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30

알라딘: 제3의 예수 디팩 초프라 The Third Jesus

알라딘: 제3의 예수


제3의 예수   
디팩 초프라 (지은이),
이용 (옮긴이)
송정문화사(송정)2009-11-27
원제 : The Third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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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100자평(0)리뷰(3)

책소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저자는 이 책에서 세 명의 예수를 언급한다. 첫 번째 예수는 2000년 전에 살았던 역사적 예수, 두 번째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세 번째 예수는 모든 것을 품어 안는 우주적 예수다. 이 책이 강조하는 '제 3의 예수'는 신-의식 차원에서 개인적 체험으로 하나님께 이르고자 하는 이들에게 다가간다.

저자는 기독교가 배타적 성향을 버리고 개인적 통찰과 영적 성장을 위한 종교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예수가 본래 의도했던 자비와 용서, 이해의 가르침을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모든 인류를 감싸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이 책은 우리가 만나야 할 진정한 예수, '제 3의 예수'를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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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PartⅠ 제3의 예수
구세주, 다시 찾기
나는 빛이다
하나님 왕국은 내 안에

PartⅡ 깨달음의 복음서들
예수를 읽다
사랑과 은총
믿음
계시와 구원
예수와 자아
명상
묵상
기도
카르마 ― 뿌리고 거두기
환영일 뿐인 세상
합일
진짜 예수는 누구인가?

PartⅢ 예수는 수행의 안내자
높은 차원의 실재를 찾아서
길을 여는 법
여행의 중간
영혼이 결코 죽지 않는 곳
예수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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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디팩 초프라 (Deepak Chopra) (지은이)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이자 인간 잠재력 개발과 치유 분야에서 신상관의학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개척한 의학자. 인도 뉴델리에서 태어나 하버드 의대에서 공부했다. 고대 인도의 전통 치유 과학인 아유르베다와 현대 의학을 접목하여 '심신상관의학(mind-body medicine)'이라는 분야를 창안하며 대체의학의 선두주자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동양철학과 서양의학을 한데 아우른 독창적인 건강론과 행복론을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으며, 자신이 세운 '초프라 행복센터(Chopra Center for Well-Being)'에서 ... 더보기
최근작 : <디팩 초프라의 완전한 명상>,<팬데믹 시대의 평생 건강법>,<마음의 기적> … 총 968종 (모두보기)
SNS : http://twitter.com/DeepakChop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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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옮긴이)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여러 출판사에서 편집자, 편집장으로 일했다. 현재 번역 작업에 몰두하며 다양한 책 만들기에 대해 나름대로의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작 : … 총 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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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예수 그리스도, 과연 그는 누구인가?

대체의학의 선지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디팩 초프라는『제3의 예수』를 통해 하나의 답을 제시해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이 물음은 지금까지 이어져온 신앙 체계에 대한 도전이자, 예수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신선한 조망이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 지식과는 상관없다. 이 책에서 디팩 초프라는 세 분의 예수를 언급한다.

첫 번째 예수는 2,000년 전에 살았던 역사적 예수다. 이 예수의 가르침은 오늘날 기독교 신학과 사상에 밑바탕이 되었다. 두 번째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다. 이 예수는 특수한 교리, 성직제도, 신실한 신자들로 구성된 체계적인 종교를 이룩하고자 세상에 왔다. 마지막, 세 번째 예수는 모든 것을 품어 안는 우주적 예수다. 이 예수는 영적 안내자로서 그의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는 물론 전 인류를 감싸며 가르침을 주는 예수다. ‘제3의 예수’는 신-의식 차원에서 개인적 체험으로 하나님께 이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예수를 독실하게 따르는 데에서, 사람들은 불가능할 법한 일에 번번이 부딪힌다. 도대체 어떻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할 수 있을까? 태생적 인간 본성에 반하는 이런 예수의 가르침은, 그러나 신-의식에 이르는 영적 차원에서 예수와 동행할 때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
디팩 초프라는 말한다. 결국, 기독교는 배타적 성향을 버리고 개인적 통찰과 영적 성장을 위한 종교로 다시 거듭나야 한다고. 그래야 예수가 원래 의도했던 자비와 용서, 이해의 가르침을 보편적인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고 그럼으로써 예수처럼 모든 인류를 온전히 감싸 안을 수 있다고.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초프라는 우리가 만나야 할 진정한 예수, 이른바 ‘제3의 예수’를 조망하며 신과 완전히 합일하는 영적 길 가기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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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예수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기란 왜 그처럼 어렵다 못해 불가능한 것일까?]



두 가지 예수, 그리고 제3의 예수가 존재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체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여 세상의 지탄을 받아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외부적인 지탄만큼이나 내부적인 자성의 목소리도 높았다. 지금도 여러 형태의 ’제자 훈련’이 실행되고 있으며, 나름의 삶의 자리에서 몸부림 치고 있을 것으로 안다. 

