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4

손민석 - 헤겔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어른이 되자!"이다. 하지만 난 아직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걸~? 책의... | Facebook

손민석 - 헤겔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어른이 되자!"이다. 하지만 난 아직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걸~?

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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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어른이 되자!"이다. 하지만 난 아직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걸~? 책의 1부에 나오는 내용인데 좀더 풀어쓰려 했지만.. 안 하기로 했다. 이놈
들, <자본론>의 상품장이 어렵듯이 원래 자유 개념이 어려운거다 이놈들! 헤겔이 이놈! 한다!


손민석

삶이라는 건 폭력을 껴안고 가는거다. 내가 예전에는 마르크스의 헤겔 비판에 많이 동의했는데 나이 먹을수록 동의하지 못하게 되는 게 마르크스가 애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마르크스는 현존하는 모든 폭력에 광적으로 비난을 퍼붓는다. 반면에 헤겔은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을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품으려고 노력한다. 있는 그대로 끌어안음으로써 오히려 그 폭력 속에서 자유의 계기를 끌어낸다. 폭력을 비판하기는 쉽지만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을 수용하고 더 나아가서 그 속에서 자신의 자유의 계기를 읽어내기란 정말 어렵다. 헤겔은 그걸 할 수 있는 큰 사람이다. 
 헤겔이 자유를 논하는 건 크게 3차원이고, 내 책의 원고 첫 부분이 이걸 나름 상세하게 다루는건데 조금 어렵기는 하다. 더 쉽게 고쳐 쓰고 있다. 헤겔에 따르면 "최초"의 자유는 "보편성"이다. 자신에게 가해진 모든 현실적 제약들을 무시할 수 있는 힘, 그것에 자유의 "절대적 가능성"이 존재한다. 인간이라는 건 본래 온몸이 구속되어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온갖 고통속에 노출되어 있을지라도 그 상황 자체를 무시하고 자기 내면에 침잠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내가 두들겨 맞고 있어도 머리 한편에서는 저녁 뭐 먹지?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게 인간이라는거다. 일종의 '유체이탈'이다. 그 유체이탈이야말로 인간 자유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무한한 자유의 가능성을 보면서 동시에 자기 모습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다. 박근혜를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마시라, 자유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현실을 추상화하고 배제하면서 자아는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구속받지 않는 "무한한 자유"에 놓이게 된다. 말 그대로 어떠한 것도 될 수 있고 동시에 어떠한 것도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자유를 누린다. 이 절대적 자유가 역사적 사건으로 나타난 게 프랑스 대혁명이다. 존재하는 모든 제도를 무화시키면서 사람의 목을 양배추 자르듯이 무의미하게 잘라버리는 지경까지 간 그 상황이 "절대적 자유"의 현실태이다. 스탈린의 대숙청도, 모택동의 문화대혁명도 바로 그 절대적 자유가 구현된 세계이다. 우리가 자유인이라면 그 폭력이 "절대적 자유"의 실현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찬양해야 한다. 그런데 하지 않지요? 어머,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이다니. 폭력적이야. 보기 좋은 것만 끌어안고 싶어요. 폭력은 싫어요. 그런 애새끼 같은 말은 던지시라, 그 속에 모든 것을 부정하는,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부정할 수 있는 절대적 자유가 존재한다. 우리는 그 폭력의 무저갱을 지나야, 아니 그 폭력의 무저갱 속에서 자유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 목을 양배추 자르듯이 자르던, 아무 의미없이 사람을 죽이던 '절대적 자유'는 추상적이다. 모든 것을 부정하다가 끝내 텅 비어버린, 무(無)가 되어버린 자아에게는 자신을 제외하면 더 이상 부정할 게 남아 있지 않다. 그렇게 자기 자신마저 부정해버리면 이제부터는 무언가 구체적인 내용들을 채워넣어야 한다. ~(~A)=A가 되는 것이다. 과연 그때의 A는 ~A의 A와 같은 것인가? 이전까지 자신에 대한 폭력으로, 부정의 대상으로만 받아들여졌던 것들이 나의 의지, 욕구의 산물로 인식되게 되면서 자유는 폭력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폭력 속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나는 특정한 규정에 의해 정의되는 "특수한 존재"가 된다. 이전까지만 해도 나를 억압하고 구속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규정들이 이제는 나의 의지가 반영된, 내가 인식하고 의욕하는 대상이 된다. 헤겔이 공포정치 속에서 절대적 자유를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반동왕정의 복권 속에서 자유의 구체적 실현을 엿본다. 반동적인 왕조들이 복권되었지만 대혁명 이전의 왕정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들은 대혁명이 보여준 절대적 자유를 점진적으로 실현시켜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그는 자신이 역사의 종말을 이미 보았다고 말한다.
 이렇듯 보편적이면서도 특수적인 자유를 나는 "스스로를 인식하고 의욕하는 자유"라고 부른다. 엥겔스가 말한 '자유'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 폭력을 배제하겠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다. 중요한 건 폭력의 의미를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더 어렸을 때는 그것을 정신승리로 보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저것들도 다 나름대로 필요한 게 있지 않은가 싶고.. 설사 아무런 의미없는 폭력의 난무조차도 그 속에서 자유를 이끌어낼 수 있는 헤겔의 통찰력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가 역사를 하나의 운동으로 보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통찰이다. 나는 이 통찰이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