와 氣의 합이며 인심은 氣의 가린 바이나 도심은 氣가 가리지 않는 것이고 意는 마음이 발한 것을 헤아려 생각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또 정치사상에서는 민본 덕치주의를 강조하여 왕도정치가 실현되어 요순시대가

재실현되기를 바랐으며 정치에는 때를 아는 것이 귀하고,일에는 참을 힘쓰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며 국방력의 강화와 (10만 양병설을 주장) 정치의 주체는 국민이므로 民意에 의한 정치와 언로가 열리느냐, 닫히느냐에 국가의 흥망이 달려있다며 言路의 개방을 강조했다

경제사상 측면에서 애민정신으로 인간 생명 중시하였으며 養民 연후에 敎民으로 보았고

생산장려, 국부증대. 분배의 형평. 절약, 검소의 소비윤리를 강조하고 사창(社倉)제도 실시하여 빈민을 구제하였으며 오늘날 정치의 핵심이 되고 있는 경제에 있어서 의리와 실리가 조화 를 이루는 경제 윤리를 제시하여 이익에만 치우치는 경제를 경고하고 있다.

저서는 '성학집요' '격몽요결' '경연일기' '동호문답' 등이 있다.





5.맺음말



퇴계는 스스로 도산서원을 창설, 후진양성과 학문연구에 힘썼고 현실생활과 학문의 세계를 구분하여 끝까지 학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중종·명종·선조의 지극한 존경을 받았으며 시문은 물론 글씨에도 뛰어났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묘 및 선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단양의 단암서원, 괴산의 화암서원, 예안의 도산서원 등 전국의 수십 개 서원에 배향되었다.



율곡은 진정한 학문은 내적으로 반드시 인륜에 바탕을 둔 덕성의 함양과 외적으로 물리에 밝고 경제에 밝은 부강을 겸비하여야 한다고 여기고 당시의 피폐한 현실은 역사적으로 경장기에 해당한다고 하여 국방력의 강화,경제 부강,사회정의의 확립등을 주장하면서 우리가 실리를 주장하다보면 의리에 어긋나고 의리를 추구하면 실리를 망각하기 쉽다 이러한 모순을 원만히 타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퇴계의 理發, 율곡의 氣發이란 상반되는 견해는 다음 主理派와 主氣派의 양대 진영으로 갈리어, 유교계에서 오랫동안 논쟁을 계속하였고 퇴계를 지지하는 주리파는 영남지방에서,

율곡을 지지하는 주기파는 경기·호남 등지에서 성행하였으므로 각기 영남학파·기호학파라고도 일컬어졌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퇴계,율곡을 정점으로 하는 전성기의 성리학은 인간성의 문제를 매우 높은 철학적 수준에서 구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空疎한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적,사회적 현실과 연관을 가지고 영향을 주었으며 후세에는 의리사상 및 실학사상으로 전개되는 하나의 계기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