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gok Lee 논어 첫 장에 대한 단상 하나 더하기.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유붕자원방래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인부지이불온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해석은 생략한다.
세 문장의 마음들이 비교된다.
열(說;기쁨), 낙(樂;즐거움), 불온(不慍;노여워하지 않음).
세 번째 문장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마음에 노여움(화)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군자가 아니겠는가?”라고 번역되지만,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말을 바꿔보면 ‘사람들의 생각이 나와 다르더라도’로 읽을 수 있다.
인(人)은 특정한 개인일 수도 있지만, 공자의 경우는 다수의 사람들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앞의 두 문장은 기쁨說과 즐거움樂으로 마음을 표현하지만, 여기서는 불온(不慍)으로 표현한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나와 다를 때 그것을 즐기는 정도로 바라보는 달관(達觀)은 아니지만, 마음에 평정을 잃지 않는 상태를 군자(君子)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이 공자의 군자(君子)에 대해서 가장 오해가 깊다.
첫째는 군자와 소인을 대립적이고 고정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인데, 공자 스스로는 인간의 진화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할 뿐이고, 스스로도 군자라는 인간상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그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나타내는 말로 쓰고 있다.
둘째는 군자(君子)는 한자의 뜻이 의미하는 것처럼 신분계급제 사회에서 군주(君主)의 아들 즉, 귀족이나 관료 등 지배계급을 의미하는 말이었는데, 공자는 이 말의 내용을 혁명적으로 그러나 조용하게 바꿨다.
즉 신분의 귀천이 아니라, 그의 인격의 성숙이 군자의 조건이라고 바꿈으로서 신분계급을 넘어서는 사상적(제도까지는 바꾸는 것은 엄두를 못냈지만) 지평을 열었다.
군자를 현대에 불러내 ‘끊임없이 진리(眞理)와 의(義)를 추구하는 자주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읽는다면 이 세 번째 문장이 새삼 다가오는 바가 있다.
세상에 대한 지극한 관심, 스스로는 지공무사(至公無私)의 입장이라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은 실제로는 자기의 관념일 뿐이라는 자각이 있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무지(無知)의 자각’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그럴 때 세상 사람들의 생각, 때로는 다수의 생각이 자기와 달라도, 초연하게 즐기는 달관은 아니지만(오히려 이런 달관은 공자의 태도가 아니다. 논어 여기 저기 은자(隱者)들의 공자에 대한 비아냥에 대한 공자의 언급이 나온다), 평정을 잃지 않는 내면 깊숙한 여유로움이 이 불온(不慍)이라는 말 속에 느껴진다.
요즘 여러모로 다가오는 심정이다.
===
4 comments
구정회
화, 나게 해도
화, 내기 없기.
· Reply · 4 d
崔明淑
인간의 일생은 무지를 깨우치기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며 무지를 알기에 겸허해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일종의 수행자와 같은 삶이 인간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그것을 또 사람은 원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선생님이 말씀하신 본능으로요.
· Reply · 4 d
최영훈
· Reply · 3 d
이병철
사실 논어 첫 문장에 즐거움과 기쁨을 이야기 하다가 왜 뜬듬없다 싶게 군자의 불온을 이야기를 했는가를 생각할 때가 있는데, 나는 거기서 공자의 아픔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화이부동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싶습니다.
· Reply · 3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