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과 성경의 제일 요긴한 교훈
제 3 문 성경이 제일 요긴하게 교훈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5문) 답: 성경이 제일 요긴하게 교훈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믿을 것과1)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입니다. 2)
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2)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8) I. 성경은 하나님과 구원, 그리고 구원받은 자의 삶을 다룹니다.
지난 번 공부에서 우리는 성경의 충분성(Sufficiency)를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은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지식을 얻는다는 말인가요?
1) 성경은 백과 사전이 아닙니다.
물론 성경에는 세상에 있는 많은 것들, 또는 모든 것들이 다 언급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성경은 인류의 완전한 역사를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주어진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상에는 다른 사료에서 배워야만 할 많은 역사들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일반 과학이 요구하는 기술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화학 공식이 없습니다. 전자 공학의 이론도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주어진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상에는 다른 사료에서 배워야 하는 많은 역사들이 있습니다. 고구려사도 학교에서 배워야 하고 중국역사도 따로 배워야 합니다.
법률학 정보나 컴퓨터 정보도 나오지 않습니다.
2)
사실상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우리가 바라는 정보조차도 다 제공해주지 않습니다.
성경 인류의 완전한 역사를 제공해 주지 않을 뿐 더러, 예수님의 소년 시절, 교육, 또는 가정생활에 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정확한 신체적 모양을 도무지 알지도 못합니다.
원래부터 성경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주기 위해 주어진 정보 책이 아닙니다. 그 목적이라면 아마 구글이 더 쉬울 것입니다.
3)
성경은 우리에게 보다 근본적이고 영원한 문제를 다루십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인간의 구원, 그리고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것과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을 가르치려고 주어졌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즉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구원을 얻으며, 구원받은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알 수 있게 충분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의 충분성을 이야기할 때에 분명히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II. 성경의 충분성이 의미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바로 알 수 있는 답(열쇠)를 성경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이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설명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해답을 얻을 수 있는 분명한 열쇠와 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성경이 없이 이 세상의 적은 것에서 큰 것까지 그 어떤 것도, 참된 이해를 가질 수 없다고 선언할 수 있습니다.
마치 어두움 속을 걸으면 아무리 눈이 밝아도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빛이 비춰질 때에는 모든 것이 환하게 보여 바른 판단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이 등불의 빛과 같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시 119:105) "주의 빛 가운데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시 36:9)
하나님을 배제하고 이 우주만물과 또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분명히 그 근본과 원인과 이유를 바로 알 수가 없습니다.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왜곡된 지식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하나님의 창조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만으로 존재의 원인을 밝히려는 진화론자들은 그 존재의 이유를 우연히 화학반응에 의하여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결론에 도달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가지지 못하였으므로 자신의 눈을 가지고 어두움 속에서 내린 결론입니다. 아무리 좋은 눈, 즉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진 과학자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역사가, 지리학자, 철학자 혹은 다른 학문을 연구하는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의 조명 속에서 볼 때에 참된 판단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다 적용됩니다.
여러분들은 삶의 모든 판단과 결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아래서 판단하고 계신가요?
결국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모든 정신세계를 볼 때에 그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의 눈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고,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 분의 특별한 계시 즉, 말씀의 빛 속에서 그 사물을 볼 때에 참 지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빛으로 볼 때에 성령께서 그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어두움 속에서는 아무리 우리가 잘 연구한다하여도 짐작에 불과합니다. 많은 오류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물을 말씀의 빛에 비추어 바라보는 것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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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진리의 빛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등불입니다. 그 등불을 비취는 빛 가운데서 사물을 바라볼 때 우리는 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III. 인간의 전적부패로 인하여 성령의 거듭남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그 영혼을 거듭나게 만들어 주신 자에게 가능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창조주의 살아계심을 믿고 신뢰하며, 모든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바라 봅니다. 그로 인하여 자신의 참된 위치와 가치를 바로 이해하고 인정합니다.
이 사람이 과학자라면 그는 하나님의 경이스러운 창조를 더 잘 알기 위하여 사물을 연구할 것입니다. 창조 과학자들이 그들 중에 포함될 것입니다.
그가 만약 역사가라면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하기 위하여 인류의 역사를 연구할 것입니다. 물론 다른 모든 영역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철학자라면 역시 창조주의 인간을 향한 창조 목적과 인간의 근원 등을 빛으로 바라보면서 인간의 존재나 인식, 또는 목적 등을 연구하여 나갈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영역에서 근본적으로 바른 지식을 얻기 위하여는 말씀의 빛으로 바라보고 연구하여야 합니다.
오직 신앙을 통해서만, 즉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믿을 것을 알 때에 만이 우리는 똑바로 걸을 수 있으며,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의무와 본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IV. 성경은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하며 믿는 자가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거듭난 자들이 성경의 조명 아래서서 세상의 이치와 진리들을 깨달아 갈 수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질문의 열쇠와 답을 성경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조명 아래,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진리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주로 다루는 것은 보다 깊은 영적인 원리들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구원을 얻으며, 믿음으로 구언 받은 자가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잘 설명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교리 문답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작성되었습니다.