디팩 초프라의 <제3의 예수>도 거기서 출발한다. 예수의 가르침은 무엇이었나를 묻고, 과연 교회가 그 가르침의 원형을 간직한 조직체인가에 의문을 던지며 정당성을 제고한다. 물론, 그가 이러한 도전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원래의 예수를 믿기 좋게 변형시켰다는 혐의를 부과한다. 현재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지 않아도 훌륭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고 조롱한다.

디팩 초프라는 현재 우리에게는 두 가지 측면의 예수 그리스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하나는, 피와 살을 지닌 ’역사 속의 예수’요, 다른 하나는 생존한 적이 없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기독교 교리로 다듬어진 ’이론적 예수’이다. 그런데 이 두 예수 뒤에 ’제3의 예수’가 존재한다. 


예수는 완전히 새로운 인간 본성을 일러주었다.

먼저, 예수는 누구이고, 그는 어떤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었는가? 디팩 초프라는 예수가 행한 가르침은 실제로 더 혁명적이고 동시에 오묘하다고 말한다. 예수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도 따르려고 하면, 예수가 남긴 유명한 말씀 대부분은 인간의 본성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황금율을 문자 그대로 따른다면? 새계명을 문자 그대로 따른다면?

그렇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지나치게 혁신적이어서 따르기 힘든데, 과연 이것이 예수의 의도였는가? 디팩 초프라는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이 변하지 않는 한, 예수가 한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예수는 새 시각으로 완전히 새로운 인간 본성에 대해 일러주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세상이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원했고, 인간의 본성이 혁명적으로 바뀔 수 있는 유일하고도 신비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신-의식(God-Consciousness)’을 지닌 제3의 예수

디팩 초프라가 말하는 제3의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어떻게 세상을 바꿀 것인가?’를 가르친 혁명적인 스승이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왕국에 속해 있었고, 하나님과 예수 사이의 친밀함은 의식의 차원에서 더욱 완전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인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예수는 구름 위 하나님의 거처에서 내려온 적이 없으며 또 권좌의 오른편에 앉기 위해 그리로 돌아가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디팩 초프라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든 것은 ’신-의식(God-Consciousness)’이었다고 말한다. ’신-의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이 하나님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이 바라는 행동과 같음을 알고 있있다는 것이다.


예수는 스승인가? 구세주인가? 

디팩 초프라는 예수를 ’스승’으로 만들었다. ’신-의식’을 지닌 제3의 예수는 ’신-의식’의 경지에 도달한 성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제자로서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 맞다. 디팩 초프라는 그런 예수의 제자라 자처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고 교회가 예수의 가르침을 타협적으로 수용하고, 의도적으로 감추었다고 비난한다. 기독교는 불가능해 보이는 ’인간 본성의 완전한 탈바꿈’을 적절히 바꾸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에 알려지고, 세상이 알고 있는 통속적인 예수는 타협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이 땅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가르칠 스승으로 왔는가? 예수는 인간이 어떠한 행위와 삶으로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가장 명백한 증거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오늘도 예수의 가르침대로 사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 맞다. 그러나 내일 다시 시도할 것이고, 노력할 것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도달해야 할 목표를 준 일이 없다. 우리를 해방했을 뿐이다. 그리고 동행을 약속하셨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예수를 스승이 아닌, 구세주로 먼저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를 구세주로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예수의 가르침이 그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했다. 예수의 가르침은 오직 예수를 구세주로 만난 그리스도인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다. 

<제3의 예수>, 그를 따른다면 예수가 말한 가르침을 문자적으로, 그대도 실천하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가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았는가 보다 먼저 예수가 누군인가를 분명히 알기 원할 것이다.


<제3의 예수>의 가치

교회의 역사와 함께 도그마화 되어온 예수를 제거하고 역사적 예수를 재구성하려는 노력은 계속 되어오고 있다. 분명히 역사에 존재하며, 함께 숨 쉬는 인간으로 존재하며, 갈릴리 바닷가를 함께 거닐며 가르침을 주었던 랍비 예수! 그 생생한 예수의 역사를 이 책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교회의 전통에 갇히지 않고, 절충되기 전의 그 가르침의 원형을 탐구하는 시도가 신선한다. 예수를 ’한 사람’의 구도자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우리가 따라야 할 가르침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신학을 전혀 모르는 성도들이나 비신앙인들은 비판적으로 읽기 힘든 서적이지만, 특별히 성경적 가르침을 전하는 최일선에 있는 현장 목회자들은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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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딸 2010-01-11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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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철학서 새창으로 보기
우리가 어디를 보든지 혼돈의 구름이 예수의 메시지를 가리고 있다. 그것을 뚫고 나오기 위해 우리는 예수를 말하면서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야만 한다. 한쪽의 예수는 역사적인 인물로서 우리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또 다른 예수는 기독교 제도에 맞춤된 예수로서 기독교를 이루는 데 적당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세 번째 예수가 있다.

