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27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고...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고...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고...

책을 읽으며...

처음부터 가슴이 콩닥거리게 하는 두려움을 동반한 묘한 궁금증을 안겨주며 시작되는 이야기의 신부로 신학적 재능이 뛰어나고 신자와 사제들에게 존경을 한 몸에 받던 페레이라 신부가 ‘구멍매달기’라는 고문에 못이겨 배교를 했다는 보고가 교황청으로 들어오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페레이라 신부의 제자였던 가르페 신부와 로드리고 신부는 당신들의 존경해마지 않던, 그 인자하고 하느님의 사랑에 확신에 가득찼던 스승 신부님의 배교라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보고에 자신들의 눈으로확인하고 오겠다는 목적과 함께 일본 선교를 자청하여 들어간다. 시기적으로 워낙 위험하였으나 젊은신부들의 확고한 신념과 굳건한 믿음아래 결국 그들의 일본 선교에 대한 허락이 떨어지면서 일본 선교에 나선 로드리고 신부의 보고서를 시작으로 이야기는 전개 되어간다.

로드리고 신부는 ‘기치지로’라는 아주 특이한 일본인의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일본 열도로 무사히 잠입하게 되고, 그곳에서 그는 일본에 대한, 일본에서의 보고 느끼는 자신의 상황과 일본 신자들에 대한 상황에 대한 자세한 보고서를 교황청에 올리게 된다.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이어진 보고서라책의 3분의 1을 읽을 때까지는 나는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소설’이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만약 책날개에 붙어있는, 엔도 슈사쿠가 소설가라는 그에 대한 소개말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에필로그를 읽을 때까지 보고서인줄 알고 읽었을 터였다.



‘침묵’을 읽기 시작하며 나를 치고 들어온 감정은 하느님에 대한 그들의 절절한 사랑에 대한 고통이었다. 



그분들은 기도는 커녕 성호도 제대로 그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절절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리워했는데, 정작 박해도 받지 않으며 마음껏 ‘당신을 사랑한다’고 세상에 외칠 수 있는이 평화로운 세상에 태어난 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건가..? 하는 부끄러운 죄책감에서 오는 아픔이 가슴 깊은 한 켠에서 꿈틀거리며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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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나오는 여러 등장인물들 중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인물은 의아스럽게도 바로 일본인 기치지로였다. 한없이 교활하고, 때마다 배신하고 배교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부지를 위해 로드리고 신부까지 신고하면서도 끝까지 신부 곁을 떠나지 못하고 고해성사를 해달라며 울부짖는 기치지로. 그의 비굴하면서도 ‘신뢰’란 단어는 사전에 없는 듯 제몸하나 살리고자 배신행위를 우습게하는 기치지로서도그는 끝까지 신부 곁에서 맴돌며 그를 챙겨도 주고, 자신도 카톨릭 신자라고 잡아가라고 외쳐대면서도 고문이 다가올라치면 두 번 생각 안하고 성화를 밟고 배교하고 풀려나고 그리고는 또 신부를 찾아와 고해성사를 구하는 거머리 같다 못해 구더기 같은 기치지로.. 읽으면서 더러운 구더기 같은인간이라는 생각을 했으나, 과연 나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기치지로 역시지금처럼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밝고 활발하고 환영받는 신자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한탄대로 그는 약하게 태어났고, 그것이 그의 십자가이며, 그래서 늘 배교하지만, 그 안에는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과 그것에 대한 양심 속에 그는 늘 괴로워하며 로드리고 신부의 주위를 맴돌며 자신의 비겁한 나약함에 고해성사를 구한다.



기치지로, 처음엔 그를 보며 어떻게 저럴수가 있을까? 싶었지만.. 점점 이야기의 흐름 속에 기치지로의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진저리가 처졌다. 내가 필요할 때는 ‘하느님 사랑해요 도와주세요’ 절절한 외침으로 찾으면서 정작 내가 조금 편해지면 외면하고 마치 나는 하느님이 누구신지 모른다는 듯 그렇게 내 삶 속에 푹 빠져 지내곤 한다. 성화를 밟는 배교는 아니나, 얼마나 많은 순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면서 그렇게 하느님께서 멀리 떨어져 나가는가..