1)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할 것인가를 크게 강조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 흔히 무엇을 믿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는 “각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믿을 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다른 이들은 “무엇을 믿든지 그 사람이 타인에 대해 신실하고 점잖으면 그가 믿는 것을 받아들일 만하다.”고 말합니다.
시인 알렉산더 포우프(A.Pope)조차도 이렇게 읊었습니다.
"몰지각한 독선적 신앙 문제 싸움은 내버려두라. 정직하게 사는 자가 믿는 모든 것은 나쁠 수
없다."
물론 믿고 싶지 않는 것을 믿도록 어느 누구도 타인에 의해서 강요당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믿든 그 차이가 없다고 할 때 그것은 참이 될 수 없습니다.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요이 9)
예수님께서는 우물 가에서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2-24).
인간이 잘못된 신앙을 가졌을 지라도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
7:18).
교리 문답이,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믿을 것”을 선두에 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2) 인간이 참 신앙, 하나님이 그에게 믿기를 명한 그 믿음을 가졌을 때 그는 하나님이 명한 것을 행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올바른 행위, 실천의 결과가 없는 한, 참 신앙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니요 그 믿음이 능히 자신을 구원하겠느냐” (약 2:14).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약 2:17, 26).
교리 문답이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믿을 것”과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을 강조하는 것은 신자가 생활의 참된 자세를 갖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죽은 정통이란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의 참된 교리들을 고백하고, 이것을 토론하고 주장하며, 그 방법들을 이해하긴 하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리 문답이 신앙을 선두에 둘 뿐만 아니라 올바른 실천이 없는 신앙은 구원 받을 수 있는 참 신앙이 아님을 계속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율법(십계명)은 우리를 회개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의 필요를 깨닫게 하여 줍니다.
한가지 첨가적으로 알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율법(십계명)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 곧 가정 교사가 된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의 정죄를 통하여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우리의 무능을 지적함으로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하여 줍니다.
결국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속의 죄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됨을 받을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하여 줍니다.(갈 3:24)
율법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율법의 정죄로 우리가 예수님이 필요함을 깨닫게 해 주는 몽학선생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의 필요를 먼저 깨닫기 전에는 자신이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신앙에 이를 수 없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죄인들이, 그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오로지 율법에 의해서인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4) 그러면 율법을 먼저 다루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러면, 교리 문답이 왜 율법을 먼저 말하지 않고, 구원 받기 위해서 필요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먼저 말하는가요?” 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여기 대한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a.
교리 문답이 율법을 먼저 다루고, 다음으로 신앙을 다룬다 해서 그릇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세주를 주시기 전에 율법을 먼저 주셨습니다.
b.
그러나 교리 문답에서 율법이 가장 먼저 취급되지 않은 데 대한 선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
율법을 앞에 두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뒤에 두게 되면 그리스도가 율법보다 덜 중요하다는 인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
부주의한 사람들은 구원이, 율법이 명한 바를 행함으로 얻어진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먼저 율법을 지켜라. 그리하면 그리스도가 영접할 것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입니다.
성경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 받을 자는 아무도 없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그리스도 외에는 그 누구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그 율법들을 지킬 자는 없습니다.
-
율법을 먼저 두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뒤에 둔다면 예수 믿은 이후에는 율법이 필요 없다는 인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께 왔으므로 나에게 어떻게 살라고 말하는 율법은 필요 없다.”라고 고 말할 것 또한 잘못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필요함을 알도록 하나님은 율법을 주셨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이후 우리가 어떻게 그를 위해 살아야만 하는가를 알게 하려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다.”고 요한은 말했다(요일
5:3)
결론적으로 교리 문답은 확고하게 교리로서의 기독교와 생활로서의 기독교, 곧 신앙과 생활의 분리를 배제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참 기독교는 결코 그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이 둘은 항상 병행합니다.
[질 문]
1)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있나요?
2)
그러면 성경의 충분성을 인정할 수 있나요?
3)
이 세상 원리들은 알기 위하여 성경의 조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주의 빛 가운데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시 36:9)란 말씀에 근거하여 설명하여 보세요.
4)
성경을 조명하여 세상을 바라보기 위하여는 성령의 거듭남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우리가 아무거나 내 생각대로 믿어도 관계없다"라는 말에 대하여 성경적 원리에 의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6)
교리 문답이 기본적인 강조하는 두 부분은 무엇인가요?
7)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럼 율법이 "몽학선생"이란 뜻이 무엇입니까?
8)
교리문답이 율법에 앞서서 믿음을 먼저 취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십시오.
9)
예수님을 믿어 거듭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십계명)이 필요한가요? 이유를 설명하여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