이는 가장 신실한 기독교 신자들조차 그 존재 여부를 짐작하지 못할 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결코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서도 안되는 예수다. (중략) 그런데 복음서를 잘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첫 번째 예수는 그리 일관성있게 보이진 않는다.(중략) 우리가 이 같은 모순을 더 발견하면 할수록 예수는 신화적인 모습을 벗게 된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살과 피를 지닌 인간이라면, 그는 엄청나게 특별한 사람이어야 한다. 신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인간적인 면에서 뛰어나야 한다. (중략)

이런 두 예수, 즉 역사적 존재나 신학이 탄생시킨 추상적 존재에게는 모두 비극적인 면이 있다.(중략) 나는 진실로 예수가-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 아니라-그 자신이 선언했듯 한 사람의 구원자였음을 말하고 싶다. 

-<제 3의 예수>에서

기독교에 대한 회의를 오랫동안, 강하게 품어온 사람으로서 반가운 책이었다. (필자는 '신성'이 사라진 종교들을 늘 쓸쓸히 바라본다.) 기독교에 의해 왜곡되고 비틀린 일종의 '예수문화'에 대한 강한 반발심은 천국에 대한 협박이나, 성경에 대한 발췌 오독, 위선적인 교인들, 폭력적으로까지 느껴지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강요 등등, 에서 생겨났다.
 
<제3의 예수>를 읽기에 앞서 오래된 의문에 대한 시원스런 답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다소 적개심을 가진 독자에게는 의외로 순한 중도의 의견들이 이어졌다. 절대자가 아닌 성자로서의 예수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교인들에게는 파격적인 행보가 될법도 하다. 오롯히 예수만을 바라보자는 저자의 강한 의지가 넘쳐나는 중, 그러다면 예수는 진실로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성경 밖에서, 성경 안에서 해독하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예수와의 인간적인 관계를 맺게 될것임을 시사한다. 성서를 깊이 파고 든다면, 그 안에 진정으로 종교에게 바라는 단어-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이야말로 기다렸던 충고였다. 오로지 '믿음'과 '교화'를 강조하던 기독교의 세불리기 전술에 빠졌던 핵심이 아닐까. 기적이나, 희생의 자욱한 안개에서 가장 높은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준 예수가 걸어 나오는 기분이다. 

책은 다양하게 성경구절을 되읊으면서 의미를 재해석하는 데 중점을 둔다. "누군가 너의 빰을 치거든 다른 쪽 빰을 내주라"는 자학이나 순교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비폭력 또는 아힘사로 전해지는 이 구절의 깊은 속내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폭력을 제압함으로써 스스로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말이라는 것이다.     
 
신약에 대해서는 예수의 추종자들이 남긴 예수 해설서라고 일축하면서 예수 재림에 대한 기대도 단박에 꺽어버린다. 예수와 하나님의 증거에 목마른 교인들에게는 불벼락 같을지라도 예수의 깨달음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천국이 안에 있다'는 말조차 내면으로 들어감이 깨달음과 같다는 해석이 내려진다. 천국으로의 도달을 위한 헌신과 봉사, 묵상등의 방법으로 내면과 바깥 세계의 모순을 풀어줄 수 없단다! 예수는 매일의 기도와 하나님에 대한 경배로 가득 찬 길을 바라지 않는단다! 오로지 자신을 깨우치는 깨달음만이 어떤 영적인 길이든 충만히 사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는 저자.

예수가 깨달았던 우주의 섭리에 대해 거웃없이 다가갈 수 있었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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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맘 2010-01-29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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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의 예수 새창으로 보기
학문으로서의 종교는 나에게는 가장 호감이 가는 분야다. 특히 성경을 기초로 하는 모든 종교가 그렇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절실한 신자가 되거나 종교에 우호적인 태도를 지향하지는 못했지만, 나에게 있어 종교는 오랜 시간 동안을 다양한 고민 속에 빠져 들게 만든 특별한 뭔가가 있었다. 자식이 태어나면서 생명에 대한 신비를 느꼈듯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종교에 천착할 수밖에 없는 나의 심정은 어쩌면 나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20 년에 걸쳐 교회의 신자로 남고자 했던 나의 끈질긴 시도는 결혼과 함께 끝이 났다. 난 아내가 독실한 신자이기를 바라지 않았다. 가정보다 더 무게를 두는 그 어떤 가치도 받아들이지 말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물론 믿음 생활이라는 것이 단순한 양자 택일의 단순함을 훨씬 뛰어 넘는 것이기는 하지만, 어째거나 새로운 삶을 시작함에 있어 난 새롭게 만들어질 나만의 우주에 모든 심혈을 기울이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교회안에서 예배 외에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었으므로 난 일요일이 따분해 지기 시작했고, 좀 더 생동감 있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자 세상 속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 마음 속에 자리잡은 예수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을 끈임없이 가져보곤 했다.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가 인류에게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을 생각할 때 그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 자체를 뛰어 넘어 인류가 발전시킨 역사적인 의미로서의 종교나 문화로서의 가치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이 모든 것을 정치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측면까지 확대해서 조망하려는 깊이 있는 연구도 수행하고 있으며, 앞으로 하나님이라 불리는 존재가 악용 될지도 모르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도 함께 전하고 있다. 