“밟아라.. 나를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며 우리보다 우리의 고통을 더 아파하시는 하느님을 느끼며 눈물이 흘렀다. 피눈물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을 우리는 그렇게 짓밟음으로써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상기시켜드려야 했을까...? 신자들의 고통을 바라보며 “밟으세요 밟아도 좋아요” 라고 외치는 로드리고 신부의 신자들에 대한 사랑. 예수님 마음이 이러셨겠지...



매 순간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잘 이겨낸 로드리고 신부. 하지만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는 신자들을 보며, 예수님이 만약 당신 때문에 누군가가 죽어간다면 어떡하셨을까



이것은 내 자신을 위한 신앙인가..? 정말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갈등을일으키는 신부의 고뇌를 보며, 나 역시 그 고뇌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님이셨다면로 인해 아무 죄없이 죽어가는 이 순진한 신자들을 보며 ‘당신의 아버지인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위해순교하시고 천국 가십시오..’라고 말씀하셨을까..? 차라리 나를 밟고 지나가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위해 이 세상에 왔다. 나는 너희를 위해 이 세상에 죽으러 왔다고 하시는 예수님의 목소리가 자꾸만귓가에서 들리는 듯 하다..

침묵하는 예수님을 흔들어대며 ‘주여, 지금이야말로 당신은 침묵을 깨 버리셔야 합니다. 더 이상 침묵하고 계셔서는 안됩니다. 당신은 올바름이며 선이며 사랑의 존재임을 증명하고. 당신이 엄연히 존재함을 이 지상과 인간들에게 나타내기 위해서라도 뭔가를 말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P262)



로드리고의 신부의 절규가 가슴에 소낙비되어 내린다.



겉으로 드러난 ‘배교’라는 그림은 비슷했을지 모르나. 어쩜 로드리고 신부가 선택한 사랑의 실천은 옳은 선택이 아녔을까..? 하는 생각이 가슴 안에서 계속 맴돈다. 하느님만은 로드리고 신부의 당신을 향한 절절한 사랑을, 당신의 자녀들인 신자들을 사랑하는 그 진실된 사랑을 아실 것이라는 마음생떼를 쓰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성직자들은 이 모독의 행위를 격렬하게 질책할 테지만, 나는 그들을 배반했을지 모르나 결코 그분을배반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형태로 그분을 사랑하고 있다. 내가 그 사랑을 알기 위해서 오늘까지의 모든 시련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이 나라에서 아직도 최후의 가톨릭 신부이다고 그분은 결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비록 그분이 침묵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나의 오늘까지의인생은 그분과 함께 있었다. 그분의 말씀을, 그분의 행위를 따르며 배우며 그리고 말하고 있었다(P294)



로드리고 신부의 고백이 내 가슴에 메아리되어 남는다. 신부님의 결정이 옳으셨다고, 하느님께서는아신다고,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을거라고... 우리는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다고... 내가 그분 옆에 있었다면 신부님의 손을 꼬옥 잡아드리고 싶었다...



책을 덮으며...

비록 로드리고 신부는 엔도 슈사쿠가 지어낸 인물이긴 하지만. 일본을 선교하러 간 많은 사제들리고 수많은 일본 신자들이 어떻게 고문을 당하며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내며 순교를 했는지는 하임언니의 일본 순례여행 후기를 읽으며 이미 알고 있었던 터, 하임 언니가 왜 그렇게 ‘나가사키’를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목젖이 아파오는지. 하임 언니가 왜 그렇게 나가사키와 사랑에 빠지셨는지알 것만 같았다. 일본 순례 여행을 다녀오시며 지옥이 따로 없었다며 그렇게 절절한 느낌을 전해주시던 언니.. 소설가 한수산씨가 “나가사키는 역사와 로망을 안고 오늘도 아름답다. 보랏빛으로

2010.04.22 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