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과 자살사별자 자신의 용서가 ‘애도모임’ 궁극 목표죠”
등록 :202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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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마인드웍스 심리상담 고선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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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사별자 자조 모임 메리골드 대표 고선규 박사. 조현 기자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들은 누굴까. 가족을 잃은 사별자 가운데도, 자살로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이 아닐까. 자살자의 육신이 사라진 뒤에도 남은 자들은 이해되지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참담한 상황에 혼란과 고통을 끌어 안은 채 살아가게 마련이다.
고선규(46) 박사는 자살사별자 전문 상담가다. 임상 심리전문가그룹 마인드웍스 심리상담의 대표이며, 심리지원단체 메리골드를 이끌고 있다. 자살사별자들 5명과 가진 여섯번의 애도 모임 여정을 <여섯 밤의 애도>(한겨레출판)에 담은 고 박사를 지난 10일 서울 공덕동에서 만났다.
그는 2019년부터 20~30대 여성 자살사별자 자조 모임 메리골드를 이끌었다. 메리골드는 ‘꼭 오고야 말 행복’이란 꽃말을 지닌 꽃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에서 이승과 저승을 잇는 다리에 뿌려진 꽃이기도 하다. 남다른 아픔을 지닌 이들은 애도 모임에 와서 ‘살고 싶어서 왔어요’, ‘여기서 처음 얘기해요’, ‘여기밖에 얘기할 데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혼자만 알고 있기엔 너무도 아쉬운, 좋은 내용이 많았다. 눈물에 젖은 휴지를 한가득 남기고 떠난 이들의 자리를 정리할 때마다 아무에게 말 못하고 속이 썩어가는 자살사별자들을 연결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의 이런 생각에 5명이 선뜻 자신의 사연을 책에 공개하는 것에 동의했다. 용기를 낸 것이다. 이유는 간명했다. 같은 경험을 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 애도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좀 더 줄일 수 있고, 큰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여섯 밤의 애도> 표지.
<여섯 밤의 애도> 표지.
“우리 모임은 즐거운 마음으로 오는 데가 아니에요. 모임에서 더 상처받지 않을지 매우 무거운 발걸음으로 와요. 메리골드에선 팔찌를 준비하죠. 팔찌 색깔로 누구를 잃었는지 알 수 있도록 합니다. 노란색은 부모님, 주황색은 형제자매, 빨간색은 배우자 또는 파트너, 흰색은 자녀, 보라색은 친구 또는 지인이죠. 참가자들은 어색하고 긴장된 복잡한 마음이 드는 순간 같은 색깔 팔찌를 찬 사람을 발견하면 묘한 반가움의 눈빛을 주고받죠.”
참여자 중 원이는 남동생을, 민이는 오빠를, 선이는 여동생을, 영이는 아버지를, 경이는 언니를 잃었다.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혼자라면 지치고 외로울 수 있는 이들은 서로 부축하는 길동무가 되어 세상 밖으로, 사람 속으로 용기 내 나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자살사별자들은 우울함이나 불안이란 낱말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감정이 일시 정지된 상태에서 정서적인 혼란의 시기를 겪어요. 누군가를 잃으면 당연히 슬프리라 생각하지만 갑자기 그런 ‘외상적 사별’을 맞으면 죽음을 이해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려요. 애도 모임은 혼란 덩어리째 있는 감정을 닦고 꺼내고, 느끼는 과정입니다.”
2030 여성 자살사별자 애도모임
‘메리골드’ 2년 전부터 이끌어
최근 5명 모임 여정 책 출간
“고통 초기에는 가족 기대기보다
다른 사별자들과 소통 더 도움”
2013년부터 자살사별자 만나
그는 국가 차원에서 자살자 유족들을 위해 진행한 심리부검에 2013년에 참여하면서 자살사별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 뒤로 사별자 상담에 전문적으로 나섰다. 어린 자녀를 자살로 잃은 분들을 만나면 그 절절한 아픔이 전해져 몸이 아플 정도지만 그들의 갈급함을 알기에 이 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큰 고통을 겪는 자살사별자들이 가족끼리 더 상처를 헤집기도 해 안타깝다고 했다. “자신의 고통에만 휩싸여 있으면 다른 가족들도 고인을 잃은 사별자라는 생각을 잘 못 해요. 또 자신의 마음과 다 다를 거라는 생각도 잘 못 해서 ‘왜 저러지’라고 느껴요. 한동안은 가족이 자살한 이유를 찾기 위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남 탓을 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시어머니는 ‘왜 남편과 함께 살면서도 그걸 몰랐을까’라며 며느리를 탓하기도 하지요. 비난이나 불편한 감정으로 갈등이 많이 생겨요. 가족은 애도의 동반자여야 하는데 오히려 아픔을 전가하는 거죠.”
그가 고통에 직면한 초기에는 가족이나 친척에게 기대기보다는 전문가나 애도 모임을 통해 다른 사별자들과 소통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조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이웃이나 지인들이 조심해야 하는 점도 있다고 했다. 사별자들은 가족의 자살 사실을 주변에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고민이 크다. 본인이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간혹 사망 원인을 교통사고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조문객이 얼마나 다쳐서 그리 되었느냐, 가해자는 누구냐, 보험금은 얼마냐 등 꼬치꼬치 캐물어 사별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어요. 유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호기심 때문에 고인과 유족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지요.”
상담하면서 고 박사가 느끼는 가장 큰 아픔은 유가족의 죄책감이다. ‘내가 이렇게 했으면 막았을 텐데’ 혹은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살 수 있었을 텐데’라며 사별자들이 몸서리치곤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모두 자살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유가족들은 자신이 한 개인의 삶에 그렇게 강력한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한계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고인과 사별자 자신에 대한 용서가 애도 모임이 도달해야 할 곳이죠. 용서를 해야 고인을 잘 기억하고 온전히 애도할 수 있어요.” 그는 또한 웃고 행복해 하는 것조차 죄책감으로 멈칫해 하는 남은 가족에게 “행복해도 된다”며 애도 모임을 통해 좀 더 자유로워지고 평안해질 것을 권유한다.
“대부분은 고인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너무 아파서 외면하고 피하려고 해요. 하지만 지옥에서 빠져나오는 길이 너무 힘들다고, 지옥에 계속 머물 수는 없잖아요.”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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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24231.html?fbclid=IwAR0GFqJBgXVZqJWRdB7m-rYcKswpo-2ZHx2hi4pUuJpPPZz6o4NaL1PuN3A#csidx2c08f14428c2581b4daba5971a65d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