저자도 진단 했듯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예수는 단순히 33년의 세월을 살다간 고대의 한 인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기독교의 역사와 함께 잘 다듬어진 이른바 교리로서의 이론적 예수가 있다고 전재한다. 사실 우리는 성경을 아무리 주의를 깊게 들여다 보더라도 예수의 생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아무리 그의 죽음이 주는 의미가 크다고는 하지만, 삶의 과정으로서의 그의 여정은 대단히 짧기도 하려니와 그다지 명료하지도 못하다. 주의 깊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알고 마음 속에 믿는 예수는 오히려 두번째와 같이 오랜 시간을 두고 형상화된 예수가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디를 보든지 혼돈의 구름이 예수의 메시지를 가리고 있다. 그것을 뚫고 나오기 위해 우리는 예수를 말하면서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야만 한다. 한쪽의 예수는 역사적인 인물로서 우리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또 다른 예수는 기독교 제도에 맞춤된 예수로서 기독교를 이루는 데 적당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세 번째 예수가 있다. 이는 가장 신실한 기독교 신자들조차 그 존재 여부를 짐작하지 못할 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결코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서도 안 되는 예수다. p-20

저자가 말하는 제 3의 예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는 이 제 3의 예수야말로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어떻게 세상을 바꿀 것인가?'를 가르친 혁명적인 스승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전통적인 신앙처럼 예수가 물 위를 걷고 장님의 눈을 뜨게 한 기적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것을 알게 하고 변화를 성취하게 만드는 다른 차원의 신앙에 무게를 둔다. 그것은 곧 우리 곁에서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예수이며, 그가 말하는 과제라는 것도 복잡한 신학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 안에서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밝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 예수에 대한 연구를 접한다. 학자들 간에는 아직도 사막 어딘가에 묻혀 있을 고대 문헌을 통해 예수의 정확한 실상을 밝혀내려는 노력을 계속하고는 있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의 실상과 종교적인 형상간에 존재하는 차이점을 정확히 밝혀낸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갖는 의미는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저자는 책 말미에 지금 현재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득세를 우려하고 있으며,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요구하는 등의 보수주의를 비판하면서 이와 관련된 다양한 논란이 진행중인 문제들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의 주장은 분명 책 전반에 걸쳐 상당한 설득력이 있어 보이며, 이 시대의 모든 종교인들(비 종교인들까지 포함해서라도)이 귀 담아 들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성경과 예수로 대변되는 기독교 내부의 깊은 곳까지 해부한 이 책은 어떤 면에서는 현대인이 갖춰야 할 종교적 마인드를 설명하고자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오늘날 종교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으로 말미암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하나의 지도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느끼는 희미한 감정은 [제3의 예수]는 한편으로는 상당수의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지는 모르지만, 우리를 새로운 앎의 길로 인도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이러한 우려는 비교적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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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님과함께... 2010-02-02 공감(1)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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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안에 예수는 있다, 없다 새창으로 보기
기독교의 역사, 예수의 역사 모두 '종교'라는 사명보다는 '역사'라는 거짓말을 농후하게 포함시켜 왔다. 

'역사는 모두 헛소리다' -헨리포드
'역사는 승리자가 자신을 위해 기록한 것'-<세계를 속인 거짓말> 서문에서

이미 한몸으로 지칭되어왔던 기독교와 예수를 '예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로 방점을 찍어보자. 확실히 기독교의 역사는 예수 탄생 이후이므로 충분히 가능한 명제다. 굳이 교회에 나갈것도 없이 예수가 전하는 신의 말씀을 경청할 수 있다는, 다소 불안정한 가능성도 제기해보자. 그렇다면 기독교를 향해있던 의심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다.

혹시 일종의 기독교라는 사업계획 안에 예수가 가장 적절한 인물로 채택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문화적, 정치적, 집단적 산물이 신의 말씀과는 방향을 달리할 수 있다는 여실한 가능성으로, 위선적인 교인들이나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다소 폭력적인 슬로건을 향한 예민한 반응을 거두어본다. 

한 마디로,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예수 모독이 아니다. '사람'이 만든 기독교에 대해 '사람의 잘못'을 조금 짚어보고자 하는 것 뿐이다. 로마가 국교로 기독교를 채택하면서 제외한 복음들은 정확히 정통파와는 대결되는 것이었다. 정치적 결정이 신성을 내세우는 종교에서도 이루어지면서, 기독교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히람의 열쇠와 프리메이슨>은 콘스탄틴누스 대제가 '공식'성서에서 누락시킨 <도마복음>의 구절들을 증인으로 세운다. 로마교회가 차기 지도자로 선호했던 인물은 예수가 지목한 야고보가 아니라 베드로였기 때문에 예수의 말씀을 편집하는 '종교 만들기' 작업이 시작된다. 신약성서에서 야고보의 말씀 역시 누락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절차였다. 

