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1호 군자(君子)의 현대적 의미는 ‘자유로운 인간’ 즉 진보적 인간이다.
이남곡
(인문운동가)
공자의 군자(君子)론을 앞으로 몇차례 연재하려 한다.
내가 보기에는 공자가 이야기하는 ‘군자’에 대한 깊은 오해가 오랫동안 있어 왔다.
첫째는 공자는 군자와 소인을 대립적이고 고정적인 것으로 파악하지 않고, 그 다름을 인간
의식의 진화 방향에서 서술할 뿐 당위(當爲)로 강요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스스로도 미
치지 못함을 토로할 정도로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제시했다.
둘째는 군자(君子)는 한자의 뜻이 의미하는 것처럼 신분계급제 사회에서 군주(君主)의 아들
즉, 귀족이나 관료 등 지배계급을 의미하는 말이었는데, 공자는 이 말의 내용을 혁명적으로
그러나 조용하게 바꿨다.
즉 신분의 귀천이 아니라, 그의 인격의 성숙이 군자의 조건이라고 바꿈으로서 신분계급을
넘어서는 사상적(제도까지 바꾸는 것은 그 시대에는 엄두를 못냈지만) 지평을 열었다.
나 스스로 진보적인 인문운동가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10여 년 전 어떤 자리에서
‘진보’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소개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려고 한다.
“오랫 동안 한국사회의 진보를 위해 헌신해 오신 두 분 선생님을 모시고, 그 동안 1년 반여
인문학 강좌라는 모임을 통해 인연을 맺어온 여러분들과 함께 ‘진보의 미래’라는 주제로 오
붓한 자리를 만들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주제를 선택하게 된 것은 4.11 총선을 치루면서 나타난 이른바 ‘진보정당의 위
기’와 무관하지는 않습니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이런 현상이나 목전의 대선을 앞둔 진보 정
치 세력의 전략 전술적 목표를 넘어서 꼭 한번 다루어 보고 싶은 테마였습니다.
왜냐하면 요즘의 이런 실태들은 오래 전부터 객관적인 정세의 변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
른바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의 이데올로기와 행동양식(문화) 속에 이미 ‘쇠퇴나 위기’가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과 맞지 않는 신념체계(이데올로기)와 그에 바탕을 둔 낡은 정서 및 행동양식, 인류의식
의 일반적 진보에도 못 미치는 권력지향적 의식 및 헤게모니를 둘러싼 진영 싸움 등은 엄밀
하게 말하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보와는 인연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결코 사회적 부정의나 불평등, 착취나 독재와 싸워온 한국 진보세
력의 역할을 깎아내리거나 경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그런 역사적 과제들을
자랑스럽게 수행해온 사람들과 조직들이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실사구시하지 못하고, 낡은
시민제보~~!!!!
땅은 정해져 있고 인구는 계속 빠져…
답답하다 공동묘지처럼 죽은 골목…
어떤점이 억지일까 교통지옥을 당해…
억지 기사네
안해줘도 욕 해줘도 지랄 ~~
대중들에게 줄것이 있어야. 서로에…
소통신문을 빛내는 좋은 글들을 쓰…
그냥 내버려두세요.어차피 익산시 …
스물 몇 살에 문화재 문제를 깔끔하…
소통신문 외부 기고가 참 좋네요. …
바다 소리
가족, 그 영원한 이름
딩크족으로 산다는 것!