더욱 중요한 건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로 알고 있었던 '예수'가 사실, 두 아들 중의 하나였고 둘 모두 구세주 또는 메시아라고 주장했던 점이다. 따라서 둘은 모두'예수'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게다가 둘 중 의인으로 불리며 당대 더 낳은 평가를 얻었던 건 예수가 아니었다. 

한 명은 십자가 위에서 죽고 한 명은 그렇지 않았다. 죽지 않았던 자가 야고보, 바로 둘 중 더 낮았지만 평가는 더 높았던 자였다.
 -<히람의 열쇠와 프리메이슨>에서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었는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교환되었는지, 대체되었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어왔다는 사실도 처음이지만 그런 불씨가 제공되는 고고학적 사적이 존재한다는 건 더 놀랍다. 의도적 탈락이 잠시 진실을 가리긴 했지만, 그건 고양이털을 숨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대단한 사실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주로 백인의 훤칠하고 반듯한 인물로 그려졌던 예수의 외향에 대한 숨겨진 기록 역시 역사가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거짓말의 단면을 입증한다.  

평범한 외모에 진한 피부색, 작은 체구, 3큐빗의 키(약140센티미터)긴 얼굴에 곱사등이, 코가 길고 눈썹이 맞붙은 성인 남자, 성성한 머리카락은 머리 가운데에서 나뉘고 나사렛인의 태도에 빈약한 턱수염을 가진 자로, 무서운 인상을 풍긴다.
 
신약성서에서 제외된 <요한 행전>에서도 예수는 '작은 체구의 남자'로 기록되고 있었다. 신에 버금갈만한 인물에게 아름다운 용모나 큰 키는 절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예수를 신으로 섬기게 하기 위해 벌인 가식적인 노력들이 들통났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2천 년 동안의 반유대주의 운동을 초래한 거짓말과, 예수가 행한 기적같은 일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확인하면서 감히 기반부터 흔들리는 기독교의 역사를 마주한다. 다만 기독교가 '사람'이 만들었다는 전제를 상기시킨다면, 신 혹은 예수의 말씀이 더이상 욕보이는 일은 없어야한다는 생각이다. 한 권의 책으로(6년에 걸친 공동탐구와 집필의 결과물이었다) 밝혀진 역사적 진실로 성경이 다시 쓰여지기에 기독교의 몸통은 너무 비대하다. 그들(공동저자)이 확신하는 로슬린 성당의 숨겨진 문서가 파헤쳐지기 전까지는.

하지만 여기 기독교인의 철저한 자기성찰을 담은 책이 있다.<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 목사의 반성치고는 꽤 강도도 세고, 위트도 있다. 네 명의 목사와, 평신도 유명 연예인, 사회학자, 반 기독교 방청객들이 두루 등장하는 100분토론이라.


기독교를 위한 변명이나 상식적인 결론의 도출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진 않을까, 했지만 수위높은 비판들이 거침없이 쏟아지는 통에 기겁하고 말았다. 초고를 완성하고 원래 뜻과 달리 다른 기독교인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는 저자는 <MBC100분 토론>의 형식을 빌어 지루한 종교서를 긴장감 넘치는 연극으로 탈바꿈해냈다. 현장의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생생한 토론 현장을 방청한다.
 
붕어빵 기독교, 개독교, 예수없는 기독교, 짝퉁예수,먹사 등 거침없이 비판의 정체를 해부하면서, 옹호를 위한 언급이 아니라 토론을 통한 가치관 찾아내기로 방향을 잡아가는 구성은 참신하고 속시원하다. 예상대로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진 패널들이 출연하는데 정통파, 보수파, 급진파로 나뉘어지는 목사들에게서는 현실 기독교의 다양한 모습들을 관찰할 수 있다.
 
필자는 급진적인 대안과 의견을 쏟아내는 조하나 목사에게 동조했지만 정통적인 기독교적 입장이나, 신실한 마음의 연예인 신자 예신자, 기독교를 사회적 안목으로 바라보는 권중진의 말에도 적극 공감했다.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로서 인간이 만든 사회적, 문화적 실체입니다.  ..그런 종교를 신뢰하고 믿는 것과 예수님이라느 존재를 믿는 것을 동일시하게 되면 기독교를 좇아가다가 예수님 신앙을 잃어버릴 수도 있어요. 또한 반대로 기독교를 절대화시킬 수 있는 위험도 있고요.
 
'어떻게 목사로서 기독교를 안 믿고 교회를 안 다녀도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는 이성공 목사(가상인물)의 비난을 받은 말이긴 하지만, 기독교가 예수의 모든 것을 포함하긴 해도 예수가 모든 기독교를 포함할 수 있는 건 분명히 아니다. '로마의 공인과 국교화로 시작한 기독교는 '예수의 종교'가 아니라 '예수에 관한 종교'였다'고 보는 남예혁 목사(가상인물)의 말로 정리될 수 있지 않을까.

붕어빵 기독교에 대한 정화력도 대단하다. 예수님의 겉모양만 있을 뿐,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를 품어내는 생명의 자궁을 잃어버린 쓸쓸한 종교. 그 원인을 짚어보는 것만으로도 해결책은 드러난다. 성격독해력의 저하, '죽어서 가는 천국'에 대한 불순한 이미지, 교회만 나가면 신앙심을 얻을 수 있다는 가벼움, 예수님을 이용해 이루려는 사적인 욕망, 자본주의와 결합한 맘몬주의. 

스스로 몸담은 종교를 향한 화살치곤 대차다. 이참에 기독교, 제대로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무관심을 철회하고 나니 오히려 두 눈은 충실해진다. 의심하는 자를 끌어들일 때는 의심만 걷어주면 된다는 아주 간단한 전도의 룰이 적용된 샘일까.

<제 3의 예수>는 성경독해를 위해 팔을 걷어부친다. 조하나 목사(가상인물)의 말대로 '문자 너머의 말씀이 담고 있는 깊은 뜻과 큰 진리'를 보려는 노력이다. 성경의 진실여부를 떠나 하나의 철학서로 읽힐 수 있다.    


 디팩 초프라(저자)는 예수와의 인간적인 관계를 맺어야 함을 강조한다. 성서를 깊이 파고 든다면, 그 안에 진정으로 종교에 구하는 단어-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이 환하다. 일방적인 '믿음'과 '교화'를 강조하던 기독교의 몸불리기 전술에 빠졌던 핵심이 아닐까. 기적이나, 희생의 뿌연 안개에서 높은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준 예수가 걸어 나오는 기분이다. 

책은 다양하게 성경구절을 되읊으면서 의미를 재해석하는 데 중점을 둔다. "누군가 너의 빰을 치거든 다른 쪽 빰을 내주라"는 자학이나 순교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비폭력 또는 아힘사로 전해지는 이 구절의 깊은 속내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폭력을 제압함으로써 스스로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말이라는 것이다.     
 
신약에 대해서는 예수의 추종자들이 남긴 예수 해설서라고 일축하면서 예수 재림에 대한 기대도 단박에 꺽어버린다. 예수와 하나님의 증거에 목마른 교인들에게는 불벼락 같을지라도 예수의 깨달음을 거웃없이 받아들이기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천국이 안에 있다'는 말씀은 내면으로 들어감이 깨달음과 같다는 방향으로 풀이된다. 천국으로의 도달을 위한 헌신과 봉사, 묵상등의 방법만으로 내면과 바깥 세계의 모순을 풀어줄 수 없단다! 예수는 매일의 기도와 하나님에 대한 경배로 가득 찬 길을 바라지 않는단다! 저자는 오로지 자신을 깨우치는 깨달음만이 어떤 영적인 길이든 충만히 사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필자도 언젠가는 종교로 귀의할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있다면 내가 아니라 종교가 날 찾아올 것이다. 나뭇잎 한장이 손바닥에 떨어지는 것만큼 우연을 가장해야하는 일이겠지만 무심결에 잡을 지도 모른다. 약한 인간이 깨달음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누가 말릴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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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맘 2010-05-0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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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신인가 인간인가   
디팩 초프라 (지은이),이용 (옮긴이)송정문화사(송정)2011-11-30
이 도서는 <제3의 예수>의 개정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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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대체의학의 선지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디팩 초프라의 베스트셀러 <제3의 예수>가 개정판으로 나왔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이 물음은 지금까지 이어져온 신앙 체계에 대한 도전이자, 예수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신선한 조망이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 지식과는 상관없다. 이 책에서 디팩 초프라는 세 명의 예수를 언급한다.

첫 번째 예수는 2,000년 전에 살았던 역사적 예수다. 이 예수의 가르침은 오늘날 기독교 신학과 사상에 밑바탕이 되었다. 두 번째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다. 이 예수는 특수한 교리, 성직제도, 신실한 신자들로 구성된 체계적인 종교를 이룩하고자 세상에 왔다. 마지막, 세 번째 예수는 모든 것을 품어 안는 우주적 예수다. 이 예수는 영적 안내자로서 그의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는 물론 전 인류를 감싸며 가르침을 주는 예수다. ‘제3의 예수’는 신-의식 차원에서 개인적 체험으로 하나님께 이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예수를 독실하게 따르는 데에서, 사람들은 불가능할 법한 일에 번번이 부딪힌다. 도대체 어떻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할 수 있을까? 태생적 인간 본성에 반하는 이런 예수의 가르침은, 그러나 신-의식에 이르는 영적 차원에서 예수와 동행할 때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

디팩 초프라는 말한다. 결국, 기독교는 배타적 성향을 버리고 개인적 통찰과 영적 성장을 위한 종교로 다시 거듭나야 한다고. 그래야 예수가 원래 의도했던 자비와 용서, 이해의 가르침을 보편적인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고 그럼으로써 예수처럼 모든 인류를 온전히 감싸 안을 수 있다고.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초프라는 우리가 만나야 할 진정한 예수, 이른바 ‘제3의 예수’를 조망하며 신과 완전히 합일하는 영적 길 가기를 돕는다.