새
오고싶은 도시의 경쟁력, ‘익산…
이데올로기와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전위적 역할을 하
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하면 넘어설 수 있을까 하는 충정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진보의 위기’라는 말 자체가 잘못 쓰이고 있다는 자각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진보는 인류의 자유와 행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세상이 변화되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 과정이 순탄치 않고, 수 없이 많은 희생과 투쟁을 통해서 이루어져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인류는 ‘자유 확대’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제가 말하는 자유는 ‘자연계의
제약으로부터 생존을 위한 물질적 자유’ ‘억압과 착취, 불평등으로부터 벗어나는 사회적 자
유’ ‘의식을 가진 고등생명체인 인간만이 갖는 관념의 부자유로부터 해방되려고 하는 관념
계의 자유’를 포괄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인류는 진보의 길을 걸어 왔다고 대긍정하는 입장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과거의 좌우나 진보·보수로 나누어진 진영논리에서가 아니라 인류라는 종(種)
의 입장에서 의식(意識), 생활양식, 사회구조의 일대 변혁이 없으면 어쩌면 종(種) 자체가 소
멸하거나 문명 이전의 혼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 동안의 자유를 위한 인류의 오래된 여정, 그리고 인간이 갖고 있는 특성에 기인하
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 의식 속에 남아 있는, 어쩌면 아직도 지배하고 있는 오래된 진영논리로 이야기
하는 ‘진보의 위기’는 사실의 세계와는 맞지 않습니다. 특정 이데올로기나 정파의 위기를
진보의 위기로 혼동하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진보의 출발점이 될지 모르
겠습니다.
지금의 진정한 위기라면 그것은 과거의 진영 논리가 아닌, 인류 전체의 보편적 진화에 대한
위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위기를 넘어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지금까지의 진보세력이 먼저 스스로를 대전환함으로
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데 선구적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진보’라는 이름표를 붙일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되겠지요.”
“새로운 시대의 진보는 독재를 낳게 되어 있는 ‘민주집중제’의 오류에서 완전히 벗어날 뿐 아
니라, 지금과 같이 편을 갈라 결국 다수가 지배하는 불완전한 민주주의로부터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방식을 창조하고 발전시키는데, 진보가 선두에 서야 합니다.
비록 소수당이라도 ‘조화의 정치’를 선도하는 것이 진정한 진보당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약자가 무슨 ‘조화’나 ‘상생’을 이야기하는 것은 굴종이나 예속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미래 사회의 주체라는 주인의식으로 약자의식이나 피해자의식을 넘어서
는 것이 진보정당의 도덕적 힘이 되어야하고, 그것이 결국 진보정치의 가장 큰 자산으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계급투쟁론을 비롯한 낡은 사상 이론의 주술(呪術)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계급 발생을 비롯한 계급이론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계급이 있고, 투쟁이 있습니다. 또 그 사회의 계급구조나 제도가 사람들의 의식(意
識)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계급투쟁의 과정이라거나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식으로 단순화하는 것
은 일면적인 사실을 전면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단정(斷定)하는 것으로 인간과 사회의 실
상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온갖 이익에 집착하고 노동의 양극화를 낳고 있으면서도 ‘투쟁’과 ‘연대’의 빛바랜
기치를 들고 있는 일부 현실을 보면서 실사구시해야 합니다.
저는 ‘계급조화론’이 지금의 현실에서는 맞다고 봅니다.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실 분들도 많겠지요.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런 이야기는 계급적 모순
을 호도하여 투쟁을 약화시키고 지배계급의 지배를 영속화하려는 음모에서 나왔다고 생각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가장 진보적인 정당이라면 자본가까지도 견인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지향과 도덕적 힘을 가지고 계급조화론을 당당하게 선도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과거의 진보가 사회적·물적·제도적 진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것이 인간의 자유
를 확대하는 바탕이었다면, 지금처럼 물질적 수준이 상당한 수준으로 진척되고, 자유민주주
의가 절차나 제도로서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린 사회에서는 ‘인간 자체의 진보’ 즉 ‘의식·문화
의 진보’가 사회적 진보를 견인하는 시대로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무슨 ‘의식(마음)이 존재를 결정한다’는 류(流)의 사고방식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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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다만 그 상대적 비중이 달라졌다는 것을 실사구시적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성현(聖賢)보다도 공자의 사상은 자유로운 인간 즉 진보적 인간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상상력과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