목차
서론

Part Ⅰ 제3의 예수
구세주, 다시 찾기
나는 빛이다
하나님 왕국은 내 안에

Part Ⅱ 깨달음의 복음서들
예수를 읽다
사랑과 은총
믿음
계시와 구원
예수와 자아
명상
묵상
기도
카르마 ― 뿌리고 거두기
환영일 뿐인 세상
합일
진짜 예수는 누구인가? 더보기

책속에서
한쪽의 예수는 역사적인 인물로서 우리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또 다른 예수는 기독교 제도에 맞춤된 예수로서 기독교를 이루는 데 적당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세 번째 예수가 있다. 이는 가장 신실한 기독교 신자들조차 그 존재 여부를 짐작하지 못할 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결코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서도 안 되는 예수다.
- 20페이지, Part Ⅰ 제3의 예수 중에서  접기
영지주의는 개인적인 계시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므로 공식 교회의 의심을 샀다. 공식 교회는 종교적 배경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라도 계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위협을 느꼈다. 이 때문에 영지주의를 비난했다. 그러나 높은 차원의 의식의 빛 안에서 하나님 의식에 도달한 사람은 계시되는 진리를 경험한다고 예수는 확고히 말한다.
-... 더보기
우리는 한 랍비가 2,000년 전에 실제로 갈릴리 북부 지방에서 설교했는지 그 증거를 요구한다. 만약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예수의 신화를 정면으로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소중한 환상을 깨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예수가 성경의 가르침을 참으로 실현할 수 있는 인물이란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 181페이지, Part Ⅱ 깨달음의 복음서들 중에서  접기
마침내 신-의식에 도달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 영적 여정을 가는 사람은 모두가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영적 여정의 중간은 최종 목적지와 다르다. 낡은 자기와 새로운 자기는 결국 완전히 새로운 자기로 녹아들어야 한다. 죄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이 풍성해지고 우리의 모든 행동을 이끄실 것이다. 그것은 신-의식을 목적으로 영적 여정에 나선 사람들에게 주는 최소한의 약속이다.
- 288페이지, Part Ⅲ 예수는 수행의 안내자 중에서  접기
사회적 분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데도 예수의 메시지를 중요한 시간에 실제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예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그가 율법이나 교회의 권위에 기댄 도덕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회의 압력에 굴복하지도 않을 것이며 또 죄인들 위에 군림하지도 않을 것이다.
- 318페이지, Part Ⅲ 예수는 수행의 안내자 중에서  접기
추천글
예수는 교회, 기독교 심지어 ‘종교’의 영역에서 벗어난 지 오래되었다. 초프라의 저서는 예수를 옛날 모습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다소 역설적이지만 교회 전통에 갇히지 않은 모습으로 그린다. 그래서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도 잘 맞는다. 이 책은 갈릴리의 한 랍비가 그랬던 것처럼 찬탄과 비난을 함께 받을 것이다.
- 하비 콕스 
이 책에서는 동양 종교의 영향을 받은 한 남자가 서양 세계에 우리가 잃었거나 미처 몰랐던 예수를 소개하고 있다. 그것 자체만으로도 놀랍지만, 그만큼 디팩 초프라는 멋진 사람이다. 그는 역사 속 예수나 기존의 신앙, 교리, 교회 조직이 내세운 예수와는 다른 그가 신-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을 탐험한다. 이『제3의 예수』는 우리가 민족, 편견, 종교를 넘어 새로운 인간적 앎을 가지게 될 때 비로소 알 수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나는 예수에 대한 그의 통찰력을 반긴다. 이 책을 통해 신-의식으로 초대됨으로써 더욱 깊고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존 쉘비 스퐁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저자) 
초프라의 책『제3의 예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도주의자이자 1952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슈바이처 박사의 신학을 연상시킨다. 슈바이처 박사는 예수에 대해 폭넓게 기술했으며 예수의 삶과 사상에 대한 기존의 신학에 도전했다.
- 데이비드 T. 아이브스 (퀴니피악 대학교의 알버트 슈바이처 연구소 수석 연구원) 
매우 값진 책이다. 예수의 메시지는 명확하고, 간결하고, 직접적이다. 그러나 예수 세대에 그를 따랐던 사람들 간의 다양한 견해들을 적당히 수용하여 그 메시지는 절충되었다. 디팩 초프라의 책을 통해 당신은 이러한 혼란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고, 수세기 동안 교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민감한 주제들에 대해 새로운 앎을 얻게 될 것이다.
- 미케일 레드위드 (메이누스 대학 신학과 전임 학장 겸 교수, 17년간 바티칸 국제 신학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저자 및 역자소개
디팩 초프라 (Deepak Chopra)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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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영적 지도자이자 인간 잠재력 개발과 치유 분야에서 신상관의학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개척한 의학자. 인도 뉴델리에서 태어나 하버드 의대에서 공부했다. 고대 인도의 전통 치유 과학인 아유르베다와 현대 의학을 접목하여 '심신상관의학(mind-body medicine)'이라는 분야를 창안하며 대체의학의 선두주자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동양철학과 서양의학을 한데 아우른 독창적인 건강론과 행복론을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으며, 자신이 세운 '초프라 행복센터(Chopra Center for Well-Being)'에서 많은 이들에게 마음 수련법을 전파하고 있다. <타임>에서 ‘세기의 100대 영웅이자 우상 중 한 명’으로 소개되었고, <뉴스위크>가 선정한 20세기를 움직인 100인 중 한 명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글로벌 뉴스 매체인 <월드포스트>의 인터넷 조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40위를, 의학 분야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접기
최근작 : <디팩 초프라의 완전한 명상>,<팬데믹 시대의 평생 건강법>,<마음의 기적> … 총 968종 (모두보기)
SNS : http://twitter.com/DeepakChopra
이용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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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여러 출판사에서 편집자, 편집장으로 일했다. 현재 번역 작업에 몰두하며 다양한 책 만들기에 대해 나름대로의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작 : … 총 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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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예수, 다시 찾기 그리고 거듭나기

이 책에서 디팩 초프라는 성서 외경의 영지주의 복음서들까지 소개하며 우리가 찾아야 할 진정한 예수를 돌아본다. 그럼으로써 기독교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획기적인 관점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또한 성삼위일체의 신학적 예수를 영적 혁명자로 명명함으로써, 기독교 역시 진정한 세상 바꾸기의 또 다른 기적 수행에 동참하도록 제안한다.
그는 역사적 예수, 그리고 수십 세기에 걸쳐 발전된 신학의 예수와 구별하면서 우리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제3의 예수’를 등장시켰다. 그러고는 예수의 말씀들과 영적 활동을 통해 신-의식으로 가는 영적 여정을 매우 아름답게 설명한다.
그는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법한 코멘트 형태로 예수의 말씀을 분석하는데, 이를 바탕으로 실제 실행할 수 있는 영적 갈 길을 제공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교리주의 신학의 범주로부터 신의 아들, 세상의 빛이자 매우 진화된 영적 스승을 부드럽게 놓아준다. 그러면서 심오한 지혜와 명료성으로 인간적 예수 안에 있었던 신-의식이 우리 모두에게도 내재되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준다. 결국, 거듭남으로 가는 영혼의 거울을 깊이 바라보게 하고 마침내 우리와 신의 연결을 돕는다.

‘제3의 예수’는 안티 기독교, 안티 예수, 뉴에이지 운동의 일부분이 아니다.

만약 디팩 초프라가 단순히 기독교와 복음서에 대한 또 다른 비판적 분석에 그쳤다면, 그의 작업은 제한되었을 것이다. 그는 배타적 성향을 뛰어넘으며 시종일관 본질적인 예수 찾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우리의 배경, 종교, 인종, 세계관, 정치적 관점이 무엇이든지 간에 예수는 완벽하게 그 누구와도 접촉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초프라는 여러 성경 해석에서 오는 혼란에서 예수를 바로 잡고 그의 신성에 대해 알도록 해준다. 또한 그의 가르침에서 모순되어 보이는 말들을 이해하고 따르도록 우리를 안내해 준다. 그리하여 영적 생활이 어떤 것인지 새롭게 알게 해준다.

이 책은 성경적 비판주의의 혼돈에서 진정한 예수를 구출하며 신을 멀게만 느끼거나 도외시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한다. 또한 예수, 그 신비로운 존재를 새로운 방식으로 조사하는 방법을 선보인다. 그럼으로써 모순처럼 보이는 예수의 말씀을 해결하고, 그 가르침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날카롭게 하며, 일상의 삶에 적용하도록 유도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영적인 삶이 어떤지 새로운 기대를 가질 수 있다. 분명, 이 책은 신에 대한 감각을 잃은 사람들에게도 주의를 일으킨다. 이 책에 소개된 것들을 수용한다면, 그들 역시 무관심 대신 만유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천상 왕국은 우리 안에 있다” “내가 신이다”라는 예수의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이러한 앎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 등등을 풀이한다. 결국 예수는 우리에게 계몽된 스승으로 다가온다.

이런 측면에서『제3의 예수』는 환상적이다. 이 책은 신과의 합일을 위한 명상과 묵상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사람들 역시 많을 것이다. 이 또한 바로 이 책이 나와야만 했던 이유 중 하나다. 제3의 예수! 사실, 이름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요점은 본질이다. 예수는 예수다. 결국 예수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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